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똥에서는 왜 요거트 냄새가 날까? - 인류와 미생물의 공진화

-육아하며 알게 된 이야기들

 

다인이와 세상에서 만난 지 어느새 여섯 달이 지났다. 다인이와 조리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던 날이 떠오른다. 안는 것도 서툴러 행여나 놓칠 새라 온 몸에 힘을 주고 엉거주춤 걸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오니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재우는 모든 일들이 곧바로 실전이 되었다. 똥기저귀를 가는 것도 처음 해보는 일이니 매번 여기저기 묻히고 흘릴까봐 머리칼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예전에 얼핏 흘려들었던 ‘애기 똥은 냄새도 향기롭다’던 어른들의 이야기는 똥기저귀를 가는데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고 나서야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똥 기저귀에서는 향기라기엔 좀 과해도 기분 나쁘지 않은 시큼한 냄새가 났다. 익숙한 냄새인데.. 이게 뭐였더라.. 그렇다, 딱 요거트 냄새다. 애기가 먹는 게 모유밖에 없으니 모유가 발효되어서 난 냄새일터다. ‘우유 -> 발효(유산균) -> 요거트’라는 익숙한 과정을 떠올리며 세상사 참 단순명료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인이 뱃속 유산균은 대체 어디서 온 거지? 가물가물한 생물학 수업을 되짚어보면, 산모의 양수 안은 완전한 무균상태인데다 정자와 난자가 만난 수정란이 분열 · 성장하는 과정에 유산균이 끼어 들 자리는 없다. 찾아보니 호기심에서 출발했던 이 질문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이런저런 글과 논문을 찾아본 결과 신생아 장내미생물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관심가지고 연구 중인데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가장 널리 회자되는 가설은 신생아들이 질식분만(산모의 질을 통해 신생아를 분만하는 것으로 자연분만을 포함한다.) 과정에서 산모의 질을 지날 때 질/항문 등에 있던 미생물과 최초로 접촉한다는 것이다. 질식분만한 신생아의 장내 미생물무리는 엄마의 질 미생물무리와 유사하고, 제왕절개로 태어난 신생아의 경우는 엄마의 피부 미생물무리와 유사하다. 질식분만 과정에서 신생아 장내에 정착한 미생물들은 산소를 소모하여 무산소 환경을 만들고 비피도박테리움과 같은 무산소균이 정착하도록 돕는다. 이 때문에 질식분만으로 출생한 신생아들의 장내 미생물무리가 제왕절개에 의해 태어난 신생아들보다 더 다양하고 많다. 가설이라고 언급한 것은, 유럽에서는 한동안 이런 가설에 근거해 제왕절개 분만한 아이들에게 산모의 질액을 발라주는 처치가 시행되었는데 나중에 조사를 해보니 그래도 자연분만한 아이들과 장내미생물 구성이 다르더라는 거다. 아기가 좁은 산도를 통과하는 과정에 아직 우리가 모르는 작용이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영아의 장내미생물총은 출산 방법뿐만 아니라 섭취하는 음식에 따라서도 변화가 크다. 모유를 먹고 자란 아기는 분유를 먹은 아기들에 비해 비피도박테리움 비율이 더 높다. 모유에 함유된 여러 종류의 올리고당 중 HMO라는 올리고당은 신생아가 분해효소를 만들지 못한다. 이 올리고당은 비피도박테리움의 먹이가 된다. 비피도박테리움 중 HMO를 가장 잘 분해하는 인판티스라는 균은 아기의 면역계를 교육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신생아가 획득한 장내미생물무리는 단지 모유를 소화시키는 데에만 이점을 주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연구는 질식분만, 모유수유를 한 경우가 제왕절개, 분유수유한 경우 보다 알러지 질환과 아토피피부염 발생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보고한다. 분만 방식의 차이에 따른 아토피 피부염 위험도는 청소년기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있다. 출산 과정에서 획득한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면역체계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측된다.

 

출산, 수유과정과 연결된 아기의 뱃속 미생물 생태계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인간과 미생물이 공진화해온 과정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인간의 출산, 수유 환경에 적응한 미생물무리가 있고, 그 미생물무리가 제공하는 이점에 적응한 인간이 있다.

 

최근 발표되는 연구들을 살펴보면 장내 미생물 구성이 미치는 영향은 보다 전신적이고, 상시적이다. 식습관이 바뀌자 장내미생물 구성이 바뀌었고, 그것이 비만을 유도했다는 보고가 있다. 그래서 유산균은 다이어트 보조제로도 활용되고 있다.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보면 유산균 제품을 먹고 아토피 피부염이 나아졌다는 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정확한 기전까지야 아직 알 수 없지만 장내미생물 생태계가 면역 질환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도 충분하다. 최근에는 우울증 환자와 보통 사람들 사이에 장내미생물 생태계가 달랐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었다. 한의학에서는 대장이 피부와 연관되어 있다고 바라보고, 피부질환의 치료에 소화기 약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오랜 기간 쌓인 경험에서 나온 통찰인지도 모르겠다.

 

약간 비틀어 보면, 최근 쏟아지는 이러한 연구 결과는 사실 ‘유산균’을 상품화하려는 식품·제약 기업들의 연구 펀딩 덕분이다. 각종 연구로 장내미생물의 다양한 효험을 증명하는 통에 어느새 ‘유산균’이 만병통치약으로 등극 중이다. 당장 상품화하기 쉬운 제품에 연구비가 집중되다 보니 장내미생물 연구가 대부분인데 인체 곳곳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미생물들이 무리지어 살고 있고, 이 녀석들도 지금 내 몸과 모종의 영향을 주고받는 중 일터다.

 

나도 이런 저런 논문, 기사들을 찾아보고 나니 귀가 얇아져 유산균 제품을 하나 구입하게 됐다. 하지만 웬걸, 한 2주일 쯤 먹고 나니 뱃속이 수시로 부글거리는 덕분에 잠도 편히 못 자게 되어 복용을 중단했다. 특정 유산균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장내미생물 생태계가 인류와 공진화했던 조건에 맞게 조정하는 게 중요한 것인데 얄팍한 마음에 곁가지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공진화는 현생인류가 출현한 20만 년 전에 완료된 게 아니다. 헬리코박터균은 각종 위 질환과 위암 유발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 출신이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헬리코박터 균을 보유한 경우 오히려 위암 발생률이 낮았다고 한다. 인류와 미생물은 서로 적응하기 위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유럽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효과가 있던 유산균이 한국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인간과 미생물의 공진화와 비슷한 사례는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소와 같은 반추동물은 초식동물이지만 체내에서 많은 단백질을 생성해 저장한다. 엄밀하게는 소의 위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이 생성하는 것이니 체내라고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입~항문은 공간적으로 체외다.) 소는 많은 풀을 먹고 되씹으며 미생물들에게 영양분을 제공하고, 미생물들은 풀의 분해를 돕고 단백질도 제공한다. 진딧물은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작은 동물이지만 그 진딧물 한 마리의 몸 안에는 100만 마리 이상의 부크네라라는 미생물이 거주한다. 진딧물의 먹이는 식물의 수액인데 이걸로는 필수 아미노산을 생성할 수 없다. 부크네라는 진딧물의 특정 세포 안에 거주하면서 진딧물과 협동하여 필수 아미노산을 생산한다.

 

생태계에 존재하는 공진화 사례는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 많고 인간과 미생물의 관계 역시도 이제 탐구를 시작하는 단계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이 다른 존재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적응해온 공진화의 결과는 최근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변화를 따라잡기에 벅차다.

 

그래서 진화의학에서는 인간이 진화의 결과로 적응한 환경과 최근 변화된 환경 사이의 미스매치에 주목한다. 10만 년 전의 생활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다. 인간을 닫힌 계(系)로 사고하는 데서 벗어나 현생 인류로의 진화가 주변 생태계와 어떻게 적응한 결과인지를 성찰해보는 게 여러모로 유익하다는 것이다. 항생제를 복용하고서 변비나 설사로 고생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변비, 설사가 항생제의 주요 부작용 중 하나인 이유는 항생제가 장내미생물 생태계를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본 미생물의 역할을 참고하면 항생제가 장기적으로 인체에 뜻밖의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는 점까지도 고려해볼 수 있다. 게다가 항생제의 남용은 항생제내성균의 출현을 늘리는 방향으로 공진화를 촉진하고 있다.

 

자연분만, 모유수유가 제왕절개, 분유수유보다 무조건 낫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 자연분만을 택할 수도, 제왕절개를 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인류가 진화의 과정에서 적응했던 환경을 참고하여 도움이 되는 조치를 모색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아기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때로는 여간 더디 가는 게 아니다. 하루 종일 생각이 꼬리를 무니 아기 똥 냄새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이르렀다. 이제 이유식을 시작하면 요거트 냄새는 없어지고 익숙한 똥 냄새가 난다고 한다. 어른들은 그 똥 냄새도 향기롭다 하셨던 걸까? 수 만겁 이어져온 어머니의 어머니들과 아버지의 아버지들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