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헌법학자'의 질문에 대한 간단한 답변

헌법/법을 보는 관점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함. 헌법관에 차이가 있어 헌법을 바라보는 관점, 헌법학에 대한 태도가 달라 논의의 접점이 가능할지 의문. 기본적으로 실정법(현행 헌법)의 규정을 당위적 기준으로 놓고 거기서부터 논의의 출발을 요구하는 헌법관에는 동의하기가 곤란함. 다만, 헌법관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건 지역정당 논의의 범위를 지나치게 초월하게 되므로 지양하도록 함. 따라서 제기된 주장을 중심으로 논의를 함

(1) 헌법의 규범력을 부인하는 것이 아닌 한 '지방자치의 진정한 이념 이상 실현'에 관한 공약수를 헌법상 지방자치의 이념으로부터 출발

헌법 제117조 제1항의 문제

① 해석차원에서는 별다른 이의는 없음. (다만, "단계화된 민주주의"는 어떤 민주주의를 의미하는지? 절차적 차이를 얘기하는 것인가요?)

② '헌법상 지방자치의 이념으로부터 출발' : 헌법에 지방자치의 이념은 명시적으로 규정되지 않았고, 따라서 '지방자치의 이념'은 헌법이 정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원리, 공화주의의 원리, 법치주의의 원리, 기본권 보장의 원리를 근거로 자치분권의 원리를 도출하고 이를 지방자치의 이념으로 개념화하는 것임. 김해원 교수가 정리한 지방자치의 이념이라는 것은 이러한 원리를 통해 헌법재판소가 확인한 개념으로서 해석의 내용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으나, 이를 마치 헌법의 규범구조에서 당연히 인지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험함.

(2) '정치공동체'의 상은 나중에 책이 나오면 그때 다시 논의 : "권력과 제도 이면에 도사린 정치공동체의 심성구조 및 신념체계"는 매우 궁금. 

(3) 이상적인 정당제도 : 이상적인 정당제도를 헌법에서 출발한다고 할지라도, 헌법은 기본적으로 정당 설립의 자유, 정당 활동의 자유, 복수정당 보장을 선언하고 있으며(헌법 제8조 제1항), 정당의 활동을 보조하기 위해 국가가 재정적 지원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과(헌법 제8조 제3항), 그 외의 조문은 다만 국체를 위협하거나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조직은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일 뿐임(헌법 제8조 제2항, 제4항)

여기서 헌법 해석적, 혹은 헌법 이전에 정치적 자유라는 기본권의 의미와 원칙을 검토하여 정당이 어떠할 수 있다는 것은 추상적으로 유추할 수 있지만, '이상적인 정당'의 형태 혹은 '이상적인 정당제도'는 헌법의 규정으로부터 자동으로 추출되는 것이 아님. 따라서 현행 헌법 제8조의 구조가 '이상적인 정당제도' 또는 그러한 제도를 전제하는 규정이라고 볼 이유도 없고, 더군다나 정당법이 '이상적인 정당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법률이라는 판단은 법실증주의적 도그마틱일 뿐이며, 다른 헌법적 해석의 여지를 배제한다는 측면에서 독단적인 해석론임.

특히 현행 정당법이 헌법이 위임한 범위를 초월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특히 헌법재판소가 헌법을 근거로 정당법의 합헌성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당법의 규율을 근거로 헌법의 원리를 꿰어 맞추는 판결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임

예를 들어, 한수웅, 2008, "정당의 개념과 정당등록제도의 헌법적 문제점: 헌재 2006.3.30. 2004헌마246 결정에 대한 판례평석을 중심으로", 저스티스 104호, 한국법학원.

또는 페이스북의 김종서 교수의 글 참조

https://www.facebook.com/jongseo.kim.9634/posts/pfbid02oKsNp4hdA9ADxixEQvT7WqZNFUiEi2r4dNh19ZuCiDRZHA7uvLmBAbBCeQjoLXFil?__cft__[0]=AZWvhTMokhHXmnCDapTJmTOkmRSWHJqDgI9-SVTTs-rZmsRXNNjD1p3K0G2_gO_s6lwZ5Hn_cYJbXClFVAZlgID2tn8qlYV3hVS20oVJ-sK84y-bZqwBtTajNbSb3UzjsJg&__tn__=%2CO%2CP-R

(4) 공직선거법 제47조 제1항 제1문과 지역정당의 문제

비교법적으로 각국의 정당관련 법제를 검토하면, 헌법에 정당관련 규정을 두고 있는 나라/두고 있지 않은 나라가 있고, 정당법이라는 별도의 법률을 두고 있는 나라/두고 있지 않은 나라가 있으며, 여러 측면에서 정당을 규율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 그러나 그렇게 다양한 정당관련 규율 중에서도 반드시 공통된 부분이 있는 바, 그것은 정당은(반합/비합 지하정당이 아닌 한) 공직선거에 후보를 내는 것을 일종의 권리이자 의무로 하고 있다는 것임

현행 선거법 제47조 제1항 제1문은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정당의 표지 중 하나로 인정하고 있는 공직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규정한 것에 불과함.

그런데 한국에서 발생하는 독특한 문제점은 전국정당, 특히 거대보수양당이 기초의원 선거에까지 공천을 함으로써 중앙정치에 지역정치를 종속시키는 현상이 심화되어 있기 때문에 기초의원 선거에서만큼은 정당공천을 배제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는 주장과 같이 정당공천을 없애는 것임.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은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정당의 표지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정당의 선거참여를 원천봉쇄하는 것임. 

구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47조 ① "정당은 선거(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를 제외한다)에 있어 ~" 부분과 제84조 "자치구·시·군의회의원선거의 후보자와 무소속후보자는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받음을 표방할 수 없다." 규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이 규정이 선거참여자의 각종 기본권을 해치고 유권자의 알권리까지 해치는 반면 정당을 표방하지 못하도록 해서 얻는 실익이 무용하다는 취지로 판단하면서, 특히 각국의 사례를 거론하며 정당배제 같은 미봉책은 정당참여의 역기능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순기능까지 없애는 것이라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시한 바 있음(헌재 2003.1.30. 2001헌가4 결정)

정당법(및 각종 정치관계법)에 있어서 소극적 해석의 원칙을 견지하는 헌재로서는 이례적인 이 판결은, 헌재조차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지방선거에 정당참여를 배제하는 것이 부당했기 때문이었음.

그렇다면, 기초의원선거에 정당공천제를 없애는 것이 방법이 아니라, 지금과 같이 거대 보수양당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형태의 정당공천을 해소하면서도 정당공천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순리임. 지역정당은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제기되는 가장 효과적이고 원칙적인 대안임. 지역정당도 공천하고 전국정당도 공천하면서 정당 간 정책과 인물을 겨루는 경쟁을 보장하고, 다양한 정치세력이 유권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을 때 현재의 문제가 해소될 수 있는 것임

이렇게 보자면, 정당공천제를 폐기하는 것이야말로 공직선거법 제47조와의 '직접대결'을 회피하면서 편의적으로 우회로를 찾는 것일 뿐이고, 오히려 지역정당을 통해 전국정당과 경쟁하는 후보공천과 선거운동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현재의 부조리와 직접 대결하는 방법이라고 할 것임

(5) 지역정당 허용으로 인한 정당의 난립과 부작용의 문제

위 답변들로 갈음함

(6) 지방정당/지역정당 용어에 대하여

두 용어 모두 local party의 번역어로서 가능함. 따라서 향후의 논의를 통해 어떤 명칭이 더 현실정합적이며 그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는지를 판단하여 결정할 수 있을 것임

다만, 현재 지역정당을 논하는 대부분의 학자/전문가들은 지방정당이라는 용어보다는 지역정당이라는 용어를 통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 역시 2004헌마246 결정문에서 지역정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등, 학술적 및 실무적으로 지역정당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있는만큼, 지방정당이라는 용어가 헌법상 표기되어 있는 '지방'이라는 명시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일반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선명한 이론구성과 적극적인 대중화작업이 있어야 할 것임.

그렇다면 굳이 '논증부담의무'를 누가 질 것인지 따지자면, "가급적 이미 합의된 표현과 용어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마땅"하거니와, 그럼으로써 굳이 지방정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보다 활발하게 논의의 장으로 이 용어를 끌어 올리는 작업을 지방정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하시는 쪽에서 기획하고 실현해야 할 것임. 

(7) 주민과 국민의 분열과 분별

지난번 답변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함. 문제를 제기하신 분이 이야기하는 '정치적 자해행위'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라면 얼마든지 용인할 수 있는 내용이며, 그 표현을 대선에서 하든 총선에서 하든 지선에서 하든 이를 어디서 하면 되고 어디서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나눌 필요가 없음. 왜냐하면, 그러한 선전홍보를 보고 판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유권자이며, 유권자의 합리적이 자율적인 판단에 따르면 되는 일을 국가가 법을 정해 규율하는 것은 과도한 기본권 침해일 뿐임

(8) 정당은 개념성 '국민'의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문제

'주민vs국민' & '주민=국민'이라는 변증법적 상호관계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면, 지역정당이든 전국정당이든 그 주체와 대상이 언제든 국민일 수도 있고 주민일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선 분리하여 사고해야 할 때가 있고 때로는 같은 선상에서 생각해야 할 때가 있을 것임. 이를 관념적으로 구분하여 별개의 주체로 사고하는 것은 도식적 관념의 과잉일 뿐임

(9) 독일의 경우

바로 이 부분에서 독일의 경우를 "정당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임. 애초에 독일은 지역정당에 대해선 별도의 법적 규율을 하지 않고 있으며, 그러한 측면에서 그것이 정당이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고 정치적 참여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이를 정치적 결사체의 실체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임. 이것을 두고 정당으로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식의 판단을 묻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그렇다면 한국도 그렇게 하면 그뿐임. 선거인단체가 되었든 유권자 단체가 되었든 선거에 입후보를 하며 이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지는 조직이면 되는 것임. 일본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지역정당을 인정하는 것이며, 문제제기하신 분이 정 원하신다면 지역정당이라고 할 필요 없이 지역적 유권자단체라고 하든 아무 상관이 없음. 다만 지금까지 논의된 경과가 있기에 이를 '지역정당'이라고 하는 것일 뿐임.

이처럼 정당은 법이 있든 없든 그 정치결사로서의 지위와 권리가 보장될 수 있음. 그리고 바로 그러한 지점에서 다수 헌법학자나 정치학자의 이론정립 및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통해 '국민(주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결사체'가 정당의 표지 중 하나로 인정되는 것임. 그럼에도 이를 "헌법상 정당개념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오로지 헌법에서 말하는 '국민'만이 정당의 주체 혹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만 나올 수 있는 독특한 관점이라 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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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4 15:46 2022/07/0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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