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해서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취기를 빌려 잠이라도 청해보지만 혈관이 수축되어서 그런가,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어서 그런가. 정신이 더 선명해진다.

결혼생활이 나에게 주는 - 정확히 말하면 결혼 생활에서 오는 것인지 혹은 나와 맞지 않은 사람을 선택하여 함께 살고 있는 나에게서 오는 문제인 것인지 모르겠다- 지점들을 풀어내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룰 것 같다.

 

 

미치게 만드는 고민들 여러 갈래...

 

1. 여성생계부양자 모델

유독 운동권 부부들에게 약한 것은 ‘생계부양’이다. 결혼제도 자체가 가부장제를 원활하게 기능하기 위해 모여진 사회적 단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

남성의 해고와 남성이 가치를 두는 신념은 왜 그리도 특수한가.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

이랜드 투쟁에서 보여준 훌륭한 여성 동지들은 밥 지어야 하고 애 돌보는 일이 투쟁하는 것보다 위였다. 혹은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느냐를 두고 신중하게 고민한다. 전화걸어 집에 들어오라며 꽥 소리지르는 개념 없는 남편들이 어디 그 사람들만의 사연이던가. 운동권 남성들은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들은 '생활력' 자체가 없는데다 가부장적 생활 습관까지 남아 있어 이들과 살고 있는 여성들 역시 이중고를 겪는다. 그러고도 오히려 운동권 부분들은 이혼도 쉽게 못 한다. 가사노동과 일상에서의 여성 억압과 여성생계부양이라는 꼬리표, 여성들에게는 떠나지 못하는 숙제다. 여성생계부양자 모델은 유독 운동권 부부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남편의 해고와 복직 투쟁과 이에 대한 나의 생계 책임을 당연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여성들이 결혼하며 다짐하는 1순위가 되어야 하는 서글픈 현실..._-;)

 

2. 살 길을 찾아 나서기 위해 속물이 되어가는 여성들

가사노동과 육아만이 아니다. 싼 값에 조금 더 좋은 환경의 집을 알아보는 것, 명절 때가 다가오면 이번엔 어떻게 전선을 칠까 하며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것, 집안 살림과 향후 가족의 전망에 대한 계획 이 항상 '돈에 대한 집착'으로 연결되는 등... 일반 사람들이 살며 떠안는 모든 고민들이 여성의 몫으로 남겨지는 경우가 많다. 여성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활동가적 자세와 가부장제, 자본주의라는 체체 사이의 긴장들이 끊임없이 여성들을 억누른다. 내가 지금 그렇다. 나는 이런 모든 고민들을 나에게만 전가한 채 할 일 없이 누워 티브이를 보거나 바둑을 두거나 기타를 쳐대는 내 남편같은...그런 남성들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3. 여성들을 착취해 운동하는 남성들

이들의 고귀하신 사회 운동에 대한 헌신은 무엇에 의해 유지되는가. 가부장성을 꼬집고 비난하는 많은 남성 활동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해고당하면 아르바이트를 못하는가, 운전이 가능한 자라면 대리운전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쉽지 않다’는 핑계,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레파토리, 언제까지 지속시킬텐가. 이들은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루는 쟁점과 이에 대한 입장을 내는 것에서는 약이 오를 만큼 전문가다. 매번 회의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사람을 대하는 방식 역시'정파적 대립'과 ‘동지적 예의’가 상존한다. 어쩔 수 없이 거대한 사회체제로부터 직접 희생당하고 있는 게 자신이므로 자신은 모든 일상의 영역에서 '자신의 특수함'을 내세울 수 있고 존중받아야만 한다. 다른 동지들을 희생시킬 수 없으니, 이들이 선택하는 희생양은 자신의 가족(부인)이다. 이혼 아니면 체념하며 도 닦고 살기 왜 이러한 파탄으로 모든 것들이 귀결되어야 하는지?

 

4. 직장 다니며 가정에 헌신하는 남성들의 도덕성

운동권 남성에 대한 환상이 가차 없이 깨져 있다 말하는 여성활동가들이 태반이다. 활동이 목적이 아닌 생계를 목적으로(남편의 활동 유지를 위해 벌어먹일 목적으로) 식당으로 마트로 진출해있는 여성들 한 둘인가...결혼 선배인 언니들과 만났을 때에도 항상 비교하는 것은 사회운동 굳이 하지 않고도 직장 다니며 가정에 헌신하는, 사회 문제 몰라도 생활력 있고 예의바른 남성들이 여성들에게도 잘한다는 것....생활력 하나 없이 자기 밥벌이 하나 못하면서 가족과 타인에게 짐을 지어온 수많은 그 잘나신 ‘놈들’이 무슨 운동가라고 떠들며 다니는가. 이런 이야기 속 시원히 했다가 맘 불편한 싸움으로 번지는 것도 수차례. 아..정말...

 

개인이 충분히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노동을 해야 살 수 있는 사회라면, 그리고 그게 현실에서 불가피하다면, 왜 '공동으로' 희생할 수는 없는가. 결혼이 불가피하게 강제하는 영역인가, 남성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는가? 운동권 남성들의 고치지 못하는 게으름과 여성들의 히스테리는 해결 불가능한 과제인가. 행복하자고, 사회를 건강하게 바꿔내자고 하는 사람들이 왜 본인들은 꼬일 대로 꼬여 있는 일상을 사며 자신의 건강은 망치고 있는 건가...

 

 

 고민을 하다가 남편의 발자국 소리라도 들으면 심장이 쿵쾅거린다. 심장이 많이 약해져 있는 듯하다.

 

 

결혼하며 느낀 것은 새삼 모두가 이렇게 살고 있었다는 것에 무척이나 여러 번 감탄한다는 것이다.

 

내 생에에서 지웠던 말들이 '인내와 양보'였는데 지금은... 

인내와 양보, 그래, 의연하게 하자. 하기 싫어도 하자.

바뀌지 않으면 내가 바뀌어야지, 무엇이든 속시원한 선택을 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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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7 03:50 2010/02/07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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