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면전환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앞서 애국 어르신들의 당사 앞 집회와 관련한 글 말미에 지금 상황이 위기가 아닌 기회라고 이야기한 바가 있다. 이에 대해 풀소리님과 너부리님이 "진정한 보혁구도"에 대해 언급을 하셨고, 따로 생각한 바가 있어 간단히 정리를 해본다.

 

열우당, 지금 난리가 났다.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드니 어쩌니 하더니 앞으로 100일이나 더 갈지 모르겠다. 노무현이라는 포장지로 개혁이라는 낚시밥을 싸서 던졌던 것이 처음엔 유효했고, 탄핵정국과 맞물려서 거대여당을 만들어내는 소기의 목적달성마저 거두었더랬다. 그러나, 포장지에 싼 낚시밥이 말 그대로 낚시밥에 불과했고, 물에 풀어진 낚시대 끝에 개혁이고 나발이고 아무 것도 걸려 있는 것이 없었다는 사실은 이미 2004년 거대 여당 열우당의 과반수 의석 이후에 확인된 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읍소정치, 구걸정치를 하면서 긁어 모았던 오만 잡탕들이 '개혁'이라는 깃발을 너나 할 것 없이 들고 그 아래서 온갖 구태의연한 냄새나는 짓거리들을 하고 있다보니 거기서 개혁 커녕 쥐뿔도 나올 것이 원천적으로 없는 거였다. 본색이 다 드러나고, 총선 이후 야당과의 경합에서 40전 전패라는 놀랄만한 성과를 거둔 열우당이 이제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다는 것은 이미 왠만한 사람들이라면 다 예견했던 바다.

 

노무현이 죽어도 민주당하고는 같이 못한다고 버티기를 하는듯 한데, 이 사람잡을 선무당은 지가 무슨 DJ급 쯤 되는줄 알고 착각을 하는 거다. 실질적으로 이 땅에 "노심"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노무현과 황건적 일당들만 그런 게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을 뿐이다.

 

정계개편이 어떻게 되던 노회한 정치꾼들의 이합집산하던 역사를 반복하는 것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과적으로 완전 수구정당 한나라당과 수구색깔에서 조금 빠지는 보수정당 "기타 등등" 당이 만들어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모로 가도 지들끼리 얼키고 설킨 상황에선 그놈이 그놈일 뿐인 거다. 이제 이 땅 정치지형에서는 보수진영이 완성되는 순간이 도래했다.

 

문제는 그 반대편에 있다. 지금 이 시기는 사실 진보좌파들에겐 최적의 기회이다. 아마 지금까지도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이렇게 적절한 기회는 다시 찾아오기 어려울 것이다. 보수진영에 대당하는 진보진영의 형성, 이게 유효적절하게 외부에 보여질 수 있는 상황이 도래했다. 그 도래가 비록 북핵시험과 '간첩단' 사건으로 인해 유발된 것일지라도 말이다. 아닌 말로 조중동이 민주노동당에게 이토록 각을 잡고 날을 세운 적이 언제 있었는가? 한나라당, 열우당의 대척점에 민주노동당을 세워 놓았던 적이 있었는가?

 

언제나 민주노동당은 열우당과 같이 한쪽 편으로 다루어져 왔다.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으나 이 땅의 수구 언론들은 매우 노련하게도 그런 식의 짝짓기가 여론을 호도하는데 더 없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 관계를 극복하기 위한 민주노동당의 노력은 그동안 매우 부질없는 짓처럼 보였다. 황달에 걸린 것처럼 누렇게 뜬 열우당의 빛깔 뒤에서 민주노동당은 마치 잊혀진 존재처럼 의도적으로 외면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언론은 열우당을 갈고 씹었던 칼날을 민주노동당으로 돌렸다. 어차피 자중지란에 쌍코피가 터지도록 치고 박는 열우당은 그만 씹어도 지들이 알아서 무너져 내리게 되어 있는데다가 사실 더 씹을래도 씹을 거리가 없다. 노무현이 욕도 하루 이틀이지...

 

이 참에 나타난 호재가 바로 민주노동당이다. 이제 민주노동당을 씹으면 사건이 된다. 그러다보니 일년 내내 가봐야 그 이름 다섯 글자도 변변히 신문지상에 올라가지 못했던 민주노동당이 최근 한 달 새에 정신이 나갈 정도로 언론에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 아직은 북핵이나 간첩단 사건으로 인해 마치 민주노동당이 일심회 본부처럼 이야기되는 선에서 언론의 씹힘을 당하고 있지만, 이 때 어떤 정치적 수순을 밟느냐에 따라 아예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대립구조가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위기가 오히려 기회라는 거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민주노동당은 이 기회를 포착하고 있는 건가? 아직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위기의식에만 사로잡혀 기회가 도래했다는 사실조차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이도 보인다. 뻔히 보이는 기회를 놓쳐버리는 일조차 비일비재하다. 사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언론에서 눈길 좀 주고 말빨 좀 세울 줄 아는 스피커들이 신나게 한 판 굿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굿판 벌여야할 판수들이 지금 전부 평양에 가 있다. 가서 뭐하고 있냐고? 안 봐도 그림이지 뭘...

 

항상 위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바로 그러한 관성으로 인해 위기담론으로 위축된 눈길로 사방 눈치나 보고 있는 한 기회는 보이지 않게 된다. 당 내 체질 개선이나 기타 등등 할 일도 많다만, 하기 좋아 떠드는 위기라는 말은 좀 어떻게 처분하고 기회를 이야기했으면 하는 심정이 마구 솟구친다.

 

행인[언젠 위기가 아니었나?] 를 참조

기회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 시기에 이 땅의 인민들이 눈길 한 번이라도 줄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 배포한 "VISION 2030"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래, 앞으로 10년 후에 북구유럽식 복지정책의 안착, 20년 후에 사회주의 건설 하겠다" 뭐 이런 개뻥이라도 칠 수 있어야 한다. 기왕에 북한의 경직된 사회주의를 극복하겠다는 강령이 있으니, 공안당국 니덜 자꾸 민주노동당을 일심회 본부처럼 떠들어대면 허위사실유포와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는 뻥도 좀 치고, 조중동문이 개떼처럼 몰려나와 짖어대는 한 복판에서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물론 전 국민이 "이밥에 고깃국" 먹도록 해주겠다는 썰과 함께 누구나 집 한 채씩 다 가지고 사는 그날을 만들겠노라고 호언장담이라도 좀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인민들이 민주노동당을 쳐다보며 "저 개쉑덜 또 뻥치네..."라는 비난이 나오게 되면 그 때야 비로소 그게 뻥이 아니라는 점을 조목조목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거다. 그리고 얼마든지 설명해줄 꺼리들은 당 안에 널리고 쌨다. 지난 2년 반 동안 당 내 브레인들이 밥처먹고 한 일이 그거 뿐이다. 언론이 갖다가 떠들어 댔던 것은 이 안에 쌓여 있는 정책의 100분의 1은 커녕 1000분의 1도 안 된다.

 

마음은 이렇게 굴뚝같은데, 얼씨구? 보혁구도 설정을 위한 호기가 찾아왔음에도 정작 어느 누구도 그거 이야기하는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이게 바로 환장할 노릇이다. 깃발 들고 뛰어도 모자랄 판에 선군정치 찬양하는 소리나 들려 오고, 진보대연합인지 반한나라당 연댄지 쥐랄 옆차기를 하는 군상들이 쏟아져 나온다. 개뿔이나 통일연대, 615실천연대, 주미철본, 이런 부류의 집단들을 진보랍시고 옆구리에 껴서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지 않도록 열우당을 밀어줘라"라는 지침하달에 분골쇄신하고 자빠진 인간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한 기회는 뭔 말라빠진... 개뿔이 기회냐...

 

조금 더 두고 볼란다. 이 국면을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진보정당이라는 간판을 앞으로 상당기간 달고 살 수 있느냐, 아님 아예 간판을 내릴 것이냐가 판가름날 것이다. 물론 계속해서 이러한 의제를 당 안에서 제기하고 풀어나가야 하겠다. 평가는 아직 유보적이다. 어차피 그 평가에서 내 자신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좋은 평가를 내리기 위해서라도 뭔가 움직여야 한다. 먼저 내가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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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31 19:55 2006/10/3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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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중동이 민노당을 열우당 '2중대'쯤으로 제쳐놨다가 이제서야 민노당 사냥을 본격 시작한 거라면, 역설적으로 조중동이 판을 키워주고 있는 거라는 행인님 읽기에 공감합니다. 잡탕 대통합이 (선거에서) 실패하든 얼만큼 성공하든('거사'?도 하기전에 거사모의하겠다고 먼저 나불고 댕기는 꼴이 성공할수가없겠습니다만), 수구보수대 잡탕보수의 구도에서 유권자들은 자기들의 선택지가 점점 줄어들고 심지어 박탈되었다고도 느낄 겁니다. 그간 사이비로 진보짓했던 치들의 확실한 커밍아웃 과정에서, 확장되는 그 공백을 확실히 잡아야 합니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그 공백/여백 말이에요. 이번 간첩단사건이나 평양방문이 1차 시험대가 되겠군요. 민노당의 역능을 다시금 (대중에게도) 확인시켜주는. 오히려 희망은 민노당 일부 간판들과 지도부에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지난번 정책위원들 집단 반박문 건이 보여주듯. 그리고 아마도 민노당내 정파간 알력다툼이 빨갱이로 뺑끼칠 되어 대대적으로 더 보도되겠죠? 그럴수록 또 한번 진보(열망)의 공간은 분명하게 드러날테고요. 저 공백을 장악할 큰 그림들과, 쉬우면서도 확실하게 각인되는 레토릭들 계발도 시급한 거 같네요. 민노당 내에서 이런 그림들(소위 '전망'이라 불리는)과 새로운 세력으로서 진보의 새로운 레토릭들이 경합을 할 수만 있다면, 민노당은 살아남아 발전하는 진보정당이 될 것 같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멀리서나마 지원하면서.

  2. 너부리/ 감사합니다. 힘이 솟네요. 우리의 말이 진정한 무기가 될 수 있는 시간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시간을 끌어오기 위해서 분투할 때라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