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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이라크 전쟁--1월 총선 이후 미국이 직면한 문제--Alex Callinicos

No 1939 Socialist Worker(영국) 2005년 2월 19일

전쟁과 점령

 

이라크 총선 이후

 미국이 당면한 문제들

이라크 여론에 대한 우리 지배자들의 거짓말에 속지 말라고 앨릭스 캘리니코스(Alex Callinicos)가 경고한다.


“마침내 수상이 이라크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는가?” 월요일 아침 라디오 4(Radio Four)의 《투데이 프로그램 Today Programme》에서 제임스 노티(James Naughtie)가 이렇게 물었다.

  다우닝가(Downing Street) 10번지의 대언론 발표문은 이구동성으로 한결같이 “그렇다!”고 떠들고 있다.

  많은 기자들이 그 내용을 되풀이 말했다. 예를 들어, 제임스 블리츠(James Blitz)는 지난주에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이렇게 썼다. “행운의 여신이 다시 수상에게 미소 짓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노동당이 잘못 할 수 있다고 의심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 지난달에 총선이 성공적으로 치러진 이후 이라크가 좀더 희망적인 곳으로--적어도 지금까지는-- 바뀐 것 같다.”

  백악관과 다우닝가가 총선을 이라크 점령의 성공 사례로 덧칠하려 한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사태를 더 잘 파악해야만 하는 다수 인사들, 예를 들어 좌익 철학자들인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와 노먼 제라스(Norman Geras) 등이 총선을 민주주의의 승리라며 축하했다는 점이다. 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첫째로, 부시는 이 선거를 원하지 않았다. 그와 그가 임명한 전직 총독 폴 브레머(Paul Bremer)는 자신들이 임명한 의회가 정부를 선출하고 이라크 영구 헌법을 제정하기를 원했다.

  작년 1월에 이라크의 유력한 쉬아파 무슬림 성직자인 그랜드 아야톨라(Grand Ayatollah) 알리 알-시스타니(Ali al-Sistani)가 대중적 항의를 호소했고, 점령군은 선거를 치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부시와 브레머는 어쩔 수 없이 선거를 허용했지만 최대한 일정을 연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라크 국민을 옥죄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시와 블레어가 선택한 후보 이야드 알라위(Iyad Allawi)는 전체 투표수 가운데 14%밖에 얻지 못했다.

  시스타니가 지원하는 이라크통일연맹(United Iraqi Alliance; UIA)은 미국에 이라크 철수 일정을 제시하라는 선거 운동을 벌여 48.5%를 획득했다. UIA가 확보한 최대 규모의 단일 의석은 작년에 미국이 생사 불문하고 지명수배했던 급진 쉬아파 지도자 목타다 알-사드르(Moqtada al-Sadr)의 지지자들이다.

  월요일에 《워싱턴 포스트》는 이렇게 논평했다. “미국의 [이라크] 개입 사태에서 가장 커다란 아이러니 중의 하나는 이라크인들이 …… 투표장에 가서 강력한 종교적 기반을 가진 정부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웃 이슬람 공화국인 [이란과] 단단히 결연하고 있다. 이것은 행정부가 그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이라크 정책 속에서 결코 기대하지 않았던 수순이다. 미국 및 지역 전문가들의 말로는 그 비용이 3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더욱더 중요한 사실은 투표 참가자가 58%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영국에서라면 이 수치가 높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 자유 민주 정체의 기준에서 볼 때, 특히 진정한 선거권이 최근에야 쟁취된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이것은 낮은 수준이다.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종말을 고했을 때 투표 연령 인구의 85.5%가 선거에 참여했다.

  물론 이라크의 투표 참가율이 낮았던 까닭은 이 나라 중부 지방에서 대규모 선거 보이콧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라크 중부 지방은 무장 저항 세력이 가장 강력한 곳이다. 이 지역마저 투표에 참여했더라면 미국 앞잡이들의 득표수는 훨씬 더 떨어졌을 것이다.

  선거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마지막 요점은 민주주의가 자치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이 이 선거를 바탕으로 자치를 허락받을 길은 전혀 없다.

  부시와 블레어는 점령이 계속될 것임을 명백히 했다. 부시는 선거가 끝난 다음에 “일정 같은 건 없다”고 말했다. 미군은 최근에 이라크 주둔 미군의 수를 적어도 향후 2년 동안 현재와 같은 수준인 12만 명 선에서 유지할 계획임을 밝혔다.

  선거 결과 극단적으로 쪼개진 국회가 만들어졌다. UIA는 과반수를 장악하지 못할 것이며, 그 자체가 연합이다.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이라크의 진짜 지배자인 미국 대사 존 네그로폰테(John Negroponte)가 상당한 기동의 여지를 확보할 것이다. 그가 계속해서 백악관의 지령을 받게 될 이라크 내각을 만들고 조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흐메드 찰라비(Ahmed Chalabi)와 같은 구닥다리 인사가 수상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사태의 진행 추이를 파악할 수 있다.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의 친구이자 사기꾼인 찰라비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동원된 허위 정보를 제공했지만 후에 미국과 사이가 벌어졌고 지금은 UIA의 지도자다.

  점령 정부는 미국식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지배권을 확고히 하는 정책 방침에 따라 이라크 사회를 재구조화하려고도 애쓰고 있다.

  2004년 4월에 브레머는 훈령 81조(Order 81)를 발표했다. 이라크 농부들이 수천 년간 자유롭게 종자를 재배하고 저장해 오던 관습을 초국적 기업들의 “지적 재산권”이라고 선언하며 금지한 것이다.

  부시와 블레어가 이런 정책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직면한 커다란 문제는 이라크 국민의 반발이다. 선거는 점령에 저항하는 사람들 사이의 분열상도 드러내주었다.

  특히 쉬아파가 우세한 이라크 남부 지역에서는 다수가 선거를 점령을 종식하는 최선의 방책으로 이해했다. 대부분의 순니파 아랍족이 거주하는 이라크 중부에서는 절대적이라고까지는 못 해도 다수가 무장 저항 세력과의 연대감을 표명하는 가운데 선거 보이콧을 결정했다.

  점령 당국은 쉬아파 및 순니파 아랍족, 그리고 북부의 쿠르드족 사이의 분열을 조장해 왔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이라크 정치를 파악하는 것은 오류다.

  예를 들어, 급진적 쉬아파 이슬람교를 신봉하며 선거에 참여했던 사드르 지지자들과, 저항 세력을 지지하며 선거를 보이콧했던 순니파 무슬림 학자들 연합(Sunni Association of Muslim Scholars) 사이의 접촉이 최근 며칠 사이에 있었다.

  어쨌든 점령에 저항하는 무장 투쟁이 줄었다는 징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럴까? 이라크인들이 투쟁하는 이유는 그들의 조국이 외국 점령하에 놓여 있고 선거가 이 상황을 바꾸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전 세계 반전 운동 세력의 어깨에 엄청난 책임을 부여한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폴란드, [그리고 한국--옮긴이 추가] 같은 점령국들에서 특히 그렇다.

  투쟁을 끝내고 이라크에 진정한 민주주의의 기회를 부여하는 유일한 방법은 점령을 끝장내고 군대를 철수시키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해 부시와 블레어의 낯짝에서 느끼한 미소를 제거하기 위한 다음 방안은 3월 19일과 20일 점령에 반대하는 전 세계의 항의 행동을 대규모로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 앨릭스 캘리니코스는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책갈피 출판사에서 나온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 The New Mandarins of American Power》도 그 중 한 권이다.


★ 政明爲 옮김/sumbol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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