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옛날 썻던 글 읽기

28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11/16
    앨범에 사진들을 집어 넣으며....|
    간장 오타맨...
  2. 2008/11/16
    라삐가 아파요.
    간장 오타맨...
  3. 2008/11/16
    으악, 힘들어! 하루에 세가지 행사
    간장 오타맨...
  4. 2008/11/16
    고향의 둥근 달을 떠올리는 이주노동자와 함께 만드는 추석행사
    간장 오타맨...
  5. 2008/11/16
    지역시민과 이주노동자가 함께하는 다문화공연
    간장 오타맨...

앨범에 사진들을 집어 넣으며....|

  • 등록일
    2008/11/16 15:00
  • 수정일
    2008/11/16 15:00

*** 지역아동센터 다솜공부방과 오산이주노동자센터는 아래측 위층 사이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다.(함께 다솜공동체를 이루면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이주노동자와 결혼여성이주민을 삼촌과 이모로 섬기고, 이주노동자분들은 아이들을 조카와 자식처럼 보살피어 어울렁더울렁 함께 살아가고 있다. 종종 그래서 아이들의 그림과 일기장을 살펴보며 개인정보를 훔쳐본다. 보면서 마냥 미소에 웃음과 아이의 동심에서 유년시절의 추억을 되살려본다.

 

다솜공부방 아이들 사진을 한장씩 한장씩 앨범에 꽂아진 사진을 넘겨보고, 다시금 앨범에 넣었다.

 

지금 있는 아이들의 유년시절과 이미 공부방을 떠나 다른지역으로 간 아이들.... 지금 공부방에 있는 아이들을 보며 과거와 현재 공부방의 모습을 끄집어 내어 본다.

 

늘 말썽만 부리는 아이들...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도 언 3년이 다 되어간다. 이런 아이들이 이전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상상만 해오다. 이전 야유회 또는 다른 행사 공부방에서 즐거운 한때의 사진들을 보며 세월이 지났음을 느낀다.

 

사진에 비친 아이들....

폼을 잡고 미소를 머금고 있는 아이들... 그러나 과거 사진에 있는 아이들중 내가 보지 못한 아이.... 그리고 집이 이사를 가서 더이상 볼 수 없는 아이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지난한 공부방의 역사를 들춰본다. 선생님이 바뀌었지만 이름과 정신만은 바뀌지 않은 곳... 아이들이 때론 도가 지나칠 정도로 장난을 치면서 놀지만 아이들에게 밝음을 잃지않기 위해 함께 떠들고 노는 곳... 아이들에게 있어 다솜공부방은 왜 집같은 공간이며, 삶의 공간일까? 생각을 가져본다.

 

다들 학원가는 것이 보편화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같이 있고 살고 있는 아이들은 학원은 커녕 학습지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기도 버거운 형편이기에 아예 공부방 아니고서는 머물공간이 마땅치 않다. 아이들이 그래서 이 공간에서 방과후 시간을 보낸다. 이런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 내가 없던 시절의 사진들을 통해 아이들과 무언의 대화를 해본다.

 

사진 한장한장을 보며 아이들에게 말해본다. 야 참 노래 멋드러지게 불렀겠구나... 옷은 잘 어울리는데... 하면서 아이들 그래서 머슥한지 미소만 연거푸 사진속에서 보낸다. 하하...

이런 대화를 자주해본다. 다들 그늘보다는 웃음으로 환히 꽃을 피우고 있다. 참.... 어렸을때는 귀여운데... 지금은 왜 이렇게 말썽대장이냐... ***놈아.... 호통도 쳐본다. 혼자 이렇게 사진을 보면서 주문 외우듯 키득키득 웃어본다. 참 많이 컷구나 ***야 그런데 요즘은 자주 공부방에 오지 않니... 자주오면 내가 컴퓨터 시간 조금 늘려줄텐데.... 저번주 토요일 스타크래프트 게임대회는 재미있었어.... 누가 우승했니... 등등 이런 이야기를 나혼자 사진과 함께 독백으로 흘려보낸다. 아이들 아무말 없이 웃음으로 그냥 미소만을 전달한다. 그래 늘 힘들지만 그 웃음 잃지 마렴.... 니가 감당하기 힘들면 공부방 선생님에게 기대.... 도움은 되지 못하지만 말벗 그리고 살아가는데 함께한다는 소중한 진리를 알려줄 수는 있잖아... 마음의 위로도 받고, 너무 혼자 힘들어 전전긍긍하지 말고... ***아 그리고 이번 중간고사 지난번도다 평균이 무려 20점 올랐다며... 함께 공부한 보람이 있구나... 다음 목표도 함께 세워 시험기간 열심히 한번 공부도 해보자꾸나...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사진들을 바라보면 내가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다 어디로 갔니 하고 한 친구에게 독백으로 물어보면... 이사 갔어요. 그리고 아무말도 못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공부방 아이들 공부방이라는 그늘에서 잘 자라고 티없이 맑게 함께 살아간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든다.

 

속이 숮 검뎅이들이지만 얼굴만은 환하게 빛나고 있다. 그래 참 보기 좋다. 즐거운 모습이 이렇게 고스란히 앨범 속에 있구나 그리고 벌써 이렇게 성장해서 이제는 코에 수염이 나는 청소년으로 자랐구 여자아이들은 이제 멋부리며 숙녀 띠를 내는 아이로 컷구나 잘 자란 니네 모습 보기 좋더라..... 앞에서 보면 이런 이야기 앨범을 보면서 해주고 쉽다. 공부방 아이들 너무 개구장이라서 꼴밤도 때리기도 하고 화도 많이 내지만 그래도 니네들이 있어 나도 많이 기운을 낸단다.

 

변선생님과 오목사님도 아마 내가 보는 앨범을 보면 주마등 처럼 니네와 좋았던 한때를 회상하겠구나... 참 머슥하게... 사진보니 내 유년시절도 회상해 본다. 처음 촌놈이 서울대공원 내가 어렸을땐 서울대공원이 창경원이라고 불려 창경궁 근처에 있어 그곳에 동물을 보러 갔던 기억이 새록 든다. 시골에서 서울올라와 가봤는데 먼놈의 도시가 이렇게 큰지... 우리 동산 두배아니 몇배가 되어서 눈이 휘동그레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니네들 사진보니 새롭게 들어온 아이들 그리고 오래된 헌내기들 니네 모습 더 보기좋더라...

앨범 사진들 정리하면서 니네 과거와 현재를 그냥 스쳐 생각해 보았다. 보기 좋다. 앞으로도 사진 처럼 웃으면서 살아보렴....

 

월말 여성결혼이민자정보화교육, 비문해자정보화교육, 사회적일자리지원금신청서, 쉼터 사업추진실적보고서를 쓰다가 다솜공부방 아이들 사진에 비친 멋드러진 모습보고 함박웃음꽃 피워보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라삐가 아파요.

  • 등록일
    2008/11/16 14:58
  • 수정일
    2008/11/16 14:58

 

 

(2005. 6. 29. 라삐출국 환송회 파티를하는 오산이주노동자센터센터 어린이집 사진.)
 

방글라데시 아이 라삐가 방글라데시로 출국한지 2년만에 다시금 병이 있어서 어머니와 함께 3개월짜리 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라삐 어머니는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열병을 얻어 오산 한국병원에 입원하였고, 다시금 화성 병점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였다가 경기도립의료원 수원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한국에 들어오자 마자 3곳의 병원에 입원하여 병원비로 무려 300만원의 비용을 지급하였습니다. 그나마 수원엠마우스에서 병원비를 100만원을 지원받아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방글라데시 라삐 아버지는 과로사로 인하여 사망하였고, 어머니가 미등록이주노동자로 일하면서 라삐를 키웠습니다. 라삐는 아버지가 과로사로 사망한 그날 태어났습니다. 2001년 2월 20일 태어날 때 부터 저 출생체중 1.77KG으로 저 출생체중아로 수원에 있는 성빈센트병원에서 심장에 심잡음이 있어 와래검서를 받고 초음파상 "심방중격결손 및 중증도 폐동맥 협착소견 관찰이 된다는 소견을 받았습니다. 이에 태어나자 마자 인큐베이터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 라삐의 병 소견서에 따르면 "외래에서 체중증가 지연되어 2002년 1월 4일 및 2002년 8월 2일 시행한 초음파에서 다른변변은 호전되었으나 폐동맥 협착소견은 지곳됨. 본원(수원 성빈센트병원)에서 심초음파는 2003년 10월 28일 마지막 시행하였고, 수술 필요성에 관한 추가 검사위해 3차병원으로 전원후 2004년 10월 30일 이후는 본원에 내원치 않았음, 본 환아는 경제적 사정으로 더 자세한 검사 시행받지 못했으나 임상적으로 염색체 이상등의 선천성 유전질환등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 있음. 향후 심장과 성장 발달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환아였음.-

 

라삐 엄마는 남편의 죽음이 채가시기 전에 아들의 인큐베이터에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남편 또한 과로사로 사망하였는데.... 이전 회사에서 워낙 일이 힘들어 다른 회사로 이직한지 일주일만에 집에서 쓰려져 사망하였습니다. 사망원인은 과로에 의한 돌연사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아무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방글라데시 친구와 라삐 외삼촌, 친삼촌과 라삐엄마가 모든 돈을 갖고 방글라데시로 500만원의 시신운구비를 지불하여 보냈다고 합니다.(무슬림의 경우 영혼이 빠져나가기 전에 무슬림 사원의 수도자 입회하에 장례를 치뤄야지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에 사망을 하였을 경우 빠른시일내에 장례를 치뤄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 이태원에 무슬림 사원이 있어 수도자가 입회하에 시기를 농친 무슬림인들의 장례식을 치뤄 시신을 고국에 보내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힘든 한국생활에서 라삐엄마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친동생, 시동생, 라삐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먼저 죽은 남편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라삐였습니다.

 

그런 라삐는 인큐베이터에서 7개월간 생활을 하고 엄마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라삐엄마는 라삐를 키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래서 피덩이가 채 가시지 않는 라삐를 인근  노부부의 집에서 키우게 되었습니다. 라삐엄마는 한국에서 생활을 하기 위해서 라삐를 나두고 일을 다녀야 했습니다.

 

늘 라삐때문에 마음을 졸이던 라삐엄마는 2004년 오산이주노동자센터에서 운영하는 탁아방에 와서 필리핀 짜니, 피아, 방글라데시 밈, 라삐, 한국인 해천, 애지, 네팔아이 수진이와 함께 탁아방에서 같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라삐엄마는 계속되는 단속으로 인해 불안하여 2005년 7월 라삐를 데리고 방글라데시로 돌아갔습니다.

 

방글라데서로 돌아갔지만 계속해서 라삐가 방글라데시에서 아파서 치료를 위해 2007년 6월 3일 3개월 방문비자(라삐치료를 위한 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에 2년만에 들어왔습니다.

 

라삐는 지금 한국나이로 7살이지만 현재 예전과 같이 마른 체구에 큰 눈동자를 두리번 거리는 맑은 아이입니다. 병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천방지축이지만 어머니는 라삐가 혹시나 아프고 병이 깊어지면 어쩌나라는 근심으로 걱정이 앞섭니다.

 

치료비도 만만치않고, 이주노동자, 자녀, 노숙인 지원을 위하여 수원의료원 보건복지부 무료의료지원을 신청하려고 해도 입국한지 90일이 되지 않아 무료의료지원을 받을 수 없고, 또한 향후 치료를 받기 위해 얼마의 비용이 들어갈지 모르는 상황인지라 걱정이 앞섭니다.

 

다른 문제는 3개월방문체류비자가 다음달 이면 만기가 됩니다. 라삐엄마는 라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비자연장을 받아야 하지만 돈이 없어 치료는 커녕 라삐와 다시금 방글라데시로 돌아갈까봐 걱정이 앞서 어제 저희 센터에 찾아왔습니다. 어머니는 라삐가 병원에 입원하면 일을해서라도 라삐의 치료비를 벌어서 주겠다고 하지만 이도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비자가 만료되거나 라삐가 병원에 입원하면 어머니가 돌봐야 합니다. 병원비를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일단 저희가 비자관계는 저희 관할 출입국관리소에 알아보고 라삐가 보건복지부 무료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입국후 90일이 지나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를 해보자고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도 이전 필리핀 카마트씨 사례와 같이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과 방송국 모금활동을 할 수 없다는 아주대 사회복지팀의 말처럼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에 라삐에 대한 지원을 위한 작은 활동을 시작하기 위한 고민을 진행중입니다. 그래서 일단 보건복지부 지원에 의지해 보고 돈이 필요하게 되면 그 후 생각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라삐엄마의 체류비자를 연장하고 라삐에 대한 치료를 위한 고민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이주노동자 가족의 현실이 이렇게 답답하게 다가오는 나날들의 연속입니다. 라삐를 위한 작은 활동을 이제 해봐야 겠습니다. 8월 26일 경기도립의료원 이동차량무료진료에 의뢰하여 라삐의 치료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 봐야 겠습니다.

 

라삐는 현재 어머니와 함께 방을 얻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허름한 집에서 치료를 기다리는 라삐에게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으악, 힘들어! 하루에 세가지 행사

  • 등록일
    2008/11/16 14:57
  • 수정일
    2008/11/16 14:57

 

 

8월 26일 오산시민회관에서 경기남부지역 필리핀이주노동자 농구 챔피온쉽 결승전, 경기도립의료원 무료진료, EBS 공개라디오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하루에 3가지 행사를 진행하기에 버거웠습니다. 결국 탈이나고 말았지만 소중한 경험들이 었습니다.

EBS 공개라디오방송 마지막 방송분을 농구를 진행하시는 필리핀 이주노동자분들의 아우성으로 녹화를 못하고 3회분을 마감으로 행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늘 이주노동자들을 생각하며 기획한다고 하지만 욕심은 과욕을 불러 결국 행사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행사를 통하여 저희의 정체성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는 간단하면서도 간결한 결론을 도달하였습니다.

욕심을 내어 행사를 하는 것보다 이주노동자들의 입장에서 행사와 그리고 함께하는 것들을 중심에 놓고 사업을 진행하여야 겠다는 생각을 계속해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농구행사를 위해 모인 필리핀 이주노동자들.... 일요일날은 그/녀들에게는 휴식의 시간이 아닙니다.

 

단속의 불안감은 이주노동자들 대부분을 야간근로에 종사하게 하고 있습니다.

 

야간작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방송이 진행되면 챔피온쉽 결승 우승팀을 볼 수 없다는 불만.... 그/녀들을 설득하기 보다 그/녀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왔습니다.

늘 미안하다는 이야기만 하는 것이 죄송스럽게 생각되는 날이 었습니다.

 

그래도 저희센터는 최선을 다해 행사에 임했고, 마지막 농구에서 안정리팀이 우승하는 것을 보면서 행사를 모두다 마무리하였습니다.

 

오늘 어제의 일을 생각하며 다음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입장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중심이 되는 행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9월 16일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 문화행사를 함께 준비하면서 어제와 같은 과오를 겪지 않고자 합니다.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고향의 둥근 달을 떠올리는 이주노동자와 함께 만드는 추석행사

  • 등록일
    2008/11/16 14:55
  • 수정일
    2008/11/16 14:55
유난히 추석이 되면 이주노동자들은 근심에 사로잡힙니다. 고향에 그리운 이들 그리고 보고 싶은 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날입니다.

다들 일상의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 추석 둥근달이 떠오르는 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으로 귀향의 설레임으로 온통 들뜬 마음의 분위기가 이주노동자 그/녀들이 머물고 있는 사업장과 주변을 떠들섞하게 하지만 정작 이주노동자들은 친구들과 모여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랩니다.

이런 이주노동자들과 작게 나마 2006년 추석행사를 하였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보고 싶은 영화, 음식, 각 나라별 작은 축제를 센터에서 주관하고 공동체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통하여 진행하였습니다.

 

자신들의 나라별 풍속을 이야기하며, 스리랑카, 네팔, 인도네시아, 필리핀, 방글라데시에서의 풍경들을 설명하며,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이주노동자 각 나라별 친구들이 모여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랩니다.

 

휴일과 다르게 추석 명절은 이주노동자 그/녀들에게도 뜻 깊은 날입니다.

바쁜 일상으로 잃어버렸던 고향의 그리움을 떠올립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부모님과 자란 필리핀 짜니, 피아에게 부모는 자신의 어린 시절 동심을 이야기하며, 한국에서의 시름과 어려움들을 잊어먹고자 노력하는 모습에서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접 경험합니다.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니고 각기 다르게 왔지만 이주노동자 그/녀들은 서로를 기대어 외로움이 그득한 명절을 그/녀들만의 작은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함께 외로움을 달래는 모습에서 그/녀들의 한국에서의 삶의 단면을 엿봅니다. 그래서 명절에 저희 센터 식구들 또한 함께 이주노동자 그/녀들과 함께 보냅니다. 

 

명절 꼭 빼놓지 않고 회자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 이름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게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가에 눈물이 그득히 얻혀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저희 센터 식구 또한 동화가 되어 눈가에 눈물이 그득히 담겨져 있습니다.

 

필리핀 제니씨는 작년 추석전에 누나가 지병으로 사망하여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남달랐습니다. 어머니 또한 병이 있어 늘 전화를 하면 울먹이는 제니씨의 모습에서 가족에 대한 제니씨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제니씨는 한국에 온지 올해로 16년째가 됩니다. 한국에 와서 재혼을 하여 짜니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에 두고온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필리핀에 있는 아들과 야후 화창 채팅을 할때가 제일 즐겁다는 제니씨.... 가족을 위해 제니씨는 늘 힘을 내지만 가족에 대한 근심은 그녀를 힘들게 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은 작게나마 제니씨를 위해 따갈어 노래를 불러주며 용기를 불어 넣어 줍니다.

 

먼 타향이지만 친구들이 있어 힘이 된다며 애써 눈가에 물기를 닦아 내며 힘을 내는 제니씨 모습에서 옛 우리 누이들이 도시로 향해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세삼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특히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고향에 가고 싶지만 보다 낳은 미래를 위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꿈으로 대신하며 스스로 달랩니다.

 

작년 작지만 그리움을 달래고, 이주노동자 그/녀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작은 파티를 진행하였답니다. 다들 일정이 바뻐 한데 모이기는 힘들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자신들이 직접 만든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음식을 먹으면서 자신들만의 명절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모습.... 그/녀들의 위안법인것 같습니다.

 

애써 큰 웃음지우며 웃어보는 모습 작년 함께 이주노동자와 보낸 추석이랍니다. 맥주와 음식으로 그리움을 털어내는 이주노동자 그/녀들에게 추석의 둥근 달은 아마도 고향에 있는 그리운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전령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고향에 돌아갈 꿈을 간직하게 하는 희망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답니다.

작년 추석행사에서 함께 있어 힘이 난다는 이주노동자들의 말처럼... 그/녀들이 한국생활하는 동안 늘 건강하고, 각자의 꿈이 하나둘 영글어 그리운 이들과 함께 즐거운 날을 보내기를 소망해 보았답니다.

 

올해 추석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둥근달 맞이를 위해 인근 생명학교에서 노래와 춤이 어울어지는 대동마당을 준비하고자 합니다.

각 나라별 음식을 만들어 이주노동자 그/녀들만의 잔치를 펼칠까 합니다. 영화, 음악, 잔치가 있는 추석맞이 행사를 통해 그/녀들에게 고향의 아늑함은 아니더라도 명절날 함께 있어 행복함을 느낄 수 있게 작은 파티를 준비하고자 합니다.

 

각기 끼가 있는 이들이 기타와 생음악으로 자신의 끼를 발산하는 추석을 통해 고향의 그리움을 달랠 수 있고, 이주노동자 서로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일깨워 주고자 합니다.

 

저희 센터 식구들이 둥근달이 떠오르는 추석이 더 셀레이게 기다려 지네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역시민과 이주노동자가 함께하는 다문화공연

  • 등록일
    2008/11/16 14:54
  • 수정일
    2008/11/16 14:54

 

 

9월 16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오산문화예술회관에서 이주노동자와 지역민들이 모여 다문화공연 "우리는 하나의 큰 가족"이라는 주제를 갖고 진행하였습니다.

오산지역 중고등학생에게 다문화체험자로 참여하였고, 자원봉사자들 또한 참여하였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이주노동자와 여성결혼이주민이 우리의 이웃으로 자리매김시킬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터울림예술단의 풍물길놀이를 시작으로 네팔,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등 숨은 재주들을 이주노동자와 여성결혼이주민들이 보여주었습니다. 낮선 문화이지만 이주노동자와 여성결혼이주민 그/녀들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우리사회가 급속히 변화되는 것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3시간 내내 흥겨운 음악들 그리고 이주노동자와 여성결혼이주민 그/녀들의 어려움들을 공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행사가 끝나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많은 지역시민들이 참여하여 우리 주변에 있는 이주노동자와 여성결혼이주민 그/녀들의 삶을 느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여전히 지역사회에서의 이주노동자와 여성결혼이주민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합니다.

늘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는 것이 좀 마음이 아픕니다.

이주노동자와 여성결혼이주민들은 결코 불쌍하거나 동정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 또한 불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가난하다고, 현재가 힘들다고 불쌍한 이웃으로 보는 것은 결코 올바른 시선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난이라는 이유로 불쌍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처지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잘못된 시선입니다. 현재 어려움은 극복되어야 할 문제이지 사람을 낙인화 시키는 것은 잘못된 시선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는 이런 어려운 이웃들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길잡이로 지원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난, 장애, 여성,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등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지원을 이야하지만 그 뒷면에는 가난하거나 불쌍하다는 낙인화의 고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런 시선들이 바르게 잡혔으면 합니다.

 

지금의 처지와 어려움으로 결코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오늘 행사가 끝나고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제가 센터에 있으면서 이주노동자와 여성결혼이주민에 대한 시선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친구로서 누나 동생으로서 잘 대해 주지 못한 것이 늘 미안합니다. 함께하는 이웃으로 그리고 친구로서 이주노동자와 여성결혼이주민과 함께 도움을 주거나 받으면서 센터에서 생활을 지속하고자 합니다.

늘 주변에 친구와 동생 누나로서 존재하는 이주노동자와 여성결혼이주민이 있어 행복하게 일할 수 있어 참 좋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나니 기간 스트레스와 고민이 하루 아침에 해소가 되네요. 홀가분하네요.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