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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임금들의 머리

온 땅과 백성을 의롭고 선하게 다스리는 왕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모든 종들은 그 왕의 의로움과 선함을 보고 자기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 왕의 뜻을 받들어 섬겼다. 그러나 그 종들 가운데 한 명은 자기만이 높아지며 자기만이 모든 것을 다 가지기 원했다. 또한 자신의 지혜를 믿고 게으름을 피우되 다른 종들에게는 늘 이것저것을 시키며 섬김 받기만을 원했다. 하지만 그 종은 모든 것을 의롭고 선하게 다스리는 그 왕으로 인하여 자신이 원하는 그것들을 취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 종은 자신에게 있는 지혜를 악하게 이용해 돈과 힘이 있는 다른 종들을 꼬여 나는 너희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게 해주겠노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로 하여금 그 의로운 왕을 미워하게 하다 나중에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결국에는 선이 악을 이기게 되어있으니 그 왕은 자기의 나라에서 그 악한 종과 그와 함께한 종들을 멀리 쫓아냈다. 그러나 그 악한 종의 마음은 그 쫓겨난 땅에서도 똑같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지혜를 이용해 사람들을 모으고는 그들 가운데서 자신의 마음을 꼭 빼 닮은 한 명을 택했다. 그리고 그를 왕으로 세워 그 땅을 다스리게 했으니 그 택함 받은 자는 그 악한 종을 자기의 왕으로 섬기며 그 땅을 불의하고 악하게 다스렸다. 예를 들어 그 왕은 돈과 힘있는 자들에게 나는 너희를 위해 일하겠다고 말하며 그들을 위해 여러 가지 혜택을 베풀어 자기의 말을 듣게 했다. 그러면서 뒤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그들에게 챙겼다. 또한 자신을 위해 한가지 일을 벌이고서는 입만 열면 자기는 늘 백성들을 위해 일한다고 했으니 그 왕은 자신을 뽑은 그 악한 종과 쏙 빼 닮은 그것만으로도 그 악한 종을 충분히 섬겼다. 그런데 그 악한 종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먼 훗날을 위하여 한 명보다는 열네 명에게 섬김을 받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 땅을 열네 곳으로 가른 후 자신과 닮은 자들을 열세 명 더 택해 그들을 왕으로 세워 그 땅을 다스리게 했다. 그러자 그 열네 왕들은 계속해 그 땅을 불의하게 다스리되 이제는 자기의 욕심과 명예를 위해 칼을 들고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마음이 악한 그 종은 열네 왕들의 그러한 다스림과 전쟁을 보며 기뻐했다. 피를 보기 원하는 자신의 그 악한 뜻이 그 왕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악한 종은 이제는 자신이 그 땅을 직접 다스리고 싶었다. 그러므로 우선 자기가 세운 왕들에게 시켜 모든 나라들이 참여하는 큰 전쟁을 일으키게 했다. 그리하여 많은 백성들이 죽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큰 전쟁을 본 후에 오직 평화만을 외쳤으니 그 종은 그들의 원함을 이용해 그 열네 나라를 처음과 같이 한나라로 묶어 자신이 왕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그 악한 종이 평화롭게 다스리는 것처럼 보여도 그의 정체와 악함과 목적을 알고는 그를 반대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에 그 악한 종은 자신과 자신의 다스림을 반대하는 자들을 한 명씩 잡아서 죽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의롭고 선한 왕은 그 불의한 땅을 바르게 세우고자 자기의 군대를 이끌고 그 땅으로 쳐들어가 그 악한 종과 그의 밑에 있는 악한 왕들을 모두다 심판했다. 그리고 나서 그 땅의 모든 것을 다 갈아 엎어 새롭게 만든 후 진심으로 백성들을 위하는 자들을 왕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마음이 진실한 자들은 하나같이 그 의로운 왕을 자기의 머리와 같이 섬기며 그 땅의 백성들을 의롭게 또한 사랑으로 다스렸다.

 

     이처럼 이 땅에 거하는 사람들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이 땅의 왕들이 그 자리에 앉아 과연 백성을 위하여 다스리고 있는지 아님 백성들을 다스리는 그 일을 자기 자신을 위해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또한 이 땅의 왕들은 오직 자신의 위치를 보호하며 자신의 거하는 그 땅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른 적들을 늘 찌르고 피를 흘리며 사망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인격체는 그 자식을 보면 그의 부모를 그 제자를 보면 그의 스승을 그 종을 보면 그의 주인을 그 백성을 보면 그들의 왕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땅을 다스리고 있는 왕들을 가만히 보면 그들을 택하여 세운 그 원수가 어떠한 자인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자식은 부모를 제자는 스승을 종은 주인을 백성은 왕을 섬기니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이 땅을 다스리는 자들은 그 악한 원수를 자기의 주인으로 섬긴다. 그리하여 지금도 원수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처럼 행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수가 이 땅의 왕들을 세워 불의하고 악하게 다스리므로 이 첫째 하늘을 다스리는 권세가 자신에게 있는 것처럼 행세해도 그것은 거짓말이다. 즉 실제로는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셋째 하늘과 둘째 하늘뿐만 아니라 이 첫째 하늘도 다니며 다스리고 계신다. 그러므로 왕처럼 행세하고 있는 그 원수도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명에는 복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 땅의 어느 한 곳에 의인이 있다. 그러면 원수는 그를 삼키고자 큰 물을 일으키거나 땅을 흔들기 원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의인이 불의한 자와 함께 선한 자와 악한 자가 함께 거룩한 자가 죄인과 함께 사망으로 들어가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에 따라 그것을 막으시니 원수도 복종하여 의인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 그곳에는 자연적인 재해를 일으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의롭고 선하게 창조하신 이 땅 위에서 이렇게 불의하고 악한 다스림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는다. 즉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마음에 합당한 임금들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이 땅을 의롭고 선하고 정직하게 사랑으로 다스릴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때에 둘째 하늘을 이끌고 이 땅으로 내려오시며 원수가 일으킨 그 대환난을 끝내신다. 그리고 그를 땅속의 무저갱에 가두시고 그 악한 자로 인하여 더럽혀진 이 모든 땅을 태초의 그 에덴동산과 같이 깨끗하고 선하고 아름답게 회복시키신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자신을 위해 살과 피를 드린 그 144000을 이 땅을 다스리는 왕들과 제사장들로 세우시는 것이다.

 

     그러면 천년왕국에서 왕과 제사장들로 세움 받은 자들은 자신이 먼저 땀을 흘려 의와 거룩에 애쓰며 또한 그와 같이 다스린다. 그리고 천국의 백성들 가운데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마음에 있는 그 선악의 죄를 뽑아내고 싶어하니 그 왕들을 따라 땀을 흘리며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애쓴다. 또한 그 땅의 왕들은 진심으로 백성들의 영혼을 위하여 다스림을 베풀기에 모든 자들이 그것을 보며 아버지와 아들의 그 다스림과 선하심을 본받는다. 인격체는 그 자식을 보면 그의 부모를 그 제자를 보면 그의 스승을 그 종을 보면 그의 주인을 그 백성을 보면 그들의 왕을 알 수 있고 또한 섬기기 때문이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양은 어리석고 단순하여 자기를 이끌며 풀을 먹여주는 자만 따라다니는 습성이 있는데 그런 양들을 이끌고 다니는 자를 목동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목동이 치고 있는 양들은 자기의 것이 아니니 자기의 큰형이 맡겨준 양들이고 큰형의 양들은 자기아비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양으로 볼 때 사람의 영혼을 인도하는 일을 하는 자가 바로 목자이니 영혼의 목자는 양들을 자신의 생각이나 의로 인도하거나 혹은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도록 이용하거나 혹은 썩어질 육과 헛된 영광을 취하도록 세상으로 내몰지 아니하고 오직 그들의 목자인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그 영혼들을 십자가아래에서 생명의 말씀과 거룩한 진리로 먹여 그들이 거룩에 이르도록 이끄는 자이다.

 

하지만 어리석고 단순한 자들은 누가 목자인지를 모르니 자기가 이전부터 보고 겪어온 것과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이런 사람이 목자요 이런 사람은 목자가 아니라고 정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머리에 손이 얹어진 목사만 목자로 보고 어떤 사람은 초대교회를 보며 선교사와 장로와 감독과 집사도 목자로 여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보시는 목자의 기준은 그가 안수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 아니요 그가 오직 아버지와 아들께 자신의 생명을 다 바쳐 사명을 다하겠노라고 마음에 결단한 자들로부터 양들의 가장 앞서서 나가며 가르치고 이끄는 모든 자들은 아버지께서 그들을 다 목자로 인정해주신다.

 

아버지께서는 이 땅에 잠시 거하는 동안 영혼들을 인도하며 목자의 일을 감당한 자에게는 영원한 셋째하늘에다 그리스도안에서 얻게 될 영광을 약속해주셨다. 하지만 모든 목자들이 다 그 영광을 얻는 것이 아니니 자신이 목사요 선교사요 장로요 감독이요 집사라고 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요 목자의 일을 하는 자가 자신의 목자를 보고 따르며 오직 그 목자가 말하고 행한 대로 맡은 영혼들을 이끌었을 때 허락하신다. 그러나 만일 자신을 목자라 하되 자신의 목자가 했던 대로 양들을 이끌지 아니하는 자는 오히려 양들보다 더욱더 엄한 기준으로 심판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목자를 따르지 않은 목자들은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거나 혹은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어두운 곳에 처하거나 혹은 원수와 함께 유황불 못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목자들의 목자장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아버지께서 주신 영혼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양들이 오직 거룩에 이르도록 선지자의 직분과 왕의 직분과 제사장의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셨다. 즉 자신을 따르는 영혼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말과 뜻과 계획이 아니요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을 선포하셨으며 자신의 의와 혈기가 아니요 오직 생명의 말씀과 거룩한 진리로 다스리셨으며 공생애 끝에 늑대가 왔을 때 도망치지 아니하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아버지께로 드리므로 자신에게 주신 영혼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다 아버지의 것이 되게 하셨다.

 

결국 목자장께서 보이신 그 목양의 본으로 인해 제자들도 그 어떤 다른 말이나 다른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자신의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선지자의 직분과 왕의 직분과 제사장의 직분만을 감당할 수 있었다. 일곱교회시대의 일곱교회의 목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참된 목자는 늘 거룩에 애쓰며 자신을 따르는 영혼들도 오직 거룩으로 이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룬 목자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인자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 천년왕국에서 선지자처럼 백성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왕처럼 만국을 다스리며 대제사장을 따라 성소로 들어가 제사장으로서 아버지를 섬기므로 그 영광의 약속을 이룬다. 또한 천국의 끝에 셋째하늘로 올라가서도 영광을 받은 자가 영원토록 아버지와 아들의 가까이에 거하며 영광의 자유를 누린다.

 

그러나 육과 세상의 씨를 받은 목자들은 썩어질 육의 욕심에 더하여 거룩이 아닌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이 그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위해 앞에 서서 자신의 뜻과 계획을 아버지의 뜻이라며 자신이 원하는 말을 선포하고 자신을 따르는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의가 아닌 자신의 의와 생각으로 다스린다. 그러다 마지막에 아버지께로 산 제사를 드릴 때가 되면 늑대가 준비한 그 단두대를 보고 두려워 오히려 그 자리를 피해서 도망간다.

 

하지만 이런 목자가 심판의 날에 어찌 아버지께로 선지자의 직분과 왕의 직분과 제사장의 직분을 잘 감당했다는 인정을 받으리요? 어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을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왕과 제사장으로 다스리는 그 영광스런 상급과 영원한 부끄러움에 처하는 것과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과 영원한 고통이 있는 유황불 못의 형벌로 들어가는 심판을 오직 아들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고 정직하게 내리신다. 그리하여 그 날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마지막 날에 그의 영혼이 그의 육체에서 나왔을 때를 뜻하니 그 날이 바로 그 영혼이 그리스도께로 상급의 심판이나 사망의 심판을 받는 날이요 선지자의 역할을 한 자들은 오직 목자의 일을 한 모든 자들을 뜻하니 많은 자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이러히 행한다.

 

목자의 일을 한 영혼들이 그의 육을 벗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섰을 때 그 심판대에서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많은 영혼들을 모아 말씀으로 양육을 했고 또한 그들이 나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도 다른 영혼들을 불러 들였도다.’라고 자랑하는 자가 있다. 한편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한 영들을 쫓아내므로 악한 것에 묶인 자가 놓임을 받았으니 나의 상급을 달라고 요청하는 자도 있다. 또한 어떤 영혼은 ‘나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그리스도만을 외쳐 그 지역과 그 나라와 그 백성들을 구하였도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로지 그들에게 묻는 말씀이 있으시니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너의 마음이 어디에 있었느뇨?” 이때 그들은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행한 것에 대한 상급만을 달라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도 아들도 거룩에 마음 없는 행위와 열심은 얼굴을 가리우시고 기억하시지도 아니하시니 마음 없는 일들은 다 헛된 것이요 상급도 헛되니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상급을 주시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이 심히 분하여 그 자리에서 분쟁하되 재판장은 다투거나 들레지 아니하시니 그들은 결국 자신이 스스로 마음 없이 행한 모든 일들에 대하여 자신을 원망하며 후회한다.

 

이처럼 목자의 일을 한 자들은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권능도 행하고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는 능력을 베풀었으되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의 잘잘못이나 그것이 원수에게 온 영과 거짓 은사였음을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그가 마음을 다하여 그 일들을 열심히 행하였으되 그 일들을 행하는 그의 마음이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아시고 보시고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목회한 그들이 그 심판대에서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끝까지 말하지 아니함은 썩어질 육의 필요와 욕심과 또한 세상의 헛된 영광과 또한 자신이 높아지는 기쁨으로 그 일을 행했음을 이미 그리스도께서 아심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 아버지께서 정하신 그 때가 차면 누구나 육신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사는 것을 보지 못했다. 혹시 다시 산다 해도 그것은 오직 순간이요 잠시 후 또다시 죽음을 당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진리를 전하실 때 사람이 죽지 않을 것이요 죽어도 살 것이니 자신을 믿는 자는 영원히 산다는 약속을 주셨다. 그러나 이방인들과 거듭난 후 첫사랑을 잃은 영혼들은 말씀을 들어도 듣기만하고 믿지를 못하니 그 생명의 약속을 믿지 못한다. 그러므로 육과 세상에 마음을 둔 영혼들은 그가 거듭남이 있든 없든 자신이 죽지 않는 것이나 죽어도 사는 것이나 그리하여 자신이 영원히 사는 그것을 준비하지 못한다. 하지만 마음이 분주하니 육적이고 세상적인 일은 밤을 새면서도 잘 준비한다.

 

     그들은 또한 다른 사람이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정작 자신의 죽음은 무시한다. 그러다 자신도 갑자기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죽음에 가까이 이른 자는 그저 힘없이 죽음을 기다리고 고통이 시작된 자는 고통 없이 빨리 죽기를 바란다. 이것은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 생명을 십자가로 전해주신 그리스도를 입술로 믿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 계속 살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씀에 부활이 기록되어 있어도 믿지 못하여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으로 주신 약속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지 않을 것이요 죽어도 살 것이요 영원히 산다는 그 약속은 2천년 전에 이렇게 이루어졌다.

 

     아버지께서는 믿는 자는 죽음을 보지 아니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으니 우선 그리스도의 전에 아버지와 동행하며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므로 정결함에 이른 자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음을 보지 않고 살아서 둘째 하늘의 낙원으로 올라갔다. 또한 죽어도 살 것이라는 약속도 주셨으니 그리스도의 전에 어떤 자들은 아버지께로 의로운 살과 피를 드리므로 죽음을 맞이한 후 낙원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죽지 않은 자들과 죽어도 산 자들에게는 영원히 산다는 약속을 주시되 오직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그 말씀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으나 아버지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한 그 아들에게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혀 부활시키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권위를 가지고 그 심판대에 앉아 자신의 전에 죽지 않고 낙원으로 올라간 영혼들과 죽고 올라간 영혼들에게 생명의 심판을 내리셨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그 뜻을 이룬 그 영혼들에게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그들의 정결함과 거룩함에 맞게 입혀 주셨다.

 

     이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의 안에 거하며 믿음을 가지고 정결함을 이룬 영혼들은 죽지 않고 거룩한 육체를 입고 아버지의 뜻을 이룬 후 의로운 살과 피를 아버지께로 드린 자들은 죽음을 본 후 그 육체를 입고 영원히 산다. 하지만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즉 요한의 눈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전에 이 세상에서 낙원으로 올라갔던 그 영혼들은 죽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그들을 보고는 죽은 자들이라 했으며 자신에게 계시를 주신 그리스도는 그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셨다고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안에 있는 자는 죽음을 보지 않고 낙원으로 올라가며 죽어도 사는 이 약속은 그리스도의 전에 있던 자들만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당시와 그 후 7교회시대와 이 마지막 때에도 동일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마지막 때에는 다음과 같이 그 약속이 이루어진다.

 

     우선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예비하기 위해 육과 세상에서 돌이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살과 피안에서 자신의 거룩에 애쓰는 영혼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영과 혼과 육의 정결함에 이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재림하셨을 때 그들을 심판하여 자신의 신부로서 맞이하시니 그들은 죽음과 마지막 환난을 보지 않고 살아있는 상태에서 들림 받아 낙원으로 올라가 심판을 받는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정결함에 맞는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므로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그 약속을 이루는 것이다.

 

     한편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으되 이 땅에 남아있는 자들에게 마지막 환난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대환난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아버지의 뜻과 때에 따라 복음을 다 전한 후에 목베임으로 살과 피를 드리고 낙원으로 올라가 심판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도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이룬 그 거룩함에 맞는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여 죽어도 살아서 영원히 산다는 그 약속을 이룬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때에도 여전히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거나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오는 이 부활의 약속은 아버지의 뜻을 이룬 자들에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말씀에 불순종한 모든 악한 자들에게도 공평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에 이 세상과 그 선악의 죄를 품고 있는 자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하지 아니하니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살아있는 상태로 땅속으로 내려간 후 심판을 받는다. 그리고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자들은 천년왕국의 끝에 그 무저갱에서 나오지만 그것은 영원한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자신의 육적인 욕심과 세상의 영광을 위하여 말씀을 이용해 다른 영혼들을 육과 세상으로 인도한 자들은 유황불 못의 가장 뜨거운 곳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도 자신의 죄를 끝까지 회개치 않은 자들은 그 다음 뜨거운 곳으로 이방인들은 제일 밖으로 들어가되 원수에게 더러운 육을 받아 그 형벌에 거한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는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년왕국에 다 들어가는 게 아니라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가 들어간다고 말씀하셨고 바울형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전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말씀을 빼거나 더하거나 바꾸는 자에게 임하는 심판을 아는 자이니 자신의 뜻과 계획이 아닌 오직 거룩하신 영을 통해 받은 그리스도의 계시만을 전했다. 한편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뜻과 말을 행하거나 전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뜻과 말씀만을 행하시고 전하셨듯이 거룩하신 영께서도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과 하신 말씀만을 증거하시니 오직 아버지의 그 기쁘신 뜻 선하신 계획만이 이루어져간다. 그러므로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하나의 영을 서로 다르게 증거하실 수 없으시다.

 

이로 보건대 그리스도의 말씀도 맞고 거룩하신 영의 증거도 맞으려면 천년왕국과 구원을 같은 것으로 볼 경우 주여 주여 하는 것과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각기 다른 상황에서 부르는 것이어야 하고 만일 동일한 부름을 뜻한다면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과 구원 얻는 것이 다른 것이어야만 한다. 즉 이 말씀들의 의미를 깨달으려면 주여 주여 라고 부르는 자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각각 누구이며 또한 어떤 상황에서 부르게 되는지 알아야 한다. 더불어 누가 천년왕국에 참여하고 누가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얻게 되며 그 구원이 어떤 구원인지도 알아야 한다.

 

우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은 아버지와 아들을 이미 알고 있는 자들에게 허락하신 말씀이다. 예를 들어 난지 팔일 만에 육의 할례를 받은 유대인과 십자가 이후에 영이 거듭난 이방인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할례의 양피와 십자가의 피로 주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영혼들 가운데 거룩을 좇지도 않고 행치도 않는 자가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주님을 안다며 거룩을 원하지 않는 그런 유대인과 이방인은 받으시지 못하신다. 저를 아노라 하고 신령한 율법과 새 계명을 지키지 않는 그 불순종하는 자들을 주님께서 어떻게 받으시리요?

 

반면 거룩하신 영께서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신 구원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 영의 구원이니 누구든지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세상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고 살다 속죄의 능력이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자신의 허물들을 다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하면 그의 영이 거듭남의 은혜를 얻는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피를 통해 주님과 관계가 있는 그는 이제 비로소 아버지와 아들을 알게 된 자이다. 둘째 믿음의 결국인 영혼의 구원이니 누구든지 주님을 아는 자들 가운데 오직 그리스도만이 의로우심을 믿고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며 거룩을 행하겠노라 결단하는 자가 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영께서는 이렇게 육의 할례와 영의 거듭남 후에 회심한 자를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여 혼이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은혜에 이르게 하시고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 거룩한 영혼에게 부활의 영광을 베푸신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을 알아도 순종치 않는 인격체는 주님께서 그 영혼을 받으시지 아니하신다.

 

이처럼 바울이 말한 거듭난 자와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는 둘 다 주님을 알고 있으니 공히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러나 거듭난 자가 만일 자신의 생각을 돌이키지 못하고 썩어질 육을 위해 계속 이 세상을 따르느라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면 그는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 그 누구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거룩을 이룰 수 있는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걷지 않는다고 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처음에 세상에 있다 거듭날 때 주의 이름을 믿고 불렀으며 또한 비록 자신의 생각과 세상을 따르고는 있지만 늘 주여 주여 하면서 그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그의 부름은 거룩에 이르고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그 부름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주여 주여 하는 자는 바울이 전한바 십자가의 길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아니요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으면서 그 이름을 부르는 자이니 주님을 안다며 거룩을 행치 않는 자가 바로 주여 주여 하는 자이다. 이런 영혼이 과연 아버지와 아들께로 나오신 거룩하신 영께 어떠한 말씀의 판단을 받겠는가? 그가 만일 첫사랑을 버리고 끝까지 자신의 생각과 헛된 세상을 따라 이방인처럼 살면 그의 안에 있는 선악의 죄가 점점 더 심해지리니 그는 결국 유황불 못이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에 처하므로 아버지의 백성에도 이르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만일 오늘 그 영혼이 그의 육을 벗어나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섰을 때 아직 그의 심령 안에 그리스도의 피 하나만이라도 간직하고 있으면 그는 온전케 되는 과정을 겪은 후 오직 의인의 영으로서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백성으로서 아버지의 나라에 거한다 할지라도 원통한 것은 육에 있을 때 거룩을 행하지 않았기에 그의 영혼과 마음은 이 땅에서도 불행하고 또한 영원한 셋째하늘에서도 자녀 됨의 참된 복과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그 복은 얻지 못한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는 육의 할례를 받은 유대인과 영이 거듭난 이방인 가운데 누가 거룩을 행하므로 마음의 할례와 혼의 거듭남에 이르는 큰 구원을 베푸시는가?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지으시고 그 양심 안에 영혼을 불어넣어주셨으니 누구든지 자신이 받은 은혜를 알고 따르는 마음만 있으면 그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는 인격체는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따르고 순종하며 그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다. 아무리 힘든 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다 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의 피를 통해 공평한 사랑을 받은 자들 가운데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을 행하기 원하는 자는 불의한 자신이나 죄악된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십자가로 영생의 은혜를 베푸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받는 생명의 말씀과 거룩한 진리에 순종한다. 그리하여 말씀의 순종으로 거룩을 이룬 그가 그 거룩한 육체를 얻어 아들과 아버지께 가까이 나가 그리스도께로는 형제요 또한 그의 신령한 몸이요 아버지께로는 거룩한 자녀들이 되어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런 영혼은 이 땅에서도 너와 네 집이 질서 안에서 웃음과 기쁨과 사랑과 평화와 행복이 떠날 날이 없다.

 

게다가 아버지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없는 영원무궁한 셋째하늘로 자녀들과 백성들을 부르시기 전에 이 땅에 이루시는 그 천년왕국을 십자가 이전의 남은 자들과 이후의 이기는 자들이 이 땅에서 죽임을 당하며 흘렸던 그 피를 신원하시고자 계획해두셨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에 들어가 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될 왕과 제사장으로서 땅과 백성을 얻어 다스리는 것은 주여 주여 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위해 이 땅에서 원수에게 조롱당하며 핍박을 받다 마지막에 거룩을 위해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은 자들에게 갚아주시는 아버지의 영광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충성된 증인

한 왕이 자기의 뜻과 계획을 자기의 아들에게 전해주고는 그것을 모든 종들에게 전해주라고 했다. 이에 그 아들은 왕궁의 안과 밖에 거하는 모든 종들에게 그 왕의 명령을 그대로 전하고 돌아왔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모든 종들은 왕의 뜻을 깨닫고는 왕이 원하는 그 계획을 바르게 이루어 갈 수 있었다. 이에 그 왕은 참으로 충성스럽게 자기의 말을 전한 그 아들을 기뻐하며 사랑했다. 잠시 후 그 왕은 자기의 종들만이 아니요 이제는 온 백성들에게도 자기의 그 뜻과 계획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은 왕궁 밖으로 나가 백성들 가운데서 세 명을 뽑아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가서 나의 백성들에게 포도나무를 가꾸라고 하여라. 그러면 내가 7년 후에 다시 와서 깨끗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은 자에게는 큰 상급을 내릴 것이요 그렇지 못한 자는 심판 받아 나에게서 멀리 가거나 쫓겨날 것이니라. 이것이 왕의 뜻이니 너희는 가서 이 말을 충성스럽게 전하여라.” 이제 그 세 사람은 그 말을 듣고 백성들에게 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백성들은 참으로 인삼을 좋아하여 인삼만을 열심히 가꾸고 있었다. 그러나 첫 번째 사람은 충성된 자요 왕의 뜻을 깨달은 자이니 백성들에게 말을 이렇게 했다. “여러분! 왕께서는 우리가 포도나무를 가꾸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를 잘 가꾸어야 합니다. 그러면 왕의 아들이 7년 후에 찾아와 깨끗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은 사람에게는 큰 상급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첫 번째 사람의 말을 듣자 다른 말들은 다 좋은데 심판 받는 다는 말은 듣기 싫어했다. 이에 백성들이 그 말을 싫어하는 것을 보고는 왕의 뜻을 깨닫지 못한 두 번째 사람은 이것이 왕의 말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전했다. “여러분 우리가 무엇이든 열심히 일하면 왕의 아들이 다시 왔을 때 큰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인삼을 너무 좋아하니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어도 오직 인삼 가꾸기에 정신이 다 팔려있었다. 그런데 왕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도 전해야 하는 것은 세 번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게 왕의 말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충성스럽게 전했다. “여러분 우리가 섬기는 왕은 우리가 인삼을 많이 얻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왕의 뜻에 따라 인삼을 열심히 기르십시오.” 결국 백성들은 이 세 사람가운데 자기의 귀가 듣고 싶어하는 자의 말을 듣고 따르며 세 갈래로 갈리기 시작했으니 어떤 사람들은 인삼 밭을 갈아엎고 포도나무를 가꾸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열심히 길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오직 자기들이 원하던 인삼만을 끝까지 열심히 길렀다. 그러므로 그 왕의 아들은 7년 후에 돌아와 약속대로 그들이 행한 대로 상급과 심판을 주었다. 그리고 첫 번째 사람을 기쁘게 맞이하며 너는 나의 말을 충성스럽게 전했으니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충성스럽게 증거해야 하는 것은 오직 한가지니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더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바꾸지도 않고 그대로 전하는 자가 충성된 증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충성된 증인으로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오직 아버지의 뜻과 말씀만을 이 세상에 선포하셨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 충성된 증인에게 거룩한 육체를 주시어 영광스럽게 부활시키셨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이 먼저 충성된 증인이 되신 이유가 있으시니 그것은 곧 자신을 믿고 따라오는 제자들도 자기와 같이 충성된 증인들이 되도록 자신이 먼저 본을 보이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후의 교회시대에 이 땅에 거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 충성된 증인을 알며 따른다. 그러므로 지금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 본을 따라 자신도 죽는 그 순간까지 아버지의 그 뜻과 말씀만을 충성스럽게 증거한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기쁨이 되며 사랑을 받은 그들이 부활하여 그 거룩한 육체의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말씀을 전하는 모든 자들이 충성스럽게 증인이 된 그분과 그분의 뜻을 알고 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분을 알아도 오히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충성스럽게 전하는 자가 있으니 그것은 그가 거듭날 때 가졌던 살고자 하는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요 그리하여 그분의 뜻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깨닫지 못하는 충성으로 인하여 지금도 그 마음을 포기한 많은 자들이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지는 않고 온갖 마음 없는 행위를 열심히 드리고 있다. 또한 전통이 정한 그 행위의 법들도 열심히 지키면서 나는 아버지께로 가까이 거하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한편 어떤 자들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 세상에 들어가 열심히 육을 거두라고 충성스럽게 말하니 그것은 자신의 육의 유익을 위함이요 이 세상의 영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거짓된 충성으로 인하여 또한 자신의 마음도 육과 세상을 원하니 이 마지막 때에도 많은 자들이 아버지께로 나와 온갖 육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을 구하여 바친 후 나는 아버지께로 많은 상급을 받으리라는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무엇이든지 자신이 뿌린 대로 나중에는 그것을 그대로 거두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같이 충성된 증인들과 그들을 따르며 아버지의 뜻을 이룬 자들은 자녀와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영광을 얻는다. 하지만 그 불충한 증인들과 그 따른 자들은 거룩을 이루지 못했으니 아버지께로 멀리 백성으로서 거한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아버지의 뜻을 끝까지 원치 않은 자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그 어두운 곳에 영원히 거한다. 반면 그리스도를 통한 거룩을 거부하므로 거듭남도 없이 거짓 증거를 한 자는 그가 무엇을 행했어도 그 죄로 인하여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간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 보좌 앞에 일곱 영

이 진리는 말씀의 기초가 있는 영혼을 위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 끝없이 열매를 맺는 두 그루의 사과나무가 서있었다. 그런데 한 나무는 뿌리가 좋으니 나무도 좋고 가지에 달린 열매들도 깨끗했으나 가지가 하늘로 높이 솟아있기에 높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만 열매를 딸 수 있었다. 반면 옆에 있는 나무는 뿌리가 나쁘니 나무도 나쁘고 열매도 더럽고 벌레가 우글거렸으나 가지가 땅으로 처져있어 아주 쉽게 딸 수 있었다. 어느 날 말을 참 재미있게 잘하는 한 여자가 길을 걷다 곧장 썩은 사과를 땄고 곧이곧대로 말하는 한 남자는 사과재배법이란 책을 펴서 비교한 후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힘들게 열매를 땄다. 잠시 후 여자는 이것은 맛있는 사과라며 길을 걷던 일곱 사람에게 건넸다. 그러자 일곱 명은 사과재배법 책을 펴서 맞추어본 후 그 사과가 썩은 것임을 알고 안 먹겠다며 거절하고는 대신 남자를 찾아가 그의 사과와 책을 비교한 후 얻어먹었다. 이에 여자는 자신의 사과를 누구에게 줄까 고민하다 세 사람이 눈을 감고 땅에 가만히 드러누워 입만 벌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가서 이 사과는 맛있다면서 그들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사과가 참 맛있고 고기 맛도 난다며 기쁘게 받아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명 가운데 첫째 사람이 눈을 뜨고 책을 펴서 비교해보니 자신이 먹던 사과의 반은 썩고 반은 벌레가 꾸물거리는 것을 깨닫고 남자에게 가 그의 사과를 책과 비교한 후 얻어먹었다. 반면 둘째 사람도 눈을 떴을 때 나쁜 사과임을 알았으나 나의 입에다 사과를 넣어주는 저 사람은 참되니 썩은 사과도 나에게는 상관없다며 책과 비교하지 않고 눈감고 계속 받아먹었다. 한편 셋째 사람도 눈을 뜨고 나쁜 사과임을 확인한 후 더 이상 받아먹지는 않았으나 남자에게도 가지 않고 사다리를 오르는 것도 원치 않았으니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여자의 소문이 방방곡곡에 퍼져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앞에 모여들어 눈을 감고 땅에 가만히 드러누워 입을 벌렸다. 그러므로 여자는 큰 돈과 명예를 얻었으며 또한 말을 재미있게 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나쁜 사과를 먹인 여자와 그것을 받아먹은 자들은 결국 전부다 병에 걸려 죽었다.

 

백의민족에 감나무 밑에 누워 홍시가 입 안에 떨어지길 바란다는 말이 있으니 그것은 게으른 자들을 향한 말이다. 하지만 죄는 육신에 한 순간 기쁨을 준다. 그러므로 사람이 한두 번 범죄했을 때 돌이키지 아니하면 세 번째부터는 무감각해지고 오히려 담대해진다. 사람의 욕심이 끝없고 불평불만이 한없고 자신을 계속적으로 높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것들은 다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원수의 성품들이니 원수는 자신의 인격을 던져보고 실행하는 자들을 자신에게로 이끈다.

 

예를 들어 원수와 마음을 합한 자들은 게으름으로 인해 육의 풍성함과 세상의 영광은 얻지만 잠시 후에는 그 게으름이 그들을 사망으로 데려간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으러 나오는 자들 가운데 게으른 자들은 거짓목자가 그들에게 이것이 진리라고 하며 전해주면 그것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생명의 말씀인지 아니면 육과 세상에 속한 말인지를 구별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말씀을 펴서 들여다보며 거룩하신 영께로 도움을 구하지 아니한다. 그저 눈을 감고 입을 벌리고 땅에 드러누워 홍시가 떨어지길 기다리듯 썩어질 것과 헛된 것이 은혜롭다며 날름날름 받아먹고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난독증이라는 병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요 게을러서 생기는 병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육과 세상으로 이끄는 설교를 받아먹는 동안 그것이 썩은 것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눈과 귀를 열고 그 썩은 것들을 분명히 보고 듣는다. 또한 영을 전하는 자들이 뒤로는 돈과 땅을 끝없이 챙기며 자신을 계속해서 높이고 늘 음행을 탐하는 모습을 보며 교회가 이래서야 되느냐고 말하되 심지어 이방인을 통해서도 듣는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목자는 참되니 썩은 것도 나에게는 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오직 그 거짓된 자들을 하나님의 참된 종으로 믿고 더욱더 따른다. 자신의 마음이 이미 영과 셋째하늘을 버리고 육과 세상을 구하고 있으니 어찌 거짓된 자들과 그들이 전하는 말을 의심하리요?

 

결국 거듭남도 없이 처음부터 이세벨의 말을 듣고 따른 양들은 오로지 육의 것과 세상의 것만을 취하니 그들에겐 썩어질 헛된 열매들이 있다. 반면 의와 거룩의 열매는 맺지 못함은 그녀의 말은 사람을 씻어서 의롭고 거룩하게 하는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를 따라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위로 불의와 선악의 열매를 맺고 있는 그들을 어찌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수 있으리요? 그리하여 거짓선지자만 원수를 따라 유황불 못의 가운데로 들어가지 않고 그를 따르던 수많은 목자들과 양들도 그리스도의 양들이 아니기에 그 불에 함께 던져지는 것이다.

 

그러나 참된 목자는 자신의 혼도 결국 거룩하게 된다는 믿음이 있으니 구약시대에도 교회시대에도 이 마지막 때에도 자신의 생각과 이 세상에서 돌이켜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른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적은 무리에게 자신이 아버지께로 받은 거룩한 진리를 허락하신다. 이때 참된 목자는 자신이 먼저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진리에 순종하여 의와 거룩에 이르고 또한 주님께서 맡겨주신 그리스도의 양들에게도 오직 거룩한 진리만을 먹인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던 목자들이 대환난에서 목숨을 버린 후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되며 영과 혼과 육으로 정결한 열매를 맺던 양들이 환난 전에 들림을 받아 그리스도의 신령한 신부가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교회를 이끄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경륜의 복음을 전했다. 그러다 핍박으로 인해 이방인들 가운데 첫 교회가 안디옥에 세워졌으니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바울은 그곳에서 그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든 이방민족들에게 전했다. 하지만 그 당시 바울만이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요 다른 자들도 계시를 받지는 못했으나 그리스도를 전했다.

 

     그런데 계시를 받고 전하는 것과 계시 없이 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 그것은 아버지의 뜻을 아느냐 모르느냐이다. 그러므로 계시를 통해 아버지의 뜻을 깨달은 바울은 경륜을 이루고자 거룩만을 전했다. 또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두렵고 떨림으로 거룩을 이루어가라고 했다. 하지만 계시가 없는 자들은 아버지의 그 뜻을 몰랐으니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말로서 그저 온전한 구원의 첫걸음인 거듭남만을 전하며 전통을 이루어갔다. 물론 어떻게 거듭나는지 조차 말하지 아니하고 그저 영을 말하여 육의 이익을 끼치는 거짓선지자들도 그때부터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이방의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해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자신들이 교회라고 하는 곳이 이 세상에 모두 1243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택하신 일곱 교회가 있던 소아시아에도 모두 12곳이 있었다.

 

     그런데 요한은 당시 그리스도께 계시를 받은 후 그 말씀을 오직 일곱 교회에만 보냈다. 그러므로 그때 계시록을 받은 교회의 수는 전체 교회의 수에 비교할 때 많지 않았다. 마지막 때의 말씀을 받은 교회들과 받지 못한 교회의 차이가 무엇이었는지 한가지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다. 즉 택함 받은 교회와 전통에 속한 교회의 차이를 알 수 있다.

 

한 포도원주인이 두 종에게 포도나무를 한 그루씩 주면서 이러한 말을 전했다. “나는 오직 깨끗하고 풍성한 포도열매를 원하는 도다. 그런데 열매라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하여 자기의 나무를 가꿀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니라. 또한 다른 자들도 땀 흘리는 너희를 보고 따라 행할 것이니 깨끗한 열매가 더욱더 풍성해질 것이니라.” 이 말을 듣자 첫 번째 종은 자신이 받은 포도나무를 가꾸느라 온 마음을 다했으니 그의 온 몸에서 땀이 흘렀다. 그러므로 그의 나무는 하루하루가 지나며 깨끗하고 튼튼하게 자라갔다. 그리하여 그 종의 나무에서 맺히는 열매들도 깨끗했으며 점점 더 풍성해져 갔다. 그러나 두 번째 종은 땅을 넓혀서 포도나무를 많이 심으면 열매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땅을 넓히며 나무를 많이 심는데 자신의 온 마음과 힘을 다하면서 이것이 바로 주인이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나무와 열매는 썩어가되 그의 땅은 점점 더 넓어져갔다. 이것을 보자 어떤 사람들은 첫 번째 종에게 가서 그 종을 따라 일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크고 근사하게 보이는 것이 좋았으니 두 번째 종에게 가서 그 종을 따라 일했다. 하지만 첫 번째 종과 일하는 것은 처음에는 힘들었으나 나중에는 쉬웠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중간에 포도원을 떠나기도 하고 두 번째 종에게 옮겨가기도 했다. 반대로 처음에는 두 번째 종에게 갔다가 첫 번째 종에게 옮겨가는 사람들도 몇이 있었으니 주인의 뜻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추수 때가 되자 그 주인이 돌아와 열매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첫 번째 종과 그를 따라 일한 자들은 모두다 깨끗하고 풍성한 열매를 갖다 바쳤다. 그러나 두 번째 종과 그를 따르던 자들은 주인에게 신 포도를 갖다 바치면서 자기들이 넓힌 땅을 자랑스럽게 보였다. 이에 그 주인은 자기의 말에 순종한 자들은 가까이에 그 불순종한 자들 가운데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깨끗한 열매를 맺겠다고 하는 자들은 멀리 두었다. 그러나 자기의 뜻을 끝까지 원치 않은 자들은 포도원에서 쫓아냈다.

 

     이와 같이 당시 아버지께서 택하신 교회는 초대교회든 안디옥교회를 비롯한 이방인의 교회든 자신의 마음을 다해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어갔다. 그리고 이것은 라오디게아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인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전통에 속한 교회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와 아들은 알지만 거룩을 깨닫지 못하니 당시에도 지금처럼 여러 가지 일들을 이루어가며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요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때나 지금이나 은혜를 받아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교회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행위들을 이루어가는 그 전통에 속한 교회들의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차이점들이 있다.

 

     우선 은혜를 받은 교회에 모인 영혼들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한 거룩의 믿음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씀과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자신이 의롭고 거룩하게 될 것을 믿고 자기의 생각과 의를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어간다. 그러나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교회는 그 마음을 포기했으니 거룩을 이루기보다 자기가 원하여 마음에 품은 뜻이 주님의 뜻이 되게 하옵소서 라고 하며 그것을 열심히 행한다.

 

     두 번째로 은혜를 받은 교회에는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그들 가운데 여자는 자신의 남편을 따르며 남편의 말에 마음을 다해 순종한다. 또한 거룩한 공동체로 모였을 때는 그 입을 열지 아니하고 집에서 늘 종용하게 남편에게 배운다. 그러나 전통에 속한 교회에서는 이러한 순종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그러한 것은 초대교회에만 그런 것이지 지금은 시대와 문화가 달라졌으니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그 말씀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로 은혜를 받은 자들은 그 마음이 오직 아버지의 의와 셋째 하늘만을 구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을 위하여 오직 자신이 의롭고 깨끗하게 되기만을 구하며 말씀에 순종한다. 또한 아버지의 나라만을 소망하니 그 증거로서 이 세상에서 나왔으며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통에 있는 영혼들은 그것을 구하지 아니하니 순종이 없다. 또한 자기의 몸은 예배 드리는 곳에 있을지라도 자신의 마음은 자신이 돌이켜 나왔던 이 세상에 있다.

 

     네 번째로 은혜를 받은 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깨닫지 못했으면 자기의 입을 열지 아니한다. 오직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그 진리의 깨달음을 아버지께로 구하며 겸손히 엎드린다. 그러나 전통에 있는 영혼들은 깨닫지 못해도 입을 벌려 가르치며 전하다 모르는 것을 질문 받으면 ‘그냥 믿어라. 기도해보자. 구원과 관계가 없는 것은 몰라도 된다. 너무 깊이 알려고 하면 잘못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도자도 따르는 자도 둘 다 함께 구덩이에 빠져있다.

 

     다섯 번째로 전통에 있는 영혼들은 사탄이 무엇으로 어떻게 죄를 짓게 하는지 또한 생명나무의 깨달음도 없으니 늘 선악에 이끌리며 자신은 다른 영혼을 선악으로 누르고 자신도 다른 영혼에게 그 선악으로 눌린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에서는 기쁨과 평화를 이미 빼앗겼다. 그러나 택하신 교회의 지체들은 그 선악을 뽑아내고 이겼으며 어떤 자들은 이기고자 싸우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에는 그리스도께서 끼치시는 기쁨과 평화가 변치 아니하며 오히려 더해간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한 농부가 투명구슬을 맺는 씨앗을 가지고 가만히 보니 길을 잃은 어떤 고아가 깨끗한 구슬을 원했다. 이에 농부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알고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이 씨앗을 심고 마음을 다해 가꾸면 내가 원하는 열매를 많이 얻을 것이니라. 또한 사람들이 너에게 와 그 씨를 좀 나눠달라고 할 것이니라.” 어린 아이가 농부의 말을 듣고 자기의 땅에 그 씨를 심었더니 하얀 싹이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보자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마음이 가벼워졌으며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또한 농부가 원하는 열매를 얻고자 자신의 힘과 정성과 뜻을 다해 가꾸었다. 그랬더니 그 나무는 투명구슬을 풍성히 맺었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열매를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그 씨를 얻어 자신들의 땅에 심었다. 그런데 뿌리가 튼튼하고 좋아서 그런지 그들의 나무와 가지들도 튼튼하고 좋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꾼 나뭇가지들에도 투명구슬이 풍성히 맺혔다. 그러나 하얀 싹을 본 후 자신의 마음을 빨강구슬과 황금구슬에 빼앗긴 사람들은 농부가 원하는 구슬을 맺지 못했다. 반면 어떤 도박꾼이 빨강구슬과 황금구슬을 맺는 씨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가만히 보니 양털로 짠 옷을 입은 양치기 네 명이 울긋불긋한 구슬을 원했다. 그러니 도박꾼이 그들의 마음을 꿰뚫고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주는 씨앗을 심고 열심히 가꾸면 당신들이 원하는 구슬을 많이 얻을 것이오. 또한 당신들처럼 눈에 보이는 열매를 원하는 사람들이 그 씨를 받으러 구름 떼처럼 몰려올 것이오.” 이에 양치기들은 그 씨를 받아 자신의 땅에 심고 열심히 가꾸었다. 그랬더니 그들의 나무는 열정적이고 영광스런 구슬을 많이 맺었다. 또한 다른 양치기들과 양들이 대박난 소문을 듣고 몰려와 그 씨를 받아서 심었다. 그런데 그 뿌리가 튼튼하고 좋아서 그런지 나무와 가지들도 튼튼하고 좋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꾼 나뭇가지들에는 빨강구슬과 황금구슬이 많이 맺혔다.

 

사람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으니 동물처럼 육신이 있고 그로 인해 육신의 생각이 있으나 동물과는 달리 코를 통해 생기를 받았으니 인격체로 불리며 마음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유의지라 부르는 바로 그 마음에 따라 아버지께서 각 사람의 앞에 두신 생명과 사망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생을 원하는 자는 자신과 자손이 살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거듭남의 은혜를 얻는다. 그러나 원치 않는 자는 십자가를 거부하되 악한 자는 자손들도 믿지 못하게 한다.

 

또한 사람은 땅에서 온 육을 따르면 썩어질 육을 위해 세상에 묶여 살고 영원한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온 영을 따르면 그 귀하고 거룩한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하늘을 바라보고 살되 그 선택도 역시 사람의 능력과 판단이라 불리는 자유의지 즉 마음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라도 첫사랑을 버리고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라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구하며 살 수도 있고 영을 따라 살 수도 있다. 그리하여 육의 기회가 있을 동안 영혼의 구원을 이루어 생명나무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들도 있고 혼의 거룩을 이루지 못하여 그 과정에서 호리까지 다 갚고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로 나오되 육체는 심판 받고 소멸되어 영혼이 하나님처럼 사는 백성들도 있고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붙들고 거룩을 거부하므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에 처하는 자들도 있다.

 

결국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거나 은혜를 거부하고 영원한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는 것과 또한 아버지의 자녀나 백성으로 살거나 영원히 슬피 우는 것이 사람의 능력과 수행과 교양 같은 외모가 아니요 공평하게 오직 각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 이처럼 사람은 씨를 받았을 때 자신의 마음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아버지께서 내어놓으신 십자가를 통해 생명이나 사망을 이룰 수 있는 인격체다. 또한 그 뿌리가 좋아야 나무도 좋고 가지와 열매도 좋되 나무도 나쁘고 가지와 열매도 나쁜 것은 그 뿌리가 나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밖으로 내는 열매를 보면 그 뿌리를 알 수 있고 또한 그가 누구에게 어떤 씨를 받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의 뿌리를 얻은 자는 그 목자가 먼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거룩에 애쓰며 오직 영으로만 모든 것을 다스린다. 그러므로 자신과 또한 거듭난 후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그 가지들이 맺는 것은 오직 영의 열매이다. 즉 영의 씨를 얻은 목자는 그의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위로 오직 의롭고 거룩한 열매를 맺고 또한 그 목자에게서 영의 씨를 받으며 그 목자의 본을 보고 따르는 양들도 역시 하얀 털을 낸다. 오직 아버지께로 온 진리만이 사람을 씻어 거룩하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마찬가지로 육의 뿌리를 얻은 자도 그 목자가 먼저 썩어질 육의 욕심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구하며 늘 육으로 모든 것을 다스린다. 그러므로 거짓된 목자의 뿌리로 인하여 그 가지들에 거하는 거짓목자와 양이 맺는 열매도 오직 육으로 나타나 육의 풍성함과 세상의 영광을 얻되 그들의 영혼은 늘 실족하며 마음에는 기쁨과 평화가 없다. 원수에게로 온 말은 사람을 오직 육과 세상으로 이끌어 들이며 세상은 사람의 마음과 영혼에 기쁨과 평화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의 앞에 서서 영을 전하는 자에 대한 영 분별은 그가 맺는 열매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으니 그가 누군가에게 받은 영을 전하되 그의 입술과 행위가 의롭고 거룩한 열매를 맺고 있으면 그는 참된 목자다. 또한 그를 따르는 자들도 그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순종해 자신의 안에 거하는 죄와 싸우며 거룩에 애쓰고 있으면 그들은 그 목자의 양이 아니요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그리스도의 양들이다. 그리하여 하늘에 쌓아두신 아버지의 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 늘 영을 따른 목자와 양들이 목자장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목자가 누군가에게 받은 영을 전하며 육의 이익을 끼치되 그에게는 주님께서 받으실 만한 거룩한 열매는 없고 오히려 선악의 연료가 되는 욕심이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있다. 고로 거짓목자를 판단할 수 있는 아주 쉽고 정확한 것으로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광야의 시험에서 이기신 것들을 오히려 많이 가지고 있다. 즉 뒤에 숨겨놓은 돈과 쌓아 올린 영광이 그의 거짓됨을 증거하되 그것들을 보고 따른 거짓된 많은 목자들과 양들도 그를 따라 영원한 형벌로 들어간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마음을 지으시고 그 양심 안에 생기를 넣어주셨어도 그 나무에 거하는 자들은 욕심으로 마음을 더럽히고 그 거짓된 것을 부러워하며 자기 발로 따라갔으니 누구를 탓하리요?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사람이 인간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가장 높은 산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매우 높고 험한 그 산을 끝까지 다 올라간 후 다른 사람들도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지도에다 그렸다. 그 후 그가 가만히 보니 어떤 두 사람이 그 산을 올라가고 싶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산을 올라갈 수 있는 지도를 그 두 사람에게 똑같이 하나씩 주면서 ‘이 지도를 보고 따라 산을 올라가면 복이 있을 것이요.’라고 말했다. 이에 둘 중 한 사람은 지도를 준 사람의 말을 믿었으며 또한 그 산의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지도를 보고 그대로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 험한 산길을 올라가며 힘도 들고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다. 또한 평생을 길러준 자기주인의 은혜를 원수로 갚고 산으로 도망쳐온 짐승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크게 벌리고 덤벼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어려움을 이기고 산의 중간 정도까지 올랐을 때는 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마음에 기쁨을 얻었다. 또한 산 밑에 있는 많은 세상을 내려다 보며 참 작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산의 중턱이니 밑에 있는 세상이 다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기쁨과 깨달음을 얻은 후 다시금 그 지도에 나와 있는 길을 보며 계속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힘도 들고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그 지도에 나있는 길을 따라 끝까지 올라갔다. 그러므로 그는 높은 산꼭대기에서 주위에 있는 모든 산들의 경치를 다 볼 수 있었다. 또한 산 밑에 있는 온 세상을 한눈에 다 내려다 볼 수 있었으니 그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했다. 한편 다른 한 사람은 자기가 그 산 위에서 주위에 있는 모든 산의 경치를 다 볼 수 있으며 온 세상을 다 내려다 볼 수 있다고 믿었으며 기대도 했다. 그러므로 자신이 받은 그 지도는 참으로 복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 복된 지도를 가지고 있는 자신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지도를 보고 따라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고난 받은 후에 얻는 그 성취감을 얻지 못했다.
 
     이와 같이 지도가 복된 것임을 알고 있는 자와 그 복된 지도를 가지고 있는 자가 복된 자가 아니다. 그 복된 것을 가지고 있는 자신에게 복이 있을 것은 알지만 가만히 있는 자도 복된 자가 아니다. 오직 그 복된 지도를 따라가는 자가 복된 자이다.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주신 예언들과 초대교회와 일곱 교회시대에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신 계시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앞으로 마지막 때에 있을 일들을 알고 있다고 복이 있는 게 아니다. 말씀의 비밀들을 가지고 있어도 복된 것이 아니다. 오직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그리스도께서 내신 그 길을 따라가는 자에게 복이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는 영혼과 첫사랑을 잃지 않는 영혼은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기 원한다. 오직 그것을 통해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그 생명의 소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두 사람과 두 가지를 동시에 따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기 원하는 자는 먼저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의를 내려놓으므로 자신을 따르지 아니한다. 또한 그리스도만을 따르기 위해 육과 이 세상을 따르지도 아니한다. 오히려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나온다. 그리하여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지도를 보고 따라 올라가는 길에는 힘도 들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 것처럼 십자가의 길에도 그것이 있다. 하지만 그 길을 기쁨으로 예비하신 아버지와 그 길을 평화로 내신 아들께서는 그 고난의 길을 걷는 영혼의 마음에 기쁨과 평화를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길을 걷는 그는 그 길에서 자신과 세상을 따르는 사람들이 얻지 못하는 마음의 복을 누린다. 게다가 그 길은 믿는 자를 위하여 죄를 이기신 승리의 길이니 그는 그 길에서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를 이긴다. 그리하여 죄의 가리우심을 받은 그가 마지막에는 목 베임을 통해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산 제사를 아버지께로 올려드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씨를 뿌리고 땀을 흘린 후에는 반드시 추수가 있으니 고난 후에는 영광이 있다. 그러므로 고난가운데서도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 아버지께로 영광을 돌려드린 그는 약속대로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얻는다.

 

     그런데 그 부활의 영광을 얻은 자는 아버지께로 나가는 거룩한 자녀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형제자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이루시는 천년왕국에서 왕과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공의와 사랑으로 천국을 다스리는 그 약속을 성취한다. 또한 그 영광과 권세의 복은 천국의 끝에 영원한 본향인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도 아버지의 영광을 이룬 그들에게 영원토록 주어진다.

 

     이처럼 그 복이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그들이 진리가 복된 것임을 알고 있거나 가지고 있거나 진리를 가지고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그 약속을 믿고 말씀에 기록된 대로 지켰기 때문이요 의롭지 못한 자신을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그 고난스런 십자가 길을 끝까지 걸어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