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도 보고하라?

그네타는 춘향이를 보고 한 눈에 반한 몽룡. 타는 듯한 연모의 정을 가슴에 품고, 부친을 찾아간다.

 

몽룡 : 아버님. 소자, 오늘 단오를 맞아 모처에 유희를 가던 중 그네타던 처자 있어 한 눈에 반하였사온데, 처자 이름은 춘향이고 기생 월매의 소생이며 올해 나이가 열셋인가 열넷인가 하옵니다. 청컨대, 소자, 춘향이와 합방하여 앞태도 보고 뒤태도 보며 업고 놀다가 거시기도 하면서 장래를 함께 도모하고자 하옵니다. 허락하소서...

 

이 청원을 들은 몽룡의 부친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훈훈한 소식이구나"하면서 칭찬해줬을까? 칭찬을 개뿔, 지게작대기로 경추 대여섯곳을 분리시키지 않았을까?

 

혹은 이런 가정을 한 번 해보자. 로미오를 사랑하게 된 줄리엣. 일가친척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가족회의를 진행하면서 폭탄 선언을 한다.

 

줄리엣 : 비록 원수의 가문에서 자란 로미오지만 저는 그사람 없으면 못살 것 같아요. 앞으로 그사람하고 살려고 하는데 만일 반대하시면 약먹고 죽어버리겠어요.

 

가족들이 뭐라고 했을까? 일부 극렬 가족원리주의자는 아마 "지금 걍 먹어라" 하고선 독약을 갖다 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녀상열지사 제3자 개입 금지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편의상 "남녀"라고는 해도 그게 남남이던지 녀녀든지 상관없다. 요는 누가 누굴 좋아하는 것은 옆에서 뭐라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거다. 당연히 내가 누굴 좋아하는데, 그걸 지휘계통에 따라 상부에 보고하고, 더 나가 동침여부를 사전신고하던가 동침 이후 결과보고할 의무는 전혀 없는 거다. 고리짝부터 그래왔고 동서를 막론한 것이 이 원칙이다.

 

그런데 한국의 국방색 닭대가리들은 이 불변의 진리를 깨고싶었던가보다. 최근 국방부가 "군내 외 이성간의 교제에 관한 훈령"이라는 걸 제정하려다가 중단했단다. 정상적 사고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그 내용을 보면 웃다가 배꼽수색령을 내려야 할 판이다.

 

- 현역 군인은 상하 2단계 이내의 지휘관계에 있는 자, 교관과 피교육생, 남자 현역 사병과 부사관 이상 여군의 경우 교제 금지

- 사관생도는 훈육요원에게 보고한 뒤에 교제 시작, 같은 중대 또는 지휘근무 계선상의 생도간 교제 금지

- 사관생도는 민간인과 교제시 결혼과 약혼, 임신, 동침 금지

- 교육후보생 간에는 교육기간 중 후보생간 교제 금지

- 모든 현역과 사관생도, 후보생은 밀폐공간이나 시계제한지역의 일대일 동행, 산책, 공부, 운동 등 금지

- 교제보고를 하지 않은 사관생도는 일체의 영내외 일대일만남 자체 금지

- 교제허가를 득한 사관생도 3, 4학년은 외출 휴가 시 단둘의 여행 금지 등

 

하긴 우리 사회에서 '군바리'는 인격체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해왔던 것이 현실이다. 군복입은 군인과 민간인이 함께 걸어갈 때, "군바리 하나 사람 한 명 지나간다"라고 해왔던 사회니 뭐 할 말은 없다만, 그것도 쌍팔년도 이야기지 21세기 대명천지에 아직도 그런 생각이 남아 있다는 건 어째 썩 어색하다. 하긴 뭐 이러니 자본주의의 건전성을 목놓아 부르짖었던 장하준 교수의 책까지 불온서적으로 지정할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었겠지만서도.

 

몽룡이나 춘향이가 윗선에 교제허락을 받거나 로미오와 줄리엣이 교제사실을 상시 보고하는 상태에서 서로 만났다면, 아마도 오늘날 이 두쌍의 청춘커플이 남겨준 아릿하고 쌉싸름한 사랑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혼전성관계를 완전 금지했더라면 아마 크리스마스 베이비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그나저나 이러다가 이 쉑덜 나중에 군바리들 숫총각 숫처녀 검사까지 도입하자고 하는 거 아녀?? 검사결과가 양호하면 입대 가능, 안 그러면 아예 입대 불가능, 뭐 이런...

 

암튼 훈령제정이 중단되었다고 하니 반짝 헤프닝으로 끝나버린 일이겠지만, 이런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 국방을 하고 있다니 심히 "대~한민국" 국방이 걱정된다. 최신식 무기 제아무리 가지고 있으면 뭐하나? 맨날 지 머리통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데.

 

그나저나 이런 부류들이 꼴통짓 하면서 안드로메다로 보낸 개념 덕분에 안드로메다는 익일 번창 중이라는데, 이생을 마감하고 환생을 할 때는 필히 안드로메다에서 환생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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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5 14:06 2008/11/0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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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밌다... 흐흐흐

  2. 오, 국방부 킹왕짱 개념없다!!!! 매우 즐거움~논문쓰느라 머리 뜨끈한 가운데 이런 조크가 다 있남요, 행인님 땡큐 쏘 머치~

    근데...솔직히 시행된다면 더 재미날거 같아요...그렇다면 우리는 드디어 군바리와 군대남친보낸 여친들의 봉기를 볼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대한민국 60만장병의 봉기+ 여친 봉기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거 같아서...좀 씁쓸...어쩌면 정동진의 여관협회도 같이 들고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휴가시 단둘이 여행금지한다는데 대한민국 여관업계가 들고 일어날일 아닌감요...덧붙여 숫처녀 검사는 그렇다쳐도 숫총각 검사는 또 닭대가리로 어떻게 할지, 몹시 기대되는데..암튼...안드로메다는 연일 번창하겠군요~!

  3. 너무 재밌어요~
    두드레기는 다 낳았어요?
    전 어렸을 때 알러지 체질이라 두드레기가 많이 났었는데, 꿀을 먹으면 바로 낳았어요. 한번 드셔보셔요...

  4. 말걸기/ 흠... 내용순화 단어순화 자기검열하느라 이거 빼고 저거 빼고 했더니 영 밍밍한 야한 포스팅... 쩝...

    안티고네/ 정동진 여관협회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당장 포천 연천지역 다방과 숙박업소들은 숟가락 놔야할 처지가 될 걸... 아무튼 대한민국 국방부, 아주 제대로 코메디야. 개그맨들 다 덜덜 떨고 있다는 소문이...

    풀소리/ 헙... 꿀을 먹어봐야 겠군요. 오늘부터 시험해보겠습니다. ㅎㅎ 근데 아직도 머리 속이며 온 몸에 두드러기가 계속... 나고 있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