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肉鐸
- 배한봉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쏱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이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나도 한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았다
도다리 광어 우럭들도 바다가 다 제 세상이었던 때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덤 속 겉은 검은 비닐봉지의 입을 열자
고기 눈 속으로 어판장 알전구 빛이 심해처럼 캄캄하게 스며들었다
아직도 바다 냄새 싱싱한,
공포 앞에서도 아니 죽어서도 닫을 수 없는 작고 둥근 창문
늘 열려 있어서 눈물 고일 시간도 없었으리라
고이지 못한 그 시간들이 염분을 풀어 바닷물을 저토록 짜게 만들었으리라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사람의 집 창문도 저렇게 늘 열려서 불빛을 흘릴 것이다
지하도 역 대합실에서 칠 바닥도 없이 하얗게 소금에 절이는 악몽을 꾸다 잠 깬
그의 작고 둥근 창문도 소금보다 눈부신 그 불빛 그리워할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캄캄한 방문을 열고
나보다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부터 마중할 새끼들 같은, 새끼들 눈빛 같은
무엇을 두드리는지,
왜 두드리는지는 중요치 않다.
두드린다고 무엇이 나오던가.
두드린다고 의문이 풀리던가.
온 몸으로 두드리는 그 치열한 행위만이 남을 뿐.
세상은 그 무엇으로 이루어지지도 않고,
그 이유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두드리는 행위만이 살아
세상을 이룬다.
그 행위 뒤에 무엇이 나오지 않을 수도,
그 행위 뒤에 의문이 풀리지 않을 수도
한 솥 매운탕꺼리밖에 되지 않을 지라도...
어짜피 몸뚱아리 부지하며 살아가는 인생
육탁 밖에 길이 없다.
바다도 제 세상
솥도 제 세상
이렇게 울부짖으면,
정이 떨어질만도 한데...
사랑한단다...
아름다운 사람.
그 사람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이제껏 본적이 없다.
이 말을 전하고 싶은데-
그사람 앞에만 서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나면 그제사
조그만 목소리로
'나도...'
라고 말하지만
그 조차도 부끄러워 뜸을 들인다.
나도....
그 사람의 눈물을 가려줄,
그 사람의 땀을 식혀줄
그런 그늘을 만들고 싶다.
나에게 사랑이 무언지를 느끼게 해 준 그를,
한없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_ 최영미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창자를 뒤집어 보여줘야 하나, 나도 너처럼 썩었다고
정당히 시커멓고 적당히 순결하다고
버티어온 세월의 굽이만큼 마디마디 꼬여 있다고
그러나 심장 한 귀퉁이는 제법 시퍼렇게 뛰고 있다고
동맥에서 흐르는 피만큼은 세상 모르게 깨끗하다고
은근히 힘을 줘서 이야기해야 하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나도 충분히 부끄러워 할 줄 안다고
그때마다 믿어달라고, 네 손을 가슴에 얹어줘야 하나
내게 일어나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두 팔과 두 다리는 악마처럼 튼튼하다고
그처럼 여러번 곱씹은 치욕과, 치욕 뒤의 입가심 같은 위로와
자위끝의 허망한 한 모금 니코틴의 깊은 맛을
어떻게 너에게 말해야 하나
양치질할 때 마다 곰삭은 가래를 뱉어낸다고
상처가 치통처럼, 코딱지처럼 몸에 붙어 있다고
아예 벗어붙이고 보여줘야 하나
아아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아직도 새로 시작할 힘이 있는데
성한 두 팔로 가끔은 널 안을 수 있는데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_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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