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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연재 22 - 강

 

서태지 노래도 민중가요라고?
[노래이야기 22] 90년대 논쟁과 노동자 율동단 등장 & <강>
 
 
 

90년대 중반 민중가요에 대한 논쟁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95년 초, 나우누리 민중가요 동호회에서 누군가의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가 민중가요일 수도 있다’는 글에 공방이 벌어지다가 결국 ‘민중가요가 무엇이냐’는 문제로 넘어간 적도 있습니다. 여기에 나름 그 시절 활동을 하던 유명 평론가와 창작자들이 가세를 하면서 확산되었습니다.

 

서태지 노래도 민중가요?

온라인 상의 논란이 그렇듯 딱히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그 즈음 민중가요, 노동가요가 이전 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되고 있던 시기였기에 논쟁은 민중가요의 개념과 범주, 정체성과 방향까지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만큼 민중가요가 어떻게 가야할지 관심은 지대했지만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대중들에게 검증되는 새로운 민중가요가 활발하게 창작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96년에는 홍대 앞 인디 밴드들과 민중가요 진영의 록밴드들이 만나 독자적인 유통망을 만들어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조금은 낯설고 선정적인 멘트들이 날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96년 국회에서 노동법, 안기부법을 날치기로 통과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노동조합은 총파업에 돌입합니다. 96~97 총파업을 거치며 ‘언제 그런 논쟁이 있었냐’는 듯이 노동문화는 다양한 양상으로 활기를 되찾게 됩니다. 역시 노동문화가 발전하는 것은 투쟁시기인 것 같습니다.

 

   
  ▲노동자 율동패 공연 모습. 

이 시기의 특징을 꼽으라면 화려하고 웅장한 노래들과 흥겨운 노래들이 인기를 끌면서 율동문선대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불나비>, <바위처럼> 등의 흥겨운 노래에 율동을 붙여 같이 부르면서 노래도 다시 인기를 얻게 되었고, 또한 총파업 투쟁도 힘을 얻게 됩니다. 각 매체마다 특성이 있고, 시기에 따라, 노동자 대중들의 정서에 따라, 매체별로 뜨기도 하고 침체되기도 하는데 이때부터 가장 인기 있고 선동적인 매체로 율동이 부각됩니다.

과거에도 율동 문선대가 있었지만 그 당시는 대부분 선동을 위해 임시로 문선대를 꾸려 임단투 때나 파업시기에 활동을 하였고, 구성원도 노래패나 풍물패 중에 선별해서 율동을 배워 일시적으로 활동을 했더랬습니다. 전문패들 역시 노래공연을 하더라도 임단투 시기에는 임투문화학교, 문선대 학교에서 율동을 같이 만들거나 가르치기도 했고요.

 

노동자 율동단

그러니 전문패 중에 율동패라는 영역은 존재하지 않았지요. 춤패, 탈패 등이 있었고, 연극집단에서도 필요에 따라 춤을 배우기도 했었지만 문선율동을 전문적으로 창작하고 보급하는 단체는 없었던 겁니다. 주로 단위사업장의 노동자 율동패가 있었는데 지하철 율동패 ‘두더지’가 아주 힘찬 선동율동으로 대표적이었습니다.

<다시 노동자로 태어나>, <선포> 등 노문창 노래에 맞춘 율동들로 대중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렇게 파업이나 투쟁시기에 문선과 놀이로서 활용이 되던 율동이 96~97 총파업 이후 본격적으로 노동자율동단을 결성하여 문선 율동을 창작하고 지도하고 보급하기 시작했지요.

노동자 율동단은 전문단체는 아니었지만 한 단사의 조직도 아니었고 율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노동문화활동가들이 모여 만든 집단으로, 창작 율동을 발표하여 보급하고, 지도하는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98년 겨울 창작율동을 모아서 자체 공연도 했고, 노동자대회 전야제 때는 전국의 율동패들을 모아 율동 집체공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매 시기 대중적 인기를 얻은 노래들에 율동을 창작해서 보급하였고, 단지 선동 율동 뿐 아니라 경쾌한 노래에 맞춰 흥겹게 함께할 수 있는 것도 창작해 보급하였습니다.

선동적인 율동으로는 <동지>, <세상을 바꾸자>, <강> 등이 대표적이고, 흥겨운 율동으로는 <불나비>, <내일의 노래>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동은 이미 인기를 얻은 노래를 선곡해서 음반을 틀어놓고 공연을 할 수밖에 없고, 음악을 창작하여 몸짓, 춤으로 연결해 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거대한 파도와 같은 몸짓들

또 기존의 노래라 할지라도 가수가 라이브로 노래를 하게 되면 백댄서 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딜레마도 있었지요. 노동자율동단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주제를 정해 율동을 창작하며 음악을 새로 만드는 시도를 하거나, 가수가 무선마이크를 달고 율동패와 섞여 공연하는 시도도 했었지만 그 성과가 지속되진 못했습니다.

전문 율동패가 없고, 또 가수들이 율동을 전문적으로 연습하기 어려운 현실을 더 이상 극복해 내기는 힘들었던 겁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가장 선동적이기도 하고, 가장 흥겹게 함께 할 수 있는 율동문선이 인기를 끌고 있는 건 여전히 그런 요구들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이번 시간에는 율동패들의 많은 창작 율동 중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만들어지고, 보급되었던 노래, <강>을 들으실 텐데요. 율동과 함께 들을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이 <강>이라는 노래에 맞춘 율동은 노동자들의 거대한 파도 같은 힘과 출렁거림을 어렵지 않은 율동으로 잘 표현하였습니다.

<강>은 도종환 님의 시에 윤민석이 곡을 붙여 95년 금속산업연맹에서 제작한 음반에 박은영의 목소리로 수록되면서 처음 발표되었는데, 후에 꽃다지에서 편곡해 부른 서기상의 노래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 율동을 본 적이 있는 분들은 출렁대듯 밀려오던 율동을 상상하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강>


                                                                   도종환 시, 윤민석 곡

가장 낮은 곳을 택하여 우리는 간다. 가장 더러운 것들을 싸안고 우리는 간다.
너희는 우리를 천하다 하겠느냐, 너희는 우리를 더럽다 하겠느냐
우리가 지나간 어느 기슭에 몰래 손을 씻는 사람들아
언제나 당신들 보다 낮은 곳을 택하여 우리는 흐른다

 

음원 출처 : 서기상 1집 [세상속으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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