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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0/31
    파니핑크,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젤소미나
  2. 2005/10/31
    빛나는 미소를 가진 친구여
    젤소미나
  3. 2005/10/31
    벗어나기
    젤소미나
  4. 2005/10/31
    우리동네 사이기
    젤소미나
  5. 2005/10/31
    당신을 기억하며
    젤소미나
  6. 2005/10/31
    무제
    젤소미나
  7. 2005/10/31
    노래마라톤 첫째날, 박창근
    젤소미나
  8. 2005/10/31
    꽃다지 에피소드2. 전화
    젤소미나
  9. 2005/10/31
    좋은 어느 봄날에
    젤소미나
  10. 2005/10/31
    혼자 버스를 탔어요.
    젤소미나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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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사이기

가끔 자전적, 혹은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보면 다른 곳에도 이런 사람들 있었구나, 그랬구나 하며 고개 주억거리며 우리동네로 달려가게 된다.
우리동네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사이기'이다.
본명은 알 수 없고,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아주 어렸을 때에도 그는 그저 사이기였고, 내가 자라서 대학생이 되고 30대가 넘은 지금도 그는 사이기이다.
키가 좀 작았고 우리집에서 두부공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감나무가 입구에 있었던 그 집에 할머니(그의 어머니)와 둘이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아마 다른 가족이 있었을 텐데..잘 기억은 안난다.)

그는 온동네 어른들 잔심부름을 했는데, 내가 중학교 가기 전까지 그를 보려면 장터 어드메쯤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을 찾으면 되었다.
그는 아이들을 비행기를 태워주거나 말이 되어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유치원, 초딩때에도 그는 이미 나이가 20대가 넘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늘 그는 사이기였다.
약간 지능이 부족했는지 어떤지 우리가 "사이가 놀아도."라고 하면 두말 없이 움직이는 놀이기구가 되었다. 엄마가 말리기 전까지 나도 꽤 그의 놀이기구를 이용했던 것 같은데...

우리 동네 바다가 알려지면서 휴양객이 늘자 그는 그때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 같은 것을 아이스박스에 넣어서 팔러 다니기도 했고, 어디서 오토바이를 구해서 핫도그를 담아서 팔러 다니기도 했다.
때마다 그는 하는 일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사춘기가 되고 여고로 진학하면서 사이기란 이름은 내가 궁금해 할 것에서 점점 멀어졌다.

대학 입학 자취를 하다가 집에 돌아온 날, 일부러 솔밭에서 미리 내려 바다를 보면서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정말 오랜만에 사이기를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 그가 여전히 우리 동네에 있었는지, 아니면 외지에 나갔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이기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그는 늙어있었다. 머리는 히끗히끗했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 몇가닥이 이마와 눈가에 고랑을 파고 있었다. 표정은 어릴 때나 그때나 별로 변함없는 무표정했지만...
난 갑자기 미안했다. 그는 나보다 적어도 스무살은 많았을 텐데 사이기라고 마구 불러댔다는 것이..
그얼굴의 주름에서 그가 힘들게 하루하루 견디고 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마주친 그를 외면하면서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다의 풍경에 집중했다. 여전히 그를 아저씨라고 부를 수 없었다.
지금도 그를 사이기아저씨가 아니라 사이기라고 부르고 있으니!!

그 이후 서울에 올라와서 살다가 한번씩 내려가면 2년에 한번 꼴로 그를 만나게 되지만, 똑같이 그를 외면한다. 그는 사이기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나는 기억한다. 그가 태워주는 비행기에 실려 우리동네 위로 빙빙 날아가던 그때..그 희열을...
사이기가 이제 좀 편히 살고 있기를..멀리 타향에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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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기억하며

3일 기욱이형 추모식에 노래마라톤 때문에 참석 못한 떨거지들인 나, 은진언니, 미순이와 서울 가려고 같이 차를 탄 도단언니를 납치해서..모란공원으로 출발

(부천에서 1박 워크샵을 끝내고 정혁이이 우리를 모시러 왔다. 밝히지만..정혁이형이..술한잔 하려고..운전을 할 줄 아는 도단언니를 모셔갔다고 정정함.)

안개와 황사때문에 희뿌연 공기를 뚫고..도착한 모란공원은 소나무 향기로 가득하고..조용하고...그랬다.

사과 한개와 방울토마토와 소주로 간단히 상을 차리고..기욱이형에게 인사하고..잠시 앉아서 맥주 한잔 하고..일어섰다..

형이 간지 3년인데 이상하게 생생하다는 얘기와 마지막날 우리가 우루루 몰려간게 오히려 형이 맘껏 아프지 못하고 끝까지 책임감을 요구하게 된 것 같아서 미안했다는 얘기와 다른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짤막한 얘기들을 나눴다. 그 짧은 얘기 속에 다들 비슷한 감정이 쌓이는 것 같았다.

평양막국수로 유명한 집에서..맛있는 음식을...그리고..서울로..

이 간단한 일정속에..떠오르는 얼굴은 많았지만..접어두기로 했다..

그냥..마음이 깨끗해졌다..몸이 피곤하니까..머리도 자연히 비워지고..어딘가..나와있다는 사실로도..좋아서..

정혁이형의 경험담이 너무 웃겨서..소개..고등학교때 그냥 평일에 친구와 약간의 면식이 있는 무덤(예를 들면 친구의 할아버지)에 가서..막걸리 마시고..한잠 자고 오고 그랬다는...너무 좋은 기억이라고 소개했지만..다들...동의하지는 않았다..

그리고..막국수 집에서 동동주 한잔 마신 형은 현숙언니에게 운전대를 넘기고 잠에 빠졌다..난 조수석에 앉아서..화장실 가고 싶다, 졸립다, 배아프다..징징 거려서..도단언니는 황당해 했다...


기욱이형의 비와 묘..노동문화일꾼 김기욱...


모란공원내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유리함. 첫번째 추모제때 창곤이형이 만들어 온 것. 그날 다들 기욱이형이 무덤에서도 기가차서 허허 웃지 않을까라고..다들 한마디씩 했다. 비석의 뒷면에는 기욱이형이 살아서 참 좋아했던 노래..고백이 새겨져 있다.


기념 촬영...추모식에 가거나..죽은 이를 찾아가..기념촬영하는게 영 석연치 않아서..못했는데..즐거운 마음으로..만나도 되지 않을까..당신을 기억하는 우리의 모습을 잠깐이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 기욱이형이 알아주지 않을까..싶어서...

 


도단언니..큰 차의 드라이버로 오랜만에..핸들을 잡고..

긴장된다며..한참을 그러더니..서울에 진입해서는 아주 익숙하게 운전을~~마감 빨리 끝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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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나 참...어이가 없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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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마라톤 첫째날, 박창근

창근이형..1집에 있는 노래들..안들려줘서..서운했지만..

묘한 매력이 넘치는 목소리..오랜만에 들었다..

여전히 어눌한 말솜씨..



와...오랜만에 무대에서 만나는 윤경이형...

역시..노래하는 사람은...무대에 있을 때..가장 빛난다..

아무리 게스트라도 한곡만 더하고..들어가지..냉정하게 두곡으로..끝내다니..


창근이형 2집은 아직 안나왔지만..1,2집 통틀어서..난 '내노래는'이라는 노래를 제일 좋아할 것이라는 것에는 아마...변함이 없을 것 같다..1집은 아쉽게도..납작하게 녹음되어서...풍부한 창근이형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했다..이노래는 다시 녹음했으면 좋겠는데..


내 노래는

 

글/곡/노래 박창근

내 노래는 긴 어둠 속 터널을 지나며 햇빛으로 가까이
내 노래는 긴 슬픔의 거치른 들판을 바람처럼 떠돌아

우...우... 당신 곁으로
메마른 당신 가슴 속으로 목마른 당신 입술 속으로
넘어가는

우... 한 모금 물로
우... 한모금 물로 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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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지 에피소드2.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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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어느 봄날에

좋은 날씨..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맘껏 판화를 감상했다. 정비파님의 작품 앞에서는 쪼그려 앉아서..한참을..올려다 봤다. 그러나..사립미술관은 안내원의 감시 눈초리가 심해서 실내에서는 전혀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미운 사람들.. (삼성 로뎅갤러리에서는 감상에 방해가 될 정도로 졸졸 따라다녀서..아주..대판 싸운 적도 있다..나쁜 넘들...)


날씨가 아까워서 자박자박 걸어서 덕수궁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시립미술관은 한산했다. 서울미술대전 회화부분 전시중이었는데..재밌는 몇작품 빼면..그다지..눈길이 가지 않았다. 다만..난 시립미술관 자체를 좋아한다. 관람이 자유롭고..감시눈초리도 없고, 천장이 높으면서도 햇빛이 잘 들어오는 아주 좋은 건물...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아이가 내 뷰파인더로 뛰어들어왔다..고맙다..꼬마야...

 

도둑사진 한장.. 황주리의 '삶은 어딘가 다른 곳에...' (그림이..조명 받아서..세피아처럼 보인다..)

 

시계를 보니..일민미술관, 시립미술관 합쳐서 2시간 넘게 돌아다닌 셈..다시 홍대로 가서 사람들을 만났다. 은진언니,정혁이형 부부와 조이삶넷 사람들..홍대 희망시장에서 귀여운 실눈이형제 공기돌과 핸드폰 줄을 사서 룰루 랄라~진짜 귀엽다..(멋지게 사진 찍어서 올려야지.)  

 

홍대에 이런 카페가 있었나..Snare, Girl..손님은 없고..우리만.. 주인 아저씨와 다트내기를 해서..정혁이형은 참패를 당하고..흐흐.. 은진언니..정혁이형~  


 늦게 합류한 현숙언니는 인사동에서 오천원짜리 움직이는 인형을 선보였다. 이녀석이 어찌나 귀여운지..모두 한번씩 장난을...장난치는 사월언니...(줄조정은 현숙언니가..)

 

그리고..나...여유있는 표정...잘 찍어준..사월언니에게..감사~    

 

(그리고..아을은 피곤한지..졸고 있어서..사진 안찍었고..에스테반은 찍히길 거부했다..흥..)

 

(200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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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버스를 탔어요.

조그만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날도 역시 소녀는 남색 리본이 달린 남색 유치원 모자와 원복을 입고 노란색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유치원에 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여느날과 다름없는 아침이었지만 그날은 소녀에게는 아주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같이 유치원을 다니던 두동무가 모두 유치원에 결석하는 날이어서 혼자 버스를 타고 유치원에 가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소녀가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은 지금보다 훨씬 전이었고, 시골이었기 때문에 유치원 차가 없었고, 유치원은 집앞에서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엄마는 소녀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가 아저씨가 내려라 하면 내려라. 그리고 딴짓하지 말고, 졸지 말고. 알았나?"
소녀는 긴장한 두눈동자를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드디어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소녀의 엄마가 소녀의 손을 꼭 쥐고 버스 앞으로 가서 기사아저씨와 차장언니에게 행선지를 말하며 연신 꼭 내리게 챙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소녀는 엄마가 시킨대로 맨 앞자리에 앉아 무릎위에 꼭 쥔 손을 조심스레 내려놓았습니다.
기사 아저씨가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니가 약국집 막내딸이가?"
"네"
"몇살이고?"
"일곱살."
입술을 꼭 다물고 두눈을 크게 뜨고 앞만 바라보면서 앉아있는 소녀가 귀여웠던지 아저씨는 연신 빙그레 웃으면서 돌아보았습니다.
차가 슬금슬금 출발하자 아저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앞만 바라보며 운전을 하셨습니다.
창밖에는 바닷가 마을인 우리 동네가 조금씩 뒤로 물러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소녀는 어느새 손을 창틀에 얹고 그위에 턱을 괸채 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동무가 없이 처음 유치원을 가는 소녀의 마음은 긴장감과 뿌듯함으로 가득차 있었고,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어느새 유치원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고, 아저씨가 의자에서 내려오는 조그만 구두를 보면서 기특했는지 허허 웃으셨습니다.
"잘가라"
"고맙습니다."
엄마가 시켜서 감사인사를 했지만 사실은 소녀는 뭐가 감사한지는 잘 몰랐습니다.
유치원으로 종종 걸어가는 길이 이제서야 가벼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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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좀 일찍 잤더니 오늘도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아주 오래전 얘기이다. 처음으로 혼자서 버스를 탔던 날의 기억.
무지 긴장한 강한 기억이었는지 창밖으로 보이던 바다의 색깔, 버스의 시트 색깔, 버스 안의 냄새, 긴장한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다.
나름대로 귀여웠던 시절..푸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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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여 안녕!!

어제 뉴스를 보고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고, 개인별 등록제이고..뭐뭐..가능해졌다는 말을 들으면서 실감이 안났다.
아..정말 이루어졌구나..오늘 회의자리에서 모두 그얘기를 하면서 다들 기뻐했다.
한편으로 유림 및 성균관 관련 늙은 아저씨들의 침통한 표정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들은 이미 법적인 차별이 사라진 이마당에 호주제가 남녀차별의 기제가 아닌데 왜 전통가족의 근간을 흔드냐고 주장한다. 유치하게 반문해보면 왜 당신들은 별 효용성 없는 제도를 틀어쥐고 싶냐고 질문해본다.
결국은 호주제가 남성의 기득권의 근간이라고 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당신들의 호주제유지 주장이 아니냐는 것이다.
제도는 한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남성 중심의 가족관계는 더나아가 직장, 정치, 문화, 국가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을 떡하니 50년 가까이 호주제가 당당하게 부끄러움 없이 존재하면서 한국사회의 근간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제도의 변화보다 관습은 더욱 느리게 변화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제도의 변화는 관습과 정서를 좀더 빨리 바꾸는데 일조를 하게 될 것이다.
평등한 부부, 평등한 가족, 평등한 사회...이 모든 나의 꿈을 이루는데 작은 디딤돌 하나 놓은 기분이다. 물론 호주제 철폐를 위해서 직접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그제도의 문제에 대해서 참 많이 고민하고 참 많이 얘기했다고 생각한다. 10년 넘게...
이런 고민들이 하나둘 모여서 이루어낸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호주제 철폐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인 모든 남성과 여성들과 자축을 하는 심정이다. 4년 넘는 법정 공방을 지치지 않고 지켜낸 호주제 철폐를 위한 시민모임의 모든 사람들은 복받아야 한다.히히히..
만세 만세~~~~

ps1.근데..호주제 철폐 되지 않으면 결혼 안하겠다는 내 결혼거부의 이유가 하나 사라졌는데..이제 뭐라고 하면서 안한다고 그래야 하나..휴..흐흐흐흐....
ps2. 동성교배로 인해 윤리가 문란해진다는 유림 쪽 주장은 참 불쾌하다..문구자체가 너무 불쾌하다...참 싫다..유림들...

(200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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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

조카들이 와서..가자고 하는 곳으로 쫓아다녔다..
코엑스의 아트리움에 대해서..워낙 많이 듣고 텔레비전에서 많이 봤는데..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그리고..무엇보다..갖힌 것들을 보는 것은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닌 게 화실하다..그래도 그나마 수족관은 좋아하는 곳이긴 하지만..




-->역시 열대어는 색깔은 곱지만..어딘지 답답해 보이는 느낌..개성이 있는 것 같지만...인공적인 느낌마저..


 



-->거기가 진짜 바다이고, 거기가 진짜 바다속의산호초였으면 너는 더욱 좋았을지도 모를 텐데..글쎄...


 




-->심해에 사는 물고기들..이상하게 생겼지만..내 눈을 끄는 그들의 느릿한 움직임..심지어 껌뻑거리는 눈동자 마저 너무 느린..


나를 매료시키는 이상한 입술..주름같은 피부..어쩌다..여기까지 왔니..불쌍하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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