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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삶의 태도가 문제다

"공부는 정말 싫어, 난 공부 체질이 아닌가봐."

 

하면서 휴학을 한 친구가 요즘 학술서적을 읽고 있댄다.

 

"공부로 읽는게 아니라 재미로 읽고 있어. 정말 재밌어.

똑같은 학술서적인데, 공부로 읽는게 아니라, 그냥 읽으니까 너무 재밌는거야.

공부할 때는 왜 몰랐나 몰라."

 

이 친구 말을 듣기 전까지만해도 나는 나를 짓누르는 압박감이 무엇인지 몰랐다. 깨달음은 이렇게 우연히, 예기치 않은 곳에서 찾아온다. 이 친구의 주절거림이 나한테는 깨달음의 계기였다.

 

난 그동안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고 싶은 욕심"과 "재밌어서 저절로 하게 되는 일"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었다.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 하려면 고통스러운 노력이 뒤따라야만 한다. 그 고통스러운 노력 끝에 내가 원하는 바를 성취했을 때의 쾌감. 그것은 고통스러운의 기억을 상당히 말소시킨다.  후자는 그 반대의 경우다. 재밌으니까 저절로 업으로 삼고자 하는데, 업으로 삼다 보니 흥미를 잃는다. 그러면 나는 "그건 원래 재미없는데 재밌다고 내가 착각했던 거야"라고 여긴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업으로 삼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이 업이 되는 순간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일들로 인해 괴로워 지고, 그러면 결국 흥미를 잃고, 인생의 낙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난 이런 식으로 좋아하는 일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실수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어리석게도...

 

지향하는 바가 같다면 어떤 것이든 내게 주어진 일을 하면 된다고 여겼기에, 수많은 갈등과 번민이 있었다. 이것이 내가 할일인 것 같다가, 저것도 내가 할 일인 것 같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아무것도 못 할 것 같고...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정답은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마음먹기에 따라서 괴로울 수도 즐거울 수도 있는 것. 궁극적으로 희비를 결정하는 것은 선택을 대하는 인생의 태도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지치지 않고 열심히 할수만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는 같을 것이다. 하나만 더 덧붙이면 욕심을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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