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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가기

20여 년 전 내가 받았던 최초의 성교육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명동성당 안에 있던 계성여고에 다녔는데 2학년 땐가

성교육 한다고 강당에 애덜 모아놓고

수녀님이 이상한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낙태를 시도하는 초음파 사진 같은 거였는데

뱃 속 아기가 죽기 싫다고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모습...

휴...수녀가 하는 성교육이라니...게다 28청춘들한테 들이대는 낙태비디오라니...

 

하여간 그래서 나는 임신은 여자 혼자 하는 짓이요. 낙태는 죽을 짓이요. 여자의 몸은 남편 빼고는 건드려서도 안 되는 순백한 것임을 주입받고 자란 불쌍한 청소년이었다. 이런 생각을 깨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음은 물론 나의 넘치는 실험정신 땜에 맘에 상처를 입기도 했었다.


그런데 작년 건강검진 하복부 초음파 결과 혹같은 게 자궁에 있다고 추척검사를 요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떄는  아..나한테두 자궁이란 게 있구나 신선하다는 생각 잠깐 하구 잊어버렸다.

 

그러다  출국하고 외국에 오래 있을 생각을 하니 어캐 된건지 알아야 겠다 싶어서 갔다. 산부인과. 가기 전날은 무지 떨려서 잠도 안 오두만 직접 가보니 담담했다. 뭐 다들 괴물도 아니고 거기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의사한테 왈왈왈 설명하고 나니 초음파로 본다..내 속을...근데 의사가 자궁도 건강하고 난소도 깨끗해서 임신하는 데 아무문제 없다고. 혹은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는데 임신과는 전혀 관련 없는 위치에 있어 관찰만 하면 된다고 했다.

 

ㅋㅋ 자꾸 웃음이 나온다. 아. 나두 임신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기분이 이상했다. 불혹의 나이에 이런 얘기를 듣고 혼자 웃고 있는 꼴이라니...

 

존재조차 잊고 살았는데 여성성을 포기하고 술담배로 그리 괴롭혔는데 건강하게 버텨주었다니..참 고맙다. 아...써먹을 일이 있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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