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통합 정치개혁"의 허구성에 관하여

송영길이 며칠 전 "국민통합 정치개혁" 안이라는 걸 내놨다. 간만에 글 분석 한 번 해봐야겠다.

낡은 정치와 결별하겠다면서 시작한 글은 우선 반성의 염을 내놓고 있다. 위성정당을 만들었던 과오에 대해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개혁안을 만들고 실천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냥 자신들이 실천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정당들이 함께" 실천할 것을 제안한단다. 뭐여 이거, 시작부터.

요 대목이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건 자신들이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제안이기 때문이다. 제안이라는 건 대상이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제안이 현실화된다는 건 상대방들이 옳타꾸나 하고 합의를 해야 한다는 걸 전제한다. 제안을 했는데, 이 훌륭한 개혁안이 실패한다면? 그건 제안 받은 것들이 쌩까서인 거다. 퇴로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 대상은 누구인가? 더불류가 손을 내미려 하는 그 상대방은 어떤 면모의 주체들인가? "안철수 후보의 새로운 정치, 심상정 후보의 진보정치, 김동연 후보의 새로운 물결"이다. 송영길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들 각각의 다른 정치들은 더불류의 정치와 "같읕 방향을 향하고 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송영길과 더불류의 뇌피셜이고.

다시 한 번 명확한 건, 앞으로 제시되는 각종 개혁아는 더불류가 분골쇄신하여 실천해 나가겠다는 것이 아니고, "안철수 후보의 새로운 정치, 심상정 후보의 진보정치, 김동연 후보의 새로운 물결"에 제안하는 것일 뿐이며, 만일 이들 각 정치들이 제안을 받지 않거나 조건을 달게 되면 개혁이고 뭐고 그냥 안하면 그만이다. "쟤들이 우리 제안 안 받았어요." 이러면 끝.

이처럼 눈에 뻔히 보이는 구도임에도, 더불류를 옹호하면서, 어떻게든 이번 대선에서 저 파렴치한 검찰공화국의 재현은 막아야 하지 않느냐며 이재명을 찍자고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은 이 개혁안의 진정성을 믿어 달라고 요구한다. 하도 간곡히 요청하니 그 진정성이 정말 어느 정돈지 궁금하다. 그래서 내용을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만일 그 내용이 진정성을 담보할만한 것이라면, 믿어볼 수도...

자, 첫 번째 일성은 "국민통합정부"를 만들겠다는 거다. 그 최초 실천 방안은 "국무총리 국회추천제"도입과 "국민내각" 구성이다. 국무총리를 국회가 추천한다는 건 절차상 그리 어려운 건 아니다. 헌법이나 법률에 의한 제약도 없고, 마땅히 대통령이 자신의 고유권한 행사를 억제하고 국회의 추천을 용인하면 그뿐이다. 송영길의 '제안'처럼 법률을 만들어서 진행할 수도 있지만, 굳이 법률을 만들지 않아도 국회의 결의를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근데 될 턱이 있나.

기실 이런 방안은 적어도 국회 내에서 더불류 단독 혹은 우호적 정치세력과 합세해서 국회의 다수의석을 확보하고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소리다. 예를 들어 이재명 정권이 들어섰는데, 국민의힘이 추천하는 총리후보를 총리로 만든다? 이건 정권으로서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데, 실제 거의 가능하지도 않다. 현 상황에서는 그렇다. 왜냐하면, 국회 구성원 중 현재 스코어 더불류 및 반 국힘 의석이 2백 석이 넘는다. 이들이 굳이 국힘 추천 총리를 앉힐 이유도 없고 그걸 제어할 힘도 얼마든지 있다.

국민내각이라는 건 더 엉뚱한 소리다. 국민내각은 연립정부를 구성하겠다는 이야기다. 내각제 국가에서조차도 연립정부의 구성은 이념적 대립선의 정리, 정책에 대한 합의, 인적 구성에 대한 협의, 협치의 방향과 절차, 합의 파기시의 대응 등에 대한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당사자 간 의견의 교류와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냥 이번에 무슨 장관은 니네 당, 저쪽 장관은 너네 당 이런 식으로 자리 나누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여야정 정책협력위원회"라는 걸 만들겠다는 건 아마도 이런 "국민내각" 구성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겠다는 것인 듯한데, 거기 더해 대선공통공약을 중심으로 "국정기본계획"을 합의하고 국회에서 의결하겠다는데, 이럴 거면 차라리 내각제 개헌안을 제출하겠다는 게 훨씬 진정성 있는 제안이 아닐지.

기실 이러한 제안에는 자신들의 거대의석 유지와 반 국힘계열의 울며 겨자먹기식 동참이 전제되어 있다. 천년만년 자신들이 180석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정의당이나 국당 등이 세 불리하면 어쩔 수 없이 더불류와 함께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생각인지 모르겠다.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다. 이런 제안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국회법 개정해서 국회의원들의 국무위원 겸직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선언부터 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국무위원 다수를 국회에서 충원할 수 있는 지금의 시스템이라면, 국민내각이고 나발이고 결국 의원 쪽수 많은 정당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이건 뭐 내각제도 아니고 대통령제에서 의원들이 국무위원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총리를 의회에서 추천하는 게 뭔 의미가 있나?

다당제 구현을 위해 연동형 비례제, 권역별 비례제, 지방의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겠단다. 위성정당을 방지한다고? 어떻게? 안 하겠다가 아니라? 위성정당은 제도상으로 방지할 방법이 없다. 비례대표용 정당이 아닐지라도 방법은 많다. 정당법이나 선거법으로 제어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정치선진국들이 위성정당을 못만들게 하는 법이 없어서 위성정당이 없는 게 아니다. 그런 거 만드는 게 쪽팔린 줄 아니까 서로 안 만들고 있을 따름이다.

연동형 비례제 만들자고 했을 때, 더불류가 한 짓은 위성정당 만든 것만이 아니다. 비례대표 숫자를 늘리지 못하도록 이리꼬고 저리꼬면서 선거법 개정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그때는 안 되고 지금은 되는 이유가 뭔지 설명을 하지 못하는 한 송영길과 더불류의 진정성이라는 건 실감이 나지 않는 제안에 머문다.

게다가 지방의원 중대선거구제 법제화라는 것도 그렇다. 지금까지 기초의원 3인 이상 선거구를 계속 쪼개면서 2인선거구 내지 단순다수대표제로 바꿔온 게 누구인가? 다 더불류와 국힘 양당 아니었나? 이제와서 중대선거구 법제화를 내민다고 그 진정성이 느껴지겠는가? 게다가 이런 제안은 결국 앞서 송영길이 불러 외치던 "안철수 후보의 새로운 정치, 심상정 후보의 진보정치, 김동연 후보의 새로운 물결"에 대고, "너네들도 지방의원 만들 수 있게 해줄게"라는 것밖에 안 된다. 즉 다른 군소정당들에게 자리 나눠주겠다고 선심쓰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 어디 지방정치와 분권정치의 정신이 있는가? 이러면서 무슨 "자치분권 강화"와 "권력구조 민주화"를 이야기하나?

지방정치가 기성정당들의 자리 나눠먹기로 전락하고 있음을 대놓고 공언하는 게 송영길과 더불류의 정치다. 정말 송영길이 "세대, 성별, 계층, 지역 등 다양한 민심이 반영되는 선거제도를" 만들고 싶다면, 차라리 이번 지방선거부터 지역정당을 가능하게 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맞다. 지역에서 지역민의 민심이 반영되길 바란다면 기성 전국정당에게 자리 나눠주는 차원을 넘어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지만 송영길과 더불류는 그럴 의지도 없고 그럴 추진력도 없다.

뜬금 없는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 도입을 내놓았다. 그래, 뭐 앞의 것은 개헌사항이 분명하다. 하지만 4년 중임제라는 게 과연 그렇게 절실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재명이 당선되어 4년 후 재선도전했는데 낙마하면 그건 4년 중임이 아니라 4년 단임이다. 또는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무탈하게 초선 마치고 재선 도전해서 재선되면 이들이 8년 임기를 하게 된다. 이런 건 좀 대중들에게 설명을 해봤나? 그래 뭐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니 논외로 치자. 난 사실 대통령이 몇 년을 하든 중임을 하든 단임을 하든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대통령 결선이 헌법사항인가? 이 블로그에도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지만, 대통령 결선투표는 헌법사항이 아니다. 그건 법률 사항이다. 선거법으로 얼마든지 해결 가능하다. 일부 헌법학자들이 이를 헌법사항이라고 우기고 있는데, 얼마든지 그들의 논리는 깔끔하게 해결해줄 수 있다.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들을 해야지. 헌법에 있는 국회의 결선투표 사항은 지구상에서 벌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 일이 벌어졌을 때 어쩔 수 없이 국회가 하라는 것일 뿐, 통상적 상황에서 대통령 결선투표를 오로지 국회가 해야 한다고 규정한 게 아니다.

문통조차도 과거엔 이를 법률사항이라고 했었다. 나중에 대선 들어가면서 개헌사항이라고 말을 바꿨는데, 말 바꾼 경위도 납득이 되지 않지만 그 논리도 영 이상했다. 하고 싶으면 진작 작년에 선거법 개정해서 이번 대선부터 결선투표를 할 수 있었는데 왜 못했는가? 선호투표제를 도입하든지. 왜 못하는가? 개헌사항이라고? 웃기고 자빠졌다.

이렇듯 내용을 들여다봐도 이들이 말하는 국민통합 정치개혁의 진정성은 도대체 와 닿지를 않는다. 믿을 수가 없다. 한 두번 당하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때마다 당하는 건 모지리짓일 뿐이다. 진정성을 말하고자 한다면, 정말 진정어린 이야기를 내놓기 바란다. 그리고 '제안'을 할 게 아니라 실천을 해야 할 거다. 제안 따위 하지 않더라도, 진짜 이렇게 될 수 있도록 법안 내놓고 국회에서 막 논의하고 대중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면, 아 얘들이 이번엔 좀 다른데? 하면서 대중들이 다시 쳐다보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을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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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8 15:14 2022/02/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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