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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에 대한 나의 기억 (2)

 도대체 시간은 얼마나 흐른걸까? 내가 붙잡힌 건 해가 지기 전 6시 정도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캄캄하다. 경찰들은 그 선배를 검거하는 걸 당연히 실패하고 투덜거리며 돌아왔다.

아주 조그맣게 내가 "저는 이제 풀어주세요"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이들은 내가 둘러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조금 늦게 갔으니 그가 낌새를 채고 튀었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어떤 결과였어도 내 운명은 마찬가지일까? 아니면 달라지는 걸까?

다시 눈을 가리고 아까 있던 그 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나를 혼자 방안에 앉혀두고는 모두들 나갔다. 다른 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여긴 어딘지, 시간은 얼마나 됐는지... 좀 지나면서 주위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까의 그 욕조엔 여전히 물이 채워져 있고, 그 옆에 세면대와 변기가 있다. 그리고 병원에 있는것 같은 침대 하나... 창문이 있었다. 세로로 길쭉한... 여긴 지하는 아닌 거 같다.

물을 계속 틀어놔 버려 물바다를 만들어 볼까... 그럼 무슨 일인가 일어나지 않을까?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 찬찬히 생각을 해봤다.

언젠가 내가 속한 언더조직 선배가 끌려가 당한 여러가지 고문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요령도 이야기해주었더랬다. 더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알리바이를 생각했다.

언더조직에 있던 우리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알리빠따라는 걸 설정해놓는다.

잡혀가게 되면 다 누구의 책임(?)으로 돌린다는 거다. 나도 있었다. 그 사람은 이미 작년에 빵에간 선배다. 그리고 나는 오픈써클인 노래패 활동만 이야기하면 된다.

나는 딴따라다.. 그냥 노래가 좋아서 써클활동을 하는 거고, 그 써클 선배가 나를 꼬셨고, 이것저것 부탁했다. 그 형과 나는 애인사이다. 머리속으로 되뇌이고 되뇌었다.

 

엄마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휴학할 때 엄마 아빠와 엄청 싸웠다. 나는 학교를 때려치겠다고 했고, 두분은 절대 안된다였다. 싸우다가 합의를 본게 1년간 휴학이었다. 내가 엄마한테 아주 모진 소리를 했었다. 아빠한테 난생처음 따귀를 맞았다. 그 이후로 계속 냉전상태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미안했다. 눈물이 흘렀다.


문이 열리더니 나이가 좀 든 남자가 들어왔다. 울고 있는 나를 위로했다.

처음엔 내가 하도 체구도 작고 어려보여서 십대쯤 되는 여공인 줄 알았단다. 그런데 내 가방을 가서 다 뒤져보고 내가 대학생인 걸 알았단다. 잘만 하면 금방 나갈거라고...

누군가 문을 열고 쟁반과 속옷, 칫솔을 가져왔다. 옷갈아입고 밥 먹으라며 나갔다.

쟁반엔 무슨 해장국같은게 있었다. 그리고 포장된 팬티와 러닝이 있었다.

여기는 전부 카메라 장치가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속옷을 갈아입었다.

밥을 먹었다. 그래도 먹어야 하니까... 먹어두자...우걱우걱 쑤셔넣으며 또 눈물이 났다.


다시 그 남자가 들어왔다. 학생수첩을 펼쳐 적힌 일정들을 읽으며 물어봤다.

내가 속한 조직이 어디냐고...나는 울림터라는 노래써클을 한다고 했다. 그거 말고 다른 조직 없냐고, 그런 게 뭐냐고 내가 다시 물었다.

수첩에는 바로 며칠전 5.3 인천 집회가 적혀있었다. 종5(종합관 5층)이라고 적힌 내 세미나 일정을 종로 5가 집회로 생각했는지 그것도 물었다. 난 모른다고 했다. 종합관 5층 수업이라고...

그자는 갑자기 여기가 어딘지 아냐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

여기가 그 유명한 남영동 블랙박스... 치안본부 대공분실이란다.

그 와중에 나는 진짜요? 라고 물었다. 그렇단다. 난 다시 거짓말 마세요. 저 겁주려고 그러는 거죠? 했다. 그 사람이 서랍에서 무슨 서류같은 걸 꺼내 보여준다. 거기에 그렇게 써있었던 것 같다.

여기서는 너 같은 건 죽어나가도 모른다고 했다. 자기들은 그런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곤 나보고 잠깐 나오란다. 나를 데리고는 옆의 어느 방으로 데리고 간다. 그 방문을 열었다. 거기엔 내가 잘 아는 83선배가 얼굴이 퉁퉁 붓고 피멍이 든 상태로 앉아 조사를 받고 있었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서로 깜짝 놀랐다. 아까의 비명소리가 저 형이었을까?

문을 닫더니 다시 원래 있던 방으로 데려갔다. 그 사람 아냐고.. 알아요. 우리 써클 아래층 마당패에 있는 선배예요. 이름 아냐고... 별명밖에 몰라요.

"저는 그냥 나가도 되는 거 아닌가요? 저 좀 내보내 주세요."

"협조만 잘하면 금방 나갈 수 있으니까 걱정말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잘해"

아까 생각해 두었던 대로 나는 나의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그자는 내말을 믿는 듯 했다.

나는 정말 그게 사실이라고 내 대학 생활은 그러하다고 굳게 믿었다.


이젠 잠을 자란다. 그리곤 여경이 하나 들어왔다. 그는 나가고 여경은 간이 침대를 펴고는 누웠다. 양치질을 하고 침대에 누웠다. 이제 긴 하루가 끝난건가? 피곤했다. 꼭 수영을 하고 난 뒤처럼 몸도 뻐근하다. 아프다는 생각은 안들었다.

며칠 전 5월 1일 메이데이, 가투가 끝나고 연대앞 다리네(실내포장마차같은) 술집에 앉아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는 동기들은 내 성년식 파티를 해주었다.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갔기 때문에 그 해가 만 스물이 되는 생일이었다. 동기들은 재수하고 온 경우 나보다 두살이 많았다. 파티라고 해봐야 쵸코파티같은 거에 굵은 양초에 20이라고 쓰고 그냥 술이나 먹는거지만... 그리곤 인천 5.3 집회에 갔었다. 거기서 전경이 던진 돌에 맞아 허벅지에 시퍼런 멍이 들었다. 다시 사흘뒤 학교 대동제 공연 때 혈서를 썼고, 이틀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자료를 정리해서 막내 방 침대 매트리스 밑에 깔았다. 막내에겐 아빠한테도 이야기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인 동생은 며칠전 공연 때 내가 혈서를 쓰는 걸 보고 대충 눈치를 챘는지 아무말 없었다.


눈을 떴다. 또 쟁반에 아침밥을 가져왔다. 그래도 어제보단 잘들어간다.

어제의 그 자가 또 들어와 이것저것 물었다. 나는 성심성의껏 대답을 했다. 내가 믿고 있는 것만큼.

지루한 하루가 또 지나갔다. 저녁밥을 먹고나니 경찰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웅성웅성 지들끼리 뭐라뭐라 하는데 우리집을 털었나보다. 식구들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젠 어쩌나...

그들이 나가자 다시 그자가 앉아 이야기를 한다.

아버님도 점잖으시고 아주 훌륭하신 분이더라고...집도 괜찮게 살더구만 왜 이런 짓을 하냐고...

"집에 갔었어요?" 식구들의 안부를 묻고 싶었다. 내가 무슨 일 터질 때마다 집에 안들어가곤 했으니 별로 이상하게 생각은 안할거라 여겼는데... 얼마나 다들 놀랬을까 싶었다. 미안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우리 할머니 제삿날이다. 친척들이 전부 와계셨을텐데. 온 동네 소문은 다났을 거고, 난리난리칠 아빠와 고모얼굴이 떠올랐다.

할아버지가 월북을 하시고 빨갱이 집안이라고 아빠 식구들은 무지하게 수모를 당하며 사셨고, 결국은 마을을 떠나 주민등록까지 위조해 살기도 했었단다. 아직도 빨갱이라면 치를 떤다. 아니 집안 다 말아먹고 사람들 다 죽이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틀을 더 있었다. 특별히 더 진전된 조사를 하는 것 같진 않았다.

할 이야기가 별로 없는지 그 자는 나에게 애인하고 키스는 해봤느냐, 여관은 몇 번이나 갔었냐...

이런 질문들을 해댔다. 그런 거 모른다고 딱 잡아땠다. 별로 말 섞고 싶지 않았고, 화를 내고 싶기도 했지만, 뒷감당할 자신도 없고, 그저 가만히 고개만 저었다. 그 자는 철없어 보이는 나에게 성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개XX!) 뭔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멀뚱멀뚱 대꾸도 없이 듣고 앉아 있었다.


그날 아침은 어수선했다. 사람들이 왔다갔다하고... 그러더니 나보고 짐 챙겨서 나오란다. 어디로 또 가는걸까? 운명에 맡긴다는 마음으로 아무생각없이 따라나갔다. 이번엔 눈을 가리지 않았다. 어떤 사무실 같은 방에 들어갔다. 아빠가 앉아계셨다. 깜짝 놀랐다. 아빠는 앉아서 신병인수서 라는 걸 쓰고 계셨고, 조서도 다 읽고 있었나 보다.

앞으로 쓸데없는 데 좆아다니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며 그 자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아... 나가는 거구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빠랑 나가는데 그자가 다시 불렀다.

당분간은 수시로 더 만나야 한다고... 연락하면 그 때 그 때 나오라고... 했다. 역시 아무생각이 들지 않았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빠는 아무말 없이 내 어깨를 감싸며 “집에 가서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 푹 자라” 하셨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눈물만 흘렀다.

집에 들어가자 마자 엄마는 나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벌겋게 부어오른 눈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무슨 일 없었냐고 물으셨다. 그런 일은 없고...그냥 많이 맞았다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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