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다누구를 위한 교육, 무엇을 위한 시험?(2008.12.)

또 한 번의 수능시험이 지났다. 시험을 치르는 당사자들에게 수능은 괴로운 과정이지만, 정작 사회는 그들의 고통에 아랑곳없이 수능을 통과의례쯤으로 이야기하며 그 선을 넘으면 축하해주자고 얘기한다. 그래서 수능시험은 수험생들에게 일종의 축제가 된다. 그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신문에는 스치듯 올해도 성적을 비관해 자살한 학생이 있다는 기사가 실릴 것이다. 수험생들은 누구를 위해 공부했고, 무엇을 달성했기에 격려와 위로를 받는 것일까. 수능 때문에 고통 받는 데에도, 수능을 마치고 조금은 홀가분해지는 데에도 학생들은 주체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르고, 합격선을 넘는다고 여긴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봐도, 자신의 미래는 공부나 시험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을 획득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명확하다.

따라서 수험생들의 공부는 그 가치가 그대로 실현되는 과정이 아니다. 수능시험은 학생이 스스로 원서를 제출해야 하므로, 원하지 않는 학생은 얼마든지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이 땅의 학생들에게는 학교․사회가 시키는 공부를 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공부하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배제될 자유. 그 학생들에게 시험을 강제하고, 또 시험을 잘 마쳤다고 격려하는 것은 재주 부리면 살코기 한 점을 더 던져주는 조련사의 태도와 얼마나 다를까?

고등학교 시절, 패닉을 좋아했다. 답답한 현실을 공감하는 가사들이 참 좋았다. 그런데 해마다 이적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수험생 응원글을 올린다. 그 글에 많이 실망해서, 요샌 이적의 노래를 듣지 않는다. ‘조금만 견디면 돼. 힘들겠지만 이건 원래 견뎌야 하는 거야.’ - 수험생을 응원한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견뎌야 하는 것 자체에 어떠한 질문도 허락하지 않고, 무조건 그 아귀다툼에 학생을 몰아넣는 학교․선생들에 비해 이적의 메시지는 그 고통을 공감해주니 참 따뜻하다. 하지만 결국 같은 결론이다. 넌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교육에 대한 인도적인 접근은 이런 한계를 가진다. 비인간적인 학교나 교육환경 자체의 현상적인 조건들에 시선을 고정시켜, 그 이상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사랑으로 감싸는 교육현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더욱 열심히 수능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수능시험의 목표는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것이다. 수험생들은 자신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대학교 입학자격을 획득해야 하지만, 그 표는 한정되어 있다. 그것도 등급이 또박또박 나뉘어서. 내가 한 등수 올라가면 누군가는 한 등수 내려가야 한다. 내가 한 등급 높은 표를 얻을 때, 다른 누군가는 그 표를 놓치게 된다. 이런 시험을 찬양하고 격려하는 사람들을, 그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 삶을 내놓은 이들을 직접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애초 자기가 원하는 미래를 위해 그 미래와는 동떨어진 것을 획득하도록 강요받아 따른 사람들이, 그 순간을 넘겼다고 자기가 원하는 가치를 실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끊임없이 지금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통해 자기 삶을 메우려 하게 된다. 중고등학교의 교육과 수능시험은 현실에서 추구하고픈 가치를 미래로 유예하는 법(다른 말로 옮기자면, 현실에 체념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배우는 것이 그 자신의 필요에 의한 것이길 바란다. 사회적 소통과 활동을 하기 위해서이든, 자신의 지적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든, 배우는 것은 지금 당장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이 사회적 성원으로 참여하는 자격조건으로 작용하여 포함과 배제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배제가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수능시험이 보여주듯, 그 배제에 포함되지 않기 위해 무엇인가를 유예해야 하게 된다. 그 유예는 결국 그 사회를 그대로 유지하길 바라는 이들에게 이득이 될 뿐이다.

 

교육이 그 자체로 자기실현이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간략하게 정리해본다.

시험은 자신의 이해정도를 점검하고, 이해를 늘리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그 시험은 강제가 되지 않아야 하고, 그 시험의 결과는 서열화되어서는 안된다. 등수의 고저로 그 사람의 성취도가 평가될 수는 없다. 또한 성취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등수가 필요하지 않다. 등수를 매기는 것은 교육 외적인 잣대를 도입하여 배움을 그 잣대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잣대가 필요한 것은 배움 그 자체를 목적을 삼지 않고, 교육을 다른 떡밥(학벌? 성공? 돈? 기타 등등)을 위한 도구로 삼기 때문이다. 교과서는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고 얘기했지만, 교육현실은 모든 게 전도되어 있다.

 

교육은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이어야 한다. 또한 그 교육과정 내적인 기준에 달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여야 하고, 따라서 시험은 성취도를 평가하되 P/F로만 매겨져야 한다. F는 결코 낙오가 아니라, P의 기준이 되는 점까지 자신의 학업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하나의 지침일 뿐이다.

사회적 존재로서 생활하기 위해 교육을 시키는 거라면, 그 결과의 평등이 하향평준화라 할지라도, 한 사람의 열외자도 없도록 해야 한다. 이 나라 모든 학생의 교육수준을 어떻게 획일화시킬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고 싶다면,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지 않은 교육과정을 사회에서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따라야 한다는 현실부터 지적해야 한다. 고등학교, ․대학교가 다른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발판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것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육의 줄 세우기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모든 학교를 평준화시키고, 그 배움의 기회를 ‘평등’하게 해야 한다. ‘기회의 평등’은 인정하지만 ‘결과의 평등’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는 ‘기회의 평등’을 부정하는 언술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입시철폐, 대학평준화를 외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요구’한다. 알량한 인도주의는 집어치우라고. 수험생들을 진정으로 걱정하겠다면, 수능을 견디라고 주문할 게 아니라 이 땅의 교육을 바꾸기 위해 행동하라고. 그렇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래 유서를 남긴 학생들을 죽인 공범이다.

2020/03/04 11:21 2020/03/04 11:21

지나간다2008 노동자대회 참가 후기 _우리는 다른 세상을 꿈꾼다.(2008.12.)

노동자대회 전날, 전국의 투쟁사업장을 돌며 연대하고 있던 ‘노동해방선봉대’가 강남성모병원을 들러 집회를 한다는 공지를 듣고 그 시간에 맞춰 강남성모병원을 찾았다. 근 한달만에 연대를 위해 강남성모병원을 찾았다. 우리가 찾았던 10월 4일 이후에도 병원직원들이 폭력적으로 로비농성장을 철거했었고, 병원장은 형식적인 대화조차 응하지 않고 있다. 누구를 탓해야할까? 어떻게 병원이 그러느냐, 가톨릭재단이 그러느냐는 비난은 오히려 현상을 정확히 보여주지 못한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병원을 택한 것이고, 가톨릭을 택한 것일 뿐이니까. 중요한 건 그들이 ‘병원’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아프면 선택의 여지없이 이용해야 하는 시설말이다.

 

병원 앞 집회를 마치고 노동해방선봉대는 다음 장소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차 안에서 주위에서 다른 노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새로 지어진 건물은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어 번듯해져 있었는데, 그 건물에는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병실이 하나도 없다 한다. 세상은 갈수록 살기 좋아진다는데, 어째서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갈수록 적어지는 것일까. 다음에 도착한 곳은 콜텍․하이텍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는 곳이었다. 실제 송전탑 위 고공농성 현장은 ‘송전탑’이란 단어를 통해 얻는 느낌보다 훨씬 아찔했다. 저 높은 곳에, 저 좁은 곳에 사람이 올라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거기다 그 위에서 단식을 하고 있다 한다. 벌써 15일이 넘었다는데, 덜컥 겁부터 났다. 저 위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저분들은 목숨을 걸고 올라가 있는데 밑에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회사를 폐업하면서 까지 노동조합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업주의 태도는 ‘나쁜 자본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가’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게 싸울 수 있는 기반이 주어지는 것 자체로 자신들이 노동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나쁜 자본가’에 대해 투쟁이 ‘인도적인 자본가’를 요구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섬세해야 한다.

 

집회를 마치고 노동자대회 전야제가 열리는 곳으로 이동해, 전야제 장소 옆에서 열린 사회공공성 쟁취 촛불문화제에 함께했다. 도착이 조금 늦어 이미 문화제는 진행 중이었다. 2008년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담긴 영상이 상영되었다. 이 땅에는 거의 매일같이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발을 땅에 붙이지 못한 채 공중에 올라가 있다. 어째서 우리네 삶은 그렇게 처절해야 할까. 왜 이 절실함은 저 경찰차 벽을 넘어가지 못하는 걸까. 그 시간에도 끊임없이 어딘가를 향해 발길을 옮기는 사람들이 슬펐다. 이 세상은 다른 이의 싸움에 대한 무관심이 스스로의 삶을 옥죄게 되리라는 사실을 감추고 보이지 않게 만든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높은 빌딩들은 그대로 나를 땅 밑으로 짓누를 것처럼 위압적이었다. 나 혼자서는 그렇게 흔적도 없이 묻혀버릴지도 모른다.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의 발언도 있었다. 비정규직이 대세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은 대세가 아니라 없어져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 투쟁하는 사업장들의 연대로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회공공성 촛불문화제라고 해서, 현재 수돗물사유화 등의 쟁점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곳곳에서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려 노력하는 것이 반가웠다.

 

사회공공성 촛불문화제가 끝난 후 전야제는 생략하고, 바로 강남성모병원의 농성장으로 이동해 함께 참석한 사람들과 노동자대회의 의미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노동자대회가 처음 열린 88년을 떠올려본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그토록 많은 것에 감격, 자기만 고생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위로감, 그곳에 있던 것은 현실의 모순에 저항해 싸우려는 힘과 그 힘을 모아 함께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나가려는 지향이었다. 자기 삶의 조건을 얻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요구야 말로 노동자의 요구이고, 혁명적인 요구이다. 노동자의 요구가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본질론적 접근에 매몰될 때, 현실의 투쟁에서 노동자정신을 밝혀내지 못할 것이다. 지금 민주노총의 집행부가 내세워야 할 노동자대회의 기조가 ‘민생’이어야 하는지, 종부세 등 세제 개편에 대한 반대여야 하는지에 대해 동의할 수 없었다. 민주노총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정신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2008년의 전태일열사정신이 무엇일지 고민할 때, 그것에는 이런 투쟁성과 연대성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고, 이 투쟁성과 연대성이 현재 강남성모병원, 기륭전자, 동희오토, 콜텍, 하이텍, 그리고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업장들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얘기를 나눴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님 이소선씨가 전태일정신은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는 것이라 말씀하신 것이 깊숙이 와 닿았다.

이후, 로비 침탈로 선전물을 다 뺏긴 농성장에서 피켓을 만들었다. 강남성모병원의 상황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유인물을 읽었는데, 강남성모병원에서 노동자들의 월급에는 부가가치세를 붙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회계상으로 파견 노동자들은 아예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처리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이 노동자를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있는 대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싶어 차라리 속 시원했다. 물건에게서 연금과 각종 세금을 뜯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이율배반인지. 비정규직법 개정으로 파견기간을 연장한다는 논의가 한창 진행된다고 한다. 유통기한 2년을 4년으로 늘린다고 이들의 삶이 나아질 수 없는 것은 확연하다. 상품이 될 수 없는 것들을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이렇게 노동자를 팔고, 물을 팔고, 의료를 팔고, 교육을 판다. 사회공공성을 쟁취하는 투쟁에 노동자들이 함께하는 것은 삶의 조건을 위협하는 시도에 대한 저항인 것뿐만 아니라, 팔 수 없는 것들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싸움이다.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면서, 동시에 노동의 불안정성을 증가시켜 노동을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노동자대회 당일 아침, 일본의 전일본학생자치회총연합(전학련) 활동가들이 강남성모병원을 방문하여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우리도 그곳에 끼어 일본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활동이 이루어지는지, 무엇이 쟁점이 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의 병원들도 보통의 회사와 비슷하여 돈벌이를 위해 운영되고, 적자가 나면 휴업을 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 하여, 병원의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이 함께 싸운 사례도 있다고 한다. 병원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을 때, 그곳의 노동자들도 ‘병원’파업이라는 데 큰 부담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준비했는데 의외로 지지와 격려를 많이 받은 경험이 있다 한다. 그 노동자들이 싸우며 요구한 것은 정시에 출근하는 것, 점심시간 1시간을 확보하는 것 등 이랬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강남성모병원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처지도 똑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주어진 일을 마치려면 9시가 출근시간 이어도 매일 7시에 출근해야 하고, 간호사들은 아예 점심시간이 없다. 간호보조 업무를 하는 자기들은 잠깐 짬을 내서 식사를 하지만 호출이 있으면 그대로 중단하고 일을 하러 가야 한단다. 싸움의 과정과 요구가 한국에서와 너무 비슷해 한마디 한마디 주고 받을 때마다 돌아가며 한숨을 쉬고, 무릎을 치며 자기 일처럼 공감했다.

이렇게 현실에 대한 저항이 한국과 일본에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언어를 뛰어넘어 서로의 삶에 대해 공감했다. 저 곳에도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구나, 같은 꿈을 꾸는 우리는 같은 요구를 하고 있구나, 비슷하게 싸우고 있구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저들은 때때로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런 것들이 말을 통하지 않고 서로 이해되는 것이 너무 감격스러웠다.

 

일본의 상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은 학교 내 유인물 선전이 금지되어 있어서 전학련 학생들은 유인물을 돌리는 투쟁을 격렬하게 진행 중인데, 이 투쟁을 하느라 2년 동안 88명이 연행되고, 4명이 퇴학당했단다. 한국의 대학에서도 머지않아 이런 싸움을 진행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뻑뻑했다. 일본의 공공재 사유화는 87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일본에서 가장 큰 노조인 JR총련이 고용승계를 대가로 철도 사유화에 합의해서, 배신자 노조로 불린단다. 해마다 노동절이나 노동자대회에는 JR총련의 노동자들이 참석하여 국제연대를 외쳤는데, 이런 이야기를 듣더니 웃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이런 철도매각에 대항해 끝까지 싸운 노동자들도 있는데 1047명이 해고되어 22년이 지난 지금도 복직투쟁을 하고 있었다. 일본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한국보다 10년 쯤 빨라 보였는데, 일본에서는 90년대 중반 파견법이 통과되었고, 지금은 계약기간이 한 달 단위여서 한 달 일한 뒤 해고당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워낙 해고가 자유롭고, 임금이 적다 보니 이래 잘리나 저래 잘리나 똑같다는 생각에 1인 파업 형태로 산발적인 저항이 일어나고 있단다. 일본 내 노동운동에서는 1047명의 해고자를 놓아두고 새로운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편과, 1047명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편으로 입장이 갈려있는데, 전학련 활동가들은 ‘자신들은 당연히 후자’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 노동자정신을 계승하고, 또한 앞으로 어떠한 싸움을 준비할 것인가에 대해 일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고민을 했다.

간담회가 끝난 후 노동자대회 장소로 이동했다. 여러 단체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담은 신문이나 유인물을 나눠줬고, 길 좌우에 다양한 주제로 가판이 있었다. 하지만 앞 무대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뒤까지 들리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들은 신문과 유인물들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들렸다 하더라도 듣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대회는 아예 행진도 없었고, 명망가들의 발언과 공연으로 채워졌다. 이것을 듣고 보기 위해 이렇게 1년 중 하루 모이는 것이라면, 일회성 기념일이 되는 것이다. 그나마 여러 가판들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내놓기 위해 나온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려 했는데, 이런 생각에 서글퍼졌다.

하지만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어떤 분이 전화를 하며 전국에 우리 같이 싸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고 느끼고 돌아간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지금 난, 그곳에 모인 이들이 정말 싸우고 있는 사람들일까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 안에서 연대감을 얻지 못하고 시니컬하게 바라보고 있던 것일게다. 하지만 이런 나의 재단과는 달리 싸우고 있고,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 그 곳에 있었다. 노동자대회는 그렇게 다른 세상을 꿈꾸고 만드는 이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자리여야 한다. 첫 노동자대회가 열리던, 일본의 활동가들과 서로의 고민을 나누던, 전화하던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던, 바로 그 순간처럼.

그 만남이 노동자대회 전체를 메우는 것이 노동자정신의 실현일 것이다.

 

2020/03/04 11:20 2020/03/04 11:20

지나간다등록금으로 땅 사지 마세요(2008.12.)

해마다 등록금을 올리며 학교가 내세우는 논리는 간단하다. 물가가 인상되었고, 교육시설을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와 등록금협상을 하는 총학생회 또한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낸 등록금만큼 제대로 해택을 받을 수 있을 지에 대해 얘기한다. 많은 등록금을 냈으니, 더 많은 혜택을 달라는 요구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역으로 더 많은 혜택을 얻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내야한다는 것이고, 돈을 내지 않으면 교육받을 수 없다는 논리와 같다.

이 사회에서는 교육을 ‘이용’하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게 통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우선 그 논리에 따라 얘기를 해보겠다.

학교는 학생들을 위한다며 쉴새없이 새 건물을 짓고 학습기자재를 구입한다. 그리고 그 비용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충당한다. 원광대, 우석대, 전주대 등과 같은 사립대학의 경우 대학교 운영이 학생들의 등록금과 재단의 전입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대학별로 정도의 차이가 잇지만, 많은 대학에서 전체 운영비용 중 70% 이상을 등록금으로 충당한다. 이에 비해 재단전입금이 한자리수를 넘는 대학은 거의 없다. 도내 대학 또한 마찬가지이다.(원광대의 경우 순전입재단금이 1%에도 못미친다.)

현행법 상 교육기관은 ‘비영리’법인이다. 영리법인과 달리 비영리 법인은 자신이 거둔 수익을 재단 외부로 현금화 시켜서 내보내서는 안되고, 모두 재단의 운영을 위해 쓰여야 한다. 다시 말해 학교는 학생들의 등록금을 반드시 학생들의 교육에 모두 이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법률로 의료·교육과 같이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 생활하기 위해 필수적인 분야(다른말로 공공성이 높은 분야)에서는 영리법인을 설립할 수 없다.

학교가 건물을 늘리고 기자재를 충당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니 법률상으로는 비영리법인의 규정에 맞게 돈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건물·땅과 같은 부동산과 고가 기자재들은 사용함으로써 그 가치가 사라지는 소비재가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학교로 귀속되어 재단의 재산을 불려주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부동산은 다른 종류의 동산과 비교할 때,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보통의 상품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저하되거나 소멸되는데 반해, 부동산은 소유하고만 있어도 그 자치가 경제규모에 발맞춰 계속 상승한다.

법의 목적상 교육기관을 비영리법인으로 규정한 것은 그곳에서 ‘돈벌이’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자신의 재산으로 귀속되는 물건을 구입하는 돈은 자신이 지불해야 한다. 쉽게 표현해보자면, 내 집을 사면서 친구에게 ‘널 재워 줄테니 네가 돈 다 내라’는 것과 같다. 혜택을 보는 사람이 비용을 지불한다는 수익자부담원칙에 따른다 하더라도 학생들이 지불해야 할 돈은 그 시설의 이용료이지, 시설의 구입비가 아니다. 법률상으로는 위법이 아닐지 모르지만, 학교의 땅·건물 불리기는 명백히 법의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학교시설을 마음껏 이용할 수는 있는가? 강의실의 기자재를 보호해야 한다며 수업시간 외에는 강의실을 잠궈놓고, 건물 출입시간마저 통제하는 게 많은 대학의 현실이다. 1주일에 1~2시간 수업만 있고 나머지 시간에는 잠겨있는 강의실이 태반이고, 1년 내내 아무도 들리지 않는 교수연구실이 명패만 달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을 위해 준비했다는 시설물들을 정작 당사자들이 원할 때 이용하지 못하고 학교직원에게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해마다 건물은 늘어나지만 어째서 동아리 공간 및 학생자치 공간은 줄어가고, 세미나 할 공간하나 변변치 못해 대학로 카페로 나서야 하는 걸까?

이쯤되면, 1년 365일 공사 중인 학교를 보며 마냥 흐뭇해할 게 아니라,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봐야 하지 않을까? 학교의 시설이 늘어나도, 그것이 학생들의 ‘혜택’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학교의 재산만 불려주는 꼴이니 말이다.

 

학교가 이미 지었고, 구입한 건물·시설에 대해 이용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학교의 거의 모든 땅과 건물이 그동안 학교를 졸업한 수많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늘어난 것인 이상, 그 건물을 학교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그 소유권을 바탕으로 또 다른 돈벌이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 재단이 맨 처음에 지분으로 갖고 있던 부분 외의 것들은 졸업한 학생들이 살고 있는 이 사회에 기부하여 공적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등록금으로 불린 재산, 모두 뱉어라. 그렇지 않겠다면, ‘교육’ 운운하며 사회에 이바지한다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자신이 장사치임을 고백하라.

2020/03/04 11:18 2020/03/04 11:18

지나간다아기 똥에서는 왜 요거트 냄새가 날까? - 인류와 미생물의 공진화

아기 똥에서는 왜 요거트 냄새가 날까? - 인류와 미생물의 공진화

-육아하며 알게 된 이야기들

 

다인이와 세상에서 만난 지 어느새 여섯 달이 지났다. 다인이와 조리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던 날이 떠오른다. 안는 것도 서툴러 행여나 놓칠 새라 온 몸에 힘을 주고 엉거주춤 걸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오니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재우는 모든 일들이 곧바로 실전이 되었다. 똥기저귀를 가는 것도 처음 해보는 일이니 매번 여기저기 묻히고 흘릴까봐 머리칼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예전에 얼핏 흘려들었던 ‘애기 똥은 냄새도 향기롭다’던 어른들의 이야기는 똥기저귀를 가는데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고 나서야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똥 기저귀에서는 향기라기엔 좀 과해도 기분 나쁘지 않은 시큼한 냄새가 났다. 익숙한 냄새인데.. 이게 뭐였더라.. 그렇다, 딱 요거트 냄새다. 애기가 먹는 게 모유밖에 없으니 모유가 발효되어서 난 냄새일터다. ‘우유 -> 발효(유산균) -> 요거트’라는 익숙한 과정을 떠올리며 세상사 참 단순명료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인이 뱃속 유산균은 대체 어디서 온 거지? 가물가물한 생물학 수업을 되짚어보면, 산모의 양수 안은 완전한 무균상태인데다 정자와 난자가 만난 수정란이 분열 · 성장하는 과정에 유산균이 끼어 들 자리는 없다. 찾아보니 호기심에서 출발했던 이 질문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이런저런 글과 논문을 찾아본 결과 신생아 장내미생물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관심가지고 연구 중인데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가장 널리 회자되는 가설은 신생아들이 질식분만(산모의 질을 통해 신생아를 분만하는 것으로 자연분만을 포함한다.) 과정에서 산모의 질을 지날 때 질/항문 등에 있던 미생물과 최초로 접촉한다는 것이다. 질식분만한 신생아의 장내 미생물무리는 엄마의 질 미생물무리와 유사하고, 제왕절개로 태어난 신생아의 경우는 엄마의 피부 미생물무리와 유사하다. 질식분만 과정에서 신생아 장내에 정착한 미생물들은 산소를 소모하여 무산소 환경을 만들고 비피도박테리움과 같은 무산소균이 정착하도록 돕는다. 이 때문에 질식분만으로 출생한 신생아들의 장내 미생물무리가 제왕절개에 의해 태어난 신생아들보다 더 다양하고 많다. 가설이라고 언급한 것은, 유럽에서는 한동안 이런 가설에 근거해 제왕절개 분만한 아이들에게 산모의 질액을 발라주는 처치가 시행되었는데 나중에 조사를 해보니 그래도 자연분만한 아이들과 장내미생물 구성이 다르더라는 거다. 아기가 좁은 산도를 통과하는 과정에 아직 우리가 모르는 작용이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영아의 장내미생물총은 출산 방법뿐만 아니라 섭취하는 음식에 따라서도 변화가 크다. 모유를 먹고 자란 아기는 분유를 먹은 아기들에 비해 비피도박테리움 비율이 더 높다. 모유에 함유된 여러 종류의 올리고당 중 HMO라는 올리고당은 신생아가 분해효소를 만들지 못한다. 이 올리고당은 비피도박테리움의 먹이가 된다. 비피도박테리움 중 HMO를 가장 잘 분해하는 인판티스라는 균은 아기의 면역계를 교육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신생아가 획득한 장내미생물무리는 단지 모유를 소화시키는 데에만 이점을 주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연구는 질식분만, 모유수유를 한 경우가 제왕절개, 분유수유한 경우 보다 알러지 질환과 아토피피부염 발생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보고한다. 분만 방식의 차이에 따른 아토피 피부염 위험도는 청소년기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있다. 출산 과정에서 획득한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면역체계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측된다.

 

출산, 수유과정과 연결된 아기의 뱃속 미생물 생태계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인간과 미생물이 공진화해온 과정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인간의 출산, 수유 환경에 적응한 미생물무리가 있고, 그 미생물무리가 제공하는 이점에 적응한 인간이 있다.

 

최근 발표되는 연구들을 살펴보면 장내 미생물 구성이 미치는 영향은 보다 전신적이고, 상시적이다. 식습관이 바뀌자 장내미생물 구성이 바뀌었고, 그것이 비만을 유도했다는 보고가 있다. 그래서 유산균은 다이어트 보조제로도 활용되고 있다.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보면 유산균 제품을 먹고 아토피 피부염이 나아졌다는 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정확한 기전까지야 아직 알 수 없지만 장내미생물 생태계가 면역 질환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도 충분하다. 최근에는 우울증 환자와 보통 사람들 사이에 장내미생물 생태계가 달랐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었다. 한의학에서는 대장이 피부와 연관되어 있다고 바라보고, 피부질환의 치료에 소화기 약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오랜 기간 쌓인 경험에서 나온 통찰인지도 모르겠다.

 

약간 비틀어 보면, 최근 쏟아지는 이러한 연구 결과는 사실 ‘유산균’을 상품화하려는 식품·제약 기업들의 연구 펀딩 덕분이다. 각종 연구로 장내미생물의 다양한 효험을 증명하는 통에 어느새 ‘유산균’이 만병통치약으로 등극 중이다. 당장 상품화하기 쉬운 제품에 연구비가 집중되다 보니 장내미생물 연구가 대부분인데 인체 곳곳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미생물들이 무리지어 살고 있고, 이 녀석들도 지금 내 몸과 모종의 영향을 주고받는 중 일터다.

 

나도 이런 저런 논문, 기사들을 찾아보고 나니 귀가 얇아져 유산균 제품을 하나 구입하게 됐다. 하지만 웬걸, 한 2주일 쯤 먹고 나니 뱃속이 수시로 부글거리는 덕분에 잠도 편히 못 자게 되어 복용을 중단했다. 특정 유산균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장내미생물 생태계가 인류와 공진화했던 조건에 맞게 조정하는 게 중요한 것인데 얄팍한 마음에 곁가지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공진화는 현생인류가 출현한 20만 년 전에 완료된 게 아니다. 헬리코박터균은 각종 위 질환과 위암 유발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 출신이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헬리코박터 균을 보유한 경우 오히려 위암 발생률이 낮았다고 한다. 인류와 미생물은 서로 적응하기 위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유럽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효과가 있던 유산균이 한국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인간과 미생물의 공진화와 비슷한 사례는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소와 같은 반추동물은 초식동물이지만 체내에서 많은 단백질을 생성해 저장한다. 엄밀하게는 소의 위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이 생성하는 것이니 체내라고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입~항문은 공간적으로 체외다.) 소는 많은 풀을 먹고 되씹으며 미생물들에게 영양분을 제공하고, 미생물들은 풀의 분해를 돕고 단백질도 제공한다. 진딧물은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작은 동물이지만 그 진딧물 한 마리의 몸 안에는 100만 마리 이상의 부크네라라는 미생물이 거주한다. 진딧물의 먹이는 식물의 수액인데 이걸로는 필수 아미노산을 생성할 수 없다. 부크네라는 진딧물의 특정 세포 안에 거주하면서 진딧물과 협동하여 필수 아미노산을 생산한다.

 

생태계에 존재하는 공진화 사례는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 많고 인간과 미생물의 관계 역시도 이제 탐구를 시작하는 단계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이 다른 존재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적응해온 공진화의 결과는 최근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변화를 따라잡기에 벅차다.

 

그래서 진화의학에서는 인간이 진화의 결과로 적응한 환경과 최근 변화된 환경 사이의 미스매치에 주목한다. 10만 년 전의 생활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다. 인간을 닫힌 계(系)로 사고하는 데서 벗어나 현생 인류로의 진화가 주변 생태계와 어떻게 적응한 결과인지를 성찰해보는 게 여러모로 유익하다는 것이다. 항생제를 복용하고서 변비나 설사로 고생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변비, 설사가 항생제의 주요 부작용 중 하나인 이유는 항생제가 장내미생물 생태계를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본 미생물의 역할을 참고하면 항생제가 장기적으로 인체에 뜻밖의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는 점까지도 고려해볼 수 있다. 게다가 항생제의 남용은 항생제내성균의 출현을 늘리는 방향으로 공진화를 촉진하고 있다.

 

자연분만, 모유수유가 제왕절개, 분유수유보다 무조건 낫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 자연분만을 택할 수도, 제왕절개를 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인류가 진화의 과정에서 적응했던 환경을 참고하여 도움이 되는 조치를 모색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아기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때로는 여간 더디 가는 게 아니다. 하루 종일 생각이 꼬리를 무니 아기 똥 냄새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이르렀다. 이제 이유식을 시작하면 요거트 냄새는 없어지고 익숙한 똥 냄새가 난다고 한다. 어른들은 그 똥 냄새도 향기롭다 하셨던 걸까? 수 만겁 이어져온 어머니의 어머니들과 아버지의 아버지들을 떠올려본다.

2019/10/30 17:03 2019/10/30 17:03

지나간다방법비판(方法批判)과 정치적 맥락주의(脈絡主義)


<방법비판과 정치적 맥락주의를 읽으실 독자들에게>

 

 

 

금민

 

어떤 글이든 그것은 독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 점은 최소한 17세기 이후의 합의, 시민혁명이 이룩한 합의이다. 이 시기 이후로 평균적 교양시민이 읽어서 이해할 수 없는 글은 아예 수준이 없는 글로 취급되게 되었다. 이 사실은 그 이전과 비교해 볼 때 하나의 거대한 변화이다. 중세에는 모든 중요한 글들이 라틴어로 쓰여졌고, 더군다나 고전 라틴어와 비교할 때 문법이 맞지 않는 속류 라틴어(Vulgata)로 쓰여졌다. 그것은 오랫동안 라틴어가 사어(死語)였고, 그저 글을 쓸 때에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중세 말 근대 초의 저자들은 스스로 라틴어의 문법에 정통하지 못했으면서도 라틴어로 글을 썼다. 이는 그들이 글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즉 글의 주인은 독자가 아니라 저자라는 편견! 글의 주인이 독자가 되고, 좋은 글의 심판관이 독자가 된 근대는 분명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발전을 의미한다. 물론 독자 대중의 낮은 수준이 거꾸로 글에 대한 부당한 평결의 원인이 되는 현상도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현대를 수사학의 시대라고들 하는데, 고전적 체계에서는 진리, 정의, 도덕 등 - 언설(言說)의 가치가 수사(修辭)의 치졸(稚拙)에도 불구하고 인정될 수 있는 영역들 - 의 하위 분과에 불과하였던 수사학이 몇몇 현대적 이론가들로부터 심지어 고전적 학제체계에서의 상위 분과였던 윤리학과 정치철학의 영역을 지배하는 원리로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의 붕괴에 원인이 있겠지만, 독자 대중이 글의 우열을 판단하게 된 시대적 합의와도 관련이 있다. 물론 시민혁명의 이상적 인간관이었던 교양이 있고 학식을 갖춘 독자 대중은 학문의 전문화와 학문 내부의 사상적 분열 때문에 모든 분야 모든 입장들에 대한 공정한 심판관으로 역할을 다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의 전문분야에 언제나 작은 의미의 독자들의 사회가 형성되듯이, 하나의 사상적 운동에도 작은 의미의 독자들의 사회가 있는 것이다. 독자들이 이해할 수 없다면 그 글은 잘못 쓰여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말이 하향 평준화, 통속화를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좋은 글은 언제나 독자들이 논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어떤 장비들을 새로 갖추어야 할 것인가를 친절히 알려 주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글의 근본 내용을 훼손함이 없이 통속화를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는가는 그 글의 깊이를 나타내는 척도이기도 하다. 이미 전제된 {방법비판(方法批判)과 정치적 맥락주의(脈絡主義)}라는 글은 이 점에서 아직 글이 아닌 것이 게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게재된 것이 너무나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주어진 분량에 서술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는 점은 처음부터 문제였다. 그러나 저자들이 독자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점은 내용보다도 졸속의 문장에 있다. 저자들은 편집진에게 문장의 교열을 위촉하였으나 편집진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고 오자(誤字)라고 생각한 몇몇 단어만을 고쳤는데 그것은 불행히도 오자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이해의 곤란함이 잘못된 문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결여에 있다고 그들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의 심판관은 독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이 게재된 신문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심판관인 독자로서의 자격이 있는 것이고, 설사 그렇지 못할 경우에도 좋은 글은 그런 독자들이 어떻게 심판관이 될 수 있는가를 알려주어야 한다. 편집진은 당연히 이해되지 않는 문장에 대하여 질문하였어야 한다. 그러나 글은 게재되었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었다. 시간의 촉박이 그 이유였다고 알고 있다. 그러므로 글을 대대적으로 재편성하든지 보충하든지 하는 것은 현재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사과하면서 몇몇 애매한 문장만은 고쳐서 올리기로 하였다.

 

                                                                                                  (필자를 대표하여 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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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비판(方法批判)과 정치적 맥락주의(脈絡主義)

 

 

 

 

                                                                                                           금민/김태호

 

이 글에서는 우선 지난 세기의 비판적 전통들을 개관하고자 한다. 먼저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하여 다룰 것이다. 여기서는 주로 맑스가 헤겔로부터 물려받은 <서술과 비판의 통일>을 문제삼을 것이다. 그리하여 <대상의 서술을 통한 비판>이라는 방법의 숙명적 아포리, 대상의 사각(死角) 또는 주체의 맹점(盲點)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맹점 또는 사각이라 할 때, 그것은 <비판적 서술>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결코 서술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마치 눈(眼)이 눈 안의 맹점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비판적 서술>에 의하여 대상의 어떤 부분이 서술될 수 없는 까닭은 그 부분이 바로 대상에 대한 서술 자체가 구성되기 위한 전제, 인식 대상과 인식주체가 구성되기 위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곳, 서술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서술이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사실은, 자본주의 비판 또는 사회비판이 단순한 인식비판, 잘못된 인식에 대한 정정을 넘어서서, 방법비판으로 나아가야 함을 암시한다.
이 글에서 맑스와 맑스의 지적 유산을 다루는 목표는, 맑스의 <비판적 서술>이 서술할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를 따짐으로써, 즉 <비판적 서술>이 불가능한 조건에 대한 질문을 통하여, 맑스의 인식비판을 방법비판적으로 전화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방법비판이란, 대상 서술의 가능성의 조건들, 인식주체의 불가결한 조건에 대한 비판을 뜻한다. 이 글에서는 우선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한 방법비판적 문제제기를 시도하겠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맑스를 계승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던 많은 시도들, 맑스를 극복하고자 했던 시도들, 맑스와 단절했음을 선포함으로써 새로운 좌파 이론을 세우고자 했던 시도들을 살펴보겠다. 우리는 여기서 그런 모든 시도가 맑스를 비속화하고 축소하였거나, 또는 맑스에게 은폐되어 있는 것과 동일한 문제를 그저 재생산하였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끝으로 맑스 및 지난 세기의 비판적 전통에 대한 방법비판적 독해가 어떠한 실천철학적 결론을 함축하고 있는가를 개략적으로 밝히도록 하겠다.

 

I. 20세기의 신조류(新潮流)들과 {자본}에 대한 '논리적 독법(讀法)'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에 입각한 사회비판은 제2차 대전 이후로 사활적 질문에 직면해 있었다: 근본적인 사회비판이 가능한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사실 지난 50년간 좌파이론의 지적 자화상이란 이 질문과 이에 대한 궁색한 답변으로 가득 차 있다. 노동자운동과 맑스주의의 20세기 전반기(前半期)적 전통인 사회민주주의와 맑스․레닌주의(후주1)에 의하여 행해진 자본주의 비판이 - 그것이 기초해 있는 것이 진화론적․경제결정론적 관점이건 주의주의적․정치주의적 관점이건 간에 - 맑스의 <역사유물론>에 근거하는 어법체계에 기초하고 있었던 반면, 대전 이후의 신조류는 자본주의 사회의 비밀과 자본주의 사회의 해소에 대한 과학적 인식가능성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자신들의 어법체계를 구성한다. 물론 이 신조류는 이 의문에 대한 빈곤한 답변의 체계로서 등장한다: 50년대의 '실존주의적 또는 신학적으로 채색된 경향'[알프레드 슈미트(Alfred Schmitt)는 사르트르(J. P. Sartre), 메를로 퐁티(Merleau Ponty), 르페브르(Lev bre), 블로흐(Bloch) 등을 이와 같이 특징짓고 있다] 또는 60년대 독일의 '비판이론'[호르크하이머(Horkheimer)와 아도르노(Adorno)], 영국의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할(S. Hall)과 톰슨(E. P. Thompson)], 이탈리아의 델라 볼페(Della Volpe)와 콜레티(L. Colletti), 그리고 오페라이스모(operaismo 노동자주의) 및 아우토노미아 운동[네그리(A. Negri), 라차라토(M. Lazzarato), 베레디(F. Beradi)], 프랑스에서는 상황주의(situationisme)[특히 드보르(G. Debord)], 70년대의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알뛰세(L. Althusser), 발리바(E. Balibar), 랑시에르(J. Ranci re)], 그리고 80년대 이후로 좌파이론의 지적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탈근대적․해체주의적․후기 구조주의적․라캉주의적 이론들[데리다, 푸코, 들뢰즈(G. Deleuze), 가타리(F. Guattari), 버틀러(J. Buthler), 지젝(S.  i ek) 등등]. 이와 같은 신조류들은 맑스의 맹점에 대한 답변의 차이들을 통하여 분류될 수 있다: 역사철학적이고 인간적인 청년 맑스와 {자본}의 맑스('경제학 비판'의 맑스)를 통일적으로 이해할 것인가 또는 그 사이에 '인식론적 단절'(알뛰세)을 인정할 것인가, 또는 맑스의 체계 속에 침투해 있는 헤겔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이 두 가지 문제는 특히 이들 신조류 사이의 차이들을 결정한다. 첫 번째 문제는 구조주의적 맑스주의를 중심으로 하여 그 이외의 다른 입장들을 가르는 기준이 되며, 두 번째 문제는 비판이론적 입장과 그 이외의 입장들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은 - 그가 헤겔의 논리학을 올바로 이해했는가와 관계없이 - 분명히 헤겔 비판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이론의 반(反)헤겔주의는 다른 입장들의 반(反)헤겔주의 - 과연 그러한 입장들이 진정으로 헤겔의 극복에 성공하였는가의 문제와 관계없이 - 와 비교할 때, 분명 종류가 다른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들 신조류들은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과 각각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선 맑스에 대한 체계적 독해가 68년을 전후한 시점에서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가, 그리고 맑스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이 이들 신조류들의 성립과 전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맑스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의 분기점도 역시 1968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해는 학생운동의 해였을 뿐만 아니라 로만 로스톨스키의 저서 {맑스 '자본'의 성립사(Die Entstehungsgeschichte des Marxschen Kapital)}, 알프레드 슈미트의 저서 {'자본' 100주년(100 Jahre Kapital)}이 출판된 해이기도 하다. 이 저서들은 맑스의 {정치경제학 요강(Grundrisse)}의 수용이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요강}의 수용이 끼친 영향은 다음의 두 가지 점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첫째로 {요강}은 맑스에 대한 정치적 독해를 촉발시켰다.(후주2) 둘째로, 화폐로부터 출발하는 {요강}의 체계는 상품으로부터 출발하는 {자본}의 체계와 비교되었고, {자본} 형성사에 관한 논쟁이 촉발되었다. 그리고 이 논쟁은 맑스의 가치형식론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의 계기가 되었다. 그 이전에는 맑스의 가치형식(價値形式) 분석은 {자본}의 해석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지 못하였고, {자본}의 비판적 핵심은 단지 잉여가치 비판 - 착취, 계급지배,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 그리고 시장의 무정부성에 대한 비판 - 으로 축소되어 이해되었다. 노동자계급은 시민적 유통관계 및 생산관계들에 대하여 파괴적인 힘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의 고유한 생산적 내용으로 파악되었고, 노동은 이미 객관적 성격, 그 자체로 사회적인 성격을 부여받은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노동의 사회적 성격은 당의 지도를 통하여 대자적 계급의식으로 조직되어야 하고, 국가를 통하여 사회주의적으로 일반화되어야 할 것으로 이해되었다. 맑스의 '비판적 핵심' - 특히 '화폐의 수수께끼'와 '상품의 물신성'에 대한 인식비판적 분석 - 은 1968년 이전의 해석들에서 무시되었거나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맑스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는 것은, 소위 '논리적 독해'의 등장이다.(후주3) '논리적 독해'는 가치형식의 논리적 전개에 실제 역사적 발전을 대응시키는 '논리역사적 독해'에 반대하여 논리의 우선성을 주장한다. '논리적 독해'는 이것을 가치형식 분석을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독법이라고 본다. 그러나 '논리적 독해'는 앞서 언급한 신조류들이 맑스의 {자본} 이해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20세기에 맑스에 의거하여 또는 맑스를 비판하며 성립한 신조류들은 1968년 이후에 이루어진 연구들, 맑스 연구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과들을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 그들이 수행한 맑스의 전화, 맑스 비판 또는 맑스주의의 극복은 그러므로 맑스의 '비판적 핵심'과의 대결이라고 볼 수 없다.

 

후주

 

1) 여기에 대해서는 {청년좌파} 42호, 신석준의 글, 10면-12면을 참조하라.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는 S. Breuer, 혁명이론의 위기, 프랑크푸르트 1977; M. Postone, 시간, 노동, 사회적 지배, 캠브리지 1996, 특히 1부를 참조하라.

 


2) {요강}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상가는 안토니오 네그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요강}에 입각하여 자본과 노동의 적대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대립, 주체적 노동과 대상화된 노동의 대립으로 규정한다.

 


3) 헬무트 라이헬트(Helmut Reichelt), {자본개념의 논리적 구조에 대하여(Zur logischen Struktur des Kapitalbegriffs}, Frankfurt/M. 1970; 한스-게오르그 바크하우스(Hans-Georg Backhaus), {가치형식의 변증법(Dialektik der Wertform. Materialien IV)}, Freiburg 1997. 그 외 H.-J. Krahl, R.-W. M ller, B. v. Greiff, E. Jacoby, C. Seel, H. Brethel, K.-D. Oetzel, D. Behrens의 저작들. 가장 최근의 문헌으로는 나디아 라코비츠(Nadja Rakowitz, {단순 상품생산(Einfache Warenproduktion)}, Freiburg 2000.

 

Ⅱ. 인식비판과 방법비판

 

방법비판은 맑스의 {자본}에 대한 인식비판적 성과들에 대한 재검토, '논리적 독법'으로부터 끌어져 나오는 철학적 문제에서 출발한다. 방법비판이 비판적으로 의거하고 있는 또 하나의 지적유산은 알프레드 존-레텔(Alfred Sohn-Rethel)의 {상품형식과 가치형식(Warenform und Denkform)} 그리고 맑스에 대한 최근의 칸트주의적 독해들 - 특히 프랑크 쿠네(Frank Kuhne) - 이다. 그러므로 방법비판은 칸트․헤겔․맑스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이며, 동시에 이들을 넘어서고자 했던 모든 신조류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이들 대가들을 넘어서지 못했는가를 밝혀보고자 하는 작업이다. 아래에서는 우선 맑스의 가치형식분석의 인식비판적 수준을 살펴보고, 왜 이것이 방법비판으로 전화하여야 하는가를 가능한 한 쉽게 서술해 보고자 한다.

 

맑스의 가치형식 분석에 대한 '논리적 독해'는 <역사적 재구성>의 문제를 제기하게끔 만든다. '논리적 독해'에 따라 {자본}의 가치형식의 단계들이 논리적 발전의 순서를 보여주는 것이고, 역사적 단계들이 아니라고 할 때, 역사적 서술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존재하는 어떤 것의 기원과 성립의 역사는 그 자체로서 이미 '형성된 것, '있는 것', 즉 현재적 효력을 전제로 할 때에만 비로소 재구성될 수 있다. 어떤 것이 서술되기 위해서는, 현재까지의 발전과 전개가 현재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는 이미 이 구성적 작업에 대하여 전제된 것으로서 거꾸로 현재까지의 발전 전개를 구성할 수 있게끔 하는 조건이다: '인간의 해부학은 원숭이의 해부학의 열쇠'(MEW 42, 39면)이다. 그러므로 화폐형식의 논리는 그 발전을 역사적으로 기술하고자 할 때조차 이미 전제되어 있는 것이고, 역사적 서술은 논리적 서술 이외에 별도의 다른 어떤 것일 수 없다. 즉 논리적 서술을 벗어난 역사적 서술은 없는 것이다. 논리적 분석이 없다면 대상(자본주의․가치)의 현재적 효력수준은 파악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다면 대상의 발생과 전개를 역사적으로 기술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맑스의 가치형식 분석은 화폐(효력)를 이미 전제하고 있는 분석이며, 추상적 시간은'직관형식'(Anschauungsform)으로서 대상을 가치로서 파악하기 위하여 전제된다. 사회적 필수노동 또는 평균노동이라는 척도는 따라서 가치분석에 이미 전제되어 있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가치분석에 의하여 척도가 무엇인가가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척도가 무엇인가가 이미 전제되었기 때문에 가치분석이 수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품의 '역사적 가치', 즉 투하된 노동시간은 '사후적'으로만 가능한 재구성인 것이다. 투하된 노동시간, 즉 구체적이고 선형적(線型的)인 시간은 오직 유통에 의한, 화폐매개적인 사회적 종합(Synthesis)을 통해서만 재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후주4) 그래서 역사란 그 서술의 관점에서 본다면, 언제나 종국에 도달해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국과 함께 비로소 탄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효력과 기원은 동시적으로 탄생하는 것이다.(Gleichurspr nglichkeit von Genesis und Geltung). 역사 - 화폐형식의 성립사 - 는 거꾸로 그것의 현재적 효력 - 화폐형식 - 속에서만 '깨어난다'. 그래서 맑스는 '매개하는 운동은 그 자신의 결과들 속에 소멸하며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MEW 23, S. 107)라고 쓴다. '한 상품에 다른 상품들이 전면적으로 그들의 가치를 표현하기 때문에 그 상품이 비로소 화폐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같은 면)은 화폐성립의 기원에 관한 역사가 화폐라는 효력을 전제하지 않는 한에서 기술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이 역사에 관한 기술은 화폐, 즉 현재의 효력에 대한 순전히 논리적인 서술에 불과하다. 맑스는 '거꾸로 하나의 상품이 화폐이기 때문에 그들의 가치를 그 상품에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같은 면)라고 쓴다. 여기서 '보인다(scheinen)'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인데, <실제로 그렇지 않다>를 밝히는 작업은 화폐의 기원과 성립에 관한 역사적 서술을 통해서 수행될 수 없다. 그 작업은 거꾸로 화폐의 논리적 분석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래서 맑스가 가치형식의 논리적 단계에 대하여 역사적․경험적 교환형태를 대비시키는 것은, 여기에 대한 수많은 오해에도 불구하고 '논리적 서술'을 훼손시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적 서술'이 아니기 때문이고, 논리적 전개와 관계없는 '역사적 전개'는 서술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논리와 역사의 동일성을 말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맑스는 자본 1권의 제2판에서 1867년 초판과 {요강}의 서술방식을 통속화하였고, 분명히 엥엘스의 집요한 설득에 따라 이를 역사화 하였다. 물론 이 경우에도 역사적 서술의 위상은 불명확하게 남겨져 있다.

 

이상에서 밝힌 바들은 좀더 날카롭게 표현될 수 있다: 역사적 전개는 현재의 효력 속으로 함몰하거나 전이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말해서 현재의 효력 속에 침몰해 있을 때, 효력 속에 전이된 것으로서 존재할 때에만 비로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화폐의 역사는 화폐의 효력 속에서만 나타난다는 점, 현재만이 과거가 탄생하며 존재할 수 있는 장소라는 점은 그러나 거꾸로 현재의 효력논리에 입각한 서술, 역사가 유일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서술이 가지고 있는 맹점(盲點), 이러한 서술 방식에 있어서 드러나지 않는 대상의 사각(死角)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효력은 비시간적인 것이 되고 역사적 기원을 가지지 않은 것이 된다: 헤겔에서 정신의 기원은 운동 속에 있듯이 자본의 기원은 재생산 속에 있다. 탄생하지 않은 것, 자신의 탄생을 오직 자신의 현재 속에서만 구성할 수 있는 것, 그래서 그 자체로 비시간적인 것이 <화폐-상품-화폐'>의 시계열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모순. 바로 자본에 있어서 역사와 논리의 모순은 그래서 시간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순수 논리적인 것, 초시간적인 것, 그래서 시간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현상하게 된다.

 

분명히 역사와 논리의 모순은 서술의 수준에서 생기는 문제이다. 맑스의 가치형식 분석에 대한 '논리적 독해'는 역사적․발생적․기원적 수준의 서술이 독자적으로 구성될 수 없음을 밝혔다. 이러한 확인들은 맑스의 <대상에 대한 비판적 서술>이라는 방법에 대하여 중요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하도록 만든다. 발생논리적 구성이 효력논리의 재진술에 지나지 않는 한에서, 대상의 효력논리적 수준에서의 서술을 통하여 대상을 비판한다 함은 무엇을 뜻하며, 그것은 과연 진정으로 비판적인가? 맑스의 '비판'이 역사적 결정론과 목적론의 모든 형태로부터 자유로운 것, 또는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현실을 단지 설명하기만 하는 이론'도 아니면서 미래에 대한 '선형적 결정론'도 아니라면, 현실의 서술을 통한 현실의 관계들에 대한 비판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의문을 좀 더 치밀하게 전개시키기 이전에 헤겔과 맑스를 비교해보는 것은 이후의 논의를 위하여 유익할 것 같다. 헤겔의 역사철학은 '현재의 상태'라는 역사의 종결에서 역사를 재구성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 그의 {논리학}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논리적․초시간적 재구성이다. 이 점에서 맑스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다른 점은 맑스가 절대정신이 자본이었음을 밝혔다는 데(유물론적 전도)에 있다. 그러나 나아가서 이 점만으로 그와 헤겔을 구별할 수는 없다. 양자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맑스가 자본(서술대상)의 구성적 전제가 인식주체(서술자)의 구성조건과 동일한 것임을 밝혔다는 데에 있다. 그는 물신성의 분석에서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의 관계를 물신적으로 나타나게끔 만드는 원인은, 한편으로 주체의 인식조건 - 칸트에게서 순수오성 개념처럼 모든 경험적 대상이 인식되기 위한 조건이 되는 것 - 일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대상의 구성조건 - 자신의 재생산 속에서만 총체성인 자본, 스스로 초시간적이지만 오직 선형적 시간계열(화폐-상품-화폐')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자본의 모순된 운동이 대상세계를 구성하는 조건이다 - 이라는 점을 밝혔다. 그래서 맑스는 물신적 인식과 그 인식의 주체․객체적 구성조건 사이의 필연적 관계를 말한다: '서로 독립된 사적 노동의 독특한 사회적 성격은 그 사적 노동이 인간노동으로서 동등하다는 데 있고, 이 사회적 성격이 노동생산물에서 가치의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은, 특수한 생산형태, 즉 상품생산에만 타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상품생산의 관계에 파묻힌 사람들에게는 이 사실의 발견 이전이나 이후에나 절대적 타당성으로 나타난다.'(MEW 23, 88면) 그러나 맑스의 물신성 비판은 - 위에 인용한 구절(1권 88면)에 나타나는 통찰에도 불구하고 - 인식비판적 차원에 한정된다: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지만 행한다'(같은 면) 이 구절은 '만약 그들이 그것을 안다면 달리 행할 것이다'를 함축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그들이 그것 - 독립적 사적 상품생산자의 사회라는 주어진 사회적 관계 하에서 상품교환은 필연적이라는 것 -을 안다 하더라도 그것 - 상품교환 - 은 상품생산이라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중지될 수 없다'라고 고쳐 쓰여져야 할 것이다.

 

맑스의 인식비판은, 그가 '틀린 인식'은 그 인식이 생성되는 사회관계하에서 필연적이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올바른 인식'이 획득된다면 '틀린 인식'을 생산해내는 관계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포함한다. 상식적으로 볼 때 지당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참과 거짓'의 준별, 인식과 실천의 연관 - 그것이 마치 투입-산출적, 일면적 관계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 은, 그러나 '참된 인식'이 어떻게 서술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하자마자 매우 복잡한 문제로 바뀌고 만다. <대상의 서술을 통한 비판>은 대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서술)을 통해서 잘못된 인식(서술)을 바로잡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맑스는 스미스와 리카도의 잘못된 인식(노동가치론)을 비판하고 올바른 인식(맑스의 새로운 노동가치론)을 제시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맑스는 올바른 노동가치론을 제시하기 위하여 '상품' 장을 쓰지 않았다. 맑스는 과학적 가치론을 수립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가치비판을 수행하고자 했다 그리고 {자본}의 집필 목표는 자본주의에 대한 서술을 통하여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첫째로 자본주의적 관계들이 자연법칙처럼 절대적으로 타당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었고, 나아가서 자본주의적 관계들은 이 관계들의 붕괴를 촉진시킬 기제를 만들어 내며(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의 법칙), 이 관계들을 해소할 사회적 세력을 생산해낸다는 것(노동자계급의 궁핍화 명제, 상대적 과잉인구 생산의 법칙)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가장 최소한의 목표인 첫 번째의 것마저 그것이 어떻게 서술될 수 있는가의 문제에 직면하여 곤란에 부딪힌다: 추상의 결과물은 구체로부터의 추상에 의하여 얻어진 것인데, 거꾸로 구체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의 구성적 조건이 된다. 부정(Negation)은 규정(Bestimmung)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 평균 개념은 평균으로 산정되기 이전의 어떤 것을 전제해야 하는데, 거꾸로 평균 개념은 평균을 포함하는 전체를 인식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 물신성은 - 그것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인 한에서 - 주체에 대해서도, 주체가 오인하는 것(대상)에 대해서, 그리고 이 오인 자체에 대해서도 구성적(konstitutiv)이다. 물신적 인식은 단지 '틀린 인식'이 아니라 '필연적' 나타나는 '틀린' 인식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관계들이 고정불변의 상태가 아니며, 그리고 이에 기초하는 물신적 행동과 의식, 나아가서 이 관계들을 서술하고자 할 때 '필연적'으로 취할 수밖에 없는, 물신적 방법은 모든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타당한 것'이 아니다. 이것을 밝히고자 하는 서술은 따라서 스스로 방법비판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지극히 우연적이며, 논리적으로 아무런 필연성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하나의 사회 또는 그 사회의 형식원리들의 '성립의 역사'가 그 사회에 대한 논리적 분석에서 서술되지 않는 문제, 대상에 대한 서술의 사각(死角), 논리적 서술의 결여(缺如)로 나타나는 문제 자체를 비판하여야 한다. 그것은 방법 - 헤겔에 의하자면 '형식 속으로 해체된 내용의 내부' - 이 대상에 대한 서술 속에서 최후로 만족하는 곳, 대상과 최종적으로 화해하는 지점을 파괴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스스로를 세계와 일치시키고자 하는 시도 - 마치 헤겔의 절대정신이 주체이자 세계인 것처럼 - 에 대하여 대결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궁극적으로 올바른' 방법에 대한 욕망, 즉 더 이상 주체-객체 관계 속에 물신적으로 해소되어 나타나지 않으며, 스스로를 직접적으로 인식하며 - 마치 십자가의 예수에게서 신을 직접적으로 인식하듯 - 스스로 이외에 어떠한 타자도 산출하지 않으며, 총체성을 더 이상 대립들 속에 둘로 쪼개지 않으며, 어떤 생성에 의해서도 매개되지 않으려는 욕망을 비판하는 일이다. 비판한다 함은 여기에서 이러한 욕망 - 그것은 실제로 니체가 말하는 바 '권력의지'이다 - 을 전적으로 포기하라는 것도 아니고, 이러한 욕망으로 무장하라는 것도 아니다. 방법비판은 그러므로 절대정신과 자본의 내재성(Immanenz)으로부터, 자본의 자기구성원칙(selbstkonstitutionsprinzip)으로부터 빠져나오려는 시도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방법은 스스로를 대상 속에, 현실의 관계들의 효력 속에 침몰된 것으로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방법이 <대상의 서술을 통한 대상의 비판>이라는, 물신적 방법 이상의 다른 어떤 것일 수 없다는 점을 서술 또는 서술적 이론이 가지는 하나의 필연적 숙명이라고 생각한다.(후주5)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방법비판은 대상에 대한 서술의 이와 같은 물신적 전개를 뛰어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것은 물신적 서술의 - 특정한 사회관계 하에서의 - 필연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이 물신적 성격을 반성적으로 의식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방법비판은 맑스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내재성(또는 내재화)의 철학'에 대한 비판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내재화의 조건적 필연성'을 인정한다.
맑스가 {자본}의 상품장에서 수행한 '인식비판'에 대한 '방법비판적 독해'의 결론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① 특정 유용노동들의 동등화는 독립된 사적 상품생산자들 상호간의 교환을 불변의 사회적 사실로서 이미 전제하고 있다. 맑스가 1권 1장 2절에서 설명하는 생리학적 개념의 인간노동으로의 환원은 교환이라는 사회적 사실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즉 이 환원은 생산과정에서 미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환과정에서만 이루어진다. ② 질적 동등화는 양적인 비교와 평가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사적 상품생산자들의 사회에서 필연적이다. 그런데 이 비교는 각각의 상품의 가치크기를 계산하는 단위로서 '개별적 유용노동의 사회적 평균시간'에 의해서 수행된다. 이 사회적 '평균'의 상품가치 크기에 대한 계량 기준으로서의 역할은 상품생산 사회에서 사적 유용노동은 사회적 총노동의 일부로 수행된다는 상품생산 사회의 구성원칙에 근거한다. 즉 상품가치는 그것이 상품의 사회적 가치를 의미할 뿐인 한에서 사회적 평균노동시간에 의해서만 계량될 수 있다. ③ 이 평균은 물론 사전에 산정되는 것이 아니다. 사전적(事前的)․선형적(線型的) 평가가 다른 구성원리를 가진 사회에서 불가능한가라는 문제는 분석수준과 관계없다. 사후적 평가라는 제도는 {자본}의 분석 대상인 자본주의적 상품생산 사회의 구성원리이고, 이미 이 제도 자체가 분석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균'은 또한 이미 현실적으로 존재하는데, 그것은 교환을 통해서 상품의 사회적 가치 크기의 평가가 상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어서 실재적이다. ④ 사회적 평균노동 시간 또는 필수 노동시간은 '선험적' 척도(das aprionsche Ma )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교환 - 질적 동등화와 양적 비교 -을 개념적으로 인식하기 위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선험적' 척도는 화폐상품을 통하여 '경험적인' 특수한 척도로 나타난다: '가치척도로서의 화폐가 상품들에 내재하는 가치척도, 곧 노동시간의 필연적인 현상형태'이다(MEW 23, 109면). 추상적․선험적 척도가 구체적․경험적 척도로 현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상품사회의 물신적 성격으로 파악된다.(후주6) ⑤ '화폐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명은 그러므로 <추상적 척도가 구체화되는> 사회에서, 그것이 어떤 사회적 필연성을 가지고 있는가, 즉 그것이 어떤 사회적 조건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에 대한 해명이어야 하며, 동시에 이러한 구체화에 대한 비판, 척도 자체에 대한 비판이어야 한다. 그래서 척도에 대한 비판은 그런 척도를 스스로의 구성적 전제로 하는 사회(상품생산 사회) 자체에 대한 비판이다. ⑥ '척도'에 대한 비판은 <대상에 대한 서술>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없다. <추상적 척도의 구체화>는 상품생산이라는 사회적 관계 하에서는 필연적이지만 자연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연적인 사실, 특수한 사회의 조직원리일 뿐이다. '인식비판'은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의 구성원리가 인간의 전역사를 지배하는 원칙이 아니며, 그래서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래서 <대상을 대상에 대한 서술을 통하여 비판하는 작업>은 반드시 <서술 자체에 대한 비판>(방법비판)을 포함하여야 한다. 양자는 긴장관계에 서 있지만 그러나 '반성적 균형'을 배제하는 관계는 전혀 아니다.

 

후주

 

4) 추상적 노동은 그래서 실제로 투하된 노동시간으로 계산되지 않고, '분석적 개념'이라기보다 하나의 '종합적 개념'이다. 이 개념은 칸트적으로 말하자면 '선험적 종합판단'이라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추상적 노동개념은 구체적 노동의 추상 또는 생리학적 노동으로의 환원을 통해서 구성되지만, 거꾸로 구체적 노동 - 칸트적 용어법에 따르자면 경험성 - 은 추상적 노동을 전제하지 않고는 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구체적 노동은 자본주의 이전의 노동도 아니고, 자본관계가 해소된 다음에도 영속할 생산적 활동도 아니다. 그것은 추상적 노동이라는 구성적 전제 하에서만 파악되는 자본주의적 관계 하에서의 상이한 경험적 활동이다. 다른 한편으로 추상적 노동은 교환과 화폐 - 경험성의 영역 - 를 전제한다. 왜냐하면 생리학적 의미에서의 노동으로의 환원은 교환의 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개념의 기능은 거꾸로 이 개념을 통해서만 생산과정에서의 가치형성을 역사적․선형적으로 재구성하고 교환과 생산을 연관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추상적 노동은 가치생산을 설명하기 위한 조건이 되는 개념이지만 그 자체로 교환을 전제하고 있다. 

 


5) 방법은 서술적인 양극성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지만, 거꾸로 이 양극성은 그 생성(werden) 속에서 이미 매개된 것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이 양극성은 반드시 어떤 척도(Ma )를 통하여 - 이 척도란 구체적 대상들에 대하여 그저 후자를 확정하기 위한 하나의 임시보관소(Leerstelle)와 같은 관계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 이미 상호연관된 것으로 나타난다.

 


6) 금태환 제도가 폐지된다 하여도 화폐상품을 통한 추상적 척도의 구체화가 종식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구체화는 상품사회의 일반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태환 지폐는 불특정의 유용노동들의 총체, 또는 발행국 국민경제의 유용노동의 생산력들의 총체를 표현한다. 즉 교환에서 양적비교를 수행하는 척도가 구체적 대상으로 현상하여야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 구체화는 이제 특정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금이라는 특정한 구체화는 오히려 예외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맑스가 이러한 특정한 구체화의 필연성을 말한 바는 없다. 지폐가 가치척도라고 했을 때, 그것이 어떤 사용가치 형태와 결부되어 있는가가 특정되지 않은 불태환 제도 - 이 지폐와 교환될 수 있는 '사회적 사용가치'가 석유일 수도 있고, IT산업에서의 기술력일 수도 있고, 또는 또 다른 어떤 알려지지 않은 것일 수도 있는 제도 - 는 그러므로 전혀 <척도의 구체화>라는 상품생산 사회의 일반 원칙을 거스르지 않는다.

 

Ⅲ. 20세기 신조류(新潮流)들에 대한 방법비판

 

시민사회의 내재성(Immanenz)을 혁파하려는, 맑스 이후의 시도들 중에서 ①루카치, ②알프레드 존-레텔, ③아도르노, ④데리다에 대하여 검토해보는 것은, 비판이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부정(否定)의 내재화를 통하여 무비판적-옹호론적으로 종결될 수 있는가를 예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①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사회의 선험적 형식원리를 생산력, 그리고 생산적 계급과 일치시키려는 시도를 행한다. 당의 과제는 즉자적 계급과 대자적 계급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 그리하여 구체적인 노동자계급(조합주의적 계급)을 자본주의 시대 전체에 있어서 보편적인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혁명적 계급)으로 고양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본이라는 절대정신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라는 절대정신으로 대체되고, 당은 이 절대정신의 자기현현(自己顯現)의 과정에서 기껏 의식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조합주의적 노동자계급의 자기의식으로서 나타난다. 이와 같이 헤겔의 {정신현상학}적 체계에 의지해 있는 루카치의 시도는 사실상 맑스․레닌주의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가 간과한 것은 자본의 총체성에 대한 비판의 준거점이 되는 프롤레타리아트는 동시에 자본이라는 절대정신의 매개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물론 루카치가 이 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이 곤란함을 '혁명적 비약', 현실적 상태로부터의 '결단론적 절연'을 통하여 돌파하려 한다. 이로써 그는 또한 실존주의적 맑스주의의 효시로도 이해될 수 있다. 루카치와 정반대에서의 시도는 알뛰세에게서 나타난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점은, 탈(脫)역사화는 효력논리에 입각한 서술이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되는 맹점(盲點)이며 따라서 이와 같은 서술의 사각(死角)을 방법적으로 문제삼지 않을 때 구조 분석은 비판적일 수 없다는 점이다. 또 다른 면에서 루카치와 대각을 이루는 입장은 가타리이다. 그가 시도하는 루카치와 달리 주체형성은 탈보편적․주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횡단성(transversalit )과 분자혁명 - 탈주와 '되기' - 이라는 전략은 {정신현상학}적 발전의 서열을 깨는 리비도의 경제학이다. 그런데 이 경제학은 맑스에 대한 루카치의 {정신현상학}적 독법이 {논리학}적 체계에서의 시간개념, 추상적 시간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것과 매우 동일한 오류를 저지른다. 가타리는 맑스에게서 다양한 질의 시간이 양적으로 비교될 수 있는 동등한 물리학적 시간으로 환원되는 것, 그리고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시간이 추상적인 사회적 시간으로 재구성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상품생산 사회의 사회적 사실이고 따라서 이 환원은 사회적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분자혁명} 중에서 특히 '권력구성체의 적분으로서의 자본'을 보라).

 

② 알프레드 존-레텔은 가치형식을 '선험적 주체'(Transzendentalsubjekt)로 간주하고 가치형식과 사유형식(Deukform)의 통일을 상품교환에서 일어나는 '실재적 추상'(Realabstraktion)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한다. 존-레텔은 선험적 주체는 가치형식이라고 말함으로써 맑스에 의거하여 칸트를 비판하고 유물론적 칸트주의를 재전개한다. 그러나 그의 칸트 비판은 경험적․역사적 성격을 띠게 됨으로써 맑스를 재해석하기 위하여 칸트로부터 끌어와야 할 중요한 유산을 간취하지 못한다. 즉 역사 형이상학의 극복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존-레텔은 오성개념의 기원과 효력의 문제를 양자의 동시적 발생으로서 이해하지 않았으며, 이를 불필요하게 역사화하고 경험화했다.

 

③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Negative Dialektik)은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와 실증적 종합의 현실옹호적 본질에 대한 의혹을 표현한다. '부정변증법'은 매개에 대한 부정, 동일자에 대한 부정이다. 그런데 아도르노에게 정신의 변증법(또는 자본의 변증법)을 포섭논리적으로(subsumtionslogisch) 이해되기 때문에 비동일자는 무매개적인 '어떤것'(Etwas)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비동일자가 동일자로 귀결되는 매개 속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다는 입장은 - 매개의 결과물들은 매개되는 양극성을 구성하는 전제라는 방법비판적 입장에서 판단할 때 - 사용가치 물신주의, 기원(Ursprung)의 물신주의로 파악될 수 있다. 사용가치는 가치체 이외에 '어떤 것'으로 존재할 수 없고,(후주7) 주체는 주체를 구성하는 조건인 사회적 관계를 떠나서 있을 수 없으며, 시원은 효력 속에서만 현상하기 때문이다.(후주8)

 

④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의미생산의 문제를 '차이'(differance)라는 개념을 통하여 해결하고자 한다. 데리다는 그래서 무엇이 무엇을 표현하는가의 문제를 어떻게 어떤 과정에 의해서 표현되는가의 문제로 전환하고자 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전환을 통하여 과연 의미생산에 대한 서술적 이론이 구성될 수 있는가이다. '총체적 또는 전개된 가치형식'에서처럼 의미표현의 무한계열이 구성된다고 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다른 것들의 의미를 정해주는 척도(화폐)가 이미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은 형식은 의미의 생산과 표현에 대한 완성된 이론이 될 수 없다. 데리다도 이 점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는 differance라는 조어(造語)를 통하여 의미의 연관체계에서 화폐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을 도입한다. 물론 differance는 difference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지시대상(의미)을 가지지 않고 다만 의미생산에서의 기능만을 가진다. 맑스가 화폐상품론의 입장을 취하는 반면에 데리다는 매우 단호하게 반(反)실체주의적이다. 화폐상품의 가치가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교환시점에 있어서 금상품 생산에 투하되는 '사회적 필수노동시간'에 의해서 계량되는 것과는 달리 차이(differance)는 어떤 실체와도 관련되지 않으며 그저 '흔적들'의 연관에 의한 의미생산 기능만을 표시한다. 데리다는 이러한 점에서 명백히 '척도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다. 그러나 데리다의 척도 비판은 그가 해체를 의미생산에 대한 서술적 이론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한에서 본격적인 방법비판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방법비판은 화폐표지론적 척도비판을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방법비판은 가치척도의 물신적 현상 형식으로서 화폐상품(금)의 존재가 필연적이라는 인식을 한편으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와 같이 내재화된 척도를 상대화하고 우연적인 것으로 만드는 해체를 수행한다. 그래서 해체는 대상에 대한 서술(이론)이 아니라 서술의 해체가 되어야 한다.

 

후주

 

7) 맑스가 '가치가 되지 않으면서도 사용가치일 수 있다'({자본} 1권 1장 1절)라고 쓸 때 그는 서문에서 약속한 '자본주의의 이념적 평균'에 대한 분석이라는 집필 목적으로부터 벗어난다.자본주의가 영역적으로 전지구화, 보편화한 시대에 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용가치 물신주의는 맑스의 이와 같은 구절들에게서 전거를 찾을 수 있다.

 


8) 사용가치 물신주의의 또 다른 형태로서 안토니오 네그리를 들 수 있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대립, 권력과 역능의 대립은 이러한 양극성이 오직 자본운동이라는 생성 속에 매개되어 있을 때에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라는 점을 그는 간과한다.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의 역동성에 대한 강조는 단순한 노동자주의, 노동자계급 물신주의로 귀결된다.


Ⅳ. 방법비판과 정치적 맥락주의

 

방법비판은 대상에 대한 서술적 비판의 맹점(盲點)을 지적하는 것이고, 그러한 비판의 불가능성의 조건을 확증하는 일이다. 이 확증은 그러나 서술 자체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그와 같은 서술, 가능한 서술은 필연적으로 물신적일 수밖에 없고, 방법비판적 단서가 없이는 언제든지 현실옹호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자는 것이다. 그러나 대상에 대한 서술이 요구되는 한에서 물신적 서술은 회피될 필요도 없으며 극복될 성격의 것도 아니다. 대상에 대한 서술을 통하여 대상을 비판하고자 하는 시도에는 서구 형이상학의 오래된 전통 -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전통 - 이 좌파적․전복적 형태로 재현된다고 본다. 그래서 방법비판은 철저히 탈형이상학적이고 반(反)실체주의적이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서술을 비판적으로 전도시키는, 이론의 외재적 장치들 - 형이상학적 전제들 -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신(神)을 통한 현실비판을 거부한다. 방법비판은 한편으로 사회의 주어진 조건하에서 그 선험적 형식원리들이 내재화하는 필연성을 인식하며, 그래서 이 원리들에 반대하는 운동들도 내재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온갖 종류의 내재성의 철학 - 20세기 좌파의 철학 - 이 간과한 문제, 모든 내재화는 현실옹호적으로 끝난다는 문제를 망각하지 않는다. 모든 비판적 서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방법비판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입장들로부터 나오는 실천철학적 결론을 - 물론 성급한 시도이겠지만 - 통속적으로 써 보도록 하겠다. 그것은 정치적․실천적 맥락주의로 표현될 수 있다. 방법비판적 실천은, 어떠한 실천도 주어진 구체적 맥락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으로부터 출발한다. 맥락을 떠나서는 비판적 실천이 정의될 수 없다. 그러나 방법비판은 아울러 이렇게 정의된 '비판적 실천'이 보편적 비판으로 위장하는 것, 바꾸어 말하자면 서술 불가능한 '보편적 비판'이 내재화하는 것을 부단히 경계하며, 언제나 '현실의 상태를 극복해 가는 운동' 그 자체이고자 한다. 방법비판은 그래서 '있는 것'(현실의 맥락)과 '없는 것'(현실의 효력논리의 수준에서는 서술 불가능한 대안사회) 사이의 긴장이며, 실천적․반성적 균형(equilibrium)이다. 방법비판적 실천은 현실의 맥락에서 출발하고, 현실의 운동 속에서 대안사회를 본다. 대안사회는 그래서 결코 역사의 목적론적 도달점이 아니며 현실 속에 부단히 생성되고 정정되어 가는 과정이다. 방법비판은 대안사회를 공간적으로 내재화하려는 시도(일국 사회주의)도, 또는 시간적으로 내재화(歷史內化)하려는 시도 - 목적론적 시간기획에 입각한 과학적 이행이론 - 도 철저히 거부한다. 방법비판은 한편으로 부단히 이러한 내재화를 시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루어진 내재화를 재파괴한다.
 


1) 여기에 대해서는 {청년좌파} 42호, 신석준의 글, 10면-12면을 참조하라.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는 S. Breuer, 혁명이론의 위기, 프랑크푸르트 1977; M. Postone, 시간, 노동, 사회적 지배, 캠브리지 1996, 특히 1부를 참조하라.

 


2) {요강}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상가는 안토니오 네그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요강}에 입각하여 자본과 노동의 적대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대립, 주체적 노동과 대상화된 노동의 대립으로 규정한다.

 


3) 헬무트 라이헬트(Helmut Reichelt), {자본개념의 논리적 구조에 대하여(Zur logischen Struktur des Kapitalbegriffs}, Frankfurt/M. 1970; 한스-게오르그 바크하우스(Hans-Georg Backhaus), {가치형식의 변증법(Dialektik der Wertform. Materialien IV)}, Freiburg 1997. 그 외 H.-J. Krahl, R.-W. M ller, B. v. Greiff, E. Jacoby, C. Seel, H. Brethel, K.-D. Oetzel, D. Behrens의 저작들. 가장 최근의 문헌으로는 나디아 라코비츠(Nadja Rakowitz, {단순 상품생산(Einfache Warenproduktion)}, Freiburg 2000.

 


4) 추상적 노동은 그래서 실제로 투하된 노동시간으로 계산되지 않고, '분석적 개념'이라기보다 하나의 '종합적 개념'이다. 이 개념은 칸트적으로 말하자면 '선험적 종합판단'이라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추상적 노동개념은 구체적 노동의 추상 또는 생리학적 노동으로의 환원을 통해서 구성되지만, 거꾸로 구체적 노동 - 칸트적 용어법에 따르자면 경험성 - 은 추상적 노동을 전제하지 않고는 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구체적 노동은 자본주의 이전의 노동도 아니고, 자본관계가 해소된 다음에도 영속할 생산적 활동도 아니다. 그것은 추상적 노동이라는 구성적 전제 하에서만 파악되는 자본주의적 관계 하에서의 상이한 경험적 활동이다. 다른 한편으로 추상적 노동은 교환과 화폐 - 경험성의 영역 - 를 전제한다. 왜냐하면 생리학적 의미에서의 노동으로의 환원은 교환의 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개념의 기능은 거꾸로 이 개념을 통해서만 생산과정에서의 가치형성을 역사적․선형적으로 재구성하고 교환과 생산을 연관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추상적 노동은 가치생산을 설명하기 위한 조건이 되는 개념이지만 그 자체로 교환을 전제하고 있다. 

 


5) 방법은 서술적인 양극성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지만, 거꾸로 이 양극성은 그 생성(werden) 속에서 이미 매개된 것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이 양극성은 반드시 어떤 척도(Ma )를 통하여 - 이 척도란 구체적 대상들에 대하여 그저 후자를 확정하기 위한 하나의 임시보관소(Leerstelle)와 같은 관계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 이미 상호연관된 것으로 나타난다.

 


6) 금태환 제도가 폐지된다 하여도 화폐상품을 통한 추상적 척도의 구체화가 종식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구체화는 상품사회의 일반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태환 지폐는 불특정의 유용노동들의 총체, 또는 발행국 국민경제의 유용노동의 생산력들의 총체를 표현한다. 즉 교환에서 양적비교를 수행하는 척도가 구체적 대상으로 현상하여야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 구체화는 이제 특정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금이라는 특정한 구체화는 오히려 예외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맑스가 이러한 특정한 구체화의 필연성을 말한 바는 없다. 지폐가 가치척도라고 했을 때, 그것이 어떤 사용가치 형태와 결부되어 있는가가 특정되지 않은 불태환 제도 - 이 지폐와 교환될 수 있는 '사회적 사용가치'가 석유일 수도 있고, IT산업에서의 기술력일 수도 있고, 또는 또 다른 어떤 알려지지 않은 것일 수도 있는 제도 - 는 그러므로 전혀 <척도의 구체화>라는 상품생산 사회의 일반 원칙을 거스르지 않는다.

 


7) 맑스가 '가치가 되지 않으면서도 사용가치일 수 있다'({자본} 1권 1장 1절)라고 쓸 때 그는 서문에서 약속한 '자본주의의 이념적 평균'에 대한 분석이라는 집필 목적으로부터 벗어난다.자본주의가 영역적으로 전지구화, 보편화한 시대에 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용가치 물신주의는 맑스의 이와 같은 구절들에게서 전거를 찾을 수 있다.

 


8) 사용가치 물신주의의 또 다른 형태로서 안토니오 네그리를 들 수 있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대립, 권력과 역능의 대립은 이러한 양극성이 오직 자본운동이라는 생성 속에 매개되어 있을 때에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라는 점을 그는 간과한다.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의 역동성에 대한 강조는 단순한 노동자주의, 노동자계급 물신주의로 귀결된다.


 

2019/10/13 17:58 2019/10/13 17:58

지나간다통일좌파

統一左派

 

200291, 사회당 대통령선거기획위원회

 

 

0. 들어가며

1. 사회당의 정체성

1.1 1997년의 좌파 분열

1.2 통일좌파를 향한 사회당의 태도

1.3 사회당의 두 기치

1.4 사회당의 합법정당에 대한 인식

2. 통일좌파에 대한 구상

2.1 통일좌파의 기본 조직노선

2.2 ()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에 대한 반대

2.3 통일좌파 노동자운동

2.4 통일좌파 학생운동

2.5 통일좌파 합법정당

 

 

0. 들어가며

 

글에 임하면서 먼저, 사회당의 많은 평당원들, 그 중에서도 사회당이 운동권이 주도하는 정당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자신은 운동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당원 동지들께, 죄송스러운 인사를 드린다. 변변한 당원용 사회당 총론이나 개설서도 낸 적이 없으면서, 아직도 사회당원이 아닌 운동권을 주된 독자 대상으로 하여, 이와 같이 생경한 운동권 용어와 어투로 점철된 글을 내게 된 것에 대하여.

그러나, 처음에 사회당을 만들고 지금 운영하는 사회당 운동권 간부들의 자세한 생각을 궁금해 하셨다면, 그 중 많은 것들이 해소될 수 있는 기쁨도 동시에 가지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당의 진짜 주인인 일반 당원 동지들께서도 사회당을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일독하실 것을 권한다. 그 속에서 당연히 사회당을 주도하는 간부들에 대한 믿음도 배가되실 것이라고 믿는다. 사회당을 주도하는 간부들이 그렇게 대책 없는 자부심으로만 똘똘 뭉친사람들은 아니라는 사실, 사회당이야말로 좌파통일운동의 현실태라는 사실을 더 잘 알게 되실 것이라고 믿는다. 통일좌파를 실현하는 데에서 사회당이 감수하고 떠맡아야 할 몫이 많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이 글의 메시지는 하나다.

 

사회당은 좌파의 통일을 강력히 원한다!

 

 

1. 사회당의 정체성

 

어떤 제안이 나오면 제안의 주체와 의도에 먼저 주목하는 것이 상식이다. 당연히 우리의 제안에 대해서도 세상은 그렇게 반응할 것이다. 그렇다면, 제안을 하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 사회당에 대하여 일정한 소개와 정리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평면적이고 나열적인 소개보다는 사회당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몇 가지 논쟁거리를 중심으로 그것들에 대하여, 오늘, 우리의 대답을 제출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 넷으로 추려 정리하겠다.

우선, 왜 모든 좌파를 포괄하는 통합 좌파정당의 모습으로 사회당이 출발하지 못했는지, 사회당은 좌파 통일 문제에 대하여 어떤 자세로 생각해 왔는지를 밝히겠다. 다음에 사회당의 두 기치에 대한 설명을 보강하고, “합법정당 중시의 태도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1.1. 1997년의 좌파 분열

 

지난 97년 여름, 좌파는 오세철 교수의 소집령에 따라 정치연대(노동자민중의정치세력화진전을위한연대)로 모였다. 당시 정치연대는 오세철 교수를 필두로 한 일군의 좌파 교수들과 한청련(한국노동청년연대), 전국노련(전국노동단체연합), 노정연(노동정치연대), 노진추(노동자중심의진보정당추진위원회)4대 단체와 일부 좌파 학생 그룹들이 참가하여 만들어졌다. 우리는 97년에 발표한 청년정당으로(민중후보운동을 넘어 청년정당으로-국민후보운동 전면 비판,비판2)’에서 당시 정치연대에 우리가 독보적인 사명감으로 임한 예를 밝힌 바 있다. 아무튼 정치연대는 좌파의 대선 방침을 결정하자는 기구였다. 우리는 거기에서 정치연대로 모인 좌파의 합법정당 창설과 좌파의 독립적 대선 참여를 주장했다. 전국노련과 노진추의 좌장격인 동지들은 국승(국민승리21)에 참가하자고 주장했다. 중간에서 많은 동지들이 한청련의 이상적 주장이 옳다는 사실과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저 쪽에 있다현실사이에서 고뇌했다. 결론을 낸 사람은 대표였던 오세철 교수였다. 오 교수는 국민후보권영길 씨와 합의했다. 즉 그는 그 때 민주노총이 저 쪽에 있다현실에 굴복했다.

당시 우리도 같은 현실을 의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민주노총이 있는 저 쪽으로 가지 않고 남은 이유는 예의 청년정당으로에서 밝혔다. 결국 한청련은 정치연대를 탈퇴했다. 생각해 보라. 당시 한나라당과 국민회의와 국민신당이 후보를 내서 겨루었다. 그 판에서 어찌 좌파가 국민승리21의 조직원으로 국민후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죽으면 죽었지 그런 건 못한다.

보라. 결국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전형적인 국민주의 구호까지 나왔다. 2002필승 코리아의 붉은 바다를 위한 전조이기나 했던 것처럼 그 운동은 이미 그 때 자기의 정체를 남김없이 폭로했다.

당시에 한청련 계열을 제외한 나머지 정치연대는 모두 국승에 들어갔다. 한청련은 결국 후보 없는 민중후보운동을 했다. 즉 한청련만이 자기의 견해를 세상에 천명하고 97년 국민후보 대선에 불참했다. 한편, 그동안 저쪽에서의 일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정치연대는 국승 안에서 구심력을 가진 의미 있는 블록이 되는 데 실패했다. 오세철 대표와 권영길 대표간의 합의에 대한 해석부터 달랐다. 결국 그 해석의 차이에 따라 각각의 거취도 결정되었다. 오세철 교수 본인이 제일 먼저 합의의 파기에 분노하여 국승을 탈퇴했다. “일어나라 코리아가 문제가 될 때쯤 전국노련이 뒤를 따랐으며 노정연의 일부 동지들도 국승을 그만 두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노진추와 인천 노정연은 국승에 남았다. 964월 사추위(사회당추진위원회) 주류의 민정련(민중정치연합)IL(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주류의 진정추(진보정당추진위원회)와의 통합 문제를 표결할 때, 안기부에 탄원서를 쓴 IL과는 같은 지붕 밑에서 못 산다고 2, 3안을 주장하여 1표 차이로 부결시켰던 바로 그 노진추와 노정연이, 바로 그 IL이 주동하는 국민후보운동에서 일어나라 코리아라고 외칠 수 있다니. 우리는 그 때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왔다.

결론은 이처럼 자명하다. 97년의 정치연대는 이렇게 국민후보운동 불참파, 참가후 탈퇴파, 잔류파, 이렇게 셋으로 두부모 잘리듯이 갈렸다. 그 때의 3자는 결국 오늘날의 사회당, 노동자의 힘, 민주노동당내 좌파, 3자의 중심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한청련 정치연대가 국승에 참가했던 것이 왜 좌파로서는 수치스런 오류였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오세철 교수와 전국노련, 노정연의 일부가 얼마 후 국승에서 나와 오늘날까지 좌파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활동해 온 것은 사실이다.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또 학생운동에 좌파로서의 자극을 주는 데 그들의 혁혁한 공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함께 들어갔던 노진추와 인천 노정연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국승에 남아 민주노동당의 일원이 되었다. 물론 그들도 그 안에서 좌파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했으며, 그에 따른 노력을 했다. 노진추는 평등연대(평등세상을위한노동자실천연대)의 골간을 구성했으며, 축소된 노정연의 인천 팀은 인천 민주노동당을 좌익적으로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평등연대조차 인천과 울산이 다른 그룹으로 분화했으며, 인천에서는 옛 노진추와 옛 노정연이 대립하고 있다. 옛 노진추의 대표였던 성두현 씨를 한 지구당 위원장으로 당선시킨 선거에서, 인천 평등연대는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측과 연대했고 옛 노정연 측은 IL과 동맹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맞든 그르든 아무튼, 좌파에게는 전국연합과 IL은 반()주사 반()개량 전선의 저편이라는 상식이 있어 왔다. 97년 정치연대 당시 그들 노진추와 노정연도 그 상식 속에서 좌파로서 하나였다. 그런데, 불과 몇 년 후 서로 싸우느라 어제의 정적과 각각 손잡는 그 꼴이 뭔가? 과연 97년 당시 좌파의 좌장이셨던 오세철 교수와 좌파 연대의 리딩 그룹이었던 전국노련이 이 참혹한 좌파 분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노동자의 힘이라는 모든 합법정당 노선 자체를 반대하는가장 좌익적인 조직을 결성하여, 국승에 따라 들어가지 않았던 좌파와 또 따라 나오지 않았던 좌파의 분열적 작태를 각각 견제하는 양날의 검으로서의 조직 노선을 만들면 다 된 건가?

그 때 오세철 교수와 전국노련이 국승에 굴복하지 않고 좌파의 자존심을 지켰다면, 오세철 교수, 전국노련, 한청련, 노정연, 노진추가 모였던 정치연대가 통일좌파의 정치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랬으면 그 때까지 정치연대에 참가하지 않았던 좌파도 더 모였다. 다른 세력들 말마따나 그 때의 한청련 혼자서 이만한 합법정당을 만들었는데, 그 정치연대가 다 함께 좌파의 자존심을 지키며 모여 있었다면 이미 좌파는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 변경을 힘으로 강제할 수 있는 좌파정당을 구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좌파 노동자운동의 통일전선 실현에도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오세철 교수와 전국노련의 리더들이었던 동지들은 좌파 분열에 특별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물론 우리도 그 동지들이 국승에 들어갔던 잘못에 대하여 자기비판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이 비공개로 한 자기비판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가 지금 공개하는 것이 실례일지 모르나, 우리는 그런 것은 당연히 세상에 내놓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오히려 오세철 교수와 옛 전국노련 동지들에 대한 우리의 변함 없는 신뢰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우리는 한국 좌파의 지도적 대열에 있어야 할 오세철 교수와 그 동지들이 그 때의 분열에 대하여 반성적으로 책임지는 자세를 이번에 꼭 보여줌으로써 모든 좌파 후배 활동가들로부터 마땅한 존경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1.2. 통일좌파를 향한 사회당의 태도

 

앞서 말한 97년에 300명의 한청련은 다음 해에 청년정당이 되겠다고 선언했으며, 말한 대로 98년이 가기 전에 청년진보당을 창당했다. 그 청년진보당이 자라 2001년에 사회당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사회당은 우선 존재 자체가 물리적 결합에서 화학적 결합으로전진한 좌파통일운동의 현실태이다. 합법정당을 경시하는 좌파 동지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합법정당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좌파도 제법 많다. 그러니까 사회당이 끊임없이 성장해 온 것이다. 사회당운동은 꾸준히 성장해 오면서 늘 새로운 동지들의 참가로 갱신되었다. 소위 물리적 결합이다. 그러는 동안 사회당은 밖에서 언제나 하나라고 보아 줄 만큼 통일 단결된 대오를 유지해 왔다. 즉 전에 다른 그룹이었다가도 사회당운동에 들어오면 모두 하나가 되었다. ‘화학적 결합이다. 사회당이야말로 여러 좌파가 모여 하나가 되어 온 좌파통일운동, 그것 자체이며 이 좌파통일 지향은 언제나 활성 상태이다. 그렇게 원래는 남이었던 사람들이 모여, 같은 당 안에서 적처럼 대립하는 당내 분파 투쟁 따위 없이, 하루가 지나면 당원이 늘어나는 정당으로, 어제보다 오늘이 큰 것처럼 오늘보다는 내일이 클 것이라는 믿음으로 뭉쳐 있는 것이 사회당이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좌파 세상은 이미 사회당으로의 통일에 참가하여 그 안에서 녹아 버린 세력들과 이 통일에 참가하려고 지금 논의하고 있는 세력들과 아직도 그것을 유보하고 있는 세력들로 나뉜다.

98년에 우리가 사회당이 아니라 청년진보당이라는 간판을 걸었던 것은 사회당을 통일좌파의 당명으로 생각하여 아껴 두었기 때문이다. 즉 청년진보당의 진짜 뜻은 오직 미()사회당일 뿐이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하여 97년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밝혀 왔다. 이제는 소문이 날 만큼 났으니 말할 때도 되었다. 2001년 초, 좌파가 적극적으로 연대했던 대우자동차 파업 과정에서 모든 좌파의 합법정당으로서 사회당을 만들자는 우리의 제안이 있었다.

우리는 오세철 교수께 좌파 통합, 당명 사회당이라는 제안을, 또 노동자의 힘 내 몇몇 동지들과 노동자의 힘 중집 등에게 청년진보당과 노동자의 힘의 통합이라는 제안을 전달하였다. 그것이 적절한 방법이었다고 계속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그 때 청년진보당과 노동자의 힘이 오세철 교수를 정점으로 통합할 수 있다면, 전체 좌파 통합의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 때 우리는 청년진보당 중앙당의 간부들이 젊으니, 모두 평간사로 내려 앉을 테니, 오세철 교수가 대표를, 노동자의 힘 중앙 간부들이 사무총장, 정책위원회 의장 등 통합 정당의 모든 주요 간부직을 맡아 달라고 제안하였다. , 우리는 우리가 크고 노동자의 힘이 작으니 흡수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등한 통합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젊으니 이끌어 달라”, “중앙당을 비울 테니 맡아 달라고 가장 화끈한 형태의 통합 제안을 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받은 대답은 ()제도적 투쟁정당이었다. 그것은 거절이었다. 결국 우리 나름의 통합 준비, 통합 사회당으로의 환골탈태를 위한 내부 사전 선동은 20018월 사회당으로의 당명 개정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났다. 즉 사회당은 원래 우리 혼자 하려던 정당이 아니다. 우리는 그 때도 지금도 사회당을 우리만의 정당이라고 이해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힘을 제외한 다른 좌파들을 소외시켰던 것, 다른 좌파들에게 통일좌파의 사회당을 만들자는 제안을 극히 부실하게 했던 것, 그것에 성심과 성의를 다하지 않았던 점에 대하여, 이 자리를 빌어 깊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노동자의 힘의 사회당에 대한 의도적 무시와 달리 사회당은 언제나 노동자의 힘과 다른 좌파를 의식하며 활동했다.

앞서 말한 대우자동차 파업을 지원하는 공투본(노동자생존권쟁취 구조조정분쇄 해외매각저지를위한 대우자동차공동투쟁본부)에서 현() 노동자의 힘 대표인 이종회 동지를 집행위원장으로 하는 체제가 구성되었다. 이종회 동지가 집행위원장이 된 첫 번째 이유는 물론 충분한 자격을 스스로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청년진보당이 이종회 집행위원장 체제를 밀어붙여 경쟁자였던 어떤 비()좌파 인사를 밀어낸 것도 사실이다. 당시 공투본에 노동자의 힘같은 좌파 리딩 그룹이 네 명을 파견할 때 청년진보당과 한국노련은 열 명 이상의 인원을 파견했고 그들이 일제히 이종회 집행위원장에 손을 들었다. 이종회 집행위원장에 청년진보당, 한국노련(한국노동자운동연대), 노동자의 힘의 활동가들로 구성된 공투본은 원래 한 조직이었던 사람들처럼 잘 맞아 돌아갔다. 우리는 그 때 이런 좌파정당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종회 동지의 변호사, 기자 동원 능력 등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분이 합법정당 사무총장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2002년 지방 선거에서 인천, 울산 후보 선정 또한 그렇게 하면 해당 지역의 좌파가 우리와 함께 하리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울산의 경우는 안승천 동지가 후보로 나와 하청을 중시하는 선거 투쟁을 하면 울산 좌파가 크게 단결하는 멋진 판이 될 것이라는 다른 좌파 어떤 동지의 제안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 좌파는 결국 어쨌냐고? 우리는 특별히 실망하지 않는다. 그런 일 한 두 번 겪은 것이 아니다. 그도 그들도 마음으로는 우리를 도왔다는 것을 안다.

사회당은 2002년 지방 선거에서 다른 좌파의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다른 좌파의 호감을 얻기 위하여 노력했다. 우리는 결국 서울시장 선거에서 내용도 없는 사회주의자로서 커밍아웃한 것이 전부인 채로 참패했다. 준비 부족을 스스로 잘 아는 우리가 그렇게 과격하게 나아갔던 것은 오직 좌파 일반에게, 부족하고 미숙하고 졸렬하지만,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붉은 마음만은 믿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회당도 합법정당이며 선거주의자들일 뿐이라고 냉소하는 사람들 앞에서 사회당은 진정 표를 구걸하기 위하여 훼절하지는 않겠다고 맹세했던 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다른 좌파를 무시하지 않고 의식한다는 것은, 사회당을 우리만의 합법정당이 아니라, ‘좌파 전체의 합법정당이라고 생각한다는 가장 유력한 증거이다. 나아가 우리가 사회당의 지방 선거 부진에는 다른 좌파들의 책임도 많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우리가 사회당을 우리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김영규 교수께서 대표권한대행을 수락하시면서, “좌파 통합의 견인차가 되어 달라는 요구라고 이해하신 것 또한 사회당 안에서 좌파 통합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조각되어 있는가를 말해 주는 증거이다.

마지막으로 싱겁고 유쾌한 자랑 하나 하겠다. 사회당의 주요 간부 상당수가 중앙당을 떠나 지구당을 개척하러 지역으로 갔다. 즉 사회당의 중앙당 간부 대오는 대폭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8월 중순에 사회당 중앙당은 한국정치의 중심 무대인 여의도로 공간을 넓혀 이사했다. 보증금이 1억 원에 육박하고 월세, 관리비만 1,000만 원이 넘는 번듯한 공간이다. 누구나 그 의도를 이해할 것이다. 이것은 통일좌파로 향하는 대선을 다른 좌파 동지들과 함께 치르기 위하여 준비한 중앙본부 사무실이다.

한 마디로 말하여 사회당 중앙당은 이미 관록 있는 좌파 운동가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부디, 그동안 사회당의 합법정당적 작풍이 성에 안 찼던 훌륭한 좌파 동지들이 사회당 중앙당에 참가하여, 사회당을 더욱 전투적인 사회주의 정당, 내용이 풍부한 정책정당으로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

물론 아직도 비어 있는 지역구들도 많이 있으며,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지구당을 주동적으로 창당하며 참가해 주기를 기대한다.

한국의 모든 좌파 동지들! 이 당은 동지들의 당이다. 사회당은 통일좌파 모두의 합법정당이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다른 좌파 동지들이 그래도 안 된다면, 통일좌파의 합법정당을 위하여 우리가 더 버릴 것이 있다면, 버리겠다.

 

 

1.3. 사회당의 두 기치

 

20028월에, 자본주의 반대와 조선노동당 반대라는 사회당의 두 기치를 소재로 삼아, 김일성주의를 신념 체계로 삼는다는 최성원동지대오라는 곳에서 장문의 비판 논문을 발표했다. 김일성주의에 따른 인터넷 정치 기구로 보이는 통일여명 편집국이 그 논문을 높이 칭찬하며 연구를 권하고 있다. 이 글의 작성을 준비하는 중에 그 글이 나와서 웬만하면 그 글에 대한 반()비판을 담을까도 했는데, , 별로 할 말이 없다. 도대체가 사고의 체계가 너무 달라, 한 쪽은 다른 쪽을 수령교의 광신도들로 또 한 쪽은 다른 쪽을 미제의 간첩으로 보니 뭘 말하겠는가?

우리는 여기서 같은 사고 체계를 가진 동지들, 즉 좌파에게 말하고자 한다. 사회당의 이론가들이 그 기치를 설명한 적은 있으나, 사회당 안의 조직가들이 그 기치를 이해하는 구조에 대해서는 별로 설명된 적이 없으니, 이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반대와 조선노동당 반대라는, 추상 수준이 다른, 소위 수위가 다른기치가 왜 나란히 걸렸는가? 그것은 일종의 중의법이다.

우선, 첫 번째 이유, 표면적 이유는 그렇게 수위가 다른 양 상대방이 한국의 정통 이념 운동에 대한 태도에서는 똑같다는 것, 그 점에 대한 인식이다. 하나만 물어보자. 미국이 주도하는 UN과 소련, 중국이 밀었던 인민공화국이 전쟁을 끝낼 때, 휴전선은 정하고 포로는 교환하기로 정했는데, 지리산 일대에 남아 있던 수천 명 빨치산에 대해서는 왜 일언반구도 없었나? 미제는 그렇다 치고, 조선노동당의 주인인 김일성 계는 왜 그랬나? 그들의 영웅적 평양 개선과 그렇게 강화될 남로당 세력이 그다지도 거북했나? 아니 정말 그렇게 미웠나? 그런 것도 동지인가? 빨치산은 결국 눈 속의 토끼처럼 몰려 다 토벌되었다. 그리고 남로당 계는 미제의 간첩으로 타도되었다. 미제가 그들이 말살되기를 원했듯이, 그들의 북쪽 동지들도 그랬다. 8586년에 발행되어 한국 주사파의 시원이 된 논문의 제목은 하필 왜 박헌영은 왜 미제의 간첩이 되었는가인가? 한국의 좌파가 미미할 때는 자본주의 측도 조선노동당 측도 좌파를 무시한다. 그러나 좌파가 힘을 갖게 되면, 즉 고개를 쳐들면, 둘 다 그것의 절멸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거꾸로 그 절멸의 대상이 몸을 일으킬 때 그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양자를 동시 겨냥하는 것은 한 인식 주체로서 극히 기본적인 소양에 속하는 문제이다. 자기를 절멸하려는 주체에게 적대의식을 가지는 것은 한 현존재가 갖는 가장 기본적인 자존심에 속하는 사항이다. 그 기치가 뜻하는 것은, 그 양자가 절멸하고자 했던 정통이, 그 양자가 숨통을 확실히 끊어 심장에 철심을 박아 무저갱에 던져 버렸다고 믿었던 유령,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모습의 옷을 입고 부활했다는 신앙고백이다.

두 번째 이유는 2000년대 한국의 운동권을 바라보는 우리의 현실 정치적 태도에 있다. 그 양대 기치는 통합좌파를 향한 일종의 서원(誓願)’이다. 우리는 당시 한국의 좌파가 주사파에 대해서는 명확히 분리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한국 운동권의 3대 세력 범위 중 또 하나, ‘개량주의 세력에 대해서는 그러한 인식과 의지를 분명하고 철저하게 갖고 있지 않다고 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런 불분명함과 불철저함이 좌파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이미 앞의 <1.1. 1997년의 좌파 분열>에서 그런 인식의 불철저함이 초래한 사태, 정치연대의 분열과 좌파의 세 갈래 분리 상태를 말했다. 그것은 정치운동의 영역에서만 존재하는 사태가 아니다. 노동자운동의 영역에서도 현장파라는 이름 아래 분열되어 존재하는 좌파는 국민파에 대항하여 중앙 권력을 지키려는 중앙파가 번차례(番次例)로 동원하는 하수인에 불과하다. 즉 그 양대 기치의 이면적 함의는, 주사-국민파에게뿐 아니라,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의 중앙파에게도 의탁하지 말고, 분열 상태를 통일하여 자존심을 가진, 의연하고 떳떳한 좌파로 서자는 피맺힌 호소이다.

이것으로 할 말은 다 했는데, 사족을 하나 달겠다. 하나의 반성이다. 다른 좌파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사회당 대오는 특히 종종 미제보다 주사파를 더 싫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일단 미제라는 역사적인 용어, 강고한 민족해방투쟁의 과정에서 확립된 구체적이고 정치적인 용어를 기피하는 잘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다. 최성원동지대오의 말이 맞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정점은 미제이며, 자본주의를 반대하면서 미제에 대한 적대적 태도가 불철저하다면 틀린 것이다. 청년진보당 시절 주한미군철수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고 싸웠던 사회당이, 작년 9.11 사건을 빌미로 전 지구적 수준에서 세계인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설정할 미국의 의도를 제일 먼저 경계하여 미대사관을 항의 방문했던 사회당이, 미군의 장갑차에 여중생 둘이 깔려 죽은 참혹한 사건에 대하여 오불관언(吾不關焉)했던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1.4. 사회당의 합법정당에 대한 인식

 

사회당의 탄생과 구성에 대한 의문과 구원(舊怨)의 꺼풀이 벗겨진 상태에서 남는 비판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나온다. 그것은 첫째, 노동자운동을 상대적으로 경시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합법정당을 전략적 단위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둘 다 뭔가 좌파답지 않게 합법정당을 중시한다는 말이다.

후자의 문제는 좌파 통합 문제와 직접 닿아 있는 것이므로 따로 떼어 <2.2. ()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에 대한 반대>에서 다루겠다. 여기서는 전자, 사회당이 노동자운동을 경시하는 것 아니냐는 동지적 불만에 대하여 말하겠다.

사회당을 구성한 사람들도 좌파이다. 그것도 스스로 더 이상 붉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붉은 좌파이다. 당연히 제1 대중운동은 노동자운동이라는 좌파의 상식을 공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회당은 그런 혐의를 받기도 하는가?

그것은 우선, 말할 필요도 없이, 민주노동당 내 좌파 동지들을 제외한다면 좌파 중에서 우리가, 현대 한국사회에서 합법정당의 필요성을 가장 많이 느낀다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다른 좌파 동지들이 합법정당을 함께 하지 않는 조건에서 합법정당이 합법정당으로 기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절대적 역량이라는 것이 있고, 부족한 세력으로서는 불가피하게 상대적으로 다수의 역량이 합법정당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합법정당이라는 형식의 유효성 덕분에 사회당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우리에게 나중에 가담하는 동지들도 합법정당 영역에서 많을 수밖에 없었고 합법정당 영역에서의 일들도 많아졌다.

다음으로, 우리는 좌파 노동자운동이 학생운동 출신 활동가의 부족으로 고통받는 것보다 그 학출 활동가들의 학연에 따라 나뉘어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우리는 좌파 노동자들이 그들의 배후에 있는 학출 활동가들의 인연이라는 사슬, 노동자들 본인들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인연의 사슬을 무시하고, 기업별, 산업별, 지역별 한계를 넘어 직접 만나, 스스로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데에 문제의 해결 방법이 있다고 본다. 학출 활동가를 노동자운동에 대거 투입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운동에 쓸 만한 학출이 얼마나 있는가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고려한다면, 우리도 노동자운동에 다른 좌파 못지 않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정열을 가지고 있다. 지금 지구당을 운영하거나 개척하고 있는 동지들 중에도 많은 동지들이 노동자운동에 전념하기를, 또는 노동자운동으로 돌아가기를, 또는 노동자운동에 투신하기를 원한다. 우리 자신이 이미 상대적으로 과도한 역량이 합법정당에 몰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편, 우리가 볼 때 다른 좌파 동지들의 그룹은 합법정당 활동을 하는 것이 훨씬 좋은 동지들조차 불필요하게 노동, 노동자가 이름에 들어가 있는 조직형식에 묶여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 그룹 회원 중 학생운동 출신 상당수가 실제로는 노동자운동을 수행하지 않는 생활인들 아닌가? 그들이 자기의 일터와 삶터에서 매일 보는 사람을 붙잡고 상대가 들어 본 적도 없는 무슨 ○○노동○○연대에 들자고 권하는 것보다는 사회당에 들자고 권하는 것이 쉽고도 정당하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는 일 아닌가?

오히려 우리는 다른 좌파 동지들도 통일좌파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기를 원한다. 다른 좌파 동지들이 합법정당을 필요 이상으로 경시하고 노동자운동을 물신화하는 관점을 시정하는 것과 사회당 동지들이 합법정당에 과하게 몰려 있는 상태를 시정하는 것은 깊은 상관관계에 있다. 좌파 동지들! 우리, 통일좌파를 형성함으로써 각각의 그룹별로 지나치게 한 영역에 편중되어 있는 상태를 시정하자. 현대 한국에서 농민은 기본 대중임에도 불구하고 좌파가 특히 조직적으로는 농민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소그룹으로서는 우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노동자운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일좌파가 형성된다면, 그리하여 특정 영역, 특정 지역에 중복 배치된 상태가 시정되고 전반적으로 고르게 재편된다면, 좌파의 대중운동은 더욱 능률적으로 될 것이다. 농민운동은 물론 교사운동 등에도 의욕적으로 진출하는 동지들이 생길 것이다. 통일좌파는 그런 것이다.

아무튼, 다른 좌파 그룹들이 자기 조직대중 전체에게 오직 노동자운동만을 제시하고 합법정당 쪽으로는 전혀 길을 제시하지 않을 때에도 청년진보당에게는 한국노련이라는 형제조직이 있었고, 또 지금은 사회당의 자매조직이라고 말하는 전노회(전국노동자회())가 만들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판이 제기되는 현실에 대하여 우리도 반성하겠다. 우리도 노동자운동에 대하여 배전(倍前)의 성의를 기울임으로써 다른 좌파 동지들의 애정 어린 비판을 수용하겠다.

 

 

2. 통일좌파에 대한 구상

 

중국공산당의 당원이었다가 소련군으로 입국하였으면서도 국내의 정통 조직을 미제의 간첩으로 몰았던 자기 종교의 창도자처럼, 1987김대중 비판적 지지로 운동권 분열의 역사를 열어 놓고 그 후 15년 동안 좌파를 분열주의자라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91년에는 사회주의자는 경멸해도 좋은 등신들이니까 안심하고 살려 달라고 노태우의 안기부에게 탄원했으며, 96년에는 개혁신당이라는 보수정당 노선에까지 쫓아갔다가 급기야 꼬마 민주당에서 공천 신청까지 하고, ‘민중운동권에 국민후보 노선까지 도입했던 사람들이 있다. 마치 전노협의 부활이나 되는 것처럼 선동하여 몰아붙인 단일금속노조를 저런 칠삭둥이로 낳아 놓고도, 200242, 총파업이 시작되자마자 지도부가 항복하는 처참하고 치욕스런 꼴에 이르도록 민주노총을 타락시켜 놓고도, 악착같이 금속연맹과 민주노총의 중앙권력만은 움켜쥐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힘을 합쳐 시동을 걸어 만든 정당이 진보정당이라고 주장하면서, 유신 시대에 <서울신문>의 기자가 되고 관공서가 일괄 구매하여 유지시켜 주던 그 신문에서 전두환 정권 임기 내내 하필 모든 외신 기자들이 선망하는 빠리 특파원을 했던 사람을 벌써 두 번씩이나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고 있다.

저들은 그렇게 다르면서도 또 그렇게 같다. 저들은 그렇게 서로 으르렁거리면서도 민주노동당에서 민주노총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서로 봐 주며 서로 협력하여 주류 연합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좌파는 어떤가? 좌파는 입만 열면 사회주의, “비타협적 투쟁이고, 아무리 곤궁해도 원칙에서 한 발짝만 비켜나면 벼락 맞아 죽을 것처럼 생각한다는 점에서 똑같다. 그러나 좌파는 분열되어 있고 심지어 일부는 그 주류 연합의 품 안에 있다.

 

! 좌파! 너는 자존심도 없는가?”

 

좌파는 정말 그렇게 같으면서도 그렇게 달라야만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유가 없는데, 정말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우리끼리 갈려 지리멸렬해야만 하는가? 좌파여, 자존심을 회복하자. 그러려면 다른 것 없다. 좌파는 우선 모여서 하나가 되어야만, 저 주사-국민파, 개량-중앙파를 밀어내고 공식적 대중권력이 됨으로써 대중을 분기시켜 이 더러운 체제와 맞서는 싸움을 시작할 수 있다.

 

 

2.1. 통일좌파의 기본 조직노선

 

2002년 현재 백기완 선생 연세가 일흔이다. 언제 가실지 모르는 연세이다. 한국의 모든 좌파에게, 92년 민중후보 투쟁 때부터 원했던 그림을 10년만에 이 글로 제안한다.

 

백 선생님 돌아가시기 전에 백 선생님을 영수로 하는 통일좌파를 실현하자

 

이것을 위하여, 노동자운동, 학생운동, 합법정당운동의 3개 메이저 운동과 여성운동, 보건의료운동, 환경운동, 이론운동 등등의 영역별로 좌파는 모두 헤쳐 모여하나의 조직을 구성하자. 이름하여,

 

1영역 1조직.

 

그렇게 각 영역의 통일좌파 대오를 표현하는 조직들을 이번 대선 투쟁 과정에서, 또 대선과 직접 상관없이도 올해 하반기 동안 형성해 가자. 그리고 내년에는 선두에서 위용있게 전진하는 좌파 노동자 통일전선을 둘러싼 투쟁 대오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통일좌파 연대체를 만들자. 각 영역 조직을 대표하는 대표자회의로 시작될 모임을 상설공동투쟁체로, 또 그것을 넘어 조직대중의 규모와 가중치를 감안하여 각 영역 조직이 파견한 대의원들로 구성되는 통일좌파회의, 빠르게 발전시키자. 백기완 선생님같은 통일좌파의 상징 인격을 통일좌파회의의 주석에 앉혀 통일좌파의 확고한 권력 의지를 민중에게 표명하자.

사실은 짧은 이 절로 이 글의 결론은 제시되었다. 다만, 주장의 구체성을 더하기 위하여, 노동자운동, 학생운동, 합법정당운동에 관해서만 약간 상론하도록 하겠는데, 좌파 통합의 범주에서 다룰 수 있는 하나의 문제 제기를 먼저 짚고 시작하겠다.

 

 

2.2. ()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에 대한 반대

 

20028월에 7개 좌파 단체 열성 회원들의 수련회가 있었다. 노동자의 힘이 주동하여, 전노회, 민주노동자연대, 사회진보연대(사회진보를위한민주연대), 전북의 현장연대(노동의미래를여는현장연대), 부산의 투쟁연대(부산노동자민중투쟁연대), 광주의 실천연대(민중실천연대)가 모였다. 노동자의 힘에 대한 우리의 길고 긴 짝사랑과 구애가 안타까워 보였는지, “사회당과 노동자의 힘의 통합은 조직형식상 부적절해 보이니 사회당과 친한 전노회가 노동자의 힘과 합치는 것이 어떠냐는 힌트가 있었다. 그 와중에 노동자의 힘이 자기 해소까지 시사하며 좌파 모이자고 하니 전노회는 거기에 참가했다.

어떤 식으로든 좌파가 모이고 통합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기는 한데, 한편 우리는 걱정이다. 그것의 결론이, ‘비제도적 투쟁정당으로서 사회당과의 통합을 거절하며 대립했던 노동자의 힘의 연장이 될까 봐. 아니, 오히려 어떤 결론도 빨리 내지 않은 채 합법정당과 노동자운동으로의 좌파의 분화 발전을 가로막을까 봐. 그 흐름에 대한 노동자의 힘 측의 기대는 노동자의 힘의 확대 재편이라는 관측이 이미 세간에 파다하다.

우리는 노동자의 힘이 그 미발아(未發芽) 상태를 빨리 청산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노동자의 힘이 자신들의 진로를 정치조직인지 노동자운동조직인지 분명히 정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정말 사회당과 통합할 조직인지 전노회와 통합할 조직인지 분명히 하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우리는, 노동자의 힘이 좌파의 노동자 통일전선에 힘을 싣고, 일부 유력한 40대 동지들은 통일좌파 합법정당의 지도부에 참가하는 모습으로 분화하기를 바란다.

이 참에 우리는 일부 좌파의 막연한 합법정당 비토(veto) 노선,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에 대한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힌다. 마치 반()합법 미()분화 상태가 자동적으로 전략적 지위에 자리 잡고 있는 듯이 암시하는 태도는 이제 청산되어야 한다. 비능률적인 반합법 단체로서 합법정당이 해야 할 역할과 노동자대중운동이 해야 할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미분화 노선은 이제 청산되어야 한다.

8,90년대 정파운동이 비공개 비합법이라는 조직 형식 자체로서 소위 전략단위를 자임했던 풍습의 잔재는, 합법정당과 합법 총연맹의 시대에는 반합법 정도의 자세로서도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사고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특정 대중운동 영역에 편중된 수백 명의 반합법 회원단체와 전략적 지위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 연관이 없다.

어떤 조직이 소위 전략적 지위에 있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 둘 중 하나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질을 중심으로 따진다면, 그것은 가장 질이 높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강철의 규율이 유지되는 조직이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불가피하게 높은 문턱을 가진다. 즉 그것은 노동자의 힘처럼, 지지하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회원단체일 수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모두를 포괄하는 양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즉 앞서 말한 것처럼 각각의 운동 영역별로 우선 분화하고각 영역의 좌파를 모두 포괄한 조직들이 다시 모여’, 상향적 통합으로서 그 위에 만든 조직이라면 그것은 좌파의 전략조직일 수 있다.

여기서 소위 전략당, 전술당 문제에 대한 사회당의 태도를 밝히겠다. 그런 용어가 별로 과학적인 용어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따로 시비하지 않겠다.

사회당은 얼마든지 통일좌파의 전술당이 될 용의가 있다. 다만, 사회당을 전술당으로 편성할 수 있는 전략 주체가 있어야 사회당도 전술당이 될 수 있다.

만약, 한 반합법 정치단체 또는 그런 것들 세 개가 모여, 회원수가 사회당의 1/10에 불과한 조직력으로 자기를 전략 단위라면서 사회당은 그 밑에서 전술당 하라면 곤란하다. 반합법이니까 합법보다 무조건 위라면, 그 반합법, 합법 모두 혁명적 사회주의자 일동따위의 문서를 내는 비합법 소그룹의 전술 단위가 되어야 한다는 말로도 될 것이다.

1영역 1조직 노선에 기초하여 각 영역에 통일좌파 조직들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모여 그 위에 편성한 전략조직, 즉 위에 말한 통일좌파회의가 만들어진다면 사회당은 얼마든지 전술당하겠다. 그런데, 그 때는 통일좌파 노동자운동조직도, 또 통일좌파 학생운동조직도 그것의 전술 단위이다.

합법정당에 비하여 반합법 단체가 얼마나 비능률적인 조직노선인지는 이미 존재 그것 자체로 밝혀졌다. 한청련은 청년진보당을 거쳐 사회당이 됨으로써 스무 배로 커졌다. 그런데, 청년회 따위가 감히 어깨를 맞댈 수 없었던 전국 노동자운동 단체들의 연합, 전국노련이 일부 교수들과 일부 노정연과 함께 만든 노동자의 힘이 같은 기간 성장했다고 볼 수 있을까? 지명도는 또 어떻고? 사회당을 들어 본 국민이 노동자의 힘을 들어 본 국민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면 증명 안 된다고 반박할까? 비난자들이 말하길 사회당은 어린애들의 조직이란다. 그 말을 듣고 돌아보면 노동자의 힘은 정말 기라성같은 맹장들의 조직이다. 그런데? 그래서? 사회당이 그렇게 성장하고 이런저런 일을 한 3년 동안 노동자의 힘은 무얼 했나? 거기에 있는 동지들 각각이 현장에서 한 일 말고, 그렇게 모여 노동자의 힘으로서 무얼 했냐는 말이다. 사회당 당원들이 노동자의 힘 회원들보다 우수한 사람들이라고는 우리도 생각 안 한다. 그러나 사회당이 노동자의 힘보다 능률적인 조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반합법 정치단체는 합법정당에 비하여 극도로 비능률적인 조직노선이다.

노동자의 힘이 전국노련에 비하여 노동자운동의 장악력에서도 별로 개선되지 못한 것은 진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 안의 노동자운동가들이 그렇게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학출 노동자운동가들이 또는 그들의 공개조직이 공장 밖에서 공장 안의 현장조직을 벨트로 조합운동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노선은, 스스로의 세력을 구성하지 않음으로써 중앙권력을 유지하는 노선보다도 노동자운동 장악력이 열등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현장파임을 자각했던 활동가가 중앙파임을 자각했던 활동가에 비하여 훨씬 많았고 훨씬 헌신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파는 언제나 대()국민파 전선에서 중앙파의 하위 파트너에 머물러 있었던 것에 노동자의 힘의 조직노선상의 문제는 없었을까?

총괄적으로 볼 때,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은 통일좌파를 향한 염원이 담고 있는 조직노선으로서의 결론, 통일좌파의 전략조직을 대신하겠다는, 터무니없이 오만한 노선이다. 하나가 아니라 세 개가 모인다고 해도 질의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거니와 양의 문제도 전략조직과는 거리가 멀다.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은 또한, 합법정당과 노동자대중운동으로 원활하게 구별 정립하면 좋을 사람들을 심지어 학생운동과 이론운동을 향해야 할 사람들까지 미분화 상태의 무거운 불활성 조직에 묶어 두는, 즉 매우 비능률적인 노선이다. 대중은 노동자로서 학생으로서 여성으로서 유권자로서 존재한다. 노동자운동과 학생운동과 여성운동과 합법정당운동에는 고유의 대중이 있다. 그런데, 반합법 정치단체의 대중이 어디에 무엇으로 있는가?

좌파가 금과옥조로 받드는 노동자계급의 계급 정치는 선진노동자들과 학출 노동자운동가들이 그것을 표방하는 정치단체로 모여 있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여 있을 뿐 그것으로서는 활동할 수 없다면, 계급 정치도 실종된다. 노동자계급의 계급 정치는 사회주의 합법정당을 통하여 제도권 정치투쟁의 영역에서, 또 노동자대중운동이 숨쉬는 노동 현장의 투쟁으로, 또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전략조직, ‘통일좌파회의같은 것의 지휘에 의하여, 구현된다.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은 이미 실패가 증명되었다.

 

 

2.3. 통일좌파 노동자운동

 

이 부분에 대한 서술에서는 다른 운동 영역에 대한 서술과 달리 분명한 주체, 대상의 명칭을 적시하지 않겠다. 이 점 널리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노동자운동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감을 가지고 있는 동지라면 누구나, 아무리 노골적으로 서술한 이와 같은 글에서라도 여기서는 이렇게 가려야 한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전혀 감이 없는 동지들을 위하여 주체, 대상의 정치적 스펙트럼의 범위는 이 글 <1.1. 1997년의 좌파 분열>에서 거론한 세 갈래 좌파의 영역에 다 걸치며, 어느 정도 중간(‘중앙이 아닌)에까지 걸친다는 점만 말해 둔다.

200242. 민주노총은 완전히 쓰러졌다. 그러나, 쓰러진 것은 민주노총만이 아니다. 그 때, 현장파, 혹은 좌파도 쓰러졌다. 왜냐고? 민주노총 권력을 쥐었던 것은 국민파고 중앙파인데 그 때 왜 현장파가 쓰러졌냐고? 어떤 좌파가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들은 아마 그 때 중앙파 물러나라고 주장하며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도전하자고 토론했을 것이다. 42일 직후가 좌파의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만약 그래서 덜컥 중앙파가 물러났다 하자. 그렇다면 현장파는 민주노총이나 금속연맹을 운영할 능력이 있나? 천만의 말씀이다. 주요 대공장의 조합 집행부에 현장파가 많으면 그게 그렇게 저절로 되나? 그 현장들이 완전히 무너져 있는데도? 민주노총의 다수파로서 확고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끊임없이 민주노총을 우경화하려 한 국민파보다, 선진노동자들의 굴복과 타락의 후과를 끌어 안으며 끊임없이 중앙권력을 향해 힘을 모아 온 중앙파보다, 42일의 사태로 현장파가 훨씬 큰 타격을 받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한 때는 어느 정도의 긍정성을 인정받아 붙여졌던 이름 현장파이다. 그러나 현장들이 이미 참혹하게 무너져 있었다. 구조조정의 태풍이 처참하게 할퀴고 지나간 대공장에는 언제 잘릴지 모르니 회사 잘 나갈 때 벌어 두자는 노동자들의 개별적 생존권 투쟁이 처절하게 진행 중이다. 모든 잔업과 철야에 나서고 1년 중 363일을 일하다 과로사하는 무절제한 정열로 4~5,000만 원의 연봉을 수령하는 살벌한 생존권 투쟁 말이다. 노동자는 단결하여 하나일 때 위대한 것이지, 그렇게 원자화되어 개별적으로 자기 생존에 몰두할 때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간신히 전열을 정비하여 총파업 대오를 편성했는데, 42일의 비극이 있었다. 민주노총에 대하여 대중이 절망(!)했다. 그것은 민주노총의 권력을 쥐고 있는 어떤 파에 대한 불만에 그칠 수가 없는, 전혀 다른 수준의 것이다. 그것은 민주노총이라는 질서 자체에 대한 절망이다. 결국 그것은 민주노총의 근원이었던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절망이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조운동의 총결로서 조직된 것이었다. 그 민주노조운동에 대하여 대중이 절망했다. 민주노조운동이라는 근본적 수준에 대하여 대중이 절망한다면, 투쟁하는 계급대중이 있어야만 자기로서 존재할 수 있는 좌파는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싸우는 계급대중이 없다면 좌파도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국민파가 또 중앙파가 왜 그렇게 탁월한 정치노선이며 조직노선인지를 알 수 있다.

주요 대공장에 일정한 기반을 갖고 있으면서도, 비정규직 투쟁에 특별한 책임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총연맹과 각급 연맹에서 허구한 날 총파업을 주장하고 영원한 불평불만자로서만 기능하거나, 분열된 상태로 때마다 개별적으로 중앙파에 포섭됨으로써 중앙파가 국민파를 견제하기 위하여 필요할 때만 이용하려 덤비는, 구차한 신세를 청산하자. 이제 현장파 그만 하자. ‘중앙에 대하여 현장이라는 하위 파트너로서의 이름을 벗어 던지자. 우리, 좌파가 되자. 노동자운동의 통일좌파가 편성된다면 그것은 실제로 총파업의 주력 부대를 책임지는 힘이 될 수 있다.

여기서 한번 더 저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을 경계한다. 우리는 ‘1영역 1조직노선이 가장 정확하게 이해되어야 할 영역이 바로 노동자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이 합법정당의 통일좌파 형성을 방해하는 것도 어느 정도 문제지만,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드러나므로오히려 좀 쉬운 문제이다. 더욱 중요하고 골치 아픈 문제는 그것이 2002년 한국에서 노동자운동이라는 하나의 영역에 하나의 통일좌파 조직이 형성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일부 좌파 단체를 흡수 통합하여 노동자의 힘을 확대 재편하고 거기에 노동위원회를 두면 노동자운동의 통일좌파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노동자의 힘이 원래 그런 취지로 제출된 조직노선이었다. 그렇게 3년을 실험해서 안 된 것을 똑같은 주체가 똑같은 노선을 통하여 실현할 수 있다고 누가 믿을 수 있는가? 노동자의 힘보다 힘이 모자라는 좌파 노동자운동 단체들의 상황도 크게 다를 수 없다.

 

주체는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현장파는 각각 해체되어야 한다. 한동안 마치 민주노조의 기관차처럼 인식되어 왔던 현장조직 자체가 이미 자본의 노무관리에 확실하게 포섭된 민주노조(?)의 한계에 철저하게 갇힌 채로 노조집행부 쟁탈 선본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사업장 밖에 존재하면서 해당 현장조직의 배후로서 그것을 자기 재산이라고 인식하던 학출 활동가들과, 어쩔 수 없이 현장의 사령관일 수밖에 없는 최() 선진 노동자들의 지위는 90년대를 거치면서 역전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낡은 운동 관계가 새로운 운동력의 형성을 가로 막고 있다. 각각의 학출 대오의 인연에 따라 나뉘어 있는 범 현장파를 각각의 수준에서 해체해야 한다. 현장의 사령관들이 직접 만나야 한다. 그렇게 현장의 좌파 노동자들끼리 직접 모이고, 또 그렇게 전체 좌파의 노동자운동 통일전선이 구축되어야 한다. 특별한 소명의식으로 장기간 활동한 안목과 노하우를 가진 학출 활동가들은 그 대오를 지지, 엄호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옳다.

이미 상황은 낙관적이다. 저 끔찍했던 42일을 경험한 좌파는 민주노총과 각급 연맹에서 철수했거나 태업하고 있다. 이번 민주노총 부위원장 선거에서도 저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을 제외한 전체 좌파가 그 선거에 대하여 대화도 주고받지 않을 정도로 사실상 선거에 불참하고 있다. 좌파가 움직일 수 있는 전체 노동자 대오의 제2노총 철수가 임박한 듯한 형국이라고 농을 해도 될 정도의 분위기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좌파 노동자운동가들은 이면에서 일제히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모두 조직적 과제이다. 그것이 비록 아직은 산업별로 지역별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으며, 또 일부 핵심들에게 국한되어 있지만, 그 논의는 결국 여러 산업 부문을 포괄하여 전국적으로 통합되고 대중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사실 이 움직임이야말로 통일좌파를 향하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발걸음이다.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2002년의 이 기운이 희망적인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이다.

우선, 활동가들이 흔히 쓰는 속된 말로 논의에 임하는 활동가들이 자기 재산 지키기에 연연하는 태도가 거의 없다는 점을 평가해야 하겠다. 실로 예전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마다 노동자운동에 투신한 지 수 년, 십수 년을 헤아리는 베테랑들이 그 세월의 자기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관계들에 대하여 자기 것이라는 오래된 무의식들을 포기할 태세이다. “자기를 버리고, 전투적 노동자운동을 통일하여 하나의 사회주의 노동자운동 대오를 편성하자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다음으로, 한국의 전투적 노동자운동에서 전통적으로 중심이었던 부분에서부터 변방이었다가 최근에 중요성이 급격히 부각된 부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한 층위에서 토론이 전개되고 조직화 작업이 전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직형식적 통일 대오의 편성은 이미 합의된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그 따위는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논의의 수준은 진지하고 심층적이다. 현장을 추스르는 데에서부터 사회적 합의를 강제하는 묘책에 이르기까지, 조합과 현장조직에서 합법정당, 전략조직에 이르기까지 그 논의가 제한 없이 펼쳐지고 있으면서도 중심에 대한 집중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흔쾌한 자세, 광범위한 참여, 펼쳐져 있는 논의 구조가 뭐가 잘 되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어떻게 해도 아무리 해도 기존의 방법으로는 안 된다는 점에 대하여 모두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반성이다. 진짜 뼈가 깎이고 살이 저며지는 느낌 속에서 이러한 반성의 전반적 기운이 저절로 합의된 것과 다름없다.

비정규직과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지금도 굴욕스런 저임금과 고통스런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공장의 조합원들은 개별적 생존권 투쟁에 몰두하고 있다. 대의원, 소위원들의 조직 사업이라는 것은 조합원들의 일탈적 요구에 대한 민원 챙기기 수준이다. 그러는 동안 자본은 작은 권력과 돈 맛을 알게 된 상층 간부들을 각종의 희한한 수단으로 얽어매 놓고 있다. 속칭 쥐약이 현장의 곳곳에 살포되어 있다. 모두 상식으로 아는 것처럼 임금인상 투쟁 아무리 해 봐야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고취할 수 없다. 또한 총자본이 일체가 되어 개별 공장들을 하나씩 박살내는 구조조정 정리해고에, 기업별로 고립된 노동자들의 저지 투쟁은 승리할 수 없다.

그러한 심층적반성의 결론은 결국,

 

현장의 주체 재형성이다.

 

노동자들은 처음부터 변혁적 계급의식으로 재조직되어야 한다. 예컨대 임단투라면 내 공장의 임금을 올리라는 저열한 요구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노동력재생산비용을 낮추라는 계급적 요구를 가지고 단결하여 싸울 수 있는 현장 주체로서 재조직되어야 한다. 반드시 과격하고 전투적인 인상을 풍기는 투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투쟁 대오에 동참한 사람들 하나하나가 전체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서 자기 투쟁의 요구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개별 사업장, 개별 산업 부문의 요구가 다시 전체 노동자계급의 요구로 되는, 그런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재형성되는 현장 주체의 이념은 결국 이것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하나다.

 

동지들! 힘을 내자. 우리도 천만 노동자계급에게 떳떳한 통일좌파가 되자.

 

 

2.4. 통일좌파 학생운동

 

학생운동의 전학협(전국학생회협의회), 연대회의(전국학생연대회의), 전학대협(전국학생대표자협의회), 행동연대(학생행동연대) 등 모든 그룹을 해산하고 하나의 조직으로 만들자. 뜻 맞지 않는 민주노동당 안에서 불편해 하는 다함께까지 포함하여 모든 좌파를 하나로 만들자.

90년대 초반에 좌파 학생운동을 전대협에서 분리시키자는 주장은 일부의 호응에 그쳐 전국학생연대(학생연대)라는 또 하나의 학생 그룹이 탄생하는 데에 머물렀다. 그리하여 학생연대-전학협과 대장정(대장정 학생연합)-연대회의 등은 좌파 학생운동의 패권을 놓고 경합해 왔다. 그러나, 자기들끼리는 그렇게 심각하게 치고받는 학생운동이지만, 그 학생운동이야말로 자기 영역의 한계를 넘어 전체 운동의 운명을 염려하는 성숙한 사고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사실 솔직히 말하여 이 점에서 좌파 학생운동은 그들이 하늘처럼 받드는 좌파 노동자운동보다 열 배는 낫다. 이미 한총련과의 분리는 각각의 좌파 학생 그룹 수준에서 실현되어 있으므로 조건은 10년 전과 다르다. 사회운동에서도 좌파가 분리되어 있으므로 학생운동에서의 좌파 분열 상태가 특별한 이슈로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좌파 학생운동의 분열 상태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것은 다른 영역처럼 분열이 자체로서 대중 활동에 결정적인 장애 요소라는 문제만 품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영역과 구별되는 학생운동의 특별한 이유가 또 있다. 학생운동의 분열 상태가 사회운동의 분열 구조를 계속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우리 솔직하게 말하자. 학생연대와 대장정으로 나뉘어 싸우던 감정의 앙금이 사회당과 사회진보연대의 실무자들 사이를 여전히 서먹서먹하게 유지시키는 첫 번째 이유 아닌가? 또 그렇게 선배들이 나뉘어 있으니, 후배들은 여전히 전학협과 연대회의로 나뉘어 있는 것 아닌가? 이제, 제발 그만! 하자.

동지들! 힘을 내자. 다 훌훌 털고 우리도 백만 학생대중에게 떳떳한 통일좌파가 되자.

 

 

2.5. 통일좌파 합법정당

 

대선 국면을 맞이하여 노동자의 힘 내 일부 동지들은 무소속 좌파 후보 노선을 제기하기도 한다. 설마 합법정당인 사회당이 그것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일부러 사회당이 못 받을 안을 내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거의 불발탄이 될 모양이지만, 저 범추(2002년 대선승리와 범진보진영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범국민추진기구)도 범추의 대선 후보를 진보정당 후보로 출마시키자고 합의했었다. 전국연합도 민주노총도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도 한총련도 아는 것을 왜 정치조직인 노동자의 힘에 속한 동지가 모르는지 딱하다. 비제도적 투쟁정당노선에 서 있는 동지가 말이다.

어쨌든 현재의 사회당이 독자적으로 내세우는 대선 후보를 무조건 지지할 수 없다는 정치 현실이 문제라면, 에둘러 표현할 필요는 없다. 모든 좌파가 흔쾌히 지지할 수 있는 대선 후보를 만들어 내자.

물론, 첫 번째 원칙은 투쟁 속에서 치러지는 대선, 대선을 통한 좌파 대단결의 대중 투쟁이다. 이 원칙에 반대할 좌파는 없으므로 이것은 논란거리가 못된다.

문제는 합법정당이라는 형식과 사회당이라는 현존재에 대한 감성이다. 한국의 좌파에게는 일부, 합법정당이 선거에 부합하는 조직형식이라는 상식조차 부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기의 현존재가 합법정당이 아니라고 해서, 현재의 사회당 주류를 안 좋아 한다고 해서, 상식적으로 인정되어야 할 당위조차 부정한다는 것은 비겁하다. 왜 선학(先學)과학의 입구에서 필요한 것은 용기라고 했겠는가?

모든 좌파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사회당이 문제라는 것 아닌가? 그것이 핵심 아닌가? 그렇다면, 모든 좌파를 포괄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합법정당을 만들자.

그것을 위해서라면, 사회당은 무엇이든지 양보하겠다. 아니, 사회당 자체를 통째로 좌파의 공기(公器)로 내놓겠다. 다만, 사회당이 사회당인 이유, 그것이 부정되는 것만은 안 된다. 좌파의 합법정당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는 92년부터 노력해 왔다. 이 미숙한 사회주의 합법정당도 우리가 10년 세월, 한 발짝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피땀을 흘려 이룩한 것이다.

 

무소속 대선 후보는 안 된다.

 

노동자운동이나 학생운동과는 달리, 합법정당운동 영역에서는 다른 합법정당을 편성하고 있는 좌파 대오가 없다. 이러한 조건은 통일좌파가 이루어진다면 자동적으로 현재의 사회당이 그대로 통일좌파의 합법정당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형식 논리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각자가 사회당의 주인이듯이 아직 사회당의 바깥에 있는 좌파 동지들도 사회당의 주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당은 아직도 미()사회당이다. 825일로 예정되었던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를 무려 두 달씩 늦춘 이유도 통일좌파에 대한 염원 때문이다.

다른 좌파의 지도적 동지들이 사회당과 어떻게 잘 해보고자 해도 자기 조직대중 일반의 사회당 비토(veto) 정서 때문에 행보가 쉽지 않은 것과 똑같은 상황이 사회당 안에도 있다. 사회당 안에 이미, “다른 좌파에게 기대할 것이 적으니 사회당이 독자적으로 대선을 돌파하겠다는 결의를 조기에 밝히자는 주장이 있었다. 그 주장의 요체는 대선을 대선답게 충분히 준비하여 치르자는 것이었다. 8월로 예정했던 전당대회를 10월로 연기한 것은 그런 주장을 하는 동지들도 통일좌파를 원하는 마음에서 똑같고 또 현재의 당 지도부가 통일좌파를 추진하는 것에 대하여 믿고 기다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원래 8월 전당대회를 준비하기 위하여 모였다가 그것을 연기한 7월의 중앙위원회였다.

결국 사회당의 대표, 대선 후보 선출 전당대회는 20021020()에 열린다. 전당대회는 아주 많은 준비가 필요한 행사이다. 그만한 행사를 위한 장소 섭외부터가 만만치 않다. 사회당은 915일 중앙위원회에서 그 전당대회의 골격을 정한다. 말하자면, 사회당이 이번 대선을 다른 좌파와 함께 할 것인가, 즉 그것을 통하여 통일좌파 합법정당이 탄생할 것인가, 또는 사회당 혼자 이번 대선을 치를 것인가, 그 결과 이 지루한 좌파 분열 상태가 더 연장될 것인가가 915일에 정해진다.

사회당이 1020일 전당대회를 통합 좌파정당의 창당대회로 정할지, 지금까지의 사회당 대오로 대선을 돌파하는 결의대회로 정할지는 다른 좌파 동지들의 태도에 달려 있다. 후자가 된다면 현재의 당헌상 사회당은 그 중앙위원회에서 즉각 당내 대선후보 등록을 공고하고 한 달 여의 대선후보 선출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좌파 동지들! 915일 전에 무언가 보여 달라. 915일 전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면, 우리도 할 수 없다. 현 사회당의 대표권한대행 체제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아직도 모르는 좌파는 없을 것이다.

노동자의 힘 동지들!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을 포기하라. 좌파의 리딩 그룹답게 통일좌파 합법정당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해 달라. 이번 8월의 수련회에 참가한 모든 좌파 동지들! 반합법 정치단체 중심 노선과 절연하라. 동지들의 전반적 대오는 좌파 노동자 통일전선을 향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동지들 중에도 통일좌파 합법정당이 만들어지면 거기서 일해야 할 동지들이 있다.

경향 각지의 좌파 동지들! 통합 좌파정당을 이번 대선 국면에서 만들자.

 

사회당도 그 중 하나가 되겠다.

 

민주노동당 내 인천 좌파 동지들과 평등연대 등 민주노동당에 있는 좌파 동지들에게 말한다. 동지들, 좌파답게 자기 인식에 충실하자. 민주노동당을 개혁할 수 있다는, 안 되는 희망은, 이제 버리자. 동지들! 결단하라.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라. 지금이 때이다. 언제까지나 황당무계한 일들 속에서 울분을 삭이며 남의 집에서 곁방살이 할 것인가? 거기가 왜 남의 집인지 동지들이 잘 알지 않는가? 그것을 우리가 설명해야만 아는가? 통합 좌파정당이 동지들의 집이다. 자기 식구가 사는 곳이 자기 집 아닌가?

노동자대중이 거기 있다고? 민주노총이 그 당을 지지한다고? 우리, 그런 정치 현실 자체를 바꾸자. 좌파가 완벽하게 구별 독립한 통합 좌파정당을 구성하고 좌파 노동자 통일전선을 구축하자. 그 힘으로,

 

2003년에 민주노총을 재편하고,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라는 정치 방침 자체를 바꾸자.

 

좌파여, 희망을 갖자. 이 정도로 희망적인 상황에서도 결단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언제 좌파가 지긋지긋한 주변, 비주류의 신세를 청산하고, 운동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

이 제안에 관심이 있는 동지라면 궁금해 할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사회당의 기득권 포기 의사를 요약하여 밝히며 글을 맺겠다.

 

좌파의 대선 투쟁도 통합 좌파정당에서 논의하자. 후보도 거기서 선출하자.

 

동지들! 힘을 내자. 우리도 민중에게 떳떳한 통일좌파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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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3 17:53 2019/10/13 17:53

지나간다단절, 그리고 새로운 출발

'사회당'인가?

단절, 그리고 새로운 출발

 

신석준 당 기관지 위원장

 

 

나는 우리당의 명칭으로 사회당을 주장해왔다. 나는 그 동안 당내의 토론과정에서 이 명칭과 관련하여 잘못된 우려뿐만 아니라 기대도 제기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려이든 기대이든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겠기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사회당. 사람들이 이 명칭을 듣는다면 이 정당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조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회당이라는 이 명칭은 사회주의라는 말처럼 낡은 것이다. 그것은 낡은 전통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들에게 먼저 설명해야 할 점은, 우리 당이 이 낡은 전통들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10/13 17:46 2019/10/13 17:46

지나간다사회당 비판 - 최성원

- 사회당 비판

대표집필자 최성원 2002 8

 

서론

 

≪청년진보당은 2001년 사회당으로 당명을 개정하면서 ≪반조선로동당≫의 기치를 내걸었다. 그것은 ≪반자본주의≫와 함께 사회당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두 가지 선언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6.25 전쟁 이후 조선반도의 식민지에서 최초로 사회주의라는 간판을 내걸고 좌파정당을 결성하였던 사회당 지도부의 ≪엄숙한≫ 선언이다. 과장된 언사를 즐겨 쓰는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사회당은 ≪다른 정치세력과 사상적으로 확연히 구별되는 ≪사회주의≫를 묵직하게 내걸었≫으며, ≪한국 어느 정치세력도 내걸기 꺼려하는 것을 과감하게 선택함으로써 한국사회 전체에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식민지의 좌파정당이 내놓은 ≪반조선로동당, 반자본주의 선언≫(?!).

망론인지 헛소리인지 얼핏 봐서는 잘 분간할 수 없는 괴상한 선언이 나온 뒤로 그 동안 운동진영 일각에서는 그 선언과 관련하여 약간의 찬반토론이 있었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필자는 그 선언을 내놓은 사회당 지도부의 사상관점을 분석하면서 깊이 있는 반론을 제시한 글을 아직 보지 못했다. 왜 그러할까? 필자는 본격적인 반론이 나오지 않은 이유를 대략 세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 사회당 지도부의 그 선언을 논박할 가치조차 없는 궤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민족민주운동진영의 거의 모든 활동가들은 그 선언을 무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사회당 지도부가 ≪반조선로동당 선언≫을 내놓음으로써 친조선로동당이냐 반조선로동당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함정을 파놓았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가 ≪반조선로동당 선언≫에 대해 논박하면, 그 논박은 조선로동당을 옹호·찬동하는 변론이 될 것이다. 부정에 대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논리구도가 불가피하게 성립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당 지도부가 파놓은 교묘한 논리적 함정이다. 운동진영의 많은 활동가들은 그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자본주의를 반대한다는 사회주의적 정치구호를 내걸은 사회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은 역시 사회주의자의 시각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자본주의 선언≫에 관한 논쟁이 의미 있는 것으로 되려면 사회당 지도부가 진짜 사회주의자들인가 아니면 가짜 사회주의자들인가를 판별하는 논쟁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러한 본격논쟁은 사회주의자들의 논쟁이다. 그렇지만 파시스트 악법인 ≪국가보안법≫으로 인하여 사상문제가 극도로 억압당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사회주의자로서 공개적인 토론에 나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필자는 사회당 지도부의 ≪반조선로동당, 반자본주의 선언≫이 운동진영 전반에 혹시 사상적 해독을 끼치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수많은 동지들의 견해를 대변하는 심정으로 이 논문을 작성하였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사회당 지도부의 ≪반조선로동당, 반자본주의 선언≫을 논박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아직은 공개적으로는 토론하기 힘든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들≫까지도 전반적으로 다루려고 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라는 것은 사회당 지도부가 혐오·배격하는 김일성주의의 핵심내용들에 관련된 것이다. 그것은, 사회당 지도부의 표현을 빌리면, ≪조선로동당의 유일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조선로동당이라는 정치세력의 수미일관한 발전에 따라 수립된, 조선로동당 운동의 역사적 완결형태≫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문제다.

김일성주의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문제는 우리 민족민주운동진영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논문은 그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론이다.

 

1. ≪반자본주의 선언≫은 기회주의자들의 위장선언이다

 

사회주의 사상과 사회주의자들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는 파시스트적 억압체제 안에서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구호를 당의 기치로 내걸고 무대에 등장한 일군의 용맹스러운 사회주의자들이 있다. 당명도 거창한 사회당(Socialist Party)이다.

물론 그들의 말대로, ≪반자본주의≫라는 선언은 미 제국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반제선언이 아니다. 사회당 지도부의 ≪반자본주의 선언≫은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이지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는 아니다. 그 선언은,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와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보편적 반대≫를 집약한 선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사회당 지도부는 왜 미국 자본주의와 세계 자본주의를 반대한다고 말하면서도, 미 제국주의를 반대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미 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반대는 ≪민족해방이라는 2차 대전 이전의 틀≫로서, ≪반미지상주의자들≫이나 저지르는 시대착오적 오류이기 때문이다.

사회당 지도부의 견해에 의하면,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모순, 그리고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식민지 민중의 반제민족해방혁명은 50년 전의 케케묵은 담론이라는 것이다. 사회당 지도부는 제국주의 체제가 현실 속에서 존재하지 않고 오직 ≪반미지상주의자≫들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하자면, 제국주의 체제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식민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며, 따라서 반제민족해방혁명을 운운하는 세력들은 허구적 관념과의 투쟁에 몰입해 있는 시대착오적 집단이라는 비판논리가 성립된다.

사회당 지도부가 자본주의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같은 나라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를 비롯한 전 세계의 자본주의 체제를 모두 반대한다는 의미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는 수많은 나라의 자본주의 체제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므로, 수많은 나라의 자본주의 체제들 가운데 유독 미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를 반대한다고 꼭 집어서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미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특정한 반대는 ≪반미지상주의자≫들의 시대착오와 동일한 것으로 혼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분≫으로서의 미국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라 ≪전체≫로서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사회당 지도부의 ≪반자본주의 선언≫이 사회주의를 배신한 현대 수정주의자들이 자기들의 배신자적 정체를 은폐하기 위하여 내걸은 위장선언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그 근거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측면으로 분류하여 서술하려 한다.

 

1)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변별력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 체제라는 개념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독점자본이 국가기구를 장악하고 노동계급과 비프롤레타리아 대중을 착취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라는 의미이며, 그 체제가 일국의 범위를 초월하여 세계적 범위에서 노동계급과 민중을 착취하는 제국주의 체제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는, 일찍이 레닌이 ≪자본주의의 특수한 역사적 단계≫라고 표현했던 제국주의 체제다.

이른바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 안에서 독점자본은 국가기구를 장악하고 노동계급과 민중을 착취하고 있으며, 독점자본이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자본주의가 덜 발전된 나라(이른바 저개발국가)를 자기의 예속국 또는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예속국과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을 착취하고 있다.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이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독점자본과 식민지 예속자본으로부터 이중적으로 착취당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독점자본이 자기 나라의 노동계급과 민중을 착취하는 체제를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라고 부르며,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을 착취하는 그것의 외연을 제국주의 체제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현대 자본주의 체제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이며, 제국주의 체제다.

독점자본은 국가독점자본주의 국가의 노동계급과 민중을 착취하는 것보다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을 더 집중적으로, 더 악독하게 착취하고 있다.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에게서 착취한 막대한 이윤 가운데 일부를 국가독점자본주의 국가의 노동계급과 민중에게 나누어줌으로써 자국의 격화되는 계급적 모순을 일정하게 이완시키고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의 전반적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계급적 처지가 동일한 노동계급과 민중이라고 하지만, 국가독점자본주의 국가의 노동계급과 민중에게 가해지는 착취와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에게 가해지는 착취는 격차를 보이고 있다. 국가독점자본주의 국가의 노동계급과 민중은 이른바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으며 상대적 빈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반면,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은 식민지 예속자본의 착취가 가중된 이중적 착취를 당하면서 말 그대로 절대빈곤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가장 격렬하게 투쟁하고 있는 주체는 국가독점자본주의 국가의 노동계급과 민중이 아니라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이다. 그러므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혁명운동은 제국주의 체제를 타도하려는 식민지 노동계급과 민중이 참가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제국주의 세력과 식민지 노동계급 및 민중 사이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기본동력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일부 ≪좌파≫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제국주의 체제와 식민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려고 하는 협잡군의 횡설수설이다. 사회당 지도부가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라는 개념을 외면하고 세계 자본주의 체제라는 모호한 용어만을 선별적으로 사용하면서, 마치 제국주의 체제와 식민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주장한다든지, 또는 제국주의 체제와 식민지를 논하는 것을 ≪반미지상주의≫와 ≪민족절대주의≫로 몰아세우려는 작태는 그야말로 가소로운 짓이다.

어떤 사람들은 냉전 이후의 시기에 제국주의를 운운하는 것을 시대착오라고 주장하는 데 그것도 역시 무식한 소리다. 냉전이라는 것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세계 사회주의 진영과 미 제국주의 체제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던 세계 자본주의 진영 사이의 대결구도였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세계 사회주의 진영이 와해되면서 냉전구도가 해체되었으므로, 냉전 이후에도 제국주의를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가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계 사회주의 진영과 세계 자본주의 진영의 대결구도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국주의 세력과 식민지 노동계급 및 민중의 대결구도도 있었다. 제국주의 세력과 식민지 노동계급 및 민중의 대결구도는 냉전구도의 붕괴와는 상관없이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

냉전구도가 존재했던 지난날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투쟁은 세계 사회주의 진영과 식민지 노동계급 및 민중이 상호연대하는 형태로 전개되었지만, 오늘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투쟁은 전적으로 식민지 노동계급과 민중의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에 의하여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 제국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은 모든 형태의 반자본주의 투쟁에서 중심이 되었다.

 

2)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미국 자본주의 체제를 중심으로 재편된 체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독점자본과 그 국가권력들은 그 체제의 내부모순 때문에 자기들끼리 치열한 갈등과 분쟁을 거듭하였다.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는 세계를 마구 분할하여 각자 자기의 식민지, 반식민지를 설치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자기들끼리 충돌을 일삼았다. 그 시기에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수많은 식민지 쟁탈전쟁들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그러한 충돌의 폭력적 형태였다.

그런데 각축전을 벌이던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를 중심으로, 정점으로 재편되었다. 미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를 중심으로, 정점으로 재편된 새로운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현대 제국주의 체제라고 부른다. 양차 대전 기간에 미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가 팽창하게 되자, 미국의 독점자본과 국가권력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지휘·통제하는 압도적인 장악력을 획득하게 되었으며 현대 제국주의 체제의 괴수로 역사의 무대에 출몰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그 이후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변모하였다는 말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미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를 중심으로, 정점으로 재편되었다는 의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50년 이상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내부모순이 폭발하지 않고 봉합되면서 ≪상호협력관계≫를 표출하고 있는 원인은, 그 체제가 미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의 압도적인 장악력에 의하여 지휘·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미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의 장악력이 약화되면,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상호협력관계≫는 결렬되고 국가독점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치열한 갈등과 분쟁이 재발될 것이다. 이른바 미국, 일본, 유럽연합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로 구성되는 ≪삼극 체제≫, 또는 중국과 러시아의 시장지향적 사회주의 체제까지 포괄하는 ≪다극 체제≫로의 재편을 운운하는 따위의 정세인식은 그러한 예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일본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나 유럽연합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 자기들의 예속국 또는 식민지를 구축하고 있는 제국주의 체제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체제들은 미 제국주의 체제에 속해 있으면서 상대적 자율성밖에 지니지 못하는 하위체제에 지나지 않는다.

 

3)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을 착취하는 실체는 미 제국주의 체제다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가 세계적 범위에서 노동계급과 민중을 착취하는 실체라면, ≪한국≫의 노동계급과 민중을 착취하는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미 제국주의 체제다. 조선반도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은 세계적 범위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에 의해서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 제국주의 체제에 의해서 착취당하고 있다.

물론 일본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 유럽연합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도 조선반도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을 착취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착취는 미 제국주의 체제의 착취와 질을 달리한다. 단지 양적인 차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반도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에 대한 미 제국주의 체제의 착취는 정치와 군사, 사상과 문화를 비롯한 식민지 체제 전반에 대한 지배구조와 분리될 수 없으며 그 지배구조에 의해서 자행되고 확대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전면적인 착취다.

그러나 일본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 유럽연합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는 조선반도 식민지 체제의 전반에 대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사실이 식민지에서 미 제국주의 체제의 착취와 다른 나라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의 착취가 질을 달리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조선반도 식민지의 일부 ≪좌파≫는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이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에 집중하여야 한다고 설교하고 있다. 그들이 타도대상으로 설정한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미 제국주의 체제가 중심이 되어, 미 제국주의 체제에 의해서 형성된 착취체제가 아닌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은 미 제국주의 체제를 타파하기 위한 반제민족해방혁명의 다양한 대중운동방식들 가운데 하나이며, 5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반미자주화운동의 특정 계기에 강조되는 투쟁구호이다.

그런데도 ≪좌파≫들은 마치 미 제국주의 체제는 존재하지 않고 신자유주의 체제가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미 제국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반미자주화투쟁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이것은 미 제국주의 체제를 타파하는 반제민족해방혁명으로 진출하려는 조선반도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의 목적·의식적 지향에 혼란을 조성하는 것이다.

조선반도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이 미국을 반대하여 투쟁해야 하는 이유는,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주범이 미 제국주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당 지도부는 미 제국주의 체제를 타도하기 위한 반미자주화투쟁을 어처구니없게도 ≪반미지상주의≫, ≪민족절대주의≫라고 비난·모략하고 있다.

조선반도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은 미 제국주의 체제의 착취와 지배를 반대하는 반미자주화투쟁을 중심으로 하여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지, 오로지 반미자주화투쟁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사회당 지도부는 반미자주화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노동계급과 민중이 마치 반미자주화투쟁에만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그들이 떠들고 있는 이른바 ≪반미지상주의≫라는 궤변은 미국이라는 특정대상을 반대하는 증오심에 병적으로 사로잡힌 일종의 편집증 정신병리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미지상주의≫에 관한 사회당 지도부의 주장은 궤변이라고 하기 이전에 반미자주화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조선반도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에 대한 모독이다.

편집증 정신병리현상을 보이고 있는 중환자들은 반미자주화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노동계급과 민중이 아니라, ≪미국에 반대하는 것이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반미지상주의≫를 반대한다는 궤변을 토해내고 있는 사회당 지도부다.

위에서 이미 언급한대로, 조선반도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이 식민지의 자본으로부터 착취를 당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조선반도 식민지의 자본은 미 제국주의 체제에 구조적으로 예속되어 있는 예속자본이므로,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은 미 제국주의 체제와 식민지 예속자본으로부터 이중적으로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중시해야 할 것은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이 식민지 예속자본보다 미 제국주의 체제에 의하여 더 집중적으로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 제국주의 체제는 식민지 예속자본을 장악하고 있는 근원적인 체제이기 때문이다.

 

4) 식민지 노동계급과 민중의 반미구호에 내포된 두 가지 의미

조선반도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의 반미구호는 미국을 반대한다는 전투적 의미를 전달하는 투쟁구호다. 그런데 미국을 반대한다는 말은 너무 포괄적이다. 반미구호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나올 수 있다.

첫째는, ≪한국≫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미국이라는 외세를 반대한다는 견해다. 둘째는, 조선반도의 식민지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미 제국주의 체제를 반대한다는 견해다. 전자는 민족주의운동의 견해고, 후자는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견해다.

반미구호가 전달해주고 있는 포괄적인 의미만을 훑어보고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과 민족주의운동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민족주의자도 반미투쟁을 전개하며, 사회주의자도 반미투쟁을 전개한다.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반미투쟁과 민족주의운동의 반미투쟁은 유사한 외양으로 보이지만, 내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양자 사이에는 세계관의 차이, 노선과 전략의 차이, 전술과 투쟁방도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과 민족주의운동을 혼동하는 것은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에 대한 무지의 소치가 아니면,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민족주의운동이라고 규정해버리는 의도적인 왜곡선전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운동은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를 반대하고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반대하지만, 그것을 자기의 전략목표로 삼지는 않는다.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은 미 제국주의 체제를 타도하는 것을 전략목표로 삼고 있다.

조선반도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이 전개하고 있는 반미자주화투쟁은 민족주의운동의 일환이 아니라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중심내용이며,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타도하는 세계혁명의 일환이다. 물론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에는 민족주의세력의 진보적 구성부분도 참가하게 되지만, 그들이 그 혁명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영도권은 어디까지나 사회주의 세력에게 있다.

 

5) 인민민주주의혁명의 세계사적 보편성

조선반도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은 미 제국주의 체제를 타파하고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여야 할 역사적 임무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자의적 규정이 아니라 세계사적 보편성에 의하여 진행되는 사회·역사발전의 합법칙적 경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에 세계적인 범위에서 진행되었던 인민민주주의혁명은 세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인민민주주의혁명은 봉건체제를 타파하는 반봉건혁명이라는 점에서 부르조아혁명의 혁명대상과 동일한 혁명대상을 반대하여 투쟁한 혁명이었다. 유럽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 존재했던 식민지체제의 사회성격은 아직 자본주의가 발달되지 못하고 반봉건적 성격이 지배적인 식민지반봉건사회이었으므로, 그 지역의 인민민주주의혁명이 반봉건의 과업을 수행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따라서 그 시기의 인민민주주의혁명은 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었다.

봉건체제를 타파하는 혁명이라는 점에서 인민민주주의혁명과 부르조아혁명은 공통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인민민주주의혁명은 사회주의혁명을 지향하였다는 점에서 지난 시기의 부르조아혁명과는 다른 혁명발전경로를 밟아갔다. 식민지반봉건사회에서의 인민민주주의혁명은 자본주의 체제가 일정한 수준에서 성숙되었던 나라들에서 수행되었던 가장 발전된 단계로서의 부르조아혁명인 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과 동일한 역사적 지위를 지니는 것이었다.

둘째, 인민민주주의혁명은 자본주의가 발달된 나라에서 진행되었던 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과 달리 제국주의의 식민지체제를 타파하는 반제민족해방혁명과 결합되었다. 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은 반제민족해방혁명과 무관하게 진행되었지만, 반제민족해방혁명과 분리된 인민민주주의혁명은 진전될 수 없었다. 인민민주주의혁명은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으로 수행되었다.

나치 독일의 지배체제를 타파하여야 했던 유럽지역의 경우에는, 인민민주주의혁명이 반파시스트혁명과 결합되었다. 그러므로 유럽지역에서는 반파시스트 민주주의혁명이 수행되었고, 식민지체제에서는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 수행되었다.

셋째, 인민민주주의혁명, 즉 반파시스트 민주주의혁명이나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은 모두 노동계급의 전위당을 중심으로 구축된 통일전선의 기반 위에서 수행되었다. 지난 시기 서유럽 지역의 부르조아혁명의 진행과정에서도 부르조아계급을 중심으로 일종의 계급연합전선이 구축되었지만, 부르조아계급은 노동계급을 비롯한 근로대중 전체를 영도할 수 없었다. 부르조아계급은 부르조아혁명이 승리한 뒤에 노동계급을 배반하고 정권을 독점함으로써 근로인민 전체를 지배와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부르조아 계급독재를 실시하였다.

이에 반하여, 인민민주주의혁명은 노동계급이 영도한 민주주의혁명이었으며,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계급과 계층이 참가한 통일전선의 기반 위에서 수행된 전인민적 혁명이었다.

인민민주주의혁명이 승리한 나라들에서 노동계급의 전위당은 그 혁명에 참가한 모든 근로인민의 정치적 대표체인 민주정권을 세우고 그에 의거하여 사회주의 공화국이 아니라 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다. 당시 사회주의 공화국은 소련밖에 없었다.

인민공화국은 노동계급이 영도하는 노농동맹에 기초한 새로운 형의 민주주의 국가로서, 그 정권의 성격은 아직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사회주의 공화국이 사회주의 국가인데 비하여, 인민공화국은 인민민주주의 국가이다.

인민공화국은 사회주의적 경리, 소상품 경리, 자본주의적 경리가 병존하는 국가다. 이러한 상태를 사회계급적 측면에서 보자면, 민족자본가와 부농이 잔존한다는 의미고, 경제구조적 측면에서 보자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잔존한다는 의미다.

인민공화국의 민주정권에 의하여 불완전하게 실현되었던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는 노동계급의 전위당의 영도에 따라 발전되어 완전하게 되었다. 또한 인민공화국에 한때 잔존하였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는 노동계급의 전위당의 영도에 따라 개조되어 사회주의화의 과정을 밟아갔고, 종국적으로 사회계급으로서의 민족자본가와 부농은 완전히 해체되었다.

일부 무식한 ≪좌파≫들은 인민민주주의혁명이 1945년 해방 이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수행되었던 ≪특수한 혁명≫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인민민주주의혁명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를 포괄하는 전 세계적 범위에서 수행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 혁명은 세계사적 보편성을 가진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에 수행되었던 인민민주주의혁명은 반파시스트 민주주의혁명과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었다. 전자는 동독,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를 포괄하는 유럽의 동남부 지역에서 진행되었다. 예외적으로 서유럽의 아일랜드에서는 민족주의세력이 무장투쟁을 전개하면서 반제민족해방운동을 승리로 이끌어, 1949년에 승리하였으나 인민민주주의혁명은 차단되었다.

동독,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의 노동계급과 민중은 발달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반파시스트 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였으며,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는 자본주의가 발달되지 못한 낙후한 농업국에서 반파시스트 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였다. 유럽의 동남부지역의 반파시스트 민주주의혁명은 노동계급의 전위당, 또는 전위조직이 주도하였으므로 혁명이 승리한 뒤에 사회주의의 길로 발전될 수 있었다.

그러나 발달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반파시스트 민주주의혁명을 수행했던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에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에 의거하여 자본주의 체제를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는 데 결국 실패하였고, 전복된 반혁명세력이 제국주의자들과 공모·결탁하여 반사회주의 암해책동을 전개하였으며 나중에 가서는 폭동을 선동하였다.

서유럽 여러 나라들과 달리 자본주의 체제가 발달되지 못하고 봉건체제에 머물고 있었던 데다가 식민지, 반식민지로 전락해 있었던 조선, 중국, 몽골,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에서는 인민민주주의혁명이 반제반봉건의 과업과 결합되면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으로 수행되었다. 중남미의 낙후한 농업국이었던 쿠바에서는 사회주의 세력이 영도한 반파시스트 민주주의혁명이 승리하여 사회주의의 길로 나갔다.

노동계급의 전위당 또는 전위조직이 혁명무력을 동원하여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추진하였던 조선, 중국, 몽골, 베트남에서는 반제민족해방혁명이 승리한 뒤에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완수하였고 사회주의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지만, 나머지 다른 나라들에서는 노동계급의 전위당이 역량부족으로 인하여 반제민족해방혁명의 영도권을 장악하지 못했고 그 대신 우파 민족주의세력이 혁명을 주도하였기 때문에 반제민족해방혁명이 승리한 이후에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완수하기는커녕 인민민주주의혁명의 발전경로가 차단되었다.

인도는 영국의 제국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1950년에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었으나 반제민족해방운동을 주도한 민족주의세력이 압도적이었고, 파키스탄과의 분쟁에 휘말려 있었으므로 인민민주주의혁명은 불가능하였다. 라오스는 1953년에 반제민족해방혁명에서 승리하였고, 캄보디아는 1955년에 승리하였으나 우파 민족주의세력과의 장기적 내전과 미 제국주의 세력의 무력침공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라오스에서는 오랜 내전 끝에 1975년에 군주제가 폐지되었으나 인민민주주의혁명이 불철저하게 수행되었으며, 캄보디아에서는 오랜 내전 속에서도 군주제가 유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반제민족해방혁명이 승리한 뒤에 인민민주주의혁명의 발전경로가 차단되었던 대표적인 사례는 아마도 인도네시아의 혁명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공산당은 1920년에 창건되었고, 민족주의세력의 정치조직인 인도네시아민족당은 1927년에 창건되었다. 민족주의세력들 가운데서도 반제민족해방혁명에 적극적이었던 급진적 민족주의세력은 수카르노를 중심으로 단결하여 인도네시아의 반제민족해방혁명을 주도하였다. 1949년에 반제민족해방혁명이 승리하였으나 급진적 민족주의세력은 정권을 장악한 뒤에 급속히 반동화되어 1965년에 이르러서는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대학살을 자행하였다.

한편 미얀마에서는 급진적 민족주의자 아웅산이 영도하였던 민족해방전선이 반제민족해방혁명을 수행하였고 1948년에 승리하였으나, 인민민주주의혁명의 발전경로는 차단되었다.

그러한 사정은 아프리카와 중동에서도 대동소이하였다. 민족해방전선을 형성하고 무장투쟁을 전개하여 반제민족해방의 과업을 달성하였던 나라들은 수단(1956년), 가나(1957년), 기니(1958년), 말리(1960년), 알제리(1962년), 예맨(1967년), 기니 비싸우(1974년), 앙골라(1975년), 모잠비크(1975년) 이디오피아(1975년) 등이다.

다른 한편, 급진적 민족주의세력이 주도한 군부쿠데타에 의해서 군주제가 폐지되고 반제반봉건의 과업이 수행된 나라들은 이집트(1954년), 리비아(1969년), 소말리아(1969년) 등이다.

전민항쟁에 의하여 반제민족해방혁명이 승리한 나라는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1960년)와 중동의 이란(1979년)이다. 이 나라들에서 수행된 반제민족해방혁명은 노동계급의 전위당의 영도를 받지 못하고 급진적 민족주의세력에 의하여 주도되었기 때문에 인민민주주의혁명의 발전경로가 차단되었다. 예외적으로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인민민주주의혁명이 수행되었다.

21세기로 들어선 오늘에도 지구 위에는 미 제국주의 체제의 식민지로 전락해 있거나 그 체제에 예속되어 있는 예속국들이 수없이 많은데, 그러한 나라들에서는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위한 투쟁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필리핀, 볼리비아, 콜롬비아, 페루에서는 노동계급의 전위당 또는 전위조직이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무장투쟁을 지금 이 시각에도 전개하고 있다. 과테말라, 니카라과, 엘살바돌, 수리남에서도 한때 무장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나, 과테말라의 무장투쟁은 1970년대 이후 미 제국주의 세력과 반동정권의 집중적인 탄압에 의해서 좌절되었으며, 1979년에 니카라과의 전위당(FSLN)은 무장투쟁으로 정권장악에 성공하여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미 제국주의 세력의 암해책동 때문에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결국 1990년의 선거에서 반혁명세력에게 패하였다. 엘살바돌의 전위당(FMLN)은 1979년부터 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나 1992년에 반동정권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무장투쟁노선을 포기하였으며, 2000년에는 의회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하였다. 수리남에서는 1980년대 중반에 무장투쟁이 전개되었으나 얼마 가지 못하여 패하였다.

그레나다의 사회주의 세력은 1979년에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추진하였으나, 1983년에 이르러 국내 반혁명세력의 테러와 미 제국주의 세력의 무력침략에 의하여 좌절되었다. 칠레의 사회주의세력은 1970년에 선거를 통하여 집권한 뒤에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추진하였으나, 미 제국주의 세력의 암해책동과 반동군부세력의 반란에 의해서 1973년에 혁명이 좌절되었다.

그러면 우리 나라의 혁명은 어떠한가? 조선반도에서는 일제의 식민지 체제가 붕괴된 이후 인류역사상 가장 모범적으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 수행되었다. 그러나 미 제국주의 세력과 국내 반혁명세력의 악질적인 분할책동, 전쟁책동, 식민지화책동으로 인하여 조선반도의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은 북부지역에서만 승리하였고, 남부지역에서는 좌절되었다.

조선반도의 분단상태가 50년 이상 장기화되는 동안에 북부지역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완수하고 고도로 발달된 주체의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한 혁명기지로 되었던 반면에, 남부지역은 미제의 식민지적 지배와 착취에 의하여 봉건세력이 몰락하고 식민지 예속자본이 팽창(예속자본의 축적과 집중)하면서 식민지 반자본주의 사회로 그 사회성격이 전화되었다. 이것은 미 제국주의 세력이 식민지 체제 안에서 식민지 예속자본을 육성시킴으로써 자기들의 착취체제를 더욱 확장한 것이다. 낙후하고 빈약한 생산력을 가졌던 봉건체제를 발달된 생산력을 가진 자본주의 체제로 교체해야 미 제국주의 체제의 더 많은 착취가 가능하기 때문에 식민지 예속자본을 육성한 것이었다.

≪반(半)자본주의 사회≫라는 개념은 자본주의 체제가 상대적으로 덜 발달되었다는 양적 수준을 판별하는 의미가 아니라, 식민지 체제에서 미제의 요구와 이익에 따라 육성된 ≪한국≫의 자본이 미제에게 예속되어 막대한 이윤을 수탈 당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식민지 노동계급과 민중을 착취하는 기형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일부 무식한 논자들은 식민지 예속자본의 육성에 따른 기형적 자본주의 체제의 팽창을 탈식민지화 현상으로 오인하면서 ≪한국≫이 미 제국주의 체제에 대해서 이른바 ≪상대적 자율성≫을 획득하게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식민지적 기형성이라는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고 물리적 팽창이라는 현상만 들여다보고 착각하는 것이다. 조선반도의 식민지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팽창한다는 것은 기형화, 불구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형적 자본주의 체제의 팽창은 미 제국주의 체제에 의한 착취가 더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착취를 확대재생산하는 정치·군사적 지배도 또한 더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는 미제에 의하여 지배·착취당하고 있는 예속국들이 수없이 많은데, ≪한국≫은 그 수준을 넘어서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미제의 식민지로 존재하고 있다. 조선반도의 식민지가 처해 있는 운명은 미국의 ≪보호령≫이라는 간판 아래 완전한 식민지로 묶여있는 중남미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푸에토리코나 남미대륙의 프랑스령 기아나의 비극적 운명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러므로 ≪한국≫이라는 국가는 민족사의 국가적 정통성의 견지에서 볼 때도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현대 제국주의 체제를 인식하는 사회과학적 견지에서 볼 때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은 없다. 미제의 지배 아래 능욕 당하고 있는 식민지 영토, 그리고 미제의 착취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식민지 인민만이 존재할 뿐이다.

조선반도의 식민지에서 미 제국주의 체제의 식민지 예속자본 육성책동에 따라 1980년대 중반 이후 기형적 자본주의 체제가 급속히 팽창하게 되자, 조선반도의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은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이라는 전략개념으로 전화되었다. 반제민족해방혁명의 기본성격이 변화되지 않은 가운데, 식민지반봉건사회에서의 인민민주주의혁명은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에서의 인민민주주의혁명으로 전화된 것이다.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은 반제민족해방혁명과 인민민주주의혁명을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에서 수행하는 혁명이다. 민족해방혁명의 단계가 따로 있고 인민민주주의혁명의 단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조선반도에서 1950년대에 미제의 반혁명책동에 의하여 좌절되었던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은 그 미완의 과업을 2000년대로 넘겨줌으로써 지금 이 순간에도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은 진행되고 있다.

조선반도의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은 미제의 방대한 침략무력과 직접적으로, 첨예하게, 장기적으로 대치한 준전시상태에서, 그리고 하나의 영토가 미제에 의해서 분할·점령된 조건에서 수행되는, 인류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간고·복잡한 혁명이다.

그렇지만 조선반도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계급의 전위당인 조선로동당과 그 전위당의 영도를 받는 전국적 통일전선운동은 반제민족해방혁명과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연이어 완수하고 조선반도의 통일을 달성할 것이며, 주체혁명의 길로 전진할 것이다.

194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 약 30년 동안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은 전 세계적 범위에서 승리하였다. 그러나 김일성주의에 의하여 그 전략개념이 새롭게 정립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은 아직 어느 나라에서도 승리하지 못하고 현재진행형으로 추진되고 있다.

조선반도의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은 김일성주의로 무장한 세계 최강의 전위당인 조선로동당이 영도하고 있으므로, 조선반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세계사적 보편성이 구현되는 것은 역사적 필연이다. 조선반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이 승리하는 것은 그 혁명의 세계사적 보편성이 구현되는 세계혁명의 승리의 길을 결정적으로 열어놓는 것으로 된다. 조선반도의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은 인류의 자주화위업을 전진시키는 세계혁명의 거대한 축이다.

 

5)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라는 구호는 누가 들어야 하는가?

사회당 지도부가 반대한다고 말한 ≪미국 자본주의≫라는 개념은 미국이라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와 국가를 의미한다. 미국의 독점자본과 국가권력이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은 초보적 상식에 속한다. 미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에서 미국의 국가기구는 미국의 독점자본에 의하여 장악되어 있으며, 미국의 독점자본을 위하여 존재한다.

미국의 독점자본은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국가기구와 그 국가기구가 조직화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체제 전반을 장악·지배하고 부르조아 계급독재와 부르조아 민주주의를 실시하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위해서 미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독점자본은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독점자본주의 체제가 지배·착취하고 있는 대상은 미국의 노동계급이다. 다른 나라의 노동계급과 민중을 착취하는 것은 미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라 미 제국주의 체제라고 해야 한다. 실체는 동일하나, 그 실체에 대한 관계는 구분된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미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를 반대한다는 것은 미국의 노동계급이 들어야 할 구호가 되며, 그 체제에 반대하여 투쟁하고 있는 책임적 주체는 미국의 진보적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자들이 된다.

그러므로 조선반도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이 미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에 반대하여 투쟁하는 책임적 주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조선반도 식민지의 노동계급과 민중은 미 제국주의 체제를 반대하여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에 반대하여 투쟁하고 있는 미국의 노동계급과 민중을 지원하는 연대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사회당 지도부가 ≪미국 자본주의를 반대한다≫는 구호를 당적 구호로 내걸은 것은 오류다. 그 구호는 사회당의 국제연대사업부문에서 채택할 수 있는 구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6) 반혁명세력은 위장선언을 묵인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반대한다고 해서 모두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경험은 사회주의 배신자들이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것처럼 떠들면서도, 실제로는 사회주의를 반대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당 지도부는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자칭하고 있지만, 그들이 내걸은 반자본주의 선언은 사회주의적 선언이 아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회당의 ≪사회주의≫는 국가사회주의, 시장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의 그 어떤 것도 아니며 현실에 존재하는 노동자 민중 투쟁의 총체이자, 현실을 극복해나가는 운동 그 자체이다. 따라서 사회당의 사회주의는 국제적이고, 생태주의이며, 여성주의이기도 하다. 아울러 사회주의는 반독재 민주주의이고, 자치주의-참여민주주의이며, 인권과 기본권을 옹호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상이다.≫

위의 주장은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노동계급의 계급적 관점을 거세하고 ≪다양성≫과 ≪개방성≫의 미명 아래 잡다한 사상들을 끌어들임으로써 노동계급의 혁명사상을 인민대중의 도덕적 휴머니즘으로 대체하고,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의 본질을 왜곡하며, 그 계급투쟁의 사회주의적 지향을 모호하게 만들려는 술책이다.

사회당이 자본주의를 반대한다는 그럴듯한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회주의 혁명운동에서 이탈하여 있으며, 자본주의 체제를 ≪조금 더 건전하게≫ 강화하려는 사회개량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실천에서 입증된다. ≪진지한 좌파 정치세력≫으로 자처하는 사회당의 실천투쟁은 다음과 같이 잡다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이주노동자와의 적극적 연대투쟁, 북한산 관광도로 반대, 청계천 복원을 비롯한 여러 가지 환경캠페인, 호주제 철폐투쟁, 공교육 촉구운동, 박정희 기념관 건립 반대운동, 정치관계법 개정촉구운동, 만18세 이상 참정권 보장운동, 국가보안법 철폐운동,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운동, 장애인 이동권 쟁취운동, 장애인 노동권 보장운동 등등.≫

사회당 지도부가 아주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는 이른바 ≪사회개량운동의 다양성≫은 사회주의에서 이탈한 기회주의자들의 좌충우돌을 의미한다. 기회주의자들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계급투쟁의 필연성을 부정하고,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의 존재를 부정하면서도 ≪반자본주의≫라는 위장선언을 그럴듯하게 내건다.

세계혁명운동사에 출몰했던 기회주의자들의 뒤를 따라서 사회당 지도부가 내놓은 ≪반자본주의 선언≫은 기회주의자의 정체를 가리기 위한 위장선언이다. 위장선언은 언제나 직접적이 아니라 간접적이며, 명료하지 않고 모호하다. 위장선언은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고통을 가하고 있는 착취·억압의 실체에 대한 반대와 투쟁을 회피하면서 간접적이며, 모호한 언사로 자신의 정체를 교묘하게 위장한다.

사회당 지도부가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면서 ≪반자본주의 선언≫을 내놓았는데도, 반혁명세력들이 전혀 문제로 삼지 않고 있지 않는 이유가 여기서 노출된다. 사회당이 미 제국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반미자주화투쟁에 나서지 않는 한, 그들이 미국 자본주의를 반대한다고 떠들건 세계 자본주의를 반대한다고 떠들건, 반혁명세력들은 그들의 위장선언은 못 본체 묵인해도 되는 것이다.

 

2. ≪반조선로동당 선언≫은 독설과 궤변의 디마고지다

 

1) ≪수령절대체제≫에 대한 사회당 지도부의 사실인식

사회당 지도부는 당당하게 말한다. ≪반조선로동당 선언을 통하여 사회당이 표현하고자 한 것은, 사회당이 지향하는 사회가 지난 20세기의 ≪국가사회주의≫일 수 없다는 원론적인 수준이 아니다.≫

원론적 수준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그들은 ≪반조선로동당 선언의 내용은 두 가지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그 두 가지 내용을 그들의 표현대로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로, 민족민주운동진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수립되어 있는 ≪수령절대체제≫를 지향해서는 안 되며, 사회당은 그런 체제를 지향하는 운동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한국≫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고, ≪한국≫ 진보세력에 대하여 지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조선로동당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사회당 지도부가 조선로동당을 반대하는 첫 번째 이유는 위의 주장에 나타나있듯이 명백하다. 그들에 의하면, 조선로동당이 ≪수령-당-인민의 일체의 수령절대체제≫를 만들어냈고, 발전시켜왔으며 오늘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사회당 지도부가 사용하는 ≪수령절대체제≫라는 용어는 그들이 만들어낸 신조어인데, 그들은 그 신조어가 지시하고 있는 내용을 이렇게 정리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체제인 수령절대체제는 조선로동당의 유일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조선로동당이라는 정치세력의 수미일관한 발전에 따라 수립된, 조선로동당 운동의 역사적 완결형태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위의 인용구는 수령절대체제에 대한 사실인식으로서는 제법 정확하게 표현된 문장이다.

사회당 지도부는 수령, 당, 인민이 일체가 된 수령절대체제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라고 해야 한다. 조선로동당의 문헌을 자세히 살펴보면,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를 말할 때, 대중, 인민, 민중, 인민대중, 근로인민, 근로대중이라는 매우 유사한 용어들, 일상적으로 대충 혼용되고 있는 용어들 가운데 오직 대중이라는 용어만을 사용하고 있다. 다른 용어는 쓰지 않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사회당 지도부는 조선로동당의 핵심개념에 관련한 용어를 인용하면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핵심개념에 관련한 용어를 인용할 때, 정확하게 인용하여야 인식의 혼동을 막을 수 있다. 사회당 지도부가 수령절대체제의 핵심개념을 논하면서 이처럼 용어를 부정확하게 인용하고 있는 것은, 수령절대체제에 대한 그들의 사실인식이 그리 정확하지 못할 것임을 예고한다.

용어사용이 그리 정확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사회당 지도부는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에 대해서 수령절대체제라는 그들 나름대로의 신조어를 사용하여 사실인식에 접근하려고 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그들이 사실인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인식대상에 대한 가치판단까지 내리고 있다는 데서 생겨난다. 더 정확하게 지적하자면, 가치판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치판단이 사실인식을 완전히 압도한다.

 

2) ≪수령절대체제≫에 대한 사회당 지도부의 가치판단

사회당 지도부의 신조어인 수령절대체제는 어떠한 가치판단을 담고 있는 개념인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최악의 가치판단이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수령절대체제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최악의 사회정치체제라는 것이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그 체제는 ≪수령지배체제≫, ≪국가사회주의의 당 독재체제≫다.

수령절대체제가 수령지배체제, 국가사회주의의 당 독재체제라는 사회당 지도부의 주장은 과연 과학적인 사실인식에 기초한 가치판단일까? 필자의 답변은 부정적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들의 가치판단은 가치판단이 아니라, 악의에 가득 찬 독설이며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다.

필자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독설과 궤변을 논박하는 것 자체가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겠는지를 생각하였지만, 그들의 독설과 궤변을 접한 뒤에 심정적 불쾌감을 느끼고 있을 건전한 상식인들의 정신위생을 위하여 논박하기로 하였다.

일반적으로 독설과 궤변을 토하면서 열을 올리다보면 두뇌기능에 혼란이 발생하여 논리전개가 뒤엉키기 십상인데, 사회당 지도부의 행위도 예외는 아니다. 궤변가와 독설가들에 대한 ≪지나친 친절≫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필자는 논박을 시작하면서 그들의 궤변과 독설을 정리해주고 싶다. 필자가 보기에, 사회당 지도부의 ≪반조선로동당 선언≫이 담고 있는 궤변과 독설은 두 가지 내용으로 정리된다.

첫째, 수령절대체제에 대한 그들의 궤변과 독설은 그 체제는 수령지배체제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둘째, 조선로동당에 대한 그들의 궤변과 독설은 ≪국가사회주의 당 독재≫와 ≪조선로동당의 반민중적 지배≫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사회당 지도부는 위의 두 내용을 어떤 대목에서는 동일한 의미로 사용함으로써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보인다. 어쨌든 그것은 악의에 찬 독설,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에 지나지 않으므로 약간의 혼란스러움이 있다는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의 상투적인 수법이 그러하듯이, 사회당 지도부도 역시 인식대상에 대한 가치판단에서 동의어 반복이라는 수법으로 건전한 상식인의 정신위생을 오염시키려 한다.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처럼 사회당 지도부도, 수령절대체제가 어째서 최악의 정치체제인가 라는 근본물음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고, 그 체제가 지배체제, 독재체제이므로 최악의 정치체제라고 하는 단순·명쾌한 답변을 내놓는다.

수령절대체제가 최악의 정치체제라는 사회당 지도부의 ≪가치판단≫이 성립되려면, 그들은 자기들의 ≪가치판단≫을 논증해야 한다. 그러한 논증이 없이 수령절대체제는 지배체제, 독재체제이므로 무조건 최악의 정치체제라고 떠드는 것은 어떤 절대악을 관념 속에 상정하고 동의어를 주문처럼 반복하여 외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어떤 인식대상이 어째서 나쁜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논증하지 않으면서 그 인식대상은 나쁘니까 나쁘다라는 부정적 가치판단을 반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의어 반복의 순환논법은 논증을 배제한 궤변의 악순환이다.

사회당 지도부가 수령절대체제에 관하여 언급한 문건 그 어디에도 수령절대체제가 어째서 최악의 정치체제인가를 논증하는 내용은 없다. 수령절대체제를 최악의 정치체제라고 이미 전제해놓고 그 체제를 반대하는 독설과 궤변을 끝없이 토해내고 있을 뿐이다.

원래 독설과 궤변을 늘어놓는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은 사회주의가 어째서 악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논증하지 못 하면서, 사회주의를 악이라고 전제한 적개심을 앞세우고 나서 사회주의는 악이니까 악이다라는 식의 동의어 반복으로 대중심리를 선동한다. 자본가계급의 충실한 앞잡이인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이 선동하는 반공캠페인은 대충 그런 수준밖에 되지 못한다.

그런데 사회당 지도부의 독설과 궤변에서 드러난 수령절대체제에 대한 동의어 반복의 대중선동은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이 자행하는 반공캠페인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조선로동당의 수령절대체제는 악이다라는 사회당 지도부의 대중선동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이승복의 말을 조작했던 박정희 극우파시스트정권의 반공캠페인이 무엇이 다른가! 사회당 지도부는 이미 역사의 쓰레기통에 쳐 박혀 버린 파시스트의 오물인 반공캠페인을 다시 꺼내어 대중심리를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수령절대체제가 최악의 정치체제라는 주장은 가치판단은 고사하고 수령절대체제에 대한 사실인식마저도 파괴하는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의 광기 어린 독설과 궤변이다.

 

3)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는 노동계급의 세계관적 기초와 계급적 관점에서 인식해야 한다

모든 사실인식과 가치판단의 기초에는 철학적 세계관의 문제가 놓여있다. 객관세계에 대한 인식은 철학적 세계관에 기초하여 성립되고 진행된다. 인식은 헤아릴 수 없이 다종다양한 내용으로 성립되며, 무한히 많은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인식의 근원을 파헤쳐 들어가면 결국 철학적 세계관으로 귀착된다. 현상적으로 보면, 인식의 내용과 형식에는 이러저러한 변형태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근원은 단 하나, 곧 철학적 세계관밖에 없다.

모든 인식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철학적 세계관은 두 개의 상호대립적이며 모순적인 세계관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귀착된다. 즉 노동계급의 세계관이냐 아니면 자본가계급의 세계관이냐 하는 근원적 문제로 귀착되는 것이다.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은 그러한 세계관 인식의 계급적 근원을 모호하게 만들거나 은폐하기 위하여 농민, 소자산계급, 여성, 지식인, 청년 등 다양한 사회계급·계층의 ≪중립적 세계관≫, 또는 비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제3의 세계관≫ 따위를 떠들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계급이나 계층의 관점은 세계관적 근원이 될 수 없으며, 노동계급의 세계관 또는 자본가계급의 세계관 두 가지 중에 하나의 세계관에 속해 있는 것이다.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에 대한 사실인식과 가치판단도 이 점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에 대한 인식은 어떤 계급의 세계관적 기초에서 성립되는가? 두 말하면 잔소리가 되겠지만, 당연히 노동계급의 세계관적 기초다.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에 대한 인식이 자본가계급의 세계관적 기초에서 성립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신이상자일 것이다.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노동계급의 세계관적 기초에서 성립되어야 하며, 또한 노동계급의 계급적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만일 누군가가 자본가계급의 세계관적 기초 위에서, 그리고 자본가계급의 관점에서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에 대한 인식을 진행하는 경우, 그의 인식은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의 광기 어린 독설과 궤변으로 흐르지 않을 수 없다.

 

4) 노동계급의 철학적 세계관과 사회정치적 생명체

김일성주의에 의하면,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는 수령을 중심으로 당과 인민대중이 단결된 사회·정치체제를 의미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논제로 되는 것은 ≪단결되었다≫는 말의 의미다.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가 내포하고 있는 단결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집단적 단결이나 사회·정치적 조직화의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은 통일체를 구성하고 있는 3자가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세계관적 의미를 내포한다.

만일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결합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김일성주의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결합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라는 철학개념을 이해할 수 없으며, 따라서 김일성주의의 혁명적 수령관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김일성주의는 주체의 철학적 세계관, 주체의 사회역사관, 주체의 혁명관이라는 세 개의 거대한 사상적 관점을 사상, 이론, 방법의 전일적 체계로 쌓아올린 뒤에, 그 최고의 정점에 사회정치적 생명체라는 전적으로 새로운 철학개념을 정립하였다. 김일성주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라는 새로운 철학개념을 인류사상사에서 최초로 창시하고 완벽하게 해명한 철학적 세계관, 최고로 발전된 혁명이론, 영생불멸의 혁명방도를 자기의 전일적 체계 안에 포괄하게 되었다.

그러면 사회정치적 생명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사회정치적 생명체라는 개념을 이해할 때, 무엇보다 먼저 ≪생명≫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어떤 신비한 실체가 아니다. 생명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었던 근대 이전의 시기에는 생명을 신비한 힘으로 생각하는 신비주의적 오류를 극복하지 못했었다. 생명 신비주의가 생명을 신적 근원으로 생각하는 종교적 세계관의 부산물이었음은 물론이다.

생명 신비주의는 근대에 들어와서도 소멸하기는커녕 이른바 생명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존속하였다. 독일의 쉘링, 쇼펜하우어, 니체, 딜타이, 슈펭글러, 트뢸치, 덴마크의 키에르케골, 프랑스의 베르그송, 스페인의 오르테가 이 가쎄트 등이 퍼뜨렸던 생명철학의 전통은, 인류의 사상을 부르조아 관념론의 탁류로 오염시키려고 하였고, 특히 독일에서는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의 성립을 위하여 복무하였다.

생명에 대한 철학적인 견해는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처음으로 성립되었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견해에 의하면, ≪생명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의 지속적인 물질대사를 그 본질적 계기로 하는 단백질의 존재방식≫이다. 다시 말해서 생명은 유기체의 존재방식이라는 것이다.

물질세계는 무기물과 유기체로 구별된다. 무기물은 생명이 없는 물질이고, 유기체는 생명을 지니고 있는 물질이다. 유기체는 물질의 생물학적 운동형태의 조직방식으로서, 고도로 복잡하게 조직화된 단백질과 핵산, 즉 디옥시리보핵산(DNA)과 리보핵산(RNA)을 구성요소로 하는 생명체다. 생명체는 물질적 실체이지만, 생명 그 자체는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 생명체의 운동형태다. 생명체의 운동은 물질대사, 성장, 번식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생명을 통속적으로는 ≪생활력≫ 또는 ≪생명력≫이라고도 부른다.

유기체라는 물질이 존재하므로 생명이 발생한다. 무한하고 영원한 물질세계에 유기체가 출현하기 이전 장구한 기간 동안에는 오로지 무기물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45억-50억 년 전에 생겨난 태양계에 속해 있는 지구의 진화과정에서 유기체가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현대 생물학에서 과학적으로 해명되었다.

사회·정치적 생명이라는 개념은 유기체적 생명이라는 개념과의 대비 속에서 고찰된다. 사람은 유기체에 속하는 생명체지만, 다른 유기체와 질적으로 다른 매우 특수한 생명체다. 사람이라는 특수한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들과 달리 유기체적 생명과 더불어 사회·정치적 생명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사람에게만이 사회·정치적 생명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최고로 발전된 유기체가 되는 것이며, 다른 유기체들과 달리 물질세계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무한하고 영원한 물질세계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기물과 유기체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오직 사람만이 주체가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으며, 물질세계와 주체의 관계를 주체를 중심으로 하여 인식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서양의 언어체계에서는 주체라는 개념과 주관이라는 개념을 구분하지 못하고 subject라는 개념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주관이라는 개념은 인식능력의 담지자라는 의미이고, 주체라는 개념은 물질세계에 목적·의식적인 작용을 가하여 물질세계를 자기의 의사와 요구대로 개조·변혁하는 사회적 존재라는 뜻이다.

유기체적 생명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회·정치적 생명이라는 철학적 개념으로 사람의 본질과 사회적 관계의 본질을 해명하는 것은, 이른바 ≪사회유기체설≫과 같은 조야한 생물학주의의 파탄을 의미한다. 생물학주의는 자본가계급의 세계관을 전면적으로 반영하는 기계적 관념론의 한 유파이다. 생물학주의는 어리석게도 생물학적 개념들을 가지고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려 하면서, 사회구조와 인간유기체 구조를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고, 사회·역사가 생물학적 법칙에 의하여 변화·발전한다고 떠드는 궤변이다.

그런데도 사회·정치적 생명이라는 철학적 개념에 기초하여 성립된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에 관한 철학이론을 생물학주의의 ≪유기체설≫이라고 우겨대는 궤변가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수령을 근로인민대중의 최고 뇌수라고 표현한 비유를 두고, 마치 그 비유가 ≪유기체설≫의 논거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그들의 궤변은 유기체적 생명과 사회·정치적 생명에 대한 개념도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함이 빚어낸 우스꽝스러운 촌극이다.

인류가 발생하기 이전의 물질세계에는 주체가 없었다. 무기물과 유기체만이 있었다. 그런데 인류의 발생 이후에 비로소 물질세계는 주체에 의해서 변화·발전되는 질적으로 새로운 시대로 전진할 수 있었다. 이것이 김일성주의가 주체라는 철학개념으로 해명한 노동계급의 새로운 철학적 세계관의 진리다.

그렇다면 물질세계에서 주체는 무엇을 원인으로 하여 출현하였는가? 이것은 인류사상사 최고의 철학문제다. 이 철학문제는 김일성주의에 의해서 해명되었다. 다시 말해서, 의식성의 발생과 그에 의거한 자주성과 창조성의 발생에 관한 노동계급의 새로운 철학적 세계관에 의하여 인류사상사에서 최초로 완벽하게 해명되었던 것이다.

이 최고의 철학문제에 대한 김일성주의의 해명을 이해하려면, 먼저 의식과 의식성이라는 개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서양의 언어체계에 자주성이라는 개념에 해당하는 용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식성이라는 개념에 해당하는 용어도 없다. 그래서 서양의 언어체계에서는 의식성과 의식을 동일하게 consciousness라는 용어로 표기한다.

일찍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노동계급의 투쟁과 그 전위당의 영도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를 해명하면서 의식성(Bewusstheit)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적이 있다. 그 경우에 의식성은 자연발생성(spontaneity)라는 개념과 구별되는 개념이다. 노동계급의 투쟁이 자연발생성에 의하여 발전하는가 아니면 노동계급의 전위당의 지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의식성에 의하여 발전하는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이 문제는 노동계급의 투쟁이 자연발생성을 지니고 있지만 의식성으로 대체되어야 하며, 의식성은 노동계급의 전위당에 의하여 영도된다는 레닌의 이론에 의하여 해명되었다.

이처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의식성이라는 개념과 김일성주의의 의식성이라는 개념은 그것이 해명하고 있는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김일성주의에서 사용하는 의식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고, 의식이라는 개념만을 사용하였다. 그에 비하여 김일성주의에서는 두뇌기능으로서의 의식이라는 개념과 사람의 본질적 속성으로서의 의식이라는 개념을 구분하고, 후자를 의식성이라고 부른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에서 사람의 본질적 속성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의식성이라는 개념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그 철학이 사람의 본질적 속성에 대해서 해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논점이다. 이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의하면, 의식은 그 자체가 물질이 아니며, 레닌이 지적한대로, ≪인간의 뇌라고 하는 매우 복잡한 물질의 기능≫이다. 의식은 인간두뇌의 기능이라는 것, 이것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철학이 인류사상사에서 처음으로 해명한 진리다.

그런데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의식이 인간두뇌의 기능이라는 진리는 생물학의 진리이지 철학적 세계관의 진리가 아니다. 의식이 인간두뇌의 기능이라는 진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의식을 물질과 대립시켰던 관념론과 형이상학을 타파하는 투쟁을 전개하였던 특정한 시대에 한정되어 사상사적 의의를 지녔던 것이었다. 그러나 관념론과 형이상학이 타파되고 변증법적 유물론이 확립된 이후의 시대에 오면, 의식이 인간두뇌의 기능이라는 진리는 더 이상 철학적 의의를 지니지 못하게 되며 개별과학의 진리로 남게 된다.

여기서 제기되는 새로운 철학적 세계관의 문제는, 의식기능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여 생겨났는가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의식이라는 기능은 장구한 자연사적 진화과정을 원인으로 하여 생겨났다고 해명하였다. 의식은 진화의 산물이며, 고도로 발달된 물질인 인간두뇌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류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그러한 해명이 오류이었음을 논증한 것은 김일성주의였다. 김일성주의에 의하면, 의식기능을 수행하는 고도로 발달된 신체기관인 두뇌는 진화의 산물이지만, 의식기능은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의 두뇌라는 신체기관이 장구한 진화과정을 통하여 고도로 발달되지 못했다면 의식기능이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 명백하지만, 두뇌라는 신체기관을 원인으로 하여 의식기능이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의식기능은 두뇌라는 신체기관을 통하여 발생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의식기능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하였는가? 의식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의식성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하였다는 김일성주의의 명제에 의하여 인류역사상 최초로 해명되었다. 의식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의식기능이 두뇌라는 고도로 발달된 신체기관을 통하여 작용하는 것이다. 의식은 인간두뇌의 특성이 아니라 의식성의 산물이다.

의식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성된 것으로서, 사람의 본질적 속성이다. 의식성은 ≪사람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사회력사적 과정에 형성되고 발전되는 사회적 속성≫이다. 의식성은 자연적, 생물학적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 속성이다. 이 의식성을 기반으로 하여 자주성과 창조성이 형성되고 발전된다.

그러므로 의식성은 사회적 관계를 원인으로 하여 발생하며, 두뇌는 바로 그 의식성에 의하여 의식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가 없다면, 아무리 발달된 두뇌를 가지고 있더라도 의식은 발생하지 않는다. 의식기능은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다.

자연사적 진화과정 속에서 상대적으로 덜 발달된 두뇌를 가진 포유류 고등동물들과 고도로 발달된 두뇌를 가진 현존인류 사이의 차이는 두뇌의 구성요소와 결합구조가 어느 정도로 발달하였는가 하는 생리기능적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의식성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차이, 다시 말해서 사회적 관계로 존재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근본적인 차이다. 이것은 진화과정에서 생겨나는 양적인 차이가 아니라 자연과 사회·역사 사이를 갈라놓는 질적인 차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사람의 본질을 해명하는 데서 이러한 질적 차이를 간과하였다.

그렇게 되었던 까닭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자연, 사회·역사, 사유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운동법칙을 해명하였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자연의 운동과 사회·역사의 운동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질적인 차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그 양자를 동일한 운동법칙으로 인식하는 오류에 빠졌기 때문이다.

자연사적 과정은 합법칙적인 발전과정, 곧 진화과정이다. 자연은 객관적인 운동법칙에 의하여 변화·발전한다. 사회·역사적 과정도 역시 합법칙적인 발전과정이다. 그렇지만 사회·역사적 과정은 자연사적 과정이 아니라 주체의 목적·의식적 작용을 중심으로 하여 변화·발전한다. 물론 사회·역사에도 자연의 객관적인 운동법칙이 작용하고 있으나, 사회·역사적 운동은 어디까지나 주체의 목적·의식적 작용을 중심으로 하여 진행된다. 그리하여 김일성주의는 ≪사회·역사적 운동은 자연의 운동과 구별되는 자체의 고유한 합법칙성을 가진다≫는 명제를 성립하였던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사회·역사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을 알지 못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양자는 물질세계 일반의 보편적 법칙에 의하여 동일하게 해명된다. 레닌의 표현을 빌리면, ≪유물론 철학은 역사의 영역, 사회의 영역에까지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은 물질세계 일반에 관한 철학적 원리를 사회·역사의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질세계 일반의 철학적 원리를 사회·역사의 영역으로 확장해서는 사회·역사적 운동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해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물질세계 일반의 합법칙성이 사회·역사의 영역에서도 작용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사회·역사적 운동은 물질세계 일반의 합법칙성에 따라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목적·의식적 작용을 중심으로 하여 진행되기 때문이다. 만일 사회·역사적 운동법칙과 물질세계 일반의 운동법칙을 동일한 것으로 보게 되면, 자연사의 진화과정과 사회·역사의 발전과정이 동일하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이 사회·역사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을 알지 못하고 물질세계 일반의 운동법칙과 혼동하였던 오류는, 1961년부터 수년 동안 소련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자들 사이에서 진행되었던 철학논쟁에서 노정되었다. 이 철학논쟁은 자연사의 진화과정과 사회·역사의 발전과정의 관계를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 다시 말해서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결국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의 관계에 대한 그들의 해명시도는 과학적 세계관과 과학적 이데올로기의 관계라고 규정한 ≪결론 아닌 결론≫으로 종결되고 말았다.

지난 시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철학에서 그 오류를 극복하기 위한 이론적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중반에 일부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자들은 ≪실천≫이라는 철학개념을 도입하여 그 오류를 극복하려고 하였다. 물질이라는 철학개념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철학개념을 철학적 세계관을 해명하는 중심범주로 삼으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시도도 역시 실패하였다. 물질-의식의 관계문제에 대한 유물론적 해명을 객관적 실재(자연과 사회·역사)에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운동법칙, 발전법칙으로 정식화하였던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에 ≪실천≫이라는 철학개념을 도입한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지난 시기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자들이 물질-의식의 관계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제기하였던 것은, ≪의식≫을 물질에 대립하는 실체인 것처럼, 또는 물질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궁극적인 실체인 것처럼 떠들어왔던 낡아빠진 궤변인 관념론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그들의 사상투쟁에 의하여 물질-의식의 관계문제가 유물론적으로 해명됨으로써 관념론은 완전히 파탄되었다.

그러나 실천이라는 개념은 물질에 대한 관계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성립될 수 있는 철학개념이 아니다. ≪실천≫은 실체가 아니라 실체의 작용이다. ≪실천≫은 사회적 존재인 사람이 물질세계에 가하는 목적·의식적인 작용이므로, 물질-의식의 관계문제를 물질-실천의 관계문제로 대체하고 그로부터 철학적 세계관을 해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자들이 사회·역사적 운동의 법칙을 해명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했던가? 물질-의식의 관계문제를 철학적으로 해명하고, 세계의 물질적 통일성의 원리와 변증법적 발전의 원리를 가지고 정립하였던 철학을 넘어서야 했었다. 그와 함께 철학의 새로운 근본문제를 따로 설정하고 새로운 철학적 원리를 가지고 철학적 세계관을 해명해야 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물질-의식의 관계문제는 유물론 대 관념론의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던 시기에 관념론을 타파하기 위한 사상사적 의의를 가진 문제였으며, 그 자체가 철학적 세계관을 해명하는 철학의 근본문제는 아니었다. 물질-의식의 관계문제에 대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해명은 관념론을 타파하였지만 철학적 세계관을 정립하지는 못하였다.

이처럼 인류사상사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던 철학적 세계관의 문제는, ≪주체≫라는 새로운 철학개념을 제기하고 주체의 철학적 원리를 가지고 철학적 세계관을 해명함으로써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 문제는 세계-사람의 관계문제를 ≪철학의 새로운 근본문제≫로 설정한 뒤에, 주체를 중심으로 물질세계를 인식하고 세계와 사람의 관계문제를 해명하는 주체의 철학적 원리에 의하여 독창적으로 해결되었다. 김일성주의의 철학적 세계관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의 철학적 원리≫에 의하여 완벽하게 해명되었다. 이로써 김일성주의의 철학적 세계관은 인류사상사에서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철학적 세계관으로 되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자들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가리켜 철학적 세계관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김일성주의의 시각에서 보면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은 철학적 세계관이 아니며, 단지 철학적 세계관을 정립하기 위한 철학적 전제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철학적 세계관과 김일성주의의 철학적 세계관이 병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전제로 삼고 있는 김일성주의의 철학적 세계관만이 존재한다. 김일성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철학적 원리를 계승하고 그 미완의 한계를 발전시킨 사상이 아니다. 김일성주의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전제로 삼고 있는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사상이다.

김일성주의의 새롭고 독창적인 철학적 세계관은 ≪사람을 위주로 하여 철학의 근본문제를 제기하고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에 대한 견해, 세계에 대한 관점과 립장을 밝힌 사람중심의 세계관≫이다. 김일성주의의 철학적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는 물질세계의 유일한 주체인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변화·발전한다. 주체는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다. 오직 사회적 존재인 사람만이 육체적 생명과 구별되는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진다. 사람은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지고 있으므로 ≪세계의 유일한 지배자이며 세계의 유일한 개조자≫로 되는 것이다.

자연의 유기체적 생명이 자연계의 현실 속에서 발생하고 생장·소멸하는 것처럼, 주체의 사회·정치적 생명도 어떤 초현실적인 신비한 현상이 아니며, 사회·정치적 현실 속에서 발생하고 생장·소멸한다.

유기체적 생명을 지닌 개체는 생장·소멸하지만, 유기체적 생명을 지닌 개체가 속한 종(種)은 생장·소멸하지 않으며 진화과정을 통하여 끊임없이 변화·발전한다. 물론 자연환경에 대한 순응에 실패한 종은 결국 멸종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닌 개체(개인)는 생장·소멸하지만, 그 개체가 속한 사회·정치적 집단은 사회·역사적 발전과정을 통하여 영생한다. 물론 사회·역사의 변화·발전에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사회·정치적 집단이 자연계의 멸종현상처럼 소멸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이 자주성이라고 하는 철학명제가 성립된다.

사회·정치적 생명은 개체(개인)를 포함하는 사회적 집단이 지니고 있지만, 사회정치적 생명체는 개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집단으로 존재한다. 사회주의 체제가 성립되고 발전해 가는 근본원리인 집단주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원리에 기초한 이념체계다.

 

5)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역사의 주체로 출현한 노동계급

사람이 물질세계의 주체로 출현하고 사회·역사가 시작되었지만, 그 장구한 사회·역사의 발전과정이 진행된 이후에도 매우 오랫동안 사회·역사의 주체는 아직 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회·역사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한 혁명운동의 주체로 등장한 최초의 사회적 집단은 노동계급이었다. 노동계급은 인류역사에서 처음으로 출현한 자주적 주체로서의 지위를 지니게 되었고, 처음으로 사회를 개조·변혁하는 혁명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노동계급은 자신만이 아니라 여타의 사회계급·계층(비프롤레타리아 대중)을 사회·역사를 변혁하는 혁명으로 이끌었다.

그 이전에 출현했던 그 어떤 계급도 이러한 지위와 역할을 가지지 못했다. 노동계급이 혁명의 영도계급이라고 하는 명제와 인민대중이 사회·역사의 주체라는 명제는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자본가계급은 봉건체제를 타도하는 부르조아혁명을 일으키고 사회·역사를 변혁하였지만, 부르조아혁명이 성공한 이후에 지배·착취계급으로 변질되어 사회·역사의 발전을 가로막는 반혁명세력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혁명의 영도계급이 될 수 없었으며 자주적 주체도 될 수 없었다.

노동계급의 출현 이후의 사회·역사는 그 이전 시대와 질적으로 구분되는 자주적 주체의 시대로 되었다. 노동계급의 영도에 따라 인민대중이 사회·역사의 주체로 당당히 등장한 시대, 곧 자주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김일성주의가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명한 사회·역사관의 요체다.

인류가 물질세계의 장구한 진화과정에 출현한 수많은 유기체 집단들 가운데 유일무이하게 자주성과 창조성을 가진 집단이라면, 노동계급은 수 천년 사회·역사에 출현했던 집단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에서 자주성과 창조성을 가진 집단이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이 가장 선진적이며 가장 힘있는 사회·정치적 집단이라는 명제가 성립된다.

여기서 제기되는 물음은 사회·역사의 발전과정에서 노동계급을 자주적 주체로 되게 한 근본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철학문제다. 종래의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이 문제를 해명하지 못하였다.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이 사회·역사를 발전시키는 가장 강한, 그리고 가장 주요한 추진력으로 되고,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이 사회·역사의 모든 운동력을 규정한다는 답변 아닌 답변을 내놓았다.

노동계급이 자주적 주체로 된 근본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집단주의적 생명관과 그에 기초한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형성에 관한 김일성주의 철학이론에 의해서 해명되었다.

물질세계 일반에서 유기체가 자연계의 진화작용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발생하는데 비하여 사회·역사에서 사회정치적 생명체는 주체의 목적·의식적인 작용에 의하여 발생한다. 주체의 목적·의식적 작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적 집단이 사상·의식적으로 각성되고 조직적으로 단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역사에서 사상·의식적으로 각성되고 조직적으로 단결된 최초의 사회적 집단으로 출현한 것은 노동계급이다.

 

6) 노동계급과 비프롤레타리아 대중은 어떻게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되는가?

그렇다면 노동계급은 어떻게 사상·의식적으로 각성되고 조직적으로 단결되는가?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에 의하여 생산의 사회화가 진행되고 생산활동의 집단화와 조직화가 강화·발전되는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계급의식이 자연적으로 형성된다고 보았다. 자본과 노동간의 모순이 첨예화되면서 자본가계급에 대한 노동계급의 투쟁이 전개되고, 노동계급은 그 투쟁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자연발생적 계급의식은 맹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계급의 혁명적 계급의식은 노동계급 안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될 수 없다. 노동계급이 민족해방, 계급해방, 인간해방의 역사적 임무를 자기의 임무로 자각하는 것, 자본주의 체제를 타도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하는 혁명사상을 획득하는 것, 다시 말해서 혁명적 계급의식은 목적·의식적 작용에 의하여 형성되고 노동계급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자본가계급의 계급의식과 부르조아 혁명운동은 자본주의 경제제도(uklad)가 상당히 존재하고 있는 조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였던 것에 비하여, 노동계급의 계급의식과 혁명운동은 사회주의 경제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조건에서 발생한다. 사회주의적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 조건이므로 당연히 목적·의식적 작용에 전적으로 의거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계급의식을 각성시키고 그에 의거하여 혁명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철두철미 주체의 목적·의식적인 작용이다.

목적·의식적 작용의 주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사회주의 혁명사상으로 각성되고 사회주의 혁명운동을 수행하기 위하여 조직된 혁명의 주체다. 그 주체를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이라고 부른다.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은 어떠한 임무를 수행하는가? 노동계급에게 사회·역사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는 노동계급의 역사적 사명을 각성시키고, 노동계급과 동맹관계를 맺은 다양한 비프롤레타리아 근로인민을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조직화하며, 노동계급과 전체 근로인민에게 계급투쟁의 전략과 전술에 관한 과학적 인식을 제공하고, 사회주의 혁명기에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를 수립하기 위한 투쟁을 정치적으로 조직·지도한다.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은 그러한 자기의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사회정치적 생명체, 곧 사회·역사의 주체를 생성시킨다.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은 노동계급과 인민대중을 수령을 중심으로 결집시킴으로써 그들에게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이 없이는 노동계급과 인민대중은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될 수 없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이 노동계급과 인민대중을 사상·의식적으로 각성시키고 조직적으로 단결시키는 문제를 올바르게 해명하지 못했다. 그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사회정치적 생명체에 관한 철학적 세계관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적 세계관으로부터 혁명적 당 건설의 이론에 이르기까지 세계관과 사회·역사관 전체를 수미일관하게 주체라는 최고의 철학적 개념으로 통찰하면서, 마침내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혁명적 철학사상을 발전시킨 김일성주의는 혁명적 당과 노동계급의 관계를 완벽하게 해명하였다. 그래서 김일성주의를 노동계급의 ≪새로운≫ 혁명사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7) 노동계급의 새로운 혁명사상의 최고 결정체

사회정치적 생명체에 관한 사상을 이해함에 있어서 마지막 질문, 최고의 질문이 아직 남아있다. 그 질문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지 않으며 목적·의식적인 주체에 의하여 형성된다는 것은 더 이상의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자명한 이치다.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형성하는 목적·의식적인 활동은 노동계급의 수령에 의하여, 그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진행된다. 수령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의 중심으로서, 그 당을 창건하고 끊임없이 강화·발전시키는 혁명적 임무를 수행한다. 노동계급의 수령이 없이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이 존재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은 수령의 영도에 의하여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닌 혁명의 자주적 주체로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은 수령의 당이라는 명제가 성립된다.

수령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통하여 노동계급과 비프롤레타리아 대중을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시킨다.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는 이렇게 하여 형성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혁명은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된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 즉 혁명의 자주적 주체에 의하여 수행된다. 혁명위업을 완수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김일성주의의 혁명적 수령관의 중심내용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이러한 혁명적 수령관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노동계급의 새로운 혁명사상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 곧 사회정치적 생명체에 관한 사상은 혁명적 수령관을 핵심으로 하여 성립된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혁명사상이다. 혁명적 수령관은 인류역사에 출현하였던 모든 철학사상과 혁명이론의 이러저러한 시대적 제한성과 이론적 오류를 극복·청산한 최고의 결정체며, 고도로 발전된 혁명사상의 진수다. 혁명적 수령관은 노동계급의 수령관이며, 혁명적 세계관의 진수다.

그러므로 혁명적 수령관을 이해하면, 김일성주의의 철학적 세계관으로부터 시작되어 혁명적 수령관에서 정점에 이르는 혁명사상과 혁명이론의 모든 구성체계와 내용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거꾸로 표현하면, 혁명적 수령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노동계급의 새로운 혁명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도 된다. 노동계급의 새로운 혁명사상인 김일성주의를 이해하고 교양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혁명적 수령관을 가장 중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혁명적 수령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으로 사회·정치적 생명에 관한 철학적 세계관의 기초이론, 집단주의적 생명관에 관한 철학적 해명,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 건설에 관한 이론 등을 종합·체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만일 수령은 ≪근로인민대중의 최고 뇌수이며 통일단결의 중심≫이라는 명제를 비유의 통속적인 의미로 해석한다면, 혁명적 수령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생물학주의의 논리적 장벽을 뛰어넘기 힘들다. 혁명적 수령관은 ≪혁명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특징짓는 기본척도이며 참다운 혁명가와 우연분자를 가르는 시금석≫이다.

혁명의 자주적 주체가 형성되지 못한 조건에서 수행되었던 수많은 혁명이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수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경험은, 오직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만이 혁명위업을 완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은 파렴치하게도 혁명적 수령관을 단순한 통치 이데올로기라고 왜곡하고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 따위의 악선전은 논박할 가치조차 없는 잡음이다.

 

8) 통치기능과 사회정치적 생명체

수령은 정치지도자나 국가수반과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수령은 정치지도자나 국가수반과 마찬가지로 통치기능을 수행하지만, 통치기능만 수행하지 않는다. 수령은 인민대중을 당의 주위에 튼튼하게 결합시킴으로써 인민대중에게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여하고,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를 형성한다. 이것은 단순히 통치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정치지도자나 국가수반이 할 수 없는 수령의 고유한 임무, 혁명의 최고 임무다. 김일성주의의 혁명적 수령관과 사회주의운동의 정치지도자론이 질을 달리하여 갈라서는 사상적 분기점은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다.

만일 수령을 정치지도자나 국가수반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 수령의 통치기능이 왜곡되면서 지배기능과 독재라는 부정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다는 논리적 오류가 생겨나게 된다. 이것은 수령과 대중의 관계를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관계로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통치기능적 측면에서 이해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오류다. 수령과 대중의 관계는, 수령은 대중에 대해서 통치기능을 수행하고 대중은 수령의 통치를 받기만 하는 그런 기능적 관계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정치지도자나 국가수반은, 순전히 이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대중을 통치하는 통치기능의 수행자로 설명된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계급적 모순관계에 의하여 규정된 착취체제이므로 이론상의 통치기능은 실제로는 수행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모순에 의해서, 다시 말해서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적대적 모순에 의해서 그들의 통치기능은 계급적 모순관계 속에서 작용하는 기능으로 변질되기 마련이고, 따라서 지배기능과 계급독재로 전화된다.

계급적 모순관계에 대한 인식을 떠나서 자본주의 정치체제의 통치문제를 논하려는 것은 오류다. 자본주의 체제의 계급적 모순관계는 통치자를 지배기능을 수행하는 부르조아 계급독재의 수행자로 만든다. 이것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계급적 모순관계가 폐절된 사회주의 정치체제에서는 전혀 다른 정치가 실현된다. 수령은 대중에게 통치기능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수령의 통치기능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본질에 속해있는 하나의 기능에 불과하다. 수령의 존재근거는 통치기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과 대중을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상호결합시킴으로써 대중에게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여한다는 데 있다. 김일성주의의 표현을 빌리면, 수령과 대중의 결합관계는 일심단결, 혼연일체의 관계다. 이처럼 수령과 대중의 관계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관계로 결합되어 있으므로 수령의 통치기능이 독재기능으로 변질·타락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9) 모든 형태의 독재와 민주주의는 두 개의 계급적 기반으로 나뉜다

사회당 지도부는 수령절대주의를 ≪수령지배주의≫라고 왜곡하면서, 수령이 사회주의 체제의 권력을 독점하고 사회성원들을 지배하는 ≪수령의 독재≫라고 악선전하고 있다. 수령절대주의에 퍼붓는 사회당 지도부의 격렬한 비난공격은 결국 그들이 머리 속에서 만들어낸 ≪수령의 독재≫라는 허구적 관념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수령절대주의에 관한 사회당 지도부의 악선전에는 수령이라는 개인이 인민대중에 대해서 독재를 실시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수령을 개인으로 보는 것도 무지의 소산인데, 거기에다 한 술 더 떠서 계급이 아닌 개인이 인민대중에게 독재를 실시한다고 하는 악선전은, 독재와 민주주의에 대한 초보적 지식도 없는 무식자들의 넋두리에 불과하다. 어쨌든 그래도 명색이 당의 지도부인데 그처럼 무식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사회당 지도부가 모르고 있는 것(혹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은, 독재와 민주주의가 계급적 기반을 가지는 정치적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정치권력이 어느 계급에 의하여 장악·행사되는가에 따라서 독재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문제의 본질이 결정된다. 독재와 민주주의를 가르는 정치체제의 문제는 계급적 관점을 떠나서는 인식될 수 없다. 그 문제는 자본가계급의 계급독재와 ≪자유민주주의≫냐 아니면 노동계급의 계급독재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냐 하는 문제로 갈라서 보아야 한다. 오늘 인류사회에는 오직 두 가지 독재, 자본가계급의 독재와 노동계급의 독재만이 존재하며, 오직 두 가지 민주주의, 자본가계급의 민주주의와 노동계급의 민주주의만이 존재한다.

노동계급이 영도하는 인민민주주의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의 민주주의에 속하는 유형들이다. 노동계급의 계급독재는 노동계급 자신과 비프롤레타리아 근로대중(협동농민, 근로인텔리)의 계급동맹을 기초로 하여 성립되는 독재다.

파시스트 독재라든지 노농독재와 같이 변형된 계급독재가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존재하였지만, 그것은 형식적 차이의 문제이지 본질적 차이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독재는 자본가계급의 독재와 노동계급의 독재 두 유형에 속한다. 따라서 개인의 독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20세기에 등장하였다가 비참하게 종말을 고했던 파시스트 독재체제들, 이를테면 히틀러, 프랑코, 마르코스, 피노체트, 쏘모사 그리고 이 땅에서 출몰하였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따위의 파시스트 두목들이 이끌었던 파시스트 독재체제들은 파시스트 독재자 개인이 인민대중에 대해 독재를 실시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본가계급 독재의 가장 반동적인 형태인 파시스트 독재를 수행했던 두목이었다.

그런데 파시스트 독재를 파시스트 독재자 개인의 독재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상과 본질을 구분할 줄도 모르는 중학생의 지능수준을 가진 자들의 강변이 아니면, 사회과학의 기초지식마저 부정하려는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의 궤변, 둘 중에 하나다.

파시스트 두목이 실시하는 파시스트 독재의 계급적, 정치적 기반은 자본가계급이다. 파시스트 독재는 엄연히 자본가계급의 독재에 속하는 한 유형이다. 노농독재가 노동계급의 독재에 속하는 한 유형이듯이...

수령을 개인으로 보면서, 개인의 독재가 실시되고 있다고 떠드는 사회당 지도부의 궤변은 개인의 독재가 존재할 수 없고, 오직 계급의 독재만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무너진다.

그렇다면 오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자본가계급이 존재하고 있는가? 정신이상자가 아니라면 그렇다고 답변할 사람은 없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는 자본가계급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자본가계급의 독재가 없으며 오직 노동계급의 독재만이 존재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파시스트 독재자들이 자본가계급의 독재를 실시하는 가장 악질적인 괴수라면, 수령은 노동계급의 독재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최고 영도자이다.

수령이 노동계급과 그 동맹자인 농민, 그리고 통일전선에 망라된 인민대중을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으로 영도함으로써 인민민주주의가 실현되며,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계급과 인민대중의 적인 자본가계급과 제국주의자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독재를 실시하는 주체혁명의 길이 개척된다.

사회주의혁명을 영도하는 수령은 노동계급과 그 동맹자인 협동농민과 근로인텔리를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길로 이끌어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형성하고, 이미 전복된 반혁명세력과 제국주의자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독재를 실시하는 주체혁명위업을 완수해나간다.

그런데 일부 무식자들은 조선로동당이 ≪일당독재≫를 실시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주장도 역시 궤변에 불과하다. 일당제냐 다당제냐 하는 것은 독재와 민주주의를 가르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회에 정당이 복수로 존재하면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것이고, 정당이 유일적으로 존재하면 독재를 실시하는 것이라고 떠드는 것은 정당의 계급적 본질을 은폐하려는 선동이다. 자본주의 정치체제의 부르조아 정당들은 자본가계급에 의하여, 자본가계급의 계급적 이익과 권리를 위하여 생겨난 것들이다. 자기들끼리 권력을 차지하겠다고 추잡한 정쟁을 일삼는 꼴을 ≪자유민주주의≫라고 강변하는 것은 자본가계급의 독재를 은폐하려는 서투른 기만극이다.

정당의 본질은 복수냐 단수냐 하는 피상적인 문제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당이 어느 계급의 이익과 권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하는 근본문제에 의해서 결정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는 자본가계급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조선로동당이 노동계급과 그 동맹자인 협동농민, 근로인텔리의 이익과 권리를 위하여 활동하는 것을 자기의 존재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조선로동당은 전복된 계급사회를 복구해보려고 날뛰고 있는 반혁명세력과 제국주의 세력에 대해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의 독재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당의 독재≫라고 말한다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노동계급을 지배·착취하는 자본가계급 정당의 독재가 실시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궤변에 불과하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정치적 현실을 판단할 때, 항상 노동계급적 관점에 의거하여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노동계급적 관점에서 이탈하여 사고하고 행동하면서 사회주의자라고 자칭하는 자들은 사이비 사회주의자들이다.

사회당 지도부가 수령절대주의를 운운하면서 ≪반조선로동당≫ 구호를 내건 것은 수령절대주의의 계급적 본질을 외면하는 결정적 오류이다. ≪반조선로동당≫ 구호는 그 오류가 낳아놓은 궤변이다.

 

10)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본 수령과 대중의 관계

수령과 대중의 관계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관계로 결합되어 있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수령에 대한 대중의 관계는 충성과 숭배의 관계이며, 대중에 대한 수령의 관계는 신뢰와 사랑의 관계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지도자나 국가수반에 대한 대중의 관계가 신뢰와 존경의 관계라는 사실과 대비되며, 대중에 대한 정치지도자나 국가수반의 관계가 신뢰와 권위의 관계라는 사실과 대비된다.

그런데 사회정치적 생명체에 관한 기초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수령과 대중의 관계가 충성과 숭배, 신뢰와 사랑의 관계라는 말을 들으면 우선 심리적인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 아마도 그것은 ≪충성≫이라는 개념이 봉건군주에 대한 충성을 연상시키고, ≪숭배≫라는 개념은 신적 존재에 대한 숭배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생겨나는 심리적 조건반사일 것이다.

엄밀하게 따져보면, 사회정치적 생명체에 관한 기초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충성≫과 ≪숭배≫라는 말에 대해서 알레르기성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그 말의 과학적 의미에 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말이 주는 언어감각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심리적 알레르기 반응의 원인이 언어감각 때문이라면 그것은 수령과 대중의 관계에 대한 몰이해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그런 반응은 과학적 인식으로 극복할 수 있으며, 또 극복해야 한다.

≪충성≫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참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라는 뜻이다.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좋은 말을 봉건지배계급들이 사용했었다는 데 있다. 봉건주의 체제는 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봉건지배계급과 인민대중 사이의 적대적 모순관계에 의하여 성립된 체제였으므로, 그러한 봉건주의 체제의 적대적 모순관계에서 봉건군주에 대한 ≪충성≫이 존재할 리 없었던 것은 자명하다. 충성이 존재하지 않았는데도 충성이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것은, 봉건지배계급이 인민대중에 대한 지배·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인민대중을 기만하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물론 봉건지배계급이 자기들의 지배·착취를 은폐·위장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말이기 때문에 언어감각이 좋지 않을 수 있지만, 봉건지배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오늘에 와서 그 말 자체를 부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예컨대, 자본가계급이 자기들의 지배·착취체제를 은폐·위장하려고 ≪평화≫와 ≪인권≫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노동계급이 ≪평화≫와 ≪인권≫이라는 말 자체를 부정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의 핵심은 언어감각에 대한 호불호의 감정표출이 아니라, 언어의 사회·정치적 의미를 어느 계급의 관점에서 이해하는가 하는 데 있다.

사회정치적 생명체와 관련해서 ≪충성≫이라는 말과 더불어 ≪효성≫이라는 말도 사용한다. 효성이라는 말은 마음을 다하여 부모를 공경한다는 말이다. 이 역시 참 좋은 말이다. 서구의 개인주의 시각에서 보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낡은 봉건주의 도덕의 잔재쯤으로 치부될 것이다. 물론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도덕률이 군주에게 충성하라는 도덕률과 함께 봉건주의 체제에서 특별히 강조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계약관계로 이해하고 있는 서구의 개인주의자들에게 효성은 배척되어야 할 낡은 덕목으로 보일 것이다. 계약관계는 계약을 체결한 쌍방이 계약을 준수하는 한에만 성립되며, 만일 계약조건이 없어지면 그 관계 자체가 깨지는 그런 관계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이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조건에 한정해서 관계를 유지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유기체적 생명으로 결합된 혈연적 연계로 성립되며, 자식에 대한 부모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 그리고 부모에 대한 자식의 관계는 효성의 관계다. 유기체적 생명의 관계로 결합된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계약이 아니라 효성이 존재한다면, 유기체적 생명보다 더 중요한 사회·정치적 생명의 관계로 결합된 수령과 대중의 관계에서 효성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구의 개인주의자들은 모든 사회적 관계가 자율적이고 평등한 개인들의 계약관계라는 기초 위에 성립한다고 떠들었고, 반면에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모든 사회적 관계가 계급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계약이 아니라 계급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해명하였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사회적 관계는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지배·착취적 관계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 물론이지만, 계급적 모순이 철폐된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사회적 관계는 혁명적 동지애와 혁명적 의리에 기초하여 성립된다. 사회주의 체제의 혁명적 동지애와 혁명적 의리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여기에 경험담을 소개한다. 사회주의 조국을 배반하고 미제의 식민지로 넘어와 적들에게 투항했던 배신자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약간 어색할 수 있겠으나, 주체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혁명적 동지애와 혁명적 의리에 기초하여 성립된 사회적 관계를 체험하지 못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데 참고로 삼을 만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을 유지하는 힘 가운데 하나가 동지적 유대관계입니다. 직장이나 당이나 군을 가릴 것 없이 조직원간의 유대관계를 중시하고, 그것을 체제의 힘으로 연결시키는 사회가 바로 ≪북한≫입니다. 그러한 분위기 아래서는 동료에 대한 비판은 관심과 격려로 받아들여집니다. 애정이 있으니까 비판하는 것이고, 비판받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를 이렇게까지 배려해준다는 생각에서 눈물까지 흘리면서 자아비판을 하거든요. ≪귀순≫초기에 이런 얘기를 몇 차례 했더니 다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사회·정치적 생명은 계급관계가 아니라 혁명적 동지애와 혁명적 의리에 의해서 전면적으로 발현된다.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관계는 계급적 모순이나 계급적 차이에 의해서 형성된 관계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치지도자, 국가수반과 대중의 관계는 사회계급에 기초하여 형성된 관계라고 할 수 있지만, 사회주의 체제에서 수령과 대중의 관계는 혁명적 동지애와 혁명적 의리로 결합된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관계다. 그러므로 수령에 대한 대중의 관계에 존재하는 혁명적 동지애와 혁명적 의리를 ≪충성≫, ≪효성≫과 같은 의리관계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충성과 효성은 사회·정치적 생명으로 결합된 의리관계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만일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관점에서 이탈하여 수령과 대중의 관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 ≪충성≫, ≪효성≫과 같은 의리관계의 개념은 봉건주의적 개념으로 오해될 수 있다.

수령과 대중의 관계를 표현하는 말들 가운데는 ≪숭배≫라는 말도 있다. ≪숭배≫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높이어 우러러 공경한다는 뜻이다. 참 좋은 말이다. ≪숭배≫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도 역시 그 말을 주로 신적 존재를 우러러 모시는 종교집단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종교집단의 숭배대상인 신적 존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 관념이므로, 사람이 허구적 관념을 숭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종교집단이 자기들의 종교적 행위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 말이기 때문에 언어감각이 좋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말 자체를 부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은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수령숭배를 종교집단에서의 신적 존재에 대한 숭배로 바꾸어놓고 이른바 ≪개인숭배≫라고 왜곡·비난하고 있다. 이것은 숭배라는 말이 주는 언어감각에 대해서 저들이 자행하고 있는 두 종류의 교활한 책동이다.

첫째,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은 수령이라는 사회·정치적 개념을 개인이라는 비사회·비정치적 개념으로 대체하려고 책동하고 있다. 수령은 개인이 아니다. 수령은 사적 관계 속에 성립되는 개별적 존재가 아니며, 어디까지나 인민대중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사회·정치적 존재다. ≪개인≫이라는 개념은 인민대중의 관계와는 무관하게 성립되지만, 수령이라는 개념은 오직 인민대중의 관계 안에서만 성립된다. 만일 인민대중이 없으면 수령도 역시 존재할 수 없다. 그 반대도 진리이다.

수령이라는 말을 영어권에서는 흔히 leader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는 데, 그 말은 어떤 집단의 지도자라는 일반적인 의미에 불과한 것이며, 인민대중과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관계로 결합된 수령이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

수령이라는 말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낸 신조어가 아니라 한자문화권에서 옛날부터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영수라는 말도 사용한다. 수령이나 영수라는 말은 원래 최고의 정치지도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김일성주의에 의하여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진리가 밝혀진 이후에 수령이라는 말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둘째,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은 높이어 우러러 공경한다는 뜻의 숭배(admiration)라는 말을 광신적인 소수집단이 신적 존재에 대해 열광한다는 뜻의 숭배(cult)라는 말로 대체하려고 책동하고 있다. 교회, 사찰, 사원 등에서 진행되는 종교행위에 대해서는 숭배(cult)라는 말을 쓰지 않고 흔히 예배(worship)라는 말을 쓴다. cult라는 말에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소수집단의 종교행위, 이성을 잃은 광신적 종교행위, 정통성을 갖지 못한 이단적 종교행위라는 복합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에서 수령에 대한 인민대중의 숭배는 원래의 말뜻 그대로 수령을 높이어 우러르고 공경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사회주의 체제에서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관계를 표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는 ≪충성≫, ≪숭배≫라는 말은 봉건주의 체제에서 사용했던, 그리고 종교집단에서 사용하고 있는 그런 왜곡된 의미와 기능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사회주의 체제의 인민대중이 자기의 수령에 대하여 충성심과 숭배심을 지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충성과 숭배는 인민대중이 수행하는 어떤 사회적 기능이 아니다. 인민대중이 수령에 대해서 충성과 숭배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충성과 숭배는 수령에 대한 인민대중의 관계, 다시 말하여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된 관계의 한 측면을 표현한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사용되는 ≪충성≫, ≪숭배≫라는 말이 인민대중에 대한 수령의 신뢰, 사랑이라는 개념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신뢰≫와 ≪사랑≫이라는 개념이 사회·정치적 관계와 그 현실을 표현하기에는 어딘가 어색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계급사회의 특정한 사회·역사적 경험 속에서 길들여진 언어감각의 문제다.

계급사회의 사회·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신뢰나 사랑이라는 말은 사적 관계와 그 현실을 표현하는 도덕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렇지만 수령과 대중의 관계의 한 측면을 표현하는 신뢰와 사랑이라는 새로운 의미의 개념은 그러한 통념과 전혀 다르다.

신뢰와 사랑이라는 개념이 왜 사적 관계와 그 현실만을 표현하고, 사회·정치적 관계와 그 현실은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일까? 사적 관계는 도덕적일 수 있어도, 사회·정치적 관계는 철저하게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일까?

사회체제의 성격은 언어의 의미를 일차적으로 규정하는 요소다. 사회체제의 기본성격이 계급적 적대성으로 규정되어 있다면, 그러한 사회체제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도 계급적 적대성에 의하여 규정을 받게 된다.

계급사회의 적대적 모순관계에 의하여 규정되는 사회·정치적 현실 속에서는 신뢰와 사랑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러한 적대적 모순관계를 극복·청산한 사회주의 체제의 사회·정치적 현실 속에서는 신뢰와 사랑이라는 개념이 성립될 수 있고, 또 성립되어야 마땅하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된 관계를 도덕적 개념으로 표현하면 신뢰와 사랑이 실현되는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된 관계에 신뢰와 사랑이 없다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장구한 세월 동안 지속되어 왔던 계급사회의 적대적 모순관계 속에서 자기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단지 사적 관계와 그 현실만을 표현하는 데 한정되었던 신뢰와 사랑이라는 말은, 이제 주체의 사회주의가 실현됨으로써 사회·정치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치지도자, 국가수반과 대중의 관계가 필연적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계급독재의 관계로 되지만,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수령과 대중의 관계가 필연적으로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되는 근거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주의 체제가 계급적 모순을 청산·극복한 체제라는 데 있다. 사회주의 체제에는 계급적 모순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계급독재가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수령과 대중의 관계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되는 것이다. 사회정치적 생명체 안에서 모순과 대립성이 발생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 까닭에 수령과 대중의 관계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계급독재의 관계라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이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닌 존재라는 진리를 부정하는 궤변이며 사회주의 체제가 계급적 모순을 지닌 체제라고 주장하는 궤변이다.

수령과 대중의 관계에 관한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의 왜곡선전 가운데는 이른바 ≪수령 무오류설 비판≫이라는 것도 있다. 그들의 왜곡선전에 의하면, 수령은 신적 존재가 아니라 사람이므로 오류가 있을 수 있는데, 수령에게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는 ≪수령 무오류설≫은 오류라는 것이다.

수령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어디까지나 수령과 대중의 관계에 관한 사회·역사적 문제인데,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의 ≪수령 무오류설 비판≫은 수령에 대한 인식을 사람이냐 신적 존재냐 하는 신학적 비판의 문제로 끌어들임으로써 자가당착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이 수령은 신적 존재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할 때,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개별적 존재로서의 개인을 의미한다. 사회적 관계를 떠난 개인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 관념이므로, 수령이 사람이냐 신적 존재냐 하는 문제의식은 성립될 수 없다. 수령은 대중과의 사회적 관계를 떠나 존재하는 개인이 아니다.

이처럼 수령에 대한 인식문제를 이미 파탄된 관념론의 극치인 신학문제로 설정하였으므로, ≪수령 무오류설≫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궤변이다. ≪수령 무오류설≫은 실제로 신학학설의 변종이다. 그것은 근대 개인주의에 기초한 개신교 신학이 봉건적 전체주의에 기초한 천주교 신학을 비판하면서 제기하였던 현대판 ≪교황 무오류성 비판≫인 것이다.

수령이 전지전능한 신적 존재인가 아니면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신학적 질문을 제기하는 자들은, 대중이 전지전능한 신적 존재인가 아니면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해괴망측한 질문을 제기하는 관념론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사회정치적 생명체가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존재인가 아닌가 하는 허무맹랑한 물음을 제기하는 관념론에 빠져있는 궤변가들이다.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의 ≪수령 무오류설 비판≫은, 수령의 위대성을 신적인 전지전능성의 문제로 슬쩍 바꿔놓으면서 대중과의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관계에서 수령이 지니고 있는 지위와 역할을 왜곡하려는 조잡한 술책이며 파탄된 관념론의 잔해다.

인민대중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힘, 곧 자기의 자주역량으로 사회·역사를 창조하고 변혁하는 위대한 존재이며, 수령은 인민대중을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시킴으로써 그들을 사회·역사를 주체의 요구대로 개조·변혁하는 창조자, 변혁자로 일으켜 세우는 위대한 존재다. 수령이 위대하므로 그와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된 인민대중도 위대한 존재로 된다.

물질세계를 초월한 어떤 신적 존재가 존재하는 것처럼 떠드는 궤변에 매달려있는 관념론자들은 신적 존재의 전지전능을 설교하면서 혹세무민하고 있지만, 무한하고 영원한 물질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 가장 힘있는 존재로 등장하여 물질세계의 참다운 주인으로 된 것은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다.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가 발휘하는 위대한 생활력은 산도 떠옮기고 바다도 메울 수 있다. 물질세계는 그 통일체의 요구대로 개변되고 있다. 그 통일체의 위대성은 인류역사의 진보와 발전을 영도하는 영생불멸의 위대성이다.

11) ≪수령자본주의≫라는 신조어는 독설과 궤변의 극치다

사회당 지도부가 사회주의 체제에 계급적 모순이 존재한다는 궤변을 ≪논증≫하기 위해 등장시킨 것은 ≪수령자본주의≫라는 신조어다. 그들은 이른바 사회주의를 ≪국가자본주의≫ 또는 ≪국가사회주의≫라고 모략하였던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의 악질적 선동을 슬쩍 차용하여, 마치 사회주의 체제에 계급적 모순이 존재하는 것처럼 ≪수령자본주의≫라는 해괴한 신조어를 조작하였다. 그들의 선동적 신조어인 ≪수령자본주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회당 지도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모든 부문, 단위, 개인의 활동들은 수령의 사상과 의도를 실현함으로써 가치를 가진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것은 수령절대체제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사실인식이므로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점은 사회당 지도부가 ≪수령절대체제≫를 ≪수령지배체제≫와 ≪수령자본주의≫라고 왜곡하는 독설과 궤변을 토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당 지도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노동이 화폐로 표현되어야만 노동의 자격을 부여받듯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개인의 활동은 수령을 빛내는 한에서만 활동으로 취급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악질적인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령절대체제에 대해서 무슨 ≪지배체제≫니 ≪독재체제≫니 하는 식의 독설과 궤변을 늘어놓은 적은 있었어도, ≪수령자본주의≫라고 하는 해괴한 독설과 궤변을 토해낸 것은 사회당 지도부가 처음이다. 그들은 독설을 토해낼 때도 일개 당의 지도부답게 선정적 신조어를 등장시킨 ≪창의적인 독설≫을 선호하는 것일까?

그들의 독설과 궤변에 의하면, ≪수령자본주의≫는 ≪부패한 수령자본주의 국가≫로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전세계 노동자의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령자본주의적 사회체제≫이며 ≪반노동자적이고 반민중적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사회체제≫라는 것이다.

그들은 ≪수령이라는 화폐도, ≪우리 사상 제일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 ≪우리 군대 제일주의≫라는 강권력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수령제일주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사회주의의 최악의 변형태를 수령자본주의라는 국가자본주의의 최악의 변형태로 이행시키기 위한 지렛대가 된다. ≪우리 제도 제일주의≫는 그리하여 ≪수령자본주의 제일주의≫가 된다≫고 주장한다.

사회당 지도부가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노동과 화폐의 관계를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수령과 대중의 관계라고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이미 이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과 화폐의 관계문제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모든 노동이 화폐로 표현되어야만 노동의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게 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과 자본이 적대적 모순관계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가 확립됨으로써 노동과 자본의 적대적 모순관계가 폐절된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이 화폐로 표현되지 않아도 노동의 자격을 부여받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당 지도부가 노동과 자본의 관계문제에 대한 노동계급의 계급적 관점이 완전히 제거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12) 사회주의 체제에는 자본의 지배와 착취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노동과 자본의 적대적 모순이 극복된 사회주의 체제에서 노동은 어떻게 하여 노동의 가치를 부여받는가? 단순하고 무지한 사회당 지도부의 독설에 대한 해독작용으로 부연설명을 덧붙이겠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노동은 생산활동의 주체인 노동자의 이해관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육체적, 정신적 활동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노동은 사회화, 집단화되지만, 자본가계급이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의 가치는 근본적으로 왜곡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노동의 가치는 노동자의 개별적 생계수단으로 전락하며, 또한 노동은 자본가계급에게 판매되어 착취당하는 노동력으로 전화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노동은 착취로부터 해방된 노동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근로자(노동자, 농민, 지식인)는 착취계급을 위해서,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노동하지만, 사회주의적 생산활동의 주체인 근로자는 자신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노동한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근로자의 노동은 두 가지 가치를 창출한다. 하나는 근로자 자신의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노동함으로써 생겨나는 개별적 가치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노동함으로써 생겨나는 사회적 가치다.

사회주의 체제의 근로자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말은 그의 노동이 사회적 창조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사회주의적 노동은 사회적 창조로서의 가치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 창조라는 말에서 ≪사회적≫이라는 개념은 사회주의적 생산활동의 주체인 근로자가 노동의 가치를 자신의 개별적 생계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창조≫라는 개념은 사회주의적 생산활동이 시장에서 화폐로 표현되는 노동력으로 전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의 노동은 매매불가능한 ≪노력≫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서 매매가능한 ≪노동력≫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노동력의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노동계급이 자본가계급에게 노동력을 판매한 대가로 받는 임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체제의 노동계급은 자본가계급으로부터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로부터 생활비를 받는다.

사회주의 사회의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국가로부터 생활비를 받는다는 것은 과학적 인식이 결핍되어 있는 통속적인 표현이다. 그 표현을 과학적인 인식으로 다시 해설하면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노동계급과 국가기구의 관계는 어떻게 성립되는가? 국가기구가 노동자를 고용하여 생산활동을 벌이고 그 생산활동의 결과로 생겨난 사회적 가치를 노동자들에게 분배하는 그런 국가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계급은 자기의 생산활동을 통하여 창조한 사회적 가치를 노동계급이 전 사회적으로 분배할 수 없으므로, 국가기구를 통하여 분배하는 사회주의적 분배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기구는 노동계급을 고용한 것이 아니라, 그 노동계급이 창조한 사회적 가치를 전 사회적으로 분배하는 기능을 대리적으로 수행한다.

사회주의 체제의 노동계급은 왜 자신이 창조한 사회적 가치를 스스로 전 사회적으로 분배하지 못하고 국가기구를 통하여 대리적으로 분배할 수밖에 없을까?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사회주의 사회가 아직 노동계급만이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회에는 노동계급 이외에도 협동농민과 비프롤레타리아 대중이 존재하고 있다. 물론 협동농민과 비프롤레타리아 대중을 노동계급화하는 것이 사회주의 사회의 최종 목적인데, 현실 속의 사회주의 사회는 그 목적을 아직 실현하지 못한 과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사회주의 사회의 과도적 성격 때문에 노동계급이 창조한 사회적 가치, 그리고 협동농민과 비프롤레타리아 대중이 창조한 사회적 가치를 상호교환하고 분배하는 것은 국가기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둘째, 사회주의 사회는 사회주의 국가기구의 지휘기능에 의하여 집단화, 조직화되기 때문이다. 장차 사회주의 체제가 고도로 발전하여 협동농민이 농업노동자로 전환되고 비프롤레타리아 대중이 노동계급화되는 높은 수준에 이르더라도, 사회적 가치의 교환과 분배는 국가기구의 지휘기능에 의하여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것은 현재의 형태와 구별되는 새로운 형태의 교환과 분배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기구가 사회적 가치의 교환과 분배를 수행하는 원칙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그것은 노동강도, 노동조건, 노동의 사회적 기여도 등에 의하여 결정된다. 근로자의 노동은 양과 질에 따라 보상이 결정된다. 그 원칙은 많이 일한 근로자, 유해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근로자,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는 근로자에게는 더 많이 분배한다는 원칙이다.

그 분배원칙에 따라서 사회주의 사회의 노동자들이 받는 생활비는 양적 차이를 보인다. 일종의 소득격차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 생겨나는 이른바 ≪소득격차≫(실제로는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착취의 결과)와 비교한다면 미미한 차이에 불과하다.

사회주의 체제의 집권당과 국가기구에서 일하는 관료들과 사회주의 체제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적용되는 분배원칙도 마찬가지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당과 국가의 관료라고 해서 노동자들보다 엄청나게 많은 분배를 받지 못하게 되어 있다. 혹시 사회주의 체제의 당과 국가의 일부 관료들이 반인민적 관료주의에 빠져서 그 분배원칙을 어기는 범죄의 경우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집권당과 국가의 관료들 속에 천문학적 금액의 부정부패가 만연되어 있는 것에 비교한다면 미미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은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기구와 노동계급 사이에서 발생하는 분배를 자본주의 체제의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서 발생하는 착취와 동일한 것으로 왜곡하면서 이른바 ≪국가자본주의≫라고 비난·모략한다.

원래 국가자본주의란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국유화)하는 자본주의적 소유의 한 형태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생산수단의 국가자본주의적 소유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이 승리한 이후에 국가권력을 장악한 민족부르조아지들이 식민지 낙후성을 극복하고 제국주의 세력의 침탈을 막아내는 자립경제를 추진한다는 명목 아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재편하면서, 개별적 자본가 대신에 국가기구가 총자본가로 등장하여 노동계급과 인민에게 계급적 착취를 가하는 유형이 있다.

둘째, 독점자본에게 장악된 국가기구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유형이 있다. 이것은 독점자본이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동원할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사적 기업을 국유화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구매하여 임금을 지불하지만, 사회주의 국가기구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국가기구와 노동계급의 관계는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가 아니다.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매매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에서 발생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가계급이 노동계급을 고용하고, 그들의 생산활동에서 창출된 이윤을 구조적으로 빼앗는 착취체제인데, 사회주의 국가기구가 자본가계급을 대신하여 노동계급을 착취한다는 궤변 중의 궤변은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사회당 지도부의 악선전이다.

 

13)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국가기구의 역할

사회주의 혁명에 의하여 수립된 사회주의 체제에서 국가의 계급적 본질은 질적으로 변화된다. 적대적 계급모순에 의하여 성립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는 부르조아 계급독재의 도구로 되지만, 적대적 모순이 해소된 사회주의 체제에서 국가는 사회주의 건설의 도구로 근본적인 성격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기구의 계급적 본질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실현에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존재근거와 노동계급의 혁명적 지향과 요구는 완전히 부합된다. 사회주의적 애국주의는 노동계급의 사회주의 국가관과 일치한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애국심은 노동자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다.

국가를 계급지배의 도구로 파악하는 종래의 이론에서는 사회주의 국가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전인민적 국가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하여 계급적 차이가 사라지는 것과 함께 사회적 관계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차츰 사라질 것으로 예견하였다. 이 때 국가는 철폐되는 것이 아니라 조락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 체제에서 계급적 차이가 사라지고 전 인민이 노동계급화되어 가는 과정은 곧 국가가 조락하는 과정과 일치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국가조락론이다.

그런데 국가조락론에서는 세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 보인다.

첫째,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국가의 조락을 사회주의 체제가 최고도로 발전한 결과로 보았다. 사회주의적으로 개조된 사회·경제적 관계가 최고도로 발전하면 국가는 자기의 임무를 다하고 차츰 조락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의 사회·경제적 관계가 최고도로 발전한다는 의미는 생산양식이 새로운 것으로 교체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주의적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한다는 의미다. 이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사회주의 체제를 발전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을 생산력으로 파악하였음을 말해준다. 국가조락론은 사회주의적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이론이다.

그러나 생산력을 사회주의 체제 발전의 결정적 요인으로 보는 것은 일면적이다. 김일성주의는 사회주의 체제 발전의 결정적 요인을 생산력이 아니라 사상으로 보았다. 사회주의 체제는 그 체제의 구성원들의 사상을 노동계급화하고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여야 발전한다는 것이다. 김일성주의는 사회주의 체제가 자체의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기술혁명과 함께 사상혁명과 문화혁명을 포괄하는 3대 혁명을 수행함으로써 통전적으로 발전될 것이라고 해명하였으며, 3대 혁명 가운데서도 사상혁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사상혁명을 선차적 임무로 규정하였다.

둘째, 국가조락론은 국가와 계급의 관계만을 중시한 나머지 국가와 민족의 관계를 간과하였다. 특정한 계급은 사회·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생성·발전·소멸하지만, 민족은 특정계급의 소멸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가 사회주의적으로 개조되고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하여 계급적 차이가 사라지고 사회성원 전체가 노동계급으로 단일화되더라도 민족은 존속할 것이며, 민족적 차이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계급사회의 국가는 계급지배의 도구이지만, 사회주의 사회의 국가는 민족적 발전의 도구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도 민족적 발전의 도구로서의 국가기능은 존속될 것이다.

셋째, 국가의 조락이라는 것은 엥겔스의 표현을 빌리면, ≪사회적 관계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조락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서 국가의 조락은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의 간섭과 강제의 조락이라는 뜻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국가가 조락한 이후에는 공산주의적 자치가 실현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이처럼 국가조락론은 국가기구와 시민사회를 일단 불화의 관계로 파악한다. 사회주의 국가가 사회주의 사회에 간섭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강제하고 있다고 보는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국가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만일 사회주의 국가가 조락한다면, 사회주의 집권당도 국가와 함께 조락한다고 보아야 하는 것일까?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이 물음에 대한 명백한 답변은 찾을 수 없지만,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이 사회주의 국가와 함께 조락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이 사회주의 국가기구를 장악하고 지도하는 것은, 그 국가가 사회주의 건설의 도구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다. 사회주의 건설의 도구인 국가는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여 협동농민과 근로인텔리를 비롯한 비프롤레타리아 근로대중을 사회주의 건설로 이끌어 간다.

사회주의 국가는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서 간섭하고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의 영도에 따라서 사회성원들을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의 길로 이끌어가며,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의 전취물과 사회성원들을 옹호한다. 사회주의 국가는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서 간섭자, 강제자의 역할이 아니라 안내자, 옹호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것이 사회주의 국가의 정치적 임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국가의 사회·경제적 임무는 무엇인가? 사회주의 체제에서 노동계급에게 그들의 생활에 요구되는 물질을 공급하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국가기구다. 사회주의 국가기구의 공급체계에는 무상공급과 저가공급의 두 형태가 있다. 노동계급은 국가기구로부터 화폐형태로 분배받은 생활비를 가지고 저가로 공급되는 물질을 구매하고 자기의 생활에 이용한다. 이를테면 식량과 기초식품, 생활필수품, 전기, 수도를 무상공급 또는 저가공급의 형태로 구매하고, 주택, 교육, 의료, 휴양시설, 문화시설, 도로 등을 무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에는 시장경제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당연히 자본주의적 상품도 존재할 수 없다. 시장과 상품이 없는 사회주의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매우 소박한 것은 당연하다. 시장과 상품으로 와글거리며 핑핑 돌아가는 자본주의 체제에 길들여진 감각으로 그 사회를 볼 때, 그 쪽은 사회 분위기가 왜 그렇게 조용할까 하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사회주의 체제의 낙후성과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지적하는 한심한 사람도 있다. 실제로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평양 거리의 모습은 매우 소박하고 한적하다.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적 분위기는 시장과 상품으로 들끓으며 복잡해야 정상이고, 사회주의 사회의 일반적 분위기는 소박해야 정상이다.

사회주의 체제의 발전목표는 현재 과도적으로 잔존하고 있는 시장과 상품마저도 종국적으로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장과 상품을 얼마나 없앴는가 하는 것은 사회주의 체제의 사회·경제적 발전의 척도가 된다.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경제적 발전척도는 시장과 상품이 얼마나 지배적으로 되었는가 하는 것이라면, 사회주의 체제의 사회·경제적 발전척도는 시장과 상품을 얼마나 소멸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특정사회는 그 자체의 발전척도로 인식해야 한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국가기구가 노동자에게 공급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인민소비품이다. 인민소비품과 상품의 본질적인 차이는 그 물건의 가격이 시장에 의하여 결정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데 있다. 똑같은 생산물이라도 그 가격이 시장에 의하여 결정되면 상품으로 되며, 사회주의 국가의 인민경제시책에 의하여 그 가격이 결정되면 인민소비품으로 된다.

사회주의 체제에 존재하는 시장, 상품, 화폐는 과도적으로 잔존하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는 물질·경제적 생산력이 아직 충분히 발전되지 못한 과도체제이므로 노동계급과 근로인민이 자기의 생활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물질이 부족하다.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과 근로인민은 자기의 생활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물질을 국가기구를 통하여 충분하게 분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국가기구가 분배하지 못하는 물질을 국영상점, 조합상점, 농민시장에서 화폐로 구입한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자본주의적 시장과 상품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화폐의 기능도 또한 현저히 축소된다.

 

14) ≪국가사회주의≫에 관한 사회당 지도부의 왜곡선전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의 사회주의에 대한 비난과 왜곡선전에 종종 등장하는 ≪국가자본주의≫라는 개념은 ≪국가사회주의≫라는 개념과 동의어다. ≪국가사회주의≫는 국가기구가 사회경제발전을 지배하면서 정당한 분배, 노동조건 개선, 기간산업의 국유화 등을 추진하는 자본주의의 한 형태다. ≪국가사회주의≫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한 형태인 ≪국가자본주의≫다. 근대 독일의 역사적 경험이 말해주듯이, ≪국가사회주의≫는 민족사회주의로 변모하였고 결국 히틀러의 극악한 파시즘으로 전화되었다.

그런데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은 파렴치하게도 ≪현실 사회주의≫를 ≪국가사회주의≫라고 왜곡하였다. 그들의 비난과 왜곡선전에 따라오는 것은 이른바 ≪당의 독재≫와 ≪국가기구의 행정명령체제≫라는 따위의 용어들이다.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은 당관료들의 관료주의적 통제와 형식주의를 ≪당의 독재≫라고 왜곡하였고, 국가관료들의 관료주의적 통제와 형식주의를 ≪국가기구의 행정명령체제≫라고 왜곡하였다. ≪전체주의 국가≫ 또는 ≪병영국가≫라는 왜곡선전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때로는 ≪관료적으로 타락한 노동자 국가≫라는 악선전으로 비난하기도 한다. 이런 따위의 왜곡선전들은 흔히 ≪반스탈린주의≫라는 구호로 통칭된다.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이 집요하게 자행하고 있는 왜곡선전, 즉 ≪반스탈린주의≫로 통칭되는 왜곡선전에 관련해서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이 사회주의 체제의 고유한 본성인 집단주의를 전체주의로 왜곡하였다는 사실이다. 개인주의가 전체를 허구적 관념으로 보고 개체만을 실체로 인정하는 궤변인 것처럼, 개체를 허구적 관념으로 보고 전체만을 실체로 인정하는 전체주의도 역시 궤변이다.

집단주의가 개인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명백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전체주의로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집단주의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사회적 의식에 대비되는 사회적 존재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총체에서 규정되는 사회적 존재라는 의미)라는 진리에서 도출되는 사회관에 기초하는 이념으로서, 개인주의와 전체주의의 양극적 궤변을 모두 반대한다. 집단주의는 인간이 개별적으로 분리·고립되어 존재할 수 없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집단으로 존재한다는 진리를 내포하는 이념이다.

둘째,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은 사회주의 체제의 집권당과 국가기구의 관료들에게 나타나는 관료주의적 통제와 형식주의를 물고 늘어지면서 ≪반스탈린주의≫로 통칭되는 왜곡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에 관료주의적 통제와 형식주의가 있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문제는 그러한 통제와 형식주의가 사회주의 체제의 본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에서 아직 청산되지 못한 비사회주의적 요인들에 의해서 발생하는 일종의 시행착오라는 점이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관료주의적 통제와 형식주의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당과 국가의 관료들이 인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명령과 지시만을 내리고 인민의 요구와 의사를 무시하는 행위, 그리고 당과 국가의 관료들이 저지르는 부정부패 범죄행위를 의미한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당과 국가의 관료들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관료주의적 통제와 형식주의는 그 체제의 구조적 모순에 의해서 발생하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건설행정에서 발생하는 비사회주의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행되는 노동계급에 대한 부르조아계급의 지배와 착취는 그 체제의 구조적 모순에 의해서 발생하는 본질적인 것이다.

만일 사회주의 체제에서 당과 국가의 관료들에 의하여 저질러졌던 관료주의 통제와 형식주의가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지배와 착취처럼 구조적 모순에 의한 것으로서 가혹하고 폭력적이었다면,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체제가 존속했던 기간동안 그 체제 안에서 반사회주의 폭동이 수없이 전개되어야 했었고,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체제는 전인민적 항쟁에 의해서 타도되었어야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본다면, 1956년에 헝가리에서,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반사회주의 폭동이 일어난 것과, 1980년대 폴란드에서 반사회주의 노동자파업투쟁이 일어난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기인 1989년에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에서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일어난 바 있었다. 헝가리, 폴란드, 알바니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사회주의 정권이 선거에서 패함으로써 ≪평화적으로≫ 퇴진하였다.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체제는 반사회주의 인민폭동에 의하여 타도된 것이 아니라, 관료주의적 통제와 형식주의를 해결하지 못하고 인민과 유리됨으로써 오랜 기간 동안 정치적 기반이 약화되어 가다가 결국 와해되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관료주의적 통제와 형식주의를 발생시킨 것은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 서식하였던 현대 수정주의자들의 집요한 암해책동이었다.

사회주의 체제의 부패·타락한 관료와 인민대중의 관계는 분명히 모순관계다. 그렇지만 그 관계에서 발생된 모순은 사회주의 체제를 해체하지 않고, 사회주의 체제의 내부혁신에 의해서 얼마든지 해소·극복될 수 있었고 또한 해소·극복되어야 했던 그런 모순이었다. 그러나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은 자본주의 체제를 전면적, 근원적으로 해체하지 않고서 개량 또는 개혁에 의해서 해소·극복될 수 있는 모순이 아니다. 그 모순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서 발생되는 근원적인 것이다.

그런데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은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체제에 존재하였던 부패·타락한 관료와 인민대중 사이의 모순과 자본주의 체제에 존재하고 있는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모순을 마치 동일한 것처럼 왜곡하였다. 그러면서 내놓은 것은 관료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사회주의 체제를 민주주의적이고, 인간적인 사회주의 체제로 혁신해야 한다는 궤변이었다. 저들이 그러한 궤변에 매달려야 했던 이유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의 영도적 지위와 역할을 부정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점에서 사회당 지도부의 ≪반조선로동당 구호≫는 신통하게도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의 악선전을 그대로 닮았다. 그들은 ≪국가사회주의≫라는 용어를 그대로 차용하는 한편, ≪국가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수령자본주의≫라는 용어로 슬쩍 바꿔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따위의 어설픈 모방이 무슨 굉장한 것인 양 떠들었다.

≪국가사회주의≫에 관련한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의 악선전은 이미 오래 전에 서구의 강단과 언론에서 나돌아다니다가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기에 이르러 맹위를 떨친 바 있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주위의 관심조차 별로 모으지 못하는 케케묵은 궤변이다. 그런데 사회당 지도부가 유행이 지난 낡은 수입품을 이제서야 들고 나오면서 약간의 소동을 피우는 것을 보면, 그들은 아마 오래 전에 이 땅에 수입된 부르조아 디마고그들의 반사회주의 선전물을 최근에 뒤늦게 탐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말하는데, 사회당 지도부가 반사회주의 선동을 하려면 때를 가려보고 해야 하지 않을까?

 

결론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하는 사회주의적 입장, 민주적 사회주의의 다양한 조류, 신자유주의적 왜곡 이전의 전통적 의미의 사회민주주의, 신좌파적 조류, 급진적 조합주의자, 여러 형태의 노동자주의, 환경생태주의의 여러 경험들, 근본적 평화운동, 여성주의의 여러 경향, 소수자 운동, 급진적인 인권운동, 심지어 급진적 자유주의자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모든 경험을 포괄하고, 의사소통과 민주주의적 경쟁을 인정하여야 한다.≫ 
이것은 이색적인 사조들을 모두 포괄하겠다는 사회당 지도부의 야심적인 주장이다. 이 주장이야말로 그들이 ≪사회주의≫라는 차명으로 출몰한 기회주의 집단이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원래 기회주의의 이론적 기초는 해당 사회에 풍미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이색적인 사조들을 잡탕으로 뒤섞어놓은 절충주의다. 절충주의는 사회주의로부터의 이탈이다.

사회주의라는 개념은 매우 포괄적이다. 조선반도 식민지의 사회주의 운동에는 다양한 사상적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사회당 지도부는 물론이고, ≪자칭≫...는 세력들이 제각기 사회주의 세력임을 자처하고 있다.

그렇지만 조선반도 식민지의 사회주의 운동은 사상적 스펙트럼의 요란스러운 분광에 넋을 빼앗기고 있어서는 안 되며, 눈길을 사상의 광원으로 돌림으로써 그 광원에서 분출되고 있는 무한한 사상·정신적 에너지를 공급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사상의 광원은 김일성주의다. 조선반도 식민지의 사회주의 운동은 사상의 광원인 김일성주의에 의하여 전개되는 김일성주의 운동으로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일성주의 운동은 20세기에 등장하였던 온갖 사회주의 운동이 자기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한 이후 미 제국주의 세력을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 연합세력이 광분하는 사회주의 운동의 최대 시련기에도 주체의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혁명활동을 더욱 위력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김일성주의의 세계관적 진리와 사상적 위대성과 혁명적 생활력을 실천으로 입증하였다. 자주시대의 사회주의는 다름 아닌 김일성주의이며, 21세기의 진보적 인류가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은 곧 김일성주의 혁명이다.

사회당 지도부는 민족민주운동진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조선로동당 추종세력≫과 ≪근본적 평화운동세력(사회당)≫의 대각이 존재하고 이 사이에 ≪반조선로동당 입장 표명을 주저하는 평화적 통일운동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의 광범위한 집단이 있다.≫

그들의 자의적인 분석에 따르면, 민족민주운동진영은 대략 삼등분된다. ≪조선로동당 추종세력≫, ≪조선로동당 반대세력≫,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광범위한 중간세력이다. 사회당 지도부는 민족민주운동진영을 이처럼 조선로동당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중심으로 하여 적아로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당 지도부가 조선로동당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중심으로 하여 운동진영을 구분하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그 의도는 명백하다. 그들은 조선반도 식민지에서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여러 종류의 진보적 사회·정치운동들 가운데서 이른바 ≪조선로동당 추종세력≫을 배제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여기에서 배제되어야 할 세력은 조선로동당 추종세력, 그리고 구태의연한 반미지상주의, 민족제일주의, 통일지상주의 세력≫이라고 서슴없이 떠들고 있다. 이 지점에서 드러나고 있는 사회당 지도부의 의도는 노골적이다. 그들은 조선로동당을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중간세력,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평화적 통일운동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이른바 ≪조선로동당 추종세력≫을 고립·배제하고 자기들이 운동진영의 주도권을 장악해보려는 것이다.

그들은 ≪반조선로동당 선언은, 일차적인 청자를 조선로동당이 아니라 한국에서 조선로동당을 추종하는 세력으로 하여 행해진 발언≫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반조선로동당 선언≫을 내놓은 의도가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그들은 ≪조선로동당을 추종하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조선로동당의 지도사상, 역사, 한반도 정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사회체제에 관한 포괄적 논쟁을 통하여 계몽하고 낡은 미신을 타파해야≫한다고 떠들어댄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사회당 지도부의 ≪반조선로동당 선언≫은 그들이 품고 있는 종파주의적 적대감의 투영이다. 민족민주운동진영을 자기들 편이 아니면 적으로 분할하면서, 이른바 ≪조선로동당 추종세력≫을 고립·배제해보겠다는 의도는 종파주의적 범죄심리의 발로다.

어느 나라의 운동사에서건 종파주의자들은 언제나 운동진영의 주변부를 뱅뱅 맴돌면서 운동진영의 중심부를 중상·모략한다. 종파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진리라고 믿는 궤변에 대한 맹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현실을 논리적으로 파악하는 지능지수가 현저하게 저하되어 있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위에서 언급하였지만, 사회당 지도부가 내놓은 ≪반조선로동당, 반자본주의 선언≫은 종파주의자들의 그러한 공통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당 지도부는 ≪반조선로동당 선언≫을 내놓고 운동진영의 광범위한 중간세력들에게 사회당이냐 아니면 ≪조선로동당 추종세력≫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반북≫이냐 ≪종북≫이냐를 선택하라는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강요다.

사회당 지도부의 어법과 미 제국주의자들의 어법은 놀랍게도 일치한다. 미 제국주의자들이 ≪반테러 선언≫을 내놓고 전 세계를 향해서 ≪테러반대≫냐 아니면 ≪테러지지≫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당 지도부는 ≪반조선로동당 선언≫을 내놓고 조선로동당에 대한 반대냐 지지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한 줌도 안 되는 극소수 기회주의자들이 자기들 멋대로 운동진영을 양분하려는 것은 미 제국주의자들의 행위를 흉내내려는 범죄적 모방심리가 빚어낸 가소로운 짓이다.

세계혁명의 역사적 경험은 사회주의와 노동계급을 배신한 현대 수정주의자들이며 너절한 기회주의자들이 어떻게 변질·타락하였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카우츠키, 베른스타인, 쉬미트, 애들러로 이어지는 추악한 수정주의 종파들은 사회주의와 노동계급을 배신한 뒤에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부르조아지들과 야합하여 사회주의 혁명운동을 공격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사회민주주의≫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출몰하면서 노골적으로 반공노선을 들고 나왔다. 1947년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그것이다.

수정주의자들과 사회개량주의자들은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를 부정하면서 기회주의적인 계급화해론을 설교하였다.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사회주의 체제로 평화적으로 이행할 것이므로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타파할 것이 아니라 부르조아 민주주의를 더욱 확장하고 부르조아 의회에 진출하여 정치세력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수정주의는 언제나 사회주의 운동 내부에서 그 운동을 갉아먹는 악성 박테리아였으며, 사회개량주의는 사회주의 혁명운동 외부에 존재하면서 그 운동을 망쳐놓는 파괴자였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집권당에 침습했던 현대 수정주의의 종파적 탁류는 1953년 3월에 스탈린이 서거한 뒤에 열렸던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1956년 2월)에서 본격적으로 방류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비에트 사회주의가 관료주의적으로 왜곡되었으므로 이를 혁신해야 한다는 이른바 ≪사회주의 혁신론≫을 들고 나왔다. 그로써 그들은 ≪스탈린에 대한 개인숭배 비판≫을 떠들면서 이른바 ≪소비에트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사회주의 혁명노선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들은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의 ≪계급화해론≫을 제국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 사이의 ≪체제화해론≫으로 전환시켜놓고서, 이른바 ≪제국주의자들과의 평화공존≫, ≪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세계전쟁 불가피론에 대한 수정≫,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다양성≫ 등의 궤변을 늘어놓았다.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는 고도로 발달된 미래의 새로운 산업사회로 수렴될 것이라는 궤변도 서슴없이 늘어놓았다.

현대 수정주의의 괴수 흐루시초프가 장악한 소련공산당은 1957년에 ≪산업의 분산화정책≫이라는 명목으로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체계적으로 훼손하기 시작하였고, 1959년에는 흐루시초프 자신이 미국을 방문하여 아이젠하워와 정상회담을 열었으며, 1962년에는 미 제국주의 세력의 정치·군사적 압박에 굴복하고 쿠바에 배치했던 미사일을 철수하는 투항정책으로 나오면서 사회주의 혁명노선을 유린하였다.

그렇다면 한때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혁명적 기치를 들었던 소련공산당이 어찌하여 그처럼 어이없게 현대 수정주의자들에게 완전히 장악되었을까? 그 원인을 소급하여 추적해 올라가면, 1936년에 채택된 새로운 헌법에서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이 이른바 ≪전인민적 국가≫로 이행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이 전인민적 국가로 이행하였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가 사라지고 이른바 ≪전인민적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것은 소련공산당의 착각이었다. 당시 스탈린이 이끌었던 소련공산당은 소비에트 민주주의가 고도의 발전단계에 이르러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가 조락하면서 ≪전인민적 국가≫로 이행하였다고 착각하였던 것이었다.

사회주의의 혁명과 건설을 위하여 투쟁하는 장구한 행정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노선을 성급하게 폐기하는 것은 명백한 우경적 편향이었다. 그 우경적 편향은 그로부터 10여 년 뒤에 세계혁명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되었으며, 다시 그로부터 10년 뒤에는 소련공산당을 현대 수정주의가 침습·장악하게 만든 사상적 원인으로 되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노선을 폐기한 오류 때문에 소련공산당은 제국주의 체제를 타파하는 세계혁명의 수행과정에서도 역시 소극적이고 안이한 태도로 일관하였으며, 제국주의 세력과의 절충과 타협을 능사로 삼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중대한 시기에 소련공산당은 조선, 독일, 오스트리아를 분할·점령하려는 제국주의 세력의 책동을 단호하게 격파하지 못하고 절충·타협했으며, 전후 만주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장개석 반동정권과 밀약을 맺음으로써 제국주의 세력에게 유리하게 양보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스탈린 시기의 소련공산당 안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노선을 폐기하는 우경적 편향이 발생하였던 근본원인은 또 무엇일까? 그 근본원인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철학이 지니고 있는 오류에 있다. 자연사의 진화과정과 사회·역사의 발전과정을 동일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철학적 원리로 해명하였던 오류를 의미한다. 이러한 세계관의 오류는 사회주의 자동발전론, 제국주의 자동소멸론으로 재생산되었다. 자연이 진화과정을 자동적으로 밟아가듯이, 사회주의 체제도 자동적으로 발전되고 제국주의 체제도 역시 자동적으로 소멸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제국주의 세력과의 투쟁을 회피하는 ≪혁명전쟁 회피론≫을 불러오게 되고,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타파하려는 혁명노선을 폐기하고 그 체제와 평화적으로 공존·경쟁하는 현대 수정주의 노선으로 변질되고 만다.

이른바 ≪사회주의 자동발전론≫은 사회주의 혁명 이후의 사회·역사의 발전을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의 사회적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과업으로 국한시키는 ≪생산력주의≫의 편향을 불러왔다. 사회주의 체제의 발전동인을 혁명과 건설의 주체에서 찾지 못하고, 사회적 생산력의 증대라는 객관적 조건에서 찾으려 했던 소련공산당을 묶어놓았던 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의 오류였다.

소련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노선을 폐기한 우경적 편향에 기울어졌던 때로부터 30년이 지난 1986년 2월에 열렸던 소련공산당 제27차 대회에서는 현대 수정주의의 종파적 탁류가 지배적으로 되었다. 그들은 ≪현실주의 노선≫이라는 구실로 사회주의 혁명노선을 완전히 포기했으며,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기업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자영업을 촉진함으로써 개인의 권리, 자유, 복지를 향상시키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개방과 경제협력을 추진하였으며, 제국주의자들과의 군축협상을 시작하였다.

1956년의 20차 당대회에 등장했던 후르시초프에서 시작하여 1986년의 27차 당대회에 등장했던 고르바초프로 이어진 일군의 사회주의 배신자들은 30여 년 동안의 집요한 반사회주의 암해책동 끝에 ≪개혁≫과 ≪개방≫이라는 투항의 백기를 들고 미 제국주의자들과 손을 잡았으며(1989년 12월의 몰타회담), 결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를 와해시키고 말았다.

그 충격적 파장에 휘말린 독일민주공화국, 폴란드인민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사회주의공화국, 헝가리인민공화국,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연방공화국, 알바니아인민공화국, 불가리아인민공화국, 루마니아사회주의공화국 등 8개 나라에서도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체제가 종말을 고했다. 그러므로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은 사회주의 혁명의 패배가 아니라 현대 수정주의, 기회주의의 파산을 의미한다.

중국공산당은 1982년에 이른바 ≪유(唯)생산력론≫이라는 간판을 내건 뒤로 지난 20년 동안 차츰 ≪시장사회주의≫로 변질되었다. 2000년 2월 25일에 장쩌민은 이른바 ≪3개 대표론≫이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중국공산당이 중국의 선진사회 생산력 발전요구를 대표하고, 중국의 선진문화 창달을 대표하며, 중국 인민의 근본이익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주의 현대화 과업≫의 수행이라는 미명 아래 자본가의 입당을 허용하였다. 베트남공산당은 1986년의 6차 당대회에서 이른바 ≪쇄신정책≫의 간판을 내건 뒤로 차츰 ≪시장사회주의≫로 변질되었다. 중국공산당과 베트남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노선을 폐기하고 생산력 중심의 사회주의 발전노선을 들고 나오면서 소련공산당의 우경적 편향과 그에 따른 정치적 실패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

현대 수정주의의 종파적 탁류가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체제를 몰락시켰던 때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오늘, 바로 그 탁류는 사회당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출몰하였다. 오랜 사상적 혼란기를 벗어나 날로 장성·발전하고 있는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저해하기 위해서...

세계혁명사의 역사적 경험이 증언하고 있는 대로, 사회주의와 노동계급을 배신한 추악한 수정주의, 기회주의 종파세력은 언제나 혁명운동 안에서 출몰한다. 그들은 노동계급의 철학적 세계관의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진리를 제거하고 부르조아 반동이론으로 대체하려고 날뛴다. 그들은 정세변화에 따라 적아 사이에서 끝없이 동요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결국 반혁명세력과 손을 잡고 미 제국주의 세력에게 투항하게 될 것이다.

현대 수정주의, 기회주의 종파세력은 현란한 혁명적 언사로 치장한 궤변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을 잠시 기만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결코 민중의 마음을 얻지는 못한다. 독설과 궤변을 토해내고 있는 그들은 민중으로부터 고립되고 배척을 받아 결국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것이다. 지난 20세기 후반에 혁명적 언사를 남발하면서도 실제로는 사회주의 원칙을 제거하고 노동계급을 배반했던 현대 수정주의자들의 비참한 말로가 그러했던 것처럼...

2019/10/13 17:45 2019/10/13 17:45

분류없음2019/10/08

禮生於有而廢於無(예생어유이폐어무) 예라는 것은 재산이 있는 데서 생겨나고 재산이 없는 데서 사라진다. 故君子富(고군자부) 好行其德(호행기덕) 그런 까닭에 군자가 부유하면, 덕을 즐겨서 실천하고, 小人富(소인부) 以適其力(이적기력) 소인이 부유하면, 이로써 자기의 능력에 닿는 일을 하게 된다. 淵深而魚生之(연심이어생지) 못은 깊어야 고기가 생겨나는 것이고, 山深而獸往之(삼심이수왕지) 산은 깊어야 짐승들이 오가게 되는 것이며, 人富而仁義附焉(인부이인의부언) 사람은 부유해야만 인의(仁義)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2019/10/08 15:30 2019/10/08 15:30

분류없음시설노련 / 전국시설노조 /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성명서

시설노조는 무엇이 두려워 시설노조 서울지역본부 천 여명의 조합원에 대한 집단제명을 폭력적으로 자행했는가!!

시설노조 서울본부 산하 동우공영지부, 동우에스엠지부, 신천개발지부, 고려대시설지부, 영등포유통지부의 천 여명의 조합원들은 지난 6년간 신규조직 하나를 만들면 두 개가 깨지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시설노조를 만들고 지켜왔고, 기업별 지부를 넘어 연대하고 투쟁하는 기풍을 만들어 왔다. 눈 앞의 작은 실리보다는 산별노조의 정신에 입각한 조직운영과 공동사업을 통해 2,500명 조합원과 지하에서 신음하는 70만 시설노동자의 작은 희망이 되고자 했다. 6년이 지난 현재, 시설노조는 비정규 노조 특유의 역동성과 계급성, 전투성을 잃어버리고 기업별 관성과 기회주의가 고착되어 가는 시점에 들어섰다. 여기에 더해 이진희 위원장의 무능과 독선, 비민주성은 이러한 반동적인 흐름을 가속화시켰다.

위기를 위기라 인정조차 하지 않는 위원장의 태도...

천 여명의 조합원들은 현재 시설노조의 구조와 운영방식으로는 더 이상의 운동적 의미를 지닐 수 없다고 판단하고 내부투쟁 속에서 시설노조를 올곧게 세우기 위한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왔다. 그러나 치열한 내부투쟁을 거치면서 확인한 것은 시설노조가 더 이상은 되돌릴 수 없는 위기상황이라는 인식이었다. 위원장 개인의 독선과 아집으로 투쟁주체들의 의견을 묵살한 채 ‘사실상의 직권조인’으로 지부 차원의 투쟁을 말아 먹고, 비원칙적인 독단적 결정을 남발하고, 사무처장과 부위원장단들이 사퇴하고, 회계처리조차 온갖 의혹이 난무하고, 상급단체의 사업들(전략조직화 사업, 공공산별건설 사업 등)을 방기하고, 게다가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며 천 여명의 조합원이 조합비 납부를 유예하고 있는 상황이 위기상황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지도부 총사퇴와 비대위 구성만이 극복방안이다!!

우리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지도부 총사퇴 이후 비상대책위원회(또는 산별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자는 제안을 6월 14일 시설노조 3-5차 중앙위원회에서 공개적으로 했다. 그러나 이러한 충심어린 제안에 대해 이진희 위원장은 4개 지부에 대한 사고지부 처리건을 통과시켰고, 징계당사자들을 퇴장시킨 상황에서 시설노조 서울본부의 천 여명의 조합원을 집단 제명하는 초유의 사태로 두 번이나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사고처리과정이나 징계과정에 있어서도 규약과 상벌규정에 의거한 징계당사자에의 사전통보, 조사, 소명의 기회 등의 절차를 전혀 무시한 채 위원장 독단으로 진행된 사실은 노골적인 어용노조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천 여명의 조합원에 대한 집단제명이 원천무효임을 밝히는 바이다.

집단제명으로도 물러서지 않겠다!!

우리는 집단제명 사태가 반민주적 방식에 의한 폭거임을 분명히 인식하며, 내부투쟁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집단제명 사태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미조직 시설관리 노동자 전략조직화 사업과 공공산별노조 건설사업에 매진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서울 중부지역 미조직 시설노동자 전략조직화 사업’을 진행 중이며, 각 지부별 총회나 대의원대회를 통해 공공산별노조(또는 서울지역공공서비스노동조합) 건설을 결의해 왔다.

미조직 시설노동자 전략조직화 사업과 지역 중심의 산별노조 건설로 민주노조 혁신의 길에 앞장 설 것이다!!

이러한 진행 중인 전략조직화 사업과 지역을 골간으로 하는 산별전환 결의를 바탕으로 우리는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의 길을 선도할 것이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무늬만 산별노조‘인 시설노조의 경험을 뼈아프게 반성하는데에서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공공부문의 미조직 노동자와 함께 지역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투쟁하는 ’진정한 산별노조‘ 건설에 총력 매진할 것이다.

2006년 6월 23일 (금)

민주노총 / 공공연맹 / 전국시설관리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동우공영지부, 동우에스엠지부, 신천개발지부, 고려대시설지부, 영등포유통지부

 

 

공공운수노조 지역지부 연구

현재의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의 건설은 2006년 전국시설관리노동조합의 5개 기업지부(신천개발지부, 동우공영지부, 동우에스엠지부, 고려대시설지부, 영등포 유통지부) 가 전국시설관리노동조합의 혁신안을 주장하다가 제명당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5개 지부는 전국시설관리노동조합의 제명 처리 이후, 현재의 기업별 지부를 해산하고 산별정신에 기반한 지역중심 산별노조 건설을 위해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2006년 7월 11일,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준비위원회는 창립대회를 열고, ‘지역연대와 실천으로 차별 없는 세상건설’이 기치를 내걸고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노동조합’을 출범시켰다. 2006년 11월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이 출범한 이후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노조는 2006년 12월에 공공노조에 가입하여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로 조직을 개편하였다.

 

http://road3.kr/?p=10259&cat=146

 

 

민주노총은 지난 12월27일 13차 중집위를 열어 정기대의원대회(1월18일) 상정안건과 현안문제를 심의확정했다.

 

...
이날 회의에서는 또 전국시설관리노조(위원장 이진희)가 민주노총 직접 가맹을 신청한 것과 관련해 이미 민주노총에 가맹해 있는 동일업종 조직인 시설노련(위원장 봉찬영)과의 관계를 고려해 가입승인을 보류하고, 이후 원활한 관계설정을 주문키로 했다.

 

 

2019/09/21 23:51 2019/09/21 2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