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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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에게 중요한 것과 그것을 얻는 길
- 살고자하는 마음
어떤 영혼이 성경을 읽다 말씀을 전하는 목자들 가운데 거짓선지자가 있다는 구절을 보게 되었다. 또한 거짓선지자는 그 수효가 많고 때로는 표적을 보여 택함 받은 자들까지 유혹하다 마지막에는 유황불 못에서도 원수가 들어가는 가장 뜨거운 곳으로 던져진다고 되어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행여 거짓선지자를 따르다 자신도 마지막에 거짓선지자처럼 될까 봐 걱정되어 거짓선지자가 어떤 자인지를 정말로 알고 싶었다. 이에 지팡이로 백성들을 섬긴 사람이 그의 간절한 마음을 보고 찾아와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그는 한 양치기가 많은 양들을 이리저리 이끄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그는 많은 양들이 양치기를 따르는 모습이 영광스럽게 보였으나 늑대가 왔을 때 양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다 자신의 목숨을 잃어야 한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 채 자신도 그저 많은 양들을 치고 싶은 마음으로 목자가 되어 그 소원을 열심히 이루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바닷속에 있는 도축장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길 양털을 깎아 자기에게 주면 돈과 맛있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이에 그는 날마다 양털을 깎아 그에게 바치되 양들에게 깨끗한 풀을 먹이지 않고 오히려 길거리의 개와 돼지가 먹는 것을 가져다 먹였다. 그러므로 양들은 하얀 털이 아니라 매우 더러운 털을 내며 병들어 갔으나 도축장주인은 더러운 털이 좋다며 돈과 맛있는 것을 점점 더 많이 주었다. 또한 그 목자는 지팡이가 있기는 했지만 양들이 잘못된 길로 가도 가만히 놔두었으니 양들이 맞아서 아프면 털을 내지 못할까 혹은 도망가지는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도축장주인이 한밤중에 찾아와 아주 큰 돈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주겠다고 하자 그 목자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이에 도축장주인은 당신이 치는 양들이 무엇을 먹고 자랐는지 식별하기 위해 세자리 번호를 붙여서 도축장으로 데려오라고 했다. 이에 그 목자는 양들을 푸른 초장이 아닌 바다로 인도했으니 양들은 한 마리씩 물에 빠져 죽기 시작했고 또한 물에 빠져 죽어가는 양들을 보고도 건져내지 않고 오히려 계속해서 물속으로 이끌었다. 그러다 양들이 도축 당하기 직전에 식별번호를 받게 해주며 평화롭고 안전한 세상이라고 외쳤다." 지팡이로 백성들을 섬긴 사람은 이야기를 마치며 바로 이러한 자가 거짓선지자요 그를 따르며 길거리의 음식을 받아먹던 자들도 마지막에 이 세상이 사망으로 들어갈 때 함께 들어갈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거짓선지자를 어떻게 판단하리요? 목자는 양들에게 받아먹는 자가 아니요 오히려 초장으로 인도하여 양들을 먹이는 자며 또한 마지막에 자기의 목숨을 구원코자 하는 자가 아니요 양들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잃는 자니 참된 목자는 반드시 목자의 옷을 입고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러나 거짓된 목자는 오히려 자신이 양의 옷을 입고 나와서 그 양들을 하나씩 하나씩 삼킨다.
또한 목자는 목자장이 이 땅에 계실 때 어떠한 말과 행실로 양을 치다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섬기셨는지를 자기의 마음에 품고 각오하고 있는 자이니 양들에게 늘 깨끗한 것을 먹이며 보이며 또한 지팡이가 양들의 앞에서 떠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목자는 늘 거룩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말씀과 진리만을 먹이며 양 무리에게 거룩한 본을 보이며 또한 오직 지팡이를 바라보도록 이끈다. 이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깨끗한 것에 순종하므로 자신을 늘 누룩에서 돌이키고 또한 불의와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도 구별되어 나오는 영혼들이 있으리니 그들은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 그리스도의 양들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양들을 거룩으로 이끈 목자가 마지막에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잃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고 참된 목자를 따르며 자신을 신령한 지체로 단장한 양이 그리스도를 통해 무릇 살아서 정결한 신부의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목자는 지팡이가 무엇인지 모르기에 갈 길을 잃은 불쌍한 양들이 아무리 바라보아도 그 지팡이를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지팡이와 상관없이 오늘은 이것을 내일은 저것을 하되 십자가의 고난과 영광을 가리키지 않는 말과 행위는 다 불법이다. 또한 거짓목자는 푸른 초장이 무엇인지 먹을 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주일에 육의 양식을 먹여 한주간 세상으로 이끈다. 그러나 양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풀이니 풀 외에 다른 것을 주어 거룩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자들은 다 거짓선지자라 판단을 내려야 한다. 즉 이것이 영이라 말하되 양들에게 육의 유익을 끼치며 이것이 영원한 셋째하늘의 영광이라 말하되 세상의 영광으로 양들을 이끄는 자들은 다 거짓에 속해있으니 따르든지 말든 지를 자기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거짓된 목자는 그가 사람들의 앞에 서서 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여러분들이 헌금을 많이 해야 우리 교회가 살고 또한 내가 살고 내가 살아야 저 가난한 자들도 살 수 있습니다.” 이 말을 한 자가 바로 그 양의 옷을 입고 나온 자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들도 많다. “666은 이단이나 혹은 내가 예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는 자는 이미 사람의 수를 안 받은 것이고 안 믿는 자는 이미 받은 것이니 실제가 아니라 상징입니다. 게다가 온 세상에 평화와 안전을 가져다 주는 그것이 어떻게 짐승의 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말들로 원수의 나타남을 예비하고 있는 자들은 마지막 때의 대환난에서 양들이 반드시 666을 받도록 인도하여 자신도 양도 육과 세상의 삶을 유지하게 할 것이니 이런 말은 자신이 거짓선지자임을 스스로 증거한다.
그러나 거짓을 설교자의 속이 아닌 오히려 말씀을 듣는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며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볼 때 영이 거듭났으나 아버지의 뜻에 관심이 없으니 혼의 거룩을 이루어가고 있지 않다. 또한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요 오히려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 세상을 따르며 썩어질 육의 욕심을 이루어가고 있다. 양들을 이렇게 노략질하고 있는 자를 어찌 참된 목자라 할 수 있으리요마는 기억할 것은 자신이 그런 목자를 따르고 있는 것은 영이 아닌 썩어질 육을 또한 아버지의 나라의 영광이 아닌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구하는 거짓된 마음이 이미 자신의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격체인 사람이 다른 누구를 탓하리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선한 사람이 실제로 일어날 일을 영화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의 종에게 주면서 자기의 동생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이에 그 종은 그 선한 사람의 동생에게 가서 그 영화를 보여주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순교였으며 모두 네 편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첫 번째 장면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질병들이 온 세상을 돌고 있었으며 모든 나라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전쟁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거하는 사람들은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차례차례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악한 자가 사람들이 두려움가운데서 죽어가는 그 모습을 보며 참으로 기뻐했으니 그는 그 질병과 전쟁의 환난을 일으킨 자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난리가운데서도 아무런 고통과 두려움 없이 오히려 평안한 마음을 유지하며 기쁨과 소망가운데서 포도나무를 가꾸고 있었다. 그러다 그들 가운데 반은 깨끗하고 풍성한 포도열매를 따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므로 그 악한 자는 자신이 일으킨 질병과 환난으로도 그들을 죽이지 못한 것을 참으로 원통해했다. 두 번째 장면은 이제 전쟁이 끝나자 그 악한 자가 나와서 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한 나라로 만들었으니 세상은 평화롭고 안전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욱더 돈과 자신만을 사랑했으며 더욱더 음란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세상을 보며 이것이 참된 자유가 아니겠냐고 하면서 즐겼다. 세 번째 장면은 포도나무를 가꾸던 자들 가운데 남아있던 반이 그 하나된 나라의 왕이 인류의 역사에서 행했던 모든 악한 일들을 사람들에게 그대로 알려주었다. 또한 평화와 안전을 이룬 그가 잠시 후에는 다시금 전쟁과 온갖 자연재해로 큰 환난을 일으켜 사람들을 사망으로 이끌 것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불의한 이 세상과 죄에서 돌이키는 사람은 마지막에 선한 사람이 이 불의하고 악한 세상을 심판할 때 오히려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전해주었다. 이에 그 악한 왕은 그 말을 전하는 사람들을 붙잡아 이 세상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정의를 행한다고 하면서 한 명씩 목을 베어 죽이기 시작했다. 네 번째 장면은 그 악한 왕에게 죽은 사람들의 말대로 이 땅에는 지진과 해일과 화산과 우박 같은 것으로 큰 환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는 그 선한 사람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자들과 그 악한 왕에게 죽은 자들을 데리고 이 땅으로 내려오며 그 악한 자가 일으킨 모든 환난을 멈추게 했다. 또한 그 악한 자가 더럽힌 이 세상을 낙원과 같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회복시킨 후 그 나라를 참된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렸다. 그 선한 사람의 동생은 영화를 다 보고 나자 열심히 포도나무를 가꾸기 시작했다. 또한 자기의 친구들에게 자기가 본 영화를 그대로 전해주었으니 그의 친구들도 열심히 포도나무를 가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영화는 실제로 일어날 일이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그 선한 사람의 동생과 그의 친구들 가운데 반은 깨끗하고 풍성한 포도열매를 가지고 하늘로 올라갔으며 반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전할 말을 다 전했다. 그 후 그들은 모두다 그 왕에게 잡혔으나 담대히 죽음을 맞이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아버지께로 받은 진리가운데 마지막 때에 대한 그 계시를 교회의 인도자인 요한에게 주신 목적이 있으니 교회의 인도자들과 따르는 자들은 이것을 잘 깨달아야 한다. 또한 이 마지막 교회시대에 이 땅에서 말씀을 전하는 모든 자들과 자신을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요 목자라 하는 자들도 깨닫고 그 마음을 육과 세상에서 돌이키면 유익이 있을 것이니 그 유익은 자신의 생명이요 가족의 생명이요 자신과 함께하는 영혼들의 생명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시고자 자신의 종들을 통하여 참으로 각 교회시대에 아버지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시고 또한 알려주시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요한은 그것을 보고 듣고 자신의 거룩에 애쓰며 자신과 함께하는 공동체의 지체들도 오직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가도록 인도했다. 또한 아시아에 거하는 교회의 인도자들에게 그것을 그대로 전했으니 그들도 역시 거룩을 이루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요한도 다른 교회의 인도자들도 담대히 순교의 피를 흘렸던 것이다.
그런데 계시를 주신 목적은 이 마지막 교회시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종들을 통해 참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시대에 아버지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보여주시며 또한 알려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것을 보고 들은 자들과 또한 그것을 전했을 때 믿은 자들도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간다. 그리하여 그 마지막의 대환난에서 복음을 다 전한 후 담대히 순교의 피를 흘리므로 그 영광을 오직 아버지께로 돌려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교회의 인도자로서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고 오히려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열심을 다하는 자에게는 진리의 깨달음을 허락지 않으신다. 또한 목자의 일을 하되 그의 마음이 오직 자기의 먹을 것과 혹은 사람이 많아져 자기가 얻게 될 그 영광에 있는 자에게도 깨달음을 허락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계시록의 말씀을 보고 들을 때 누구에게 깨달음을 얻으리요?
그리하여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은 자가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양들의 앞에 서서 말씀을 전하며 자신과 자기의 가족들이 원하던 것을 얻은 삯꾼은 마지막 때에 자신의 목을 베는 그 칼을 볼 때 양들을 버리고 도망을 가는 것이요 원수에게 영광을 받아 누리던 거짓선지자는 양들에게 666을 받게 해 영광을 원수에게 바치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어떤 왕이 자기를 비우고 종처럼 낮아져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섬긴 후 자기의 백성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은혜 받은 자는 나의 빛나는 왕궁 안으로 들어올 것이되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빛이 나는 돌이니 그것을 가져오는 자는 왕궁으로 들어올 수 있는 상급을 내릴 것이요 빛나지 않는 돌을 가져온 자는 성밖에 거할 것이요 똥이 묻은 돌을 가져온 자는 어두운 곳으로 쫓겨날 것이요 더러운 돌을 가져온 자는 은혜를 거부한 자들과 함께 뜨거운 감옥에 갇힐 것이니라.” 그런데 왕이 베푼 공평한 은혜를 거부한 자들은 빛난 돌을 원치 않았으니 어딜 가든 무얼 하든 누굴 만나든 늘 돌을 주워서 더러운 곳으로 던지며 발로 차버렸다. 하지만 성은을 받은 백성들은 왕을 만족시키고자 나름대로 돌이 있는 곳으로 가서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떤 백성들은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에는 좋은 돌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린다고 생각했으니 큰 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을 걸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사람들의 손이 많이 타서 깨끗한 돌이 다 더럽혀졌으니 그곳으로 간 자들은 더러운 돌을 주워 왕의 앞에 내어 놓았다. 한편 대부분의 백성들은 그냥 편하게 자기가 앉아있는 곳에서 주운 돌이 왕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들이 드린 것은 빛나지 않는 돌이었다. 반면 어떤 백성들은 저 돌은 더럽고 저 돌은 빛나지 않는다며 비판을 즐기되 자기자리에 그대로 앉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 자신이 보기에 빛나는 돌을 주워서 드렸으나 그것은 똥 묻은 돌이었다. 그러나 몇 사람은 빛나는 돌을 얻으려면 반드시 좁은 문으로 들어가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함을 성은의 나무막대기를 보고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 적은 무리는 그 어느 곳으로도 가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이 있는 곳에서 자기의 앞에 있는 나무막대기를 잘 살펴보면서 돌을 주워 자신을 기쁘게 비춰보고 그 돌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깨끗한 돌을 드렸다. 이에 왕은 약속대로 그 19명에게는 영광스런 상급을 베풀되 다른 사람들의 모든 돌들은 다 버렸으니 향방 없이 달음질하고 허공을 치며 싸운 그들의 수고는 다 헛된 것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십자가의 보혈을 믿고 영이 거듭나는 은혜를 얻은 자들에겐 이제 혼이 거듭나 새롭게 되는 기쁨과 육이 거듭나 영광에 참여하는 약속이 주어져있다. 그러나 많은 자들이 바리새인과 같은 자신의 의와 생각을 돌이키지 않아도 그리스도께서 받아주시고 아버지께서 자신의 혼과 육안에 임하시어 성전을 삼으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셨으니 회개치 않는 세리와 창녀와 바리새인들은 불로 멸하시되 돌이키는 돈 벌레와 이방인과 목자들은 세상에서 불러내 자신을 따르게 하시고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품어주신다. 그러나 자기의 의와 생각에서 돌이키는 것이 사람에게 가장 큰 고난이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왜 멸망으로 인도하는 큰 문으로 들어가며 넓은 길을 찾게 되는가? 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겠는가? 그 이유는 사람은 자신이 의롭다는 생각에서 돌이키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요 또한 자신의 불의와 잘못된 생각을 고침 받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니 거듭나고도 말씀에 순종치 못하며 생명과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들이 돌이키지 아니한 채로 무엇을 원한다 할 때에 그곳으로 가 오히려 깨끗한 것도 더럽히므로 왕의 앞에 돌을 갖다 놓으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더러운 마음과 혼을 받으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은 한 번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자신을 돌이키지 못한 자는 혼의 거룩에 이르지 못한 채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되 돌이 더러우니 주님께서 어찌 그 더러운 영혼을 받으시리요? 그럴 수 없도다. 그리하여 자신의 의와 생각을 부인하지 못하므로 그리스도를 따르지 아니하면서 말하고 행한 그들의 모든 수고는 다 헛된 것이요 그리스도의 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니 그리스도를 따르지 아니한 자는 결코 의와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
게다가 누룩이라는 것은 서서히 퍼져 온 떡을 다 부풀게 하는 것이니 자신을 돌이키지 않은 자들이 아버지의 앞에 나와 주님을 섬긴다면서 많은 말들을 하고 각종 행위를 열심히 드리되 오히려 그들은 말할수록 행할수록 자신과 함께하는 영혼들까지 더럽힌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과 행위로 인하여 공동체 안에 있는 자들도 쉽게 더럽혀짐은 더러워지는 자들도 돌이키지 아니하고 그곳에 있기 때문이요 심지어 자신을 돌이키려는 영혼들까지 위험에 처한다. 하지만 돌이키지 않은 자들은 자신의 말과 행위로 자신과 다른 영혼들을 더럽히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빛이 되고 있다고 생각함은 늘 자신이 기준이 되어 자신의 눈에 보이는 돌만 고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 협착하고 좁은 길을 걷는 영혼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의로우심을 마음으로 믿고 자기의 의와 생각에서 돌이켜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요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을 따라오는 자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거룩한 것을 베푸시니 그는 이제 비로소 말씀과 기도로 또한 인자의 살과 피를 힘입어 자신을 빛나게 가꿀 수 있다. 또한 거룩하게 가꾼 자는 그의 머리 위에서 영광스런 빛이 나기에 자신의 주변에 있는 돌들에게까지 그 빛난 돌을 얻게 해준다. 그러므로 이 첫째하늘에서 가장 거룩하고 귀한 것을 말하며 행하는 자는 자신만이 아니요 자신의 가족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그 빛과 생명을 얻게 한다.
이렇게 자신의 앞에 있는 그 영광을 소망하는 자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돌을 보았을 때 아무런 설교나 다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그 돌을 들어 빛이 있는지 없는지 자신을 비추어보고 빛이 없는 것은 버린다. 어찌 생명의 말씀과 진리가 아닌 것이 불의한 죄인을 의롭고 거룩하게 가꿀 수 있도록 자신을 비추어주리요?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빛나는 돌을 찾았을 때는 우선 자신을 그 돌에 비추어보고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깨끗하게 가꾸며 기뻐하되 죽기까지 말씀에 순종하며 진리를 따른다. 그리하여 결국 영혼의 구원에 이른 그가 그 빛난 세마포를 입고 성소로 들어가 아버지의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며 영광의 자유를 누리는 그 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이 땅에서 얻는 그 기쁨과 아버지의 나라에서 누리는 그 영원한 복을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이루어지도록 하셨으니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되 자신의 생각과 의의 기준으로 자신이 원하는 말과 행위를 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기에 자신의 몸을 외식과 불법에 바치는 자가 많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사람은 마음에 있는 그 선악의 죄로 인하여 누구나 불의하지만 오히려 자신을 의롭게 여긴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그 내용이 누구나 다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의롭게 고치려는 마음은 가지지 않고 그 상태에서 오히려 다른 사람과 이 세상에 대하여 올바른 것을 요구하는 자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바 외식하는 자의 태도와 같은 것이니 아버지께서는 그러한 자를 참으로 어리석게 보신다.
게다가 이 세상을 불의하고 악하게 이끌고 가는 원수도 이렇게 어리석은 자를 자신이 심은 그 죄로 더욱더 강하게 묶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도 의롭지 않은 상태에서 어떠한 말과 행위를 하면할수록 더욱더 자기를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친다. 또한 자신의 부끄러움보다는 상대방의 부끄러움을 더욱 드러낸다. 그리하여 어리석은 자는 더 깊은 사망의 죄와 불의로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그 의로우심과 온전하심에 이르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누구든지 진리를 따르는 자도 그 의와 거룩에 이르도록 하셨으니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룬 자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주신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이 공평하게 그 사망의 줄을 풀 수 있는 생명의 길은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자기의 의를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한의 의는 베드로와 그 내용은 같았지만 더 강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의롭지도 깨끗하지도 못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자신을 의롭고 거룩하게 고치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요한은 우선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켰으며 자신의 그 옳지 못한 강한 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의와 거룩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진리를 구했다. 또한 그리스도의 말이라면 순종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이 품은 그 생명나무의 마음을 늘 기뻐 받으셨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의를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을 원한 것은 요한만이 아니요 다른 열명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즉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모든 제자들도 다 그 마음을 가졌기에 진리를 원했으며 또한 그 진리를 통하여 생명을 얻고자 하는 원함이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항상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스스로 제자를 하겠다고 그리스도의 앞으로 나온 제자는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불의했으나 자신을 의롭고 깨끗하게 고치려는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니 진리를 요구하는 마음도 없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며 일반의 사람들보다 더 어리석은 말과 행위를 했다. 게다가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을 그의 마음에서 끝까지 내려놓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고도 마지막에는 사망으로 들어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인 교회의 인도자들이 자신과 자신이 이끄는 양들의 생명을 위하여 유다와 같은 마음을 품고 말과 행위를 하는 옳은 것이요 아님 다른 열한제자들과 같은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이요? 만약 후자를 원하는 목자의 영혼이 있다면 그리스도께로 말씀을 받으며 그리스도만을 끝까지 따랐던 사도 요한에게 배울 것이 세가지가 있다.
첫째 요한은 마음이 순수하여 오직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되 아무런 행위를 그리스도의 앞에서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말씀을 듣고 가서 자신이 말씀대로 행한 것과 또한 그로 인하여 나타난 것을 늘 자랑했다.
둘째 그는 마음이 강하여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실 때 항상 그의 오른편에서 걸어갔다. 그것은 그가 늘 그리스도의 마음 안에서 거하며 그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자 함이었다. 그러므로 혹이나 다른 제자가 그 옆을 걸어가는 것을 보면 그가 달려와 그 사이를 가로질러 그리스도 옆에 있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없는 한 제자의 경우는 진리를 구하는 마음도 없고 또한 자신의 생각이 강하여 항상 그리스도께로부터 제일 멀리 서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안에 거하지 않은 그의 마음에는 세상의 말이 그에게 틈타 그가 범죄했으며 나중에는 그것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그리스도의 그 마음에서 그를 끌어 내려놓았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다른 제자들보다 요한을 사랑하셨던 것은 이것이니 그는 썩어질 육이 아닌 오직 영에만 소망이 있었고 또한 욕심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도 그를 더욱 사랑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끝없이 넓은 어떤 나라의 왕세자가 왕궁밖에 사는 백성들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누구든지 나의 섬김을 받기 원한다면 내가 거룩한 말을 전하며 거룩한 행실을 보여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도 먼저 다른 사람들을 섬기어라. 그러면 너희는 나의 왕궁으로 들어와 왕자와 공주로 세움을 받을 것이니 너희는 나의 명을 직접 받을 수 있는 영광을 얻어 너희가 거룩한 말과 행실로 섬겼던 사람들을 계속 섬길 것이니라. 그러나 만일 자신이 원하는 말과 행위를 하므로 자신이 섬김을 받은 교만한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리니 나의 왕궁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니라.” 왕세자의 말을 듣자 백성들 가운데 첫 번째 사람이 종처럼 낮아져 오직 왕세자의 말만을 전하며 거룩한 행실을 보여 다른 사람들을 섬겼다. 한편 두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에게 자신이 거룩한 말과 행실로 섬김을 받은 대로 자신도 역시 종처럼 낮아져 다른 사람들을 섬겼다. 그러나 세 번째 사람들은 자신이 높아지는 것이 기뻤으니 섬기기보다는 오히려 섬김을 받고 싶었다. 심지어 왕세자보다 더 높아지고 싶었으니 그들은 자신이 왕세자의 종이라고 말하며 행했으나 그것은 오직 자신을 높이는 말과 행위였다. 그러므로 그들로 인해 섬김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왕의 말을 듣고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말을 듣고 따르며 그들을 섬겼다. 이에 왕세자는 첫째 사람을 왕궁으로 불러 자기의 남동생으로 세운 후 어명을 내렸으니 그는 깨끗하고 올바른 마음에서 나오는 거룩한 말과 행실로 둘째 사람을 섬기는 왕자가 되었고 둘째 사람은 왕자가 된 첫째 사람에게 계속적으로 이런 저런 말을 듣고 순종하며 그 넓은 나라의 백성들을 섬기는 왕세자빈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이루고 싶은 계획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섬기게 만들었던 사람들은 왕세자빈의 섬김을 받으며 가장 낮은 백성으로 살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형벌을 받았다.
이와 같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은 오늘 잠시 육신을 입고 사는 이 첫째하늘에서의 섬김과 내일 영원히 거하게 될 셋째하늘에서의 섬김의 비교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행위로서가 아니요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주님을 따르며 그리스도께 받은 아버지의 생명의 말씀과 진리로 또한 거룩을 구하는 기도로 종처럼 낮아져 자신을 비워야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없는 영원한 셋째하늘에서 자신이 누구에게 섬김을 받고자 하는 자는 이 첫째하늘에 있을 때 오히려 종같이 낮아져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 즉 자기가 원하는 말과 자기를 의롭게 보이는 행위와 육적인 기도를 함이 아니요 오직 말씀과 진리만을 전하며 또한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행실을 하며 거룩을 구하는 기도로 섬겨야 한다. 그런 후 그리스도께서 그를 자신의 형제로 높여주시는 날에는 이 첫째하늘에서 섬긴 자를 셋째하늘에서도 그리스도께 받는 말씀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계속 섬기게 된다.
이처럼 이 첫째하늘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정결한 처녀들의 거룩을 위해 말씀과 진리로 섬긴 영혼의 인도자들은 셋째하늘에 갔을 때 이방인의 장자로서 아버지와 아들의 섬김을 받으며 자신이 섬겼던 신령한 지체들에게 말씀과 진리를 전하되 한 몸의 인도자들에게 섬김을 받으며 다른 영혼들을 기도로 섬긴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은 셋째하늘에서 장자의 섬김을 받으며 온 백성들을 섬기게 된다. 그러나 이 땅에서 자신이 섬김을 받은 인도자들은 거룩한 육체를 통한 영광의 자유에 참예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의문의 율법을 전하며 섬김을 받은 구약의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독사의 자식들이니 유황불 못의 뜨거운 섬김을 받지만 이 첫째하늘에서 신령한 율법으로 백성들을 섬긴 선지자들은 셋째하늘에 갔을 때 유대인의 장자로서 여호와의 섬김을 받으며 자신이 섬겼던 12지파에게 영원히 율법을 선포한다. 왕이 백성의 말에 순종함이 아니요 백성이 어명을 듣고 따르며 없는 사람이 가진 사람을 대접함이 아니요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을 대접할 수 있으니 셋째하늘에서도 말씀으로 섬기는 자가 아래가 아니요 말씀을 전하는 그가 오히려 더 위에 있는 거룩한 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세상에서는 오직 오늘 하루를 살되 아버지의 나라에서는 영원히 사니 이 땅에서 대접하는 자는 짧은 시간을 대접하고 하늘에서는 영원한 시간을 누구에게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이 땅에서 참으로 자신의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섬기려는 자들이 몇 없으니 그 이유는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말씀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며 그리스도의 의보다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싶어하고 기도하는 자들은 다른 영혼들의 거룩을 위해 간구하기보다는 썩어질 육과 세상의 헛된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말과 계획을 아버지의 것으로 바꾸고 늘 그것을 이루어가며 말씀과 기도로 섬긴다 하되 사실은 불법을 행하며 대접받고 있는 것이니 말씀을 이용해 영광을 취한 자들은 새 예루살렘성전 밖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혹은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어두운 곳이나 유황불 못의 가장 뜨거운 곳에서 불법을 행한 만큼 대접을 영원히 받는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계시라는 것을 그리스도전에는 오로지 한 영혼이 한 만군의 여호와를 통하여 들었다. 그리고 그 계시의 내용은 오직 아버지의 계획과 아버지의 심판과 아버지의 은혜에 대한 것이었으니 선지자가 먼저 그것들을 알고 믿었다. 그리고 나서 구약의 선지자들은 유대인과 이방인들도 그것들을 알고 믿도록 전해주었다. 이때 그 말씀을 듣고 믿은 자들은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말씀에 순종해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순종한 자들은 멸망과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오히려 그 생명에 이르렀다.
한편 계시라는 것을 그리스도의 후에는 아버지의 말씀의 비밀들을 두 사람 또는 세 사람이 함께 듣고 본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아버지의 뜻과 때와 맞게 그대로 전해주어 믿는 자들이 그 길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앞을 향해 나가게 한다. 그러므로 진리의 깨달음을 얻은 자들은 육과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이 마지막 때에도 거룩을 이루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룬 자들 가운데서 정결한 신부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들림을 받고 또한 환난으로 들어간 자들이 환난복음을 다 전한 후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므로 그 생명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계시를 받을 때 이렇게 받는 자가 따로 있고 선포하는 자가 따로 있는 것은 초대교회도 교회시대의 모든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한 자가 받고 같은 자가 선포하게 되면 그것이 진리일지라도 사람들이 믿지 못하고 오히려 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 이상이 함께 듣고 또한 비밀을 깨닫고 선포하며 이것이 진리이다 할 때는 오히려 다른 지체들도 의심이 없이 그 진리를 따라간다. 그러나 의심이 끝까지 생기는 자들은 그들과 함께 거하지 못하여 떠나간다.
예를 들어 초대교회 당시의 바울은 처음에는 안디옥교회에서 그 지체들 가운데 함께 하는 자들과 함께 들었으며 두 번째로는 디모데와 함께 하였다가 그 후로는 바울과 함께 있었던 자들과 함께 들었다. 또한 요한도 그가 가장 아끼던 제자가 있었으니 그 제자와 함께 듣고 함께 보았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그 자들을 가리우시는 것은 사람이 가리워지고 오직 아버지의 그 뜻만을 찾도록 그렇게 행하시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자신과 아들의 그 소원대로 계시를 주실 때 그리스도의 전이든 교회시대든 기준이 있으시다. 그러므로 오로지 연약하고 지혜도 없고 오직 한 길로만 가는 자를 택하시니 그 자가 들을 것이요 선포하는 자도 지혜도 없고 또한 말도 더듬거리되 오로지 진리만을 믿고 그 길로만 걸어가는 자를 택하시어 선포하게 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그 섭리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초대교회 때에도 또한 교회시대에도 또한 이 마지막 때에도 또한 세상의 끝날까지 이루어져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만일 그렇지 아니한 자를 택하신다면 그는 자신의 생각을 따르거나 사람의 말을 들으리니 그가 어찌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리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를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그 소원이 이루어지리요 아님 그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리요?
하지만 그리스도께 은혜를 얻은 요한은 아버지의 기준에 맞는 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지혜도 없고 말도 더듬거렸으나 거룩하신 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기에 그 복음서를 기록할 수 있었다. 또한 계시를 통해 자신이 본 환상과 들은 음성을 즉 마지막 날에 실제로 있을 일들의 비유를 이방의 교회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신령한 교회들로 하여금 그 날을 끝까지 기다리며 또한 소망하게 했다.
이렇게 계시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과 또한 그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은 환난으로 다가가는 이 마지막 때의 믿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은 진리를 듣고 마음을 돌이켜 전통과 이 세상에서 나와 거룩에 애쓰며 오직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끝까지 진리를 의심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거룩한 공동체를 떠나가나 그곳은 사람이 자기의 힘으로 나오거나 거부할 수 없는 두려운 세상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불의와 죄악이 가득하니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세상을 따른 그들이 어찌 거룩을 이루어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리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으신 것은 오직 이 땅에 와서 물의 침례를 받을 때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태초에 아버지의 계획가운데서 아들은 아버지께로 모든 것을 받으셨으며 모든 것을 이루셨으며 모든 것을 다스리셨다. 그리하여 자신이 창조한 이 땅에 자신이 창조한 사람과 같은 그 육신을 입고 그리스도로서 내려와 그 거룩의 일을 다 이루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의미와 그 사역이 무엇인지 또한 나의 생명과 그리스도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다.
한 의로운 왕이 아들을 한 명만 낳아서 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왕은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백성들 가운데서도 자기의 의로운 자녀들을 얻고 싶었다. 그러므로 어느 날 자기의 아들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아들아 나는 왕궁밖에 있는 백성들 가운데 오직 너를 믿고 따라오는 자들을 나의 자녀들로서 또한 너의 형제자매로서 삼기를 원하는 도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도록 나의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노라. 그러므로 백성들이 입는 옷을 입고 나가거라.” 이에 그 아들은 이러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백성들이 자기들과 똑같은 옷을 입은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요?” 이 질문에 그 왕은 이런 대답을 해주었다. “너는 나의 아들이니 내 말의 뜻을 알고 있노라. 그러므로 내 말의 뜻을 알려주면 네가 나의 아들임을 그들이 믿을 것이니라. 또한 마지막에 나의 사랑의 징표를 높은 산에서 보여주면 알리라. 그래도 믿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믿고자 하는 자에게는 새롭고 확실한 증거도 보여주거라. 그러면 그들이 왕자와 공주가 입는 옷을 너를 통해 입게 될 것임을 확실히 믿겠노라.” 이제 그 아들은 백성들이 입는 옷을 입고 왕궁 밖으로 나가서 왕의 말을 전해주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들은 그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고는 그것은 왕의 말임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말을 통해 그가 왕의 아들임을 알았다. 그리고 어떤 자들은 그 사랑의 징표를 보고 믿었으며 어떤 자들은 새롭고 확실한 징표를 보고 알았다. 그러므로 그의 말과 징표를 보고 듣고 그것을 알게 된 20명은 그 왕의 아들을 따라가 모두다 왕자와 공주가 입는 옷을 입고 왕의 자녀들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백성들은 동일한 것을 듣고도 보고도 또한 확실히 보고도 깨닫지 못했으니 그들은 의로운 왕자와 공주가 되어 왕궁에 거하는 것보다는 세상을 즐기는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그 선하시고 기쁘신 생명의 뜻을 이루시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셨으니 이것이 바로 기름부음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그 이름을 받으신 그 인자가 바로 오직 한 분 신이시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께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그리스도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모든 것은 오직 아들과 딸들이시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가지고도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놓았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통해 아들에게 거룩한 육체를 허락하셨으며 또한 아들인 그리스도를 따라 그 길로 따라오는 자들에게도 아들이 입은 것과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주신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셨으나 그 아들께서는 모든 것을 자신의 거룩한 형제자매들에게 나누어 주시되 그들이 아버지의 그 뜻대로 행한 대로 공평하게 나누어주신다. 자신이 아버지께로 모든 것을 받은 그리스도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이처럼 그 생명과 또한 다른 상급들도 오직 그 아들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주시고자 계획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것을 얻으려면 육과 이 세상이 아니요 그 어떤 다른 사람도 아니요 오직 아버지의 아들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그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자들이니 자신에게 그 생명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를 기다렸다. 그러므로 2천년 전에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유대인들은 표적을 보려고 혹은 육적인 것을 얻으려고 인자를 따라다닌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를 분별하고자 그를 따르며 그가 하는 말을 유심히 들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또한 부활하신 후의 그 거룩한 육체를 통하여서는 확실히 믿었다. 그리고 믿음을 얻었으니 자신도 그 생명을 얻고자 그리스도를 따라 그 십자가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유대인들은 아버지와 아들은 안다 하면서도 육의 욕심과 필요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전하시는 그 말씀을 듣고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 그가 아버지의 아들인지 아닌지를 알고자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쉽게 분별하고자 그저 표적만을 구했다. 그러나 표적은 원수도 행하는 것이다. 게다가 거룩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요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의 것들을 얻으려고 군중으로서 따라다닌 거짓된 자들도 많았다. 또한 불의한 자신을 의롭고 깨끗하게 여겼으니 알아도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그리하여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을 안다 하며 그 아들을 잡아서 죽인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고 진리를 따르지 않은 그들은 마지막에 모두다 사망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당시에 있었던 이러한 일들은 교회시대에도 또한 이 마지막 때에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전자의 마음을 가진 영혼들은 갈급함을 가지고 오직 말씀의 깨달음을 구하며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거룩한 육체만을 바라본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갈급한 자의 마음눈을 열어주시어 진리를 찾고 또한 깨닫게 해주신다. 그리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오직 진리만을 믿고 따르며 아버지의 그 뜻만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배가 아무리 고파도 음식을 찾아먹지 않는 것처럼 게으른 자는 전통에 그대로 주저앉아서 진리를 찾지 않는다. 깨끗한 음식은 버리고 더러운 음식을 먹는 것처럼 진리와 십자가가 밝히 보여도 마다하고 눈에 보이는 말과 귀에 들리는 말을 찾아 다니는 거짓된 자도 있다. 자신을 의롭게 여기니 알아도 따르지 않는 자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꼬임을 받아 진리를 따르지 못하는 것은 그 꼬임이 강해서요 아님 자신이 후자의 마음을 가지고 돌이키지 않기 때문이요? 그러므로 누구를 탓하리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한 나라의 모든 신하들이 자기의 왕 앞에 나갈 때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 신하들은 자기의 몸만을 꿇고 숙이지 아니하고 마음도 그러했으니 그것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그 왕이 의롭고 정직하고 깨끗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 왕의 동생들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들이 비록 왕의 혈육이요 자신들도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있었지만 자기의 형과 오빠가 가진 그 왕의 권위로 인하여 그의 앞으로 나갈 때는 역시 몸과 마음이 무릎을 꿇고 숙였다. 하지만 그 왕은 자신에게 권위가 있다 하여도 자신과 한 피를 나눈 그 동생들을 늘 왕궁으로 불러 함께 만찬을 나누며 기뻐하며 즐거워했으며 또한 섬겼다. 이렇게 그 왕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은 그 나라의 모든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비록 그 왕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신하가 왕의 명을 가지고 오면 역시 그들의 몸과 마음도 왕이 거하는 왕궁이 있는 쪽으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그 말을 받았다. 그러나 마음이 악한 죄인은 이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떤 죄인이 자신의 욕심을 위해 범죄하고도 끝까지 뉘우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죄를 더 지으려고 했다. 이에 그 왕의 신하들이 그를 결박하여 왕의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랬더니 그 죄인은 몸은 비록 왕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생각을 했다. “만일 저 왕의 의로운 다스림이 없었다면 나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내가 원하는 그 죄를 계속 범할 수 있었을 텐데. 저 왕이 범죄를 많이 저지른 자라면 나를 심판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가까이에 두고 자기의 신하나 친구로 삼았을 턴데.” 그 죄인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오히려 그 왕을 미워하고 저주했다. 그러므로 그 죄인은 왕의 앞에서 몸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되 마음은 그렇지 않은 그것을 통해 자신이 불의하고 악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했다. 한편 그 왕이 자기의 아버지 앞으로 나갈 때는 이러했다. 그러므로 그 왕이 자기의 아버지를 만났을 때는 아버지가 그 아들에게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아들이 왕이라 할지라도 자기를 낳고 기른 자기의 아버지에게 그렇게 하며 몸과 마음을 다해 섬겼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 태초에 아들에게 지어주신 그 귀한 이름의 세 번째 의미는 왕이니 아버지께서는 바로 이러한 왕의 의미를 그 이름에 넣어두셨다. 그리고 이 세상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아니하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그 아들은 이 땅에 내려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여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모든 자들이 그 아들의 희생을 통해 거듭남의 은혜를 얻는다. 또한 자기의 생각과 세상에서 돌이켜 그 아들을 따르는 모든 자들이 그 왕의 다스림을 받으니 그들은 마음에 변치 않는 평화와 기쁨을 누리다 마지막에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얻는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모든 만물이 다 왕이신 그리스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순복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베푸신 그 십자가의 은혜를 원치 않은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욕심과 불의와 죄의 기쁨을 놓지 못하여 그 은혜를 거부한 자들도 그 유황불 못에서 무릎을 꿇으며 그들의 영이 그것을 고백하게 된다. 또한 타락한 천사들과 그들의 대장도 그 뜨거운 곳에서 그리스도를 창조의 왕으로 인정하되 그들의 고통은 그대로 임한다. 아버지께서는 누구든지 끝까지 돌이키지 않은 자들의 불의와 죄악에 대해서는 아들을 통해 의로우시고 정직하시게 한번 심판하신 그것을 바꾸시거나 돌이키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된 모든 인격체들과 만물이 이렇게 그 이름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하여도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에게 무릎을 꿇으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왕의 이름을 가진 그 아들이 자신을 낳으시고 그 왕의 이름을 지으시어 자신에게 붙여주신 후 모든 만물을 자신의 발아래 두신 그 아버지께로 무릎을 꿇고 섬긴다. 그러므로 아버지 외에는 모든 자들이 무릎을 꿇게 되는 그 이름보다 더 의롭고 거룩하고 높은 자가 없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그 이름으로 생명을 주시되 불의와 죄악 외에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생명을 주는 이름으로서 계획하셨다. 그러나 만일 부활한 육에 질병과 고통과 아픔과 슬픔과 이별과 늙음과 죽음이 있거나 혹은 그 육에 한계가 있어서 어떠한 물질에 막히거나 하늘과 땅과 물로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거나 한다면 그것을 어찌 신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세포처럼 작은 것들을 한눈에 보지 못하거나 또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그 안에다 넣어 거대한 도시와 같이 만들지 못하거나 태양의 빛보다 더 느리거나 시간을 초월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신의 생명이라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그 무엇도 막지 못하는 그 자유로운 육체의 생명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므로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워 이긴 모든 자들에게 주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 생명을 얻은 것은 왕이요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섬기고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므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었기 때문이요 자신이 따른 그 분은 그 신의 생명을 줄 수 있는 그 생명의 이름을 오직 한 분 신이신 아버지께로 받으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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