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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계약서 상으로는 이장의 지역경제디자인센터에서 일하는 것이 마무리 됐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생으로 이리 저리 불려다니면서 2달이 정신없이 지나갔던 것 같다.

알바 기간 중에 생태농장학교, 칠곡군 농민교육, 칠곡 한빛타운 주민 교육.. 이렇게 세가지 교육이 돌아갔고, 팀장의 '선처'로 세 교육을 다 따라다닐 수 있었다. 

 

1_  생태농장학교는 한겨레와 이장의 협력기관인 '지역경제디자인센터'에서 귀농 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생태농장의 개념부터 디자인하는 것까지를 가르치는 교육이었다.

2_  칠곡군 농민교육은 '참외축제'를 준비하는 칠곡의 농민들에게 '지역관광'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교육이었다. 로컬푸드와 지역관광, 화합하는 마을만들기 교육 등이 진행되었다.

3_  칠곡 한빛타운 주민 교육은 부녀회, 문고회 등 주민조직들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들을 가르쳤다. DISC라는 성격유형검사부터 시작하여, 순조로운 회의진행 요령, 로컬푸드, 마을만들기 등을 교육했다.

 

이장의 교육을 통해서는 내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 귀농, 귀촌을 준비하는 이들, 지역 농민들, 지역 사람들, 그리고 대표 임경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칠곡군 교육문화복지회관의 지선영 선생님과 같이 주민들을 조직화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뛰는 공무원과, 맡은 분야의 프로패셔널리스트를 향해 정진하는 주현희 팀장과의 만남은 뜻밖의 영감을 주는 만남이었다.

 

사실 교육장에서 내가 하는 일 자체만을 놓고 볼 때는 정말 시간을 죽이는 막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강의에 대한 흥미와 사람 만나는 재미가 아니었으면 버티지 못할 일이었다.

돈도 못주고, 일도 못 주지만, 배워갈 수 있는 건 최대한 배워가라는 배려였다고 좋게 생각하자...

어쨌든 배우긴 많이 배웠지...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새로운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었으니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일선의 사람들에게 생생한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

 

그러나 진정한 내 안의 변화는

나의 기대들이 하나씩 하나씩 무너지면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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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교육이 진행되는 동시에 나는

지역자립에 대한 10개의 기사를 준비해야 했고,

한겨레21 해외 사회혁신기업 취재단과, 텝스시험을 준비했다.

 이것들을 준비하면서 난 이 모든 걸 완벽하고 성실하게 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10개의 기사는 마감을 지키지 못했고,

기사를 쓰면서 글쓰기의 헛점도 너무 많이 드러났다.  

한겨레21 취재단은 기사 마감을 포기해가면서 도전했었지만 실패했다.

텝스 점수도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달동안 열심히 일하면 이장에 입사를 할 수 있을거고 기대했지만 그 역시도 좌절됐다.

그리고 이제 초기 멤버들은 다 떠나고...

고생만사 클럽에는 새글이 올라오지 않는다.

 

난 인정받지 못했고, 기대는 짓밟혔다.

사회적으로 볼 때 나의 몫은 아무것도 없다는 박탈감,

내가 갖고 있는 것 마저도 놓쳐버리는 듯한 상실감으로

아무도 만나기 싫었다.

 

실패하고, 때로는 좌절도 하고,

배신도 당하고, 무관심에 쩔어서 외로운, 그런 삶이

평범한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도망쳐 다녔던 한달이었던 것 같다.

 

어제 한 친구가 밤늦게 전화했다.

술먹고 막차를 타고 가는 중이란다.

다짜고짜 '넌 내가 왜 술먹고 막차를 타고 가는지 아니?'라고 따졌다.

무심하고 힘없는 목소리로 나는 '몰라...'라고 대답했다.

그 친구는 '넌 날 몰라도 너무 몰라'라면서 말을 계속 이어갔다.

잠깐의 정적 너머로 울리는 막차의 안내음이 유난히 크고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 친구는.. 알아듣기 힘든 말들, 알아들어도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은 말들로 촘촘한 거미줄을 쳤고

난 그 거미줄에 서서히 휘감겨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난 미안하단 말 한마디면 풀어질 그 친구에게 아집과, 안하무인으로

그 말 한마디 건낼 줄 모르고 죽어가는 벌레 한마리였다 ...

 

너는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크다고..

너때문에 괴로워 죽겠다고...

너는 사람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너는 사람들이 네 기대에 못미친다고, 너한테 악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너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왜 넌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기회를 안주냐고..

미안하단 말을 해도 받아줄 주 모르냐고...

하루하루 괴롭고 미안해서 자살하고 싶다고...

내 삶이 어떤지 알기는 아냐고, 관심은 있냐고...

 

그 몹쓸 기대라는 녀석이 내 삶을 파먹는 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파먹고 있었다.

 

그물로 물고기를 잡듯 사람들을 건져 올리던 시절을 떠올린다.

나는 그때 사람들이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낮지만 강한 목소리, 사람들이 원하는 것, 배려, 위로....

 

헌데 요즘의 나는..

 

기대, 희망, 자신감과 독선과 좌절 사이에서 서성이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후회고, 변명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잊혀진 시절의 기억을 다시 꺼내 본다.

그리고 과거와 조우하는 현재...

 

기대, 희망, 의지, 자신감이 중요치 않은게 아니다, 다만 이는 낮은 목소리와, 배려, 위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려는 노력의 그림자로써만 필요할 뿐이다.

 

난 요 몇달 동안 그림자뿐인 나만의 세상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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