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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8/21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살고자하는 마음
  2. 2008/07/31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살고자하는 마음
  3. 2008/07/15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살고자하는 마음
  4. 2008/07/01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살고자하는 마음
  5. 2008/06/17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살고자하는 마음
  6. 2008/06/05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살고자하는 마음
  7. 2008/05/15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살고자하는 마음
  8. 2008/05/06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살고자하는 마음
  9. 2008/03/26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살고자하는 마음
  10. 2008/03/11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살고자하는 마음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유대인들은 옛 언약과 함께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신령한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먼저 받았다. 하지만 사람은 육신이 연약하니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그것을 다 지키지 못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유대인들에게 내려주신 옛 언약은 반드시 율법을 완성하는 자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니 유대인이 만일 그것을 완성하지 못하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처음 들어오셨을 때 자녀 됨의 언약이 성취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아버지께서는 거룩한 자녀를 얻으시지 못하시니 구약의 경륜은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생명을 주시기 원하시니 한번 세우신 뜻과 계획은 반드시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변함없이 오직 아들을 통하여 이루어가신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거룩한 피가 없었던 그리스도전의 할례 받은 유대인들은 자신의 온 마음과 힘과 정성과 뜻을 다해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둘째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던 그리스도께서 거룩에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두고 애쓰는 영혼의 그 간절한 마음을 보시고 순한 짐승의 피와 속죄제물을 통해 도와주셨다.
 
결국 할례 받은 유대인들 중에 거룩에 이르고자 마음을 드린 자들은 거룩한 제물을 먹고 마시며 거룩에 애썼으니 자신이 지키지 못하던 율법과 계명을 하나씩 이룰 수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더 이상 가인과 같은 인간의 의와 피가 아니요 아벨과 같이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피를 몸의 산 제사로 아버지께로 올려드리므로 그 거룩의 완성으로 나아갔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로 성전에 거하며 사람의 유전과 규례에 따라 의문의 율법을 지키므로 아버지와 원수가 된 독사의 자식들이 아니요 오히려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 구약의 선지자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처음 오셔서 십자가에서 부활하셨을 때 무덤들이 열리며 구약의 거룩한 자들도 함께 부활하여 거룩한 성에 들어가므로 옛 언약을 성취했던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의 이방인들은 신령한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보다 십자가의 은혜를 먼저 받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신령한 율법과 새 계명을 십자가에 담아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새 언약과 함께 주신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이방인들 중에 그 소중한 마음을 가지고 새 언약의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에 이르기 원하는 자들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신이 그리스도께 받은 거룩하고 신령한 것들을 지키고자 애쓴다.
 
그러나 이방인도 할례 받은 유대인처럼 육신이 연약한 것은 마찬가지이니 거듭난 이방인도 그것들을 완전히 다 지키지는 못한다. 하지만 구약의 유대인들을 도우셨던 그리스도께서 신약의 이방인들도 도우시니 그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과 믿음을 보시고 이제는 더 이상 순한 짐승의 피가 아니요 십자가의 산 제사로 율법과 계명을 다 이루신 거룩한 생명이 있는 자신의 살과 피로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아버지의 신령한 율법이요 나중에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유대인과 달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직 인자를 의지하며 자신의 마음과 힘을 다한 이방인도 스스로는 신령한 율법과 새 계명을 지킬 수 없었으나 이제는 인자의 살과 피를 힘입어 하나씩 이루며 나아가게 된다. 그리하여 십자가의 거룩한 산 제물을 의지해 거룩을 이루어가던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일하게 죽기까지 순종하는 그 마지막의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즉 이방인도 더 이상 인간의 의와 가인의 피가 아니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드리므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새 언약을 성취하므로 그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거룩에 이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전에도 이와 같고 그리스도의 이후도 이와 같으니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자들이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오직 아버지의 뜻에 두고 율법을 지키고자 애쓰며 계명을 지키려고 힘을 다한다. 그러나 육신을 입은 사람이 지키지 못하는 것이 분명히 있으니 그것들에 대해서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힘입는 자만이 완성시킬 수가 있다.
 
이에 아버지께서는 아들인 그리스도를 의지해 그것을 완성한 자에게는 그의 의롭다 함과 거룩하다 함을 말씀하시며 또한 인정하신다. 그리고 그 칭함과 인정은 좌우로 흔들리는 사람에게서부터 나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한 분 신이시며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절대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분께로 얻는 칭함과 인정이다. 그러므로 의롭고 거룩하다는 칭을 아버지께로 받은 자들은 이 땅에서도 오직 아버지의 참된 아들과 딸의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그러나 그 칭함과 인정을 받지 못한 자들은 그 누구도 또한 인간의 어떠한 노력과 의로도 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사람이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선 자기의 생각과 의에서 돌이키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으니 생명이라는 것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싸우며 유지되고 이기고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룩한 육체의 부활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있을 수 없으니 고난에도 구별이 없다. 그러므로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는 자들은 아버지의 원수와 그가 공중권세를 잡고 불의와 죄악으로 이끌어가는 이 세상에게 고난도 함께 받는다. 그리하여 그것이 바로 구약의 유대인과 신약의 이방인가운데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하늘의 푯대를 소망하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임하는 환난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의 실제적 고난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니 죽기까지 순종한 유대인에게 옛 언약을 이루어주셨던 것처럼 그와 같은 이방인에게도 새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주신다. 또한 씨를 뿌리고 땀 흘린 후에는 열매를 얻고 고난 후에는 반드시 영광이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새 언약을 믿고 소망하며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세상에서 나와 의를 따른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두 번째로 들어오실 때 거룩한 육체를 입고 비밀의 경륜에 이르므로 그 영원한 약속을 성취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이 첫째하늘과 땅이 유황불 못으로 변하는 그 천년왕국의 끝에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영원한 본향 셋째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지게 되는 것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그리스도께서는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해 모든 유대인들에게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주셨으니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율법을 지키고 또한 계명들을 지켜야 아버지께로 나갈 수 있도다.'라는 말을 늘 들어왔다. 아버지께서 내려주신 계명과 법도에 불순종한 자가 어찌 소멸하시는 빛이신 아버지의 앞으로 나아가 그 영광스런 얼굴 앞에 설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유대인으로서 그것을 지켜야 함은 당연한 것이었으며 그들은 어려서부터 그렇게 알고 있었다.
 
결국 유대인들 가운데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친 후 육을 떠났을 때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 앞에 서기를 소원하는 영혼들은 그리스도의 전이나 당시나 그것을 지키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사람을 거룩하고 신령하게 하는 것들을 지키고자 애쓰되 늘 육적으로 또한 생각으로 지키려고 애썼으니 그런 애씀은 그리스도의 당시에도 또한 십자가 이후로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이방인들 중에도 그렇게 지키고자 애쓰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유전과 규례를 따르는 성전의 전통과 독사의 자식들에게서 벗어나 자신을 따르는 유대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셨다. “누가 율법을 완성시키리오? 누가 계명들을 다 지키리오?” 그 질문을 받자 제자들은 그것을 지켜야만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유대인으로서 그것을 온전히 지키고 있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바라보며 걱정했다. 즉 자신이 생명의 근원되신 영광의 아버지께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지키지 못하고 있던 부분의 율법과 계명들을 보며 심히 근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생각에서 회개하고 돌이켜 자신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번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가 그 율법을 완성시킬 것이요 그가 그 계명들을 다 지키겠노라."
 
이 말씀을 듣자 제자들은 살고자하는 마음과 아버지께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충만했기에 깨달음을 얻고 비로소 자신의 마음에 믿음과 기쁨이 생겼다. 그 이유는 자신의 마음을 다해 율법과 계명을 지키되 자신의 부족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께로 나아가 인자를 의지해 자신도 그것을 완성하므로 그 영광의 자유에 이를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마음과 정성을 다하며 애써도 부족한 것은 오직 의를 따르며 인자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후 내어준 그것을 의지하므로 자신도 율법을 완성해 아버지께로 나갈 수 있는 그 길이 열렸기에 믿음과 기쁨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아 세상과 구별된 유대인들과 거듭남의 은혜를 받아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서 구원받은 이방인들 가운데 아버지께 택함 받은 은혜와 독생자의 십자가를 통해 주신 첫사랑을 썩어질 육의 욕심과 헛된 세상의 영광과 맞바꾼 자들은 살고자하는 마음도 버렸으니 참으로 어리석게도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눈과 귀의 닫힘은 그리스도의 전에도 당시에도 또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결국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이 가까운 이 마지막 때에도 이방인의 거듭난 자들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완성하셨으니 나는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라고 하며 자신은 아버지의 그 율법과 계명을 떠나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찾는 짐승보다 못한 자들을 이곳 저곳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거룩하고 신령한 생명을 위해 영원히 지켜야 할 율법과 아무리 열심히 지켜도 의와 거룩을 이루지 못하는 오히려 아버지와 원수가 되는 의문의 율법의 구분하지 못하고 신령한 율법과 계명까지 버리게 되는 것은 썩어질 것과 헛된 것을 위해 영원한 은혜를 가치 없이 버린 개와 돼지들에게는 아버지께서도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의 눈과 귀를 열어주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자들은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서 나와 의를 따르지 아니하면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다 지키며 이루고자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누가 율법을 완성시키셨으며 누가 그 계명들을 다 지키셨는지 알아도 그리스도를 따르지 아니하며 인자의 살과 피를 의지하지 않고 있으니 그들의 애씀은 참으로 어리석고 교만한 가인의 애씀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태양이 이 셋째 별의 위에 떠 있을 때에는 그 빛이 비취는 모든 지역을 밝게 밝힌다. 또한 그 지역을 따뜻하게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밝음과 따뜻함 안에 거하는 만물들로 하여금 자기의 일을 하게하는 태양의 그 빛으로 인하여 만물이 자신의 생명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어두운 밤에 켜놓은 촛불을 말속에다 숨겨 꺼지게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높은 곳에 둔다. 그러면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 어둠가운데서도 밝은 빛을 보고 생활하게 한다. 또한 바깥에 어두운 곳에 있던 자들도 만일 그 빛을 보고 들어오면 그 사람도 역시 빛 가운데서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며 다시금 새로운 아침이 밝아올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빛의 중요함과 고마움을 깊이 생각하지 않되 오직 어둠 속에서 빛이 생명과 같음을 깨달은 자들이 실제의 빛을 보며 기쁨과 감사가 충만해진다.
 
이처럼 사람이 복음의 비밀을 자신의 머리 위에 두면 그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의 빛이 그의 생각과 마음과 말과 행실을 비추어준다. 마치 태양이 그 모든 지역을 밝히는 것과 같다. 또한 태양이 그 지역을 따뜻하게 하듯 진리는 사람을 씻어 거룩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자신의 머리 위에 두고 말씀에 순종한 자는 그의 마음과 생각과 행실과 말이 올바르게 된다.
 
더불어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그 회개와 천년왕국의 복음을 자신의 머리 위에 두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자신만이 아니요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 거하고 있는 가난하고 불쌍한 영혼들을 위한 위해서이다. 그렇게 해야 이 셋째 별의 어둠 속에 거하는 사람들 중에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이 그 자의 머리 위에 있는 그 빛을 보고 와서 그 진리의 빛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헛된 세상에 거하는 사람이 우선은 그 자의 거룩한 행실과 말을 보고 듣는다. 그리고 나서 그 영혼이 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그 자의 위에 떠있는 그 복음의 빛이다. 이때 어둠에 있는 자들 가운데 자신도 그 자와 같이 의롭고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는 자는 거룩한 빛을 비추고 있는 자에게로 와서 그 진리의 빛을 얻는다. 그리하여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 세상의 흑암에 앉아있던 자가 그 빛을 얻어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그의 마음과 생각과 행실과 말도 올바르게 되어져 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한 영혼이 말씀이 갈급하니 아침이 되기 전 한 밤중에 찾아와 거룩한 생명의 말씀을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거짓선지자들은 어두운 빛을 가지고 있으니 육의 복과 세상의 영광의 빛을 비추어준다. 자신조차 어둠가운데서 어둠을 들고 있으니 어찌 빛을 비출 수 있으리요? 한편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노라며 참된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육과 세상으로 인하여 첫사랑을 잃고 중간에 바리새인과 같이 변한 목자들은 그 빛으로 자신을 비추지 않고 오히려 말씀을 이용해 자신의 생각과 의와 계획을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머리 위에도 역시 빛이 없다. 그리하여 빛이 없는 목자들은 그를 믿음이 없다고 꾸짖은 후 실제의 해가 올라온 아침에 찾아오라며 그를 다시 돌려보내되 어리석은 빛을 보고 따라간 그 영혼은 사망에 이른다.
 
그러나 동일한 상황에서 참된 목자는 그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어 자기가 거하는 곳에 그를 영접한다. 그리고 그를 앉혀 놓고 자기의 머리 위에 떠있는 그 생명의 말씀과 진리를 주어 단 일초라도 그에게 자신의 마음에 쌓아놓았던 모든 선한 것들을 다 내어주듯이 준다. 그리하여 어둠가운데 있던 그로 하여금 새벽이 밝아오기 전에 어둠에서 돌이키고 나와 그리스도안에서 그 거룩하고 빛난 새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빛은 오로지 창조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자신의 머리 위에 있어야 함이요 그리하여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행위와 말을 옳게 해야 한다. 그런 후 자신이 그 말씀을 구약시대에든 초대교회시대에든 일곱 교회시대에든 교회시대의 끝에든 평화하고 안전하다 할 때에든 마지막 대환난이다 할 때에든 칼 앞에든 어느 때에든지 전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가난하고 불쌍한 영혼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도록 자신을 비추며 따뜻하게 한 자들이 이 셋째 별에 천년왕국이 임했을 때 그리스도께로 빛을 얻어 하루 동안 밝은 빛을 비추고 다니고 또한 천국의 끝에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셋째하늘로 올라갔을 때 영광의 자유에 이르러 별과 같이 영원히 비취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통하여 이 첫째하늘을 선하고 깨끗하게 창조하실 때 이 셋째 별의 그 많은 바닷물에다 소금을 은혜로서 넣어두셨다. 그러므로 사람의 몸에 필요한 이 소금을 누구나 흔하게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것은 창세 때부터 지금까지 육의 음식에 재료로 쓰이고 있으며 또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은 믿는 자는 소금이라는 이 말씀도 깨닫고 실행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태초에 안식 후 8일째에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거룩한 형상과 모양으로 둘째사람을 지으신 후 2천년 전에 자신이 창조한 이 세상으로 처음 들어오셨을 때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바닷물에다 넣어둔 소금이라고 하셨다. 소금이 어떻게 사람의 손까지 오는지 또한 짠맛을 잃은 소금을 유대인들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들여다보면 믿는 자가 이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소금은 바닷물에서 나오니 바닷물에서 나온 후에는 깨끗이 말린 후 그것을 음식에 넣어 그 음식을 사람의 입맛에 맞춘다. 그러므로 음식이 깨끗하고 맛이 있으려면 당연히 깨끗한 바닷물을 말려야 하며 또한 깨끗하게 말리므로 그 말린 것에 반드시 짠맛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만일 더러운 바닷물을 말리거나 깨끗한 물이라도 더럽게 말리면 짜지 아니하고 쓴맛이 나기에 음식을 버리게 되고 몸에도 해롭다. 그리고 물을 말렸으되 그것이 짠맛을 내지 아니하면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그것을 깨끗한 물에 던지지 아니하고 더러운 물에다 버리니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맛을 잃은 그 소금을 통하여 헛수고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것에는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
 
“나는 너희를 깨끗한 물에서 택하여 말렸으니 사람들이 음식에 소금을 넣는 것처럼 사람들도 그 거룩하고 영원한 그 비밀한 영광의 생명에 이르도록 그들의 영혼 속에다 오직 진리만을 전하여라. 그러나 만일 진리를 전하지 못하는 자는 짠맛을 잃은 소금이 더러운 물에 버려지듯 오히려 더러운 물로 들어감이니 그리하여 그는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과 함께 거하게 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교회시대에도 또한 이 마지막 때인 지금도 그리스도의 이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누구든지 진리를 전하지 않는 자는 이 세상에 거하고 있다. 또한 사람이 의롭고 거룩하게 되어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진리를 아무리 전해주어도 자신이 의롭고 깨끗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 자들은 육의 욕심을 그대로 품고 있으며 또한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나와 진리를 따르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이 육과 세상에 있으니 그들은 자신의 몸도 이끌고 오히려 그 더러운 세상의 물로 더욱더 깊이 빠져가는 것이다.
 
한편 깨끗한 바닷물을 말리지 아니하고 더러운 물을 말리거나 깨끗한 것을 자신이 더럽게 말린 자는 전할 수 있는 거룩한 진리가 그에게 없다. 그러므로 그런 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해주리요? 그는 오로지 썩어질 것과 세상의 헛된 영광을 보고 이것이 진리라고 하며 또한 자신의 생각과 의와 계획을 아버지의 뜻이라며 전하게 된다. 이때 누구든지 자신이 더럽혀지는 것을 보면서도 그 쓴맛을 전하는 자들의 말을 듣고 기쁘게 따르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도 이미 육과 세상 것들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성품은 사랑과 공의가 함께 하시니 세상에 아들을 은혜로 주시고 길이 참으시다 결국에는 아들을 통해 세상에 심판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결국 짠맛을 잃은 자들과 쓴맛을 전하는 자들은 자신의 몸에서 끊어 모두다 더러운 물로 내어 던지신다. 그러면 그들은 이 세상에 마음을 두고 세상과 함께 거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밖에 버려져 세상의 공중권세를 잡은 원수와 그의 자식들에게 밟힌다. 하지만 이 더러운 세상이니 불의한 세상이니 말은 하되 이방인들에게 밟히면서도 세상에서 나오지 아니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 이 세상이 불로 멸망을 당할 때는 그들도 자신이 택한 이 세상과 함께 각각의 사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깨끗한 소금의 짠맛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아버지의 뜻을 알기에 오직 사람을 씻어 거룩케 하는 진리만을 전한다. 그리고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들 가운데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진리가 있는 자가 진리를 전할 때 의롭고 깨끗한 생명을 원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세상에서 나와 의를 따르며 자신의 안에 있는 선악의 죄와 싸운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밟혀지지 않고 오히려 죄와 이 세상을 이긴 그가 심판대에서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심판으로 받아 그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어떤 왕이 자신을 의롭게 여기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되 똑같은 일을 행했다. 그 모습을 보자 백성들 중 왼쪽에 있는 999명이 그를 좋아했으니 판단하는 자가 같은 일을 행하는 모습이 자신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이 가지고 오른쪽에 있는 999명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며 싫어했다. 잠시 후 어떤 돈 많은 자가 왕이 되었으나 그 자도 의롭지 못했으며 게다가 욕심도 많았다. 하지만 입으로는 나라와 백성의 유익을 위한다며 나라의 안팎으로 많은 일들을 벌이며 자기의 욕심을 챙겼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 왕처럼 많이 가지고 오른쪽에 있는 999명이 그를 환영했으나 왼쪽에 있는 자들은 그가 많이 가진 자들만을 위해 일하는 것을 보며 싫어했다. 그러나 백성들 중에서 2명은 위쪽에 있는 나라의 왕을 따르며 사람의 부활을 전했으니 2천명 모두에게 미움을 받았다.
 
이와 같이 사람은 누구나 불의하지만 자신을 의롭게 여기니 자기의 생각으로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 가되 그 과정에서 핍박을 당한다. 또한 나중에 불의가 드러나 법의 심판을 받고 감옥에 갇힌다. 그러므로 그것은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욕심과 불의를 인하여 핍박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만일 욕심이 없고 의롭다면 그리고 그가 그것으로 인하여 2001명 가운데 2000명에게 핍박을 받는다면 그는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원수가 힘의 논리로 이끌어가는 이 세상에 그런 자가 어디에 있으리요? 또한 세상의 법과 정치와 경제와 종교와 사회 그 어느 구석을 들여다보아도 그런 의는 없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들 1000명 가운데 1명이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에서 나와 오직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 땅에 이루어지는 유토피아(천년왕국)를 소망하고 있다.
 
그런데 원수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그 7000명은 공의와 사랑의 나라를 소망하며 산속 깊은 곳에 들어가 도를 닦고 앉아있는 것이 아니요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에 애쓰며 동시에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사람의 안에 이루어지는 의와 거룩을 전한다. 또한 십자가의 피로 거룩에 이른 자가 거룩한 육체를 입고 영광의 자유에 이른다는 복음과 함께 생각과 세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므로 심판을 준비하라고 선포한다. 그러나 세상의 공중권세자인 원수도 보고만 있지 아니하니 그리스도를 통한 의와 부활을 전하는 그를 자기가 사랑하는 자들을 통해 미워하고 핍박한다. 그러므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자기의 의가 아니요 아버지의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이니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요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의를 이루셨다.
 
한 가지 비유를 통해 아버지의 의가 어떤 것인지 또한 누가 아버지의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인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더불어 아버지의 의를 따르는 자가 누구에게 왜 핍박을 받는지도 알 수 있다.
 
어떤 왕이 모든 백성들을 위한 공의와 사랑의 뜻을 공평하게 세우고 종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행한 대로 상을 줄 테니 나의 뜻을 이루라.” 그러자 종들이 마음을 다해 왕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갔다. 그러나 한 종은 욕심을 품고 자기만 높아지려고 했다. 또한 게으르고 교만했다. 그러니 자기의 욕심을 이루고자 구부러진 뿌리와 달리 곧게 뻗은 가지와 같은 말과 행위를 곧잘 잘했다. 게다가 심보가 고약해서 왕의 뜻에 충성하는 종들을 방해했다. 그래야 왕의 상을 자신이 다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왕은 종들에게 행한 대로 상을 주었으나 옳지 못한 종에게는 마음을 돌이키라고 했다. 그러나 종은 자기가 만일 왕의 말을 들으면 자기의 욕심과 교만을 이루지 못하니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불평하며 왕에게 대항했다. 이에 왕은 그를 왕궁에서 먼 나라로 쫓아냈다. 그러자 쫓겨난 종은 거기서 왕의 흉을 보며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이끌었다. 이때 욕심과 영광으로 인해 이성과 윤리가 마비된 자들은 어리석게도 그 종에게 모여들어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따라다녔으니 어떤 자는 세상 모든 돈을 원했고 어떤 자는 세상의 높은 권세를 원했고 어떤 자는 세상의 영광을 원했고 어떤 자는 좋은 것을 바라되 게을렀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고자 온갖 말과 행위를 다하며 또한 다른 자들을 비판하며 돌아다니니 그 불의한 종은 그들을 참으로 사랑하며 인정했다. 반면 그 나라의 백성들 중 7000명은 자기의 왕이 의로운 분임을 믿었다. 그러므로 종의 거짓말을 듣지 않고 또한 자기의 생각도 따르지 않고 오직 왕의 말을 듣고 왕의 뜻을 이루어갔다. 그러자 심보가 고약한 자들이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을 떨어뜨리고자 손을 툭툭 쳤다. 그러나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왕의 뜻만 이루어갔다. 그러므로 나중에는 결국 세상의 권세를 가장 많이 가진 백성들이 다 함께 모여 왕의 의를 따르는 자들을 전부다 피 흘려 죽여버렸다.
 
이와 같이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오직 한 분 신으로서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공의와 사랑이 절대 거룩하시고 절대 공평하시고 절대 정직하시며 절대 완벽하시다. 그리고 그런 성품으로 어떤 한 사람이나 한 집단에게 치우치지 아니하시고 한 사람 한 사람 한 종 한 종 모든 인격체들에게 똑같이 대하시되 오직 각 종과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공평하게 심판과 상급을 내리신다.
 
이때 자기의 욕심과 교만을 품고 자기의 의를 따르는 자들은 아버지의 의를 매우 싫어한다. 게다가 아버지의 의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는 자들을 핍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의를 위해 핍박 받는 자들은 자신부터 그 의를 지키고 따르며 그 의를 사람들에게 선포한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의를 따르며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룬 자가 영광을 얻는다는 영광의 복음을 전하셨다. 그리고 자신부터 아버지의 그 의를 지키고자 사람과 같은 연약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시면서 고난가운데서도 말씀에 순종하므로 그 의와 거룩을 유지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기까지 아버지의 그 의를 이루셨다.
 
그러나 당시에 아버지를 알고 있는 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의 권세자들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으니 아버지의 의를 따르며 선포하는 그 아들을 매우 싫어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의를 이루는 그 십자가의 길을 늘 핍박 받으며 걸어야만 하셨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큰 무리의 사람들에 의해 피 흘려 죽으셨으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의를 이룬 아들에게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히시고 다시 살려주셨다.
 
이로 보건대 핍박을 받은 자는 자신의 안에 있는 악이라는 의를 나타내는 자가 아니요 오직 아버지의 의를 나타내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의를 나타낼 때에는 셋째하늘에서 처음부터 아버지의 의를 거부하고 이 첫째하늘로 쫓겨난 그 원수로 인하여 큰 무리의 사람들에게 핍박을 당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때에 아버지의 의에 굳게 서 있는 자에게는 오히려 의롭고 거룩한 복이 있으니 그 부활은 영원한 영광과 권세다.
 
이처럼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의로운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은 결국 사람들에게 핍박을 당하되 그 핍박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기에 인내한다. 또한 나중 영광이 어떠한지 믿기에 원수의 선악을 따르는 자들로부터 핍박을 당하면 당할수록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기뻐한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그리스도처럼 피 흘려 죽기까지 다 이룬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의를 이루고자 그 아들을 따르며 거룩을 이룬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왕국에서 천 년 동안 그리고 천국의 끝에 들어갈 셋째하늘에서도 영원토록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는 왕과 제사장들이 되는 것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 어떤 왕: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
* 왕궁: 영원한 본향인 셋째하늘
* 종들: 천사들
* 불의한 종: 선악을 창조하고 그 죄로 이 세상과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아버지의 원수(루시퍼)
* 먼 나라: 마지막에 큰 날의 심판으로 들어가는 이 첫째하늘(우주)
* 7000명: 유대인과 이방인의 중에 아버지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들
* 심보가 고약한 자들: 원수의 선악을 따르며 이 세상의 영광을 얻은 자들
* 그들이 들고 있는 것: 아버지께 받은 은혜와 약속
* 피 흘림: 거룩한 산 제사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사람은 인격체요 육신이 있으니 무엇이든지 자신의 혼의 생각으로 이루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마음에서 나는 생각대로 자기가 원하는 뜻을 세우고는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해 그것을 아버지 뜻으로 바꾼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이루어가며 자신이 아버지의 뜻을 행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자신이 정한 그 아버지의 뜻에 함께하라고 말하므로 다른 사람들도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도록 이끈다. 그리하여 그것이 곧 불법이요 그들에게는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이 약속되어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인격체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음에도 오히려 자기의 생각을 따르지 않으셨다. 오직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 아버지의 뜻과 계획만을 이루어 가셨으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그 뜻을 완성하셨다. 그러므로 아들의 뜻은 곧 아버지의 뜻이었으며 아들의 말과 행위는 오직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인격이 다르며 또한 사람과 같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거하셨어도 늘 아버지와 영으로 하나가 될 수 있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에 이 땅에 계실 때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자신의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마치 불법을 행하는 자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뜻을 이루도록 이끄는 말과 비슷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아버지의 뜻과 계획만을 이루셨으니 누군가 만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가 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오직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또한 자기의 몸을 아끼며 보호하되 자신의 목숨은 더욱더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유익이 아닌 모든 둘째사람들의 유익을 구하셨으니 평생 아버지의 뜻을 이룬 후 마지막에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 십자가위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그 희생의 피로 누구든지 아버지의 뜻을 이룰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거룩을 이루었기에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 앞에 서므로 아버지와 화평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자신과 사람들 사이에 십자가로 화평을 이룬 아들에게 즉 평생 말씀에 순종해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이룬 후 마지막 순간에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해 자신의 뜻을 다 이룬 그 아들에게 가장 거룩한 육체를 입혀주셨다. 그리고 아들을 따르며 평생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 각자의 십자가로 화평을 이룬 그와 같은 많은 아들들과 딸들 가운데서 맏아들로 세워주시고 아버지의 보좌 이외에 셋째하늘과 둘째하늘과 이 첫째하늘과 그 안의 모든 것들에 대한 권세를 다 주셨다. 그러므로 화평케 하는 자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끝까지 따라간 자이다.
 
이 땅에서 자신도 그리스도처럼 화평케 하길 원하는 자들은 우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속죄를 이루시어 아버지께로 담대히 나아감을 얻게 하셨음을 믿는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그 믿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뜻과 계획이 아닌 오직 아버지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말씀과 진리만을 내며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므로 그리스도의 그 본을 보여준다. 즉 화평케 하고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는 우선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므로 자신부터 거룩을 이루며 마지막의 그 죽음을 바라보고 나가는 자이니 그 길에서 영광의 복음만을 전하되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고 십자가를 전한다. 그러다 마지막에도 다른 사람들을 자신이 아닌 아버지께 인도하고자 살과 피를 내어 놓으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다. 그리하여 영적 예배를 드린 자는 결국 그리스도처럼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 그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자신을 따르며 화평케 하는 자에게 아버지께서 주실 복을 알리셨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와 같이 살을 찢고 피를 내어 화평케 한 자들에게도 아들에게 주셨던 가장 큰 열매 다음으로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히시고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수 있도록 자신의 가까이 이끄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아버지께 받은 천년왕국과 셋째하늘에 속한 모든 권세를 자신을 끝까지 따라와 화평케 하고 자신의 한 몸에 거하는 형제자매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신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화평케 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해주셨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많은 형제들 중에서 맏아들로 인정해주신 것처럼 화평케 한 아들들도 자신의 자녀로 삼으신다. 그리하여 거룩을 이루고자 그리스도를 따르며 이 땅에서 고난과 고통을 잠시 받은 자들이 천년왕국의 끝에 이 세상이 멸망 받고 맏아들을 따라 영원한 셋째하늘로 올라갔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지극히 크고 영광스런 그 호칭을 영원토록 받게 되는 것이다.
 
반면 사람들을 모아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게 한 자들은 자신이 원하던 영광을 당연히 이 땅에서 받되 그것은 잠시요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이나 유황불 못은 영원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말씀을 읽고 보아 그 영광과 쫓겨남과 형벌을 잘 알아도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일을 한다는 자들 가운데 많은 자들이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거룩을 이루려면 자신이 원하는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앉아야 하는 혹은 이룬 후 앉아있는 그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되 어리석은 자들은 안에 있는 교만이 내려오지 못하게 한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어떤 의로운 사람이 맑고 투명한 유리컵에다 깨끗한 물을 부었다. 그랬더니 그 물은 참으로 맑고 깨끗하게 보였다. 하지만 다른 불의한 사람이 와서 그 컵의 중간에다 시커먼 먹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가운데부분만 까맣게 보였으나 그것이 점점 더 넓게 퍼지다 나중에는 모든 물도 컵도 서서히 다 더러워졌다. 하지만 그 컵과 물은 처음처럼 깨끗하게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에 처음에 맑은 물을 부었던 그 사람은 더럽혀진 물을 다 쏟아버린 후 흐르는 물에다 컵을 깨끗하게 씻었으니 컵이 처음보다 더 맑고 투명해졌다. 그리고 나서 처음 물보다 더 깨끗한 물을 부었다. 그랬더니 컵도 물도 둘 다 처음보다 더욱더 깨끗하게 보였다.
 
이와 같이 마음이 청결한 자는 마음이 깨끗한 자요 사람의 마음은 오직 한 가지만 품을 때 깨끗하다. 예를 들어 어떤 여자가 자기의 마음에 오직 자기의 남편만 품고 있으면 그것은 깨끗하고 거룩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아니하고 다른 남자나 다른 것들도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으면 두 마음을 품은 것이니 깨끗하지도 거룩하지도 않다. 그러다 다른 남자와 다른 것들이 자기의 마음 안에서 강해지니 결국 자기의 남편이 전혀 없는 그 마음은 더럽혀진 것이요 음란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은 육적인 부부만이 아니요 믿는 자들과 그들의 영적신랑인 그리스도와의 관계도 이와 같으니 썩어질 육과 헛된 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영혼들은 영적으로 더럽혀진 음부(淫婦)다.
 
하지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계속해서 그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자는 육신의 기회가 있을 동안에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첫째하늘에서 거룩을 이룬 자는 둘째하늘에 있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거룩한 육체를 입고 셋째하늘에서는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들이 된다. 그리하여 부활의 상급을 얻은 자들이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셋째하늘의 그 거룩한 곳에 들어가 아버지의 영광과 얼굴을 보니 그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해지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은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아들과 딸에 대한 언약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가운데 아버지의 자녀가 될 자들이 가장 원하는 한 가지는 바로 거룩한 육체를 입고 자신들의 영혼의 아버지를 얼굴과 얼굴로 뵙게 되는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날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셋째하늘의 지성소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마음에 조금도 흠과 티가 없으시니 오직 깨끗하시고 거룩하신 마음뿐이시다. 그러므로 그 날을 사모하는 자들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지금부터 오직 자신의 마음을 늘 깨끗하게 한다. 거룩하신 아버지의 사랑이 세상과 함께하는 그 마음에 함께하실 수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깨끗함과 거룩함을 유지한 그가 아버지의 계신 곳에 들어가 아버지의 영광과 얼굴 앞에 섰을 때 그 빛을 받아도 두려움이 없는 것은 오히려 아버지께서 마음이 청결한 그를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자가 거룩한 육체를 입었을 때는 거룩한 육체의 거룩함과 영광으로 인하여 오히려 그 영혼에게 고통이 임한다. 설령 그 거룩한 육체를 얻는다 할지라도 아버지의 거룩하심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요 소멸하시는 아버지의 그 영광으로 인하여 그 고통이 더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자에게는 아버지께서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히시지 아니하시는 이유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비밀의 영광에 이르러 대제사장을 따라 거룩한 곳과 또한 가장 거룩한 곳까지 들어와 기쁨과 영광을 누리길 원하시니 자신의 거룩하신 영을 둘째사람의 코를 통해 깨끗한 마음에 부어주시므로 거룩을 이룰 수 있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가꿀 수 있다.
 
첫째 어린아이와 같이 마음이 순수하며 항상 솔직한 자가 마음이 깨끗한 자이다.
 
둘째 항상 첫 마음을 지키는 것이니 두 번째 세 번째 마음을 품지 아니하는 자이다.
 
셋째 그가 늘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자가 마음이 깨끗한 자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이 세 가지만 잘 지킨다 하여도 마음이 깨끗한 자가 될 수 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마음에 일만 악의 뿌리를 박고 높은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많은 사람들의 앞에 서서 말하길 육은 중요하고 복된 것이니 다른 사람의 육신을 불쌍히 여기라고 했다. 그러자 육을 더욱더 풍성히 얻고 싶은 사람들과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원하는 사람들은 그의 말이 옳게 여겨졌다. 또한 그가 그렇게 했기에 많은 열매를 가지고 영광스런 자리에 앉아있다고 생각하며 그를 닮고 싶은 마음으로 그의 말대로 다른 사람들의 육을 불쌍히 여기며 늘 육적인 것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한동안의 시간이 지나자 불쌍히 여김을 받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그 말을 전했던 자도 역시 사망으로 들어갔다. 그러므로 그의 말을 듣고 따르던 자들은 그제서야 육신을 불쌍히 여기라고 말한 자가 썩어질 거짓된 것을 가르친 자임을 깨달았다. 또한 자신의 마음도 처음부터 거짓되었음을 알았으나 육신의 기회가 없으니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반면 육적인 것을 일용할 만큼만 가지고 험한 의자에 앉아있는 어떤 사람이 자기의 집에 있는 서랍에 진주를 넣어놓고 기쁨을 항상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옆에 사는 사람은 진주가 하나도 없으니 마음에 기쁨도 평안도 소망도 만족도 없었다. 그러므로 진주가 없는 사람은 혹시 누가 자기에게 진주를 나눠줄 사람이 없나 하고 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애타는 마음을 가졌다. 이에 진주가 있는 사람이 진주가 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 서랍에서 진주를 꺼내어 나누어주었다. 그러므로 불쌍히 여김을 받은 사람도 인생을 살며 얻지 못했던 참된 기쁨과 평안과 소망과 만족을 누리다 육신의 장막에서 나왔을 때는 진주의 약속대로 모든 것들을 영원히 누렸다.
 
이와 같이 거짓선지자는 자기의 썩어질 육의 욕심을 채우며 명예가 높아지는 것을 기쁘게 여기니 늘 썩어질 것을 얻으라고 가르치며 양들을 세상으로 흩어지게 한다. 또한 썩어질 것을 나누면 썩어질 것을 더 얻을 것이요 게다가 영적인 복도 함께 얻게 된다고 거짓말한다. 그렇게 하므로 거듭남이 없는 이방인들은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과 에서 끝까지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인도하되 거듭난 영혼들은 다시금 그들이 나왔던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으로 들어가도록 이끈다. 그러므로 독사의 자식들은 원수를 따라 유황불 못의 중심으로 들어가리라는 그 약속을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썩어질 복을 원하는 자들의 귀에는 헛된 거짓가르침이 아름답게 들리니 거짓된 자가 가진 것들을 부러워하며 자신도 그것들을 얻고자 썩어질 것을 나누고자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육신의 죽음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그들은 모든 것들이 썩어져 자신의 손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음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이 거짓된 목자를 따른 거짓된 양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되 돌이키지 못함은 육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리가 아닌 거짓된 말을 붙들고 사망으로 들어간 자들은 자기 마음의 거짓됨을 죽은 후에야 깨닫는 것이 아니요 이미 살아있을 때 그것을 깨닫고 있다. 즉 자신이 무엇을 위해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 생명을 전해주신 아들을 섬겼는지는 자신의 마음과 영혼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그런 자에게 아버지의 나라에서 더욱더 풍성히 허락하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전하셨고 또한 모든 믿는 자들도 공평히 그 말씀을 읽고 듣고 있다. 그러므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늘 불쌍히 여겨 그가 거룩에 이르도록 부르짖는 자요 또한 자신도 진리가 풍족하지는 않지만 다른 자들도 진리에 순종하므로 그 생명에 이르도록 마음을 다하여 진리를 함께 나누는 자이다.
 
이와 같이 2천년 전 초대교회시대에도 일곱교회시대에도 이 마지막 때에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비밀의 경륜과 영광의 자유의 복음을 받았으되 자신이 받은 그 긍휼을 자신만 가지고 있지 아니하고 다른 자들에게 긍휼을 나누어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면 영원한 본향인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들을 통해 긍휼을 받은 자들도 아들들로 받으시고 아들들이 아니면 그리스도의 정결한 몸으로라도 받으시고 그리스도의 정결한 몸이 아니면 셋째하늘의 온전케 된 의로운 백성으로라도 오기를 원하시니 긍휼을 받은 자들은 순종한 만큼의 생명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이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그 모든 기회를 이미 다 예비해놓으셨고 또한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정해놓으셨으나 환난으로 들어가는 이 마지막 교회시대에는 이전의 교회시대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원수가 세상의 모든 것을 부요하게 해놓았으니 사람들의 마음에서 셋째하늘의 소망을 다 빼앗아갔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오직 오늘에 충실하되 그들의 마음가운데서 살고자하는 마음과 진리에 갈급한 마음을 가진 영혼들이 있으니 그들은 참으로 복되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아버지의 비밀을 맡은 그리스도의 일군들이 아들을 통해 주신 그 약속에 따라 다른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진리와 간구로 긍휼을 베풀 때 마음에 기쁨과 평안과 소망과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것을 이 땅에서 풍성히 채워주신다. 또한 비밀의 경륜과 영광의 자유의 복음으로 긍휼을 베푸신 그리스도께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이 있을 것임을 아버지께로 심판을 받아 입으신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몸을 여자들과 제자들에게 보이시므로 또한 자신이 아버지의 가장 가까운 보좌에 앉아계심을 통해 확증해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비록 핍박과 고난의 십자가 길이지만 늘 마음의 기쁨과 평안과 소망과 만족을 유지하셨다는 것과 또한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시어 그 보좌에 앉아계심을 믿고 다른 사람의 영원한 영혼을 진리와 기도로 긍휼히 여기는 자도 이미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그리스도와 동일한 그 복을 오늘 받다 내일 확실히 받을 것임을 믿음으로 확증 받고 있다. 그러나 기회를 놓친 영혼들에게도 그 기회는 그가 죽는 순간까지 있을 것이니 참으로 그들이 아버지의 앞에 와서 그 심판이 불공평하다고 말을 못하며 오히려 아버지께 할 말을 다 못하리로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사람은 병에 걸리면 아프기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스럽다고 말하지만 고통이 너무 심하면 아프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이 찾아오면 아프지 않고 고통 없이 죽기를 바라되 죽음을 두려워하며 또한 더럽고 악한 병에 걸리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매일매일 살되 내일이 마지막인지 모르고 오늘 내가 숨을 쉬고 있으니 내일도 숨을 쉬는 것은 당연히 여긴다. 그러므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오직 잠시뿐이요 오히려 건강하게 오래 살다 자다가 죽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이처럼 병들어 고통 받는 것을 원치 아니하니 좋지 않은 것을 30개월 이상 먹은 소를 맛있게 먹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으며 음식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을 중하게 처벌하자고 외친다. 하지만 자신에게 유익이 될 때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또한 피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자신의 피가 깨끗해져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기 원한다. 고로 뱀같이 독 있는 짐승의 피를 자신의 몸에 넣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힘이 강해진다고 하면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며 빨대를 꼽아 짐승의 피를 마시는 사람도 있다. 그것으로 인하여 나중에 얻게 될 질병과 긴 고통을 알되 사람은 자기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좋아하니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에 빠른 자들은 오늘 얻는 순간의 기쁨을 위해 어리석음을 택한다. 사람은 또한 피를 받아야 할 일이 생기면 의롭고 깨끗하고 건강한 사람의 피를 받기 원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인기와 욕심과 앉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 많은 자들의 생명을 취하는 왕의 피를 누가 받고 싶어하겠는가?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피를 준다고 하면 돈과 높은 자리를 원하는 자들은 줄을 서서 그를 기다린다.
 
이와 같이 사람은 자신이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육이 깨끗해지거나 더럽혀진다. 또한 그것을 통하여 더러운 질병을 얻어서 고통을 받다 죽거나 혹은 건강을 유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먹고 마시는 것에 자신의 건강과 생명이 달려있어도 사람은 인격체이니 자신이 원하는 것은 먹고 마시되 그렇지 않은 것은 쳐다보지도 아니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것도 자신이 원치 않으면 아무리 권함을 받아도 먹거나 마시지 않지만 반대로 아무리 나쁜 것도 자신이 원하면 말려도 취한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으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앞으로 십자가 이후의 초대교회와 교회시대에 있을 일의 예언이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린 자라는 것은 자신이 의롭게 되기를 원하는 영혼이요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니 그는 그리스도의 살에 참여하는 영혼이요 목마른 자는 그리스도의 핏잔을 원하는 영혼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먹고 마신다고 하였으니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의롭고 깨끗하게 하고 싶은 영혼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이후에 간절히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기 원한다. 또한 자신의 온 마음이 늘 그것이 있는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정결한 한 몸에 가있다. 그러므로 그는 원수가 아무리 방해를 해도 늘 자신의 마음이 있는 살과 피가 있는 그곳으로 자신의 생각도 몸도 향하게 되어있다.
 
반면 사람은 인자의 살과 피를 통해 의롭고 거룩하게 되며 육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마지막에는 이방인들처럼 헛된 사망으로 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영혼과 육체의 강건함을 누리다 결국에는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게 된다는 말을 들어도 자신을 의롭고 거룩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즉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않으면 살과 피가 있는 그곳에 마음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의 만찬에 참여해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못한다.
 
물론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에 주린 마음을 가지고도 혹은 자신의 안에 있는 죄를 이기려는 마음이 없어도 그저 때가 되면 성찬에 습관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마음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아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자에게는 그 의롭고 거룩한 인자의 살과 피를 배부르게 주시되 자신을 의롭고 거룩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영혼에게는 원수의 목전에서 전혀 상을 베푸시지 아니하시니 그런 영혼은 먹고 마실수록 오히려 약해지고 병들고 잠들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인자의 살과 피를 통해 사람이 의와 거룩에 이르며 또한 의와 거룩에 이르렀으니 썩어질 육신의 장막을 나왔을 때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는 이유다. 그리고 예언이라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지니 십자가 이후의 초대교회 때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산 제사를 드린 후 부활의 생명에 이른 것처럼 교회시대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 환난 때에도 자신의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를 의지한 자들은 반드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입고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한 농부가 봄이 되자 달력을 한번 힐끗 보더니 일주일 후에 밭에 나가 한 알의 씨앗을 심었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어떤 사람은 그 씨가 어떤 씨인지를 몰랐으며 또한 농사도 모르니 농부를 보며 ‘씨를 너무 늦게 뿌리는 거 아냐? 나 같으면 6일전에 뿌렸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생 농사를 지어본 농부는 추운 날씨와 땅이 언제 풀리고 봄비가 언제 오고 병충해는 언제 오거나 오지 않고 여름과 장마는 언제 오고 추수는 언제 해서 곡식을 어디에다 어떻게 보관할지 달력에 있는 날짜를 볼 때 이미 다 계획했다. 즉 그 씨앗은 그때 심어야 가장 좋은 곡식을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는 씨앗이었다. 이제 파종 후 3개월이 지나자 농부는 비료를 들고 나가 곡식주위를 파고 뿌리에 닿지 않게 넣어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똑똑한 자는 농부를 보고는 ‘작물이 저렇게 컸는데 비료를 너무 늦게 주는 거 아냐? 좀더 일찍 주었으면 더 빨리 더 크게 되어 수확량이 더 많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의 눈에는 농부가 기르는 작물의 줄기와 잎사귀만 보였기에 그렇게 생각했으나 농부의 눈에는 땅속에 심겨있는 뿌리가 보이기에 그때가 바로 그 작물의 뿌리가 양분을 가장 잘 빨아당겨 소화할 수 있는 때임을 알았다. 그러나 만일 비료를 더 일찍 준다면 뿌리가 아직 약하기에 양분을 먹지 못하니 비료를 낭비할 뿐만 아니라 작물이 힘들어하므로 오히려 해가 된다. 농부는 또한 장마기간이 되기 전에 곡식의 주위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길을 내주었으며 때로는 태양과 광풍을 피할 수 있는 천막도 쳐주었다. 그리고 작물의 잎사귀가 조금이라도 검게 변한 것은 일일이 따서 불에 태워버렸으며 해충도 생기자마자 잡아냈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병충해예방의 중요성을 몰랐으며 게으르기까지 했으니 ‘왜 저렇게 고생을 하나? 나중에 병과 해충이 많아지면 한꺼번에 약을 뿌리면 될 텐데.’라고 말했다. 이에 농부는 그 어리석은 자에게 씨앗 하나를 심어준 후 한번 잘 길러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일년 내내 오직 자신의 생각대로 농사를 지으며 수고했으나 처음부터 한번도 때를 맞추지 못했다. 그리하여 가을에 열매를 하나도 맺지 못했다.

 

이와 같이 하나의 씨가 좋은 열매를 풍성히 얻기 위해서는 정해진 때를 잘 맞추어 가꾸어야 하듯 한 사람의 영혼이 말씀의 씨를 얻어 거듭난 후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며 의로 여기심을 받고 인자의 살과 피를 의지해 거룩하게 되어 결국 영혼의 구원에 이르는 그 과정에도 역시 아버지께서 정해놓으신 때들이 있다. 그러므로 한 영혼을 택하시거나 부르시거나 정하시거나 혹은 그리스도께서 한 영혼에게 말씀의 기초를 주시거나 그가 심령이 가난하거나 애통하거나 온유한 때를 지나 다음으로 나아가는 모든 것들이 오직 구원을 베푸시는 아버지의 때에 달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누구나 무엇이든지 자신의 생각으로 이루어가길 좋아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자는 의와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육체의 기회가 있을 동안 아버지의 뜻에 이르지 못했기에 새 생명가운데 행하며 의와 거룩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섰을 때 의롭고 거룩한 열매를 보여드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는 자는 무엇이든지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미 모든 것을 선하시고 공평하고 완벽하게 정해놓으셨음을 믿는다. 또한 거룩의 길에서 무엇이든지 그렇게 친히 이루어 가실 것도 믿는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는 영혼은 사람인 자신이 이루려고 하지 아니하고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항상 아버지의 그 때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며 게으름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말씀 단 하나나 혹은 두 가지에라도 충실하게 순종하며 그 때를 기다리니 그가 바로 온유한 마음을 가진 영혼이다.

 

또한 생각을 따르는 사람은 자신을 의롭고 지혜롭게 여기니 자신이 제법 많이 알고 있으며 제법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리석되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아버지와 원수가 된다. 그러나 마음이 여린 사람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아시고 계심을 믿는다. 또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시지 아니하시는 아버지께서 모든 선과 악 의와 불의와 거룩과 죄를 정확히 구별하시어 정직하시고 공평하신 심판을 내리시니 오직 아버지만이 의로우시고 거룩하시고 완전하시고 강하신 분 이심도 믿는다.

 

그러므로 마음이 여린 사람은 자신을 지혜롭거나 강하게 여기지 아니하니 오직 아버지께서 연약한 자신을 의롭고 거룩하게 하실 것을 믿고 아버지의 그 때만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이렇게 마음이 여리고 약한 영혼도 무엇이든 자기가 하려 하지 않고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며 한두 가지의 말씀에 충실하니 그들도 역시 그리스도의 온유를 배운 자들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온유한 자들에 대해서는 아들이 전한 그 약속을 이루어주신다. 그러므로 온전한 구원의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때에 맞게 친히 온유한 자들을 의롭고 거룩하게 하신다. 그리하여 온유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온유함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애쓴 자들이 그리스도의 의롭고 정직한 심판대에서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하고 신령한 육체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온유한 자는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천 년 동안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그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땅을 아버지와 맏아들께로 나누어 받는다. 게다가 본향인 셋째하늘에 올라가서도 끝이 없는 땅과 의로운 백성들을 받아 공의와 사랑으로 영원토록 다스리는 것은 그들에게 다스릴 수 있는 땅을 기업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천년왕국과 그 천국의 끝에 맏아들을 따라 올라가는 셋째하늘에서 영광의 자유에 이르러 땅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은 단 하나나 두 개의 말씀에 순종하며 아버지의 때를 기다린 영혼들이요 하나나 두 개에 순종했기에 다른 말씀들에도 계속적으로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피로 중생한 후 자신이 받은 그 첫사랑의 마음 하나도 지키지 못하고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에 빼앗겨버린 자가 어떻게 한 말씀에라도 순종할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첫사랑을 잊은 자들은 다른 말씀들이 아무리 주어져도 순종치 못하되 오직 사람의 규례는 열심히 행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순종하며 아버지께 불순종한 그 영혼에게 어찌 다스릴 땅과 백성들이 주어지리요? 그리하여 이 마지막 때에 온유하지 못한 많은 자들이 땅은커녕 자신의 신랑이 다시 오시는 그 중요한 때도 기다리지 못하고 또한 영과 혼과 육의 정결함에 애쓰라는 그 단 하나의 말씀에도 순종치 못하여 썩어질 것과 헛된 곳에 빠져 어둠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