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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기억-단편영화에 대한 단상들

<단편영화산책>협동과정 서사창작과 강 지 혜

 

매혹의 기억-단편영화에 대한 단상들

 

  문득 쏟아지는 수많은 영상물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컴퓨터 그래픽 등 영상 기술의 발전으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것들을 바로 마주보게 된다. 아마도 세월이 갈수록 영화는 무섭게 발전해 갈 것이다. 하지만 또 이런 생각이 든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플롯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홀리 마운틴>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70년대 만들어졌으나 현재의 내로라하는 여느 컬트영화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이미지의 힘은 그걸 가능케 하는 기술에도 있지만 이미지를 존재케 하는 정신과 그 플롯에 더 있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지난 시간, 한국의 70, 80년대 영화를 보았다. 첫 영화 <아침과 저녁사이>의 실험적인 이미지들이나, <백일몽> 같은 재미있는 플롯부터 <칸트 씨의 발표회>처럼 강한 메시지까지, 사실 조금 놀랐다. 한국영화가 눈에 들어온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물론 그전까지 변방에서 아무도 잘 보아주지 않는 영화를 보는 이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상황이 역전되었다고 해야 하나, 이제는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 사회에서 시를 쓰는 나는 그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격렬하고 실험적인 70, 80년대와 달리 90년대 영화들은 잔잔하고 문학적이었다. <우중산책>에서 읽히는 여인의 비에 젖은 마냥 질척대고 비참한 안생이나 <가변차선>의 마치 황석영 소설을 읽는 듯한 문학적인 느낌, <지하생활자>처럼 불 꺼진 지하까지 관객을 끌고 내려갔다가 한바탕 불을 질러버리는 광기의 모습까지. 러닝타임 내내 강렬한 몸짓은 없지만 어떤 순간 감정이 폭발하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 미군이 이라크 여자아이를 강간한 사건에 대한 글을 써간 적이 있다. 써간 나를 비롯 또래들은 강한 목소리를 띤 글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교수님은 요즘 나이든 노인네들이 읽기엔 이 글의 목소리는 너무 약하다고 느꼈을 거라 하셨다. 그들의 시대엔 더 치열하고 처절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에 비해 요즘시대는 어떤 투쟁들이 지하세계로 내려가 버리고 그 위에선 반쯤 벗은 연예인과 빠르게 바뀌는 가전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 같다.

문득 70년대에서 90년대로 내려오며 영화 내의 거친 면들은 사라지고 내성적으로 바뀐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기저에 깔린 지뢰를 감지하며 영화를 보았던 시간이었다. 억압은 어느 시대든 존재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더 영악하고 조용하게 이 사회를 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시 영화도 진화한다. 진화일까? 수업을 통해 확인하는 시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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