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 드뎌 술을 "사마시다"!!!

국민학교 3학년 때였다.

모내기 한참할 초여름나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날씨가 무척 더웠으니까.

애나 어른이나 끈적끈적한 땀이 등뛔리를 적시면 뭔가 셔~~ㄴ 한 것을 찾게 된다.

요즘이야 아이스크림도 많고 음료수도 넘치고 쌨지만 그 때 울 시골은 아직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곳이었다. 전기도... 당연히 냉장고같은 거는 꿈도 꿔보지 못했던 곳이고, 아이스크림이 어딨냐? 그런 거는 저 먼 서울이라는 나라에 있다는 신기한 물건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무튼지간에 햇볕 따땃한 날, 논이며 밭에 일나간 어른들에게 새참 날라주는 것이 우리 애덜의 일이었고, 그 새참의 한 구석에 아... 그 맛도 감미로운 막걸리가 있었다. 막걸리...

참고로 울 고향 막걸리는 "지평"막걸리라고 알려진 막걸리였는데, 요즘에는 이게 공장에서 나오다보니 그 맛이 한참 떨어지지만 그 때만해도 전국에서 이름난 막걸리였다.

 

당시에는 지역에서 제조되는 술이 지역 경계를 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데 울 고향 막걸리가 워낙 맛이 좋다보니 서울의 한 유명한 호텔 한식당에서 이 술을 몰래몰래 가져다 팔았는데, 고마 중간에 걸리가꼬 경을 쳐뿟다 아이가...

 

암튼 새참 날르는 애덜의 낙이라는 것이 새참 들고 갈 때 그 셔~~ㄴ 한 막걸리를 주전자 뚜껑에 한사발 받아 낼름낼름 마셔보는 것, 새참 다 끝난 후 행여 재수가 좋아서 막걸리가 남았을 때 고거 잔량처리하는 그 맛. 바로 그것이 낙이라면 낙이었다.

 

근데 행인에게는 이게 넘 모자랐다. 모자라도 그냥 모자란 것이 아니라 환장할 정도로 모자랐다.

그 셔~~ㄴ 한 막걸리를 함 뽀지게 마셔보는 것이 행인의 소원이라면 소원이었다.

아시겠지만 행인, 뭔가 하고 싶은 거 못하면 바로 발병한다. 꽁쳐둔 돈이 얼만가 확인을 해봤더니 물경 200원이라는 거금이 있지 않나~~!!!

 

바로 이것이었다. 그 때 막걸리가, 그 맛있었던 막걸리가 한 되 100원 할 때였다. 무훼훼훼훼...

막걸리 두 되를 살 돈이 있었단 말이다. 이 감격, 이 즐거움~~!!

일단 100원은 또 꼼쳐두기로 했다. 담번에 먹기 위해. 술 많이 마시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다. 푸헤헤헤... 그런데 막걸리 받아오려고 꺼낸 주전자가 꽤 컸다. 반말짜리는 되는 것 같았다. 여기 한 되 받아오면 좀 미안할 거 같다. 해서 꽁쳤던 100원 다시 꺼내 총 200원을 들고 역전으로 달려갔다.

 

역전에 술도가가 있었는데 여기 가려면 언덕배기 하나를 넘어야 했다. 그러나 그게 뭐 대순가, 어차피 새참 막걸리 받을 때도 그리로 갔는데. 그리고 그 집 막걸리여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집 막걸리는 깊은 독 안에서 꺼내는 것이라 그 시원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애나 어른이나 술은 "시아시"가 잘 되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암튼 새빠지게 달려갔다. 죄다 들에 나가서 동네가 괴괴하다.

자빠져 자던 누렁이만 뭔일인가 하고 눈꼽낀 눈으로 쳐다볼 뿐이다.

그리하여 도착한 술도가에서, 행인은 찔끔 겁이 났다.

흠흠... 심호흡 한 번 하고, "울 아부지가 술받아 오래요, 두되!"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누가 물어봤냐고...

도둑놈이 제발 저린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그 당시 이미 확실하게 깨달은 행인이었다.

 

자, 이 막걸리를 들고 집으로 가느냐, 천만에 말씀이다.

술도가 넘어오던 언덕배기 나무그늘 밑으로 갔다.

거긴 사람도 잘 안오고, 그늘이 커서 덥지도 않고, 뭣보다 언덕위라서 바람도 잘 분다. 더구나 사방을 내려다볼 수 있어서 행여 어른들이 오는 것을 보기라도 하면 잽싸게 튈 수도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턱하니 자리잡고 앉아서 일단 주전자 뚜껑 가득히 막걸리를 붓고 그대로 쭈욱 빨아재꼈다.

으하ㅏㅏㅏㅏㅏㅏ~~~~ 그 시원함이란...

한잔 또 한잔 안주도 없이 마시고 또 마셨다.

이건 진짜루 둘이 먹다가 하나가 승천을 해도 모를 맛이었다.

그렇게 두 되짜리 막걸리를 몽땅 마셔버렸다.

 

약간 모자란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기분이 꽤 좋았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을 거다.

그리고는 술냄새 좀 빠진 다음에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원한 그늘 밑에서 한 잠 푹 자고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그대로 드러누웠다.

 

눈을 떴는데 사방이 깜깜하다.

아이쿠, 이거 너무 많이 잤구나... 하늘에는 은하수 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거리고 있었고, 어슴프레한 달빛 아래로 주전자는 널부러져 있었다. 냉큼 주전자 챙겨들고 밤길을 더듬어 집으로 갔다.

 

집의 문이 죄다 열려 있고, 안에 사람들이 없다.

이상하다. 호롱불도 꺼져있고...

 

그 때 어디선가 환청처럼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들어보니 진짜루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다.

이게 먼 일이래??? 하면서 소리나는 쪽을 바라봤더니 개천 건너편 산 밑에 횃불 몇개가 넘시렁 거리고 있었다. 허거거거걱... 사건이 이렇게 커져버렸을 줄이야...

 

어린 나이였지만 행인은 사태판단에 신속함을 보였다.

잽싸게 양치질을 하고 쉰 김치를 입안 가득 집어넣고 씹어 먹은 후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잠을 청했다. 잠이 올리가 있나... 겁이 나는데...

 

잠은 안오고 행인을 찾는 목소리는 점점 가늘어지고...

그러다가 까무룩히 잠이 든 거 같은데,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어른들은 기가막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행인은 졸린 눈을 비비며(반은 연극이었지만...) 정신을 못차린 듯 헤메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튼 그 날은 조용히 지나갔다.

사건의 전말은 울 작은 사촌형만이 눈치를 챘었다. 그 형만 조용히 입다물어주면 그냥 넘어갈 일이었다. 그러나 그 형은 입을 다물고 있지 않았다. 미처 씻어놓지 못한 주전자를 증거물로 들고가 할아부지에게 일러바쳤던 거다... 지게작대기에 맞아 죽는 줄 알고 도망쳤다. 도망치면서도 내내 그날 막걸리 맛이 생각났던 것 같다. 막걸리, 다시 먹고 싶은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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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9 15:52 2004/07/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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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날것 같음--샌프란시스코에서^^

  2. ?
    진짜 지나가시는 행인이신가요? 아니면 제가 아는 분인지...
    암튼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