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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자] 나는 간다 - 고 김기욱 추모시

 

나는 간다

김 해 자


저 공장안에서 기계를 돌리며
이 공장밖에서 노래를 하며
농성중인 사업장에 규찰을 나가며
거리에서 찬 우유로 빈 속을 채우고
맨 바닥에서 동지의 체온으로 쓰러져 잠들며
공장에서 거리에서 나는 몸뚱이 하나로 살았다.
허나 내 몸뚱이는 하나 뿐이어서
한번 눈감고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나는 이제 당신들 곁을 떠난다
나 살아 몹시 바람부는 날도 있었으나
그 바람에 몸뚱이 휘청거릴 때도 있었으나
나는 하루하루 행복했다
내 생애 어떤날은 나도 어쩌지 못하는 막막함으로 잠 못드는 밤도 있었으나
넘어진 그 바닥을 짚고 나는 다시 일어섰다
내 생애 어떤 날은 감당키 어려운 피로에 일어서지 못하는 아침이 있었으나
막막히 가로막은 벽을 붙들고 다시 일어났다
노동자이기에 만난 사람들
노동자였기에 만날 수 밖에 없었던 동지들을 사랑했다
밤새 술을 마시며 새벽이 오기까지 술을 마시며
민중가요 노래책을 다 불러제끼며
웃고 얘기하고 노래하고 사랑했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노동자였기에
나는 온몸을 다해 싸웠다
어떤 강철 같은 강령이나 규약보다 나는 나에 충실하고 싶었다
노동자 이전에 인간이기에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꿈을 꾸었다 사람다운 삶과 뜨거운 자유를 향해 손을 내 밀었다
침묵으로 얼어 붙은 바다를 가르는 아주 작은 파도로 살고 싶었다
가도 가도 가파로운 언덕길을 올랐다
하지만 그 언덕길을 오르던 내 몸뚱이는 하나 뿐이어서
가파른 이 언덕길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기고 나는 먼저 간다
늘 더 아픈곳으로 기울던 내 몸뚱이는
늘 아픈곳을 찾아다니던 내 몸뚱이는 아프다 아프다
살아 더 사랑하고 싶었으나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
한 번 뿐인 내 생애
이 따스한 봄날
사랑했던 그대들을 남기고 나는 간다
아빠를 바다처럼 생각하던 하나뿐인 내 아들 준성이를 남기고 사랑하는 가족과 동지들을 남기고 그냥 간다
그대들 부디 행복하기를
그대들 부디 서러워말기를
그대들 부디 서로가 서로의 노둣돌이 되길
그리하여 거대한 노둣다리가 되길
나를 만나 그래도 좋았다고 행복했다고 말하길
어디를 가겠는가 함께했던 당신들과의 사랑이
그대들 만나 행복했던 나는
그 기쁨을 안고 나는 이제 조금 일찍 간다
푸른하늘 아래 나와 함께 했던 당신들의 숨결을 데리고
사랑만을 데리고
나는 그대들 곁에
영원히 머무를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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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년이 되었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최대한 뻗어 응급실 창문 너머 형을 바라보던 우리를 살펴보던 그눈빛이 마지막일 줄이야..
오늘은 괜찮을 것 같다고 해서..내일을 기약하며 돌아서던 차안에서 운명했다는 전화를 듣고 봉고에 타고 있던 우리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뛰어갔던 성모병원..
오늘..작은책에 들렀다가 한라봉을 먹으면서 기욱이형을 생각했고..추모식 날짜를 보면서..다시..해자언니가 쓴 이 시를 읽으니..파도같은 슬픔이 멀리에서부터 밀려들어온다.
대우중공업 사업장에서 추모시를 읽던 해자언니의 울음 가득찬 목소리도 생생하고..아니...술마시고 고백을 부르던 형의 목소리도 생생하고..아니..문화일꾼 캠프에서 사람 좋게 웃던 얼굴도..생생한데..
죽음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가슴에 멍울하나 새겨두고 옅어지는 한이 있어도..지워지지 않는다..

(200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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