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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다중지성의 정원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읽기 세미나팀입니다.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읽기 세미나는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운동방식은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세미나는 2시간 동안, 요약 발제 후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읽기 세미나에서 읽을 교재는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존 홀러웨이, 갈무리, 2002)입니다. 세미나 회비는 월 2만 원입니다. 2만 원을 내시면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읽기 세미나뿐만 아니라 건축 도시공간 그리고 사회적 삶 세미나, 생명과 혁명 세미나, 출판하라 세미나, 미학/시학 세미나, 불어 번역 세미나, 한국어 세미나, 정신분석학 세미나, 성/자본주의/정치 세미나, 영어 강독 세미나 등 다중지성의 연구정원에서 진행되는 세미나에 개수에 관계없이 참가하실 수 있습니다.
세미나 시간은 일요일 오전 10시입니다. 장소는 서울 지하철 2, 6호선 합정역과 2호선 홍대입구역 중간 성지빌딩입니다.
자세한 문의는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읽기 세미나 게시판(waam.net/xe/seminar_r)이나 길잡이 돌민(010-9935-9949)으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다중지성의 정원 약도
다중지성의 정원 찾아오시는 길
1. 지하철 2, 6호선 합정역 2번 출구 ― 홍대입구역 방면 약 150M 전진 ― 우리은행에서 좌회전 후 40M 전진하면 오른편에 횡단보도가 있습니다 - 횡단보도를 건너 Coffee and A 골목으로 들어감 - 30M 전진하면 오른편 위쪽에 다중지성의 정원 간판이 있습니다.
2.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1번 출구 ― 합정역 방면 약 250M 전진 ― (구) 청기와 주유소를 지나 20M 전진하면 오른편에 경남예식장이 있습니다 - 경남예식장과 현대자동차 대리점 사이 골목으로 들어감 ― Befurco에서 좌회전 후 20M 전진하면 왼편 위쪽에 다중지성의 정원 간판이 있습니다.
3. 버스(경남예식장 정차) : 파랑(간선) 271, 570, 602, 603, 604 초록(지선) 5712, 5714, 6712, 7012, 7016, 7711, 7716 빨강(광역) 1100, 1200, 921 검정(공항) 602
4. 마을버스(경남예식장 또는 우리은행 정차) : 마포구 05, 06, 09, 1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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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할러웨이와 솔 피치오토의 '제1장 서론 : 유물론적 국가이론의 전개'(존 할러웨이와 솔 피치오토 편, "국가와 자본", 청사, 1985)를 읽고
1.
결론부터 말하자. 존 할러웨이와 솔 피치오토의 글은 생각보다는 덜 심난하다. 할러웨이와 피치오토의 글이 있는 책의 제목인 "국가와 자본"을 보는 순간 1997년 아이엠에프(IMF) 직후인 1998년에 스무 살이 되어, 2002년 고 신효순 심미선 씨 장갑차 사망 사건과 2008년 촛불봉기를 지난 나는 심난했기 때문이다. 국가와 자본이라는 제목이 피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러웨이와 피치오토의 글에 대한 발췌문을 쓰는 이유는, 2012년 10월 28일 일요일 오전 10시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시작하는 존 홀러웨이의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갈무리, 2002) 읽기 세미나에 초대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할러웨이와 피치오토의 글에 대한 발췌문을 홀러웨이와 피치오토는 무슨 목적으로 무슨 내용을 썼는가를 중심으로 발췌할 것이다.
2. 홀러웨이와 피티오토는 무슨 목적으로 썼는가? 무슨 내용을 썼는가?
"이 책은 자본주의 국가에 관한 유물론적 이론의 발전에 기여할 목적을 지니고서 마련되었다. (중략) 이 책에서 우리는 독일의 '국가 도출'논쟁을 이루는 주요한 논의들 중 몇 가지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단순히 하나의 흥미있는 현상으로서 혹은 다른 '학파들'로부터 분류된 '독일학파'로서가 아니라 영국에서 종종 마르크스주의 국가이론을 대표한다고 간주되는 그러한 이론들에 대한 근본적 비판의 형태로서 제시한 것이다.
이 서문의 의도 중 하나는 그러한 비판을 더욱 명료화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현재 영국에서의 마르크스주의적 논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저자들, 정치이론가들 그리고 경제학자들이 취하는 접근법을 고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우리 자신의 견해로는 영국의 논쟁을 이루는 저변에는 이분법적 경향이 흐르고 있는 듯 보인다. (중략) 반드시 잠재적 경향 이상의 것이라고 볼 수 없겠지만 이러한 이분법적 경향의 양축이 공동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불연속적 형태들로서 정치와 경제 사이의 관계에 대한 부적절한 이론화이다. 우리의 제안은 바로 앞으로 시도되어야 할 작업이란 이러한 관계에 대한 적절한 이론을, 즉 자본제적 생산의 분석에 견고히 입각하여 정치의 특정성과 정치적 형태의 발전 양자를 모두 규명해 줄 수 있는 이론을 발전시킴으로써 이러한 이분법적 경향을 분쇄하는 것이다. 엄밀하게는 이것이 바로 현금 독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논쟁의 목적인 것이다. 우리는 현재 영국에서의 국가이론들에 대한 우리의 비판을 개진한 수 논쟁의 과정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한 다음 그 약점들을 노출시키고 분석이 심화될 수 있기 위해서 수행되어야 할 방법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존 할러웨이와 솔 피치오토의 '제1장 서론 : 유물론적 국가이론의 전개', 9~10쪽.)
길게 인용한 부분에서 예고한 것처럼 할러웨이와 피치오토의 글은 "영국"에서 "독일"로 흘러간다.
먼저 1. 영국에서의 논쟁에서 1.1. 밀리반드와 풀란차스 그리고 그람시를 먼저 비판한다. 그리고 1.2. 신리카도학파와 근본주의자 그리고 파인과 해리스를 비판한다.
그리고 2. 독일에서의 논쟁에 대해 할러웨이와 피치오토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전체적인 독일 '국가도출'논쟁의 출발점은 자본축적의 분석으로부터 정치연구를 분리시키려는 그러한 이론가들에 대한 비판(오페와 하버마스)이다. 그러나 단순히 자본과 국가 간의 연계를 되풀이 하는 대신 논쟁에의 참여자들이 취하는 태도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수용하면서 논리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그러한 분리의 기초를 자본제적 생산 내에 설정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환언하면 자본의 범주로부터 국가(혹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도출해내려고 의도하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볼프강 뮐러와 크리스텔 노이쥐스의 생산적 논문이 취하는 본질적 출발점이다. 논쟁의 과정에서 많은 비판이 이 논문에 가해졌으나 기본적 출발점이었던 자본분석 속에서 경제로부터 정치를 분리해낼 필요에 대한 강조는 보편적으로 수용되게 되었으며 공통적인 것으로 당연시되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제적 사회관계의 통일화된 총체성과 역사적으로 조건지어진 그러한 관계들의 물상적 형태로서의 분화를 동시에 강조하는 단순한 단계는 유물론적 국가분석을 위한 이론틀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계이다. 이 서론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러한 이론을 발전시킴으로써 이루어진 진보는 어떤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그 진보가 발전될 수 있을 것인가를 규명하기 위해 독일의 논쟁을 분석하고자 한다."(28~29쪽)
"'마르크스가 채택한 변증법적 방법에 의하면 '형태와' '내용'은 상호간의 부단한 교호작용과 투쟁 속에서 서로 생명을 주게 되며 그것으로부터 일면 형태가 폐기되고 나면 내용의 변형이 결과한다는 것이다.(Rosdolsky 1974, pp.66 - 7).'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는 독일의 논쟁에서 얻어진 주요한 이론적 진보를 이해해야 한다. (중략) '형태분석' 접근법의 가장 주요한 진보는 마르크스주의 국가이론에 있어서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버렸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에 있어서의 형태와 내용의 변증법에 기초하여 국가의 이해를 위한 본질적인 전제조건을 확립해냈다는 데 있는 것이다. 형태분석만으로는 충분히 않으나 만약 형태의 문제가 계속 간과되는 한 국가에 대한 적절한 접근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는 것이다."(51~52쪽)
3.
존 할러웨이는 이랬던 것 같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운동방식은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하고 싶다. 2012년 10월 28일 일요일 오전 10시 다중지성의 정원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읽기 세미나에 초대한다.
[10/6] 조정환의 인지본주의 읽기 세미나 후 강좌에 초대합니다.
일시 : 2012년 10월 6일 토요일 오후 7시 30분
장소 : 다중지성의 정원(2, 6호선 합정역과 2호선 홍대입구역 사이 성지빌딩)
강사 : 조정환(다중지성의 정원 상임강사, 아우또노미아·제국기계 비판·공통도시·인지자본주의 저자)
문의 : 02-325-2102, daziwon@daziwon.net, daziwon.net(다중지성의 정원), waam.net/xe/seminar_r(인지자본주의 읽기 세미나팀), hludence@hanmail.net(길잡이 김영철)
조정환 선생님의 『인지자본주의』를 읽고 제3기 자본주의인 인지 자본주의의 발생과 구조, 그리고 변화 경향을 공부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운동방식은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합니다.
다중지성의 정원 약도
다중지성의 정원 찾아오시는 길
1. 지하철 2, 6호선 합정역 2번 출구 ― 홍대입구역 방면 약 150M 전진 ― 우리은행에서 좌회전 후 40M 전진하면 오른편에 횡단보도가 있습니다 - 횡단보도를 건너 Coffee and A 골목으로 들어감 - 30M 전진하면 오른편 위쪽에 은색 바탕의 다중지성의 정원 간판이 있습니다.
2.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1번 출구 ― 합정역 방면 약 250M 전진 ― (구) 청기와 주유소를 지나 20M 전진하면 오른편에 경남예식장이 있습니다 - 경남예식장과 현대자동차 대리점 사이 골목으로 들어감 ― Befurco에서 좌회전 후 20M 전진하면 왼편 위쪽에 은색 바탕의 다중지성의 정원 간판이 있습니다.
3. 버스(경남예식장 정차) : 파랑(간선) 271, 570, 602, 603, 604 초록(지선) 5712, 5714, 6712, 7012, 7016, 7711, 7716 빨강(광역) 1100, 1200, 921 검정(공항) 602
4. 마을버스(경남예식장 또는 우리은행 정차) : 마포구 05, 06, 09, 15, 19
[1인지과학서론-2010.pdf (1.97 M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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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cogpsy.skku.ac.kr/cwb-bin/CrazyWWWBoard.exe?mode=read&num=3269&db=newarticle&backdepth=1
[20120623_만만한 출판기획 일부분 발제문.hwp (10.52 K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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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하라 세미나 ∥ 20120623 ∥ 돌민
이홍,『만만한 출판기획』,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8
1. 기획출판, 왜 사고뭉치가 되어가는가?
“책을 읽는 것은 사람이다. 책을 쓰는 것도 사람이고 만드는 것도 사람이다. 기획출판이 올바fms 길을 가려면 사람에게 필요한 가치와 진실이 무엇인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티켓 파워를 가진 이미지’를 만드는 게 기획이 아니다.”
운동권이 된 것은 “전태일 평전”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겨울 전철 좌석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다 주르륵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전태일은 얼마나 다리가 아팠을까요? 자신의 차비를 털어, 점심을 굶는 직장 동료에게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거리의 집까지 걸어가면 말입니다.
운동에 삶을 건 것은 ‘정면돌파’ 때문이었습니다. “맑스주의 운동 부흥의 불씨가 민중회의 운동 속에 담겨 있다. 이것을 지키는 것은 인간의 희망을 지키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사람입니다. 책을 쓰는 것도 사람이고 만드는 것도 사람입니다.
맑스가 좋아했던 말이 “모든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2.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세 가지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지금 당장 자신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를 꺼내놓고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해보자. 이것을 가지고 만들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답을 찾지 못해도 좋다. 바보들은 고민하지 않는다. 바보가 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스럽다.”
얼마 전 고(故) 신효순 심미선 씨 10주기에 갔다가, 어느 국회의원이 진보를 주제로 연설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반성했습니다. 매향리대책위원회 활동, 고 신효순 심미선 씨 장갑차 압사 사건, 그리고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운동을 하는 동안 내가 저 국회의원보다 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데······.
그 순간, 그 국회의원이 진보라는 단어를 말하려는 그 순간, 30여 초 정도였지만 스피커가 나갔습니다.
저작권법의 탄생
[founders.pdf (152.28 K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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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을 둘러싼 쟁점들 : copyright? copywrong
출처 : http://www.kccs.or.kr/news/25932
2009년 동계 문화사회아카데미 강의록 입니다
저작권을 둘러싼 쟁점들 : Copyright? copywrong!
자료집 차례
제1강자료1 구텐베르크 신화 : 창작자의 권리와 집합지성
자료2지식생태계에 꽃핀 생각의 나무: '지식공유보다 저작권이' 우위에 있을까?
/ 신승철(홍익대 강사)------------------------------------------------ 1
제2강 저작권의 역사적 형성
/ 민호(문화사회연구소 간사)---------------------------------------- 19
제3강디지털 환경에서의 저작권 문제
/ 오병일(정보공유연대IPleft 운영위원)-------------------------------- 49
제4강대안은 수없이 많다 : 해커 공동체에서 정보공유 문화까지
/ 조동원(미디어 활동가, 연구자)-------------------------------------- 65
[자료집 - 저작권을둘러싼쟁점들.pdf (2.00 M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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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올리버를 아십니까?
출처 :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25.html
고려대·이화여대 재학생과 졸업생들, 대학 도서관 전면 개방운동 벌인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병으로 앓아눕는다. 부모는 아이의 병이 지독한 희귀병이며 아직까지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은 불치병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부모는 절망하지 않는다.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아들의 병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수집해 미친 듯이 읽고, 수소문하고, 실험을 한 끝에 마침내 치료약을 발명한다. 의학 지식이 없던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위대한 치료약을 발명해낸, 이 영화 <로렌조 오일>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대학의 본래적 공공성을 위하여”
이 같은 현실 속에서 고려대와 이화여대 재학생들과 졸업생 일부가 대학 재학생과 학교 당국에 의해 폐쇄적으로 독점돼 있는 대학 도서관을 지역 주민을 비롯한 모든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하자는 운동을 벌여 눈길을 끌고 있다. 고려대 ‘올리브’(OLIB: Open Library의 줄임말) 운동과 이화여대 ‘올리버’(OLIBER: Open Library with Her) 운동이 그것이다.
올리브 프로젝트는 지난 5월31일 오후 고려대 학생회관 생활도서관에서 ‘대학도서관 개방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만난 이민준(21·경제3)씨는 이 운동이 자칫 대학의 여유공간을 일반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시혜적인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 운동은 이제까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못했던 대학의 본래적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라며 “고급 정보와 지식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시민들에게 정보를 환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를 통해 대학의 교직원뿐 아니라 학내의 비정규직 노동자에서부터 여성, 장애인, 성적 소수자, 노동자 등 사회적·문화적 소수자를 비롯해 수많은 지역 주민들까지 대학 도서관을 함께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공성의 회복이라는 목표와 관련해 이들은 대학 도서관이 대학 구성원들의 돈과 노력만으로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즉, 국가가 국립대학은 물론 사립대학 도서관에도 매년 상당한 액수(고려대의 경우 10억원 안팎)를 지원하고, 대학 전체에도 막대한 국가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대학이 지닌 공익적 기능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대학 도서관에 집적된 엄청난 양의 지식은 특수한 계층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도록 돼 있어 사회적 불평등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재학생들 반대에 부닥쳐
이들은 또 대학 도서관의 개방이 공교육 정상화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임윤희(30·졸업생)씨는 “대학 도서관을 중심으로 평생교육이 이뤄지면 도서관에 쌓이는 최신의 정보와 지식을 지속적으로 습득할 수 있어 진정한 의미의 자기교육이 가능하게 된다”며 “캐나다 도서관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지역사회에 밀착해 새로운 정보와 문화를 일상적으로 창출하는 구실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확보하는 것도 이 운동의 주요한 목표다. 고려대 도서관의 경우 장애인 학생의 열람석을 왜소하게 구분해놓는 등 장애인의 도서관 이용이 외면당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화여대의 올리버 운동은 ‘지역여성과 함께하는 대학 도서관 만들기’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정보접근권에서 소외되고 있는 여성의 문제가 작게는 개인의 자아실현에서 시작해 넓게는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으로까지 이어져 여성의 주변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김하나(22·철학4)씨는 “대학 도서관이 특별히 여성에게 개방되어야 하는 이유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며 “이화여대 도서관을 한국 최초의 여성도서관으로 만들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들은 특히 전업주부 등 지역 여성들이 대학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간이 탁아소나 기저귀대, 수유공간 등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두 대학의 선도적 운동에 대해 송덕여고 이덕주(36·전교조 학교도서관 분과) 교사는 “우리나라 도서관의 경우 대학 도서관처럼 소수 엘리트를 위한 서비스가 비교적 잘돼 있는 반면, 시민들의 정보접근은 무척 불편한 것이 현실”이라며 “대학 구성원들에게 도서관의 본뜻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이들 운동은 무척 소중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올리브·올리버 운동은 내부 대학 구성원들, 특히 재학생들의 반대에 부닥치고 있다. “우리 공부할 자리도 부족한데 무슨 개방이냐”는 다소 감정적인 반응이 그것이다. 고시 공부나 학과 시험에 대비한 독서실로 운용되는 현재의 대학도서관 시스템으로 보면 재학생들의 이같은 볼멘소리는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올리브·올리버 운동 주체들은 “열람실의 확충과 개방 문제는 별개의 문제라기보다는 동시적으로 추구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한다. 어쨌든 “우물은 더 많은 사람들이 퍼내어 쓸 때 더 많아지고 깨끗해지듯이 대학도서관에 모여 있는 지식과 정보도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때 질적 수준도 높아지고 그 총량도 확대될 수 있다”는 이들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의 메아리를 확보할지 지켜볼 일이다.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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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8_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과 캘리번과 마녀를 읽고.hwp (14.99 K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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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조정환 엮음, 갈무리, 2012)과 “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갈무리, 2011)를 읽고
dolmin98@hanmail.net 돌민
1.
이 글은 다중지성의 정원 성/자본주의/정치 세미나팀 “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갈무리, 2011) 세미나의 마지막 시간 “캘리번과 마녀” 서평 공유용으로 쓰여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조정환 엮음, 갈무리, 2012)과 “캘리번과 마녀”에 대한 노트를 하게 되었다. 양해를 부탁한다.
2.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을 읽고
참고로, 2012년 4월 14일 토요일 오후에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열린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 출간 기념 강연회 원자력과 인지자본주의 강연 스케치로 시작해 보자. 이날 강연회 강연자로 나선 엮은이 조정환은 앞으로의 문제가 1 반핵운동과 노동운동, 2 후쿠시마현 주민들의 태도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1의 문제는 1′ 반핵운동과 고용안정의 문제이고 2의 문제는 2′ 반핵 운동이 방사능의 위험성을 계속 강조하는 반면에 주민들이 그렇게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이 차별이 아니냐며 오히려 방사능이 안 해롭다고 주장하는 문제이다.
이렇게 강연을 시작한 조정환은 강연의 중간을 1 3·11 이후의 원자력 즉 사고로서의 후쿠시마, 2 무기로서의 원자력, 3 산업으로서의 원자력으로 그런데 이 3가지 측면을 하나로 해서 채웠다.
먼저 원자력을 개관했는데, 그 개관에서 이른바 1954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비판이 날카로웠다. 평화적이라는 말이 원자력의 비평화적 이용과 평화적 이용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비평화적 이용과 다른, 문제가 없는 것이라는 인상을 풍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날카로움은 3·11 이후 일본의 내셔널리즘이 사고 수습 과정에서 자위대의 위상을 재고하여 국민국가 재강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에서도 이어졌다. 이에 더하여 원자력 자체가 통제적임을 잊지 말자고 주장했다. 원자력 발전소는 그 자체가 군사시설에 준하는 보안 시설인 것은 물론 원자력 내부에서부터 외부에서까지 노동자가 자기 경험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감시 체제를 처음부터 수반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지자본주의와 연결되는 지점이라며 후쿠시마와 인지자본주의에 대한 통찰을 선보였다. 사용되든 사용되지 않았든 핵은 그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라며 공포를 통한 지배의 문제를 제기했다. 발전소에 대한 감시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천연자원과 대비하며 인지자본주의 시대 유도에너지로서의 원자력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끝으로 순수에너지 차원에서 제기되는 주류 반핵 운동의 대안 에너지 논의 그것만으로는 에너지와 통제로서의 원자력의 의미를 놓칠 수가 있다는 비판으로 조정환은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후 이날 강연은 질의 응답으로 이어졌는데, 이 질의 응답도 내가 보기엔 크게 보아 원자력과 인지자본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2011년 혁명, 후쿠시마, 그리고 인지자본주에 대한 질의 응답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난 후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의 미덕이라고 생각된 점은 긴장이다. 책 표지의 제목 아래 있는 다음과 같은 문구에 나타난 것처럼 말이다.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
죽음의 바람인가 사랑의 바람인가
재앙의 바람인가 혁명의 바람인가
지역의 바람인가 지구의 바람인가”
3. “캘리번과 마녀”를 읽고
끝으로, 캘리번과 마녀의 의미에 대해서 지은이인 실비아 페데리치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일부를 인용한다.
“약 30년에 걸쳐 완성된 『캘리번과 마녀』는 원래 여성해방 운동에,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운동을 촉발시킨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에 저항하는 투쟁에 기여하려는 차원에서 착안되었습니다. 원래 이 책의 목적은 역사적 분석을 근거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전근대적, 전자본주의적 세계의 유산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성차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회적 기능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재구성된 자본주의적 구성물임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1970년대 여성주의 정치의 맥락에서 이 같은 주장이 중요했던 이유는 가부장제가 ‘전통’의 산물이라는 주장의 논리적 대응쌍이 맑스레닌주의 이론이었기 때문입니다. 맑스레닌주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적은 사회적 귄력을 갖는 것은 여성들이 ‘가정주부’로서 자본주의적 관계 외부에서 노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맑스레닌주의의 정치적 귀결은 임노동을 통한 해방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여성주의자들에게, 특히 1972년 내가 가담했던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운동>Wages For Housework Movement에서 이런 주장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성해방 운동이 전략적으로 공장일자리 확보를 요구해야 한다는 가정에 반대했습니다. 당시 전세계 노동자들은 바로 이 공장일자리를 거부하며 맞서 싸우고 있었으니까요. 또한 우리는 유럽과 북미의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전쟁 때문에 완전히 무너져버린 전업주부의 상象을 재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사노동이 자본주의적 노동조직에서는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는 과거의 유물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남성들에게 종속된 것은 정통맑스주의자들이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따라 주장하듯 ‘사회적 필요생산’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관점에 반대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논문, 소책자, 전단지 등을 통해, 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가부장적 통치의 형태 및, 기교가 질적으로 완전히 바뀌었고, 여성들의 가내부불노동은 결코 전자본주의적 잔재가 아니며 역사적으로 노동력을 생산 및 재생산하는 노동으로서 다른 모든 형태의 생산의 기둥이었음을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도한 자본주의에서 여성들이 남성에게 종속된 것은 “여성노동”의 “비생산적인” 본성 때문이 아니라 여성들이 임금을 받지 못하는 조건 속에 있기 때문이며, 남성의 지배는 임금이 남성들에게 부여한 권력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생산적인 노동’이라는 맑스주의적 개념에 대한 비판과, 노동력의 생산에서 가사노동이 수행하는 긴요한 기능에 대한 인식은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운동> 캠페인을 만들어 낸 이론적, 실천적 뼈대 속에 이미 완전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저 자신을 비롯하여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셀마 제임스, 레오폴디나 포루투나티 등 많은 이들이 1970년대 내내 이 지점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관계가 노동의 위계를 구조화하고, 권력을 노동계급의 특정 부문으로 위임하며, 재생산 노동을 비롯한 어마어마한 권력을 노동계급의 특정 부문으로 위임하며, 재생산 노동을 비롯한 어마어마한 착취의 영역을 감추고 자연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구조적 관계들, 그 중에서도 특히 새로운 성적 분업이 구축되는 물질적·역사적 과정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었습니다. 이 공백을 채우는 데 맑스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본』 세 권 모두가 마치 삶의 재생산이 의존하고 있는 일상적인 활동들일 자본주의적 계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이,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임금으로 구입한 상품을 그저 소비함으로써 스스로 재생산할 수 있다는 듯 서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백’을 채우고 누락된 ‘여성’의 역사와 ‘이행기’의 재생산 문제를 다루는 것이 『캘리번과 마녀』의 과제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시초축적에 대한 맑스의 설명을 부연하는 부록으로 작성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등장과 자본주의적 관계의 특수한 본성을 아주 독특한, 그러면서도 동시에 중요한 관점, 즉 생명과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재고해 보기 위한 시도입니다. 이 때문에 『캘리번과 마녀』는 ‘대’大유럽 마녀사냥과 핵가족의 등장, 여성의 재생산능력을 규제하기 위한 16세기와 17세기의 법안을 새롭게 조명하는 한편,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신체 및 노동에 대한 기계화와 복잡한 관계 속에 놓여 있는 기계론적 철학Mechanical Philosophy의 발달과 아메리카의 정복 및 식민화, 최초의 국제분업의 등장, 가격혁명 이후 유럽 도농민 都農民들의 빈곤화를 고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및 여성의 역사에 대한 이 책의 기여는, 일반적으로 학제적 경계로 구분된 사회적·정치적·철학적 성과들을 모아서 지금까지 서술되지 않았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는 점,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내가 보기에는 그 중요도가 자본주의 이행기로만 국한되지 않는 이론적 관점을 발전시켰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진보성 신화를 해체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는 노동력의 꾸준한 확장과 노동비용 절감에 몰두하기 때문에 여성의 노동을 비롯해서 그 노동이 생산해낸 주체들과 그들의 노동을 천대해야만 한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여성의 신체와 재생산능력을 통제함으로써 자궁의 노동력 생산의 기계로 기능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폭력과 야만적인 힘뿐만 아니라 임금관계의 메커니즘을 통해 조직된 새로운 위계질서와 불평들을 성, 인종, 연령을 따라 도입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에서 ‘임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적 노동축적과 노동파괴간의 불가분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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