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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나는

벌레를 잡지 못한다. '잡지'?

벌레에 손대지 못한다.

벌레를 맨손으로 만지지 못한다.

 

동생과 살기 위해 오래된 투룸으로 옮기면서,

이전에는 혼자 냉랭하게 깔끔한 신축 원룸에서는 단 한 번 마주친 커다란 바퀴벌레와 비슷한 크기의 벌레들을

이 곳에서는 종종 만나야만 했다.

 

동생이 있을 땐 괜찮지만,

동생이 없을 때 벌레와 마주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걔도 나 땜에 놀랐겠지만, 나도 걔땜에 놀란다. 서로를 확인하고 서로 동작이 경직되었음을 느낀다.

 

마주쳤던 걔가, 내가 당황한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면,

그 이후가 더욱 공포스러워서, 나는 점차 강해지게 되었다.

 

 



조용히 고무장갑을 끼고 신발을 신고 나서 벌레를 향해

에프킬라 류의 스프레이를 열심히 뿜어대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생이 없는 기간이 길어지면,

집에 벌레의 시체들은 하나 둘 늘어났다.

벌레를 건드릴 수 없는 나는, 스프레이를 뿜어댄 이후를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안하긴 하지만, 내가 살아야 되니까 어쩔 수 없어..'

라고 생각했었다.

 

오늘은..

통로도 아니고 바로 내 방바닥의 주요한 부분에서 벌레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엄지손가락만한 벌레였다. 더듬이 부분에는 먼지를 이고 있어서 문득 미안뜨끔했다.

 

당황한 나는,

근처에 있던 신문지로 그 벌레를 덮고, 눌렀다. 맨손으로!

잠깐 누르다 신문지를 들춰봤는데 벌레가 생생한 모습으로 기어 나오려 해서

나도 모르게 신문지를 다시 덮고 꾸욱꾸욱 눌러댔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신문지를 들췄다가

파편을 흘깃 보고, 놀라서 다시 덮어버렸다.

 

죽였다, 는 생각이 드니까 무서워졌다.

 

내 두 손을 가만히 쳐다봤다. 무서웠다.  내 손이, 내가.

 

사라지면 내가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물론 불편함 이상으로 마음이 긴장되긴 하지만..)

징그럽다고 해서.. 무섭다고 해서..

어쨌든 내가 그렇게 죽여도 되는 건지.

문득 무서워졌다.

 

찜찜한 마음으로 신문지 덮인 그 상태 그대로 두고,

집을 나서는데

 

"벌레 보듯 한다"는 일상적인 표현이 떠올라서 더 괴로웠다.

 

 

내가 좀 더 힘들더라도

살아서 내보낼 수 있는 방법이 어떻게.. 없을까 ㅠ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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