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로또 혹은 바다이야기 축구

연말 가면 으례 그렇듯이 올해의 10대 사건 어쩌구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사고들을 정리하는 모습들이 흔히 보인다. 북핵시험이라는 초강력 장엄무쌍한 사건이 일어남에 따라 아마도 이 건이 몇대 사건을 누가 들던 간에 No. 1은 먹고 들어갈 것 같다.

보라, 숭고한 자위권 행사를 위해 분출하는 저 버섯구름을...

오르가즘이 느껴지지 않는가? 핵핵핵...

 
한편 몇 위가 되었건 간에 어디든지 꼭 낄만한 사건으로 세간을 떠들썩 하게 했던 "바다이야기" 사건을 들 수 있겠다. 게임이라는 명목 하에 사행산업을 성행하도록 방치했던 정부의 안이함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었고, 이 땅에 얼마나 심각한 한탕주의가 성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으며, 결국 돈 버는 넘은 도박장 주인이라는 사실과 그넘들이 번 돈이 실은 없는 살림 거덜내며 한 판 땡기러 갔던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나간 것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었다.
 
도박의 묘미(?)는 우연성에 있다. 확률의 게임이라고도 하지만 도박을 "확률의 게임"으로 삼을 수 있는 도박사들은 결코 확률이 나오진 않는 상황에서 집문서 갖다 바치는 짓은 하지 않는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그 훌륭한 도박사들은 지돈 뿌리면서 도박하지 않는다는 거다. 어쨌든, 인간에게 극단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그 희박한 우연성에 중독된 사람들은 도박의 맛에 빠지게 되고 결국 치료를 요하는 도박'병'에 시달리게 된다.
 
로또를 보자. 국가공인 도박인 로또를 위해 오늘도 서민들의 주머니에선 돈이 빠져 나간다. 물론 백만장자 억만장자라고 해서 로또 하지 말란 법도 없고 실제 즐기는 사람도 많을 거다. 그러나 재산이 수백억 있는 사람이 돈만원어치 로또 긁어봐야 집구석에 빈자리 생기는 것도 아니고 횡재수 들어서 대박 터져봐야 재산규모가 하루 아침에 제비 덕에 팔자고친 흥부짝이 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당치기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에게 있어 돈만원은 식구들의 하루 밥값일 수도 있다. 돼지꿈 꾸고 일확천금에 당첨되면 살림 확 피는 수도 있지만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일주일이 행복"한 상태로 자기최면에 빠져 현실을 도피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혹여 대량매수하면 그 중 뭐 하나라도 맞지 않겠나 하고 연신 돈 갖다 퍼붓다가는 "거지꼴을 못 면한다."

로또!

뭐 결국 이렇게 되는 거다. (이미지 제공 조커님)

 

우연성에 의존해 이루어지는 일들이 물론 도박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인생이란 거,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던데 그런 거야 사람 운명을 지 멋대로 정해놓은 빌어먹을 어떤 넘이나 알고 있는 거지 현재에 실존을 두고 삶을 진행해나가는 미욱한 중생들이야 눈 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지가 세운 계획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체적 의지로 정해놓은 수순보다 사실 얼마나 더 많은 우연 속에 우리는 살고 있는가?

 

스포츠 역시 어느 정도는 우연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분야다. 얼마전 내기골프가 도박인지 여부가 재판의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었던 사건에서 한 판사는 골프는 선수 개인의 기량과 그 기량을 쌓기 위한 연습이 주가 되는 것으로서 고스톱처럼 우연에 기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기골프를 도박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하게 되었다. 얼핏 참신한 발상인듯 하지만 도박의 범주에는 경기의 결과를 가지고 내기를 하는 것 역시 일종의 도박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이 판사께서는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알았으면서도 쌩깐 건지 잘 모르겠다.

 

미셸 위가 그린을 향해 힘차게 쳐올린 공이 정확하게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확률은 과연 몇 %나 될까? 거리와 바람과 잔디의 상태 일체를 꼼꼼하게 첵크하고 공을 날렸는데, 하늘 높이 공이 솟아오른 그 순간 마침 일진광풍이 휙 하고 지나가면 그 공은 어디로 날아갈까? 굉장히 궁금한데 혹시 이쪽 방면에 전문가 계시면 좀 알려주셨으면 한다. 어쨌든 하고자픈 말은 스포츠에서도 우연이라는 것은 존재하며, 그 우연성이라는 것을 최대한 비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연습을 통한 기량의 충전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기량이고 전술이고 나발이고 뽕이고 방구고 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우연에 기대 경기를 운영한다면 그건 이미 스포츠가 아니라 도박이다. 로또다. 바다이야기다.

 

원톱을 내세운 4-4-1-1 또는 4-3-2-1 포메이션. 요즘 원톱을 세우고 미드필더들을 최대한 가동해서 공격적인 축구를 하는 것이 일종의 트랜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2006 월드컵에서 에릭손이 지휘한 잉글랜드 대표팀은 8강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루니를 원톱으로 내세우고 강력한 미드필더를 운용하며 4강의 꿈을 불태웠다.

 

그러나 경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제라드, 베컴, 램파드 등 그 이름만으로도 중원을 장악할듯한 잉글랜드 대표팀은 종횡무진 경기장을 누볐지만 번번히 골대는 그들의 공을 피해갔다. 결국 후반 17분경 루니가 퇴장당하고 전방공격수로 크라우치가 들어가는 대신 조콜이 빠져야 했다. 결과는 무승부. 승부차기 끝에 잉글랜드는 포르투갈에 무릎을 꿇고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고, 포르투갈은 66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컵 4강에 진입하게 되었다.

 

에릭손의 전술은 그다지 적절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경기결과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전반에 걸쳐 원톱으로 내세운 루니가 미드필더진과 효과적인 공격을 진행하지 못했고, 미드필더들은 포르투갈의 거친 압박에 밀리면서 슛 찬스를 많이 만들지 못했다. 날카로운 슛들이 있었으나 아깝게 골대를 빗겨나가거나 수비에 막혀 골대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의 미드필더진은 원톱이라는 포메이션을 십분 이해하면서 '창조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슛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공할만한 위력을 가진 중거리 슛을 날렸으며, 루니에게 수비수들이 몰릴 때 비어 있는 뒷공간을 파고드는 선수에게 절묘한 패스를 넘겨주는 장면을 여러번 보여주었다.

 

무링요가 2005-2006시즌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전개했던 전술 중 매우 효과적으로 먹혀들어갔던 전술이 원톱을 내세운 것이었고, 프리미어쉽에서 이러한 전술운용의 효과를 보아왔던 에릭손은 이 전술을 차용해 월드컵 본선을 준비했던 것 같다. 그러나 대인압박이 월드컵 본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통하던 전술을 그대로 월드컵 본선에서 이용하려고 했던 것은 작전미스가 아니었던가 한다.

 

루니가 퇴장당하던 순간 멘유에서 한솥밥을 먹던 호날두가 주심에게 경고어필을 하자 루니가 달려들어 밀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후 언론은 루니와 호날두가 철천지 원수가 된 것처럼 떠들어댔고, 멘유에서 호날두가 버틸 수 있을까 어쩌구 입방정을 떨었다. 안정환이 2002년 월드컵 16강에서 역전 헤딩골로 이탈리아를 잠재우자 세리에아 소속팀에서 완전 찬밥신세를 만들었고, 이탈리아 그 활화산 같은 팬들의 욕지거리가 되었다가 결국 방출당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보니 그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결국 찌라시들 입방정으로 막을 내렸고, 루니와 호날두 지금도 사이좋게 공 잘 차고 있다.

 

암튼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원톱시스템이 가지는 장점이라는 것은 바로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미드필더를 운용하면서 보다 강력한 공격지향적 전술을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잉글랜드 대표팀의 원톱을 이야기하면서 미드필더들의 '창조적' 플레이를 이야기했지만 원톱시스템에서 이 창조적 플레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다.

 

국가대표건 어디건 간에 원톱으로 나올 수 있는 선수는 그 팀의 에이스임에 분명하다. 당연히 상대팀의 집중견제를 받게 되어있다. 따라서 원톱이 서있다고 해서 항상 그 원톱에게 공을 돌리다가는 원톱으로 서 있는 선수가 공을 잡을 확률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쉽게 이야기해서 한 공격수 주변에 서너명의 수비수가 밀집되어 있는 상황일 때 그곳에 공을 주면 공격수가 공을 잡을 확률이 3분의 1 내지 4분의 1로 떨어지는 것이 확률이라는 거다.

 

이 경우 미드필더는 보다 기민하게 수비수가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움직여야 하고, 공을 배급해주는 선수는 때에 따라서 원톱이 아닌 다른 선수들에게 적절한 기회를 마련해줄 수 있어야 한다. 똑같은 숫자의 선수들이 편을 나누어 뛰고 있는 것이기에 원톱 한 명에게 서너명의 선수가 붙어 있을 경우 다른 선수들은 그만큼 빈 공간을 많이 차지할 수 있다. 그게 확률이다.

 

10월 11일에 있었던 아시안컵 지역예선 한국 대 시리아와의 경기에서 국대가 보여준 경기운영방식은 완전 로또 축구였다. 바다이야기 축구였다.

 

원톱 조재진을 앞에 두고 좌성국 우기현은 조재진의 머리로 공을 띄우기 바빴고, 윙포워드들 뿐만 아니라 윙백이었던 좌영표 우종국 역시 마찬가지 공배급에 급급했다. 슛찬스를 만드는데 지나치게 신중했던 김두현은 특유의 중거리 슛 한 번 제대로 날려보질 못하고 번번히 수비수들에게 막혔다.

 

조재진에게는 항상 서너명의 수비수들이 밀집된 형태로 붙어 있었다. 그렇다면 양쪽 윙이나 다른 미드필더들은 조재진의 머리에만 맞추어 공을 넘겨줄 생각보다는 빈 지역을 활용하는 다른 선수들에게 시기에 맞춰 공을 전달하는 센스를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불과 몇 번에 그쳤고, 아주 단순하게도 조재진의 머리만을 향해 공을 날리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말았다.

 

시리아 선수들이 아무리 아시안 게임 대표급으로 구성되어 1진으로 보기 어렵다고 할지라도 이 단순한 전술의 구사를 모르고 지나칠리가 없다. 결국 1골 넣고 1골 먹은 후 시리아는 효과적으로 수비를 할 수 있었고, 공 점유율 70%에 육박하는 공격력을 보였음에도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한 국대는 본선진출을 확정지었다는 정도로 만족하면서 경기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베어백이 이야기하는 '창조적 플레이'가 아직 한국 국대에 정착될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았다고 보고 싶다. 그러나 대만전에서 보여줬던 그 뻥축구를 시리아전에서도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은 전술운용에 있어 뭔가 아귀가 제대로 맞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란전에서 보여줬던 그 박력과 집중력 역시 보이지 않았다.

 

확률을 무시한 채 어쩌다 하나 들어가겠거니 하는 것처럼 원톱 머리에다만 공을 쏴대는 것. 이거 어째 고래 떠라 상어 떠라 하면서 줄담배 피워물고 앉아 땡기고 있는 바다이야기 폐인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는 원톱 자리에 조재진 아니라 루니를 갖다 놔도 별반 상황이 좋아질 것 같지 않다. 감독의 전술을 선수들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것 같아 왠지 찜찜하다. 뭐 갈수록 나아질 거라고 믿고는 있다만...

 

결론은 로또 혹은 바다이야기 축구는 이제 좀 그만 봤으면 한다는 거다...쯥...

 

덧 : 후반전 진행 중 이영표가 걷어내려고 했던 공에 정수리를 직통으로 맞고 기절했던 시리아 선수, 다행히 곧 정신을 차렸다고는 하는데 별 이상이 없었으면 좋겠다. 영표가 찬 공, 그거 시리아 선수 맞는 순간 어이쿠, 저거 굉장히 아프겠는 걸, 했는데 사지가 축 늘어진 거 보고 걱정 많이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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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2 02:43 2006/10/12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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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리아전... 새벽에 뉴스로 확인하고 완전 안타까움이더군요 ㅠ_ㅠ

  2. 역시 자랑스럽지 않아요?
    똥볼과 문전처리 미숙이라는 우리나라 축구의 진수를 그대로 보여줬으니...ㅎㅎ

  3.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 좋은 팀 - 혹은, 강팀은 완벽한 팀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된 평균 실력을 보일 수 있는 팀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사실 야구에서 안타도 그렇고 축구에서 골도 사실은 거의 운에 의한 우연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 그 우연에만 목을 메는 것이 ... 복지를 기대할 수 없는 사회에서 운빨 - 로또나 바다이야기에 의지하는 현실이나 피차일반이라는 생각이 ... 듭니다.

  4. 에밀리오/ 안타까움까지야... ^^;;;

    산오리/ 진수를 보여준 거야 선배들의 얼을 이어받은 거라고 치더라도 자랑스럽진 않더군요. ㅎㅎ

    손윤/ 그렇죠. 운빨에 의지하는 팀, 이거 절대 강팀이 될 수 없죠. 안정적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비극일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뚜드려 맞으면서 배운 탓이 더 큰 거 같아요. 감독이 지시내린 그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잘해도 쪼인트 까지는 그런 것이 초중등 체육에서 벌어지는 현상... 아직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쩝...

  5. 손윤/맞어요, 축구 너무 운에 좌우되요...
    그래서, 축구골대 크기를 지금보다 좌우, 높이 모두 1미터씩 늘이면 좀 재밋는 경기가 될거 같은데, 왜 이걸 안하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