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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4/11
    4월의 기록
    emily
  2. 2009/04/05
    인문학과 예술
    emily
  3. 2009/03/31
    결국은 삶의 태도가 문제다
    emily
  4. 2009/03/23
    개구리의 눈물
    emily
  5. 2009/03/22
    순조로운 결혼(3)
    emily
  6. 2009/03/21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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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9/03/20
    연애
    emily
  8. 2009/03/20
    소풍
    emily
  9. 2009/03/19
    블로깅을 시작하는 날..(4)
    emily

4월의 기록

4월 1일 수 맑음

 

영어학원을 등록했다.

Speaking 반 하나와, Teps 반 하나..

Speaking은 요즘 영어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동생과 재미삼아...

Teps 재미로 만만하게 봤다가 질퍽거리는 상황을 구제하기 위해서...

영어학원 2개를 오전에 몰아서 다니니

한국의 도시는 정말 징그러운 곳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낀다.  

 

4월 2일 수 맑음

 

영어 수업이 끝나고, 곧장 학교에 갔다.

간만에 학교에 가니 몸 둘 곳이 없더라.

멍한 머리로 텝스 스크립트를 디립다 외웠다. 

 

저녁 때는 생협 회의를 했다. 

간만에 김철규 교수님도 보고, 유림이도 보고, 성희도 보고, 상혁이와 여란씨도 봤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성희가 "우리가 했던 운동은 또 그렇게 순환하는 역사로 남겨지는구나 싶다"고 한 말만 기억에 또렷하다.

역사란 후대에 쓰여지는 것이기에, 다시 되새길 만한 가치가 있는 과거만을 다룬다. 성공이든 실패든... 성희의 말은 우리가 다시 되새길만한 가치가 있는 과거를 겪어왔다는 자평인가.

적지만 사람도 남았고, 아주 작은 흔적도 남았다. 

또 다른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기려면, 여기에 만족해야 한다.

쓸쓸하지만 최선이다.

 

김철규 선생님이 밥을 사주셨다. 밥먹는 동안에 잠깐 웃었다.

바로 안국역에 가서 희망제작소에서 안철수의 SDS를 들었다.

내 인생에 기업가(Entrepreneur)와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란 새로운 개념이 끼어들었다.

성공하는 기업가가 되기 위해서 나의 강점을 찾아서 그걸 살리란다.

 

4월 3일 금 맑음.

 

성희와 예술의 전당에서 만났다. 카쉬 전을 봤다.

20세기 초 인물들의 성격, 사고, 기분이 한점의 시간을 포착한 카쉬의 스틸사진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나 글에서 만난 것 이상의 진한 감동이 전해졌다.

신선한 만남이었다.

 

6시즈음 SDS 워크샾을 하러 대방동에 갔다.  

1시간 일찍 도착했다.

아쉽게도 사람들이 주는 감동은 카쉬의 스틸사진의 인물들에 못미쳤다.

성희와 아쉽게 헤어져버린 공허한 기분 때문인가...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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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예술

 

  타인의 고통에 예민해 진다는 건 사랑과 보살핌으로 주변을 물들이기 위한 초석이지만, 그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사람이 너무 많은 이 시대에 무슨 과욕이냐 싶을 수도 있지만, 사실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민감해 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하루 10분 이상씩 돌이켜 볼 여유를 갖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인의 아픔을 눈치 챌 수 있다. 사람들은 이를 애써 무시할 뿐이다. 감당하지 못할 아픔들에 버거워지기 싫어서. 이런 식으로 자신의 한계를 긋는 작업을 계속하는 까닭에 사람들은 그 이상을 알기가 어렵다. 그 이상을 실천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영웅이 아닌 이상 '모든'사람의 고통에 민감해질 필요는 없다. 나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내가 손 내밀면 잡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민감해질 필요는 있다. 이러한 노력이 더 넓은 세상, 더 많은 사람에게 뻗어나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가지고. 

 

 타인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 그 고통을 어루만져주고, 치유해 주고 싶다면 응당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있음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날 것으로 표현하기보다 '타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해 주는 것이 상대방에게 더 '필요'하다. 

 

  자신이 느끼는 고통을 상대방이 공감하길 바라지 않는 사람. 공감해 주더라도 표현해 주지 않길 바라는 사람. 또 적극 표현해 주길 바라는 사람. 타인의 고통에 접근하기 위해선 이렇게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럼 누가 어떤 부류에 속하는 사람인지를 어떻게 알 것인가?  이건 정말 어려운 문제다. 충분한 시간을 나누기, 풍부한 감수성으로 타인의 감정 느끼기, 자기가 느낀 것을 표현해내기... 이런 경험들이 역사적으로 축적된 것이 음악, 미술, 문학, 역사, 철학 즉, 예술과 인문학이다. 예술과 인문학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사람에게 가는 길'을 찾는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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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삶의 태도가 문제다

"공부는 정말 싫어, 난 공부 체질이 아닌가봐."

 

하면서 휴학을 한 친구가 요즘 학술서적을 읽고 있댄다.

 

"공부로 읽는게 아니라 재미로 읽고 있어. 정말 재밌어.

똑같은 학술서적인데, 공부로 읽는게 아니라, 그냥 읽으니까 너무 재밌는거야.

공부할 때는 왜 몰랐나 몰라."

 

이 친구 말을 듣기 전까지만해도 나는 나를 짓누르는 압박감이 무엇인지 몰랐다. 깨달음은 이렇게 우연히, 예기치 않은 곳에서 찾아온다. 이 친구의 주절거림이 나한테는 깨달음의 계기였다.

 

난 그동안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고 싶은 욕심"과 "재밌어서 저절로 하게 되는 일"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었다.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 하려면 고통스러운 노력이 뒤따라야만 한다. 그 고통스러운 노력 끝에 내가 원하는 바를 성취했을 때의 쾌감. 그것은 고통스러운의 기억을 상당히 말소시킨다.  후자는 그 반대의 경우다. 재밌으니까 저절로 업으로 삼고자 하는데, 업으로 삼다 보니 흥미를 잃는다. 그러면 나는 "그건 원래 재미없는데 재밌다고 내가 착각했던 거야"라고 여긴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업으로 삼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이 업이 되는 순간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일들로 인해 괴로워 지고, 그러면 결국 흥미를 잃고, 인생의 낙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난 이런 식으로 좋아하는 일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실수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어리석게도...

 

지향하는 바가 같다면 어떤 것이든 내게 주어진 일을 하면 된다고 여겼기에, 수많은 갈등과 번민이 있었다. 이것이 내가 할일인 것 같다가, 저것도 내가 할 일인 것 같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아무것도 못 할 것 같고...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정답은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마음먹기에 따라서 괴로울 수도 즐거울 수도 있는 것. 궁극적으로 희비를 결정하는 것은 선택을 대하는 인생의 태도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지치지 않고 열심히 할수만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는 같을 것이다. 하나만 더 덧붙이면 욕심을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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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의 눈물

망가진 수도꼭지처럼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눈물이 나오는 요즘이다.

 

눈물이 많은 사람은 과거에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은 적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은 걸까...?"

 

울고 싶은데 울음이 도저히 안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나란 인간은 상처따위는 받지 않는 냉혈한인가 싶었다.

내 스스로를 냉혈한이라고 여기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이 참담함을 극복하고자, 나는 내 짧은 상상으로는 잘 가늠할 수 없는 다른 이들의 상처를 이해해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눈물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에 하는 것을 경청을 하거나..

굉장히 슬픈 영화나 소설을 보거나...

 

그러나 그것은 내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에 별 도움이 안됐다.

 

허나 지금..

내가 예전 그 때에 그렇게 이해하려고 애쓰던 그런 사람이 되어있다.

 

차이가 뭘까.....

 

그때는... 누군가를 사무치도록 그리워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져본 적이 없었다.

난 자신감 넘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 우물 안 개구리는 그리움이 뭔지 몰랐고, 자신의 조그만 세계에서 좌절감이 뭔지 몰랐다.

 

세상 밖으로 나온 개구리는 이제 슬픔은 배울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슬픔은 맨살로, 직접 맞딱뜨리며 겪어봐야 비로소 그게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바깥 바람은 차고, 날카롭다.

살이 튼다.

 

튼 살의 상처가 아물면서 살가죽이 두꺼워지면

슬픔이라는 감정에 익숙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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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로운 결혼

서른 두살 먹도록 연애한번 안해본 사촌이 오늘 덜컥 결혼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아직 연애를 시작한지는 세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양가 부모님 상견례까지 하고, 가족 여행에 애인을 델꼬 갔댄다. 애인의 나이는 스물 네살. 후덜덜...

 

사촌은 독일 유학중이다. 유학 중에 만난 사람과 처음에는 동병상련의 정으로 끈끈해 졌다가, 연애까지 하게 된 모양이다. 혈혈단신으로 타지에서 만난 선남선녀가 정에 이끌리는 것이야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어째 벌써부터 결혼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 내 나이 스물 다섯, 한창 연애 중인 나도 결혼은 남 얘긴 줄만 알았는데, 스물 네살짜리 애인하고 세달 사귀고 결혼한다고? 어안이 벙벙하다. 게다가 사촌은 첫 연애라고...

 

서른 두해를 사는 동안 사촌에게 연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기회가 왔을 때마다 번번히 지금은 연애를 할 시기가 아니니라며 외면하고, 또 외면해온 것이다. 그렇게 서른 두해를 보내고 나니 '더 늦기전에 한번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더랜다. 그래서 시작한 연애. 그 연애가, 이렇게나 빨리 결혼으로 이어진 것은 사촌의 1년 남은 유학 기간이 끝나도, 유학생과 결혼을 하면 비자 없이도 독일에 체류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의 애인 입장에서 보면-그 애인은 연애 경험도 꽤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유학 중 옆구리 시리던 차에 32년 동안 연애 한번 못한 예의바르고, 다정다감하고, 능력도 좋은 남자가 짠하고 나타났으니 퐁당 빠져버릴 수밖에. 연애 경험이 좀 있다 하니까, 요즘 이런 사람 흔치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을테지. 

 

그런데 이렇게 속전속결로 그 커플의 관계가 진전되는 와중에,

그 사촌의 친동생은 사귄지 10년째 되는 애인과 결혼을 못해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사돈이 될 분들끼리 마음에 안든대나 어쨌대나...  

 

결국 "순조롭게 결혼"을 할 만한 상대는...

서로가 좋고 못살아서 정해지는 게 아니라, 기막힌 타이밍과 양가 부모님의 호응도에 따라 달린 일이라는 너무도 통속적이어서 거부하고 싶은 그 말이 결국은 현실이란 것을 목도한 하루였다.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그 현실을 거부할 것이라고 '낭만적'으로 말할 자격이 없다. 부모님 탓, 시기 탓 하며 결혼을 전혀 내 일이라 생각지 않는 것도 그 현실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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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계약서 상으로는 이장의 지역경제디자인센터에서 일하는 것이 마무리 됐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생으로 이리 저리 불려다니면서 2달이 정신없이 지나갔던 것 같다.

알바 기간 중에 생태농장학교, 칠곡군 농민교육, 칠곡 한빛타운 주민 교육.. 이렇게 세가지 교육이 돌아갔고, 팀장의 '선처'로 세 교육을 다 따라다닐 수 있었다. 

 

1_  생태농장학교는 한겨레와 이장의 협력기관인 '지역경제디자인센터'에서 귀농 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생태농장의 개념부터 디자인하는 것까지를 가르치는 교육이었다.

2_  칠곡군 농민교육은 '참외축제'를 준비하는 칠곡의 농민들에게 '지역관광'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교육이었다. 로컬푸드와 지역관광, 화합하는 마을만들기 교육 등이 진행되었다.

3_  칠곡 한빛타운 주민 교육은 부녀회, 문고회 등 주민조직들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들을 가르쳤다. DISC라는 성격유형검사부터 시작하여, 순조로운 회의진행 요령, 로컬푸드, 마을만들기 등을 교육했다.

 

이장의 교육을 통해서는 내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 귀농, 귀촌을 준비하는 이들, 지역 농민들, 지역 사람들, 그리고 대표 임경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칠곡군 교육문화복지회관의 지선영 선생님과 같이 주민들을 조직화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뛰는 공무원과, 맡은 분야의 프로패셔널리스트를 향해 정진하는 주현희 팀장과의 만남은 뜻밖의 영감을 주는 만남이었다.

 

사실 교육장에서 내가 하는 일 자체만을 놓고 볼 때는 정말 시간을 죽이는 막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강의에 대한 흥미와 사람 만나는 재미가 아니었으면 버티지 못할 일이었다.

돈도 못주고, 일도 못 주지만, 배워갈 수 있는 건 최대한 배워가라는 배려였다고 좋게 생각하자...

어쨌든 배우긴 많이 배웠지...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새로운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었으니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일선의 사람들에게 생생한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

 

그러나 진정한 내 안의 변화는

나의 기대들이 하나씩 하나씩 무너지면서 일어났다.

 

###

 

위의 교육이 진행되는 동시에 나는

지역자립에 대한 10개의 기사를 준비해야 했고,

한겨레21 해외 사회혁신기업 취재단과, 텝스시험을 준비했다.

 이것들을 준비하면서 난 이 모든 걸 완벽하고 성실하게 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10개의 기사는 마감을 지키지 못했고,

기사를 쓰면서 글쓰기의 헛점도 너무 많이 드러났다.  

한겨레21 취재단은 기사 마감을 포기해가면서 도전했었지만 실패했다.

텝스 점수도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달동안 열심히 일하면 이장에 입사를 할 수 있을거고 기대했지만 그 역시도 좌절됐다.

그리고 이제 초기 멤버들은 다 떠나고...

고생만사 클럽에는 새글이 올라오지 않는다.

 

난 인정받지 못했고, 기대는 짓밟혔다.

사회적으로 볼 때 나의 몫은 아무것도 없다는 박탈감,

내가 갖고 있는 것 마저도 놓쳐버리는 듯한 상실감으로

아무도 만나기 싫었다.

 

실패하고, 때로는 좌절도 하고,

배신도 당하고, 무관심에 쩔어서 외로운, 그런 삶이

평범한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도망쳐 다녔던 한달이었던 것 같다.

 

어제 한 친구가 밤늦게 전화했다.

술먹고 막차를 타고 가는 중이란다.

다짜고짜 '넌 내가 왜 술먹고 막차를 타고 가는지 아니?'라고 따졌다.

무심하고 힘없는 목소리로 나는 '몰라...'라고 대답했다.

그 친구는 '넌 날 몰라도 너무 몰라'라면서 말을 계속 이어갔다.

잠깐의 정적 너머로 울리는 막차의 안내음이 유난히 크고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 친구는.. 알아듣기 힘든 말들, 알아들어도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은 말들로 촘촘한 거미줄을 쳤고

난 그 거미줄에 서서히 휘감겨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난 미안하단 말 한마디면 풀어질 그 친구에게 아집과, 안하무인으로

그 말 한마디 건낼 줄 모르고 죽어가는 벌레 한마리였다 ...

 

너는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크다고..

너때문에 괴로워 죽겠다고...

너는 사람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너는 사람들이 네 기대에 못미친다고, 너한테 악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너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왜 넌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기회를 안주냐고..

미안하단 말을 해도 받아줄 주 모르냐고...

하루하루 괴롭고 미안해서 자살하고 싶다고...

내 삶이 어떤지 알기는 아냐고, 관심은 있냐고...

 

그 몹쓸 기대라는 녀석이 내 삶을 파먹는 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파먹고 있었다.

 

그물로 물고기를 잡듯 사람들을 건져 올리던 시절을 떠올린다.

나는 그때 사람들이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낮지만 강한 목소리, 사람들이 원하는 것, 배려, 위로....

 

헌데 요즘의 나는..

 

기대, 희망, 자신감과 독선과 좌절 사이에서 서성이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후회고, 변명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잊혀진 시절의 기억을 다시 꺼내 본다.

그리고 과거와 조우하는 현재...

 

기대, 희망, 의지, 자신감이 중요치 않은게 아니다, 다만 이는 낮은 목소리와, 배려, 위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려는 노력의 그림자로써만 필요할 뿐이다.

 

난 요 몇달 동안 그림자뿐인 나만의 세상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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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회사 앞 정류장에서 만나서,

우리 집 동네까지 바래다 주고,

집에 바로 들어가기가 아쉬워,

공원에서 산책하고,

빵집에서 빵과 우유를 사놓고 허기진 배를 달래고,

버스정류장에서 체온을 나누다가 버스를 두어대 놓치고,

헤어지기 전에 작별키스 하고,

차창 밖으로 얼굴을 볼 수 없을 때 까지 손을 흔들고...

 

어쩌다 90년대 청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연애장면 하나 찍었다.

딱 1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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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뭘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웬만큼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젊은게 좋은거지- 라면서 뭐라도 닥치는대로 하라 한다.

 

그럼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고 있는 마당에

닥치는대로 하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냐는 대꾸밖에

떠오르는 말이 없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자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멘토가 필요하다.

 

누가 나의 멘토가 되어 줄 수 있을지를 모색해 보면,

아주 적합한 사람이 몇 나오기는 한다.

그들이 나의 멘토를 해 줄만큼 여유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 빼면 아주 적합한...

 

###

 

지푸라기라도 하나 잡아볼까 하는 심정으로

'사회적혁신기업가를 발굴한다'는 거창한 모토를 내 걸고,

매달 모임을 갖고 있는 'Sopoong'이란 곳을 가봤다.

아직은 한국판 짝퉁 아쇼카..

 

압구정동, 세련된 사무실, 와인, 샌드위치, 1500원쯤 할 것 같은 김밥..

무슨 사교 파티장 같은 분위기는 뭐람-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무슨 할 이야기들이 그렇게 많으신지...

정말 이런 미팅같은 분위기일 줄 상상은 했지만 정말 내 페이스에 안맞는 곳이었다...

 

쭈뼛거리는 나를 소풍 직원들이나 몇명 관심을 가져줄 뿐이었다.

그들은 그게 직업이니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죽이되든 밥이되든,

별다른 전략도 없이 판만 깔아 준다는 식이다.

이런 모임은 없는 것보다 낫겠지만 어떤 단체가 이것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아직 소풍이 무슨 일을 하는 단체인지는 잘 파악이 안됐지만,

이런식의 사업이 중심인 단체라면 여기에 희망은 없다..

 

여튼 도움을 좀 받아볼까 싶은 사람들-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나같은 사람들한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너나 할것없이 말하기 바쁜 모습들.. 

명함을 건네면서 소개에 여념없는 그들 틈바구니 속을

나는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어쩌다가 한 구석으로 몰렸다.

그리고 자기네들이 반달모임인지 뭔지를 하고 싶다 이야기 하고,

나에게 그걸 같이 하잔다.

 

예비사회'혁신'기업가들(여기선 혁신이란 말에 꼭 따옴표를 찍어 줘야 한단다)을 위한

모임을 따로 가져보자 하는데...

나처럼 서성이는 몇몇 사람들이 눈에 걸리긴 걸렸나보다.. 

그러나 아무런 전략도, 계획도 없이 일단 모여보자는데...

별로 기대되는 것도 없이

어중이 떠중이들만 모이면 어쩔런지..

걱정이 앞설 뿐이다.

 

사람 쫓아다니면서 설레발 치느라 실속 못차리는 일은 좀 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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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깅을 시작하는 날..

말궁합이 맞는 친구와 한참 수다를 떨다보면

내가 생각하는대로 말하는 건지, 말이 내 생각을 만드는 건지 모를 신기한 체험을 한다.

그런 체험 후에는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하고 어렴풋 느끼지만. 

금새 잃어 버린다.

난 순간의 나일 뿐.  

이렇게 난 순간을 순간일 뿐이라 여겨

어디서 주워들은

"순간의 나는 내가 아니다."라는 기만적인 언사로

다른 이유때문에 -가령 게으르다거나, 부끄럽다거나, 귀찮다거나 하여 놓쳐버린  순간들을 합리화 했다.

 

그러나 우연히 마주한 이 순간들이 삶에 잔 주름을 하나씩 더해가면서,

나의 삶은 나도 모르게 조금씩 변해 왔을것이다.

나는 지금

그 순간이 언제였는지, 

그 주름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내가 어떻게 변해갔는지는 알 수없다.

또 그것을 순간순간 기억해야 무엇하랴.

내일이면 또 변하고 말 것을...

 

###

 

그러나 때로

예전에 겪었던 삶의 주름이 지금의 나를 편안하게 표현해 줄 것 같은데.......

하고 느낄 면  기억하고 싶은 욕구가 불쑥 솓구친다.

그럴때면 기억 저편에 흘려버린 순간들..

다시 잡기에는 너무 혼란스럽고 아스라한 그것들이 너무 아쉽다.

 

소중한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몇장의 사진,

꿀꿀할 때 다시 떠올리면 기분이 상쾌해질 것 같은 청량제같은 추억들.

나에게도 그런 것들이 분명 있을텐데...

그러면 조심스레 내가 알아볼 수 있게 주름의 탁본을 떠 볼까....... 싶다가도,

 

감당하기 힘든 즉흥적이고, 도발적인 성격과 끈기 없음에 대한 회의.

이건 아니다 싶어 쳐다보기도 싫을 것 같은 순간들에 대한 혐오.

내일이면 변할 나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긴다 한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싶은 허무. 

이런 일은 시간을 잡아먹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강박증.

씹히고 떠돌다 구겨져버고, 잊혀져버릴 나의 모습들.........이 나의 발목을 끊임없이 잡는다.

 

결국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조차도 그것이 내 삶에 주름으로 남겨진 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런 생각 자체가 손금처럼 지울 수 없는 진한 주름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난 더이상 빠져나갈 구석을 찾지 못했다.  

 

차라리 그 주름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흉측한지, 보기 좋은지, 그저 그런지..

탁본을 해 버리는게 차라리 속편하겠다 싶더랬다... 

 

귀찮더라도.

진저리나더라도.

유치하더라도.

추잡하더라도.

부끄럽더라도.

가난하더라도.

 

하나씩. 하나씩.

 

내가 남긴 말 한 마디가 어.쩌.면.

최소한 나에게,

나를 그려보고픈 누군가에게

그림이 아니라 날 것의 물감이라도 되보자는 마음으로..

 

꾹꾹 눌러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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