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미국 학생들이 배우는 거짓 역사

[월간 말] 김성환의 History Today  


김성환  본지 편집위원



몇해 전, 재일동포 역사학자 이성시씨가 『만들어진 고대』라는 책을 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역사가들이 고대사를 논할 때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민족국가의 상을 가지고 그것을 고대에 투영하려는 경향이 있고 이 때문에 ‘있었던 그대로의 고대사’를 파악하는 데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고 논증하고 있다.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고대사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근대 이후의 역사조차도 그것은 상당 부분 ‘실상’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인 경우가 많다. 미국사의 예를 보면 그것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1995년, 미국 역사학자 제임스 W. 로이엔은『선생님이 나에게 해준 거짓말』이라는 책을 펴냈다. 제목이 흥미로운데,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 시간에 선생님이 가르치는 내용이 거짓말 투성이라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미국사는 그 출발점이 콜럼부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15세기 말 혹은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이주한 17세기 초 정도다. 미국 학생들은 행복하게도 우리 학생들처럼 아득한 고대로부터의 5천년 역사를 외우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역사교과서 집필자들이 길어야 5백년 짧게는 2백 수십년 밖에 안 되는 최근의 역사에 대해 거짓말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로이엔이 미국 각 주의 중고등학교에서 가장 많이 채택하고 있는 미국사 교재(미국은 우리 나라와 같은 국정교과서 체제가 아니다) 12권을 분석한 결과 거기에는 놀랍게도 수많은 거짓 사실들이 들어 있었다.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는 한, 보통 시민들은 중고등학교 때 배운 역사 지식을 상식으로 삼아 세계를 바라보게 돼 있다. 그런데 거짓과 왜곡으로 가득 찬 자국사를 배경 지식으로 삼은 이들이 나중에 자라서 기업가도 되고 정치가도 된다는 상상을 해보자.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오늘날 미국 정치인들이 세계 다른 나라들에 대해 그토록 오만하고 패권주의적인 이유가 어떻게 보면 중고등학교 국사교육에서부터 배태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자, 그럼 미국사 교과서 속에 어떤 거짓말들이 들어 있는지 들어가 보자.



제멋대로 영웅 만들기

미국사에는 정치가에서 보통 시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웅들이 등장한다. 어려서부터 미국식 교육을 받아온 우리들도 미국인들 못지 않게 그 면면들의 이름을 줄줄 외워댈 수 있다. 그 가운데는 헬렌 켈러(1880-1968)도 포함돼 있다.

나는 로이엔의 책을 읽은 다음, 주변 사람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헬렌 켈러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모든 사람들이 그녀가 어려서 시력, 청력을 잃은 장애인으로서 좌절하지 않고 그 모든 장애를 극복해낸 위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그녀를 가르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설리반 선생 이름까지도 기억해냈다. 나 또한 어렸을 때 그녀의 위인전을 읽으며 컸다. 설리반 선생이 헬렌 켈러를 샘으로 데리고 가 손을 물에 담그게 한 뒤 그녀의 손에 ‘water'라는 글자를 써주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미국사 교과서에도 대략 그러한 내용이 들어 있다.

그리고 나 또한 로이엔이 학생들에게 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그녀가 성장한 뒤에는 어떻게 됐지?”하고 물었을 때 이에 대해 안다고 대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미국의 중고등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교과서는 헬렌 켈러가 성인이 된 뒤에 펼친 활동에 대해서는 단 한줄도 기록하고 있지 않거나 기껏해야 사회사업가 정도로만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년가 1880년에 태어났고 1968년에 죽었으니 대략 68년 동안의 그녀 활동에 대해서는 교과서가 ‘벙어리’가 된 셈이다.

그러면 실제로 헬렌 켈러는 성인이 된 뒤 어떤 활동을 펼쳤을까.

우선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기 이전이 이미 급진적 사회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1909년에 매사추세츠 사회당에 가입했는데 이는 그녀가 대학에서 배운 지식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그녀는 이 새로운 공산국가에 대해 “동쪽에서 새로운 별 하나가 떠올랐다. 고통과 고뇌 속에 구질서는 새질서에 자리를 내줬다. 동무들이여, 함께 가자. 러시아의 횃불을 향해, 다가오는 새벽을 향해!”라며 칭송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녀는 자신의 서재 책상 위에 늘 붉은기를 꽂아 놓았으며, 사회당내 좌파로서 기존 미국 노동운동의 대표적 조직인 미국노동총동맹(AFL)의 보수화에 반기를 들고 탄생한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에 가입해 급진적 노조운동을 벌였다.

헬렌 켈러가 사회주의자가 된 것은 물론 그 자신의 장애 체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 개인의 장애를 넘어 장애를 가진 타인들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갔다. 그녀는 처음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알파벳을 간략화하는 일을 했는데, 이때 시각장애 그 자체만을 다루는 것은 증상만 치료하고 원인을 치료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즉 그녀는 시각장애인이 사회 각 계층에 무작위로 퍼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층 계급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뜬’ 것이다.

가난한 남자들은 산재 사고나 의료 혜택 부족으로, 창녀가 된 가난한 여자들은 매독으로 시각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그녀는 사회의 계급구조가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 심지어 ‘세상을 볼 수 있는지 없는지’까지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스웻샵(sweatshop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제3세계 노동자를 착취하는 공장), 공장, 빈민굴에 다 가보았다. 나는 비록 볼 수는 없지만 냄새는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헬렌 켈러가 이러한 활동에 몰두하는 만큼 그녀는 냉전논리가 판치는 미국 사회에서 악명이 높아져 갔다. 언론은 이제 그녀의 장애를 약점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누군가가 ‘불온한’ 이념을 주입했고 그녀는 자신의 장애 때문에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년에 미국 사회는 매카시 선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성운동을 위해, 언론의 자유를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했으며 사회주의 이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나 지금이나 미국 사회는 사회주의에 대해 거의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거부감을 보여왔다. 그렇다고 해서 헬렌 켈러의 활동이 기록에서 삭제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교과서 집필자들이 비록 그녀의 이념과 활동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왕에 그녀에 관해 기록하는 마당이라면 그녀의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일생 전체에 관해 기록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국 역사교과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헬렌 켈러는 진정한 의미에서 위인일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헬렌 켈러는 조작된 위인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은 그녀가 자신들이 증오해 마지 않는 ‘골수 빨갱이’인 줄은 모른 채 단지 그녀를 ‘장애를 극복한 위인’으로만 여기며 칭송해마지 않는 역사의 희극에 가담하고 있다.

이러한 왜곡된 영웅 만들기는 헬렌 켈러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물론 미국 사람들도 민족자결주의자로만 알려져 있는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1856-1924), 노예해방론자로만 알고 있는 16대 대통령 링컨(1809-1965)에 대해서도 미국 역사교과서들은 사실들을 왜곡하거나 생략하여 필자들의 의도에 알맞은 내용만 추려내서 제멋대로 위인 만들기를 하고 있다.



콜럼부스의 신화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비판이 제기돼 왔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이미 원주민들이 나름의 문명사회를 건설해 삶을 영위해오고 있었다. 따라서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표현은 서구의 관점일 뿐이라는 것이다. 원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자신들이 콜럼부스 일행을 ‘발견’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미국사의 출발점이 콜럼부스의 ‘도착’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미국 역사교과서의 서술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로이엔은 이 점에서 미국 역사교과서는 중대한 사실 왜곡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한다.

우선 미국 교과서들은 마치 다른 대륙인으로서는 콜럼부스가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을 밟았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전혀 그렇지 않다.

우선 콜럼부스가 도착한 1492년 이전인 1480년대에 이미 유럽인들은 북아메리카 뉴펀들랜드 부근에서 어업활동을 하고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뉴펀들랜드 어장에 유럽인들이 오기 시작한 것은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또 북아메리카 뉴잉글랜드 지방에 남아 있는 비석과 언어를 분석해보면 무려 기원 전 500년 무렵에 페니키아인들과 켈트족이 이곳에 왔었다는 추정을 할 수 있기도 하다. 비록 사실일 가능성이 희박하기는 하지만, 중국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기원 전 1000년 경에 중국인들이 중앙아메리카에 도착했을 가능성도 있다. 최근 출판된 <1421년 - 중국이 발견한세계>(개빈 멘지즈 저)라는 책은 정화의 남해 대원정을 다루고 있는데, 정화는 당시 유럽인들이 아직 이르지 못한 세계 곳곳에 이미 ‘도착’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어떤 의미에서 콜럼부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최후’로 발견했다.

비록 콜럼부스가 아메리카의 ‘최후 발견자’일지라도 미국사가 그로부터 비롯된다고 하는 것 자체가 틀린 서술은 아니다. 여기서 문제는 그가 ‘최후’임에도 왜 미국사가 그로부터 비롯된다고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에 있다. 미국 역사교과서들은 콜럼부스를 ‘최초’로 설정하는 바람에 이 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당시 유럽 정세를 설명하면서 왜 유럽인들이 대양 항해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사의 관점일 수 없다.

해답은 콜럼부스가 그 이전에 아메리카에 도착했던 유럽인들과 어떤 점이 달랐고 그로 인해 아메리카 대륙이 어떻게 다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는가를 파악하는 데 있다.

미국 역사교과서들이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기 기술의 발달이다. 1400년대에 유럽의 군주들은 보다 크기가 큰 대포들을 개발하고 이를 배에 장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 국가들 사이에 군비 경쟁이 가속화됐고 무기는 더욱 정교해졌다. 오스만 투르크 및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이 무기의 위력 앞에 무릎을 꿇었고 마침내 아메리카도 그 희생자 명단에 오르게 된 것이다. 총과 대포가 없던 시대에 아메리카에 온 유럽인들은 대륙을 점령할 수 없었고, 또 그렇게 할 의지도 없었다. 다만 이주나 교역을 위해 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신무기로 무장한 유럽인들은 어디를 가든 완벽하게 점령할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사실 오늘날까지도 미국 문명의 핵심은 무기 기술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소련이 붕괴하기 전까지 미국이 일관되게 추진한 것은 핵무기 개발 경쟁이었다. 그리고 소련이 무너지자 미국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이 미국 이외의 국가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현안이 되어 있는 북핵문제 또한 그 범주 안에 있음은 물론이다. 외형적인 표현은 ‘세계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자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우월한 무기 기술을 유지하여 세계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데 있다. 미국의 세계 지배는 다름 아닌 우월한 무기 기술에 있고 그 출발점에 콜럼부스가 있는 것이다.

무기 이외에 유럽인들이 개발한 관료제도, 복식부기, 인쇄술도 아메리카를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관료제와 복식부기는 지배층과 상인들이 장거리 교역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인쇄술은 정보를 보다 신속하게 유통시킴으로써 콜럼부스의 항해가 바이킹류의 항해활동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데올로기적인 측면도 중요하다. 콜럼부스가 아메리카에 온 목적은 금에 있었다. 이는 이전과 달리 부의 축적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데올로기적 변화에 의한 것이었다. 이미 11세기 초에 캐나다와 뉴잉글랜드 지방에 바이킹들이 ‘도착’했지만 그들은 단지 이주해서 정착할 목적 이외에는 없었다. 하지만 콜럼부스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는 ‘골드 러시’가 태풍처럼 불어닥쳤다.

콜럼부스의 아메리카 도착은 이러한 여러 요인들이 아메리카에 상륙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봄으로써 비로소 왜 미국사가 콜럼부스로부터 시작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이 역사를 보는 안목이다. 그러나 미국 역사교과서들은 학생들에게 이러한 안목을 심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학생들과 학교를 졸업한 시민들은 미국사의 특징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몇몇 왜곡된 영웅들의 영웅담을 외우고 있을 뿐이다.

 



가르쳐주지 않는 사실들

미국인들은 누구나 서부개척시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 시대에 대해 일종의 향수를 가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학살된 수많은 원주민들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비판되어왔다. 그러나 문제는 단지 그 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역사교과서는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뉴잉글랜드에 도착한 102명의 ‘필그림’들을 건국의 아버지로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자손들이 장차 서부개척에 나서 오늘날의 미국이 건설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사실과 다르다. 필그림들이 도착하기 이전에 이미 아메리카에는 유럽인들이 와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이었다. 미국인들 가운데 샌프란시스코에서 플로리다와 알래스카에 이르기까지 미 전역의 약 3분의 1 땅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살았던 기간이 ‘미국인’이 살았던 기간보다 훨씬 길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전에는 아메리카에 없던 말, 소, 양, 돼지를 들여와 길렀고 이는 미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를테면 ‘카우보이’ 문화도 필그림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스페인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오늘날 남아 있는 카우보이 문화를 상징하는 단어인 ‘무스탕’이니 ‘로데오’니 하는 것들이 다 스페인어인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문화의 근원을 따지자면 그것은 필그림에서가 아니라 스페인 이주자들에게서 찾아야 옳다. 그럼에도 미국 역사교과서는 이런 점에 대해 서술하고 있지 않다. 그럼으로써 미국인들은 잘못된 사실로 구성된 잘못된 역사상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다.

우리는 유달리 역사교과서에 민감하다. 그것은 주로 일본이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데서 비롯됐다. 하지만 역사교과서의 문제는 일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도 있음을 로이엔의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우리 국사 교과서에도 과연 문제는 없는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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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8 11:32 2004/07/1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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