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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로운 결혼

서른 두살 먹도록 연애한번 안해본 사촌이 오늘 덜컥 결혼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아직 연애를 시작한지는 세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양가 부모님 상견례까지 하고, 가족 여행에 애인을 델꼬 갔댄다. 애인의 나이는 스물 네살. 후덜덜...

 

사촌은 독일 유학중이다. 유학 중에 만난 사람과 처음에는 동병상련의 정으로 끈끈해 졌다가, 연애까지 하게 된 모양이다. 혈혈단신으로 타지에서 만난 선남선녀가 정에 이끌리는 것이야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어째 벌써부터 결혼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 내 나이 스물 다섯, 한창 연애 중인 나도 결혼은 남 얘긴 줄만 알았는데, 스물 네살짜리 애인하고 세달 사귀고 결혼한다고? 어안이 벙벙하다. 게다가 사촌은 첫 연애라고...

 

서른 두해를 사는 동안 사촌에게 연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기회가 왔을 때마다 번번히 지금은 연애를 할 시기가 아니니라며 외면하고, 또 외면해온 것이다. 그렇게 서른 두해를 보내고 나니 '더 늦기전에 한번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더랜다. 그래서 시작한 연애. 그 연애가, 이렇게나 빨리 결혼으로 이어진 것은 사촌의 1년 남은 유학 기간이 끝나도, 유학생과 결혼을 하면 비자 없이도 독일에 체류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의 애인 입장에서 보면-그 애인은 연애 경험도 꽤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유학 중 옆구리 시리던 차에 32년 동안 연애 한번 못한 예의바르고, 다정다감하고, 능력도 좋은 남자가 짠하고 나타났으니 퐁당 빠져버릴 수밖에. 연애 경험이 좀 있다 하니까, 요즘 이런 사람 흔치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을테지. 

 

그런데 이렇게 속전속결로 그 커플의 관계가 진전되는 와중에,

그 사촌의 친동생은 사귄지 10년째 되는 애인과 결혼을 못해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사돈이 될 분들끼리 마음에 안든대나 어쨌대나...  

 

결국 "순조롭게 결혼"을 할 만한 상대는...

서로가 좋고 못살아서 정해지는 게 아니라, 기막힌 타이밍과 양가 부모님의 호응도에 따라 달린 일이라는 너무도 통속적이어서 거부하고 싶은 그 말이 결국은 현실이란 것을 목도한 하루였다.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그 현실을 거부할 것이라고 '낭만적'으로 말할 자격이 없다. 부모님 탓, 시기 탓 하며 결혼을 전혀 내 일이라 생각지 않는 것도 그 현실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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