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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유형의 노이로제 환자들.

“정신 분석가들은 이전보다 자주, 주로 관심의 상실과 주체성의 결여라는 특징을 지닌 새로운 유형의 노이로제 환자를 대하게 된다는 보고를 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는 자주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의문을 가진 환자를 만난다. 나는 이러한 상태를 <실존적 공허>라고 부른다.... (중략)... 나는 프로이드가 보나파르트 공작부인에게 보내 편지 속에서 ‘사람은 삶의 의미나 가치에 의문을 가질 때 그 사람은 병이 든 것이다.’라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오히려 삶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인간임을 입증한 자라고 생각한다.”
 

- 빅터 프랭클 <심리요법과 현대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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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정신과 의원을 오픈한지 한달 반이 넘었습니다. 3년 전 개원의사로 지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병원에 가지고 오는 문제들이 많이 다르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지역적인 특성이나 책의 영향도 있겠지만 지금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딱히 정신과 환자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없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직장생활의 의미가 없다!’ 등 실존적 공허감과 삶의 방향성 부재에 따른 문제를 많이 호소합니다. 실제로 그들의 문제를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적절한 진단명도 없습니다. 물론 우울감이나 과도한 걱정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라고 진단내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저는 한동안 프로이드 외에 다른 정신분석가들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몰랐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프로이드의 이론만으로 제 삶의 문제가 잘 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기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해서 ‘실존적 공허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뒤늦게 저는 다른 정신의학자들과 심리학자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는 인간의 행위를 내적 갈등에 대한 방어기제로만 바라보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시각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깨달음을 기초로 저는 심리상담과 자기계발이라는 두 분야의 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앞으로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현 정신의학적 진단체계로는 정의내리기 어려운 사람들을 더 많이 마주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정신의학은 정신의 병리현상에 대한 관심만이 아니라 인간의 다채로운 정신에 대해 보다 폭넓은 접근이 이루어질 것이라 봅니다.  
 
존재에 대한 의문, 삶의 의미에의 탐색, 자기실현에의 지향성, 생산적인 삶에 대한 도전과 열정... 이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존중되어져야 할 인간만이 지닌  종적 특성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한편으로 우울이나 불안때문에 삶의 무의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현실때문에 우리가 우울이나 불안에 시달리는 것은 아닐까요?
 

- 2007. 6. 7 週 2회 '당신의 삶을 깨우는' 문요한의 Energy Plus [1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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