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만화영화책 - 2006/03/21 22:01

스위스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동한다는 작가 알폰소 휘피(Alfonso Hüppi).

이번 전시회에서의 다양한 사진과 드로잉들은 교수시설 학생들과 함께 여행했던 경험들이 녹아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인지 전시회 이름도 '감상적인 여행(Sentimental Journey)'.

들어가자마자 2층에 올라가면

북아프리카, 시리아, 터키 이란, 아르메니아, 한국 등지에서 찍은

대문과 문들의 사진이 작은 액자들에 빼곡히 담겨있다.

솔직히 한국 말고는 어느 나라의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문들을 보면서 대략 추론해보건대

사진에 담긴 문들은 꽤 지방도시나 시골로 들어가야 나올 법한 서민들의 그것이었다.

시골 한 가운데 버려진 공장과 같은 문, 1층짜리 앉은뱅이 주택의 문, 빨강파랑 돌아가는 이발소 표시 옆에 있을 것 같은 문...

도시 문의 모양새이지만 더이상 도시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래서 사뭇 정겨운 문들이다.

안타깝게도 그 와중에 우리나라 문이 제일 재미없어보이긴 한다. 여기 살아서 그런가?

다른 나라 문은 문에 꽤 아름다운 문양도 넣고 그러던데...



사진들을 열심히 보다보면 한쪽 벽에 서있는 거대한 문을 발견하게 된다.

[막스빌을 위한 대문]

이 문은 10개의 액자틀을 가지고 마치 문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도록 세워 만든 작품이다. 뭔가 현대적이면서도 깔끔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문이 주는 정적 느낌을 벽에 세운 액자로 표현함으로써 마치 만화나 동화의 한 장면처럼 움직일 것 같은 느낌으로 변화시킨 것 같다.

 

[나무카페트]라는 작품들은 16개의 조각퍼즐같은 나무판 위에 파란색과 하얀색이 다양한 곡선으로 나뉘어 색칠되어 있는데, 희한하게도 어떠한 조합도 유연한 곡선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있다. 마치 어른들을 위한 거대한 놀이 퍼즐을 만든 것 같은 느낌이다.

 

[6개의 엿보는 구멍]이라는 작품은 내 키보다 훨씬 긴 6개의 액자가 벽에 기대어 서있다. 각 액자 안에는 다양한 모양들이 있는데, 진짜 액자 속으로 마치 타 공간을 엿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블라인드]라는 작품들은 아주 큰 커튼 대용 블라인드들에 그려진 그림들이다.

아래의 작품처럼 대체로 사람이나 새, 코끼리 등등 동물들을 그리면서 서로간에 뭔가 연결되어지도록 표현한다.

굉장히 담백하고 언뜻 보면 동양의 가벼운 채색화를 보는 느낌도 많이 든다.

 

[마지막 여행]이라는 작품들은 뭔가 살짝 무너진 옛 성당터같은 곳을 초점이 완전 나간 사진으로 찍은 후 그 위에 굵은 펜으로 그린 것들이다.

사실 위의 작품 말고 더 인상적이었던 그림은

머리에 붙은 머리카락들과 손의 손가락들이 사방으로 뻗어 벽과 천장에 붙는 그림이었는데, 뭔가 목소리 대신 외치는 듯, 움츠리지 않고 확장되고 싶은 욕구가 느껴졌다.

또 하나는 천장의 둥근 돔을 배로, 기둥과 돔 사이의 둥그런 부분을 팔로 그리면서

세로로 가는 창문에 육중한 몸이 올라간 모양을 나타낸 그림이었는데, 참 해학적이었다.

 

[삼각형]이라는 작품은 2가지가 있었는데, 액자 자체를 역삼각형으로 만든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 안의 얼굴들이 마치 이쪽 세상을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2층과 3층의 전시실을 거쳐 다시 1층으로 내려오면 로비에 거대한 [대문]이라는 작품이 2가지 종류가 있다.

이 작품들 역시 거대한 액자 3개를 가지고 벽에 기대어 세워 만든 건데

벽에 세웠다는 것 자체가 문이 갖고 있는 무게감에 동적 변화를 주는 데, 거기다 더해서 액자중 하나를 비스듬히 세움으로써 더욱 역동성을 부여하였다.

 

처음 본 문과 대문들에 대한 사진이 소박하고 따사로운 느낌인 반면

나머지 작품들은 현대적이고 재치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문이나 구멍 같은 공간을 표현하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다른 세계로의, 또는 다른 세계와의 소통을 갈구하고, 미지의 세계에 가슴 뛰어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마치 그 문을 살짝 열어보면, 그 구멍을 살짝 엿보면, 그 액자 속을 살짝 들여다보면,

꽤나 재미있고 서로 관계를 맺을 만한 일이 생길 것 같다.

 

한편 블라인드와 같은 드로잉 작품들에서도 사람과 동물들이 서로 얼기설기 엮여있는 표현을 많이 보게 된다.

그 모습은 서로 먹고 먹힌 느낌이었다기보다

원래 그러했었던 것처럼, 마치 사람과 동물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게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모던하고 차분해지지만 은근히 마음 따사롭게 만들어준 전시.

 

* 사진출처 : 대림미술관(http://www.daelimmuseum.org)

* 읽어볼 만한 글 : http://blog.empas.com/wopark/12975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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