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외근무는 최저임금 안 줘도 된다고?

0.

"법대로 해!"라는 말이 있다. 말은 쉬운데 이거 만큼 어려운 게 없다. 세상만사가 일일이 다 법에 규정이 되어 있다면, 법전 어디에선가는 문제가 되는 사건에 해당하는 조문이 있을 것이고, 그럴 때에는 "법대로" 하면 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주기까지 했으므로,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능히 그 법전에 있는 대로 적용하면 될 일이다. 판검사 변호사들 밥줄은 끊길 거고 사법농단이나 전관예우 따위는 일소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안 된다. 왜?

"법은 최소한"이라는 법언은 진리다. 인간사 모든 일을 법으로 다 규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어떤 기준을 세우는 것으로 족하고, 다종다양한 사안에 대해 그 기준이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따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법의 해석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법학과에서 법의 기초를 배우기 시작할 때, 소위 법적 사고(leagal mind)와 함께 익히게 되는 게 바로 법의 해석이다. 법은 문자로 된 규정만으로 만사형통할 수 없으므로 해석이 중요하게 된다. 판검사 변호사들이 목에 깁스를 하고 건방을 떨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법 해석의 기술자이자 권위자로서의 지위를 누리기 때문이다. 결국 "법대로"라는 말은 법의 해석이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1.

법해석을 아무나 꼴리는 대로 할 수는 없다. 그러면 법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서 법은 엄격한 틀에 의해 해석되어야 하고, 법의 성격에 따라 해석의 적용도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형법을 적용할 때에는 유추해석이라는 것이 절대 금지된다. 형법에 따른 처벌은 법에 규정이 없을 때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래서 "법 없으면 죄 없다"는 말이 성립된다. 사람을 죽여도 법전에 '살인'이라는 죄가 규정되어 있지 않으면 그를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는 거다. 형법 외의 다른 법률을 적용하거나 관습 또는 조리를 유추하여 적용하면 안 된다. 반면 민법은 법전에 규정이 없더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기준들을 법의 권위를 빌어 적용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 민법 제1조는 "민사에 관하여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고 정해놨다. 민사법원은 어떻게 해서든 당사자 간의 문제를 해결해주어야만 한다.

2. 

법해석의 방법 중 '당연해석'이라는 게 있다. '물론해석'이라고도 한다. 법률의 규정이 따로 없더라도 다른 규정을 염두에 둘 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해석되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자면, 어느 도로에 '차량통행금지'라고 써 있다면 도로교통법상 '차(車)'로 규정되어 있는 모든 운송수단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사람 또는 가축의 힘이나 그 밖의 동력으로 도로에서 운전되는 것"이 포함된다.(법 제2조 제17호) 그러면 탱크는 '차'인가? 규정에 '탱크'라는 말이 없더라도 당연히 '차'로 분류된다. '마차'는 어떤가? 역시 '차'로 본다. '손수레(리어카)'는 어떤가? 골때리지만 이것도 '차'로 분류된다. 그래서 폐지줍는 노인들은 위험천만을 무릅쓰고 리어카를 끌며 차도를 이용해야 한다. 탱크나 마차, 리어카를 '차'로 보는 건 그러한 명칭의 운송수단이 법규에 명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법해석 상 '당연'히 '물론' 그렇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런 걸 당연해석 내지 물론해석이라고 한다.

3. 

최저임금 1만원 투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을 때, 도대체 어떻게 이걸 맞춰야할지를 가장 심각하게 고민한 사람들은 알바생 한 둘 두고 영업하는 편의점 사장들보다는 대기업 경리담당자들이었을 거다. 왜냐하면 대공장 정규직들이라고 해서 시급 1만원 이상의 기본급을 받고 있는 사람은 한국사회에서 거의 한 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노동자들의 절대다수는 시급이 1만원을 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차, 대우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노동자 연봉이 월등히 높다고 알려진 공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들 업체들이 최저임금 1만원 수준으로 맞춰서 시급을 조정할 경우에 당장 사업자들은 임금지급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곤란해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이들 대공장들을 비롯하여 상당수 업체들이 기본급을 낮추는 대신에 각종 수당 등을 만들어 임금보전을 해주는 관행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임금체계를 간소화해서 복잡한 수당을 없애는 대신 기본급을 높이면 될 일인데 기업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기본급에 좌우되면서 부담을 주는 시간외수당, 정기상여금, 연차유급휴가나 산전후휴가급은 물론 해고예고수당 등의 비중을 낮추되,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각종 수당들을 임의제공하면서 노동자들의 불만을 억제하는 게 장기적으로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됨으로써 기업이 전전긍긍한 것은 기본급을 1만원 이상으로 올리지 않을 경우 최저임금법 위반이 될 것이고, 현재의 수당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때 통상임금의 규모가 막대하게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임의로 제공하면서 노동자들을 달래왔던 수당들을 그냥 싹 없애는 건 노사교섭에 따른 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는 거라 부담스럽고.

4.

최저임금법이나 근로기준법 어디에도 대공장 노동자들의 시급은 최저임금 이상 주어야 하며, 통상임금은 이 최저임금의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깨알같은 규정은 없다. 그러나 최저임금법은 이들 대공장 노동자들에게도 '당연'히 적용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최저임금법에 "이 법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정해놨기 때문이다. 이 규정에는 사업종류별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예외를 두고 있으나 아직 예외를 만들지는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최저임금안에도 "사업의 종류별 구분 없이 전 사업장에 동일하게 적용"이라고 되어 있다. 

통상임금과 관련하여 최저임금은 통상임금이 높은 사업장이라고 하여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의 각 규정에 따라 '당연'한 결론이다. '물론' '당연'히 적용해야할 부분은 또 있다. 비록 법률에 자세한 규정을 두지 않더라도 시간외수당은 기본급을 기준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에는 시간외수당의 경우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하여 지급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통상임금이 당연히 최저임금의 기준에 따라 맞춰져 있다면 시급은 최저임금 이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근로기준법의 해석상 시간외수당의 최저선은 최저임금의 100의 50 이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게 '당연해석' '물론해석'의 결과다.

작년(2019년) 연말, 노동부가 "시간외수당 중 기본임금도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지급할 수 있다"는 행정해석을 내렸다. 이것은 기존의 행정기준을 뒤집은 것인데, 과거에는 시간외수당 중 기본임금만은 최저임금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기준 역시 잘못된 것이지만. 노동부의 행정해석은 '당연해석'이 적용되어야 할 법률해석을 부정했다. 그러면서 현행 근로기준법이 기본급은 최저임금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으니 이러한 행정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5.

최저임금법을 다시 보자. 최저임금법 제1조는 "이 법은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이 목적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제3조에서 이 법은 임금노동자 누구에게나 적용됨을 밝히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제1조에서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힌다. 헌법 제32조의 각 규정들에 따라 그 내용들을 법률로 구체화한 것이다. 이들 법체계를 따져본다면 근로기준법에 별도로 기본급은 최저임금의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규정이 없더라도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만 함을 알 수 있다. 이건 학부 법학과 1학년 1학기 법학개론을 수강한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해석방법이다.

6.

사실 헌법에 '최저임금' 규정을 두는 것이 법적으로 정의로운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헌법이 '최저임금'에 관한 규정을 두는 건, 적어도 일정정도 이상의 임금은 받아야 노동자들이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고 국가가 그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것을 정한 거다. 그 내면에는 국가가 비록 '최소한의 한계'를 설정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하한선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고, 임금을 주는 사람들은 그 이상은 노동자들과 분배를 하길 바란다고 요청한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이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헌법에 따라 정해지는 '최저임금'을 자신들이 줄 수 있는 임금의 최대치로 설정한다. 즉 그 정도만 주면 법을 위반하지 않은 거다라는 신호가 되는 것이다. 헌법에 규정을 둔 의미는 여기서 상실된다.

그것도 모자라 자본은 각종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피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었는데 시급은 7천원만 주는 기업이 있을 때, 이 기업이 위법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본급을 1만원으로 인상하는 거다. 하지만 그러기 싫다. 그럴 때 이 기업은 시급은 7천원을 유지하되 차액인 3천원 만큼으로 다른 수당을 신설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2018년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대폭 넓혀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은 이렇게 차액을 보전해줄 것처럼 신설한 수당에 조건을 붙일 수 있다. 어떤 조건이냐? 통상임금 산입에 포함되지 않도록 하는 조건이다. 통상임금은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이라는 요건이 붙은 모든 수당을 포함하는데, 차액보전용으로 신설된 수당에 대해서는 이 조건 중 한 가지를 충족하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다. 기본급은 낮추되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수당을 신설함으로써 최저임금법을 피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임금을 깎아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7.

자본이 이따위 꼼수를 쓰지 못하도록 관리감독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기관이 바로 고용노동부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하는 짓은 오히려 자본이 꼼수를 더 활발하게 피울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더 나가 그러한 꼼수를 위법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걸 자신들의 직무처럼 여기는 듯하다.

정작 더 큰 문제는 국가가 최저임금산입범위를 대폭 확장해주고, 이렇게 최저임금법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짓을 '촛불정부' 들어와서 하고 있다는 거다. 적폐청산하라고 했더니 오히려 더 신박한 방식으로 적폐를 보장하는 정부다. 소득주도성장과 그 근간이 될 최저임금 1만원을 추진하면서 발생한 사업자들의 반발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일까.

'당연해석' '물론해석'이라는 법률의 해석방법이 어떤 사소한 예외도 없이 적용되어야 할 분야에서 이렇게 어이없는 행정해석을 해대는 정부가 과연 노동친화적 정부인지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정부는 대일무역전쟁을 빙자해 노동시간을 늘리고,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무산시키고, 이젠 최저임금법마저 무력화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래 노동운동이 거둔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3권 쟁취, 임금인상이라는 모든 성과물들을 다 퇴보시키고 있다. 이 정부에 더 이상 어떤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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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5 11:39 2020/01/1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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