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3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12/10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 '마지막' 이 아닌 '시작' / 포럼 안내
    하이에나새끼
  2. 2004/12/04
    영화가 세상을 바꿀수 있을까?(3)
    하이에나새끼
  3. 2004/11/25
    기억에 남는 영화들 1(2)
    하이에나새끼
  4. 2004/11/23
    노동영화제 -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the take)
    하이에나새끼
  5. 2004/11/23
    노동영화제 -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하이에나새끼
  6. 2004/11/23
    노동영화제 - 계속된다.(2)
    하이에나새끼
  7. 2004/11/23
    2004 노동자대회,전공노 파업출정식을 다녀와서
    하이에나새끼
  8. 2004/11/17
    제 8회 서울 국제 노동 영화제
    하이에나새끼
  9. 2004/09/28
    빌리지 - 공동체주의가 가지는 한계.
    하이에나새끼
  10. 2004/09/27
    추석, 뒹굴다가 깨졌습니다. ㅜ_ㅜ
    하이에나새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 '마지막' 이 아닌 '시작' / 포럼 안내

 

2000 년 이던가, 이화여대에서 열린 인권영화제를 본적이 있었다. 지금은 인권영화제도 대중화 되었고 시내 극장등을 임대해서 열리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 몇해전까지 영화제를 중단시키거나 방해하려는 정권의 압박이 심했던 시기라서, 상영장소가 대학의 캠퍼스로 한정될수 밖에 없었고 그만큼 영화를 보러오는 사람들의 숫자도 그리 많지 않았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절대적인 인기를 모았던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개막 및 폐회식에서 상영되었던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볼리비아 다이어리' 가 그것이다.


제목에서 보이듯이, 볼리비아 다이어리는 체 게바라의 마지막 투쟁무대였던 볼리비아 에서의 행적을 보여준다.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볼리비아로 건너가서 그곳에서의 체 게바라의 행적을 뒤쫓는다. 쿠바의 관직에서 물러난뒤 몇명의 동지들과 함께 볼리비아로 건너온 그는 현지 주민들을 게릴라로 조직해 투쟁을 시작하지만 압도적인 병력과 무장을 갖춘 미군과 그 지원하의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곧 쫓기게 되고, 결국은 CIA 요원에게 체포되어 사살당한다. 볼리비아 다이어리는 '20 세기 가장 위대한 혁명가' 가, 굶주림과 질병등 갖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강철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음을 담담히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였다.


그로부터 4 년뒤, 이번에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가, 무슨 무슨 영화제의 이름이 아닌 일반극장에서 당당히 상영되었고, 적은 개봉관 수에도 불구하고 롱런하면서 선전하고 있다. '볼리비아 다이어리' 가 게바라의 마지막을 기록한 영화라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게바라가 혁명의식을 가지게 된 여행의 시작을 보여주는 영화다. '볼리비아 다이어리' 를 본 관객들이 이루어지지 못한 혁명을 아쉬워하며 일종의 비장감을 느꼈다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를 본 관객들은 앞으로 만들어질 혁명을 기대하며 희망감을 가진다.


4 년 사이에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우선 1999 년의 시애틀 투쟁은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담을 무산시키며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새로운 투쟁이 시작되었음을 선언했다. 2001년 7월 제노바 G8[주요 8개국] 정상회담 반대 시위는 이탈리아 정권의 매우 폭력적인 탄압이 30만 명의 시위를 불러일으켰다. 체 게바라가 살해당했던 볼리비아는 2000년 물사유화 저지 투쟁을 시작으로 대중들의 투쟁이 거세게 타올라 3 년 만에 봉기를 성공시키고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도망치게 만들었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중들의 투쟁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따른 반전시위와 합류하면서 더욱 거세졌다. 2003 년 2월 15일에는 전세계적으로 1천5백만 명이 반전행동에 나섰다. 보수 신문 '뉴욕 타임스' 는 이를 두고 '(부시에 맞서는) 또 다른 슈퍼파워' 라고 불렀다.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앞세운 자본주의가 전세계 민중을 상대로 '4차 세계대전' (8회 노동영화제 상영작 - 볼리바리안 혁명) 을 일으켰다면, 그에 맞서는 강력한 저항도 존재한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그와 같은 사회 분위기의 반영이다. 영화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법이다. '볼리비아 다이어리' 가 피지 못한 혁명을 아쉬워 하며 게바라의 조문 정도에 머무르는것이 영화 제작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말해준다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는 다시금 활발하게 타오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투쟁과 그에 따른 활력적인 사회분위기를 반영한다. '볼리비아 다이어리' 가 마지막을 이야기 했다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는 시작을 이야기 한다.


영화가 시작할때 자막에 나오는 말처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는 영웅적인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게바라의 영웅적 모습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사람이라면 너무나 평범한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의 모습에 실망할수도 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에서 페루까지의 그 기나긴 여행, 여행에서 마주치는 민중들의 가난하고 불합리한 모순적 삶은 에르네스토에게 새로운 세상이 필요하다는 의지를 심어준 갚진 여행이었다. 영화 마지막에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한센병 환자들과의 작별파티를 위해 천식을 무릎쓰고 강을 헤엄쳐 건너는 장면에서 보여주듯이 그 여행은 게바라에게 성공이 보장되는 의사생활 대신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의식을 심어준 것이었다.


게바라와 함께 여행했던 알베르토는 아직 생존해서 쿠바에 살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이제는 완전히 늙어버린 알베르토 본인이 직접 등장해서 떠나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 비행기는 페루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알베르토가 돌아가는 게바라를 전송하던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지금 나이든 알베르토가 바라보는 그 비행기에는 게바라 대신 누가 타고 있을까? 나는 우리 모두가 그 비행기에 타고 있을것 같은 생각이 든다.


p.s : 12 월 15 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 그 이후 체 게바라' 를 주제로 마포사회포럼이 있습니다.
마포사회포럼은 반전반자본주의 노동자운동 '다함께'가 주최합니다. 이 포럼은 사회 연대와 공익을 위한 캠페인과 주장을 소개하고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세상, 체 게바라에 관심있는 분들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일시 : 12월 15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장소 : 신촌 책사랑방 ( 지하철 신촌역 6번 출구앞 )
연락처 : 017-375-5847
블로그 : blog.empas.com/wp2020
* 책사랑방은 1인당 이용료가 3천원 입니다. 참가비를 준비해 주세요 ^^;
 
 
얘기꺼리
 
- 체 게바라는 누구인가?
- 쿠바혁명의 성격
- 게릴라 투쟁으로 혁명을 앞당기는 것이 가능한가
- 오늘날 왜 '체 게바라'는 부상하는가
- 영화 얘기
- 기타

 

읽을꺼리
 
1.다함께
 
 
2.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3.체 게바라 자서전과 평전

체 게바라의 라틴여행일기, 에르네스토 체게바라, 이후 
먼 저편, 체 게바라, 문화산책
체 게바라 자서전, 황매
체 게바라, 장 코르미에, 실천문학사
 
4.쿠바 혁명에 관해서
민중의 세계사, 크리스 하먼, 책갈피, pp716~721
쿠바혁명사. 레오 휴버만 외, 지양사(절판)
들어라 양키야, C. Wright Mills, 아침(절판)
(절판 된 책은 운이 좋아 헌책으로 구입하거나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책이기에 소개합니다.^^)
 
5.게릴라 투쟁과 제3세계 민족주의에 대해서
천안문으로 가는 길, 찰리 호어, 책갈피, 제2장 권력으로 가는 길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은 무엇인가, 존 몰리뉴, 책갈피, 6장 제3세계 민족주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영화가 세상을 바꿀수 있을까?



미디어몹 ( http://www.mediamob.co.kr/ ) 헤딩라인 무비입니다.

이번 헤딩라인무비 스페셜판 제목이 재미있다. '영화는 세상을 바꿀수 있을 것인가?' 글쎄, 영화가 세상을 바꿀수 있을까?

한때 그런 생각에 골몰하던 적이 있었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생각은 '콘돌의 피' 라는 작품을 알게 되면서 더 강하게 들었었다. 비록 아직까지 그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 영화는 볼리비아의 산악지대에 살고있는 인디오 들을 상대로 평화봉사단 이란 이름을 달고 진주한 미군들이 무료진료 라는 명목하에 인디오들 모르게 불임수술을 진행했던 실화를 다룬 극영화다.

'콘돌의 피' 는 정부에서 상영을 불허했으나, 곧 여론의 항의에 부딪쳐 불허결정을 철회할수 밖에 없었다. 상영된 '콘돌의 피' 는 볼리비아 전역에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미국의 위선과 원주민에게 가해지는 비인간적 만행에 분노한 대중들의 여론과 항의시위가 전국을 뒤덮었다. 내가 보지도 못한 영화의 제목이나 '우카마우 집단' 이라는 제작팀의 이름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는것은 71 년 미국의 '평화봉사단' 이 볼리비아에서 추방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이 영화가 만들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결코 잘 만들어지지 않은 ( 영화 전반적인 느낌이 파업전야와 비슷하다고 한다 ) 한편의 영화가 미국의 영향력을 꺽은 셈이다. 대단한 쾌거가 아닌가? '콘돌의 피' 야 말로 '세상을 바꾼' 영화라고 할수 있을것이고, 이 사건이후 '우카마우 집단' 은 전 세계 민중영화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영화가 세상을 바꿀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콘돌의 피' 가 극장에서 상영할수 있도록 한것은 영화를 본 사람들이 아니라 영화를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억압적인 정권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었다. 영화 상영 이전에 민중들에게 폭 넓은 저항정신과 투쟁의 분위기가 없었다면 '콘돌의 피' 가 그토록 광범한 지지를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콘돌의 피' 는 그전부터 이어져오던 볼리비아 민중들의 투쟁을 촉발시키는 매개체의 역활은 했겠지만, 아무런 조건도 조성되지 못한 곳에서 갑작스레 저항정신을 창조한것은 아니다. 결국 볼리비아에서 평화봉사단을 추방한것은 꾸준히 이어져오던 볼리비아 민중들의 투쟁이었지, '콘돌의 피' 가 추방한것은 아니다.

볼리비아 이야기를 좀더 해보자. 2003년 10월 볼리비아에서는 젤리그나이트 라는 폭약으로 무장한 수천명의 광산노동자들이 농민, 노동자, 원주민들과 함께 수도 라 파스 의 도심을 장악했고, 결국 대통령 산체스 데 로사다 는 헬기를 타고 도망쳐야 했다. ( 2000년 이후로 남미각국에서는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도망치는게 유행처럼 되어버렸다 ) 그러한 봉기를 촉발한것은 2000년 코차밤바 지역의 물 사유화 계획이었고, 당시에도 강력한 저항이 일어나 결국 정부는 사유화 계획을 철회했다. 그 뒤로도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갖가지 투쟁이 잇따라 일어났다. 2003년 2월에는 정부가 세금을 인상하고 복지를 삭감하자 수도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경찰이 파업을 벌이고 정부 관공서들이 불에 탔으며 헌병과의 충돌 와중에 33명이 희생됐다. 결국 정부는 세금 인상안을 철회해 가까스로 정권을 유지할수 있었다. 그로부터 8개월뒤, 정권이 칠레를 통해 천연가스를 수출하려던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났고, 정부군이 시위대에게 발포하자 저항은 걷잡을수 없이 번져나갔다. 약 3년 동안의 모든 운동이 이 투쟁에 결집되었고, 결국 로사다는 쫓겨나고 카를로스 메사 가 새 대통령이 되었다. 볼리비아를 바꾼 몇년동안의 싸움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것이었지, 영화때문에 일어난 운동은 아니었다.

그러나 볼리비아 투쟁에 있어서 나름대로 역활을 한 영화들도 있다. 그 영화들은 볼리비아 민중들의 삶과 투쟁의 현장을 직설적으로 표현했으며, 운동을 기록하고 전파하는데 일조했다. 헤딩라인무비는 마치 '재미있는 다큐' 가 세상을 바꿀수 있다고 말하는듯 하지만, 볼리비아 민중운동의 그 영화들에는 마이클 무어의 다큐와 달리 어떠한 '유머'도 의도적으로 삽입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지가 베르토프 식의 다큐멘터리 관점이 도입되었다.

사실 '세상을 바꾼' 모든 영화에는 '의도된 재미' 따위는 들어있지 않다. 아르헨티나 실업자 운동인 피케테로스의 성공에는 피케테로스의 활동들을 기록하고 전파한 '노동자의 눈' 이라는 다큐영화 집단의 공이 숨어있었다. 이들이 만들어낸 영화들 역시 마이클 무어의 '재미있는 다큐' 하고는 거리가 멀다. 볼리비아의 '콘돌의 피' 도, 우리나라의 '파업전야' 도 마찬가지다.

물론 진지한 주제를 더 재미있고 세련되게 다룰수 있다면 더 좋을것이다. 하지만 헤딩라인 무비는 진지한 주제를 재미있게 전달해야 세상을 바꿀수 있는 영화가 될수 있는것처럼 말하지만, 실제 세상을 바꿨거나 바꿀수 있는 영화들은 반드시 '재미' 가 있어서 그리 된것들이 아니다. 화씨911 이 볼링 포 콜럼바인 보다 재미가 없어서 세상을 바꾸는데 실패했나?
영화는 세상을 바꾼다기 보다 변혁운동에 촉매제 역활을 한다. 그 중심요소는 재미가 아니라 투쟁을 고양하고 전파하는 기록성이다. 투쟁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고양시키고 심지어 조직할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영화는 없을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기억에 남는 영화들 1

파업전야 : 1990 년, 한국, 장산곶매.

 

영화 <파업전야> 중

 

고등학교시절, 한편의 작은 영화가 뉴스에 오르락 거리던 때가 있었다. 뉴스화면에는 헬리콥터가 하늘을 돌며 상영을 중지하고 해산할것을 명령하고 있었고, 자욱한 최루탄 연기속에서 전경들은 곤봉을 휘두르며 '영화관객' 들을 몰아내고 있었다. 한때 그 영화는 보는것도 불법이었고, 심지어 가지고 있기만해도 경찰의 수사대상이 되는 물건이었다.

 

대학이란곳에 들어가고난뒤, 최루탄 대신 담배연기 자욱한 동아리방에서 이 놈을 보면서 어떤 선배들은 그 말도 안되던 시절들을 이야기하며 웃었다. 작은 공장에 노조를 만들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탄압하는 자들, 현실적 여건때문에 노동조합에 참여할수 없는 사람들과 자본가의 회유와 협박 때문에 배신할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지독한 신파이고, 최루성 가득한 영화다. 공장 한구석을 점거하고 농성하던 노동자들이 구사대라는 이름의 용역 폭력배들에게 짓 밟히고 끌려나가는 장면까지, 그것을 어정쩡하게 지켜보던 다른 노동자들이 마침내 저마다 손에 스패너니 쇠파이프 따위를 들고 동료들을 구하러 달려나가는 장면까지, 지독하게 상투적이고 감정적이다.  영상미라고는 눈 씻고 쳐다봐도 찾을수 없고, 음향은 또 왜 그렇게 퍽퍽 튀며, 편집은 왜 그리 자주 끊기나? 영화적인 의미로만 따져보자면 결코 잘 만들었다고는 할수 없는 영화가 바로 파업전야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런게 아니었다. 영상미고 나발이고 그따위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것을 보고 감정이입해서 우는 그런짓은 바보짓이다' 라는 내 관념은 작품성 부족한 독립영화 한편앞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게다가 정말 중요한것은 보고난뒤 내 가슴속에는 주인공이 치겨든 스패너같은 뭔가 묵직한것이 걸려버렸다는것이다. 

 

장산곶매 출신의 감독들은 나중에 충무로로 진출해서 영화를 한편씩 찍었지만, 개중에 봐줄만한건 단 한편도 없다. 그나마 성공한 케이스가 장윤현인데, 여기저기서 아이디어나 훔쳐다 자기것인양 갖다바르는 그의 영화들은 '어둠의경로' 를 통해 다운로드나 받으면 모를까 돈 주고 보기는 심히 아깝다.

 

랜드 앤 프리덤 : 1995 년, 영국, 켄 로치.

 

 

'키노' 의 열렬 애독자였고 정성일의 극렬 지지자 임을 자처하는 나지만, 사실 그렇게 성실한 독자는 못되었다. 키노 창간호가 나오고나서 몇달뒤 입대를 해야했던 거다. 다만 복무 기간중에라도 키노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정기구독은 계속 유지하고 있었고, 덕분에 가끔씩 외박이나 휴가를 나갈때마다 집에는 아무도 보지않는 키노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입대후 1 년이 지나 정기휴가를 나왔을때, 밀려있던 키노들이 외쳤다. '랜드 앤 프리덤을 한국에서도 극장에서 상영한다!' 고 ^^;

 

내가 휴가를 나왔을때는 이미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없었다. 시기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백두대간이 수입했으면 동숭 시네마텍 같은곳에서나 상영했을 것이지, 대구같은 지방 도시에서 상영을 했었을지는 심각한 의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마침 비디오로는 출시가 되었던 상태고, 다행히(?) 인기 없는 품목이라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어서 대여기간의 압박없이 보고 또 보고 할수 있었다.

 

조그맣고 어두침침한 다락방에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할아버지의 유품들을 읽어내려가던 소년처럼, 나는 시간가는줄 모르고 영화속에 빠져들었다. 그 기록은 파시스트의 공격에 맞서 보통 사람들의 삶을 지켜내기위한 투쟁의 기록이며,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국경을 초월한 연대를 실현했던것에 대한 기록이다. 또한 동시에 원칙에 위배되는 입장들, 그런 입장을 주장하는자들 과의 타협이 어떻게 혁명을 망쳤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몇번을 반복해서 봤지만, 볼때마다 드는 느낌은 '무언가 남겨진 이야기가 더 있다' 라는 것이다. 그 공백은 다락방에서 할아버지의 기록을 보던 소년이 채워넣을 몫이다. 그와 같이 할아버지의 기록을 봤던 우리들과 함께.

 

랜드 앤 프리덤은 처음으로 인터내셔널가 를 접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나지막하게 부르다가 마지막에 거대한 합창이 되는 영화속의 인터내셔널가와 같은, 우리의 운동은 그런것이 될것이다.  

 

메이트 원 : 1987 년, 미국, 존 세일즈.

 

 
 

 

 

 

 

 

 

 

 

 

'혼자' 영화 본적이 있는가? 비디오나 테레비젼이나 컴퓨터가 아니라, 단지 상영관에 혼자 갔을뿐 아니라 넓은 상영관에 단 혼자 앉아서 영화본적이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나는 딱 한번 그런 기억이 있는데, 그것이 이 메이트 원 이다.

 

당시 난 대구에 살았는데, 서울과 달리 지방도시들은 시네마텍 같은곳을 찾기가 만만찮게 어려운 작업이다. 그나마 열린공간 Q 라는 200여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간간히 영화제 라는 이름을 붙여 호러물이나 이런 종류의 영화들을 상영해주곤 했었다. 사실 말이 영화제지, 포스터도 변변히 붙여져있지 않은 좁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공간에서 영화만 보고 가라는 것이었다. 메이트원을 상영하는날, 하필 그 시간에 그걸 보러 온 사람은 나 밖에 없었고 아저씨는 영화제 참가비 3000 원을 받아쥐고는 아무말 없이 오직 나만을 위해서 영화를 틀어주었다. ^^;

 

메이트원은 같은 이름을 가진 20년대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은 파업이 일어난 광산에 대체인력으로 고용되는데, 사실 그의 정체는 노동운동가로서 메이트원에 민주적인 노조를 건설하려고 한다. 영화는 그 과정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들의 대립뿐만 아니라 사용자에게 매수된 다른 노동자들과의 갈등까지 폭 넓게 다루면서 노동자들이 건설해야할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에 사장이 고용한 갱들에 의해 조합원과 마을사람들이 학살당하는 장면에서는 '파업전야' 와 비슷한 '묵직한것' 도 걸린다.

 

생각해보면, 파업전야에서도 랜드 앤 프리덤 에서도 메이트원 에서도 진정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역시 그것은 영화감독이 아니라 관객이 해내어야할 몫인가 보다.

 

빵과 장미 : 2000 년, 영국, 켄 로치.

 

 

마지막으로 부산 영화제 갔던것이 언제더라?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가더라도 항상 빠듯한 알바일정^^ 과 적은 예산 때문에 영화를 많이 볼수 있는것도 아니었지만, 미쳐 예약을 하지않아 뜨거운 햇볕속에 한시간씩 줄서 있는것은 정말 고역이었지만 그래도 몇년째 영화제를 제끼고 있다보니 역시 갈수 있었던쪽이 좋은 것이었다는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2000 년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4회 아니면 5회 영화제에서, 몇몇 단편들을 본뒤 천리안 영화동호회에서 알게된 사람들을 만나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고서 다음날 아침에 흐리멍텅한 머리로 봤던 영화가 빵과 장미다. 동호회 사람들은 뭔가 따분한 ( 내 주관에서 ^^ ) 영화를 본다고 우르르 몰려가는 바람에 또 나만 남겨져서 이놈을 보게 되었다. 선택은 현명했다. 이 놈을 본뒤 숙취가 확 깨버렸으니까.

 

빵과 장미는 얼핏 '메이트원' 을 생각나게 한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을 조직하는 과정이 담겨져있으며, 노동자들 사이의 대립이나 불신에 대한 장면들도 여과없이 보여준다. 메이트원을 좀더 밝고 경쾌한 이미지로 만든다면 빵과 장미 가 될것같다. 그래서 나는 메이트원 을 생각하면 빵과 장미가 생각나고, 빵과 장미가 생각나면 메이트원이 떠오른다. 두 영화간에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여주인공 이다. 그녀는 멕시코에서 국경을 넘어온 이주노동자 이며, 여성이며, 비정규직 노동자로 그려진다. '열악한 노동' 의 이미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그녀는 가장 소외받는 노동자이며, 그 때문에 노동운동가인 남자주인공과 트러블을 빚기도 한다. 그러나 마침내,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파업투쟁에 돌입하는데 성공한다.

 

'빵과 장미' 역시 실제로 있었던 세탁용역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녀들은 행진할때 구호는 '빵 뿐만 아니라 장미도 필요하다' 였다고 한다. (원문은 까먹었다) 인간다운 삶이 어떻게 빵만 가지고 이루어질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싸우지 않으면 얻어낼수 없는것이 이 사회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동영화제 -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the take)

*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 팩 03 : 노동영화제]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이번 노동영화제의 폐막작인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the take) 는 이번 노동영화제의 모토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맞서서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경기악화로 인해 자본가들이 임금을 체불한채 폐쇄하고 떠나버린 버려진 공장을 노동자들이 '점거' 하고 경영진없이 노동자들의 합의와 원칙에 따라 생산을 시작하는 모습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이다.


'노 로고' 의 저자이며 반세계화 운동 진영의 주요 이론가이기도 한 나오미 클라인은 신자유주의적 생산양식을 대체할 대안을 찾기위해서 캐나다의 미디어 운동가인 아비 루이스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향한다. 아르헨티나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망쳐버린 대표적 국가가운데 하나이며, 동시에 버려진 공장을 점거하고 생산하는 공장점거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는 원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운데 하나였다. 그러한 나라가 오늘날의 피폐한 경제위기를 맞이한것을 두고 주류 언론에서는 '지나친 노동자투쟁과 포퓰리즘의 결과' 라며 왜곡 선전해왔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않다. 1940년대말까지 아르헨티나 경제는 육류·식료품 수출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지만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유럽의 농업이 되살아나고 미국의 농산품이 유럽으로 수출되면서 주된 타격을 받았다. 더불어 산업의 성장도 지지부진했다. 친노동정당 이라는 일반적인 평가와는 달리, 페론주의 정당(정의당)은 경제 위기에 직면하자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외국 투자자들에게 시장을 개방했지만 그 성과는 일시적이었다. 페론은 노동자들을 공격하면서 저항에 부딪혔고, 권위주의적 정책으로 대중의 미움을 받았다. 결국 위기 관리 능력 부재로 지배 계급의 불신과 불만을 받아 가다가 1955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영화속에서 전 대통령 카를로스 메넴은 매우 우스꽝스러운, 자본가계급을 대변하는 독재자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 역시 페론주의자 출신으로, 89년 집권당시 국영기업들을 대부분 사기업화했을 뿐 아니라 일자리를 대폭 줄였고, 파업 노동자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이 당시 아르헨티나는 IMF가 권고한 정책들인 규제 완화·민영화·노동 유연화를 적극 도입했고, 그래서 세계 지배자들로부터 '아르헨티나가 IMF의 모범생' 이라는 찬사를 받도록 만들었다.


모범생의 신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1년 아르헨티나는 페소화를 달러화에 연동시키는 페그제를 실시해 아르헨티나 경제를 국제 금융시장의 리듬에 더 종속시켰다. 파국은 1997년 동아시아 위기 때 찾아왔다. 동아시아에서 금융 공황이 발생하자 아르헨티나에 들어온 해외 자본들이 서둘러 빠져나갔다.
당시 대통령 데 라 루아는 경제위기가 찾아오자 모든 은행계좌를 동결함으로써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예금을 사실상 몰수했지만, 그런 와중에 국제투기자본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하룻밤에 몇억달러씩을 빼내갔다. 페소화가 달러화와 연동돼 있어서 아르헨티나가 입은 타격은 남미 경제에서 더욱 심각했다. 소위 경제 기적을 일구었다는 바로 그 신자유주의 정책이 경제 기적을 하룻밤 사이에 신기루로 만들고 아르헨티나 경제를 심각하고도 장기적인 불황에 빠뜨렸다. 여기에 물 사유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고통속으로 밀어넣었다.


당연히 저항이 뒤따랐다. 화이트칼라 노동자들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의 하층 중간계급 사람들이 도심으로 몰려나와 실직한 육체 노동자들과 함께 대통령궁을 포위했다. 이틀 동안 경찰과 유혈낭자한 충돌이 벌어져 약 30명이 사망한끝에 결국 데 라 루아는 헬기를 타고 도망쳤다. 아르헨티나는 그 뒤로도 4주 동안 대통령이 네번이나 바뀌는 혼란끝에 두알데가 겨우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3년 2월 1일 두알데 정권이 예금 인출 제한 조치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자 아르헨티나 주요 도시들에서는 다시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생필품을 살 돈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예금 인출 제한 조치가 위헌이라는 대법원의 결정을 반겼지만, 정부는 대법원의 결정을 무시했다. 그러자 시위대는 '다 꺼져버려라', '우리 돈을 돌려 달라' 고 외치면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 절망만 있는것은 아니다. 아르헨티나는 신자유주의 파산의 결정판이면서 또한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보여 주는 뚜렷한 사례이기도 하다. 1990년대에 아르헨티나 정부가 전면적인 사기업화를 추진하자 실업자들이 폭증했는데, 그러면서도 사회보장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실업 노동자들은 대량해고에 맞서 전투적 대중운동인 피케테로스 운동을 건설했다. 경제 위기 때문에 지금 실업자 수는 네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의 수준이다. 영화속에 등장한 공장점거운동 역시 실업자운동중 하나이다.


공장점거운동은 폐쇄된 공장을 노동자들이 점거하고 자체적으로 생산에 돌입하는 운동이다. 브룩만 양복공장에서 일하던 몇십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시도한 이 운동은 자논 세라믹등 몇몇 모범적인 사례들을 선보이면서 아르헨티나 민중들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민들은 '전 경영진보다 더 근면해지고 높은 품질에 가격도 낮아졌다' 며 공장점거운동에 돌입한 노동자들에 대해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점거한 공장에 대해 경찰의 공격이 임박해지면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러 오기도 한다. 공장점거운동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맞서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공장점거운동은 한계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상황개선을 우선시하는 운동이다보니 권력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으며, 때문에 법원으로 국회로, 자신들이 공장을 운영할수 있도록 해달라고 '애원' 하러 다녀야 한다. 당연히 법관이나 국회의 권력자들은 대부분 그런 요구를 묵살하며, 오히려 사유재산을 침해하지 말고 공장에서 퇴거하라고 명령한다. 그들은 자본가의 편이지 노동자의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점거된 공장은 해당 노동자들이 합의한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데, 대부분 전 경영진을 배격하고 동일임금을 적용하지만 어떤곳은 전 경영진과 협력하며 동일하지 못한 임금을 배분하면서 운영되는곳도 있다. 이러한 한계점들은 전체사회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못하는 운동방식들 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들이 아닌가 한다.


영화의 주요한축 가운데 또다른 하나는 노동운동을 하는 여성과 그 어머니로 대변되는 아르헨티나 대통령선거를 바라보는 민중들의 입장이다.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아르헨티나에 끌어들인 전대통령 카를로스 메넴의 재출마와 페론주의당 대통령 후보인 키르츠네르, 양자에 대해서 마티 라는 이름의 노동운동가 여성은 둘다 똑같은 놈들이고 그 어떤 '구세주' 도 우리에게는 필요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 많은 민중들은 그녀의 어머니처럼 페론주의에 대해서 완전히 기대를 접고 있지는 않은것처럼 보인다. 메넴은 거리를 경찰로 채워 치안과 질서를 회복하고 사유재산을 보호하겠다고 큰 소리치며 결선투표까지 진출하지만, 결국 경제상황의 악화를 견디지 못한 대중들의 분노의 목소리에 밀려 기권하게 된다.


지금 키르츠네르는 아르헨티나를 정치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해서 IMF와 더 좋은 조건으로 협상해야 하고, 노조 관료들에게 잘 보여야 하며, 좌파들에게 어떤 상징적 제스처를 취해야 하고, 실업자들의 불만을 조금이나마 들어주어야 한다는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한 일이라고는 '고용 창출 계획' 을 통해 실업수당을 제공하고, 이를 페론주의 조직과 피케테로 조직들이 분배하게 하는 정도의 것이 전부다. 그런 태도 덕분에 그는 지난해 선거 이후 잠시나마 안정을 누릴 수 있었고 좀 유약한 일부 좌파들한테서 약간의 지지를 끌어낼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의 개혁도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을것이다.


키르츠네르나 페론주의당 따위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겨서는 제대로 된 어떤 대안도 나올수 없다. 나오미 클라인은 마치 '대안찾기' 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저항하는 모습들을 의도적으로 배재하고 점거 생산 이라는 양식에 촛점을 맞춘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항하지 않고 무슨 대안이 나온단 말인가? '점거하라-저항하라-생산하라' 가 아니라, '저항하라-점거하라-생산하라' 가 되어야 할것이다. 법관이나 국회에 애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노동자들 자신의 조직된 힘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전체사회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저항하고 점거하고 생산하는' 운동이 될때 그것이 진정한 우리의 대안이 될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동영화제 -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 팩 03 : 노동영화제] 에 관련된 글입니다.

서울 올라온뒤 노동영화제는 빠지지 않고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만 매년 1회씩 열리는 영화제에서 보는 영화의 편수는 고작 하루참가, 1~2 편이 전부다 보니 도저히 갔다왔다는 실감이 안 났었다. 올해 11월은 예년보다 더 바쁜 달이었다. 온라인에서 주절거리기를 주로하고 집회가 있으면 참여보다는 구경을 주로하면서도 '이정도도 어디야' 하며 자기 합리화에 능숙했던 예년과는 달리 올해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영화제 같은거 쫓아다닐 시간은 더 없을거라고 지례짐작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하루 참여에 1~2 편을 보는것이 고작이었던 예년에 비해 올해는 날짜수로 3일에, 7편을 보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아무래도 내게 있어서는 '시간없다' 라는 말이 핑계에 지나지 않는것이다. 시간이 없는게 아니라 열정과 노력이 없는것이다. 관심이 있으면 인터넷 돌아다니며 뒹굴거리는 행위대신에 적극적으로 끼여들게 되는거다. 지방에서 올라와서 하루이틀 보고 가는 사람들도 있는걸보면 '시간없다.' 그거, 거짓말이다. 아무튼 이제껏 영화제라고 쫓아다닌거 중에 이번 노동영화제 만큼 개,폐막작을 비롯해서 작품들의 양이나 질에서 풍성했던적도 없는거 같다. 지난번에 올린 '계속 된다 - 미등록이주노동자 기록되다' 를 비롯해서 모든 작품에 감상후기를 다 남겨야 하겠지만 그러지는 못할거같고 아쉬운대로 개,폐막작에 대한 인상만 좀 끄적여 봐야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개막작은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물이다. 이 작품은 폐막작및 몇개 작품과함께 노동영화제 섹션중 '혁명은 진행중' 이라는 섹션에 속하는 것으로, 국제 미디어 활동가의 연대체 '깔리 이 미디어' 의 일원인 '마르셀로 안드라데'씨 가 연출한 작품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도전적이다. 이 작품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기를 제4차 세계대전의 시기로 규정한다. 1,2차 세계대전은 잘 알려져 있는 그것이고, 3차 세계대전은 흔히들 냉전 이라고 부르는 시기를 말하는 것으로 이 시기에 일어난 미.소 양국의 침략전쟁, 내전 및 쿠테타의 배후조종, 지역분쟁들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약 2600만의 인구가 희생되었다 하니 3차 세계대전이란 말도 틀린말이 아니다. 그러면 4차 세계대전은? 그것은 IMF 나 WTO 같은 신자유주의 기관들을 앞세운 국제적 자본이 전세계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가하는 살인적인 억압과 이에 맞서는 민중들의 투쟁이다. 영화의 무대인 베네수엘라는 세계 3위의 산유국이라 한다. 세계 석유의 약 13퍼센트가 베네수엘라에서 생산된다. 1930년대까지 베네수엘라 석유는 대부분 미국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었으나, 76년에 국유화 되었고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가 석유를 통제했다. 그러나 석유때문에 이득을 본것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80년대 중반에 베네수엘라 인구의 36% 에 달하는 사람들이 극빈층이었다. 1989년에 대통령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는 그가 '대전환' 이라고 부른 조처들을 도입했다. 그것은 시장 지향적 전환이었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도입한다는 결정이었다. 그것은 베네수엘라 노동자 대다수의 생활수준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페레스의 결정에 반발하는 격렬한 시위가 여러 날동안 계속됐고, 정권은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거리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사람만도 수백에 이른다. 잔인한 탄압때문에 투쟁은 성공하지 못했으나, 민중들의 마음에는 아직 분노가 남아 있었다. 1992년 당시 육군 중령이던 우고 차베스는 일군의 젊은 장교들과 함께 '강력한 사회 변혁 의지를 가진 진보적 군인 집단이 위로부터 경제·사회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 는 사상으로 반정부 쿠테타를 기도하지만 실패한다. 대중은 주기적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변화를 요구했지만 부패한 정권은 무자비한 탄압으로 일관했다. 좌파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이 싸우는 민중들에게 전망도 제시하지 못하고, 투쟁을 지도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고 차베스는 답답한 민중들의 가슴을 뚫어주는 희망처럼 보일수 밖에 없었다. 쿠테타에 패배한 차베스는 감옥에 갇혔지만 사람들은 연일 그를 지지하고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결국 차베스는 94년에 석방된다.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도입하여 번영한것이 아니라 급속히 붕괴되어 갔다. 공공부문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회사들이 매각, 민영화되었고, 실업율은 증가하는데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 서민들의 목줄을 졸랐다. 영화속에 등장한 어떤 시민은 버스가격이 200% 나 올랐는데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었겠느냐고 말한다. 36%에 달했던 베네수엘라 빈민층은 몇년 지나지않아 65%로 늘어났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참을수 없었다. 그럴때 차베스는 대중들의 저항에 자신이 볼리바르주의 라고 이름붙인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 19세기의 라틴아메리카 해방 투사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그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적이고 포퓰리즘적인 경향이 강했다. 차베스는 더이상 길거리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겠다며 다수의 희생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한 소수를 격렬하게 비난했으며 이는 민중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었다. 결국 그는 98년에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었으며 사람들은 이를 볼리바르 혁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 베네수엘라의 공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공화국이다. 차베스는 헌법을 개정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새로운 헌법을 만들었다.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소규모 자영농이나 어민들의 권익을 보호할수 있도록 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의 접근권을 보장해주기도 했으며, 여러가지 국책 사업들을 전개하기도 했다. 민중들은 차베스의 개혁이 자신들을 빈곤으로부터 구해줄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2002년의 우파 쿠테타나 2004년 보수층들이 조직한 소환투표로부터 그를 지키고 구해내었다. 일부는 베네수엘라가 차베스의 위로부터의 혁명과 민중들의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잘 조화된 이상적인 케이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차베스는 말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지만, 그의 정부 재정은 정부 서비스 삭감이라는 신자유주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가난해졌다. 또,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삭감되고,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보너스 지급이 취소됐다. 보수우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경제적,정치적 권리를 누리고 있다. 심지어 차베스에 맞서는 가장 강경한 보수파 신문의 편집장도 '차베스로 인해 구체적으로 침해당한 권리가 뭐냐' 라는 질문에 '그런건 없다' 고 답할 정도이다. 때문에 그들은 지속적으로 차베스에 맞서는 이런저런 행동들을 조직할수 있는 것이다. 차베스는 2000년 국영석유회사(Petroleos de Venezuela)에 대한 개혁 조치를 결정했을 때 기득권층과 결정적인 갈등구도에 돌입했지만, 사실 이때조차 기득권세력을 무력화 시키는 조치는 아니었다. 베네수엘라 경제의 대부분은 아직 이들 보수우파들의 수중에 남아있으며, 아직도 길거리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우파들의 공격이 있을때마다, 차베스는 민중의 힘 보다는 주로 군부의 힘에 의존하여 권좌를 지키려 하고 있다.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은 차베스가 등장한 배경과 그를 가능하게했던 사람들의 역동적인 투쟁모습이 잘 담겨진 영화다. 이 영화를 보는것만으로 투쟁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고무받을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차베스 정권의 한계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은것은 큰 단점이다. 차베스의 개혁은 여기저기서 지지부진하며, 진정으로 민중을 위한 것인가 하는 부분에 의문점이 많다. 그것은 베네수엘라의 혁명이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대중적 저항을 통해서 수립된것이 아니라, 쿠테타와 국민투표라는 위로부터의 혁명방식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위로부터의 혁명, 또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주장하는 다른 모든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차베스는 기존의 보수세력들과 타협할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 때문에 진정한 사회변혁은 자꾸만 연기될수밖에 없으며,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채 미완의 것으로 남게 되는것이다. 베네수엘라 혁명은 '진행중' 이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차베스의 개혁성과가 그 혁명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 진행중인 혁명은 노동계급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 다행히 영화를 제작한 '마르셀로 안드라데'씨 는 상영후 있었던 토론회에서 자신역시 노동자들의 투쟁이 핵심적이라고 생각하며, 남한 노동자들의 운동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직들을 이용해 독자적으로 행동할수 있는가, 차베스와 같은 위로부터의 혁명이 아니라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수립하고 보수우파들로부터 민중의 것을 되찿아올수 있는가 하는 여부가 베네수엘라 혁명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동영화제 - 계속된다.

*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 팩 03 : 노동영화제] 에 관련된 글입니다.

작년 초에, 정독도서관 맞은편의 아트시네마 (구 아트선재센터) 에서 인권영화제를 본적 있엇다. 당시만해도 별다른 활동이 없었던 나는 한편의 낮선영화를 맞이하고는 당혹감을 감출수 없었다. 그 낮선 영화에는 피부색이 다른 노동자들이 나와서 우리나라 시내 한복판에서 '단속추방' 이라고 쓰여진 천을 찢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서의 설명을 통해 그들이 이주노동자 라는것을 알았지만, 왜 그들이 고용허가제를 반대하는지, 노동허가제 라는것이 무엇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당혹스러웠다. 고용허가제면 충분한거 아니었던가? 오늘 같은 장소에서 열린 노동영화제에 다녀왔다. 그동안 신경을 많이 못 쓰고, 이런저런 일이 생겨서 미뤄뒀었는데 이제서야 퇴근후에 가보게 된거다. 전적으로 나의 개으름과 무신경의 탓이다. '계속된다' 라는 제목의 영화는 정말 이주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1년 반 남짓한 시간을 지난 다음에야 다시 스크린속에서 볼수 있었던 이주노동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해서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계속해서 싸울수 밖에없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게 있어 이 영화는 지난번 인권영화제에서 본 영화의 속편이라고 해도 지나칠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무대위에 올라와서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던 이주노동자들중 상당수는 지금 우리나라에 없다. 인권영화제에서 만난 그들은 당시 내게 있어서 낯선 무엇이었고, 동정의 대상이었다. 그때 내가 흘린 눈물은 그들이 불쌍해서 흘린 눈물이었다. 당시만해도 내가 가지고 있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은 '돈 벌러온 고생하는 외국인' 단지 그것이었다. 그렇지만 1년 반 이 넘는 시간중에 나는 '다함께' 에 가입했고, 그들과 함께 행동하고 공부하면서 내 인식은 바뀌어갔다. 내게있어 더 이상 그들은 불쌍한 거지들이 아니다. 그들은 이 자본주의 사회를 떠받드는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그 사회를 바꿀수있는 힘을 가진 '노동자' 였음을 깨달았다. 내가 그것을 깨닫기 한참전에 이미 이주노동자들은 당당한 노동자로서 살고 있었음도 동시에. 당시 무대에 올라와 인사하던 사람들중에 비두씨가 있었다. 그는 작년 10월 이용식 열사가 분신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대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의 폭력적 연행에 잡혀서 추방당했다. 경찰차에 억지로 태워지기전 그는 '나도 인권 있다. 내 인권, 내 인권을 말하는데 왜 입을 막냐' 고 외쳤다. 당연히 경찰들은 그를 땅바닥에 찍어누르고, 수갑을 채우고, 폭력을 가했다. 그는 추방당했지만 올해 1월에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해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폭로했다. 올해 2월에는 이주노동자 지부장이었던 샤말 타파씨가 대학로에서 '묻지마 연행' 을 당했다. 당시 출입국 관리소측은 항의집회를 막기위해서 연행이 끝난 다음에야 어디로 연행되었는지 가르켜 주었다. 그는 외국인 보호소라는 이름의 감옥안에서 강제추방에 반대하고 살인적 단속추방에 항의하는 단식투쟁을 벌였고, 우리는 우리 모두가 샤말타파가 될것이라고 그렇게 외치며 행진했다. 얼핏 기억하는 그들 말고도, 정권의 강제추방에 절망하고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작년 인권영화제에서 마주친 그들은 한국인 노동자들과, 특히 민주노총의 열악한 상황인식 때문에 절망하고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을 같은 노동자로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같이 싸워줄것을 호소했었다. 그런문제들은 올해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 민주노총의 관료들은 이주노동자의, 일반 조합원들의 요구가 있기 전에는 결코 나서서 이 싸움을 조직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꺼번에 괄목상대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점점 더 많은 한국인노동자들이 연대하기 시작했던것도 사실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자들은 피부색을 차별하지 않는다는것을 깨달아 가게 된것이다. 이제서야 우리들은 부족하지만 조금씩이나마, 노동자는 하나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중이다. 이주노동자들의 명동성당 농성은 만 일년을 훌쩍 넘겼다. 그동안 그들의 삶은 계속되어왔고, 정권의 압박도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사람' 이 되어 숨어 지내야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그 기간동안에 자신들의 요구뿐만 아니라 반전운동에, 한국노동자들의 투쟁에 열정적으로 결합해왔다. 우리가 깨닫기 전부터, 그들은 노동자는 하나라는것을 몸소 실천해왔다. 그렇게 우리의 투쟁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자신들이 저지른 파병정책 때문에 받게 된 테러에 대한 위협을 무슬림을 위시한 이주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는 정권이 있는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싸움에 함께 할것이다. 탄압은 계속되고 있고, 투쟁도 계속되고 있다. 투쟁에 계속되는한 지금 내가 일년 몇달만에 속편 을 본것처럼, 내년쯤에 또 다른 속편 을 보게 될것이다. 그러나 그냥 보기만 하는 입장은 아니어야 할것이다. 나는 그 영화에 당당한 출연자로서 등장해야 한다. 아직은 부족하기만 하지만, 나의 활동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자본은 피부색을 구별하며 탄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탄압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우리는 함께 싸워야 한다. 이제 더이상 그 눈물은 그들만을 위한것은 될수 없는 것이다. stop crackdown. we are one. 함께 싸우지 않으면 우리는 그 무엇도 얻을수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4 노동자대회,전공노 파업출정식을 다녀와서

*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 팩 02 : 노동자대회] 에 관련된 글입니다.

토요일 동국대에서 전야제가 시작되는것을 시작으로 '2004 전국 노동자대회' 가 시작되었습니다. 정권의 공무원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과 비정규직 개악 입법안, 한일 FTA 와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에 분노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집결해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밤 늦은 시간까지 투쟁의 열기에 불을 지폈습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지난 6일까지 진행된 총파업 찬반투표에서 51.3 퍼센트가 투표에 참가해 67.9 퍼센트가 찬성표를 던진바 있습니다. 사실상 단위 노동조합의 현안들이 정리되거나 끝난 상태에서 정치적 요구안들을 주되게 내세우고 있는 파업임을 감안할때, 특히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등 이른바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노동자들이 정치,사회적 요구안들을 담은 파업에 찬성했다는것은 노무현 정권과 그 지지자들의 '노동귀족론' 이 얼마나 근거없고 악의에 찬 선동이었는가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전야제에 단상에 올라온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비정규직 개악법안을 의회 안에서만 막아낼수는 없으며 의회 밖에서 강력한 투쟁이 형성되어야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비정규직 개악법안뿐 아니라 공무원노조 특별법도, 한일 FTA 나 파병연장 동의안등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는 현안들은 우리와 다른 세상에 살고있는 소수의 기득권에 기대어 유지되는 국회안에서는 결코 해결될수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수 있는 세상' 은 오직 대규모 민중들의 투쟁에 의해서만 만들어질수 있으며 또 유지될수 있을 것입니다. 전야제가 끝난 다음날은 광화문에서 2004 전국 노동자대회 본대회가 열렸습니다. 본대회는 오후 3시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그보다 이른시간인 오후 1시경 부터 수많은 노동자와 연대단체들이 주위에서 활기차게 결의대회를 진행했습니다. 특히 철도노동자 분들과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단체교섭 파행과 정부의 2차 에너지세제개편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결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화물연대가 파업하면 철도를 통해서, 철도노조가 파업하면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파업의 여파를 줄이려 했었기 때문에, 만약 두 노조가 동시에 파업에 돌입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강한 파급력을 가질수 있을 것입니다. 철도노동자와 화물노동자들이 함께 싸운다면 보다 더 확실하고 강하게 승리를 쟁취할수 있을 것입니다. 두 노조의 연대투쟁을 기대합니다. 노동자대회가 종료되기전 무대에 오른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다음주 일요일인 21일 서울 대학로에서 7만여명의 조합원이 참가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오늘 기자회견에서 이달 말로 예정된 민주노총의 총파업 일정에 맞춰 연대 총파업 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 했습니다. 굳이 전야제에 무대에 올라온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노동운동이 승리하기 위한 조건이 연대투쟁임은 말할것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기왕 연대투쟁을 조직할 것이라면 굳이 21 일에 독자적인 한국노총 노동자대회를 열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노동자대회와 일정을 같이 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10만이 넘는 노동자들이 정권의 심장부에 운집하여 행진을 벌였다면 정권과 자본의 일방적인 강요에 저항하는 상징이 될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아쉽기로는 민주노총도 다를바 없었습니다. 대회 말미에 단상에 오른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오는 26일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민주노총의 총파업 찬반투표가 찬성으로 끝난데다가 당장 공무원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했음을 감안한다면 26일은 터무니없이 늦은 시간입니다. 이수호 위원장은 '예전처럼 전공노 혼자 외롭게 투쟁하게 두지 않겠' 다고 공언했지만, 실제로 지금 공무원 노동조합은 민주노총의 실질적 지원없이 '외롭게' 투쟁하고 있지 않습니까? 소수의 조직으로 한시적 지원을 하는것보다, 민주노총이 연대 총파업선언을 하고 같이 파업과 점거투쟁에 돌입했다면 정부의 강경진압 발표에 긴장할수밖에 없는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투쟁이 승리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수 있었을 것입니다. 노동자대회가 종료한 뒤 연세대에서 공무원노조 파업 출정식이 있었습니다. 공무원 노동자들과 함께 연세대로 뛰어 들어갔는데, 오랫만에 뛰다보니 신촌에서 연세대 까지의 거리가 보통때보다 굉장히 길게 느껴지더군요.(^^;) 그래도 입구에서 공무원 노동자들의 진입을 방어하고 연대해준 동지들의 대열덕분에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습니다. 파업출정식은 규모는 다소 적었지만 활기차게 진행되었고,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이 함께 했던것도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노 지도부들이 애써잡은 거점을 포기하고 산개투쟁을 결정한것은 매우 아쉬웠으며,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민주노총이 좀더 적극적으로 연대투쟁을 벌였다면 자신감 부족으로 인한 그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 안타까울수 밖에 없었습니다. 2004년 노동자대회는 끝났지만 2004년 노동자들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나기는 커녕 이제부터가 시작이 될것입니다. 정권과 언론은 우리들의 삶을 점점 더 압박해오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강행하며 한편으로 그에 저항하는 노동자.농민 등 민중의 저항을 끝없이 탄압하고 뒤틀겠지만 동시에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 스스로의 생명을 연장할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이기도 합니다. 점점 더 단말마적 숨소리를 내어가는 저들의 숨통을 끊을수 있는것은 그동안 세상을 움직여왔던 바로 우리 자신의 손입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남아있는 많은 투쟁들은 부당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소수를 위한 사회가 아니라 우리 자신들을 위한 사회를 건설하는데 큰 힘이 될수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함께 합시다. 함께하셨던 분들 모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 전국 공무원노동조합의 투쟁을 지지합니다. 길을 내고 있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싸워주셨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같이 뜀박질 할수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며... 투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제 8회 서울 국제 노동 영화제

제8회 서울 국제 노동 영화제
2004.11.16 - 2004.11.21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다른 세상이 시작되고 있다

The 8th Seoul International Labor Film Festival
Occupy ! Resist ! Produce !
Another world is started
Nov. 16. 2004. - Nov. 21. 2004.
( http://www.lnp89.org/8th/ )

주최 : 노동자뉴스제작단
후원 :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민주노총
장소 : 서울아트시네마

제8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가 11월 16일에서 21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최된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이 주최하고 영화진흥위원회, 민주노총,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등이 후원하는 올해 영화제에서는 노동자 민중의 삶과 투쟁을 담아낸 26편의 국내외 영화들이 선보인다. 6일간에 걸친 영화제에서는 매일 아침 11시부터 밤 10시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작품들이 각각 2회에 걸쳐 상영될 예정이며, 마지막날인 21일 늦은 6시에는 국내외 영상운동가들이 참여하는 토론회가 열릴 예정이다.

올해 영화제의 슬로건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다른 세상이 시작되고 있다>는 폐막작의 슬로건을 차용한 것으로 두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모든 운동이 이미 그 자체로 다른 세상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올해 영화제의 개막작과 폐막작에서 확인되듯 다른 세상이 구체적인 현실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세상에 대한 구체적 지향을 내포하는 이 슬로건하에 올해 상영되는 최종 작품들은 영국,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아르헨티나, 베네주엘라, 미국, 캐나다, 한국 등 10개국 26편이다.

개막작으로는, 이미 작년 노동영화제에서 상영된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를 통해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베네주엘라의 사회변혁을 담아낸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이 선정되었다. 국제 미디어 활동가의 연대체 칼 리 미디어의 일원인 마르셀로 안드라데가 연출한 이 작품은 현재 진행중인 전지구적 변혁의 과정을 자본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제4차 세계대전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투쟁의 주요한 축인 베네주엘라 민중의 투쟁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민중 스스로의 발언을 통해서 담아낸다.


한편, 페막작은 <노 로고>의 저자이며 반세계화 운동 진영의 주요 이론가이기도 한 나오미 클라인이 아비 루이스와 함께 제작한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이다. IMF에 의해 강요된 신자유주의 정책이 낳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자본가들이 떠나버린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의 투쟁과 생산은 다른 세상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설득력있는 예고편과도 같다.


이 두 작품을 포함해서, 해외 프로그램은 다섯가지 섹션으로 구분된다. 먼저, [혁명은 진행중 : 라틴 아메리카]에는 위의 두 작품와 함께 이중의 착취에 의해 고통받는 아르헨티나 여성 노동자의 자기 주장과 투쟁을 담은 <여성전사들>, 그리고 베네주엘라 민중의 의식과 실천을 생생하게 담아낸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베네주엘라> 가 함께 한다.


[사유화의 종말]은 자본의 세계화가 얼마나 세상을 파탄에 빠뜨리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섹션이다. <갈증 : 물은 누구의 것인가 ?>는 초국적 자본의 물 사유화와 그에 대항하는 전지구적 투쟁을 담아낸 역작이며, <식량의 미래>는 유전자 조작 식품, 생명특허, 소농 몰락 등을 초래하는 초국적 자본의 농업장악 등 세계화 시대 먹거리의 문제를 마치 백과사전처럼 담아낸 작품이다. 이번 영화제의 유일한 해외 단편물인 <미트릭스>는 기업농이 초래한 생태계의 파괴 상황을 패로디라는 형식으로 담아낸 애니메이션 작품이며, <출혈 -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의료제도>는 미국과 쿠바의 의료제도를 흑인여성감독의 개인적 독백을 통해서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비극적이면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는 작품이다.

 

노동영화제의 고정 섹션인 [전세계 노동자의 투쟁과 삶]에서는 마치 <이중의 적>과 <인간의 시간>을 합쳐놓은 듯한, 해고된 스페인 정보통신기업 노동자의 거리 농성 투쟁을 다룬 <이과쥬 효과>,  켄 로치의 <빵과 장미>에 출연했던 여성 활동가에 초점을 맞추면서 청소용역 노동자의 삶과 투쟁 그리고 켄 로치의 철학과 제작현장을 기록한 <켄과 로자>, 독특한 스타일로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다각도로 조망한 벨기에의 <적자생존> 등이 준비되어 있다. 아울러, 착취당하는 중국 노동자의 현실을 최초로 생생하게 기록한 <메이드 인 차이나>는 이른바 동북아 경제권의 미래에 대한 진보적 재해석을 고민하게 할 것이다.


노동영화제에서는 작년 비디오 액티비즘 섹션에 이어서 올해 [미디어, 지배의 내면화 혹은 변혁의 무기]라는 제목으로 주류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대안 미디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두편의 작품을 준비했다. 우선 < KPFA - 주파수는 민중의 것이다 >는 현존하는 가장 대표적인 대안적 라디오 운동의 사례인 미국 KPFA의 역사를 복원해낸 작품으로 현재 공동체 라디오의 시험방송 사업이 진행중인 한국에서 주목할만한 사례이며, 대표적인 미디어 관련 정보 사이트인 미디어채널의 운영자인 대니 셰터가 연출한 < WMD : 대량사기무기 >는 이라크 침략전쟁동안 진행된 주류 미디어의 현실 왜곡을 꼼꼼하고 설득력있게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지나간 과거의 노동영화를 발굴하는 섹션인 [노동영화의 회고]에서는 50년전 베트남전에 반대해 파업한 항만노동자들을 소재로 삼은 <부두에서의 조우>를 소개한다. 30여년간 프랑스 당국에 의해 상영이 금지되었던 이 비판적 현실주의에 기반한 극영화는 비록 거칠고 투박하지만 소박한 매력을 지닌, 노동영화의 소중한 자산이다.


국내작의 경우, 먼저 국내 신작에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시대 노동자 투쟁의 전망을 고민하게 하는 작품들이 준비되어 있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은 <현대자동차 노동자와 세가지 문제>, <일자리에 관한 이야기> 등 두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신자유주의하의 고용 불안, 비정규직 확대, 근골격계 질병의 문제 등을 탐구하며, 짧은 플래시 광고인 <한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은>을 통해서 단편 캠페인 비디오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다.


이진필 감독은 <알고싶지 않은...>에서 최저임금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며, 주현숙 감독은 <계속 된다 - 미등록이주노동자 기록되다>를 통해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울산노동미디어센터가 제작한 <절망의 공장 - 현대중공업 그리고 비정규직>은 박일수 열사의 분신에 뒤이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추적한 기록물이며, ‘스튜디오 아이,스크림’의 <노동자 교향곡 제9번 : 합창>은 노동자 정치 세력화에 대한 서사적 접근이다. 그리고 대구 지역의 교육단체 ‘노동자의 눈’이 보건의료노조와 함께 제작한 <기계가 아니다. 아프다고 외쳐라>는 근골격계로 고통받는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한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역시 ‘카메라를 든 노동자 워크숍’을 통해서 만들어진 옴니버스 작품 <카메라를 든 노동자>가 준비중이며, 주요한 민중 투쟁을 소개하는 의미에서, 정부의 반환경적 반생태적이고 일방적인 정책에 대해 투쟁한 부안 민중의 직접민주주의를 기록한 <2월14일 부안군민 주인되는 날>, 그리고 부안 지역 민중의 독립적인 대안영상운동을 담은 <노란 카메라>가 소개된다.

영화제 마지막날 폐막작 상영에 앞서 2시간 동안 진행될 토론회의 주제는 <변혁운동에서 영상활동가의 역할>이다. 올해의 토론회는, 개막작 연출자인 베네주엘라의 활동가 마르셀로 안드라데를 초청해서 노동자 영상패, 전문 노동영상운동 집단, 인터넷 방송 활동가, 지역 공동체 활동가 등이 함께 하며, 각각의 실천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변혁운동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변화과정에서 자리매김될 수 있으며 어떤 한계와 공백에 부딪쳐있고 어떤 과제와 전망을 부여하는가를 논의할 계획이다.
이렇게, 올해 영화제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변혁적 영상운동의 성과를 한데 모아 다른 세상을 향한 전략을 논의하고 논쟁하기 위한 장으로서 준비되었다. 비록 여전히 가난하고 영화제라는 형식에 내용을 채워나가기란 힘겹기만 하지만, 무장한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파괴의 속도를 늦추는 것을 넘어서 건설의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한" 노동영화제에 다른 세상을 꿈꾸는 모든 분들을 초대한다.

추신 : 장소가 서울아트시네마로 결정되면서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안게됨에 따라 무료 관람 정책을 고수하긴 쉽지 않지만 예년과 마찬가지로 모든 영화의 관람은 무료이며, 다만 영화제의 재정적 독립에 힘을 보태고자 하는 관객 여러분의 자발적인 후원을 기대하고있다.

* 해외 프로그램

1, 혁명은 진행중 : 라틴 아메리카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2004, 베네주엘라, 76분, 마르셀로 안드라데)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베네주엘라 (2004, 이태리, 90분, 엘리자베스 안드레올리, 가브리엘 무지오, 막스 퓨)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2004, 캐나다, 87분, 아비 루이스 / 나오미 클라인)
여성전사들 (2004, 아르헨티나, 33분, 노동자의 눈)

2, 사유화의 종말
갈증 : 물은 누구의 것인가 ? (2004, 미국, 62분, 알란 스니토우 / 바바라 카우프만)
출혈 :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의료제도 (2004, 미국, 67분, 로나 그린)
미트릭스 (2003, 미국, 4분, 루이스 폭스)
식량의 미래 (2004, 미국, 90분, 데보라 쿤스 가르시아)

3, 전세계 노동자의 삶과 투쟁
이과쥬 효과 (2002, 스페인, 89분, 뻬레 호안 벤투라)
켄과 로자 (2000, 영국, 49분, 안리케 골드만)
적자생존 (2003, 벨기에, 86분, 빠뜨릭 쟝)
메이드 인 차이나 (2004, 미국, 61분, 데이비드 레드몬)

4, 미디어, 지배의 내면화 혹은 변혁의 무기
KPFA - 주파수는 민중의 것이다  (2002, 미국, 56분, 베로니카 셀버)
WMD : 대량사기무기  (2004, 미국, 100분, 대니 셰터)

5, 노동영화의 회고
부두에서의 조우 (1950-53, 프랑스, 75분, 폴 카피타)


* 국내 프로그램

1, 국내 신작
현대자동차 노동자와 세가지 문제 (2004, 한국, 51분, 노동자뉴스제작단)
일자리에 관한 이야기 (2004, 한국, 41분, 노동자뉴스제작단)
한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은 (2004, 한국, 4분, 노동자뉴스제작단)
알고싶지 않은... (2004, 한국, 25분, 이진필)
계속 된다 - 미등록이주노동자 기록되다 (2004, 한국, 74분, 주현숙)
절망의 공장 - 현대중공업 그리고 비정규직 (2004, 한국, 40분, 울산노동미디어센터)
노동자 교향곡 제9번 : 합창 (2004, 한국, 29분, 스튜디오 아이,스크림)
기계가 아니다. 아프다고 외쳐라 (2004, 한국, 35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 교육·영상기획 노동자의눈)

2, 카메라를 든 노동자
카메라를 든 노동자 (2004, 한국, 60분, 카메라를 든 노동자 워크숍 수강생)

3, 부안 민중의 투쟁
노란 카메라 (2004, 한국, 35분, 한범승)
2월14일 부안군민 주인되는 날 (2004, 한국, 40분, 노란영상집단 214)

 

 

11.16

 화요일

11.17

 수요일

11.18

목요일

11.19

금요일

11.20

 토요일

11.21

 일요일

1회 12:00
출혈 :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의료제도 (67)
11:00
부두에서의 조우 (75)
11:00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87)
11:00
노란 카메라 (35)

11:00
2월14일, 부안군민 주인되는 날 (40)

11:00
켄과 로자 (49)
2회 1:20
현대자동차 노동자와 세가지 문제 (51)
12:30
계속된다 (74분)
12:50
노동자 교향곡 제9번 : 합창 (29)


12:00
기계가 아니다, 아프다고 외쳐라 (35)

11:50
카메라를 든 노동자 (60)

12:10
현대자동차 노동자와 세가지 문제 (51)
3회 2:30
절망의 공장 - 현대중공업 그리고 비정규직 (40)
2:10
여성전사들 (33)
1:40
갈증 : 물은 누구의 것인가 ? (62)
1:00
한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은 (4)

일자리에 관한 이야기 (41)

1:10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베네주엘라 (90)

1:20
WMD (100)
4회 3:30
알고 싶지 않은... (25)
3:00
KPFA : 주파수는 민중의 것이다 (56)
3:00
메이드 인 차이나 (61)

2:10
적자생존 (86)

3:00
부두에서의 조우 (75)

3:20
KPFA : 주파수는 민중의 것이다 (56)

5회 4:20
미트릭스 (4)
식량의 미래 (90)
4:10
이과쥬 효과 (89)
4:20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베네주엘라 (90)

4:00
WMD (100)

4:30
미트릭스 (4)
식량의 미래 (90)

4:30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76)

6회 6:00
상영작 소개 (30)
6:00
노란 카메라 (35)
2월14일, 부안군민 주인되는 날 (40)
6:10
한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은 (4)
일자리에 관한 이야기 (41)

6:00
여성전사들 (33)

6:20
메이드 인 차이나 (61)

6:00 - 8:00
토론회

7회 6:30 개막작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76)
7:30
기계가 아니다, 아프다고 외쳐라 (35)
7:10
카메라를 든 노동자 (60)

7:00
알고 싶지 않은... (25)

7:40
갈증 : 물은 누구의 것인가 ? (62)

8:00 폐막작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 (87)
8회 8:20
노동자 교향곡 제9번 : 합창 (29)
8:30
적자생존 (86)
8:50
출혈 :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의료제도 (67)
7:40
절망의 공장 (40)

9:00
이과쥬 효과 (89)


9회 9:10
켄과 로자 (49)



8:40
계속된다 (74)



종영 10:00 종영

10:00 종영

10:00 종영

10:00 종영

10:30 종영

9:30 종영


* 전작품 2회 상영 (2교대 근무 노동자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평일 낮 1회, 평일 저녁 및 주말 1회, 총 2회 상영)
* 영화간 휴식시간 20분
* 작가와의 대화는 20분
* 종영시간 : 화-금 10:00 / 토 10:30 / 일 9:3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빌리지 - 공동체주의가 가지는 한계.

 

 

주의 : 이거보고 영화 보시면 재미 무쟈게 없습니다. 만약 '난 핵심결론을 알아도 영화를 볼수 있다' 거나, '짐승이 하는 영화감상 따위는 구라라는것을 입증해주마' 라는 사명감(^^) 이 없으시다면 안 보시는게 좋을겁니다.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릴때 나는 유난히 잘 울고, 떼를 많이 부리던 아이였던거 같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얼르기위해 매우 효과적인 수단을 하나 발견했는데, 그것은 '망태 할아범' 이라는 가공의 괴물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유년기의 나를 공포로 몰아갔던 그 '망태 할아범' 이란것은, 말안듣는 아이를 잡아서 등에 지고있는 망태기에 담아 데려가서는 잡아먹는다는 설정이었다. 물론 그런 괴물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꽤나 설득력있게 들렸던 이야기였다.


인간의 무의식중에 가장 오래 남아있는 감정은 공포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꾸어 말해서 한 인간, 혹은 하나의 집단을 통제하는데 있어 가장 강력한 수단이 공포를 이용한 수단이 될수 있음을 말해줄수 있는것이다. 말 안듣는 아이를 어르는데 효과적인것이 어찌 망태 할아범 뿐이겠는가. 사실 그런식의 협박은 아주 오래전 '호랑이가 잡아간다' 에서 비롯된 것이며, 작게는 가정에서 부터 크게는 국가의 통치수단으로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온것이다.


개중에는 선의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들면 '불장난하면 밤에 오줌싼다' 는 격언역시 아이들로 하여금 일종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경구로 사용되는데, 사실 불장난과 이불에 소변을 지리는것과는 아무련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의 실수로 인한 화재를 방지하고자 하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수있다. '식스센스' 로 유명한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신작 '빌리지' 에서 사용되고 있는 공포를 이용한 금기사항 역시 어떻게보면 선의로 인한 거짓말이라고 볼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웃들간에 큰 증오도 없고 자잘한 이해관계 때문에 다투는 일도 없는, 말 그대로 '평화로운'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비록 작지만 그 구성원들은 슬픈일이나 기쁜일이나 모두 함께 나누며 조화로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근심거리가 있다면 단 하나,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숲에서 괴물들이 공격해오지 않을까, 하는것일 뿐이다. 이들은 그 괴물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위해 마을 외곽에 망루를 세우고 집집마다 지하 피난처를 마련해두어야 한다. 그렇지만 괴물들은 인간이 자신들의 영역, 즉 숲을 침범하지만 않는다면 마을을 공격해오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큰 문제도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살고있는 마을과 괴물들이 살고있는 숲, 그 경계선만 어기지 않는다면 사실상 아무런 문제도 없는것이다.


문제는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숲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마을 사람들의 '숲속 괴물들' 에 대한 공포는 절대적이다. 마을구성원들은 누구나 숲속에 살고 있는 괴물을 무서워하며, 따라서 아무도 숲으로 들어가보려는, 그러니까 마을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사실 굳이 마을을 벗어나야 할 필요도 없었다. 급하게 옆 마을에서 의약품을 구해와야할 필요성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그때에 비로소, '괴물들' 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생물들임이 밝혀진다. 마을을 다스리는 원로회의의 구성원들이 마을의 젊은이들이 이곳을 벗어날까봐 만들어둔, '공포' 를 이용한 금기사항 이었던 것이다.


숲으로 들어가면, 즉 마을을 벗어나면 괴물들이 쫓아와서 죽인다는 이야기는 사실 그 마을의 원로들이 가지고있는 최대의 비밀이며 그들 권력의 핵심이다. 그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공포' 를 이용한 가장 효과적인 통제의 수단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배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기도 하다. 현재도 지배자들은 '우리가 테러와의 전쟁을 지금 당장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테러리스트들이 더 많은 민간인들을 죽일것' 이라고 협박하거나, '이라크 침략전쟁에 참가하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곤두박질 칠것이며 한반도 안보에도 악영향이 있을것' 이라고 협박하거나, '귀족 노동자들의 파업때문에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 고 하면서 우리에게 끊임없는 공포감을 심어준다. 그러한 공포를 이용한 통제수단의 확립은 '빌리지' 의 그것과 전혀 다를바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빌리지의 지도자들이 행하는 그 거짓말이, '선의로 인한 거짓말' 로 보일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단지 방송국의 이익을 위해 한 인간의 인생을 철저하게 짓밟았던 '트루먼 쇼' 의 그것과 비교한다면, 기존의 사회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여 이룩한 '빌리지' 는 그들만의 이상적인 공동체였고 그러한 삶을 지키기 위해 마을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원로들의 거짓말은 선의로 인한 것이었다고 강변할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 마을주민들에게는 공포심을 이용한 기만적인 술책이었음은 부정할수 없다.


문제는 원로들이 택한 그 방식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 종류의 기만은 시일이 얼마나 걸리든 반드시 깨어지기 마련이고, 비록 영화에서는 묘사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깨어지는날 공동체의 가치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지도자들은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서 정면으로 맞서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도피하는 방식을 택했으며, 그로인해 자신들만의 조그마한 이상적인 마을은 만들수 있었을지 몰라도 결국 그 마을에서 결코 벗어날수 없는 고립을 스스로 자초해 버린것이다. 그들이 '도피와 고립' 의 전술을 택한순간, 이미 그 공동체안의 권력과 기만적인 정책이 싹트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도자들의 의도가 어떠했든, 그러한 전술은 올바른것이 될수없다.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들과 모순에 대항해서 맞서 싸우고, 모든 인간사회에 그러한 문제점들이 해결될수 있도록 하는것만이 그들이 택할수 있었던, 또 택해야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음을 분명히 말해둘 필요성을 느낀다. '빌리지' 에서 나왔던 공동체주의적 사고방식과 구별되는 그런 부분들이 바로 우리가 추구할 '사회주의' 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것이다. 비록 샤말란 감독이 그 차이를 뚜렷하게 구분하고 있다고는 믿기 힘들지만 어차피 영화는 때로는 작가가 하려던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가져다 주기도 하지 않던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추석, 뒹굴다가 깨졌습니다. ㅜ_ㅜ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활동하고 있는 다함께 회원분들과 함께 신촌에서 캠페인 및 신문판매를 하고는 뒷풀이 겸 추석맞이 ( 이거 말 되나? )겸 해서 근처의 호프집으로 이동했다지요. 거기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도 나누고, 오랫만에 뵙는 분들도 보고 새로 가입하신 분도 뵙고 해서 잼나게 이야기 했던거 까지는 참 괜찮은 전개였는데...


아무래도 술도 약한놈이 맥주에 소주를 같이 마셔버린게 치명타 였나 봅니다. -_-;


정신을 차려보니 신도림 역이더군요. ( 그 술자리에서 어떻게 나왔는지는 기억안남. 실수한거나 없었으면 좋으련만... ) 고향에는 내려가야겠고 해서 역에서 나와서 택시를 타려고 움직이다가 술김에 계단에서 자빠져 버렸습니다. -_-;;


아무래도 자빠질때 우측 뒷다리를 '제대로' 삐어버린듯 하여요. 고향집에 내려갈때도 절뚝거리며 들어갔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퉁퉁 붓고 서있지도 못할정도로 아프더라구요 ㅜ.ㅜ


덕분에 약과 더불어 '술 먹고 돌아다니다가 사고쳤다' 고 욕도 먹고, 끝내 압박붕대 신세까지 지고 있습니다. 이래서야 어디 돌아다니기도 힘들다는.
메리 추석이 되어야 하는데 이게 무슨 꼴이람. 흑흑 ㅠ_ㅠ


짐승의 추석은 이모양 입니다만, 다른 분들은 맛난거 많이 드시고 즐겁고 행복한 추석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답니다. 어느 멍청한 짐승의 사례를 참고하셔서 다들 안전사고 및 교통사고 조심하시고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뵈어요~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