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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14
    철조망 치고 살아야 하나 - 사일런트 힐(2)
    하이에나새끼
  2. 2006/05/19
    노동계급 여성으로 살아남기 위해 - 노스컨츄리
    하이에나새끼
  3. 2006/03/20
    이리저리 쏘다닌 주말이랑 휴일
    하이에나새끼
  4. 2006/01/31
    설날, 스크린쿼터, 그리고 궁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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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년 정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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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11/21
    제9회 노동영화제 - 자본에 경고한다 - 다녀왔습니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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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10/10
    3 번째 멜로영화 - 너는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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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8/08
    지키고 싶은 공동체 - 웰컴 투 동막골(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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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8/08
    하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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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8/05
    요즘 즐기는 게임 - 판타지마스터즈
    하이에나새끼

철조망 치고 살아야 하나 - 사일런트 힐

* 영화 전개내용에 대한 고자질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내용을 아는 영화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분은 본 포스팅을 아니 보시는게 좋습니다. ^^;

 

사일런트 힐 = '조용한 언덕' - 반대말은 '폭풍의 언덕' 이겠죠? ( 거짓말! -0-

 


수많은 영화잡지에서 되풀이된 질문, 과연 사람들이 호러영화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서움을 느껴보려고 간다고 대답할거 같고, 개중 영악한 사람들은 인간사회의 금기와 그것을 건드리는 호러물의 법칙에 대해서 주워섬기려 할 것이다. 같은 질문이 나에게 돌아온다면 쫌 애매하게 머뭇거릴지 몰라도 "재밌어서" 그리고 "아이디어들이 좋아서" 보러 간다고 대답할거 같다. 최근에는 영화를 찍는지 안 찍는지도 모르겠지만, '좀비오' 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브라이언 유즈나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기발하고 독특한 크리쳐 들 을 생각해내는 아이디어 때문이다. 


그런 종류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대한 만족감은 우연히 접했던 '사일런트 힐' 이라는 게임에서도 비슷한 정도로 충족될수 있었다. 게임은 영화와는 또 다른 방법으로 게이머를 몰두시키기 때문에 솔직히 게임 내내 뭐가 튀어나올까 싶어 무섭기도 했지만, 무섭다는 감정보다 앞섰던것은 그 게임만의 독특한 크리쳐 (괴물) 들 이 주는 만족감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미 '바이오 해저드' (레지던트 이블) 을 비롯해서 숱한 호러게임의 명작들이 스크린 속에만 들어가면 망가지는것을 봐 온지라 ('하우스 오브 데드' 의 경우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사일런트 힐' 이 영화로 만들어 진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반가움보다 솔직히 걱정이 앞섰던것이 사실이다. 다행히도, 비쥬얼에 관한 한 '사일런트 힐' 은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 했다.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 중에서 이만한 작품은 없었으리라. 안개에 덮힌 분위기와 음산한 마을, 크리쳐들에 대한 묘사는 찬사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비쥬얼에 관한 한' 이라고 써버러니 뭔가 스토리 같은것은 별로인것처럼 보인다. 사실, 스토리나 주제에서 그렇게 뛰어난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주된 주체들이 모두 여성이고, 남성들은 (주인공인 로즈의 남편처럼) 무기력하고 겉돌기만 반복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기는 하지만 잃어버린 딸을 찾기위해 무시무시한 크리쳐 사이를 그야말로 목숨 내놓고 좌충우돌 헤집고 다니는 주인공이나, 유괴범에 의해 버려진 소녀와 함께 3 일을 버텨낸 적이 있다는 여 경찰의 모습은 식상할 정도로 전형적인, 자식에 대한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모성애에 대한 신화를 더 강조하고 있다.


어린아이와 관련된 거의 모든 공포영화에서 그랬듯이, '사일런트 힐' 역시 자식을 지키지 못한  '어머니' 에 대한 원망이 빠짐없이 등장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양육에 대한 모든 문제를 가정과 개인에게 떠 넘기는 국가체제에 손을 들어주는 정치적으로 분류하자면 '보수적 호러영화' 의 범주에 속하고 만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내러티브에 대해서는 원작 게임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해온 만큼 나름대로 무난한 진행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쉬운 면도 있는데, 예전에 광신자들에게서 알레사를 구해낸적이 있던 경찰관의 경우는 무언가 스쳐지나간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인 구조로 볼 때 그 경관이 이야기에 끼어들수 있는 틈은 별로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배역으로 보기에도 뭔가 찜찜한 모습으로 남아버렸다. 

 

복수. 이 장면을 말하고 싶었던건 아닌디, 이미지가 없어서리 -_-;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나고 함께 갔던 마님에게 고백한 그대로, 나는 이 영화에 10 점 만점에 8 점을 주고 싶다. 이유는 매우 간단한데, 한마디로 '알레사가 복수를 할 수 있었기 때문' 이다. 이제껏 영화에서 소설에서 그리고 게임에서, '복수한다고 해서 너의 상처가 아물지는 않아' 라는 등등의 허울좋은 사탕발림에 넘어가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기나긴 시간동안 자신이 받은 고통을 또다시 혼자 삭히며 소멸해간 그 수많은 피해자들을 떠올려보자.


우리 알레사는 그와 같은 멍청한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았다. 그녀의 복수는 그 수법이 잔인했던 만큼이나 구경하는 짐승이 짜릿한 전율을 느낄만큼 너무나도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해 주었다. 위에서 말한것 처럼 영화는 큰틀에서의 보수적인 정치성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  신 과 종교의 이름을 빌어 순결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이에 복종하지 않는, 즉 통제할수 없는 대상은 끔찍한 방법으로 죽이려 했던 자들이 다른 곳도 아닌 '신성한' 교회에서 자신들이 짓밟은 대상에 의해 학살당한다는 설정은 너무 매력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 노무현, 황우석 광신도들도 같이 좀 쓸어가버렸으면 좋으련만 -,- ) 만약 다른 호러영화나 소설이나 게임에서처럼 주인공 아줌마가 알레사의 복수를 제지하고 이른바 '정화' 시켰다면 10 점 만점에 3,4 점 도 주기 아까웠을것이 틀림없다. 

 

너희들 다 가~ -,.-


영화는 '복수는 나의 것' 을 이야기 하고 있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경계를 이야기 하고 있기도 하다. 크리쳐에게 쫓기는 로즈와 그런 로즈를 찾는 남편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세계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 경계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무엇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알레사가 복수를 가하는 수단이 하필이면 철조망 이란 것은 충분히 의미 심장하다. 철조망 이야 말로 간단하면서도 함부로 넘어갈수 없도록 세계를 나누는 장애물이 아니던가. 어쩌면 감독이 경계 혹은 단절 같은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 하고 광신도들 ( 어떤 종류의 광신이건 간에 ) 사이에는 철조망이 몇겹정도 쳐져있는것이 더 평화로운 풍경일거 같다. 논쟁으로 돌아설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로즈언니 하고 알레사 언니가 잘 보여주지 않았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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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 여성으로 살아남기 위해 - 노스컨츄리

착각하기 쉬운것 중에 하나로, 노동문제, 여성, 인권 등의 부분에 있어서 다른나라 - 예를 들면 서구유럽 - 의 사회들은 굉장히 진 일보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해 버리는 점이 있다. 확실히 대한민국의 경우를 비추어 생각해보면 제도적으로건 사회 전반적인 인식의 수준으로건 그쪽 사회가 보다 선진적인 색채를 띄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모습들은 구성원들의 '문화' 적인 차이에서 비롯된것이 아니라 단지 억압받는 사람들의 강력하고 끈질긴 투쟁이 있었기에 비로소 현실로 다가올수 있었던 부분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직장내 성희롱 문제가 최초로 법원에 제기된것은 1993 년, 서울대 우 모 조교가 그 담당인 신 모 교수를 상대로 제기한 것으로, 무려 6 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최종 판결이 내려진바 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직장내 성희롱 예방지침이 만들어지고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무화 시키는등의 성과가 만들어 졌다. 여성문제에 있어서 보다 선진화 된 사회로 알려져 있는 미국이지만, 1984 년에야 비로소 직장 내 성폭력 문제가 '최초로' 법정에서 승리를 거둘수 있었다고 한다. 영화 '노스컨츄리' 는 ‘젠슨 대 에벨레스 광산’ 으로 알려진 바로 그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조시 에임스는 여성 노동자로 직장에서 당할수 있는 성폭력의 유형들을 거의 대부분 고스란히 겪게 된다. 남자 동료들은 그녀와 다른 여성 노동자들을 동등한 노동자로, 동료로 대우해 주지 않고 노골적으로 성적비하 발언을 일삼거나 성적코드로 당황하게 만드는가 하면, 욕설이나 신체의 일부를 만지는 행위까지도 서슴치 않고 행한다. 그녀가 일하는 광산에서 여성들은 동료가 아니라 '남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못된 여자' 일 따름이며, 동일하게 노동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단지 성적인 대상일 따름으로 취급받는다.

 


조시는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처음에는 직장을 유지하고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견디려고 하지만, '참는것' 은 상황을 전혀 나아지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되어만 간다. 견디다못한 그녀는 언젠가 우연히 식당에서 만나서 '힘든일이 있으면 찾아오라' 고 말했던 광산의 사장을 찾아가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장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고 이후 여성노동자들을 향한 모욕적인 공격은 더욱 그 수위를 높여간다. 그녀의 옛 남자친구였던 작업반장은 폭력적으로 그녀를 몰아붙이고 남성노동자들은 마침내 그녀를 화장실에 가두고 뒤흔들어 테러를 가하기 까지 한다.


노동운동의 힘이 미약했던 초기에 남성 노동자들이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문제에 맞서 여성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대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동조합 내부에서조차도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가 전무한 - 심지어 노조 총회에서 발언권이 남성 노동자에게만 인정되는 - 처지에서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져 그 모든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상황들을 참고 견디는 것 뿐이다. 조시가 함께 문제제기 하자고 그녀들을 설득하지만 당장 해고와 더 큰 폭력에 노출될수 있는 위험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그녀들은 쉽게 응할수 없다.


지금도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문제를 이야기하고 바꾸려고 하는 사람, 특히 여성을 향해서 되려 '당신의 오버질이 문제' 라는 식의 뒤집어 씌우기와 이간질이 유용하게 사용되는 방식이지만, 노스컨츄리 에서도 마찬가지로 '조시' 가 특별히 시끄럽고 비협조적이라며 다른 여성노동자들과 그녀를 이간질 하고 있는 상황은 여성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지 못하도록 만들어 간다. 그러나 그 모든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지속적으로 싸움을 이어나가면서 그녀들의 생각과 행동은 '참는' 것에서 '싸우는' 것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노스컨츄리' 에서 조시의 모습은 단순히 직장내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성이 사회적으로 겪게되는 모든 차별과 억압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기도 한다. 폭력적인 남편, 그로부터 독립적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켜나가고자 하는 것에 대한 가정 내부에서의 편견 등 이 다루어지면서 '노스컨츄리' 는 노동계급의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끔찍할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실화를 전제로 했음을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또 한가지 측면으로, '노스컨츄리' 는 1980 년대 당시 레이건의 집권시기에 노동운동이 처한 처지를 이야기 하기도 한다. '조시' 의 아버지를 비롯한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가뜩이나 일자리도 없는데' 여자들이 일자리를 잠식해 간다는 것으로, 이는 지금 남한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와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지배계급이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강도가 강한데 비해 이에 맞서는 노동운동의 역량이 약할경우, 노동자들의 불안은 이러한 방식으로 보다 약자에게 표현될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좌우지당간, 정말이지 매우 오랫만에 주위에 기분좋게 권할만한 영화라고 말할수 있다. 비록 극장에서는 이런 진지한 영화들이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한채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지만, '유사 헐리웃' 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 하고있는 이런 영화들은 소장가치가 높다고 할 것이다. 남성이 보기엔 불편하지 않겠느냐고? 글쎄, 구제불능의 마초씨라면, 그럴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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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쏘다닌 주말이랑 휴일

1. 토요일에는 옆지기 마님과 함께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박노자 교수의 '종교·진보운동·사회주의' 에 대한 강연회에 참가했다. 예상외로 심하게 막혀버린 길 때문에 강연장에 도착하고 나니 이미 본 강연은 끝났고, 작년 '한국의 민족주의와 좌파운동' 을 주제로 강연할때와 마찬가지로 사회자가 패널 질문을 하고 있는 참이었다. 박노자 교수 강연회에 한번도 참석하지 못했던 옆지기 마님은 그 독특한 목소리에 놀라고 (^^), 본 강연을 못 들은것을 아쉬워 했음. 조만간 '다함께' 홈페이지에 강연내용 전문이 올라올터이니 그것으로 만족할수 밖에 없지 뭐, 운 좋으면 mp3 도 올라올지도 모르고^^


비록 강연본문은 못 들었지만 정리과정에서 지하드에 대한 것을 비롯해서 이슬람교에 대한 서방세계의 악의적인 왜곡과 오해들, 한국에서 김수현 추기경의 보수화나 정의구현 사제단 등의 힘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는 천주교가 과거의 군사독재 정권은 정상적인 부르조아 사회의 형태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싸웠지만, 제도적, 형식적 민주주의가 어느정도 신장된 현재에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것, 단군에 대한 종교는 원래 민중들이 단군을 필요로 하거나 믿었던 것이 아니라 개화기시절 일부 유림들이 민족주의적 필요성에 의해 부국강병등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얻고 공감대를 형성할 목적으로 일본의 신사를 모방해서 만든것 이라는 이야기, 종교는 정의가 현실화 되지 못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것이므로 종교인의 역활은 정의감, 양심 등의 가치를 역설하는 일들이 될 것이라는 것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2. 강연회가 끝난 다음에는 마님의 덕택으로 모 유명 언더그라운드 밴드가 새로 오픈한 카페를 들려보는 행운을 잡기도^^ ( 자세한 내용이나 밴드의 이름을 밝히는것은 짐승 권한 밖이므로 생략 생략 ^^; ) 궁금하신 분은 인사동 골목길 종로경찰서 방향에 가까운 부근에서 새로 생긴 '쌈지길' 이라는 건물에 한번 들려보시고, 거기서 여기저기 구경하시다가 왠지 낯익은 이름의 카페를 발견하시면 들어가보시면 되겠습니다. ㅎㅎ 여기까지. ^0^;;


3. 일요일은 마님이랑 현이, 산이랑 같이 3.19 반전집회에 참가하기로 일치감치 계획을 잡았더랬다. 그런데 고거시 또 여차저차 하다보니 꽤나 딜레이 되어서, 막상 서울역 광장에 도착하니 행진을 시작하려고 결의문이랑 연대사 등등을 낭독하고 있던 참이더라. 덕분에 일어서있는 사람들 속을 헤집고 뒤로 뒤로 가다보니 현이손을 붙잡고 앞장선 마님 뒤를 산이 손을 붙잡고 따라가던 짐승은 아차 하다가 놓치는 바람에 미아가 되어 버리는 사건이 발생. (-_-;)


마침 모 님을 만나는 덕분에 도움을 받을수 있었는데 (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는 ^^; ) 다시 만나고 나서도 뒤 놓쳤다고 엄청 혼났다. 아무튼 그렇게 다시 만나서 한참 행진에 참가하다가 아직 어린 현이 와 산이를 고려하여 대열 맨 끝에서 맨 마지막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마법^^; 을 좀 부렸다.


덕분에 정리집회가 열리는 광화문에 맨 먼저 도착할수 있었는데 거기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전경들 틈새를 반전 피켓을 그대로 들고 지나가려니 다소 뻘쭘했지만 곧 '우리가 선봉' 이네 '엘리트 특수조' 네 뭐네 하는 짐승의 재치로 극복(?) 했다. 아무튼 짐승이 사고 치는 동안 정작 걱정했던 애 (현,산) 들은 너무도 의젓하게 잘 참가했으니 원, 현이의 '나는 전쟁을 반대해요' 라는 깜찍한 피켓도 좋았다. 아참, 중간에 미아가 되는 바람에 마님은 못 봤겠지만 서울역 앞 집회대오 중 에서 산 군의 귀염으로 인한 인기가 매우 좋았다는 이야기도 빠트릴수 없다. 덕분에 짐승의 인기도... 올랐을 리가 없다 -_-


집회에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고 다소 걱정도 했었는데, 그럭저럭 2000 여명 정도가 참가하여 나름대로 꾸준한 힘이 이어져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부시가 자꾸 이란을 자극하는 모양이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이란으로의 확전을 노리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금할수 없는데, 그 인간이 또 한번의 학살극을 펼치고 거기에 조연으로 노 모 씨가 두팔걷고 또한번 나서는 꼬라지를 안 보려면 반전, 이라크 문제에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시청 앞에서 오전부터 wbc 길거리 응원전을 펼친다는 소식에 다소 황당한(?) 걱정을 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그렇게 길 막고 응원전 하고 나면 곧 이어 반전집회 참석자들이 근처로 행진을 벌일텐데, 운전자들이 짜증내지 않을까 하는 것. 지난 월드컵때 느낀거지만, 솔직히 거리 응원은 아무리 새벽까지 길막고 난리치고 주차한 차 파손, 지나가는 차 가로막고 봉변주기, 성추행, 성폭행 등등 난동을 벌여도 비교적 관대하게 대하는데 비해 '데모한다' 그러면 왜 길막냐며 난리더라는.


그러고보니 지난 철도파업때 '일반 시민들에게 피해준다' 며 게거품을 물고 지랄하던 모 언론사는 이번 응원전에 지들이 나서가지고 시청앞 광장 점거에 길 막고 무대설치 하고 신 났더라? 파업은 돈 벌이에 방해되고, wbc 는 돈벌이에 국가주의까지 부추기는 상품이다 이거지?
지랄, 모처럼 쉬는 일요일 오전인데 '서프라이즈' 나 보려다가 혈압만 올랐네 ^^


뭐 굳이 응원 하고 싶다면야 못하게 하는 것도 답은 아닐테다. 그런데, 야구장 뭐 때문에 개방했나? 동대문, 잠실, 거기 야구장이나 그런데 가서 하고 응원 끝나면 빨리빨리 집에 돌아들 가면 되지, 뭐하러 아침 9 시 부터 무대만들고 가수 부르고 하면서 길 막느냔 말이지. 그거 이래저래 낭비거든?


아무튼 타이밍이 너무 늦기는 했지만, 져서 다행이다. 잘 됐다. 이제 정규뉴스 시간 45 분중 30 분을 잡아먹으며 정작 필요한 이야기들은 대충대충 넘어가 버리는,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을 외치라고 조장하는 괴상하기 짝이 없고 말 같지도 않은 '언론' 들은 좀 덜 접해도 될테다.


...아아, 그러고보니 6 월 월드컵이 남았군. 야구가 이미 이렇게나 '대한민국' 을 달궈놨으니, 올 여름은 정말 OTL 이다. 제발 응원을 하려거든 축구장 개방 해달라고 해서 그런데서 하시고, 응원 끝나면 빨리 빨리 귀가하여 괜히 지나가는 차량, 주차한 차량, 지나가는 여성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난동은 자제 합시다. 아마 이 정도 발언하는것도 '선민의식' 의 발로라는둥, '국민이 발 아래 있느냐' 는 둥 하면서 정의감으로 앞장설 '참 개념충만하신 논객분' 들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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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스크린쿼터, 그리고 궁시렁

한동안 일도 좀 바쁜편이고, 딱히 끄적일만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분들이 올리신 것들을 반드시 챙겨 읽어야 겠다는 생각도 안들고, 원래 '온라인' 이란 물건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의구심 -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결국은 오프라인 세계에 종속적인것 아닌가. 제 아무리 멋진 온라인 공동체가 있다 하더라도 누가 서버 스위치만 내리면 끝장인데 온라인에 무슨 힘이 있겠냐" 는 종류의 의구심 - 도 더 강해지고 그러다보니 한 몇일 블로그니 뭐니 거리를 두고 살았더랬습니다. 뭐 그래봤자 밥벌이가 그쪽 일이기도 하고, 스트레스 푼다는 명목으로 게임 사이트도 기웃거리기는 했지만요. ^^;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외형이 어떻게 보이든간에 온라인 상의 담론이 실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온라인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들 말하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가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할만큼의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다는게 맞겠죠. 그런 관점은 노무현과 거의 정치적인 차이가 없는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니까요. 물론 어떤 계기가 될수는 있었겠지만, 방아쇠만 가지고 총이 발사될수는 없는 이치고 온라인 말고도 방아쇠의 역활을 수행할 대체제는 충분한거죠. 껄끄럽게 들릴지는 몰라도, 이른바 '논객' 이나 '학자' 들이 세상을 바꾸는 결정적인 키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봅니다.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만두고, 하여튼 다른 분들도 그러셨겠지만 짧은 연휴동안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짐승이 워낙 삐딱해서 그런지 몰라도 '민족의 명절' 인 설날에 '한민족 아닌 사람' 들이 너무 많더군요. 임금체불 혹은 실업때문에 돈이 없어서 고향에도 못 가는 사람들, 사측의 배째라 작전 때문에 파업중인 점거농성장에서 연휴기간에 혹 있을지도 모를 침탈을 걱정하며 차례를 지내는 노동자들, 여기저기서 몰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노동전담 떠맡으며 따스한 아랫목이 아니라 부엌에서 명절을 보내는,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의 부모형제는 보러가지 못하는 여성들. 이런 분들은 명절이 축제로 다가오지 못하니 같은 민족이 아닙니다. 이제 곧 월드컵 기간이 되겠지만, '대~한민국' 은 같이 외칠지 몰라도 결국 '대한민국 국민' 은 따로 있겠죠.

 

하여간 집에서 대충 이런 저런 이야기 듣기도 하고, 올해안에 치뤄야할 동생 결혼식에 준비할 부분도 이야기하고, 일도 좀 도와드리고 ( 그래봐야 설거지랑 청소수준 --; ), 밤에는 온라인 게임에 열중하고 하면서 뒹굴었습니다. 부모님 이혼하신 이후에 좋아진점이 있는데, 짐승이 추구하던 명절의 본래 의미 - 연휴답게 푹 쉬고 잘 놀자 - 가 실현되어 간다는 것이죠. 번거롭게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밥상에 허리 조아리고 좋아하지도 않는 친척들하고 억지대화 하느라 시간낭비 할 일이 없으니 좋더군요. 안그래도 짧은 연휴, 그런 관념적 의례에 낭비할순 없는거죠, 귀찮게시리. 그럴바에야 만화책 책장 넘기는쪽이 훨씬 더 생산적입니다.

 

설 저녁에는 오랫만에 고향에 계신 아는 분들이랑 술이나 한잔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연락을 늦게 드린 탓인지 연휴가 짧은 탓인지 연락드린 분들의 절반이 못 나오시겠다고 하더군요. 어쩔수 없이 모인 사람들끼리 간단하게 저녁 겸 백세주 한잔 하고, '영화나 보러 가자' 해서 극장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만 시간이 맞는게 없더군요. 그놈의 '투사부일체' 말고는 ... 뭐 영화에 대한 평은 생략 하겠습니다. 그냥 GTO 를 주축으로 여기저기서 짜집기는 잘 했더군요. 노골적으로 넘버3 에 대한 패러디도 있었고, 하여간 참 누덕누덕 잘 기워놨습디다^^

 

그러고보니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이군요. 뭐 저는 기본적으로 '한국영화' 에 대한 개념도 혼란스럽습니다. '실미도' 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거야 노골적으로 대한민국을 강조하지만 그 영화가 과연 대한민국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해주고 있는지, 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라해도 '빵과 장미' 에서 그려지는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삶이 오히려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가 말입니다. 한국땅에서 한국인들이 한국자본으로 찍는다해도 헐리웃 영화가 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하지요.

 

그렇다면 스크린쿼터는 축소 내지는 폐지 되어야 할까나? 글쎄요,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찍어내는 것과 스크린쿼터 축소, 폐지 사이에 무슨 연결고리가 있습니까? 오히려 '헐리웃 영화와의 경쟁' 을 더더욱 강조한 나머지 '태극기 휘날리며', '투사부일체' 같은 '대형' 오락 영화들만 찍어내려고 들 것 같은데 말입니다. 경쟁시키면 더욱 좋은 시나리오와 좋은 감독, 배우들이 배출된다고 말하는 당신, 헐리웃 영화판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전 '인디펜더스 데이' 이후로는 절대로 그놈의 '블록버스터' 를 보지 않아요. 심지어 매트릭스도, 반지의 제왕도, 킹콩도 말입니다.

뭐 좋은 태도가 아니라는건 알고 있지만, 개도 안 쳐다볼 필름쓰레기에 크게 데이고 나니 도저히 지갑을 꺼내들수가 없더군요. 어쩌다가 나쁜 영화가 섞여 나오는게 아니라, 어쩌다가 봐줄만한 작품들이 간간히 보이는 그 블록버스터 시장이 당신이 말하는 '경쟁의 장점' 이라면 할 말이 없어요. 그러고보니 스크린쿼터 문제도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의 일환이군요. 멸망하는 길을 제시하면서 거짓 희망으로 포장하는 그 사기술은 여전하구요.

 

하여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긴 했는데, 아직 제 컨디션은 아니군요. 눈도 자꾸 감기고, 일도 손에 안 잡힙니다.

아참, 근혜 공주님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빨갱이' 열우당이 한발 물러 났군요. 정말이지, 민주노동당은 당신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자신이 발 딛고 서있는 계급의 이익에 충실히 복무하는것, 그것이 '여론' 에 신경쓰고 눈치보는것 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수 있다는걸 알아야 해요. 어차피 여론을 주도할수 있는 힘은 저쪽 계급들의 소유니까요. 아무리 '부드럽게' 나가봐야, 그들로부터 지지받을순 없을거에요.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면 더 많은 표 나 지지율을 획득할수 있다는 환상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과거 민주당이, 현재 열우당이 그렇지 않다는것을 보여주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죠. 어차피 중도적 입장이란것 자체가 존재할수 없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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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년 정리하기

작년 이맘때에 '2004 년 정리하기' 하며 방정리도 안하는 주제지만 왠지 안하고 넘어가기에는 찝찝하다며 끄적거렸던 기억이 나서 찾아보니 내가 써놓고 내가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읽어볼만 하다. (--;) 지나간 일기장을 넘기는 기분이 이럴것이다. 지금 또 몇자 끄적이고 나면 내년 이맘때 이걸 보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2004 년 정리하기' 에서 나는 다함께 가입, 민주노동당 입당, 이직, 북마크된 온라인 사이트 증가 등을 1 년간의 중요한 변화들로 꼽았었다. 그로부터 다시 만 1 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닥 만족스럽지 못하다. 특히 조직활동에 기여하는바는 오히려 줄어든거 같아서 마음이 좋지만은 않다. "항상 그래왔듯이 신년에는 잘 해야지, 좀더 나아져야지 하는 생각은 있지만 그것이 또 공염불이 되어버리면 어떡하나 걱정도 됩니당. 내년 이맘때쯤에 또 비슷한 이야기를 토닥거리고 있다면 암담할 뿐이겠지요." 작년에 끄적였던 문구인데, 아무래도 우려대로 된 것 같다.


나이가 들면 그만큼 발전하는게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다소 후퇴하는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는데, 물론 이런저런 사정들이야 있고 그에대한 변명이야 늘어놓을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할수 없는것은 처음의 열정이 보다 작아진것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다. 뭐가 문제일까? 어느분의 말처럼 정말 무언가 자극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올해 내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연애의 시작이다 (^^;). 인터넷상의 글로만 지켜보다가 김선일씨 피살1주년 반전집회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 뒤 전쟁과 변혁의 시대, 지역포럼, 온라인 번개 등의 자리로 꾸준히 만남이 이어지면서 내가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나간 일들에 자랑스러워 하거나 힘들어 하기 보다 지금에 감사하고 앞으로의 일들을 대비할줄 아는 사람이다. 짐승이 모르는게 많고 어리버리 해도 답답하다는 말 대신 차근차근 이야기할줄 아는 사람이다. 성급하고, 독선적이고, 고집센 짐승을 타이르기도 하지만 또 장점을 격려해줄수 있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가지고 독립적인 삶을 누릴수 있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자만하지 않고 주위의 작은것들을 함께 챙겨가는 사람이다. 나에게 그녀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다. 올해 짐승의 후퇴는 그녀가 좀 더 일찍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일거다. 감기도 눈병도, 얼렁 사라져 버리길.


이 자리를 빌어 내게 확실히 연애의 기회를 제공한, 9.24 반전집회후 무지개숲 후원주점에서 뒷풀이를 하자고 말씀해주신 그 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더불어 작년에 "없던 앤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것도 아니고" 운운하던 글에 "하늘에서 애인도 뚝 떨어지시길" 이라고 말씀해 주신 분께도 감사를 ^^; 하늘에서 떨어진건 아니지만 어쨌든 말의 힘이 대단하다고 해야할까나.


이틀뒤에는 33 이 된다. 짐승이 아직 그 어디에도 가입하지 않고 온라인상의 모 커뮤니티 (카페) 에서만 뒹굴거리고 있을 때, 그 커뮤니티 안에 당시 짐승이 역활모델로 삼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굳이 서울로 올라오지 않아도 되었던 상황에서 서울행을 결심하게 되었던 것은 그 사람의 영향이었는데, 그 당시 그가 33 이었던 기억이 난다.


비록 서울에 올라온지 오래 가지 못해 여러가지 이유로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 버렸고 그 뒤 그사람이 어딘가에 올려둔 글때문에 정치적인 이유로도 같이 할수 없겠다고 생각하게 되긴했지만 어쨌든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을 믿고 덜컹 서울행을 결정해버렸던 당시의 기준에서 보면 각별한 의미를 가진 나이가 될 것이다. 나는 다른 누구에게 무언가를 보여줄수 있을까?


하여간 내년엔 여기서 더 이상 퇴보해서는 안될것이다. 활동뿐만 아니라 직장이나 경제적인 것을 포괄한 모든 부분에서 지금과 같은 상태가 유지되어서는 심각하게 곤란하다. 너무 말만 앞세워 다짐만 다지다가 내년 이맘때엔 좌절하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혼자도 아니고 이제는 새끼에서 자라날때도 됐다.


온에서 오프에서 만난 모든 분들께, 추운 날씨에 다들 건강 조심하시고 2006 년 멋지고 행복하게 시작하시길 빌어본다. 희망하시는 모든 일들이 다 성공적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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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노동영화제 - 자본에 경고한다 - 다녀왔습니다 _(__)_

* 가져온 이미지 및 동영상은 모두 '노동자 뉴스 제작단' 이 주최하는 '제9회 국제노동영화제' ( http://www.lnp89.org/9th/index.php )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힙니다.


짐승이 지난주를 맞이하여 세웠던 가장 중요한 계획은 부산에 다녀오는 것! 부산시내를 어슬렁 거리며 부시반대, APEC 반대 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었다. 버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전주부터 압박이 심해진 회사 업무량. 18 일 집회는 금요일이라 뭔가 핑계를 대고 빠져야 하는데 그게 될듯 될듯 하다가도 안 되게되는 그런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당. 흐미... 회사를 옮기던가 아님 일인 시위라도 하던가 ... ㅠㅠ;


부산에 내려가는 동지들에게 미안한 마음 반, 아쉬운 마음 반 으로 지내던차에 애인님께서 '그러고 있지 말고 노동영화제 같이 가자' 고 꼬셔주는게 아닌가! 맞다, 노동영화제가 있었다. 특히 작년 같은경우 '볼리바리안 혁명' 이나 '점거하라 저항하라 투쟁하라' 같은 수작들을 본 덕분에 온라인에 끄적일 거리는 물론이고 오프라인 포럼에서도 한 동안 더듬더듬 떠벌일 밑천이 되어준 그 노동영화제, 빠질수 없는 행사중에 하나였다. 왜 내가 이걸 잊고 있었을까 ㅎㅎ; 그렇지만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이런저런 사정들이 겹치면서 결국 마지막날인 일요일 저녁 나절부터 참여할수 있었다.

 


 

도착하자 마자 시작하는 바람에 급하게 들어가서 봐야 했던 '그들 역시 투쟁한다' 라는 작품은 아르헨티나의 영상집단인 '노동자의 눈' 이 2005 년 새롭게 제작한 작품이다. '노동자의 눈' 은 우리나라의 '노동자 뉴스 제작단' 과 비슷한 활동을 하는 영상운동 단체인데, 아르헨티나 민중들의 투쟁이 활발하게 분출하고 있을때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도 한편으로 투쟁의 모습들을 영상에 옮기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특히 실업 노동자 운동인 '피케테로스' 에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는 아르헨티나 지하철 공사가 민영화 된 이후 대량의 정리해고 ( 영화속 노동자의 말에 의하면 본시 4700 명에 달하던 노동자들은 민영화 이후 불과 1500 여명 규모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 및 남아있는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압력, 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화, 증가된 노동시간 및 저 임금 등에 맞선 지하철 노동자들의 투쟁의 기록이다. 그들은 지하철을 멈춰세우고 역 을 점거한채 파업농성을 진행하고, 자본은 공권력을 동원하고 여론을 조작하여 이들을 공격하려 하지만 'IMF의 모범생' 이라던 아르헨티나 경제가 바로 그 신자유주의 정책때문에 파탄에 빠져든 후 대통령을 권좌에서 내 쫓고 생산현장을 장악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노동자 민중들은 오히려 이들을 지지하고 지하철 노동자들은 값진 승리를 거둔다.


영화는 자본과 맞서는 지하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동시에 또 한가지 중요한 축으로 노동조합 관료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지하철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노동조합의 집행부들은 이들의 문제를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고, 결국 현장의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투쟁을 조직하게 된다. 파업이후에도 노조관료들은 자본과의 협상에만 주력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그들은 합의안에 대한 조합원들의 투표조차 진행하려 하지 않는다. 결국 협상안을 설명하러 간 일단의 노동조합 지도부들이 현장노동자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여 쫓겨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장면을 보면서 자연스레 작년 여름의 궤도연대 파업이 생각났다. 당시 서울 지하철 노동조합은 오랫동안 '노사상생' 을 앞세우는 '서울모델' 이란 기만적인 모습으로 노동자들의 불만과 저항을 무마하는 역활을 해 왔던 배일도 위원장 ( 현 한나라당 국회의원 ) 체제를 뒤짚고 보다 좌파적인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었으나 파업농성이 한참 잘 진행되고 있던중 여론과 공권력의 탄압을 두려워한 노동조합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업무복귀 선언때문에 투쟁은 패배로 끝나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이런 사례들은 보다 투쟁적, 좌파적인 지도부 가 아니라 현장조합원에 의한 통제력을 갖추는것이 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례가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끝나고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진 뒤 '엔론 :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 의 관람이 있었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기업범죄로 기록된 미국내 7 대 기업에 속하던 엔론사의 2001 년 파산과 그 파산을 둘러싼 숨겨진 이야기들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는 이 작품은 올해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상 후보작에 올랐으며 미국에서는 극장 개봉까지 했다고 하는데, 개봉관 내부를 관객들의 한숨소리로 가득 매웠다고 한다. 엔론사의 파산은 2 만명의 명의 직원들을 실업자로 만들어 버렸다.


엔론사는 실제로 수익이 거의 없을때에도 이를 숨기고 '가상이익' 을 부풀려 선전함으로서 기업의 가치, 곧 자사의 주식가를 올리는 방법으로 허상만을 거대하게 살찌워 나갔다. 엔론사의 직원들은 대부분의 연봉을 자사의 주식으로 받아야 했고 그 주식은 파산과 함께 순식간에 휴지조각만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엔론의 최고 경영진은 각자 적게는 몇천만 달러, 많게는 몇억달러에 달하는 주식을 사전에 매각하여 10억 달러 이상의 돈을 챙겨 사라질수 있었다. 그들은 투자자와 노동자들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순간까지 어떠한 경고도 발하지 않고 허상만을 부풀려 나갔다. 영화속에서 나오는 이야기처럼, 선장과 항해사들은 이미 구명보트에 옮겨타고는 선원과 선객들에게 "아무런 문제없다,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 고 주장하는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든것을 상품화 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사례였다. 심지어 그들은 인터넷 대역폭이나 날씨마져도 상품화 하려고 했다 ( 물론 그러한 시도들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 캘리포니아 전력공급이 민영화 된 이후 그들은 전기의 값을 올리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발전소를 멈추곤 했으며 이 때문에 지역민들은 엄청난 불편과 높은 전기요금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론의 트레이더들은 “캘리포니아가 태평양으로 꺼져 버리면 전기값이 더 뛰어 오를텐대...” 라고 말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전력난의 사례는 영국 철도와 마찬가지로 민영화의 대표적인 폐해로 기록되고 있다.


'엔론 :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 은 자본주의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는 좋은 영화다. 하지만 다소 긴 러닝시간과 엔론사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중심적으로 다루어 지지 못하고 전직 간부들 및 '전문가' 들의 인터뷰만 반복하고 있는 모습은 영화를 다소 지루하고 늘어지게 만들어 버렸다. 솔직히 중반을 넘어가면서 짐승은 잠시동안 졸기까지 했다. (-,-;) 동시에 비슷한 시기에 파산을 맞은 대우자동차가 생각나지 않을수 없었다. 막대한 부정축재를 저지른 김우중 회장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비호를 받으며 해외로 도망찰수 있었고 경찰은 형식적인 수배만 남발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은 바로 그 경찰의 진압봉에 머리가 깨져 피투성이가 된 몰골로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싸워야 했다.


영화가 끝난뒤 역시 잠깐의 휴식시간이 있었고 이제 마지막 폐막작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상영관 밖에서 잠시 담배를 피우던 도중 극장안의 커피숖에서 야외 휴계실에 붙여준듯한 포스터를 발견했는데, 내용이 가관이었다. 보건복지부 명의의 그 포스터는 '여성, 담배를 버리고 날개를 얻다' 였다. 담배를 버린다고 날개를 얻는다는 말도 안되는 억지소리 ( 담배 안핀다고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보건복지부면 복지부답게 복지에 대해서 신경좀 쓰지 그래? 허구헌날 담배만 가지고 지랄하면 우리의 삶이 나아지냐? ) 도 문제였지만 그 앞에 '여성' 은 무슨 이유로 붙는단 말인가? 여자가 담배피는게 그렇게 꼴보기 싫은가, 덕분에 애인님에게 담배불 붙여주던 나는 그녀의 날개를 꺽어버린 셈이 되었다. 에라 ㅆㅂㄹㅁ -,-+

 


폐막작은 '유언 - 박일수 열사가 남긴 56일간의 이야기' 이었다. 작년 2 월,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사내하청 업무를 맡고 있던 인터기업 소속의 박일수 씨가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라고 시작되는 유언장을 남기고 분신자결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명제를 실현시키기 위해 한 젊은 노동자는 분신을 택할수 밖에 없었고, 올해 초에는 울산 건설 플랜트 노동조합의 노동자들이, 얼마전에는 하이스코 노동자들이 힘든 투쟁을 전개해야만 했고 지금도 숱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싸워야 할수 밖에 없다.


영화는 현대중공업 사측과 노동자 사이의 대립을 다루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투쟁에 연대하지 않고 오히려 사측의 입장을 대변한 정규직 노동조합의 행태에 대해서도 강경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아예 노골적으로 '우리는 어용이니까' 라고 말하며 연대를 거부하고, 그 죽음을 앞에두고 '냉정한 평가' 운운하며 열사라는 칭호조차 붙이기 거부하고, 경찰, 사측과 함께 박일수 열사의 딸을 납치해 회유하려 하는가 하면 영안실을 침탈해 그곳을 지키고 있던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활동가를 폭행하고 현수막과 텐트마져 철거해 버리는 현대중공업 직영노동조합의 지도부와 열사투쟁을 전체 비정규직투쟁으로 확대하지 않고 협상으로만 풀려했던 대책위원회 등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는것이다.


옳바르게도 민주노총 금속연맹에서는 작년 9 월 현대중공업 직영노동조합에 대해서 제명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직영노조 지도부는 '제명 결정은 계획된 음모' 라며 '선처를 구걸하지 않겠다' 라는 태도를 취하였다. 사실상 그들로서는 어용노조로서의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으려 하는 노동자들을 고립시키기 위해서라도 제명조치를 오히려 반겼을지도 모를일이다. 기존 언론들이 '전투적 노동운동 거부한 현중 노조 제명' 이라며 그들을 지지해준것도 같은 이유 아니겠는가. 대기업 노동자는 '노동귀족' 이라며 몰아붙이기 바쁜 그들 언론이 말이다.


박일수 열사를 둘러싼 투쟁은 56 일 동안 펼쳐졌지만 그가 남긴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고 크다. 이미 지난 2003 년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의 추모제에서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저들이 강한것이 아니라 우리가 단결하지 못해서' 패배하는 것이라고 외쳤던 말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함께하지 못한다면 결국 정규직 노동자들의 미래도 암담할수 밖에 없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 활동가는 집회에서 '하청노조의 힘이 이것밖에 안 되서' 부족한 합의안에 동의할수 밖에 없다고 했지만, 그것이 어찌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역량 문제란 말인가.


내가 본 작품들의 숫자가 몇편 되지 않아서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올해 노동영화제에서의 최대 화두는 노동조합 관료들의 타협적이고 보수적인 모습에 맞서기가 아닌가 한다. 제9회 노동영화제의 모토는 '자본에 경고한다' 였지만, 자본만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는것은 아니였다. 관료화 되어가는 운동의 지도부에 맞서 아래로부터의 투쟁, 아래로부터의 통제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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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번째 멜로영화 - 너는 내 운명

짐승은 영화를 좋아하지만, 보통 '영화광' 들이 그렇듯이 많은 작품을 보는건 아닙니다. 편식하는 까다로운 습성이 입에서 눈으로 옮겨갔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피품목 몇가지가 있다지요. 종교영화가 그렇고, 스펙타클 어쩌고 하는 헐리웃 스타일의 액션영화가 그렇고, 그리고 멜로영화가 그렇습니다.

 

너는 내 운명


'너는 내 운명' 은 그런 짐승이 극장에서 보게 된 세번째 멜로영화 입니다. 첫번째는 멜로인지 일반 드라마인지 혼란스러운 '파이란' 두번째는 어쩌다가 단체관람(!) 식으로 보게 된 '연애의 목적', 세번째가 '너는 내 운명' 이 되겠습니다. 같이 갔던 어떤분 (ㅋㅋ) 에게는 내가 본 '두번째' 멜로영화라고 말씀드렸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연애의 목적'을 빼먹었네요. ^^;


파이란은 멜로라기 보다는 밑바닥 인생의 사회 드라마에 가깝다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삼류 조폭중에서도 삼류밖에 안 되는 건달과 먹고살기 힘들어 말도 잘 안 통하는 한국에와서 위장결혼까지 해야했던 조선족 처녀의 이야기지만, 둘은 연애질은 고사하고 죽기전에는 서로 얼굴한번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그저 각자의 이야기들만 진행시켜 나가지요. 파이란이 호평을 들은것은 눈에띄는 연애감정으로 빠지지않고서도 3류 인생의 마지막 남은 희망을 사랑에 걸었기 때문일테고, 동시에 자꾸만 어긋나는 두 사람의 만남과 감정들이 어쩐지 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일 겁니다. 그들의 남루한 삶도 마찬가지고요.


'너는 내 운명' 이 파이란과 같은 컨셉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계획을 세운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이쁘고 아기자기한 장면과 감정들만 교차하는 다른 멜로영화들 보다 훨씬 더 '현실적' 으로 보여집니다. 그런건 꼭 배경이 변 향기 풀풀날리는 농촌이라서 그런것만은 아닌거 같아요. 좋아하면서도 선뜻 다가가기 힘들어서 이리 저리 비트는 모습이나, 그게 싫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처지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나, 그들을 둘러싼 주위 사람들의 폭력적인 시선과 모멸감까지 마치 어디선가 직접 보고 느낀듯한, '익숙함' 을 안겨줍니다.


감독은 이 영화를 노골적으로 '신파물' 이라고 불렀다지요. 과연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중반이후로 지독하게 슬프고, 대놓고 눈물샘을 쥐어짜는 장면들을 집어넣어서 미쳐 손수건을 준비하지 못한 커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어 버리죠. 하지만 덮어놓고 '신파' 라고 부르며 멀리할수 없는건 위에서 말한 익숙함, 현실감 때문이에요. 어디선가 분명히 저런 사람들이 살고 있을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거죠. 그것이 단순하게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라서 그런것 같지는 않습니다.

 

너는 내 운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2% 부족한 것은 어쩔수 없는것이, 너무 둘의 이야기에만 집중해서 신파를 짜다보니 주위 환경에 대한 묘사는 단편적으로 지나가 버린다는 거죠. 그녀가 다방으로 가게 된 사연에 대한, 전 남편에 대한, 성매매에 들어갈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묘사들. 그녀가 AIDS 보균자임을 알게 된후 마을 사람들이 그를 보는 시선, 어머니나 형제를 비롯한 집안 식구들의 그에 대한 공격이 지나치게 생략되거나 혹은 간소화 되어 있어서 단순히 '배경' 으로서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실화에 기초하고 있다지만, 온전하게 그런것만도 아니죠. 영화는 해피엔드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언 해피엔드가 분명하니까요. 그녀가 출소하고 난 후에 그들이 헤어질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나 이유에 대한 생략도 아쉬웠던 부분이었습니다. '삶' 이 엑스트라가 아니라 주연으로 등장해서는 신파가 안 되었을까요. 짐승은 오히려 그 경우에 더 많은 눈물샘이 자극되었을 텐데요 ^^;

 

너는 내 운명


또 하나, 자꾸만 생각이 나는 걸 떨쳐버릴수 없는것이 당사자 본인들이 이 영화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겁니다. 영화가 극중에서 등장하는 언론처럼 인간이나 사랑이 아닌 돈벌이 수단으로만 그들의 이야기를 다룬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고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건 내 관점인거고, 본인들은 어떨지 모르는 거니까요. 만약의 경우지만, 하이에나 같은(--;) 언론의 속성을 그런식으로 폭로해놓고 정작 자신이 그런 함정에 빠진거라면 지독히 멍청하거나 지독히 뻔뻔하거나 둘중 하나겠지요.


어쨌거나 한번쯤 볼만한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부족한것도 많고 한계도 눈에 띄일 정도지만 나름대로 잘 만들긴 했어요. 커플인경우 손 잡고 들어가서 보고 나면 연애감정이 증폭될겁니다. ㅋㅋㅋ 2 주째 박스오피스 1 위에 오를 정도로 잘 나가고 있으니 느긋하게 한번 보시는것도 나쁘지만은 않을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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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고 싶은 공동체 - 웰컴 투 동막골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친 극작가중에, 우리에게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라는 시로 유명한 '베르톨트 브레히트' 도 있습니다. 그는 아직 독일에서 활동하던 젊은시절에 '민중의 의지' 라는 잡지에 당시 뮌헨 지방에서 유행하던 부르조아 연극 들을 통렬히 비판한바 있으며 몇년 뒤 자본론을 공부하면서 본격적으로 인간이 자본주의 하에서는 노동이란 상품으로 전락했으며 인간의 본질을 잃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맑스주의 극작가라고 볼수 있겠죠.


비록 갑작스런 죽음으로 결실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변증법적' 연극을 지향했으며, 그 방법론으로 '서사극 이론' 을 주장했습니다. 서사극 이론이란 간단하게 말해서 현실의 좌절,불만 등의 상황에 서사성을 가미함으로써 무대위의 배우나 이야기 전개에 관객이 감정이입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거리두기' 라고 표현되기도 하는데, 원래는 연극을 위한 이론이었지만 지금은 영화계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제가 '거리두기' 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것은 라디오방송 '정음임의 영화음악' 에서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의 입을 통해서 들은것일 겁니다. 제 기억으로 그는 (아마 지금까지도) 이 '거리두기' 를 열정적으로 주장하던 사람이었죠. 그의 영화평은 대부분 어렵다고들 말합니다만, 그 중에 '시네마천국' 에 대한 평은 어렵다거나 난해하다는 이유가 아닌, '감수성을 짓밟았다' 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정성일씨는 시네마천국에 대해서 거리두기를 하고 본다면 거의 봐줄것없는 영화이며, 시네마천국이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는 '영화에대한 감성적인 자세' 는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죠.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거리두기' 에 대해서 장황하게 이야기 드리는것은 제가 그 이론에 대한 거의 무비판적인 지지자이기 때문입니다 ^^; 방송에서 정성일씨의 그 말을 들은뒤로는 영화볼때 의식적으로 거리두기를 시도하곤 합니다. 거의 대부분 실패하거나 설혹 성공했다 하더라도 제대로 읽어내지를 못하는게 문제지만 말이죠 --;

 

웰컴투 동막골


그런데 '웰컴 투 동막골' 을 보면서는 어쩐 일인지 거리두기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솔직히 눈물이 찔끔 나더군요. 그렇다고 해서 동막골이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울리는, 이른바 '최루성' 의 영화는 아니고 그런 장치도 없습니다. 사실 제가 찔끔거린것은 '슬픈' 장면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즐겁게 웃고 떠드는 장면 이었으니까요. 왜 그 장면이 그렇게 애달프게 느껴졌는지 모를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감정이입한 대상은, 성은 스 씨요, 이름은 미스 였던 그 사람이었던거 같습니다.


동막골에 들어와서 동화되어가는 군인들은, 말하자면 전쟁이라는 현실에서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도피한 사람들입니다. 남한군인 표중위와 문상사는 적극적으로 도주한 케이스고,  반대로 리수화가 이끄는 북한군들은 한국군들에게 이리 저리 쫓기며 북으로 도망갈길을 찾다가 동막골 사람을 만나고 들어오게 되죠. 그렇지만 스미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스미스가 동막골에서 이질적인 존재인것은 단지 인종이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는것 뿐만이 아니죠. 그는 도망치다가 들어가게 된것도 아니고,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 마치 영화가 끝나면 현실로 돌아가야 되는 관객처럼 말입니다. 관객중 어떤 이들은 스미스처럼 울면서 돌아갔을지도 모를일입니다.


유명한 이야기지만, 고대 중국의 장자는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것인지, 나비가 내가 되어있는 꿈을 꾸는것인지 알수 없다' 고 하였다지요. 그 뒤로 나비는 종종 환상이나 이상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존재처럼 사용되어 오곤 했습니다. 그것은 동막골에서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가지는거 같습니다. 스미스가 추락할때나 표 중위, 리수화의 앞에 나타난 나비들은 동막골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듯이 보입니다. 그것은 곧 동막골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이상향임을 암시하고 있죠.


실제로 동막골은 이상향 같이 보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착하고, 먹고 살 식량이나 기타 필요한 물건들은 모두 협동해서 만들어서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동막골 사람들 중 누구도 더 잘살거나 더 못살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촌장이 있지만, 특별히 촌장으로서의 귄위나 권력을 행사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이 동네 아이들은 예일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줍니다. 만약 예일과 같은 인물이 현실에 있었다면, 엄마들은 그 옆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릴것이고, 아이들중 어떤 애들은 '미친년, 꺼져' 라며 돌을 던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러나 그와같은 행동들은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동막골에서는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그 곳은 '머리에 꽃을 꽂은' 예일도 중요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곳이니까요. 그녀는, 그런 동막골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웰컴 투 동막골


말하자면 동막골은 누구나 꿈꿀만한 그런 곳입니다. 숨가쁜 일상에서 경쟁에 치여가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그야말로 '전쟁같은 하루' 를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동막골과 같은 곳은 그 '전쟁' 에서 비켜나 있는 존재로, 사람들이 한번쯤 '그런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게끔 하는 곳이죠. '웰컴 투 동막골' 의 미덕은 그와 같은 이상적인 공동체의 존재를 구체화 시켜서 단 2 시간 동안이나마 제공해 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막골을 지키겠다며 나서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전혀 상투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실 따지고보면 이들의 행위는 그동안 수많은 영화에서 써 먹었던 장면이지요. 아이들을 살리기위해 티라노 사우르스의 주의를 자신에게 돌리던 '쥬라기 공원' 의 그 박사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의 주인공들이 했던 것과 같은 것이고, 친하게 지내던 전우가 죽자 흥분하는 모습은 너무나 익숙한 장면들입니다.  그렇지만 동막골은 그 군인들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반드시 지켜야 할 곳이기 때문에 그 장면을 보면서 진부하다는 느낌 대신에 감동을 느낄수 있는 것이죠.


'웰컴 투 동막골' 은 우리가 꿈꾸던 공동체가 전쟁으로부터 도주, 혹은 회피 하던 사람들에 의해 지켜졌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뒤로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났다면 그땐 어떡하죠? 전쟁은 그 시점으로 부터도 대략 2 년 가량 지속되었으니까,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 때도 지금처럼 '도주와 회피' 의 전술을 사용하던 소수 몇명의 손에 의해 마을을 지켜낼수 있을까요? 저는 충분히 비관적입니다. 동막골이 머리속의 이상향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한다는 전제하에서라면, 전쟁의 한복판에서 그 마을만 독야청청하게 지켜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보여집니다. 그것은 총알과 폭탄이 난무하는 그런 전쟁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겁니다.


어쨌거나, '웰컴 투 동막골' 은 개인적으로 지난해와 올해를 통틀어 극장개봉작 중에서는 가장 좋은 영화였던거 같습니다. 상영시간이 두시간 가까이 되던데, 전혀 길거나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으니까요. 비록 '스미스' 처럼 이상향을 떠나 현실로 돌아가야 했기에 그것이 서글펐지만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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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요즘은 다소 나아진것 같지만, 짐승이 대구에서 서성거릴적만 해도 변변한 시네마 테크가 없어서 키노 나 씨네21 등에서 추천하는 '고전 명작' 들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서울에 있다는 이런저런 씨네마 테크들을 보면서 부러움에 몸부림(-,-;) 치기도 했지요. 솔직히 서울에 직장을 잡은 이유중에 하나는 저런 문화적 혜택을 많이 누릴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습니다. 막상 올라오니까 게을러져서 그렇지 --;


하여튼 당시에는 그나마 '영화마을' 비디오 대여점이 약간의 대리만족을 제공해주는 역활을 했었죠. '솔라리스' 시리즈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택시 드라이버' 등등 분명히 비디오로 출시는 되었으나 타 대여점에서 장사가 안된다는 이유로 반품.폐기하거나 아예 구입하지 않은 좋은 타이틀들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는, 말하자면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이었슴다. 미닫이 형식으로 되어 있는 비디오진열대를 이리저리 밀고 당기고 하다 보면 생각치도 않은게 발견되곤 했으니까요. 그 중에는 김기영 감독의 영화도 있었습니다.


지난 토욜, '미디어 몹' 의 #@%~/&^ 님과 하늬 님과 함께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김기영 감독의 '하녀' 를 보았습니다. 영화 상영전에 두분에게 '비디오 대여점을 뒤지다 보니까 '하녀' 도 있더라. 그런데 내용은 기억 안난다' 고 썰을 풀었는데, 영화가 시작되고 10 초도 안지나서 그게 구라였다는 게 밝혀지더군요. 무엇보다도 제가 봤던것은 칼라필름 이었는데, 이 '하녀' 는 흑백이었던 것입니다 (--;;) 아마도 비디오로 봤던것은 하녀 3 부작 중에 충녀, 아니면 화녀 였던거 같은데, 너무 오래된 탓인지 '감독 김기영'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고 있습니다. -_-;

 


'하녀' 는 공장 기숙사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 예전엔 이런것도 했었나봐요? ) 남자와, 그 남자를 짝사랑하는 여공, 그리고 여공이 남자의 집에 소개해준 하녀 이렇게 세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남자 ( 이하 선생님 ) 는 이미 가정을 가진 유부남이고, 당시의 기준으로는 어느정도 성공한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선생님' 은, 중간계급 지식인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가족, 자신의 현재 위치를 지키는것이 그가 가지는 가장 큰 가치관이고, 거기에 약간의 위협이라도 가해진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응징하려고 하죠. 영화 초반에 나오는 연예편지 사건 같은것은 그져 적당하게 거절해도 될 문제인데, 여공에게 징계가 가해질것을 알면서도 관리자에게 고자질하는 모습은 그런 가치관과 성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하녀의 흡연에 대해서 크게 문제삼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당시의 시대기준으로 보면 의외의 행동이었습니다. 아마도 흡연행위가 '가족' 에게 큰 해가 되지만 않으면 된다고 판단했던것이 아닐까요.


가정에서의 그는 아내에게 헌신적이고 아이들에게 적당히 자상한 아버지로서 전형적인 '좋은 남편(가부장)' 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아내 역시 그에게 헌신적이며, 가족 구성원들의 신분상승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현재 자신(들)이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성공한 중간계급의 위치를 놓치는것에 대해서 과도할 정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그 두려움과 집착이 이후의 '가족' 에 대한 비극적인 사건을 불러오는 주요한 이유가 됩니다. 물론 직접적인 계기는 남편의 외도 입니다만, 이후 그 아내와 남편의 대응을 생각해볼때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계층에 대한 집착 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되더군요.


또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계층에 대한 이야기 이면서 동시에 가족에 대한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하녀가 처음 그 집에 들어왔을때 가족들이 가지는 경계심, 특히 딸아이가 보여주는 경계심은 ( 그녀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하녀가 물에 쥐약을 탔을거라고 동생에게 말합니다 ) 가족이라는 구조가 가진 타인에 대한 폐쇄성과 함께, 직감적으로 '젊은 하녀' 가 자신의 단란한 가족을 깨트리는 불륜의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적대적인 인식을 보여주고 있죠.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느꼈던것 중에 하나는, 피아노라는 장치입니다. 피아노는 뒤에 하녀의 광기를 표현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그 광기어린 연주(?)는 관객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장치로서의 역활을 수행하지요. 왜 '하필이면 음악 선생' 인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그래서 풀립니다. 그러한 장치를 통해서 김기영 감독은 등장인물의 내면 표현을 하면서 동시에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사용되는 효과음까지 대체시켜 버리는 효과를 거뒀다고 보여지네요.


아무튼 이제서야 비로소 진짜 '하녀' 를 본 셈인데, 보고난 후에야 이 영화에 쏟아진 무수한 찬사들에 대해서 이해가 되더군요. 우리 영화계에서 한동안 죽어있다가 몇년전부터 '호러' 라는 쟝르가 부활하면서 이런 저런 영화들이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만, 솔직히 말해 '하녀' 만 못한 작품이 상당수 입니다. 이게 리메이크 되면 꽤 무서울거 같은데, 충무로의 누군가가 그런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해주지 않으려나...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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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즐기는 게임 - 판타지마스터즈

회사업무의 압박이 컸던 지난 5,6 월 과는 달리 최근에는 시간이 좀 남는 편입니다. 솔직히 지난 2 주간은 출근해도 일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더 많았던거 같아요. 여기 입사하고나서 이렇게 한가한 기간이 그것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던적은 처음인거 같네요.


덕분에 거의 칼퇴근 ( 이라고 해도 7 시 ) 을 하고 있는데, 집에 들어가면 밥먹고 뒹구는게 일이죠. 뒹굴면서 하는 짓들을 시간을 기준으로 퍼센테이지를 나눠보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오는군요.


1. 어둠의 경로로 받은 영화, 혹은 애니메이선 보기 ( 50 % )
2. 게임하기 ( 30 % )
3. 책 보기 ( 10 % )
4. TV 보기 ( 10 % )


... TV 야 거의 뉴스밖에는 보지 않으니 뭐 나쁘지는 않은데 독서시간이 저 정도 밖에 안되는것은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 맨날 말로만 --; )  초등학생 수준의 생활계획표라도 짜야하는건지 (ㅠ.ㅠ)...
아 진짜, 요번에 집에 내려갔다 올라올때는 반드시 책 한권 떼고야 말겠다는. ( 정말? ;; )


독서랑 TV 는 그렇다치고 게임도, 이것저것 깔아둔게 많습니다. 에뮬로 돌리고 있는 '슈퍼로봇대전' 이나 '마장기신' 을 비롯해서 삼국지 9, 대항해시대, 화이트데이, 사일런트 힐2,3 등등 자주 플레이 하지도 않는 패키지 게임 몇개가 깔려있네요. 삼국지 9 같은 경우는 딱 한번, 황건적의 장각을 선택해서 낙양성을 점령하고 한나라 헌제를 잡아 목을 벤 뒤로는 플레이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호족의 밑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을 구해야 할 일이 많거늘... 황천세상이 온다! 황건기의다! ( 동물병원에는 정신과가 없겠죠? --; )

 


뭐 말난김에 황건적의 난 으로 알려진 건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삼국지를 재 해석한다' 고 하는 사람들이 맨날 그놈이 그놈인 유비와 조조의 차이에만 집착하고 있다는것에 대해서 불만입니다. 정말 중요하게 봐야할것은 태평도를 중심으로 장각이 이끌었던 당시의 농민전쟁, 즉 이른바 '황건적의 난' 이었습니다.


그것은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자들의 폭압에 맞서 농민들이 스스로를 지키고 자신의 권리를 되찾고자 일어난 혁명이었지, 삼국지연의에서 묘사하듯 그렇게 우둔하고 탐욕스러운 도둑집단이 아니었으며, 억압에 맞선 농민들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중앙권력 및 지방호족들간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면에서 보면 유비,장비,관우가 황건적에 맞서겠다고 의형제를 맺고 도원결의를 하니 마니 하는 모습은 각자 자신들이 누리고 있던 중간계급적 이익에 충실하기 위해 농민의 의거를 눌러버리겠다는 뜻으로, 어떤 면으로도 미화될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태평도의 농민군이 뚜렷한 대안세상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 농민군은 무기,훈련정도,규율 등 모든 면에서 열세였기 때문에 마치 동학혁명이 그렇듯이 실패한 혁명이 되어 버렸지만 결코 폄하될수 없는것이 황건적의 난, 혹은 태평도의 난 이라고 불리는 농민전쟁 입니다. 또한 그때 그들이 가졌던 사상은 후에 도교의 뿌리가 되기도 합니다.


좌우지당간, 그나마 온라인 겜에 거의 손을 안대고 있다는게 그나마 다행이랄까요. 온라인 겜이란게 패키지겜 보다 중독성이 강해서리, 한번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한때 그 악명높은 '리니지 폐인' 이었기에 온라인 게임은 자꾸만 피하고 싶더군요. 그렇지만 딱 하나, 아직 손대고 있는 게임이 있으니 그건 바로 '판타지 마스터즈' 라는 게임입니다.

 

다른분 게임스샷 올려두신걸 슬쩍해옴 -_-;


작년 이맘때쯤 웹서핑중 우연히 판타지 마스터즈 (이하 판마) 사이트를 접했을때, 그 독특한 시스템에 반했버렸슴다. 자신의 속성을 정해서 그것으로 카드 덱 ( 카드 뭉치를 덱 이라고 부릅니다 ) 을 구성하고, 덱의 구성카드들을 끊임없이 업데이트 하면서 다른 유저의 덱과 승부를 겨루는 시스템은 칼이나 기타 무기를 들고 필드를 누비는 아이콘들에 익숙해져 있던 저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더군요.


뭐 이런 종류의 게임을  TCG ( Trading Card Game ) 라 한다고 들었습니다. 종류별로 카드를 구성하고 활용하면서 전략, 전술을 세워 상대방과 전투를 치르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런 종류의 게임으로 우리나라에 가장 잘 알려진건 '유희왕' 이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국내에선 유희왕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적고, 그나마 2~3 개 정도 있던 TCG 게임들도 지금은 모두 문을 닫아버린 상태니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TCG 게임이 판마 라고 볼수 있습니다. ( 다르게 말하면 독점 -ㅅ- )


카드의 업데이트도 큰 매력이지만, 또 다른 매력은 고도의 전략.전술 을 요하는 게임이란 점입니다. 덱에 들어있는 카드는 크게 지형, 유닛, 아이템, 마법 의 네 종류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중 유닛은 각각 전사,야수,마법사 계열로 다시 세분화 되어 있고 각 계열마다 장착할수 있는 아이템이 따로 존재하니 ( 공용 아이템도 있지만 ) 여기서부터 일단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마법도 방어시에만 작동하는 마법, 공격시에만 작동하는 마법, 양쪽 모두 사용가능한 마법 등으로 세분화 되어 있죠. 유닛이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자원을 제공하는 지형카드도 신경써줘야 하고, 각 유닛의 특수능력이나 '우연의 수' 를 결정하는 코인 등의 요소까지 끼어들면 상당히 골치아파 지더군요. 완전히 분석표를 만들어야 한다는... ( 저도 만들었습니다. --; )


게임을 잘 하시는 분들은 야수덱이다, 흑단덱이다, 위니덱이다 모다 하면서 자신만의 특성을 가진 덱을 꾸려서 잘 사용하시던데, 전 처음부터 덱 튜닝을 잘못해서 겨우 불,숲 양 속성을 가진 '찌질한 듀얼덱' 을 구성하는데 그쳤습니다. 다시 튜닝해보고 싶지만 충전해놓은 돈이 바닥을 치는군요. 그렇다고 다시 충전하고 싶지는 않으니 ( 돈 듭니다... ) 이대로 가야지요 뭐.


하이에나새끼의 판마 카드덱 ( 이름 : 찌질이덱 ) 공개 : 승률은 37~40% 를 왔다갔다 하는 정도 _-_

 

 

 


하여튼 가끔씩 한번 해보기에는 좋은 게임인거 같습니다. 중독되지 않도록 조심하시고 ( 이 겜도 돈 듭니다... 돈 안들이고 할수도 있지만 게임머니 만으로 구입가능한 free 레벨의 카드들은 숫자도 제한적이고, 능력도 약해서 다른 이들이랑 대결하다보면 유료카드들을 구입하고 싶어지도록 만들지요. 교활한 제오닉스 녀석들 -_-; ) 시간날때 한두번씩 해보는것도 나쁘진 않을거 같습니다. ^^;


아, 다음번에는 반드시! 읽어본 책에대한 이야기를 해야 겠어요. 그간 영화니 만화니 게임이니 등에대한 이야기들은 있어도 책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도 없었네요 --;; 아마 전.변 끝나고서야 가능할거 같지만, 어쨌든 열심히 독서에 집중해야 겠습니다. 다들 건강하시고, 더운 여름 잘 이겨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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