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정당을 만나고 싶은가?

언론사를 달리하는 기사들이 묘하게 맥락이 연결되어 같은 시기에 보도되는 것이 흥미로워서.

손호철 교수는 경향 칼럼에서 현재의 정치상황을 3김 시대로의 퇴행기가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손 교수가 말하는 3김 시대의 문제점은 사당(私黨)정치다. 3김이 당을 사유화하고 사조직처럼 운영했다는 거다. 정당정치가 망쪼가 들었던 시기라는 건데, 지금 윤석열의 국힘과 이재명의 더불을 보면 그 당시의 문제들이 중첩된다는 손 교수의 견해다.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9130300065#c2b

손 교수는 노통이 '탈사당정치'를 한 거의 유일한 대통령이라고 평가한다. 일응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노통 역시 본연의 정당정치를 구현한 대통령이라고 하긴 어렵다. 노통이 열우당을 '사당'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는 보이나, 열우당은 기실 노통의 팬클럽 정당이었고, 정권 말기엔 당은 당대로 혼란일색에 빠졌고,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당과는 별개의 길을 걸었다. 한마디로 여당이 없는 상황이 벌어졌더랬다. 이렇게 집권여당과 집권자가 따로 노는 걸 '사당화'가 아니었다는 것으로 위무하는 건 좀 뜬금없기는 하다. 뭐 그건 지금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니 넘어가고.

사당화현상, 즉 보스 중심체제의 정당구조가 온갖 잡음을 일으키는 데도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그냥 내내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DJ, YS가 40대 기수론 들고 나와 민주주의의 기수가 되었다고는 해도 자신의 당은 민주주의는 개뿔이나 사조직으로 운영했다는 비판은 정확하지만, 달랑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거치면서 '민주 vs 반민주' 구도가 형성되었고, 일인보스체제의 '반민주' 진영의 획일적이고 독랄한 권력행사에 맞선다는 명목으로 '민주'진영 역시 일사분란하고 효율적인 보스체제에 젖어들기가 쉬웠기에, '사당화' 현상은 그러한 차원에서 들여다볼 필요도 없지 않을 거다.

정작 관심을 가져야할 문제는 '사당화'가 초래한 정당 내부의 반민주성과 동시에 정당 외부에서 발현되는 부정적 효과다. 그건 바로 정책의 실종이다. 한국에서는 정책정당을 한다는 게 어렵다. 정책정당이라는 건 '사당화'된 당으로서는 추구하고 유지할 수 없는 이상일 뿐이다. 보스의 의지가 정당의 방침이 되어버리는 상황에서 정책정당이라는 건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다. 유권자들조차 정당의 정책이 아니라 그 정당 대빵이 오늘 뭔 소리를 했는지 정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십상이다. 당의 구성원들은 평상시엔 유권자들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이러저러한 정책을 이야기하다가도 막상 보스가 한 소리 하면 보스의 심기를 살피는데 전전긍긍하면서 정책이고 나발이고 보스의 심기보위를 위해 발을 뺀다. 여기에 무슨 정당의 이념이 있고 정책이 있나?

한겨레에서 대통령이 정책정당의 대표자가 될 수는 없는지 묻는다. 제목엔 '아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아마 현직 대통령을 겨냥한 표현이겠으나 그래도 진보언론이라고 하는 데서 '아들'이라는 단어를 기사 마빡에 붙이는 건 좀 깜 떨어지는 짓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간에, 대통령이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고 이를 주권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훌륭한 정치가 왜 부재한지에 대한 질문이 한겨레 기사의 요지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58308.html

기사에서는 한국의 정당들 중에 집권기 국가 비전과 중요 정책을 일상적으로 논의하거나 갖춰놓은 정당이 없다고 탄식을 하는데, 그런 현상이 벌어진 이유는 위 손호철 교수의 글에서 그 일단을 유추해볼 수 있다. 뭐하러 그 복잡하고 귀찮은 짓을 하겠나? 보스 한 마디면 모든 게 끝나는데.

정당과 대통령만이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을 둘러싼 사회 역시 대통령이 누가 될 건지에나 관심이 있었지 정책에 관심이 없었다고 지적하는데,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유권자의 입장에서도 보스가 맘 바뀌면 다 바뀌는 정책따위 관심가져봐야 피곤할 뿐인데, 그냥 윤석열이 뭐라 했는지 이재명이 뭔짓을 했는지나 관심을 가져도 선거치르는 데는 별반 문제가 없다.

이게 어제 오늘 생긴 일이 아니다. 어찌나 이런 현상이 골수에 박힌 것인지를 보려면 예컨대 87년 개헌때만 봐도 알 수 있다. 전두환이 집권 내내 개헌 없다고 큰소리 빡빡 치다가 86년에 은근슬쩍 개헌도 가능하지 않을지라고 했었는데, 그 바닥에는 내각제 개헌이 깔려 있었다. 쉽게 말해 대통령제를 고집하다가는 군부의 재집권이 어려울 수도 있고, 그렇다면 적어도 지분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내각제로 전환하되 실질적인 권력은 군부의 후예가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해보고자 했던 거. 그러다가 상황이 대통령직선제 개헌으로 정리되려 하자 87년 4.13 호헌조치를 선포했다가 된통 두드려 맞았고.

6월 항쟁과 7.8.9 노동자 대투쟁 과정에서 개헌이 본격 논의되었는데, 이땐 군부 역시 대통령직선제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깔고 개헌논의에 참여했는데, 이 과정에서 3김이 분열양상을 보였고, 그렇게 야권이 표를 갈라먹으면 해볼만하다는 계산이 깔리자 군부쪽에서도 냉큼 직선제를 받고 5년 단임제, 부통령 없음 등을 받았다. 여기서 중요한 게 결국 이 아사리판이 벌어진 저변에는 보스들이 대통령 한 번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지 정당정치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는 거다. 개헌논의 내내 정당관련해서는 거의 논의가 없었고, 다만 통일민주당이 위헌정당해산제도를 없애는 안을 잠깐 비친 게 다다.

이런 역사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정책정당이라는 건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이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이넨셜 뉴스에서는 스웨덴의 정당중심선거를 소개하면서 스웨덴에서 정책정당의 이상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보도했다.

https://www.fnnews.com/news/202209121447312894

100%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스웨덴에서는 지역구 선거제인 한국보다 인물중심이 아닌 정책중심의 선거가 치러진다고 한다. 그러면서 선거시기 스웨덴의 각 정당이 얼마나 정책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유권자들이 이에 반응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좋겠다...

일단, 이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제도적으로 비례대표제가 가지는 강점이다. 인물보다는 정당이 중심이 될 수 있다. 여기라고 해서 명망가가 불필요한 건 아니고, 정당의 리더십이라는 게 인물 없이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선거관련 법률이 정당정치의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고 낮출 수도 있음을 스웨덴과 한국을 비교함으로써 일정하게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런데 정책정당은 선거시기에만 유효한 게 아니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기본적으로 정당 자체가 사당화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정당의 구조와 노력이 유권자들에게 익숙해야 한다. 한국처럼 양당제 체제가 고착된 상태에서 보스만 되면 당을 제 뜻대로 주물럭거리며 권좌를 만끽할 수 있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사당화를 위한 경쟁만이 필요할 뿐이고, 당내 민주화나 유권자들을 향한 정책적 접근 따윈 그냥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정책정당이 가능하기 위해선 스웨덴처럼 정당을 설립하고 정당을 통한 정치활동을 하는 것이 자유로워야 한다. 일단 스웨덴은 헌법에 정당의 구성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정당에 대한 정의는 특이하게 정부조직법에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정당은 조직의 이름을 걸고 선거에 참여하는 모든 단체 또는 유권자 그룹을 의미한다. 그래서 정당의 등록이라는 게 별 게 아니고, 선거시기에 참여하려는 선거의 종류를 표시하여 선거에 참여하겠다는 신청을 하면 한국으로 치자면 정당의 대우를 받는다.

따라서 지역정당이 활동하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다. 선거시기 해당 지역의 선거에 참여한다는 취지로 자기 조직의 명칭을 걸고 등록하면 정당으로 취급된다. 해당 선거에서 전국정당과 어떤 차별도 받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선거에 나서는 정당은 비전과 정책을 걸고 타 정당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전과 정책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면서 유권자에게 인정되어야 하며, 지지의 확장성을 확보하기 위해 날로 정교해지고 실천적이어야 한다.

정책정당이 가능하기 위해선 정당 간의 민주적이고 활발한 경쟁이 보장되어야 한다. 비전과 정책의 차이가 끈질기게 설명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스웨덴에서 정책정당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는 건 결국 인물 중심 보스체제만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이해의 바탕 위에서 한국의 보스정치를 극복할 대안이 논의될 수 있을 거고.

그런 차원에서, 현재의 정치관계법 구조 속에서는 정당구조가 사당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채 유지될 수밖에 없다고 봐야 한다. 3김 시대로의 퇴행이 아니라 이 체제는 원래 그랬던 거고, 이걸 그냥 두면 앞으로도 그대로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윤석열만 정책정당의 대표자가 될 수 없는 게 아니라, 한국 대통령은 정책정당 따위 별로 필요를 느낄 이유도 없는 거다. 그 결과 스웨덴 식의 정당정치는 현재의 제도구성 하에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밖엔 안 된다.

추석도 지나고 했으니, 다시 지역정당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6월 지방선거 끝난지가 불과 3개월 남짓 지났는데, 언론에서는 지역정당을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역정당에 대한 논의는 많이 커져 있고, 이제 본격적으로 실질적인 주체형성의 과정에 들어서고 있다. 정당의 사당화가 우려된다면, 정책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제 다들 지역정당에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스웨덴만 정책정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직접 한 번 만들어들 보면 좋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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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3 11:09 2022/09/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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