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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3/24
    산부인과 가기(1)
    자웅동체
  2. 2009/03/23
    그래서 어떻게 나 자신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자웅동체
  3. 2009/03/23
    선배한테 이런 이메일을 받고 울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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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3/13
    똥꼬수술에 대하여(3)
    자웅동체
  5. 2009/03/04
    동지의 소중함
    자웅동체

산부인과 가기

20여 년 전 내가 받았던 최초의 성교육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명동성당 안에 있던 계성여고에 다녔는데 2학년 땐가

성교육 한다고 강당에 애덜 모아놓고

수녀님이 이상한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낙태를 시도하는 초음파 사진 같은 거였는데

뱃 속 아기가 죽기 싫다고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모습...

휴...수녀가 하는 성교육이라니...게다 28청춘들한테 들이대는 낙태비디오라니...

 

하여간 그래서 나는 임신은 여자 혼자 하는 짓이요. 낙태는 죽을 짓이요. 여자의 몸은 남편 빼고는 건드려서도 안 되는 순백한 것임을 주입받고 자란 불쌍한 청소년이었다. 이런 생각을 깨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음은 물론 나의 넘치는 실험정신 땜에 맘에 상처를 입기도 했었다.


그런데 작년 건강검진 하복부 초음파 결과 혹같은 게 자궁에 있다고 추척검사를 요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떄는  아..나한테두 자궁이란 게 있구나 신선하다는 생각 잠깐 하구 잊어버렸다.

 

그러다  출국하고 외국에 오래 있을 생각을 하니 어캐 된건지 알아야 겠다 싶어서 갔다. 산부인과. 가기 전날은 무지 떨려서 잠도 안 오두만 직접 가보니 담담했다. 뭐 다들 괴물도 아니고 거기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의사한테 왈왈왈 설명하고 나니 초음파로 본다..내 속을...근데 의사가 자궁도 건강하고 난소도 깨끗해서 임신하는 데 아무문제 없다고. 혹은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는데 임신과는 전혀 관련 없는 위치에 있어 관찰만 하면 된다고 했다.

 

ㅋㅋ 자꾸 웃음이 나온다. 아. 나두 임신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기분이 이상했다. 불혹의 나이에 이런 얘기를 듣고 혼자 웃고 있는 꼴이라니...

 

존재조차 잊고 살았는데 여성성을 포기하고 술담배로 그리 괴롭혔는데 건강하게 버텨주었다니..참 고맙다. 아...써먹을 일이 있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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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나 자신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여러분이 인생에서 겪는 모든 문제는 한가지 요인으로 귀결됩니다.

 

여러분의 자존감(self-esteem)이 그것이죠.

 

그것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면, 어떠한 일이라도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떠한 역경도 여러분이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래 살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며, 부자가 될 거라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물론 여러분이 이러한 것을 원하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삶에서 성공할 것입니다. 죽음이 목전에 왔을 때, 여러분의 삶을 되돌아보며 평화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러나 여러분의 자존감에 결함이 있다면,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낮은 자존감은 여러분이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하게 하는데, 여러분이 그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낮은 자존감은 여러분이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하는데, 여러분이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낮은 자존감은 진정한 풍요로움의 향유를 막는데, 여러분이 스스로 그러한 좋은 것들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지 않기 때문입니다. 낮은 자존감은 여러분의 행복을 억누르는데, 자신감이 없는 일들을 가지고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존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죠.

 

자존감(self-esteem)의 정의

 

자존감이란 무엇일까요? 자존감을 충분히 갖지 못해왔다면 잘 모를 것입니다.

실제로, 거기에는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자존감은 다음과 같이 3단계로 구성되는 믿음입니다.

나는 존재 가치가 있다. 이것이 밑바닥의 핵심 토대입니다.

나는 유능하다. 다음 단계로, 삶과 예상치 못한 사건들을 다루는 여러분의 일반적인 능력에 대한 믿음입니다.

나는 풍요로움을 누릴 자격이 있다. 가장 높은 수준의 자존감은 여러분의 능력을 넘어서 주변 세상이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줄 거라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훌륭한 배우자를 둘 자격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완벽한 직장을 가질만합니다. 여러분은 큰 집을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당신이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자신의 힘으로만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들입니다. 주변 세상으로부터 도움과 행운이 필요하지요 — 그리고 여러분 또한 여러분이 필요한 때에 그러한 도움의 손길이 올 것이라고 신뢰해야 합니다.

“ 믿음”이란 단어 덕분에 자존감이 의식적인 사고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보다 더 깊게 내려갑니다. 자존감은 우리가 태어날 때 기본으로 주어지는, 타고난 존재 상태입니다. 맨 처음, 우리는 “충만한” 자존감을 가지고 삶을 시작합니다.

자 궁 속의 아기를 생각해보세요. 위의 세 가지 조건 모두를 만족시키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엄마의 몸은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만족시키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유일한 일은 자라는 것이죠 — 단순히 세포 수의 증가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기가 다양한 물리적 능력을 시험하고 실험하면서, 자궁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 겁니다. 그들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며, 엄마로부터 신호를 받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자신이 존재 가치가 있음을 압니다 —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만으로 말입니다. 그들의 세상 전체라 할 수 있는 자궁 내의 어떤 것도 그에 반하는 신호를 보내지 않습니다. 모든 시스템이 그들의 존재를 긍정하고 유지하도록 짜여져 동작하는 것이죠. 그들의 세포는 영양을 공급받고 생명 에너지로 진동합니다. 우리는 충만한 자존감으로 태어납니다.

자존감은 웰빙의 느낌이며, 그러한 느낌에 대한 신뢰입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의식적 생각으로부터 우리 몸이 계속 작동하게끔 하는 영혼의 근간인 깊은 무의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의 의식으로 침투합니다.

우연히도, 위키피디아에 자존감의 정의와 역사에 대한 흥미로운 논의가 있습니다.

 

유아기: 자존감이 길러지거나 위협받을 수 있는 시기

그 래서 우리는, 존재하고, 삶을 다루고, 발전하는 우리의 능력에 대한 신뢰인, 자존감이 충만한 상태로 삶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몸과 마음에 대한 의식적인 제어 능력 없이 최소한 한 명 이상의 사람에게 완전히 의존해야 하는 상태로 시작합니다. 마음과 몸 모두, 외부 세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급속히 자라나지만, 자족할 수 있는 상황이 되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자연스레, 이 단계에서 우리는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자비에 맡겨 있는 것이죠 — 이 시점에서 세상은 대개 부모나 기타 아이를 돌보는 주요 인물들로 이루어집니다.

우 리의 세상은 자궁으로 시작합니다. 거기서는 당신의 필요에 부응하고 당신을 보호하도록 모든 시스템이 맞춰져 동작하지만, 당신의 엄마가 겪는 혹은 끌어들이는 악영향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 잘 아는 것처럼, 임신 중에 흡연하는 것이 아기의 웰빙에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아기의 육체적 성장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정신의 근간에도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 완전한 양육 체계에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독소가 생긴 것이죠. 그것이 체계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요?

제가 경험한 한 가지 예는 저의 작은동생입니다. 저는 두 명의 동생이 있는데요, 작은동생이 뱃속에 있을 때, 다른 동생이 엄마의 눈앞에서 차 사고를 겪었습니다. 다행히 동생은 무사했지만, 작은동생이 태어났을 때, 그 녀석은 자동차에 대한 예민한 두려움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 그는 차를 보거나 차 소리를 듣기만 해도 도망쳤습니다. 종국에 자라면서 그는 두려움을 극복했지만, 자동차가 위험한 물건이라는 생각은 그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단계 1과 2의 자존감을 위협할만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세 번째 단계는 분명히 영향을 받았죠.

자존감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이러한 위험들에 대한 취약성은 아기나 태어나 넓은 세상에 던져지면서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보호막과 자동 영양공급이 사라졌습니다. 엄마와 느끼던 일체감, 엄마의 지속적인 심장박동 소리도 사라졌죠. 모든 종류의 외부 요인들이 아이의 정신에 더 직접적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아기는 아직 어떠한 자극을 그의 능력 혹은 세상/신에 대한 믿음에 영향을 주는 메시지로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지 못했습니다. 모든 메시지는 근본적인, 무의식의 근저에 바로 영향을 끼칩니다: 내가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당 신이 100퍼센트의 자존감으로 태어났다고 칩시다. 태어난 후에, 삶은 그 자존감을 좀먹기 시작하는데, 세상에는 실제로 당신이 알아야 하는 위험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순진한, 세상은 좋고 안전한 곳이라는 믿음을 온전히 지켜나갈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필요가 충족되지 못할 시에 그 영향은 클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천성적으로 높은 회복력을 지니고 있지만, 지속적인 무시(아기가 울 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거나)나 극적인 사건(부모가 죽거나 부모와 떨어지게 되는)은 그들의 자존감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그 리고 아이에게는 부모가 기본적으로 세상 전부입니다. 그들의 전 존재가 부모에 의지합니다. 처음에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좀 더 물리적이고 원초적인 입력에 반응합니다 — 포옹 대 분리, 결속 대 방치 같은 것들에 말이죠. 방치를 경험한 아이는 그가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느낍니다.

가령, 저의 아버지는 다섯 아이 중 막내였는데, 가장 가까운 형제보다도 9살이나 어렸습니다. 그는 자기의 엄마가 마흔 살이었을 때 태어났는데, 그 당시에는 엄마가 되기에는 너무 늙은 나이였습니다. 일본은 2차 세계 대전의 패배를 맛보는 중이었고, 저의 할아버지가 전쟁 중에 돌아가시지는 않았지만, 매우 불안한 시기임에는 틀림없었죠. 저의 할머니가 나이가 더 많았고 손이 모자랐으므로, 제 아버지는 그의 가장 윗 형제(그보다 18살 더 많았던)의 손에 길러졌습니다. 명백히 계획되지 않았던 아기였기에, 제 아버지는 항상 그의 탄생이 실수가 아니었나 궁금해하였습니다.

슬 프게도, 이와 같은 이야기는 매우 흔합니다. 퍼센트 비유로 돌아가 보면, 당신이 100으로 시작했다고 할 때, 아주 잘해야 90퍼센트 정도로 유아기를 지나갈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방치되거나 무시되거나 학대받지 않았을지라도, 삶에서 고통스러운 일은 일어날 수 있으며, 우리는 낙천성 일부를 잃게 됩니다. 우리는 걱정하기 시작하고, 자존감은 떨어집니다. 3단계 자존감을 온전히 유지하기가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이 됩니다.

한편, 1이나 2단계 자존감에 큰 타격 없어 여러분의 유아기를 보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대부분의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은 80 정도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사람은 세상이 무섭고 위험한 곳일 수 있지만, 그는 온전히 존재할 가치가 충분하며 인생의 미로를 헤쳐나갈 능력이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우연히, 많은 문화와 종교 및 기타 신뢰 체계에, 어린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는 내장된 행위 규범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것이 그의 정확한 의도이기도 하죠 — 종족의 생존을 위해서, 대개는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들를 키우는게 더 쉬운데, 그래야 그들을 겁주어 순종하게 하고 종족의 규범을 지키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아동기와 성숙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신뢰를 시험하고 구축하는 시기

유 아기를 벗어나 자기를 인식하고 자신의 행동을 인지하는 시기가 되면, 외부 환경은 단계 2와 3의 자존감에 더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시작 단계부터 적절히 길러져 믿음이 굳건해지고 나면, 존재 가치에 대한 믿음은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재앙에 가까운 사건이 발생하거나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신호를 받게 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상위 두 단계에 많은 상처가 생길 수 있습니다. 부상에서 실망, 배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모두 삶의 풍파를 겪습니다. 어떠한 부정적이고 해로운 사건에서라도 회복할 수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여전히 부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그러한 악영향이 내재화되지 않도록 건전한 대처 방법을 스스로 계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정말로 위험한 곳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우리가 잘하지 못하는 일들도 있다는 것을 배우죠. 이러한 경험들로 인생을 헤쳐나가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와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근본적인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자신감을 잃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두려워하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법을 배웁니다.

특히, 사춘기에는 우리의 능력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임의적인 외부 판단에 노출됩니다. 친구들, 선생님, 시험, 성적 등이 그것이죠. 이러한 것들은 우리들의 2와 3 자존감 모두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해하려 하고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능력을 못 갖췄다고 생각해서 2, 3단계의 자존감이 모두 상실된 경우라면, 지금까지도 상당히 비참한 삶을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하였으면 단계 1의 자존감만으로 버텨나가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는 단계 2와 3의 자존감을 시험하고 상실하고 다시 구축하는 그러한 과정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좀 더 큰 세상(친구들, 학교)의 문맥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평가하고, 갑자기 이전의 자신감이 흔들리거나 그를 잃기도 합니다.

그러나 좋은 부모와 선생님, 인생의 스승들이, 어린 친구들이 어려운 시기를 돌파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 길에서 성공과 성장을 인식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얻습니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주위에 우리가 믿는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회복됩니다. 아무도 진공 속에서 자라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을 모두 받지만, 우리보다 앞서 간 이들로부터의 도움을 통해, 자신감을 강화하고 나쁜 일에 깊은 상처를 입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성인이 되고 나면 그의 진정한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기 어렵습니다. 좋은 습관과 긍정의 기억, 자신의 능력과 한계에 대한 지식을 통해, 자존감은 안으로 굳건해지고 외부 영향을 점점 덜 받게 됩니다. 이것이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이 피해 의식에 빠진 사람들과 달리 안정되어 보이는 이유입니다. 완전히 내재화한 자존감은 외부 요인에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사건이건 삶 속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들이건 간에 말이죠. 당신 스스로 자신이 우울하고 비관적이며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쉽게 흔들린다고 생각되면, 당신의 자존감은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존감은 인생의 모든 방면에 영향을 미칩니다.

 

여 기서 어떻게 낮은 자존감이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주는지 세세히 살펴보지는 않겠습니다. 자존감이 낮으면, 당신은 더욱 두려워하게 됩니다. 더 두려워할수록, 모험하기를 더욱 꺼리게 됩니다. 모험에 뛰어드는 일이 없어지면 개인의 성장은 정체되고, 자존감은 더 떨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모든 방면에 침투합니다: 학습(모든 성장은 리스크를 동반합니다), 학교나 직장에서의 성취, 가족과 친구, 배우자와의 관계 모두에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신의 불신과 두려움이 얼마나 깊게 당신 정신의 기저에 깔려 흐르는가 입니다.

당신이 궁색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칩시다. 당신은 항상 궁색한 일을 해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3 단계 자존감은 좀 떨어졌으나, 1과 2단계는 상대적으로 잘 보존되었을 때, 당신은 당신이 유능하지만,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당신의 부모 또한 궁색한 직업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맙니다. 직업이란 원래 즐길만한 것이 못된다고 말이죠. 당신은 퇴근 후와 주말, 퇴직 후를 위해 직장을 견뎌냅니다. 그것이 인생이죠.

자 존감에 변화를 주기란 어느 경우든 쉽지 않습니다만, 이 단계에서는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큽니다. 당신은 당신이 좋은 직업 혹은 직장을 가질 자격이 없다는 믿음을 바꾸기만 하면 됩니다. 밖으로 나가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 그 느낌이 어떤지 물어보십시오. 당신의 뇌에 그러한 현실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력하세요. 사고의 재구성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표면에서 멀지 않으므로 접근해서 고치는 것이 가능합니다. 웹을 뒤져보세요 — 이러한 단계의 재구성을 하는 방법에 관한 풍부한 충고들이 있습니다. 당신과 공명하는 것을 찾아 자신에게 적용하세요.

만약 2단계 자존감이 해를 입었다면, 당신은 당신이 좋은 직장을 가지기에 충분히 유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살, 당신은 어떠한 일에도 자신이 유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정말 싫어하는 일이지만 뼈 빠지게 일할 것입니다. 그들이 판단하고 있다고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자신이 유능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아차리게 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말이죠. 감사하는 마음 대신, 당신은 두려움에서 당신의 형편없는 일에 매달립니다.

이는 더 깊은 수준의 재조건화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모두 재능과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각자는 시간을 들여 그를 찾고 계발해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는 법을 학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비록 그것이 겁나는 과정이 될지라도 말입니다. 그러한 성장은 최소한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러한 모험에 뛰어들 자신감이 없습니다. 당신의 삶은 표준 미달로 가득 차 있습니다(대개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설정된 외부의 임의적인 기준들이죠). 자신이 실패라고 여기는 것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과거를 가지고서, 당신이 유능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치유의 과정은 부모나 교사 혹은 스승, 성숙하고 안정적이며 그러한 교육에 능숙한 누군가와 함께할 때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모든 유능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이러한 작업을 해줍니다. 그들은 아이들이 모험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을 피하지 않도록 하여, 그들 내부에 놓여 있는 자연스러운 자존감을 유지하도록 해줍니다. 당신의 치유 과정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홀로 해야 한다면, 당신이 자신 내부의 아이를 돌본다고 생각하세요 (우연히도, 몇몇 부모들은 자식을 기르면서 실제 이러한 치유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이 필요로 했던 일을 하는 것이죠).

이 제, 1단계의 자존감이 손상된 경우라면, 직업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 자신의 존재 가치 자체에 확신이 없으며, 이러한 의심은 인생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칩니다. 당신은 아마도 어떤 곳에서도 만족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본인의 능력이나 세상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를 하는 것이 가능은 합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고 필사적으로 외부 환경을 조작하려는 시도를 이어질 뿐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능력에 가중치를 너무 높게 두어 완벽주의자나 일 중독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체계를 속이고 범죄 활동에 가담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이 여러분을 제대로 처우하지 않으므로, 당신은 그를 갚아주는 것뿐입니다!). 당신은 만성적인 정신적 혹은 육체적 질병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의사들과 약이 때때로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을 치료해주기도 하지만, 항상 같은 방식으로든 다른 식으로든 재발합니다. 아마도 불안정과 혼란의 시기를 많이 겪어왔을 것입니다. 당신은 심지어 자신이 문제를 끌어들인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 떠한 경우든, 존재 가치에 대한 신뢰 회복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 어떤 다른 고차원적 욕구를 해결하기에 앞서, 당신의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고 자아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말이죠. 이것은 당신의 존재를 긍정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 그러나 당신의 의식 깊숙한 곳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제가 보고 겪은 몇몇 방법들에는 존재를 긍정하는 문장 만들기, 유아기 다시 살기(다시 말하지만, 부모들은 자식을 키우면서 동시에 이러한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부모와 대화하고 그들로부터 긍정을 얻기(엄마: “나는 네가 태어나서 정말 기뻤단다.”) 등이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의 손상이 가지는 문제점은 당신이 자신의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고, 따라서 고칠 방법도 모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설사 당신이 혼란과 불안정한 관계, 만성적인 육체적/정신적 건강 문제를 겪어왔을지라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존감이 빠져 있으며 그것이 문제의 근원임을 말해줄 수 있을 정도로 온전하고 깊게 당신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종종 의식 깊숙이 놓인 이러한 결핍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내가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를 궁금해하며 지내지는 않습니다. 단지 존재의 훨씬 높은 층에서 나타나는 증상들만을 보고, 그 수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할 뿐이죠. 이러한 시도는 단기적으로 먹힐 때도 있지만, 장기적인, 진정한 해법이 되지는 못합니다.

 

제 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충고는 매우 철저한 자기 분석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더 잘 인식할수록, 더 깊이 안으로 들어가 문제의 원인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심하게 좌뇌 편향적인 사람들(특히, 남성들)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이것은 직관적인 방법이고 당신의 느낌을 많이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들은 보통 그들의 깊은 내면 감정을 잘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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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한테 이런 이메일을 받고 울었다.

즐겨마셨던 커피의 병바닥까지 탈탈 털어 간신히 한잔을 만들어

마지막을 음미한다.

설마설마 하면서...

언젠가는 하면서...

너를 바라봤던 것 같다.

선배로써 뭐 하나 제대로 해주지도 못했지만

그저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했었던것 같다.

 

머리속에 든 지식도

가슴에 품은 열정도

사람관계를 맺는 품성도

지혜로운 삶의 방식도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는 네가

그래도 변화를 꿈꾸며 들어온 여기에서 네가 겪었을 여러 겪었을 일들...

한숨과 회한, 고통과 상처들이

희망의 시작이 아니라

삶의 질곡으로

너를 지금까지 끌고 왔을 생각을 하면

가슴 한편이 아리다.

 

애당초 운동이란 것을 저버린지 오래됐지만

조직에 별 저항없이 수긍하고 살아가는 나도

스스로 안타깝기도 하다.

 

운동 정리하고

나를 찾는답시고 떠났던 몇개월간의 중국여행이

어쩌면 나에겐 오히려 더 삶을 운동적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론

거대한 담론보다는 일상에서 내 몫만큼만 하고 싸우며 살아서.

 

난 너의 예민한 감수성이

운동이라는 이유로 등안시 되거나 소홀히 네 스스로에 취급당하지 않았음 좋겠다.

운동이 스스로의 변화라는 구태의연한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네가 바라는 것

네가 좋아하는 것

네가 하고 싶은 말들

그렇게 너의 감정들을 원색적으로 표현하면서

감정들을 안으로 삭히는 그런 일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너를 잘못 이해한 것이면 좋겠다만...

난 너의 그 인간애가 참으로 부럽다. 말을 예쁘고 재치있게 하는 것도.

모두 운동의 대중성을 염두에 두며 스스로를 훈련시킨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런데...

네가 아프다니까...

한번쯤은, 아니 이제 그런 것들 모두 버리고

정말 네가 원하는 것, 네 감정이 시키는 것들을 하며 살라고 말하고 싶다.

한고비 한고비 넘는다는게

퇴보가 아니라 성장이기를 바라면서...

 

못난 선배가

잠이 안와 몇 자 적어본다.

네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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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꼬수술에 대하여

 

 

 

제주도 해녀가 따올린 소라의 몸통은 어찌이리 아름다운 자태를 가지고 있는지

그 색감과 기하하적 무늬에 놀란 후 어그적어그적 씹어먹었다.

삶아지지 않았으면 훨씬 아름다웠을텐데.

 

다른 길을 모색하는 사이

컴에 있는 자료를 정리하다가 이 사진을 찾고 보니

내시경을 보았던 나의 에스결장과 직장이 떠오른다.

그 똥꼬수술이 아니었으면 나는 장이 아픈 줄도 모르고 계속 술과 담배를 그 연약한 대장 벽에 계속 쏟아붓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인간의 똥꼬도 장의 자태도 저거만큼은 아니지만 촉촉하고 부드럽다.

직립보행 이후 똥꼬가 많은 압력을 감당할 수밖에 만들고

술과 매운음식으로 자극시키고

더럽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취급해왔지만

묵묵히 감당하던 그것이

결국 저항하는 바람에 결국 수술까지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복귀 이후 오로지 똥꼬를 수술했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놀렸다.

그리고 조용히 찾아와 자기 상태를 밝히며 수술비용과 과정과 고통에 대해 상세히 물었다.

그래서 나는 당분간 비밀보장 성실답변에 충실했다.

 

그리고는 어떤 사명감 같은 걸 느낀다.

내가 병원에 가기까지 무려 8년 정도 걸린 거 같다.

쪽팔림..이루 말할 수 없다. 불편함..걍 참구 살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똥꼬는 나의 소중한 구멍이며 평생 잘 관리해줘야 할 대상이다.

핵심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 바로 병원에 가라는 것.

난 동네에서 수술한 바람에

나의 똥꼬로 내 속을 다 훏어보았던 의사와 간호사를

가끔 출근길에 만나기도 한다. 무지 쪽팔리다.

그러나 나에게 이 광명을 찾아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야메로 상담을 하면서 보니 정말 똥꼬 아픈 사람들 많다.

제발 참지 마시라.

똥꼬는 더럽지도 않고 연약하고 신축성있는 신비로운 구멍이다.

돈 얼마 안든다.

그리고 수술 후 알게 된 좌욕의 즐거움...따뜻한 물이 퐁퐁퐁 올라와

닿을 때는 머리 속이 개운해지는 느낌까지 든다.

 

그래 참을 만하다....

그래 참을 만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정신적으로도 충격이었던 수술을 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해

나의 소중한 똥꼬, 하지만 참을 성없는 그 구멍을 데리고

출근길에 인사하던 그 친절한 의사와 간호사가 있는 곳으로

다시 가야 할 거 같다.

 

재수술 끝나고 다시 써야지..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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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소중함

공사에서 파견나온 동지가 3개월이 지나

수습 뗀다고 수료증 달라고 땡깡이다.

 

군기반장으로서 잔소리도 많이 했는데

파견직과 채용직 사이에 간극이 생길까봐 더 까탈스럽게 굴기도해서

미안하기도 해서 한번 써봤다.

 

써보고 보니 동지의 소중함을 다시 알겠다.

 

 

 

김진만 동지!

 

동지는 조직에 와 3개월 동안 스스로를 낮추면서 몸에 익은 겸손과 훌륭한 매너로 다른 동지들로 하여금 팍팍한 생활을 견디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경제위기 속에서도 동지들에게 밥사기, 술사기에 솔선수범함으로써 따뜻한 인간미와 매력을 발산해 뜨거운 동지애를 듬뿍 발휘하셨습니다. 또한 항상 일찍 출근해 동지들을 맞아주었고 귀여운 웃음으로 남성 동지들의 전반적인 호감도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특히 직책에 개의치 않고 여러 가지 잡일도 함박웃음으로 나서서 처리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진정한 노동조합 간부로서 자질을 한껏 드러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는 음주의 결과로 나타난 독창적인 진상행동으로 동지들을 당혹스럽게도 하였으나 단순 그 자체인 천진난만함으로 동지들에게 큰 기쁨을 주어 왔습니다.

동지와 함께 한 3개월이 매우 소중했음을 인식하면서 동지에게 깊은 감사와 애정을 전달합니다. 3개월간 애 쓰셨습니다. 앞으로 더 잘하세요.

 

2009년 3월 5일

김반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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