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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ua님의 [독립다큐멘터리에 흠뻑 빠져 보아요-인디다큐페스티발에 영화 보러 갑시다] 에 관련된 글.

2001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5회를 맞는 인디다큐페스티발은

국내 유일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제입니다.

매년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의 성과를 결산하는 동시에

해외의 유수한 문제작들을 국내에 소통하는 거점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은 국내외 다큐멘터리의 상영 외에도

독립 다큐멘터리를 둘러싼 영화적, 사회적 환경에 대한 고민을 놓지않으며,

독립다큐멘터리의 안정적인 생산과 배급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준비해왔습니다.

                           출처:http://www.sidof.org

 

이 영화제에 대한 기억, 혹은 수다

 

 



1. 작년에 <돌 속에 갇힌 말>을 처음 상영한 영화제다

   첫 상영일자가 10월 30일이었는데 29일 저녁이 되어서야 상영테잎을 갖다드렸다

   한 감독은 헐레벌떡 뛰어간 내게 '아유, 이러면 안되지!'하고 일침을 가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늦어도 개막식 전에는 관련자들 손에 들어와야 할 테잎이

   상영 바로 전날 도착했으니 안쓰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을 것이다

  

   상영을 앞두고 나는 하드디스크에 저장했던 프로젝트 파일을 몽땅 날렸고

   미디액트에서 알려준 업체를 통해 데이터복구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덕분에 가편집 파일을 복사해두었던 테잎으로 다시 편집을 해야 했으며

   사전준비가 철저하지 못해서 세 번이나 다시 사운드믹싱을 했던터라

   차마 한번만 더 하자는 말을 못하고 오디오파일을 복사해야 했다

   5년간 축적했던 모든 시행착오의 최고결정판을 터뜨렸던 그 날

 

   그래도 무사히 상영은 되었고

   서른 명이 넘는 영화 관련자들(친구들과 친 인척이 포함된)을

   군소리없이 친절하게 입장시켜준 홍수영 사무국장 덕분에 객석도 가득찼다

   긴장과 흥분, 자만심과 좌절감이 교차하던 그날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서 '말 좀 조리있게 잘하고 싶다'며 한숨을 쉬는데

   '송환'의 김동원 감독님이 바로 앞에 앉아있다가 일어서는 걸 보고

   어찌나 민망하던지 속으로 '으악' 비명을 질렀던 기억도 난다

 

   그 뒤로 영화도 많이 보지 못했고

   몸살인지 허탈감인지 알 수 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혀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올해는 매일 가서 열심히 신작들을 봐야지

   벌써 일 년이 지났구나, 시간 정말 빠르다

 

2.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는 많다

   그런데 독립다큐멘터리만 모아서 상영하는 영화제는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유일하다

   이 영화제를 통해서 해마다 오래도록 좋은 영화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5회를 맞이하는 올해 기금마련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제작하던 영화를 상영하게 되어서 기쁜 마음에

   아는 사람들 우루루 다 불러서 무료로 입장시켰던 나로서는

   어쩐지 죄송한 마음이 든다

   작년에 사석에서 사무국장님께 '돈이 생기면 꼭 후원금을 내겠다'고 약속했으면서

   지난 달에 열린 '후원의 밤' 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아이쿠...

   올해는 더 많은 관객들을 이 영화제 기간에 만나게 되길 바라면서

   개막작으로 상영될 '안녕 사요나라'를 기다린다

    


2005/10/28 00:24 2005/10/28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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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scenario.or.kr/ (사)한국시나리오 작가협회


<입질>과 <여름향기>

 

유동훈

 


두 작품의 작가 서민희씨와 김명희씨에게  축하의 말부터 드려야겠다.
두 사람은 <시네마서비스>라는 큰 영화사와 KBS라는 거대방송국을 상대로 싸워 이겼기

때문이다.
물론 두 사람을 시나리오작가협회가 힘껏 도왔고, 그에 힘 입은 바 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두 사람이 겁이 나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면 작가협회가 개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그들과 맞설수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후환이 두려워, 불이익을 당하고도  입을 닫는다. 후환이라는 건 깐깐하고 까다로운 작가로 소문 나서  왕따를 당하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일 것이다. 그걸 각오하고 선전포고를 한 두 작가의 용기는 참으로 눈물겨운 것이었다.


김명희작가는  kbs에<사랑의 주소>를 응모했었는데 <여름향기>가 도용했다는 게 법원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손해배상을 받아냈다. 일부 승소 판결이라고 봐야겠지만 어쨌든 이긴 것이다. 재판부는 우리협회 권익옹호위원회의 꼼꼼한 의견서를 보고 도용의 심증을 굳혔다고 한다.

 

서민희 작가는 최근 완성된 영화 <오로라공주>의 작가인데 감독인 방은진의 각본으로 둔갑하고 서민희는 원안자로 표시된 경우다. 각종 선전물에 모두 그렇게 되었고 필름에도 버젓이 방은진이  각본 감독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사실 요즘 그런 예가 수없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피해당사자가 연락을 해주지않으면  협회로서도 일일히 체크하기가 어려운데 서민희작가는 다행이 구두진정을 해왔고 목숨을 걸고(?) 권리를 찾겠다고 해, 협회도 영화사에 강력하게 대처하였다. 영화사는 이미 발표된 선전물은 수거하기 어렵고 필름 자막은 고치기로 약속하여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협회는 회원 작가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 하고 있지만, 1차적으로는 위의 두 작가처럼 당사자들이  나서야 한다.
다른 작가들도 피해를 당하면 체념하지 말고 즉각 협회에 진정 해 자기의 권리를 찾아야할 것이다.


2005/10/27 15:21 2005/10/2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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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돌 속에 갇힌 말>을 상영한다

한동안 전화연락이 되지 않는 곳에 묻혀있다가 돌아오니

한독협에서 모든 준비를 마쳐놓고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감독이라는 사람이 준비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던 탓인지

미리 초정했던 민주노동당 측 의원들이나 내부 인사들이

개인사정으로 아무도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서

여러모로 죄송하기도 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다

초대할 만한 분들은 이미 대부분 영화를 보셨고

아직 못보신 분들은 또 연락이 닿지 않는다

어떻게든 연락을 취해서 나중에 DVD라도 전해드리고 싶은데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조원봉씨나 양원태씨 같은 분들이 과연 어떤 말씀을 하실 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여름 석 달을 멍하니 보냈다

올 초에 세웠던 많은 계획들이 KBS 방영취소건을 기점으로

하나 둘 무산되면서 마음을 다잡기 힘들었다

가뜩이나 속마음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말문을 닫은데다 일기조차 못쓰고 지내다 보니

지금 키보드를 만지는 것이 너무 어색하다

머리와 가슴에서 붕붕거리던 단어들이

순식간에 잠잠해지면서

손가락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덜어내면서 살지 못하고

늘 꾹꾹 눌러담기만 하는 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여성영상집단 '움'에서 소개해준 일과

미례가 주선해준 일이 있어서

9월부터는 정신없이 바쁠 것이다

걱정해주고 보살펴주는 친구들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국회라는 공간에서 독립영화가 매달 상영된다는 것과

그 상영회에서 내가 연출한 영화가 첫번째로 소개된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안타깝고 아쉽고 먹먹했던 순간들을

모기향 주머니랑 같이 서랍속에 넣어버리고

고마운 일들을 생각하면서

뜨거웠던 몸뚱이를 가을바람에 식히자

 

오늘, 또 새로운 관객을 만난다

한 사람이 되건 열 사람이 되건

영화를 매개로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신난다

담담해지기 좋은 계절

가을이 온다

 

 

2005/09/01 09:16 2005/09/0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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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말은 참 낯설다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뭔가 더 적당한 이름이 없을까

 

어떤 사람들과 같이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영화를 보는 느낌과 영화에 대한 궁금증은 달라진다

<돌 속에 갇힌 말>을 여러 번 다시 봤는데

볼 때 마다 전혀 다른 입장(이었다면 좀 과장이고)에 처한 사람처럼

매번 관객이 되어서 화면을 바라본다

그리고 앞에 나가서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는 동안에도

머리속에서 자아가 나뉘어진다

관객이 된 내가 감독인 나에게 묻고 싶은 말이 생기는 것이다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처음 상영되었을 때

내가 나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건

'그래, 드디어 상영을 하게 되니까 어때?'였다

약간 우쭐한 상태가 아니었을까

대답은...할 수 없었다

흥분과 당혹감과 긴장을 견디지 못해서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시간을 견디기만 했다

 

대전에서 상영할 때는

'왜, 하필, 영화로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나?'였다

기나긴 글을, 그것도 아주 오래 전 이야기를, 그것도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누군가는 다치고 누군가는 감옥에 갇히고 누군가는 장애인이 되고

누군가는...죽었을 지도 모를 그 사건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건 자신없는 일이었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카메라를 들게 되면서 첫 작업은 그 이야기다, 라고 결심했고

결국 이렇게라도 완성하게 되어서 다행이다, 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구로 구민회관, 원주, 그리고 이번주에 실업극복국민재단에서 상영할 때

나는 묻고 싶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은 그게 가장 궁금하다

관객이 물어본 적도 있었는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금禁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짧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고

좀 더 전문적인 공부를 하면서 오랫동안 재충전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앞으로 계속 영화를 만들더라도

내가 관객이라는 것을

그리고 관객도 자기 삶의 감독이라는 것을

그들도 곧 영화감독이 될 수 있고 누구보다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겸손해야한다는 말이다

 

나는 종종 그걸 잊는다

 

2005/02/26 13:58 2005/02/2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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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상영회를 한 번 할 때 마다

누군가 이런저런 지적을 할 때 마다

그 말도 맞네요, 제가 좀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다음에 조금 더 고쳐보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만다

그리고 이내 후회한다

 

사실 더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조금 더 촬영하고 싶은 장소가 있고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아직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아서 강제로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은 있지만

언젠가 어떤 선배가 말한 대로

이것은 이 자체로 이미 완결된 것이다

그런데 왜?

 

어쩌면 사람들이 지적하는 부분에 대해

뭐라고 적절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우와 저런 날카로운 생각을 왜 못했을까'라며 선뜻 받아들이지도 못하기에

우물쭈물 식은 땀을 흘리다가

대답이랍시고 한다는 것이 그만

'조금 더 고민을 한 다음에...조금 더 보충을...'이라고 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문제다

 

나는 아마 새로 편집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해야되는데, 해야만 하는데...'라고 중얼거리다가

다른 일을 벌이고 말 것이다

알면서, 너무나 잘 알면서도 이러고 있으니

이런 나 자신이 어찌 한심하지 않으리

2005/02/02 23:57 2005/02/0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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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농성장에서 영화상영하기

혹은

영화로 농성에 참여하기

혹은

현장으로 찾아가는 독립영화 시도해보기

..라는 작전은 일단 실패했다

 

 

 



(흑...계속보기, 기능을 사용하려다가 뒷부분을 날렸어요...

 기억나는 대로 다시 써보자면...)

 

12월 28일 낮

국보법철폐 국민연대의 한 분과 통화할 때

29일 수요일 저녁으로 예정하고 있으나 어려움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독립영화협회 배급담당자와 통화할 때

-날씨와 상황으로 인한 어려움

-국회 상황의 변동으로 인한 농성현장 분위기의 변화

-외부에서 시위를 조직하거나 다른 투쟁을 조직해야하는 상황

이라서 상영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단 죄송했다

이 추위에 밥을 굶어가며 힘든 농성을 이어가는 그분들께

혹시 조금이라도 누가 되거나 폐가 된 것은 아닐지

동참하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부담이 되었던 건 아닌지

처음에 상영의사를 밝히면서도

억지로 농성단을 어떤 장소에 모이게 하거나

조금이라도 불편을 끼치게 된다면 안하는 게 좋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었다

어쩌면 그렇게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아쉬웠다

이번 상영은 '영화를 본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모이기를 바랄 수 없었고

모일 만한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단 한 사람이 보게 되더라도

지금까지의 복잡한 상황을 잊고 화면에 집중하면서

서로 공감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천막안에 모니터를 설치한다던가

어떤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어쨋건

이번에는 너무 급하게

준비할 시간도 없이

상황에 대처할 별다른 경험도 없이 시작했던 일이니

상영이 불가능해진 것이 당연한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에는

찾아가는 독립영화, 현장에 동참하는 상영회를 이루고 싶다

극장에서

영화제에서

온라인에서

날짜와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누군가가 찾아와서 봐 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볼 수 있고

보고 싶어하고

같이 봐야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일하는 곳이나 농성하는 곳이나 공부하는 곳이나 쉬는 곳으로

찾아가서 상영하는 독립영화의 사례를 많이 남기고 싶다

나 혼자가 아니라 같이 여럿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립영화는

그래야 한다고 믿으니까


2005/01/05 12:50 2005/01/0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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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농성장에서 영화를 상영하자, 는 생각은

얼핏 떠오른 아이디어였지만

막상 전화를 하고

여기 저기 연락을 시작하면서

생각에 살이 붙었다

 

 

 


내 영화가 상영되지 않아도 좋았다

농성하는 분들이 보고싶은 영화를 꼽아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독립영화가 지금껏

현장에 찾아가서

농성이나 파업에 참여하는 상영형식을 보여준 적이 있었나? 궁금해졌다

 

개인의 노력은 여러 번 있었다

김미례 감독의 '노동자다 아니다'도 명동성당 농성장에서 상영되었고

장애인 이동권을 다룬 영화 '버스를 타자'도 어느 농성장에서 상영되었다고 들었다

주현숙 감독의 '계속된다'도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말하는 여러 장소에서

상영되었다

그러나 독립영화협회의 적극적인 의지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제가 아닌 기간에

여러 영화를 시리즈로 상영하는 일,

영화제가 열리는 극장이 아닌 곳에서

여러 감독을 참여하도록 권하는 프로그램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춥고

상영조건이 열악한 농성장에서

체력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관객들이 모이기 힘들다고 해도

찾아가서 영화를 틀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잡고

단 하루라도 현장에 동참하는 일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알 수가 없다

삶이보이는창에서 소개해준 김경란이라는 분과

처음 통화를 할 때는 서로 고마워했었다

그 후에

국보법철폐 국민연대의 김재윤이라는 분

독립영화협회의 김화범이라는 분과 통화하면서

성탄절을 전후한 주말이나

연말 즈음으로 날짜까지 좁혀가다가

'죄송하지만 여러 여건상 이번에는 할 수 없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농성장 외부에서 집회를 조직해야하는 일정이 계속 잡혀서

사람들을 모아서 상영을 하기가 힘들어졌고

아무래도 그 곳에서 영화를 튼다는 건 여러 모로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방법이 없지는 않은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걸까

묘한 합의 후에 막후 신경전과 여론조작에 열을 올리는

여당 야당의 국회의원들이 분위기를 흐려놓았기 때문일까

알 수 없다

 

농성의 취지와 의지가 부디 관철되기를

농성에 참여한 분들이 더 이상 건강이 악화되지 않기를

 

 

2005/01/03 16:49 2005/01/0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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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운 날씨에

매스미디어에선 성탄절과 연말연시에 대한 공익광고가 넘쳐나는 가운데

밥을 굶어가며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분들이 있다

 

가족과 따뜻한 집에서 선물을 주고받으며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간에

국가보안법 철폐와 이주노동자 인권문제, 그리고 각종 정치적 사안들로 인해

사적인 모든 것을 유보하고 거리에서 연말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지방 출장과 상영회 일정으로 정신이 없어서

여의도를 지나치면서도 마음만 아팠지 함께 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

진보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에 전화를 했다가 문득

거기서 영화상영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각종 영상물을 제작해서

영화제작비를 마련하거나 생계를 이어가야하는 우리로서는

지금 당장 단식에 참여하기는 힘들어도

뜻을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드릴 수는 있을 것 같다

 

방금 독립영화협회 회원인 한 사람과 통화를 해서

여의도 농성현장에서 영화상영을 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인권탄압에 관계된 영화는 많다

동참할 감독들도 많을 거라고 믿고 싶다

 

이 매서운 겨울바람처럼

늘 우리들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위해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와 소외된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단 며칠 만이라도

같이 영화를 보면서 서로 마음 훈훈해지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독립영화인의 농성참여 프로젝트

여의도에서 영화틀기

출발!

 

2004/12/23 12:07 2004/12/2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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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여성문화이론연구소 자료실

http://www.gofeminist.org/Board/Content.asp?TxtCode=23271&Page=1&BoardCode=Board002

 

 

노라 옥자 켈러 <종군위안부 ( 1997)>

 

 

 

전지구적인 제국주의와 가부장적 식민압제 및 남성주의적 민족주의의 물결이 거셌고 거센 20세기, "아무런 이름이 없던" ("no name") "제3세계" 여성의 원혼들이 태평양을 건너와 딸들을 홀리고 그 딸들의 독자를 홀린다. <여성전사>의 작가 맥신 홍 킹스턴(이 사람은 확실히 대단한 작가다. 적어도 아시아계 미국 문학에서는 비포/애프터 킹스턴이라 할 만허니)이 "이름을 빼앗긴 채 자살해 간" 고모의 원혼이 떠돌지 못하게 글쓰기로 고정하여 달랬던 것처럼, <종군위안부>의 작가 노라 옥자 켈러도 떠도는 여성원혼들을 "고이" 떠돌게 냅두지 않는다.

킹스턴이 자기 고모의 혼령에 홀렸던 것처럼, 켈러도 어느날 하와이에 일본군 성노예의 참상을 증언하러온 황금주 할머니의 증언에 "홀린다." 글쓰기를 통해서 켈러도 한판 "굿"을 벌이며 비체화된 여성들의 원혼을 "달랜다." 이 텍스트를 "쉽사리" 큰 단어들로만 이야기한다면, 20세기의 제국주의와 여성억압(일본군 성노예는 한마디로 저 유태인들이 맨날 산업화하고 기억하려고 열라 애쓰는 사건의 용어를 빌어쓰자면, "성적인 홀로코스트"라 할 수 있겠지)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이겠지만, 참으로 복잡한 것이라 차라리 봉합하고자픈 욕구가 솓구쳐 온다.

어쩌면, 아니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젠더화된 억압(억압이란 기본적으로 젠더 억압이며 중층결정의 양식 또한 젠더화 양식이다) 하에서, 여성들에게 글쓰기는 한 판의 "굿"이자 (약한자의 강한?) 무기이며, 그러한 것으로서 글쓰기는 자신과 타자들을 치유하는(이것땜시 모한티는 벨훅스와 트린을 열라 까지만. 여성의 경험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가정을 의문시하지 않는 본질주의적이라고) 샤먼적 힘이 있는 것이라는 진부한 진리를 <종군위안부> 역시 예증한다. 켈러의 책은 여성의 몸이 가장 끔찍한 류의 비체가 되는 방식이 섹슈얼리티를 통해서라는 점 역시 드러낸다. 오, 휴/우매니티여, 섹슈얼리티여!

(참고루, 이 비체, 크리스테바가 말한 비체란 초국가적이고 다문화적이며 문화사 자체가 가장 강력한 설명틀이 되는 우리 시대의 종속화 양식이다. 미국 안의 맥락에서 보자면 이렇다. "법적으로는 느그들도 "우리" 국민이긴 헌데 문화적으론 외국인이여/'우리 것이 아니여'(alien)"함시롱 싸가지 없이 하이픈을 붙여 한국곕네 아프리카곕네 하는 하이픈화의 정치학. 이것은 또한 포용하면서도 배제하는 포용/억제(containment)의 술수이기도 하다. )

자원했던 (자원할 때도 너부리는 이미 후회할 것을 예견했었다......아아! 너부리의 욕망은 언제나 절제를 모르고 그리하야 언제나 후회와 부담을 무릅쓰는고야 마는) 발제 준비를 해야지만, 이 켈러의 "허구적" 이야기에 왜 그리 불편시련 것일까.... 마고약도 아닌 이 책은 가슴의 살을 후벼파고 도려낸다. 20세기 판 말뜻 그대로의 하트 오브 다크니스.

이 책은 픽션이고 문학적 재현일 뿐이다...하고 여러 번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하지만, 일본군 성노예의 역사! 진실!은 그저 (일본 정부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되풀이했던 대로) "과거지사"가 아니다. 이 문제는 전지구화의 압력하에서 점증적으로 악화된 채 갱신되고 있는 (초국가적) 민족주의라는 현금의 문제와도 복잡하게 교직되어 있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문학적 재현인 이 소설은 허구와 역사의 경계를 흐뜨러 뜨리고 우리에게 "불편"하라고 강요한다. 또한 이런 것으로서 이 책은 재현 일반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게 하고, 또한 내가 왜 한국계 여성 미국인 문학 작품을 학위 논문에 한 장이나 그 이상을 할애하고자 하는 개인적 문제도 생각하도록 강제한다.

20여개의 한국 페미니스트 조직이 만든 정대협의 줄기찬 운동/교섭으로 90년대 들어서야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그나마 어느 정도 사람들의 인식에 들어왔다. "진지한" 켈러의 이 책도 분명 이런 물결에 편승, 가세, 공헌했겠지만, 조지고 부시는 텍사스 주의 한 대학원 수업에서 읽자니 참으로 묘한 심정이다. 어찌보면 지정학적으로 구체적인 이 문제를 우리시대의 미국의 생활, 문화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이런 일도 있었구나....쯧쯧...." 역사의 참상과 차이의 문제들이 대학 제도를 통해서 (이내 또 시들어갈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며) 담론적으로 "소비"되고, 출판 시장을 통해서 문화적으로 "소비"되는 이 미국에서, 텍스트 곳곳 너무나 한국적인 문화적 기호들이 지뢰처럼 박혀있고 한국/동북아 주체들에게 더욱 더 반향과 공명이 많을 이 텍스트에 문학 연구자로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어떤 참신한 언어와 새로와보이는 형식에 담아 "저들"과 나 자신을 위협할 것인가?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보편주의적 글로발 페미니즘에 저항하지만, 동시에 글로발 페미니즘의 우산 하에서라야 읽혀지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너부리는 "잘놀고"(playful), 해러웨이가 말한 "아이러니"의 불경을 일삼으며 재미를 좋아하고(fun-loving), 때로 탈젠더로 가고자 하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

그란데, 이 책은 이런 너부리의 발목을 잡는다.

20세기 후반들어 페미니즘은 지역, 국적, 인종, 성적 지향, 계급, 문화 등의 갈래를 따라 핵분열을 일으켜 왔다. 포스트구조주의가 차이들의 복권에 상당히 이론적 힘을 실어준 것 같지만 (철학자들은 항상 세상이 (자기들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고 믿는 바보들이다), 실상 이런 차이들의 핵분열은 차이들을 위계적인 사유에서 절단탈구시켜 다르게 구성배열하고자 하는 다른 삶들이 자신들의 욕망과 힘을 가동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켈러가 어머니-딸을 중심으로 소설을 썼던 것은 아마도 이런 차이의 핵분열(켈러는 이 핵분열의 가장 비체적인 뇌관을 재현한다)을 어머니로부터 딸들에게 전해지는 여성들 공동의 자산, 유산으로 삼을 필요성이 있으며, 그 역할을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서 스스로에게 위임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아주 진부한 또 하나의 페미니즘 상식이 나온다: 재현이란 (알고보면 사이비인) 보편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sympathy)이자 "감정이입"(empathy)이니.

켈러의 아키코/순효 앞에서, 페미니즘 한다는 우리 역시, 또한 "잘들 놀고있는" 미국판 포스트모던 페미니즘들이 여성 섹슈얼리티, 몸을 살아숨쉬는 여성들의 피와 살, 육체적 삶의 현실에서 따로 떼어 관념적인/담론상의 차이의 항으로 만드는 작태에 적극적으로 공모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베카는 알게 된다. 자기 엄마가 겪었던 문제는 봉합해서는 안 되는 점이라는 점을. 순효의 녹음테잎은 위계적으로 봉합해도,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자 하는 (알고보니) 주체인 여성의 욕망과 삶이 그 위계적 봉합선을 넘어서고 튿어낸다는 것, 그리하야 딸들에게 봉합하지 말고 튿어내어 리좀적 주체가 되라는, 살아서는 주체됨을 부정당했지만 증언으로 주체임을 증명한 바로 그 산 주체, 허구상 "우리"를 끊임없이 "홀려대는" 유목적 원혼의 절규였던가. . .

이렇게 쓰고 나도, 이 책이 주는 불편함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왜 일본군성노예의 고통스럽고 끔찍한 역사를 다시 기억으로부터/증언으로부터 불러내어 쓰는가? 그리하여 왜 이토록 나를 불편하게 하고 괴롭게 하는가?

차학경은 <딕테>에서 이렇게 말한다.

"왜 지금 그 모든 것을 부활시키냐고? 과거로부터. 역사를, 그 오래된 상처를. 오래된 감정을 또다시 말이다. 똑같은 어리석음을 다시 사는 것을 고백하기 위해서. 지금 그것을 명명함으로써 다시는 망각 속에 잊혀진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라고 (원서, 33).

"위안부"질 당하느라 생긴 몸, 그리하야 정신의 상처를 정신분석학의 용어로 트라우마라 할 수 있는데, 트라우마란 일종의 "정신은 죽었으나 몸은 살아있는 상태"에서 "의식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하게되는 그런 패턴"을 지닌 행동을 하게 된다. (혹자는 이것이 전일본군성노예였던 할머니들이 무당이 된 이유라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아까 앞서 말한 종속화의 양식으로서 비체를 일본군 성노예라는 "성적 홀로코스트"의 경우와 연결해보자면, 이 비체를 문학적으로 재현했을때 사회적 침묵시키기(치욕과 민족의 자존심! 말끝을 흐리며 하는 이제와서...라는 레토릭에 숨은 끈질기게스리 남성주의적 민족주의(여기서 여성은 나라요 민족이다)의 욕망)를 초과하는 "말하고자 하는 욕망"(서발턴은 정말로 말할 수 있고 말한다! 보라, 저 할머니들의 증언을! 매주 교회가듯 꼬박꼬박 참여하시는 수요집회를 보라! 단지 우리가 듣지 않고자 무의식적인 척함시롱 싸가지 없이 고의적으로 안들으려 할뿐....)은 때로 유령적 형상으로 드러낸다. 왜 유령이냐고? 문학적 재현상 바로 그 초과/잉여를, 그 모든 구속과 억제, 억압을 뛰어넘는, <주체>로서의 행동*교섭능력과 욕망, 요구를 어떤 합리성과 정확성으로 재현한단 말인가? (<서발턴연구회>처럼? 글쎄....)

"배제와 비가시화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유령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다 (7) . . . 이 이야기들은 재현상의 실수를 고치지도 아니하며, 기억이(즉 역사가) 우선적으로 생산되었던 조건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미래를 위해서 대항기억을 향해간다"(Avery Gordon 22)

트라우마로 남는 몸, 그리하여 정신(pschy)의 상흔들은 유령처럼 출몰하는데, 이 때의 유령은 행동*교섭능력, 욕망을 지니고서 무언가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유령들이다. 켈러가 <종군위안부>에서 불러들이는 일본군 성노예의 유령적 출몰에서 우리는 이 출몰하는 유령들이 "피해자"였던 성노예의 지위에 의해서 부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목도한다. 비유적으로 죽은 아키코/순효는 자신의 끔찍한 경험을 온 세상에 대고 소리질러 고발하고자 하는 욕망을, 자신의 "훼손된" 몸과 정신을 긍정하고자 하는 행동*교섭능력을 가진 유령적 인물이다. 유령은 실제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이며(not actual but real) 물질적 효과를 불러온다.

이 살아있는 유령들에게는 공식 역사가 숨기는 아카이브가 있는데, 트린 민하는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

"세계 최초의 아카이브 혹은 도서관은 여성들의 기억이었다" (Woman Native Other, 112)

 

----------------너부리

 

 

 

2004/12/22 21:05 2004/12/22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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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아일랜드‘의 강국(현빈)의 직업은 보디가드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지켜주며‘ 살아간다. 그는 가족의 죽음으로 정신병을 앓던 중아(이나영)와 결혼했고, 사회 부적응자나 다름없던 재복(김민준)에게 보디가드 일을 가르쳐주면서 그의 사회적 자립을 책임지며, 에로영화 배우였던 시연(김민정)을 경호한다. 그는 ’아일랜드‘의 주인공중 유일하게 사회의 주류에 속해있고, 그 위치를 통해 자신에게 ’의지‘하고, 자신이 이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중아를 ’불쌍해서 사랑‘했다가 ’사랑해서 불쌍‘해져 결혼하는 것이 그가 세상을 사는 방식이다.


 그래서, 강국은 친남매지간일수도 있는 중아와 재복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서로를 지켜줄 힘도, 사회적으로 용인받을 수도 없다. 그가 누군가를 지켜주며 ‘참는‘ 것에 익숙해져도 그건 참는 것이지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재복은 강국이 죽을때까지 중아를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하지만, 강국은 중아가 재복과 ‘잤는’지 궁금해하고, 재복에게 ‘수준’이 안된다며 화를 낸다. 강국의, 그리고 ‘아일랜드’의 ‘난해한 문제’는 거기서 시작된다. 강국은 사회의 가치관에 영향을 받지만, 그와 ‘사회’가 아닌 ‘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의 ‘세계’에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왔을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일랜드’는 기존의 드라마 문법을 벗어나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시청자들에게마저 선택을 요구한다.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대화못지않게 수많은 독백으로 ‘타인’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시청자에게 직접 털어놓고, 드라마는 강국과 중아의 결혼생활이나, 재복과 중아가 서로 만나고 사랑하는 과정같은 일련의 ‘사건’들 대신 그것들로 인해 새롭게 생겨나고, 균열이 일어난 각자의 관계들에 주목한다.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게 된 사람이 기존의 제도를 벗어나도 사랑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이 사랑하게 된 사람마저 당신의 ‘섬’안에 들어왔을때 그들과 또다른 섬을 만들 수 있는가. ‘아일랜드’는 우리가 ‘관계’를 맺기 위해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기존의 가치를 거부하고 그 가치관속에 숨어있던 '사람'들 각자의 삶을 모두 감싸안는다. 내 곁에 없는 수많은 ‘정상’의 ‘타인’들과 함께 살 것인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어쩌면 ‘미쳤다’고 해도좋을 그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그들만의 ‘섬’에 들어갈 것인가. 아마 강국은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는 중아와 재복을 이미 ‘사랑’할뿐만 아니라, 스스로 ‘쓰레기’처럼 살지 말라고 했던 시연마저 사랑하게 될테니까. 자신만의 관계속에 있는 ‘사람’을 잃는 것이 두렵다면, 그것은 피해갈 수 없는 선택이다. 진정한 사람간의 관계와 소통은 사회가 아니라 서로의 ‘비정상’적인 면마저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섬을 만들때 가능한 것이니까. 이미 ‘네멋대로해라’를 통해 ‘네멋폐인’의 섬을 만들었던 인정옥 작가는 강국을 통해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아일랜드’에서 살고 싶다면 이해하지말고 그냥 받아들이라고. 그래서 ‘네멋대로해라’는 ‘매니아’ 드라마였고, ‘아일랜드’는 '컬트‘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받아들이거나, 떠나거나하면 될 뿐이다. 


글 : 강명석(lennonej@freechal.com)

2004/10/24 14:20 2004/10/2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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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엄마가 그랬다

-애가 왜 그렇게 애살이 없냐

애살, 이란 말은 경상도 사투리인데

오기+승부욕+의욕+의지+기타 등등...으로 해석하면 되려나

특히 애살이 부족했던 건 체육과목이었는데

철봉도 뜀틀도 달리기도 피구도 너무 못해서

국민학교 1학년 때 전교에서 딱 한 사람, 나 혼자

체육에서 미'를 받았던 전설(?)을 남겨서 엄마를 속상하게 했다

나는...누구와 경쟁하거나 눈 앞에서 바로 바로 점수를 따야하는 일에서

늘...너무 느리고 너무 자신없어 한다

해보기도 전에 포기한다

천천히 공부해서 찬찬히 이해하는 일은 느릿느릿 해내는데

곧바로 움직여야 하는 일에는 젬병이다

 

다큐멘터리 한 편을 완성했다

이렇게 아프고 외롭고 허탈하고 부끄러운 일이 될 줄 몰랐다

시작하기 전에 알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일이다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애살이 없었기 때문에 완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70분짜리 영화 한 편을 마쳤다는 것 만으로도 기특한데

그것만으로도 스스로를 격려해주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없는 작업, 이를테면 음악이라든가 컴퓨터 그래픽이라든가

편집시스템을 구축하는 일 등을 옆에서 척척 해결해준 사람들에게는

나라는 사람이 감독으로서 부족한 게 너무 많은 모양이다

마스터 테잎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질책과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

고맙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아팠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하지만 그동안 시간은 그냥 흘러만 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 많은 사건 사고들이 그저 스쳐지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머리에서 가슴에서

옹이도 만들고 뿌리로도 뻗어가서

나중에 뭔가 조금 더 푸릇푸릇한 것으로 바뀌지 않을까

새 이파리 같은 것이 돋아나게 되지 않을까

 

87년 대통령 선거 당일

구로구청에서 모여 2박3일동안 열심히 부정선거 항의농성에 참여했던

이름모를 많은 시민들과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준 사람들과

그 사건을 영화로 만들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도와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그 분들 덕분에 이 어리숙한 한 사람이

감독이 되었고

감독이 되느라 열병을 앓으면서 삶이 얼마나 팍팍한 것인지 다시 배웠고

결국 혼자서 다 이겨내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아직 못났고

앞으로도 못난 인생을 엮어갈 테지만

그래서 기대했다가 실망한 분들께는 너무 너무 죄송하지만

그래도 저, 천천히 이 길을 가겠습니다

한꺼번에 실망하지 말고 조금씩 나눠서 천천히 실망하세요

이 길에서는 저,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을께요

 

하여간

드디어 한 편 완성했습니다

모든 것 다 접고, 그냥

축하해주세요

 

 

 

 

2004/10/18 10:25 2004/10/1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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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안, 전체구성안, 촬영구성안, 편집구성안, 대본...
<선택은 없다>는 유난히 갈등도 많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지루한 작업이었다
5개월 동안 내가 작성한 문서량은 A4 용지로 300장을 넘어선다
그러나 내가 공들인 시간의 흔적은
완성된 다큐멘터리에 성우의 목소리로만 남아있다
아주 오랜만에 충분히 감정이입을 해서 작성한 나레이션이었지만
엄마가 되어본 적 없는 나로선 부끄러운 대목이 많다
작년 10월에 완성해서 올해 2월에 KBS <열린채널>에 방영되었고
지난 2년간 방영했던 모든 영상물 중에서
우수작으로 선정한 6작품 안에 들어갔다고 한다
방송사를 떠나고 나니 방송프로그램으로 상을 받네,
씁쓸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고 묘한 기분...

아래는 대본에서 인터뷰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본문이다
--------------------------------------------------



[나레이션]

선택은 없다-일과 양육 (한국여성민우회 제작, 이혜란 연출)

[1]

아이를 키우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와 내 시간을 이끌어 가는 건 이제 내 아이다

가끔 삐걱거리는 몸뚱이처럼
내 마음도 집안에만 머물고 있는 건 아닌지
분주하지만 어쩐지 외롭고
익숙해졌지만 어딘가 어색한 하루하루,
엄마라는 존재로 서서히 적응하는 동안
둘째를 가졌다

아이를 낳기 전 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었고 시간의 주인은 나였다
남편과 같이 일하던 시절 내겐 부러울 것이 없었다
둘째가 태어나면 또 저만큼 멀어질 세상
세상의 엄마들은 지금 행복할까

[2]

저녁 7시, 옆자리로 자꾸만 눈길이 간다
부장님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고
마음은 벌써 문턱을 넘어서는데

몇 걸음만 늦어도 아이는 전화를 하고
보고 싶어? 그래 나도 보고 싶어
안쓰런 얼굴 품어주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

돌아와도 쉴 틈은 없다
내 손길이 닿기를 기다리는 건
아이도 집안일도 마찬가지...

아빠한테 갈래, 아이는 칭얼거리고
오늘도 남편은 야근 중
종일 헤어졌다 만나도 고단한 우리
나도 가끔은 등을 돌리고 싶다

나쁜 꿈이라도 꾼 것일까
오늘따라 잠투정이 유난하다
차가 붕 가버려, 친구도 붕 가버려
늦기 전에 유치원 가자

잘하고 있나? 거울 속의 내가 묻고
조금만 참자, 거울 밖의 내가 답하고
어제와 같은 아침
씁쓸한 마음 자물쇠로 채워놓고
일하는 엄마는 집을 나선다

[3]

막내와 함께 나서는 아침
그 작은 손 종일 손바닥에 맴돌고

아이 셋을 이끌고 혼자 서울에 온 지 3년
둘째 낳고도 미싱을 잡았던 나
낯선 이 곳에서 간병인이 되었다

남의 아픔을 돌보다 보면
내 아픔도 덜어진다지만
구청에서 지원받는 생계비로는
네 식구 살림이 빠듯하다

학교가 파하면 곧장 집으로 오는 둘째
아침에 미리 해둔 밥 한 그릇 볶아 먹고
술래잡기하듯 골목길로 나선다
막내가 돌아올 시간
집까지 데려오는 건 날마다 언니 몫이다

책가방도 숙제도 던져 놓은 채
만화영화 보느라 허기를 잊었던 아이들
엄마 발소리에 달려나오면 해가 저문다

오늘도 찌개 하나로 둘러앉은 저녁상
잘 먹어서 고마워, 잘 커줘서 고마워...
방 한 칸에 넷이 누우면 밤이 깊었다
내일도 그 다음날도 저희들끼리 크는 아이들...
2004/03/30 07:33 2004/03/30 0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