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메이슨과 장 지글러

시사인과 인터뷰한 폴 메이슨은 신자유주의의 몰락과 대안체제를 선점하기 위한 각축에 대하여 말한다. 이에 대해 가장 우선적으로 드는 의문. 시장과 국가의 카르텔은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의미하는 상징이 될 수 있는가?
관련 기사 :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 이후'로 이행하는 중 - 시사인

폴 메이슨은 최근의 경향으로 은행 등 민간경제 부문이 국가의 지원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졌음을 지적하면서 이것이 "적어도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의를 따져볼 때, 폴 메이슨이 신자유주의 이후로 이전하고 있다는 현상적 징후로 그가 제시하고 있는 각종 사례는 신자유주의체제 본연의 모습에 불과하다.

"은행을 비롯한 민간경제 부문이 국가 지원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나, "국가가 민간에 '암묵적 보증'을 제공"하는 것이나, "수익은 사유화되고 리스크는 사회화"되는 것 하며, "'테크 시장' 구글.페이스북 등 3~4개 초대형 기업이 세계시장을 나눠먹을 정도로 독점화"되어 있는 상황이 그가 말하는 것처럼 "적어도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아니다"라고 선언할 수준이 아니라 사실은 신자유주의 그 자체의 특수성이었다는 것.

그렇다면, 폴 메이슨의 인터뷰는 처음부터 별로 쓸데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왜냐하면, 그의 진단이 전제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애초 신자유주의가 득세할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자. 그것은 단지 어느날 시장의 힘이 쯔나미처럼 솟구쳐 오르면서 국가의 개입기제 전반을 마비시키고 국가vs시장의 대결국면을 시장의 낙승으로 이끌었기 때문이었나? 이런 견해는 아예 등장할 수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정치체제를 장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입법 및 행정 전반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정치적 힘을 가지게 된 시장주의적 경제주체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본격적으로 체제 전반에서 가동함으로써 등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이미 국가적 차원에서 시장근본주의에 친화적인 제도를 정비하고, 자본의 운용을 방해할 수 있는 요인을 제거하는데 필요한 규제 이외의 규제를 철폐하며, 사적이익의 극대화(실상은 국가권력까지 좌우할 수 있는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행정을 시행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은행을 비롯한 민간경제 부문"을 국가가 크게 지원하며, "국가가 민간에 '암묵적 보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공공연하게 혈세를 들여 자본을 방위하는가 하면, "수익은 사유화되고 리스크는 사회화"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며, 자본자체의 분열과 집산을 자유로이 방치함으로써 자본구도 재편을 통해 거대독점자본이 등장하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여 왔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지속 내지 반복되는 것을 신자유주의의 종말 내지 자본주의 대안체제의 임박으로 해석하는 폴 메이슨의 지적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가 제시하는 대안 역시 한물 간 대안이 아닌가 싶다. "체제 이행을 밀고 나갈 사람들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들"이라는데, 이건 아무리 적게 어림잡아도 벌써 20년 전에 잠깐 반짝였던 네그리, 하트, 가따리 류의 자율주의의 그림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의아한 건, 아니 그럼 언제는 개인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지 않았던 때가 있었는가?

폴 메이슨의 인터뷰와 대조되는 지점에 장 지글러의 인터뷰가 있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목수정이 리베라시옹과 장 지글러의 인터뷰를 번역했다.
관련 글 : 리베라시옹과 장 지글러의 인터뷰 번역 - 목수정 페이스북에서 펌

이 인터뷰에서 장 지글러는 프랑스는, 아니 어떤 한 국가차원을 넘어 전 세계는 이미 '수퍼리치'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결정은 수퍼리치들이 한다. 즉 대형 은행들, 다국적 기업의 총수들"인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이해에 반하는 법이 채택되는 것을 방해"한다. 또한 "그들은 지구의 지배자고 그들은 지구 위에 야만적/인간파괴적 질서를 만들"고 있다. "500개의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 총생산의 52.8%를 점"하고 있으며, "소수의 자본가 지배그룹의 유일한 목표는 그들의 이윤을 단시일 내에 극대화하는 것 뿐"으로서 "그 목표를 위해 그 무엇이라도 희생시키려"하고 있다는 게 장 지글러의 주장이다. 문제는 바로 이러한 수퍼리치들이 "의회나 정부, 유엔, 노조 등 그 어떤 힘에 의해서도 통제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달리 말하면 바로 이 수퍼리치들은 이미 의회나 정부, 심지어 유엔을 장악하고 있으며, 이러한 힘들은 노조의 힘을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할 지경인 것이다.

개인들의 네트워크라는 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폴 메이슨과는 달리, 장 지글러는 현재의 시스템은 개선과 개혁으로 바꿀 수 없으며, 아예 그 자체를 붕괴시켜야 한다는 역동적인 주장을 한다. 성난 시민이 바스티유를 무너뜨리듯, 그렇게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압제는 개혁되지 않는다." 훌륭한 말이다. 가슴에 후끈 와 닿는다. 그러나 장 지글러의 이처럼 화끈한 말은 아쉽게도 폴 메이슨이 하는 이야기만큼이나 고리타분하고 막연하다. 장 지글러의 대안제시과정에서도 폴 메이슨과 비슷한 말이 나온다. "희망과 행동은 시민사회에 달려 있다." 이건 네트워크를 장악한 개인들이 세계를 변혁할 것이라는 말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언제나 "희망과 행동은 시민사회에 달려 있다"는 말은 진리였으며, 암운이 짙을 때는 일종의 뽕 역할도 했고, 실제 광장이 촛불로 밝혀졌을 때는 현실이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촛불은 혁명으로 단 한 번도 이어지지 않았고, 체제의 붕괴는 권력자의 얼굴을 바꾸는 것에 머물러왔다.

폴 메이슨보다 장 지글러의 분석이 더 와닿는 이유는, 장 지글러는 적어도 시장주의와 국가주의의 대립관계에서 신자유주의의 발흥이라는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국가가 시장에 장악되었고, 그리하여 이제는 별스레 국가주의를 운운할 게재 자체가 없다는 걸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논의되어야 할 것은 바로 정치경제, 또는 정치인데, 현존하는 정치권력의 해체와 재구성이 없이는 신자유주의고 자본주의고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문제에 대한 답은 이미 문제에 나와 있음을 재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신자유주의의 발흥이라는 문제는 국가 또는 국제사회라는 체제를 시장이 장악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정치권력까지 시장권력이 장악했기에 지금의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 그렇다면 시장권력을 축출한 정치권력을 창출하고 더 나가 이 정치권력으로 시장권력을 장악하면 현재의 문제는 다른 양상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정치권력의 이념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겠지만.

앞으로 더 고민해야 할 것은 정치권력을 어떻게 지금과는 다른 구조로 만들 것인지이다. 이념이 달라야 하고 주체가 달라야 할 것이며 체계조차 달라져야 할 것이다. 폴 메이슨과 장 지글러의 대안은 아마도 인터뷰에 나온 것보다는 더 정교할 것이며 풍성하겠지만(실상 두 사람의 저작이나 글들을 더 보면 더 많은 이야기가 가능하다), 지금껏 이들의 논의를 볼 때 이 두 인터뷰 이상의 수준에서 대안이 형성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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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라고나 할까...

나는 낙천적인 사람이라 비관적 전망을 내놓으면서 폴 메이슨이나 장 지글러의 견해를 비웃고싶지는 않다. 오히려 미래를 긍정하기 위하여 내가 지금 취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입을 다물고 보다 면밀하게 추이를 들여다보는 것 뿐이다. 나는 폴 메이슨이나 장 지글러처럼 명쾌하게 신자유주의의 종말과 체제의 붕괴를 이야기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한 100년 후에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가능하겠다. 그 때는 이미 나는 죽었을 것이고, 내 말에 대한 책임은 남은 사람들의 갑론을박에서만 논의될 뿐 내가 책임을 질 일이 없을 터이니. 정 안 되면 부관참시밖에 더 되겠나. 그러나 나는 지금 신자유주의의 종말이나 자본주의체제의 일대 전환, 그리고 이를 추동하기 위한 체제의 전복 같은 소리는 좀 안할란다. 실천의 노선으로 제출되기 어려운 막연한 이야기는 다른 누구보다 그 말을 뱉은 내 자신의 피를 말린다는 걸 깨달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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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2 10:20 2018/09/0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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