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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logical Roots: Which Go Deepest?

생태적 연원: 어디까지인가?*

 

헬레나 세만**

 

서평

존 벨라미 포스터, [맑스의 생태학: 유물론과 자연]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00), 300pp.

 

존 벨라미 포스터의 이 새로운 책을 보자마자 리처드 르원틴은 Richard Lewontin "맑스에 관한 더 이상의 위대하고 두껍고 무거운 책은 사절일세!"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맑스주의에 관한 두꺼운 책을 썼음에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르원틴은 신간 광고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하게 되면 내려놓을 수가 없다"고 쓰기에 이르렀고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나 역시 그러하다.
이 책은 명쾌하고 주제에 충실하며 학술적이고 실질적인 책이다. 지성사를 조망하고 먼슬리 리뷰 Monthly Review 독자들에게 친숙한 책들을 제시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고 해석한다.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많은 독자에게나 처음으로 접하는 독자에게나 이 책은 탁월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존 벨라미 포스터는 자신을 포함해서 다양한 인물들의 사상의 진화도표 그린다. 그는 맑스가 종종 반-생태 사상가로 오인받았다고 설명한다. 그는 언제나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맑스의 사상의 생태적 측면이 얼마나 핵심적인 것인가를 깨닫게 된 것은 몇년이 지난 후였다.
기본적으로 포스터는 맑스주의 내부의 두가지 흐름 사이에 존재하는 논쟁의 논점을 바꾸어왔다. 자연과학의 영역 전체를 실증주의에 넘겨주기를 거부하는 엥겔스의 전통과 결부된 고전적 맑스주의 전통은 인간 사회와 자연 세계 모두를 포괄하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구축하고자 한다. 실증주의에 반대하는 신칸트주의적, 신헤겔주의적 neo-Kantian and neo-Hegelian 논증에 결부되었고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Frankfurt School 대다수의 신좌파들이 받아들인 또 다른 전통은 자연의 변증법이라는 생각과 맑스주의와 자연과학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논리를 편다. 맑스의 원전을 재독하는 것에서 먼슬리 리뷰의 유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레빈스, 르원틴, 굴드 Levins, Lewontin, and Gould 같은 과학자들과 결부된 신좌파의 또 다른 흐름에 이르기까지 영향력 있는 많은 인물들을 두루 소개한 후 물리적 세계와 사회적 세계 양자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유물론을 논의한다.
"서구 맑스주의" 전통은 인본주의자 맑스와 실증주의자 엥겔스 사이의 기본적인 불화를 감지했고 이후 좌파의 역사에서 맑스를 둘러싼 모든 것에 존경을 보내고 엥겔스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잘못된 것으로 파악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문헌과 맥락들을 정밀하게 검토함으로써 맑스와 엥겔스 사이에 존재하는 이론적 거리에 대한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엥겔스의 매우 진보적이면서 지적인 철학적 유산을 입증하기 위해서 몇몇 저작을 살피는 것이 유용하다. 엥겔스의 저작에서 뽑은 자연세계와 인간 사회의 관계에 대한 인용문은 우리 시대의 생태적 의식에도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히 신선한 내용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이 마치 자연 외부에 존재하기라도

               하는 듯, 타국의 원주민을 정복하듯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살과 피와 뇌를 가진 존재로 자연에 속하며 그 한가운데에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자연을 지배하는 것은 모두 모든

              존재 중 자연법칙을 알아내고 이를 올바르게 적용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는 사실에 있을 뿐이다.

 

포스터가 들려주는 이야기 중 특히 재미있는 것은 1920년대의 소련의 생태학이 지구상에서 가장 앞서나갔다는 논쟁적인 그의 주장이다. 그 이유를 그는 서구모델은 환원주의적이고 단선적이며 기술적이었던 반면 소련의 사고방식은 보다 역동적이고 변증법적 복합성을 띠었으며 총체적이고 공진화적이었다는 데에서 찾는다. 그는 버나드스키의 Vernadsky 생물권 분석과 바빌로프의 Vavilov 유전적 다양성 연구 및 레닌과 Lenin 루나차르스키의 Lunacharsky 환경보호정책을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대화는 "부르주아"적인 것으로 비난받고 생태학자들이 숙청당한 스탈린 집권과 1차 5개년 계획 이후에 모든 일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부하린도 Bukharin 이 때 숙청당했다. 소련의 과학철학에 대해 연구해왔기 때문에 부하린의 철학책들에 대해 알려진 것들을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벨라미의 책을 통해서 부하린의 새로운 기록들이 발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판받는 시련기, 루반카의 Lubyanka 테러 속에서도 부하린이 4권 분량의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자전적 소설([이 모든 일의 시작] How it All Begin), 시집([세계의 변환] The Transformation of the World), 사회주의에 관한 논문([사회주의와 사회주의 문화] Socialism and Its Culture), 광범위한 철학저작([철학의 아라베스크] Philosophical Arabesques). 이 기록은 고르바쵸프의 개방정책기에 glasnost years under Gorbachev 발견되었다. [이 모든 일의 시작]과 [철학의 아라베스크]는 1990년대에 러시아에서 출판되었다. 영어로는 [이 모든 일의 시작]이 1998년에, [철학의 아라베스크]는 출간예정이다. 이전부터 알려져있던 부하린의 다른 저작들을 초월하여 부하린을 진정한 심층생태학자로 해석하는 것을 보면 포스터는 분명히 먼슬리 리뷰 출판사로부터 [철학의 아라베스크]의 영어초역본을 받아 읽어보았을 것이다.
먼슬리 리뷰 출판사의 또다른 공로는 코드웰의 Caudwell [죽어가는 문화에 대한 연구와 추가 연구]를 Studies and Further Studies in a Dying Culture 꽤 오랫동안 출판했다는 점이다. 포스터가 읊조리는 맑스주의의 역사에서 이 간명하고 탁월하며 놀라운 존재의 구절들은 내 귀에 음악으로 들려온다. 코드웰은 통합적인 통찰력, 상호적으로 결정되는 관계가 아니라 유기체나 환경 어느 한 쪽을 강조하는 특정한 이원론을 꿰뚫는 능력을 통해 거대한 인식론적 단절을 변증법적으로 연결할 수 있었다. 포스터에 따르면 코드웰은 다른 사상가들은 파악하지 못한 생태적 세계관의 본질을 파악했다고 한다.
[맑스의 생태학]이라는 제목은 이 책에 딱 맞는 제목은 아니다. 왜냐하면 맑스 이전과 이후 사상가들에 대한 탐구의 범위가 너무도 광범위한데다가 논지는 너무도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포스터의 "문헌탐구이야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매우들은 데모크리투스와 에피쿠로스에서부터 포이에르바흐, 맬더스와 다윈을 거쳐 엥겔스, 부하린, 버날, 홀데인, 코드웰 Democritus and Epicurus through Feuerbach, Malthus, and Darwin to Engels, Bukharin, Bernal, Haldane, Caudwell 외 다수에 이른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은 실제로는 유물론의 역사를 기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유물론의 역사는 현대의 생태운동이 지니는 반유물론적 경향에 대한 반론을 품도록 만든다.
유물론적 자연 및 역사 개념에서 생태학이 중심적이라는 주장과 유물론적 자연 및 역사 개념이 생태학에 있어 중심적이라는 주장이 이 책의 핵심이다. 반목하는 해석의 역사 전체는 현재의 문제에 대한 분석을 제공하는 것이다.
포스터는 자연과 인간 존재에 대한 유물론적 접근의 역사 전체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재의 녹색사상이 생태적 저하의 전 과정에 대한 책임을 17세기에 등장한 과학혁명이나 낭만주의적, 유기론적, 생기론적 포스트모더니즘과 반대될 수 있는 인간중심주의적이고 착취적인 기제를 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자연지배"라는 베이컨의 사상에 돌리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이원론적 접근은 현대 생태운동 대부분을 근대성과 과학의 단순 거부하고 맑스주의의 계몽주의적 측면을 희화화하며 비합리적인 근시안을 가지도록 만든다.
일단 생태적 측면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실재론적 인식론과 유물론적 존재론에 근거하여 재이해된다면 자연과 사회의 합리적 신진대사를 방해하는 장애물은 근대성, 과학, 유물론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존재하는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만일 누구라도 맑스주의 전통 내의 생태적 측면의 위치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 책을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혹은 또 다른 관점으로 현재의 생태적 관심사에 대한 대안적인 철학적 기초를 파악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연원에 대해 접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연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추선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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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lena Sheehan, Ecological Roots: Which Go Deepest?, Monthly Review vol.52, no. 5, October 2000

원문http://www.monthlyreview.org/1000shee.htm

BOOK REVIEW
Foster, John Bellamy, Marx's Ecology: Materialism and Nature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00), 300pp., $18, paperback

** 헬레나 세만(Helena Sheehan)은 아일랜드에 있는 더블린시립대학 신문방송학과(School of Communications at Dublin City University)에서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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