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부 거부투쟁이 자유주의라고?

'바우'라는 아이디를 쓰시는 분이 행인의 이전 글(집나간 기풍이를 찾습니다)에 다음과 같은 리플을 달아 주셨다.

 

출근부에 대한 대항 논리가 자유주의군요.
자유주의와 변혁운동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출근부를 군바리정신에 연결시키시는데 이해 안갑니다. 저는 노동계급의 규율성에 연결이 됩니다.
출근부를 도입하기 전에 자각적인 규율성을 보이면 좋겠지만, 출근부가 무슨 자본가들의 경영기법을 도입한 거라 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면, 그건 너무 비약이 심한 거죠.

 

이분,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셨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행인, 분명히 앞의 글에서 출근부 거부투쟁을 했던 노동자들을 '자유주의자'라고 매도하지 말아줄 것을 부탁했었다. 그 부탁, 이 분은 눈으로 보고 그냥 삼켜버렸다. 자유주의에 대해 일일이 강의하는 것은 생략한다. 다만, 몇 가지 점에서 그냥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을 지적해보자.



당 게시판에서 '줌마' 라는 ID를 쓰시던 분이 출근부 찍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무규율은 우리의 사상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자유주의사상일 뿐 입니다. 노동계급의 사상은 강철같은 집단주의 정신이며 이것은 자발적 규율에 기초합니다"

 

이 '줌마'라는 분이 한 이 말을 들여다보면 이 분은 지금 자발적 규율과 자유주의를 상당히 혼동하면서 마치 완전히 다른 것인냥 말하고 있다. 이런 혼란을 '바우'라는 분도 보여주고 있다. "자유주의와 변혁운동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두 분 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아무튼 이 두 분의 주장에 따르자면 '자유주의'는 진보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척결해야할 무엇인가가 된다. 정말 그런가??

 

하기사 어찌 보면 '자유주의'의 의미를 자기 맘대로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일종의 '자유주의'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토론에 사용되는 용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싶다면 적어도 자신이 생각하는 용어의 정의를 따로 내려주어야 한다. 그것도 없이, 다른 사람들이 전부 주둥이와 목이 좁고 속이 넓으며 액체상태의 물질을 담을 수 있도록 제작된 용기를 '병'이라고 하는데, 세숫대야를 '병'이라고 우기면서 '병'에 대해 토론하자고 벅벅 우기면 서로 힘들어진다.

 

이 두 분, '자유주의'를 마치 '모든 것을 제 멋대로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런 거 '자유주의' 아니다. "노동계급의 규율성"을 강조하는 '바우'님이나 "자발적 규율"을 강조하시는 '줌마님'이나, 서구의 자유주의가 개혁교회의 규율성을 강조하는데서 발현했다거나 혹은 기존 카톨릭의 권위와는 별개의 강력한 절대군주제를 옹호하는 차원에서 이용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것 같다.

 

왜 이런 이야기 하냐고? 바로 '자유주의'라고 했던 기존 사상체계 역시 그 안에서 '바우'님이나 '줌마'님이 이야기하는 그 규율성 얼마든지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은 거다. 그래서 '자유주의'를 조심해야하는 거지, 출근부 찍는 거 반대하는 것이 자유주의가 아니다. '바우'님에게는 미안하지만 '출근부'로 대표되는 "규율"은 아무리 봐도 군바리 정신이지 노동자계급의 강철같은 규율성이 아니다.

 

이 분들이 착각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형식과 실질을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데서 출발한다. 이분들은 전형적으로 '형식'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방식은 도대체 우리가 생각하는 '노동해방'이 무엇인지를 헷갈리게 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규율'을 세워 출근부 사용하기 투쟁을 전개한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라인작업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자발적 규율'로 진행하고 '자발적 규율'을 통해 천삽뜨고 허리펴기 운동도 하고, '자발적 규율'을 정해 노동과정에서 절대로 사적인 요소가 개입되지 않도록 했다고 하자.

 

그거 자본가들이 바라는 세상이다. 자본가들이 바라는 노동의 형식이다. 즉, 인간으로서 노동자가 노동 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되는 그런 노동이 된다. 이걸 '자발적 규율'로 노동자들이 해야 하나? 그럼 도대체 노동자들이 바라는 '노동 해방'은 어떤 형태인가?

 

중요한 것은 형식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다. 강철같은 집단주의? 이거 엄청나게 위험한 말이다. 함께 힘을 합쳐야할 때 함께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것이 일상적 형태의 '집단주의'로 발현하는 것, 이거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집단주의' 생활화 하게 될 경우 나타나는 대표적인 폐단이 바로 학교에서 벌어지는 왕따현상이다. 얼마나 강철같이 강고한가? 다른 학생을 왕따하기 위해 지들끼리 뭉쳐서 만들어내는 그 집단주의. 경탄의 박수를 보내면서 따라하기 운동이라도 벌려야 하나?

 

강철같은 단결,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집단주의의 형태로 발현시키자고 함부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주장을 마구 하고 싶다보니 출근부 거부투쟁을 '자유주의'라고 이야기한다. 뭐에 대한 자유주의인가? 무엇을 위한 자유주의인가? 그거 '바우'나 '줌마'께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뭔가 이야기하시려면 납득이 갈 수 있게 이야기 좀 해주시면 좋겠다. 혼자만의 생각을 보편적인 것처럼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들 상당히 피곤해진다.

 

자, 전에 했던 이야기지만 다시 한 번 강고한 규율, 강철같은 단결로서 지켜내야 할 철의 규율이 가지는 몇 가지 형태를 알려드린다. 그 단결과 철의 규율을 확립하는 것이 바로 '당의 기풍'을 확립하는 것이다. 당의 기풍을 확립하기 위한 몇 가지 예는 다음과 같다.

 

당의 기풍을 확립하는 것은 당원 전체의 총의도 모으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완전폐지"당론을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로 바꿔치기하는 짓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당의 기풍을 확립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당원들을 열우당 2중대원으로 강제편입시키는 짓거리를 하지 않는 것이다.

 

당의 기풍을 확립하는 것은 전혀 개혁적이지 않은 열우당 4대 입법안을 "개혁입법"이라고 부르면서 "개혁공조"하는 뻘짓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당의 기풍을 확립하는 것은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구호 아래 장기적으로 부유세를 도입하려는 당론을 구체화하기 위해 마련된 진보적 조세정책들을 "대한민국 0.6%"의 반발이 무서워 폐기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당의 기풍을 확립하는 것은 집회 시위에 나가 마이크 잡고 연설하면서 청중동원을 위해 당직자들에게 "필참"이라는 단어가 첨부된 문자메시지를 날리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집회와 시위가 장기적으로 어떠한 기획과 전략을 위한 과정이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해내는 지도부의 치밀한 연구와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당의 기풍을 확립하는 것은 당 내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폭력행위가 있었음에도 이에 대해 온정주의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특정인물에 대한 징계철회를 요구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원칙을 세워 나가는 것이다.

 

당의 기풍을 확립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가져야할 이데올로기적 지향을 말하는 것에 대해 "종파주의"라는 색깔론을 덧입히는 짓거리들을 하지 않는 것이다.

 

출근부에 출퇴근 시간 기록하는 것을 '당의 기풍'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자꾸 그러면 기풍이가 점점 더 슬퍼한다. 출근부, 이거 자본가들의 경영기법을 도입한 거 맞다. 노동자들의 철의 규율과 전혀 관계 없다. 출근부, 이거 전형적인 군바리 정신의 발현이다. 노동해방의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정신상태에서는 이런 형식의 노동통제수단이 생성될 수 없다. '바우'님께는 미안하지만 '바우'님은 자유주의에 대해서 다시 확인을 하시고 말씀을 하시던지, '내가 생각하는 자유주의란 이런 것이다'라고 먼저 말씀을 좀 해주시던지 하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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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0 07:43 2005/01/10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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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5/01/10 16:40

    * 이 글은 행인의 [출근부 거부투쟁이 자유주의라고?] 에 덧붙인 글임 요새 그넘의 출근부때문에 참 많은 말을 하고 있다. 당게에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고 기가 막혀 몇자 올린

  1. 적극 동의 하며, 뻘소리 한마디 당의 기풍은 서기장이 만드나봐요. 씁쓸....

  2. 강철같은 집단주의 정신 + 자발적 규율에 기초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파시즘.. 쿨럭...

  3. 그나저나... 경제에서의 자유주의와 정치에서의 자유주의를 구분하지 못 하는 건 어째서... 도대체 어째서...

  4. 조커/ 너무 많은 것을 바라시면 실망이 커집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