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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깥다 병신새퀴

음악의 진행 (추천 0점)
2004-08-20 02:40

제가 초등학교 좋아하던 스타는 룰라였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 싸바싸바 날개잃은 천사로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독점했죠. 룰라에 이어서 노이즈라는 남성 4인조(맞나)가 프로포즈라는 음악으로 활동했었고 녹색지대도 나왔던 해였죠. 김건모다 핑계가 TV에서 많이 나왔던 해.

 

룰라의 테이프를 동네 가판데에서 구입하고 테잎이 늘어져라 2번트랙을 들었습니다. 다른곡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세대 최신가요니, 아니면 x세대 최신가요니, 이런 컴필레이션으로 테입 한장에 20여곡을 담은 테잎을 수집했습니다. 그때는 그런 짜가 테입들이 이천원이었습니다. 엄마 아빠한테 이천원 달라그러던가 친척네 들어서 받으 용돈으로 그런 것들을 구입했죠. 그런 생활이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 계속 됬어요.  룰라에서 부터 서태지의 컴백홈까지의 이어졌던 기간이었죠. 그리고 그 후부터 한국의 가요는 거의 안들었어요. 음악적 공백이었죠. 그리고 한국의 HOT와 젝키가 나오고 활동하던 시기... 저에게 있어 초등학교 5학년은 혁명이었습니다. 그 때 Backstreet boys를 알게 됬던 것이죠. 그때 우연히 bsb의 2집 타이틀은 everybody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미국에서 만들어진 아이돌 상품에 관심을 가졌죠. 그래서 6학년때 이르러 1998년에 한국에 스타크래프트가 들어오고 인터넷이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집에 33.6k 모뎀으로 저는 외국의 mp3사이트에서 bsb의  n sync나 celindion, britney christinaboyzone, westlife(그 후에), aqua등을 듣게 됬습니다. 그때 한국의 소리바다는 없었고 한국의 mp3사이트는 전무한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영국이나 미국쪽에 포르토사이트와 연계 운영된느 mp3사이트를 집에 64k ISDN모뎀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사이트는 앨범단위보다는 UK차트 빌보드 차트, Dutch차트 , 미국차트, 유럽차트 이렇게 여러가지로 세분화된 차트로 구성되어있어서, 저는 그때 빌보드와 UK차트를 달달 외우면서 댕겼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으로서는 대단한 것이죠. 그런 생활이 중1 때 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중1때는 BSB앨범 3집이 5월며칠에 한국에 발매되던 시점이었습니다. 그 날짜에 저는 수련회 기간이라 아쉬웠습니다.그리고 여러 차트와 mp3사이트를 전전하며 한국에 음반이 나오기 직전에 boyzone이후에 westlife의 곡들 ,if i let you go, swear it again, i have a dream , season in the sun, flying without wings를 중학교 1학년 내내 들었었는데 11월인가 10월에 그런 westlife의 앨범이 한국에 발매되었습니다. GMV라는 잡지에서 11월 6일인가? 10월 6일인가 외웠다가 이틀이 지나면 시흥 매장에 있겠다 싶어 매장을 2군대를 갔습니다.

westlife 1집 있어요? 물어보면 모두 westlife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발음해도 못알아듣고 앨범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제가 관심있어하던 여자애의 cd - p 에 westlife가 있던게 얼마나 반갑던지...

 

중1이 지나 중2 때는 이제 최신을 달리던 미국과 유럽쪽 상업주의 팝이 아니라 듣기좋은 보통사람이 접하기 어려운 곡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 뻑갔던 음악은 Santana와 Eagles였습니다. 그리고 그 때 재즈와의 첫만남, 뉴에이지의 섭렵이 시작됬던 기간이었죠. 중2 때와 고2때는 저에게 있어 새로운 음악적 욕망의 분출구 였습니다. 뉴에이지는 유키, 앙드레가뇽, 케빈컨, 조지윈스턴을 들었고, Eagles의 Hotel california는 삼백번도 더 들었습니다. 가사와 해석까지 전부 외워버렸을 정도였죠. 아무리 생각해도 hotel california는 저에게 신비로운 기적의 곡이었습니다. 기타의 앙상블이나 구성, 가사의 알지 못할 신비함등. 사운드가 그리는 호텔의 풍경들 모두가 이색적이면서 새루웠습니다.정말 뻑간것이죠. Thanksgiving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는 소수의 곡들을 반복해서 듣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앙드레가뇽의 un piano su la mer이나 머나먼추억, 정말 귀가 닭도록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중3학년때 올라와 그런 음악적 편력이 초고속 인터넷을 만나더 강해졌습니다. 중3은 중2의 연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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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재즈 일기1:재즈까지의 길 (추천 0점)
2004-08-20 02:20

모 태어날 때부터 음악을 접하면서부터 재즈를 알았겠죠. 그런데 재즈를 직접적으로 의식해서 듣게 된것은 Duke Jordan의 앨범을 통해서였어요 그 때 들었던 Everything heppens to me가 중학생이던 저에게 엄청나게 감성적이었어요. 그당시 듣던 뉴에이지나 가요, 팝이 깨워주지 못했던 감성들을 일깨워 준것이죠. 그 한곡만 일년동안 100번도 더 들었던것 같아요. 언제나 PDA와 MP3엔 그 곡이 함게 있었죠. 그리고 제목모를 CF에 삽입되었던 많은 곡들. 지금은 모두 그 이름들을 알죠.

데이브 드루벡의 Tave Tive나 엘라 핏제랄드의 곡이라던가 마일즈 데이비스라던가. 그당시에는 재즈의 한곡한곡이 너무나 감성적이고 산뜻하고 새롭게 다가 왔어요.

 

그리고 그때는 음반을 살 돈이 없어서 소리바다 채팅방과 온라인에 많이 있는 재즈 동호회를 찾아다니며 음악을 듣고 모았습니다. 처음에 제가 앨범단위로 다운 받았던 음악은 Keith Jarret이었죠. 학교에 my Song을 mp3에 담아갔을 때 그때가 겨울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에 올라와 이론적 체계를 세우기 위해 재즈와 관계된 책들을 찾아봤죠.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모던재즈계열에서 모달재즈 스타일의 아주 듣기 좋은 곡들, 발라드에 치우쳐서 들었습니다. 아직 비밥이나 하드밥, 스윙은 듣지 않았어요. 한마디로 야들야들하고 끈적끈적하며 듣기 좋은 곡들만 하나하나 골라들었던 것이죠.

 

고등학교 2학년 때 들어와 재즈는 거의 안들었어요. 그때 막 다른 활동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음악활동에 전념하지 못했죠. 2학년대는 대부분 락이나 팝을 들었어요. 보컬리스트에 대한 꿈 때문에 마이클볼튼이라던지 고전 헤비메틀의 보컬들, 그레헴보넷이나 로니제임스 디오, 한국의 임재범을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은 음악의 르네상스를 맞았습니다. 아트록에 심취해서 거기서 느낄 수 있는 현란한 코드 진행과 새로운 실험들이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이마빡에 딱 새겨놓은 이름은 pink Floyd였습니다 핑크와 더불러 예스나 Gong, 카멜, 제네시스, 르네상스, 레이크 애머슨앤 팔머, 정말 아트록과 프로그레시브씬에서 보여주었던 현란하고 아름답고 예술적인 선율과 실험적, 독창적 소리는 18세의 저의 정신을 단단히 잡아 두어서 놓아주질 않았다는 것이죠.

 

이런 음악의 편력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른 가정에 비해 자유로운 분위기 그리고 인터넷이란 매체에 의한 정보의 폭발로 다른 사람과 의견을 공유하기 쉬우며 정보를 쉽게 알 수 있었죠. 저는 고2때 이미 프로그레시브 정신에 바탕을 둔 음악의 장래를 설정해 두었습니다. 그 모델로 핑크플로이, 사운드의 핵심은 현대적이면서도 헤비하고 컨셉구성을 통해여 주제를 전달하는, 한국의 모델로 next의 1,2,3,4집을 선정했습니다. 5집까지 나왔지만 5집은 저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고3에 올라와 매우 방황했던 작년보다 심리적으로 안정된 생활이 가능해지자 저는 재즈를 다시 찾았습니다. 먼저 루이 암스트롱부터 펫메쓰니까지의 재즈사를 독학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음반을 지금 수집하고 있는중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재즈 앨범이 40여개 정도 됩니다.

펫메쓰니의  offramp는 들을 떄 마다 프로그레시브해서 아트록으로 구분해도 무리가 없겠다고 생각했고, 마일즈 데이비스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했고, 쳇베이커의 불행에 눈물 흘리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재즈의 시작, 첫단계 였습니다.

 

 

메모장에서 발췌 (추천 0점)
2004-08-31 23:58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뭏든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나는 더 생을 사랑한다. 집착ㅎ나다.

남에게 보여서 부끄러운 사랑은 마약밀매상적인 요소가 있다.

대낮을 견딜 수 있는 사랑이어야 한다. -전혜린

 

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

어딘가에 있는 부정을 방치하면 어디에나 있는 정의가 위협받게 된다.

-Martin Luther King Jr-

 

I disapprove i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

당신의 의견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당신이 발언할 권리는 죽을 때까지 옹호하겠다.

-Francois Marie A . Voltaire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극우 포리송의 탄원서에 서명을 했던 Chomsky도 같은 말을 하였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상대방이 어떠한 주장을 하든지 발언할 권리를 뺃어서는 안된다. 에밀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에 이어 전율을 느꼈다.

 

The Cure for boredom is curiosity

There is no cure for curiosity -Ellen Parr

권태로움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호기심이다.

호기심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I never think of the future, it comes soon enought

-Albert Einstein

나는 결코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미래는 충분히 일찍 오기 때문이다.

 

No man is free who cannot control himself

-Pythagoras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자유롭지 못하다.

 

 

문장을 암기하는 습관이 몸에 베게 하려고 노력해 왔다.

메모장에는 아직 스며들지 않은 외피에 문장이 움직인다.

잔인하게 부서진 시간의 파편을 이제는 알알이 바라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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