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회

며칠 전이었다. 당사 바깥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점심먹은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라 눈도 게슴츠레하게 풀리고 몸도 나른하고 해서 뭐 좀 신나는 일 없나 하는 차에 집회하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아싸~! 이게 왠 일이냐? 하고 핑계김에 내려가 집회에나 동참할까 생각하면서 창문 밖으로 소리가 나는 곳을 확인했다.

 

그랬더니 이게 왠일인가... 일군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피켓팅을 하며 구호를 외치기를 "불법체류자 보호하는 민주노동당은 XX하라" 이거였다. 말인 즉슨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아가고 있는데, 귀족노조만 보호하고 자신들은 내팽개치고 거기다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민주노동당은 나쁜 넘들이라는 거다. 씁쓸한 마음에 자리로 돌아왔는데 이들이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친다.

 

"민주노동당~" 하는 선창

"이 개섹귀덜아~~!!!" 하는 합창...

"이주노동자~" 하는 선창

"추방하라~~!!"하는 합창...



저들이 느끼는 절박함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

물론 절박하겠지. 그 절박함.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데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해주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고, 뭔가 기대볼만한 넘들이 엉뚱하게 자기 일자리 뺏어가는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절망감... 절박할 거이다...

 

그런 절박감 행인도 느낀다.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와서 일만 하고 가면 그만인데 그 이외에도 가끔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뭐냐하면...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와서 장가까지 가버린다....

 

아직 장가갈 꿈을 접지 못하고 있는 행인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성비불균형이 엄청나게 두려운 현상이며, 어쩌다가 캐톨릭 신부들에게 결혼을 허하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오면 격렬한 반대를 제기하기도 하고, 수녀나 비구니의 수를 혁명적으로 줄이도록 해야한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게다가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와서 미혼여성들의 숫자까지 줄여버리는 통에 행인에게 눈길을 줄 수 있는 처녀들의 수가 급감(?)하고 있다. 이 어찌 절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 소냐...

 

그럼 행인도 집회나 한 번 할까? 장가 못가고 있는 농어촌총각들을 규합해서 "우리의 결혼상대 뺏아가는 이주노동자 추방하라~~!!"고 함 해보까?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저 사람들에 대해 직업을 보장하고 일할 기회를 제공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장가 못가고 있는 행인에게 적절한 혼인의 기회를 제공해야할 의무도 국가에 있을지 모른다. 아니 실제 있다는 것이, 사회보장제도의 적정한 구축이나 질높은 교육환경의 조성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현재의 상황에서 행인이 장가 간다는 것도 매우 위험한 도박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행인 결혼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 안전망의 구축이 국가적 차원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ㅋㅋ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남의 일자리를 뺏어서 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이기심이 용서받을 수는 없다. 남녀간에 눈에 콩깍지가 씌는 것을 어거지로 막을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아주 쉽게 나온다. 이주노동자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라고 요구해야한다. 국가와 자본이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그럼으로써 이주노동자건 내국인 노동자건 자신이 일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 날 이후 그 주제의 집회는 다시 열리지 않았다. 원천적으로 지속성이 담보될 수 없는 주장이었다. 남에게 아픔을 강요함으로써 내가 얻는 이익이라는 것이 도덕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이라크 주민들의 피를 우리의 국익으로 포장하는 것과 같은 이러한 발상은 그닥 타당성도 없고 인륜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다시는 이런 찝찝한 주제의 집회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가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행인은 결코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깨면서까지 장가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안 되면 그냥 혼자 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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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0 12:53 2004/08/20 1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