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보내는 농성장에서의 밤.

 

모기향 냄새와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가

여러 기억을 떠오르게 만든다.

이제는 '대학 다닐 때'라는 표현을 써야하니

벌써 꽤 많은 시간을 살아냈구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 무렵, 자리없음으로 불안함을 겪던 그 때,

농성장에서 체감하는 非常이 그 불안감을 메워줬던 것 같다.

그리 나이를 많이 먹은 건 아니지만, 확실히 그 무렵과는 보는 것들이 달라졌다.

지금도 무엇 하나 내 자리가 없다는 투정을 곧잘 부리지만,

그 무렵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는 그렇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내 또래의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도 내 자리가 그리 비좁지는 않을 것 같다.

(이건 자신할 수 없는 말. 애당초 타인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으니 제대로 볼 리가 없다.)

자리없음으로 겪는 불안함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기도 했는데,

지금 나의 동력은 무엇일까?

 

농성장에서 빅히스토리(난 프레시안 출판사 본)를 읽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런 이야기 너무 재밌고 좋다.

최근 '거대사'를 처음 접했는데, 어렸을 적부터 내가 꿈꾸던 공부는 이런 분야였으리라 싶다.

물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파고들었던 것도,

그래서 지금도 물리를 배우러 다시 대학에 가고 싶다는 로망이 남아있는 것도,

물리 그 자체보다는

우주와 인간을 꿰뚫는 '이야기'를 갈구했던 게 맞는 것 같다.

이 책을 사기 전에 데이비드 크리스천의 책을 먼저 샀는데,

그 책은 대충 넘겼고 정독하는 건 신시아 브라운의 책이 처음이다.

진화론과 우주. 그 동안 접해온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결되는 게 너무 신이 난다.

 

빅 히스토리 - 우주, 지구, 생명, 인간의 역사를 통합하다
빅 히스토리 - 우주, 지구, 생명, 인간의 역사를 통합하다
신시아 브라운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