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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비정규식량배분자

최근 몇년간 삶은 내게 실험같은 것이었다.
선배들의 삶을 의식적으로 관찰하면서 내 길을 더듬었고
간단없이 내면에서 올라오는 새로운 나와 맞딱뜨렸고
내 삶을 추진시키는 힘을 점검했다.
타인들과 관계맺는 방식도 이렇게 저렇게 시험해 보았다.
그러면서 인간의 속성과 세상의 구조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을 때
한 동안 냉소적인 감정에 지배당하기도 했다.
그런 마음에는 '왜 일부 사람들이 범죄자가 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왜 대다수의 사람들이 범죄자가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 연구의 과제라고 한 범죄학자의 말이나,
우리가 해명해야 할 것은 인간이 왜 늘 악행을 저지르는가가 아니라
왜 간혹 미덕을 실천하는가이다라고 한 동물학자의 말이 유독 시선을 끌었다....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선과 정의에 대한 환상이 유포되고 있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김형경 <사람풍경> 중
 
 
비정규 식량배분자를 보면서 얼마전 읽은 위의 구절이 머리에 떠나질 않았다.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서 언제 식량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늘 죽음의 공포와 맞딱뜨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
인간의 본능을 있는 그대로 그 비참함과 치졸함, 그리고 광기까지 잘 보여주고 있는 연극이었다.
광기가 버무려진 극한 상황이 해소되고 다시 이성적인 호모싸피엔스싸피엔스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연출의도가 너무 착하게 느껴져서 좀 힘이 빠지기는 했지만.
 
이야기 진행은 누구 말마따나 리얼리티 쇼 그 자체다. 아마 언젠가 전쟁이 일어나
지하 벙커 같은 데서 몇 명이 어울려 지낸다면 그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모두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어디 가나 꼭 있는 해병대 출신, 기독교신자, 그리고 이혼한 사람까지...거기도 있다.
무대 정교하고 효과음 현실감있고 배우연기 말할 필요도 없이 좋고 구성도 탄탄하게 느껴진 극이었다.
 
참, 성대 쪽으로 가게 된다면 종로 8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 가서 서울 성곽을 함 산책해보시길
권유드린다. 서울에서 살아서 기분좋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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