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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의 결혼소식

내가 결혼할 때 나이가 스물여덟이었다.

그 때만 해도 결혼 적령기라는 게 있었고(지금도 그런 표현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그 나이는 대략 20대 초반이었다.

결혼할 사람들은 20대 초중반이면 짝을 찾아 식을 올렸다.

물론 그 때도 40이 넘어 결혼을 하는 선배도 있었지만 무지하게 늦게 가는 거라고 여겼었다.

그러니 내 나이 20대 중후반이 되자 단체의 동료들은 죄다 나를 일컬어

우리 노처녀 왕언니, 언제 결혼하나...

연초 창립기념일 고사를 지낼때면 고사문에도 그 이야기가 오를 정도로

여성으로서 나의 결혼은 단체 내의 걱정거리였었나 보다.

 

세월이 10여년 흘러 세상의 인식이 바뀌고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고, 또 미혼이 아니라 비혼자들이 늘어나면서

그런 이야기는 많이 들어갔지만

그래도 그 당시 친구들이 모이면 결혼이야기가 주로 화제가 되곤 했다.

나야 뭐 그런 일에 별 관심도 없고 (내가 이미 결혼을 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역시 결혼한다는 여자 후배에게 

"뭐하러 하냐... 우아하게 싱글로 연애만 실컷하고 살아라.

결혼 해봐야 아무리 좋은 남자 만나도 결국 남자는 똑같다"

는 이야기로 뜯어 말리기도 했지만

반응은 대부분 "꼭 결혼한 사람들이 저런 이야기 한다니까" 였다.

심심찮게 해마다 한 두명씩은 결혼을 하니까

결혼하지 않는 여자 후배들의 연애 이야기와 결혼 이야기는

어쨌든 늘 관심사일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러던 며칠 전...

오랫동안 연락하며 사는 아끼는 후배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녀는 첫사랑에 실패한 후 그 상처를 오랫동안 (내가 미련하다고 구박을 엄청했는데) 끌어안고 살았고

누가 주변에서 소개를 시켜줄라 치면 손사래를 치며 질색을 하곤 했다.

연애라도 하라고, 혹시 사귀는 사람 있나고 해도 절대 아니라고 난리를 쳤던 그녀가

갑작스레 결혼을 한다길레 궁금했다. 과연 사실인지...

마침 연락이 와서 만나 사실 확인을 하니 그렇단다.

누구냐니까 어쩌면 알만한 사람일 수도 있고, 또 나이 차이가 좀 있다고 한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하는데 한 번 결혼을 했었던 사람이란다.

"그럴 수 있지, 뭐. 요즘 같은 세상에" 하니 아이도 있단다.

아이는 9살이고, 부인은 3년전에 돌아가셨단다.

 

이 대목에서 나는 잠시 뭐라 할 말이 없어졌다.

"집에서는?" 나는 그녀의 어머니를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이미 한 번 난리 부르스를 치렀죠"

... ... ...

 

"누가 먼저 프로포즈 했어?"

"당근 그 사람이죠 ^ ^"

"결혼하자고 해?"

"아뇨, 널 좋아해도 되냐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안된다고 했어요"

"근데?"

"기다리겠대요, 언제까지래두"

 

... ...

한참 복잡한 생각에 할말을 잃고 있던 나는 겨우 한 마디 했다.

"그 양반 참 용기있고 당당한 사람이네, 너두 그렇고..."

조만간 같이 만나자고 했다.

 

헤어져 돌아오면서, 그리고 그 밤 내내 나는 마치 내가 그녀의 엄마인 양 머리속이 복잡했다.

그치만 한편,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내가 이상한 걸까?

 

진심으로.... 축하한다...

행복하게 정말 잘 살길 바란다...

너희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고 메시지를 보냈다.

정말 두사람이, 아니 세사람이 주위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잘 살길 빈다.

 

근데... 머리속은 계속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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