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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3/31
    결국은 삶의 태도가 문제다
    emily
  2. 2009/03/29
    새낭골
    emily
  3. 2009/03/29
    emily
  4. 2009/03/27
    [구인광고] 동업자를 찾습니다(1)
    emily
  5. 2009/03/25
    사랑을 부르는 사랑(1)
    emily
  6. 2009/03/23
    개구리의 눈물
    emily
  7. 2009/03/22
    순조로운 결혼(3)
    emily
  8. 2009/03/21
    미안해..
    emily
  9. 2009/03/20
    연애
    emily
  10. 2009/03/20
    소풍
    emily

결국은 삶의 태도가 문제다

"공부는 정말 싫어, 난 공부 체질이 아닌가봐."

 

하면서 휴학을 한 친구가 요즘 학술서적을 읽고 있댄다.

 

"공부로 읽는게 아니라 재미로 읽고 있어. 정말 재밌어.

똑같은 학술서적인데, 공부로 읽는게 아니라, 그냥 읽으니까 너무 재밌는거야.

공부할 때는 왜 몰랐나 몰라."

 

이 친구 말을 듣기 전까지만해도 나는 나를 짓누르는 압박감이 무엇인지 몰랐다. 깨달음은 이렇게 우연히, 예기치 않은 곳에서 찾아온다. 이 친구의 주절거림이 나한테는 깨달음의 계기였다.

 

난 그동안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하고 싶은 욕심"과 "재밌어서 저절로 하게 되는 일"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었다.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 하려면 고통스러운 노력이 뒤따라야만 한다. 그 고통스러운 노력 끝에 내가 원하는 바를 성취했을 때의 쾌감. 그것은 고통스러운의 기억을 상당히 말소시킨다.  후자는 그 반대의 경우다. 재밌으니까 저절로 업으로 삼고자 하는데, 업으로 삼다 보니 흥미를 잃는다. 그러면 나는 "그건 원래 재미없는데 재밌다고 내가 착각했던 거야"라고 여긴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업으로 삼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이 업이 되는 순간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일들로 인해 괴로워 지고, 그러면 결국 흥미를 잃고, 인생의 낙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난 이런 식으로 좋아하는 일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실수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어리석게도...

 

지향하는 바가 같다면 어떤 것이든 내게 주어진 일을 하면 된다고 여겼기에, 수많은 갈등과 번민이 있었다. 이것이 내가 할일인 것 같다가, 저것도 내가 할 일인 것 같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아무것도 못 할 것 같고...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정답은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마음먹기에 따라서 괴로울 수도 즐거울 수도 있는 것. 궁극적으로 희비를 결정하는 것은 선택을 대하는 인생의 태도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지치지 않고 열심히 할수만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는 같을 것이다. 하나만 더 덧붙이면 욕심을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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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낭골

  48기 귀농학교 학생 5명과 나는 ‘새낭골 김태수 선생님을 만나야겠다’는 목적 하나로 어색함을 애써 감춘 채 한차에 몸을 실었다. 9인승 승합차는 구리에서 춘천까지 물길 따라 시원하게 이어진 길을 달렸다. 남이섬, 가평 길 안내판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봄 한철 느긋하게 즐겨볼까 싶어서 알아보았었던 남이섬 자작나무 나무심기, 가평 하이킹, 삼백산 트래킹을 속절없이 떠나보내는 것 같은 기분에 잠시 쓸쓸해졌지만 그 자리를 귀농학교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로 조금씩 메우 나갔다.

 

  춘천에서 볼만하다하는 호수들도 지나치고, 도청 소재지인 도심도 지나 우리가 도착한 곳은 춘천시 사북면 고탄리. 둔덕 위에 콘크리트를 대강 발라 놓은 구불구불한 시골길과 지릿한 냄새. 영락없는 깡시골이없다. 반겨줄 이 없는 그 조그만 마을에서 우린 한참을 헤맸다. 선생님께서 오전에 가족과 나들이를 나가서 아직 돌아오시지 않으셨던 것이다. 길을 잘못 들어 후진으로 어렵사리 차를 빼기를 몇 번. 차를 뺄 때마다 둔덕 밑으로 차가 빠질까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흉물스럽게 스러져 가는 폐가들 사이에 단아한 집 한 채를 발견했다. “춘천 귀농지원센터” 현판이 대문 앞에 걸려있었다. 김태수 선생님 댁이었다.

  반시간 정도 지나자 선생님 가족이 도착했다. 이날 선생님 댁을 찾은 손님은 총 11명. 선생님 아내 홍주원 선생님은 손님이 많이 온 걸 보고 놀라셨다. "이렇게 많이 오실줄은 정말 몰랐어요."라면서 부산스레 느릅나무 차를 준비하시는 홍주원 선생님. 손님이 이렇게 많이 찾아오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이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까지 가족들을 위해 시간을 보낸 것을 그제서야 아셨나보다. 내가 “선생님께서 주말엔 꼭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주말에 찾아뵙게 되어서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가족들하고 시간 보낸다고 손님 안맞을 수 있나요. 조절하며 살아야죠."라시면서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면서 가족을 위하는 남편의 마음을 알고 감동하셨나보다.

  현장실습을 하기 이전에 한 시간 가량 느릅나무 차를 마시면서 담화를 나눴다. 빨리 실습을 해보고 싶어 조바심을 내는 귀농학교 사람들에게 선생님은 "일만 해서 뭐합니까. 궁금한 건 물어보고 나서 시작하죠."라고 말씀하시며 여유를 부리셨다. 귀농학교 사람들은 실제로 ‘농사짓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농사를 짓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한 건 무슨 작물을 심느냐다.

 

  “친환경 농산물로 안정적인 수입을 내려면, 원예작물이나 특용작물처럼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작물이 아니라 항상 먹을 수밖에 없는 그런 농작물로 경쟁력을 가져야 해요.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원예작물이나 특용작물이 가장 큰 타격을 받습니다. 하지만 기본 작물은 그러는 법이 없죠. 가령 우리나라에서 고추를 안 먹는 집은 없잖아요. 저는 김장철만 되면 고추를 살 수 있냐는 전화를 받습니다. 알음알음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고추를 팔다 보면 어느새 다 팔리고 없어요.”

  나는 농장 운영에 관심이 많다. 김태수 선생님께 혼자서 그 많은 작물을 CSA로 감당하는게 힘들지 않으실까? 농가들과 함께 공동으로 CSA를 할  계획은 없으실까? 등등을 여쭈었다. 귀농통문에서도 CSA를 시작하려면 개인보다 여러 농가들이 협동을 하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저의 새낭골 회원들에게 옆집 사람의 생산물을 끼워파는 건 신뢰를 져버리는 일이예요. 우리 회원들은 나를 믿고 회비를 내는 거니까요. 지금 상황에서 제가 농가들과 공동으로 CSA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처음부터 함께 시작하신다면 분이라면 공동으로 CSA를 하는 것을 충분히 고려해 볼 만 하죠. 잘만 되면 훨씬 효율적인 시스템이니까요." 

  점심을 먹으면서 귀농학교 학생분들 사이에서 공동체 이야기가 나왔었다. 학생들은 점심 때 나눈 대화를 떠올렸고, 공동 CSA는 자연스레 공동체 이야기로 흘렀다.

  “귀농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비빌언덕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공동체에서 시작 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런데 좋은게 좋은거지하고 모인 공동체는 결국에 와해되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들이 남들하고 세밀하게 일을 조정하는 것에 서투르기 때문이죠. 농사의 특성을 고려하면 공동체보다는 홀로 설 수 있는 길을 모색한 후에 품앗이나 두레로 농가들끼리 연대 하는 방식이 나아요. 여러 농가가 협동한다는 것은 노동력을 던다는 점에서 편하긴 하지만, 정확한 원칙 없이는 정말 힘든 일이예요. 처음 시작할 때 운영, 경영에서의 모든 변수를 꼼꼼히 따져보고,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원칙을 세워야 할 거예요.”

 

  여기까지 듣고서 나는 선생님께 조심스레 내가 구상하고 있는 사업 아이템을 말씀 드렸다.

  "CSA를 꾀하는 농가들이 모여 농장주들이 사회적 일자리를 신청하고, 그게 잘 정착이 되면 학교 급식이나 로컬푸드 직판장 등으로 판로를 확대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순간 김태수 선생님과 홍주원 선생님의 낯빛에 반가운 기색이 스쳤다. 홍주원 선생님은 "춘천에서 그런 걸 계획하고 있어요."라면서 어느새 리플렛을 하나씩 돌리고 계셨다. 놀랍게도 사업단은 내가 생각했던 일과 상당히 비슷한 것들을 계획하고, 추진하고 있었다. 사업명은 이름하여 춘천친환경농산물유통사업단. 춘천시와 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춘천소비자생활협동조합, 춘천친환경농업인연합회, 춘천노동복지센터, 춘천시민연대, 춘천여성민우회, 한림대학교 산학협력단이 협력하여 회원제직거래, 유치원·학교 등 지역단체급식에 친환경 농산물공급, 이주여성 다문화 식당과 친환경농산물 조리가공, 지역농업/유통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사업을 하고 있단다.

  “가장 중요한 건 소비자와 생산자간의 ‘신뢰’예요. 신뢰를 쌓기 위해서 저 같은 농사꾼들도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고 있죠. 농민들도 자기가 애써 키운 농작물이 알수 없는 곳으로 팔리기 보다, 자기 지역 사람들이 먹어주길 원해요. 로컬푸드죠. 이게 생협하고 어떻게 다르냐하면 우리는 절대로 전국적인 유통망을 추구하지 않아요. 전국적인 유통망을 만들면 바로 옆집에서 농부의 쌀을 먹고 싶어도 그 쌀이 서울을 찍고 와야 먹을 수 있는 구조가 되거든요. 이런 유통구조는 빨리 깨야 되죠.”

  홍주원 선생님은 다시 귀농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귀농하는 것을 많이 알릴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에게 말도 없이 내려왔는데, 농작물이 많아지자 농산물 팔 때가 되니까 사달라고 연락하기가 영 민망했단다.

  “귀농 잘 하려면 사람농사부터 잘 지어야겠어요.”

  

  라고 귀농학교 학생 선생님 한분이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긍정하는 분위기다. 그러자 여기에 홍주원, 김태수 부부는 한 말씀씩을 덧붙이시면서 1시간 가량의 담화를 마무리 하셨다.

 

  “농산물을 파는 것은 공산품을 파는 것 하고는 확실히 달라요. 우리가 자식처럼 애써 기른 농산물이란 것을 회원들도 알아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요. 아마 회원분들도 우리가 보내는 농산물을 받으면 친정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농산물을 받은 것 같은 마음일 거예요. 회원 중에 제약회사 다니시는 분이 한분 계시는데, 그 분은 매년 우리 가족들에게 약을 한보따리씩 챙겨주시곤 해요. 그런걸 보면 느낄 수가 있죠.”

 “귀농을 시작하려면 머리보다는 몸이 적응하는게 중요해요. 농작물은 생명이잖아요. 생명을 키우는데 뒤따르는 육체적 과정이라는게 만만치 않아요. 농사가 잘 받는 몸이 있는가 하면 농사를 지어 병이 드는 몸도 있잖아요. 저는 농사를 해서 몸이 더욱 좋아졌으니 농사가 체질적으로 맞는거죠. 그럼 이제 몸으로 적응하러 나가 볼까요? ^^”

  그날 작업은 하우스 비닐 벗기기와 계사 울타리 손질이었다. 혼자서는 8시간이 걸려도 못할 일이지만 8명이서 1시간도 안 걸리는 일들이었다. 하우스를 치는 이유는 식물이 비를 맞으면 꼼짝없이 병원균에 감염이 되기 때문이란다. 빗물에는 온갖 병원균이 다 들어있다. 요즘엔 개인이 아무리 친환경을 하고 싶어도 인간이라는 종(種)이 뿌려놓은 업(業) 때문에 하늘이 도와주지 않나보다. 계사는 이제 귀농 1년차의 새내기 농부가 사회적 일자리를 받아 선생님 하우스 한 동을 빌려서 올해부터 시작한단다. 생협과 학교 급식으로 70%의 유통망을 확보한 상태라고 한다.

  

  나는 이동할 때마다 선생님 트럭 옆자리를 고집스럽게 지키며 이것저것 여쭸다. 선생님은 전혀 귀찮은 내색이 없으셨다. 오히려 내가 묻는 것 보다 더 많은 말씀을 해 주시기도 하셨다. 춘천 사업단은 작년에 15명의 사회적 일자리를 신청하여 20명의 실무자가 사업을 운영하고 있고, 인건비 부족분은 생협 등 회원 단체들의 회비로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사회적기업 인증 신청을 할 것이라 하셨다.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으면 수익금의 30%를 사회에 환원해야 하고 취약계층을 고용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런 것은 사회적 기업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친환경유통사업단이 다문화 가정이나 장애인들의 추업을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태수 선생님은 가족과 함께 여유롭고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꿈꾸시면서 흙투성이 농부로 다부지게 홀로서기에 성공하셨다. 뭇 사람들이라면 거기에 만족하면서 조용히 지낼 만도 한데 선생님은 선생님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힘 닿는 대로 손을 뻗치시고 계셨다.

 

  “춘천에 다시 오실거죠? 나중에 오면 더 많은 이야기 나누어요.”

  “그럼요.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선생님의 말씀만큼 감미로운 음악이 어디 있으랴, 선생님의 사시는 모습처럼 따뜻한 풍광이 어디 있으랴. ㅋㅋㅋ 돌아오는 길에 또 한 번 가평, 남이섬을 지나쳤지만 이번엔 아쉬움이 머물 자리조차 없었다. 다시 한 번 55번 고속도로를 타게 되더라도 내 행선지는 가평과 남이섬이 아닌 새낭골이 될 것 같다. 만족스런 봄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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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가보련다.

 

“도행지이성 道行之而成” 길은 그 곳을 다녀야 생기게 마련이니..  

 

Robert Frost "The road not taken" /  壯者 內篇 齊物論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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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광고] 동업자를 찾습니다

나. 그리고 너.

Creative Challenge & Change

“창조적인(Creative)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도전(Challenge)하여 기존의 틀에 변화(Change)를 이끌어낸다.” 이렇게 연결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경험할 때마다, 제 심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던 것 같습니다. 특정한 소재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발 디딛고 있는 곳에 무한한 소재가 펼쳐져 있습니다. 아무리 창조적이고 기발한 생각도 저의 현실과 밀접한 연관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현실을 예리하고, 진지하게 바라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기회가 오지요.

 

Careful Communication & Connection

“신중하고 사려 깊게(Careful) 소통(Communication)하고, 사람들을 엮어낼 수 있는(Connection) 사람”과의 만남 역시 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저부터 그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분위기와 성과는 그 어떤 명분이나 대의보다 조직을 이루는 사람들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봅니다. Careful Communication & Connection 없는 Creative Challenge & Change는 시체나 다름없죠.

 

“Two set of the triple C” 정신. 제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경험한 여러 활동을 통해서 깨달은 것입니다. 이 ‘정신’이야말로 제 라이프워크입니다. 저는 이 밑그림에 다양한 색깔을 일생에 걸쳐 칠해나갈 것입니다. 요즘은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기업가들의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뜁니다. 사회적 기업가들은 나의 이상을 사회에서 실현하고 있는 인생의 선배들로써, 저에게 무한한 영감을 줍니다. 기회만 된다면, 동지만 만난다면 사회적기업 창업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도전과제

(미완.. OO과 함께 완성해야 함, 관심있으신 분은 주저말고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lovedfolks@naver.com)

◎ 사업명 : ‘로컬푸드 급식과 생태농장 체험교육’

◎ 사업목적 : 도농 교류를 통한 도시와 농촌의 상생, 도시민들의 귀농, 귀촌의 활성화

◎ 사업대상 : 원주나 춘천과 같은 도농복합도시에 생명농업에 관심 있는 귀농인들과 도시지역의 초등학교 저학년 학부모와 학생들.

◎ 창업전략

- 생태농장을 지사로 두는 일종의 프랜차이즈 회사. CSA로 도시회원들과 농민들을 조직하고 생산이 안정화 되면 학교 급식소와, 직거래 장터로 판로를 확대한다. 보통 1평에 년 1만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 한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노동부에 사회적 일자리를 신청하여 1000평 이상의 땅을 가진 농부들을 고용한다. 초기 3년 동안 농부들에게 노동부가 지원하는 일정한 임금을 지급하는 대신, 농산물 판매수익을 회사가 가져간다. 판매 수익이 임금을 상회했을 때에는 농민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할 수도 있다. 회사는 3년 동안의 판매수익을 자본금으로 학교 급식사업과, 직거래 장터를 열어 지원금이 중단된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한다. 농가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부수입을 올린다. 땅를 매입할 수 있을 정도로 회사의 수익이 생기면, 땅을 사서 땅이 없지만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들을 고용할 수도 있다.

◎ 창업계획

- 위와 같은 방법으로 CSA가 가능한 지역 조사 e.g. 원주, 춘천, 칠곡 등 도농복합도시

- 만나야 할 사람 : 귀농운동본부 실무자, 두레생협 상무이사 김기섭 선생님(일본의 식육교육에 대해 자문을 구하기 위함), 원주 로컬푸드 사업단, (주)생협친환경급식 사업, I Love 안성마춤학교 사업단, 새낭골 김태수님 등 CSA를 진행하고 있는 농가의 농장주들, 도농복합도시 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들

- 시나리오 : 우선 관내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저학년 학부모들과, 농업인들을 CSA 회원으로 조직한다. 농가의 안정적인 소득을 위해서 작물 선정, 작부체계 관리, 농업 교육을 하고, 직거래 시스템을 마련한다. 작물의 선정과 관리는 3년 이내에 CSA 농가가 생산하는 생산물로 학교 급식을 식자재의 대부분 조달할 수 있도록 조절한다. 저학년 학부모들을 조직하는 이유는 농사가 안정화 되려면 최소 3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CSA 농가들이 급식에 식자재를 대 줄 정도로 농업이 안정화되기 위해서는 친환경 급식을 지원하는 학부모들이 급식을 시작하기 전에 최소 3년간 농가를 지원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4학년 이상의 학생들은 급식 혜택을 못 받게 되므로 3학년 이하의 저학년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지원체계를 만든다. 소비자들은 후원이 아닌 1:1 등가교환으로 거래한다. 학부모들은 지원한 액수만큼 농가에서 생산하는 생산물을 받아볼 수 있다. 학교에서는 특별활동 프로그램이나, 놀토를 이용하여 학부모와 학생, CSA 농가가 함께 참여하는 농가체험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프로그램의 운영을 통하여 로컬푸드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친환경급식을 매개로 한 도농 교류를 꾀한다. 처음에는 한 지역을 집중 공략하고, 성공하면 다른 지역으로 확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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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부르는 사랑

 

이렇게 울부짖으면,

정이 떨어질만도 한데...

사랑한단다... 

 

아름다운 사람.

그 사람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이제껏 본적이 없다.

 

이 말을 전하고 싶은데-

그사람 앞에만 서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나면 그제사 

조그만 목소리로 

'나도...'

라고 말하지만

그 조차도 부끄러워 뜸을 들인다.

 

나도....

그 사람의 눈물을 가려줄,

그 사람의 땀을 식혀줄

그런 그늘을 만들고 싶다.

 

나에게 사랑이 무언지를 느끼게 해 준 그를,

한없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_ 최영미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창자를 뒤집어 보여줘야 하나, 나도 너처럼 썩었다고

 

정당히 시커멓고 적당히 순결하다고

 

버티어온 세월의 굽이만큼 마디마디 꼬여 있다고

 

그러나 심장 한 귀퉁이는 제법 시퍼렇게 뛰고 있다고

 

동맥에서 흐르는 피만큼은 세상 모르게 깨끗하다고

 

은근히 힘을 줘서 이야기해야 하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나도 충분히 부끄러워 할 줄 안다고

 

그때마다 믿어달라고, 네 손을 가슴에 얹어줘야 하나

 

내게 일어나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두 팔과 두 다리는 악마처럼 튼튼하다고

 

그처럼 여러번 곱씹은 치욕과, 치욕 뒤의 입가심 같은 위로와

 

자위끝의 허망한 한 모금 니코틴의 깊은 맛을

 

어떻게 너에게 말해야 하나

 

양치질할 때 마다 곰삭은 가래를 뱉어낸다고

 

상처가 치통처럼, 코딱지처럼 몸에 붙어 있다고

 

아예 벗어붙이고 보여줘야 하나

 

아아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아직도 새로 시작할 힘이 있는데

 

성한 두 팔로 가끔은 널 안을 수 있는데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_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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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의 눈물

망가진 수도꼭지처럼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눈물이 나오는 요즘이다.

 

눈물이 많은 사람은 과거에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은 적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은 걸까...?"

 

울고 싶은데 울음이 도저히 안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나란 인간은 상처따위는 받지 않는 냉혈한인가 싶었다.

내 스스로를 냉혈한이라고 여기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이 참담함을 극복하고자, 나는 내 짧은 상상으로는 잘 가늠할 수 없는 다른 이들의 상처를 이해해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눈물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에 하는 것을 경청을 하거나..

굉장히 슬픈 영화나 소설을 보거나...

 

그러나 그것은 내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에 별 도움이 안됐다.

 

허나 지금..

내가 예전 그 때에 그렇게 이해하려고 애쓰던 그런 사람이 되어있다.

 

차이가 뭘까.....

 

그때는... 누군가를 사무치도록 그리워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져본 적이 없었다.

난 자신감 넘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 우물 안 개구리는 그리움이 뭔지 몰랐고, 자신의 조그만 세계에서 좌절감이 뭔지 몰랐다.

 

세상 밖으로 나온 개구리는 이제 슬픔은 배울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슬픔은 맨살로, 직접 맞딱뜨리며 겪어봐야 비로소 그게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바깥 바람은 차고, 날카롭다.

살이 튼다.

 

튼 살의 상처가 아물면서 살가죽이 두꺼워지면

슬픔이라는 감정에 익숙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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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로운 결혼

서른 두살 먹도록 연애한번 안해본 사촌이 오늘 덜컥 결혼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아직 연애를 시작한지는 세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양가 부모님 상견례까지 하고, 가족 여행에 애인을 델꼬 갔댄다. 애인의 나이는 스물 네살. 후덜덜...

 

사촌은 독일 유학중이다. 유학 중에 만난 사람과 처음에는 동병상련의 정으로 끈끈해 졌다가, 연애까지 하게 된 모양이다. 혈혈단신으로 타지에서 만난 선남선녀가 정에 이끌리는 것이야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어째 벌써부터 결혼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 내 나이 스물 다섯, 한창 연애 중인 나도 결혼은 남 얘긴 줄만 알았는데, 스물 네살짜리 애인하고 세달 사귀고 결혼한다고? 어안이 벙벙하다. 게다가 사촌은 첫 연애라고...

 

서른 두해를 사는 동안 사촌에게 연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기회가 왔을 때마다 번번히 지금은 연애를 할 시기가 아니니라며 외면하고, 또 외면해온 것이다. 그렇게 서른 두해를 보내고 나니 '더 늦기전에 한번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더랜다. 그래서 시작한 연애. 그 연애가, 이렇게나 빨리 결혼으로 이어진 것은 사촌의 1년 남은 유학 기간이 끝나도, 유학생과 결혼을 하면 비자 없이도 독일에 체류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의 애인 입장에서 보면-그 애인은 연애 경험도 꽤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유학 중 옆구리 시리던 차에 32년 동안 연애 한번 못한 예의바르고, 다정다감하고, 능력도 좋은 남자가 짠하고 나타났으니 퐁당 빠져버릴 수밖에. 연애 경험이 좀 있다 하니까, 요즘 이런 사람 흔치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을테지. 

 

그런데 이렇게 속전속결로 그 커플의 관계가 진전되는 와중에,

그 사촌의 친동생은 사귄지 10년째 되는 애인과 결혼을 못해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사돈이 될 분들끼리 마음에 안든대나 어쨌대나...  

 

결국 "순조롭게 결혼"을 할 만한 상대는...

서로가 좋고 못살아서 정해지는 게 아니라, 기막힌 타이밍과 양가 부모님의 호응도에 따라 달린 일이라는 너무도 통속적이어서 거부하고 싶은 그 말이 결국은 현실이란 것을 목도한 하루였다.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그 현실을 거부할 것이라고 '낭만적'으로 말할 자격이 없다. 부모님 탓, 시기 탓 하며 결혼을 전혀 내 일이라 생각지 않는 것도 그 현실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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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계약서 상으로는 이장의 지역경제디자인센터에서 일하는 것이 마무리 됐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생으로 이리 저리 불려다니면서 2달이 정신없이 지나갔던 것 같다.

알바 기간 중에 생태농장학교, 칠곡군 농민교육, 칠곡 한빛타운 주민 교육.. 이렇게 세가지 교육이 돌아갔고, 팀장의 '선처'로 세 교육을 다 따라다닐 수 있었다. 

 

1_  생태농장학교는 한겨레와 이장의 협력기관인 '지역경제디자인센터'에서 귀농 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생태농장의 개념부터 디자인하는 것까지를 가르치는 교육이었다.

2_  칠곡군 농민교육은 '참외축제'를 준비하는 칠곡의 농민들에게 '지역관광'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교육이었다. 로컬푸드와 지역관광, 화합하는 마을만들기 교육 등이 진행되었다.

3_  칠곡 한빛타운 주민 교육은 부녀회, 문고회 등 주민조직들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들을 가르쳤다. DISC라는 성격유형검사부터 시작하여, 순조로운 회의진행 요령, 로컬푸드, 마을만들기 등을 교육했다.

 

이장의 교육을 통해서는 내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 귀농, 귀촌을 준비하는 이들, 지역 농민들, 지역 사람들, 그리고 대표 임경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칠곡군 교육문화복지회관의 지선영 선생님과 같이 주민들을 조직화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뛰는 공무원과, 맡은 분야의 프로패셔널리스트를 향해 정진하는 주현희 팀장과의 만남은 뜻밖의 영감을 주는 만남이었다.

 

사실 교육장에서 내가 하는 일 자체만을 놓고 볼 때는 정말 시간을 죽이는 막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강의에 대한 흥미와 사람 만나는 재미가 아니었으면 버티지 못할 일이었다.

돈도 못주고, 일도 못 주지만, 배워갈 수 있는 건 최대한 배워가라는 배려였다고 좋게 생각하자...

어쨌든 배우긴 많이 배웠지...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새로운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었으니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일선의 사람들에게 생생한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

 

그러나 진정한 내 안의 변화는

나의 기대들이 하나씩 하나씩 무너지면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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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교육이 진행되는 동시에 나는

지역자립에 대한 10개의 기사를 준비해야 했고,

한겨레21 해외 사회혁신기업 취재단과, 텝스시험을 준비했다.

 이것들을 준비하면서 난 이 모든 걸 완벽하고 성실하게 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10개의 기사는 마감을 지키지 못했고,

기사를 쓰면서 글쓰기의 헛점도 너무 많이 드러났다.  

한겨레21 취재단은 기사 마감을 포기해가면서 도전했었지만 실패했다.

텝스 점수도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달동안 열심히 일하면 이장에 입사를 할 수 있을거고 기대했지만 그 역시도 좌절됐다.

그리고 이제 초기 멤버들은 다 떠나고...

고생만사 클럽에는 새글이 올라오지 않는다.

 

난 인정받지 못했고, 기대는 짓밟혔다.

사회적으로 볼 때 나의 몫은 아무것도 없다는 박탈감,

내가 갖고 있는 것 마저도 놓쳐버리는 듯한 상실감으로

아무도 만나기 싫었다.

 

실패하고, 때로는 좌절도 하고,

배신도 당하고, 무관심에 쩔어서 외로운, 그런 삶이

평범한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도망쳐 다녔던 한달이었던 것 같다.

 

어제 한 친구가 밤늦게 전화했다.

술먹고 막차를 타고 가는 중이란다.

다짜고짜 '넌 내가 왜 술먹고 막차를 타고 가는지 아니?'라고 따졌다.

무심하고 힘없는 목소리로 나는 '몰라...'라고 대답했다.

그 친구는 '넌 날 몰라도 너무 몰라'라면서 말을 계속 이어갔다.

잠깐의 정적 너머로 울리는 막차의 안내음이 유난히 크고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 친구는.. 알아듣기 힘든 말들, 알아들어도 못 알아들은 척 하고 싶은 말들로 촘촘한 거미줄을 쳤고

난 그 거미줄에 서서히 휘감겨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난 미안하단 말 한마디면 풀어질 그 친구에게 아집과, 안하무인으로

그 말 한마디 건낼 줄 모르고 죽어가는 벌레 한마리였다 ...

 

너는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크다고..

너때문에 괴로워 죽겠다고...

너는 사람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너는 사람들이 네 기대에 못미친다고, 너한테 악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너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왜 넌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기회를 안주냐고..

미안하단 말을 해도 받아줄 주 모르냐고...

하루하루 괴롭고 미안해서 자살하고 싶다고...

내 삶이 어떤지 알기는 아냐고, 관심은 있냐고...

 

그 몹쓸 기대라는 녀석이 내 삶을 파먹는 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파먹고 있었다.

 

그물로 물고기를 잡듯 사람들을 건져 올리던 시절을 떠올린다.

나는 그때 사람들이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낮지만 강한 목소리, 사람들이 원하는 것, 배려, 위로....

 

헌데 요즘의 나는..

 

기대, 희망, 자신감과 독선과 좌절 사이에서 서성이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후회고, 변명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잊혀진 시절의 기억을 다시 꺼내 본다.

그리고 과거와 조우하는 현재...

 

기대, 희망, 의지, 자신감이 중요치 않은게 아니다, 다만 이는 낮은 목소리와, 배려, 위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려는 노력의 그림자로써만 필요할 뿐이다.

 

난 요 몇달 동안 그림자뿐인 나만의 세상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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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회사 앞 정류장에서 만나서,

우리 집 동네까지 바래다 주고,

집에 바로 들어가기가 아쉬워,

공원에서 산책하고,

빵집에서 빵과 우유를 사놓고 허기진 배를 달래고,

버스정류장에서 체온을 나누다가 버스를 두어대 놓치고,

헤어지기 전에 작별키스 하고,

차창 밖으로 얼굴을 볼 수 없을 때 까지 손을 흔들고...

 

어쩌다 90년대 청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연애장면 하나 찍었다.

딱 1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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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뭘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웬만큼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젊은게 좋은거지- 라면서 뭐라도 닥치는대로 하라 한다.

 

그럼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고 있는 마당에

닥치는대로 하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냐는 대꾸밖에

떠오르는 말이 없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자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멘토가 필요하다.

 

누가 나의 멘토가 되어 줄 수 있을지를 모색해 보면,

아주 적합한 사람이 몇 나오기는 한다.

그들이 나의 멘토를 해 줄만큼 여유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 빼면 아주 적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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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하나 잡아볼까 하는 심정으로

'사회적혁신기업가를 발굴한다'는 거창한 모토를 내 걸고,

매달 모임을 갖고 있는 'Sopoong'이란 곳을 가봤다.

아직은 한국판 짝퉁 아쇼카..

 

압구정동, 세련된 사무실, 와인, 샌드위치, 1500원쯤 할 것 같은 김밥..

무슨 사교 파티장 같은 분위기는 뭐람-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무슨 할 이야기들이 그렇게 많으신지...

정말 이런 미팅같은 분위기일 줄 상상은 했지만 정말 내 페이스에 안맞는 곳이었다...

 

쭈뼛거리는 나를 소풍 직원들이나 몇명 관심을 가져줄 뿐이었다.

그들은 그게 직업이니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죽이되든 밥이되든,

별다른 전략도 없이 판만 깔아 준다는 식이다.

이런 모임은 없는 것보다 낫겠지만 어떤 단체가 이것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아직 소풍이 무슨 일을 하는 단체인지는 잘 파악이 안됐지만,

이런식의 사업이 중심인 단체라면 여기에 희망은 없다..

 

여튼 도움을 좀 받아볼까 싶은 사람들-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나같은 사람들한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너나 할것없이 말하기 바쁜 모습들.. 

명함을 건네면서 소개에 여념없는 그들 틈바구니 속을

나는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어쩌다가 한 구석으로 몰렸다.

그리고 자기네들이 반달모임인지 뭔지를 하고 싶다 이야기 하고,

나에게 그걸 같이 하잔다.

 

예비사회'혁신'기업가들(여기선 혁신이란 말에 꼭 따옴표를 찍어 줘야 한단다)을 위한

모임을 따로 가져보자 하는데...

나처럼 서성이는 몇몇 사람들이 눈에 걸리긴 걸렸나보다.. 

그러나 아무런 전략도, 계획도 없이 일단 모여보자는데...

별로 기대되는 것도 없이

어중이 떠중이들만 모이면 어쩔런지..

걱정이 앞설 뿐이다.

 

사람 쫓아다니면서 설레발 치느라 실속 못차리는 일은 좀 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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