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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라는 낙인 - 조주은

#1.

사랑맹목적인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이성애와 결혼제도가 결합된 매우 계산적이고 전략적인 이데올로기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성별화된 사랑 관념은 상대적인 약자(여성)의 전략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에서 친밀한 이성 커플이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은 산업자본주의 시대 이후 강화된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에 기반하고 있다. 데이트 비용을 주로 부담하며 경제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쪽은 남성이고, 상대방을 기쁘게 할 선물을 준비하며 평온과 친밀의 오아시스를 제공하도록 기대받는 쪽은 여성이다.

 

#2.

진보 진영 내에서 성 지식과 이론, 상호 관계를 맺는 방법과 관련한 내용들은 여전히 가장 밑바닥에 있는 하찮은 것으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의 결과는 어떠한가? 피임하지 않고 성교를 한 남성 활동가들은 전과 다를 바 없이 사회 운동하느라 분주하고, 여느 때처럼 자유롭게 밤늦은 술자리를 갖는다. 그러나 그와 성관계를 맺은 여성활동가들은 다음 생리 대까지 적어도 한 달 동안 피가 마르는 초조한 나날을 보낸다. 남성들이 비장한 반전 운동을 결의할 때 여성들은 생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만약 결과가 임신이라면 낙태 수술을 결심한다. 그들이 찾는 곳은 지인들의 눈길을 피할 수 있도록 구석진 곳에 위치한 허름한 산부인과이다. 남성 활동가가 가두시위와 철야 농성 등 치열하게 운동하고 있을 때 여성활동가는 홀로 병원을 나와 일회용 미역국을 편의점에서 꾸역꾸역 먹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며 허름한 여관방에서 몸을 풀기도 한다.

 

남성 활동가들은 정세 분석과 투쟁 방침을 말할 때는 입에 거품을 물면서 한 번의 성관계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신경하고 무지하며 이해하지 못한다. 예전에 한 단체의 대표와 사귀던 어느 여성 활동가는 결혼 전에 세 번의 낙태를 했다고 내게 털어놓은 바 있다. '계급'이나 '민족'과 관련한 거대 담론이 모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조직일수록 불법 낙태율은 더욱 심각하고, 또 은폐되어 있다. 어떠한 조직도 공개 토론회 또는 교육의 장에서 섬세하게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나 피임 지식 따위를 주제로 교육하고 토론하지 않는다.

 

 

내 얘기다 내 얘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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