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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버스를 탔어요.

조그만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날도 역시 소녀는 남색 리본이 달린 남색 유치원 모자와 원복을 입고 노란색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유치원에 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여느날과 다름없는 아침이었지만 그날은 소녀에게는 아주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같이 유치원을 다니던 두동무가 모두 유치원에 결석하는 날이어서 혼자 버스를 타고 유치원에 가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소녀가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은 지금보다 훨씬 전이었고, 시골이었기 때문에 유치원 차가 없었고, 유치원은 집앞에서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엄마는 소녀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가 아저씨가 내려라 하면 내려라. 그리고 딴짓하지 말고, 졸지 말고. 알았나?"
소녀는 긴장한 두눈동자를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드디어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소녀의 엄마가 소녀의 손을 꼭 쥐고 버스 앞으로 가서 기사아저씨와 차장언니에게 행선지를 말하며 연신 꼭 내리게 챙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소녀는 엄마가 시킨대로 맨 앞자리에 앉아 무릎위에 꼭 쥔 손을 조심스레 내려놓았습니다.
기사 아저씨가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니가 약국집 막내딸이가?"
"네"
"몇살이고?"
"일곱살."
입술을 꼭 다물고 두눈을 크게 뜨고 앞만 바라보면서 앉아있는 소녀가 귀여웠던지 아저씨는 연신 빙그레 웃으면서 돌아보았습니다.
차가 슬금슬금 출발하자 아저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앞만 바라보며 운전을 하셨습니다.
창밖에는 바닷가 마을인 우리 동네가 조금씩 뒤로 물러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소녀는 어느새 손을 창틀에 얹고 그위에 턱을 괸채 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동무가 없이 처음 유치원을 가는 소녀의 마음은 긴장감과 뿌듯함으로 가득차 있었고,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어느새 유치원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고, 아저씨가 의자에서 내려오는 조그만 구두를 보면서 기특했는지 허허 웃으셨습니다.
"잘가라"
"고맙습니다."
엄마가 시켜서 감사인사를 했지만 사실은 소녀는 뭐가 감사한지는 잘 몰랐습니다.
유치원으로 종종 걸어가는 길이 이제서야 가벼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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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좀 일찍 잤더니 오늘도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아주 오래전 얘기이다. 처음으로 혼자서 버스를 탔던 날의 기억.
무지 긴장한 강한 기억이었는지 창밖으로 보이던 바다의 색깔, 버스의 시트 색깔, 버스 안의 냄새, 긴장한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다.
나름대로 귀여웠던 시절..푸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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