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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8
    교육 운동도 전략을 재구성할 때
    내맴
  2. 2009/09/23
    성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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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9/09/10
    대학강사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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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9/03
    여성주의 학교 '간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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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9/09/03
    서비스업 고용 흡수 여력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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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9/08/06
    [일다]이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를 둘러싼 교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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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9/07/13
    결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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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9/07/10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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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9/07/07
    2차 가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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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9/07/02
    비정규법
    내맴

교육 운동도 전략을 재구성할 때

교육 운동도 전략을 재구성할 때

[진보논평]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4640

 

느림보(진보전략회의)  / 2009년10월07일 9시55분

 

새로운 일이 두려워 지는 것을 통해 나이가 드는 것을 느낀다. 일을 준비하면서 결과나 과정이 가져올 기쁨을 생각하기 전에 뒷 탈이 가져올 무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을 통해 내가 어느새 젊지 않은 나이가 되었음을 발견한다.
 

 

이명박 정부가 가져다 준 기쁘지 않은 선물의 하나는 모두를 젊잖은, 젊지 않은 사람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등줄기를 훑어 내린다. 그간 몇 가지 일을 겪으면서 이것이 기우나 노망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공안의 망령이 일상에서 되살아나는 것도 그렇다.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공안분실에서 호출명령이 전달된다.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사찰이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적인 편지들이 읽혀지고 대화를 엿듣는다. 같이 살자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헬기를 동원한 위협이 자행되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용산의 절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함께 아픔을 호소한 이들은 몇 달을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혀 지내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행태에 대해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교사와 공무원들에게 징계가 가해졌으며, 위협이 더해지고 있다. 일제고사 대신에 체험학습을 인정한 교사들은 거리로 쫓겨났으며, 그들의 숫자가 늘어가는 중이며, 돌아갈 교문은 굳게 닫혀있다.

 

이런 시기에 교육운동의 전략을 재구성하자는 포럼이 가을이 오고 있는 지난 9월 26일에 진행되었다. 단지 모인 숫자만으로 그 의미의 경중을 가릴 수는 없지만 상당한 규모의 강의실을 채울 정도의 많은 활동가들이 모여 하루 종일 토론을 했다. 이 날 자리에는 익숙한 직책이나 언어 습관을 가진 얼굴들을 대신한 새로움이 돋보였다. 국책기관의 연구원들이나 대학의 교수들이나 젊지 않은 교장들은 자리를 피했다. 그간 교육운동의 중심에 서있던 교사들도 드문드문 섞여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참여자들은 청소년이나 학부모나 학교의 비정규 노동자들이었다.

 

한국의 교육을 걱정하는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이 신자유주의에 기반하여 시장화를 향하고 있다는 데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그간 각 지역이나 단체들에서는 초등, 중등, 그리고 대학의 급별로 쏟아져 나오는 시장화 정책에 나름대로 저항을 펼쳐 왔다. 그러나 일제고사는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학교는 급속도로 시장화되어가고 있다. 학교에는 시나브로 비정규 노동자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대학은 철저하게 이윤기제에 의해 경영되고 있다. 교육정책의 핵심인 대학입시제도는 전선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런 현실을 공유하기 위해 오전에는 초중등부문 시장화의 쟁점과 과제, 대학시장화의 현황과 과제, 청소년교육운동의 흐름과 과제,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함께하는 교원 구조조정, 학교현장의 불안정노동 확산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고 지역운동차원에서 경기지역의 사례와 충북지역 학부모 운동의 사례가 연이어 발표되었다.

 

폭발하듯 터져 나온 각 지역과 급별 사례들은 모두 자신의 절박한 현안 과제들을 제기하며 연대를 호소하였다. 교육운동진영의 대응방식은 더 이상 수세적인 방어논리의 반복을 넘어서라고 요구받고 있다. 지금과 같이 교육운동진영이 자신의 의제 혹은 당장의 현안에만 매달려서는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인 교육시장화 학교시장화 공세에 맞서기조차 어려울 것은 분명하다. 하기에 교육운동진영은 관행적인 현안 정책 대응을 넘어서는 한국사회의 교육문제의 해결을 위해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하며, 무엇보다 대중스스로가 문제해결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실천방안을 모색할 때라는 공동의 인식에 이르렀다. 이런 필요에 의해 오후에는 그간의 운동에 대해 평가하고 의제에서 실천까지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자본과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가 주도하는 교육은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 지배 이데올로기, 그리고 인간 소외를 확대 재생산한다. 또한 교육을 이윤 축적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교육을 상품으로 취급하고 교육을 통하여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한다. 학교는 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기여하거나 순응하는 노동력을 교육을 통하여 생산한다.

 

한국 교육은 이런 보편적인 문제에 더하여 근원적인 질곡이 하나 더해져 있다. 그것은 학벌사회다. 대학서열체제로 인한 학벌사회, 초중등 교육과정을 왜곡하는 대학입시, 공정성을 가장한 서열 평가는 학력이라는 잣대에 의해 전국의 학생을 서열 짓고 있다. 한국 대학서열체제의 특징은 대학의 교육력이나 학문과 무관하게 입학생들의 성적에 의해 결정된다는 데에 있다.

 

학벌이 사회 권력과 연관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부와 권력을 분배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는 오로지 학벌 획득을 목표로 하기에 교육은 공공성을 상실했으며 지식은 수단으로만 기능하고 있다. 하기에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사회적 차원에서는 비합리적인 사교육 비용이 교육 문제의 핵심으로 등장한다. 비용과 편익을 비교해 볼 때 개인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사교육비를 투여하는 것이 합리적인 투자 전략이기 때문이다.

 

학벌사회로 인한 문제를 외면하면서 사교육비만이 정책적인 과제로 등장한 결과는 교육의 시장화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교육정책에서 시장화(marketization)란 교육 분야에 시장의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자원의 효율성을 높여, 교육의 질적 향상을 꾀하자는 논리에 기반을 둔 정책변화이다.

 

공공재로서의 교육의 특수성 때문에 교육의 시장화는 민영화나 자율화, 규제완화 등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났다. 그러나 학벌사회에서 교육의 시장화는 한국교육에서 시장이나 상품화의 경향은 늘려 나갈 수 있으나 주류경제학적인 의미에서의 시장이 될 수 없다. 그것은 교육이 본래 가지는 공공재나 외부효과 등으로부터 기인하기도 하지만 소수의 학벌이 독점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육정책의 전개 과정에서 교육의 시장화는 교육의 실패에 따른 위기를 전가시키기 위해 정부주도에 의해 전개되었다. 한국 교육에서 교육의 시장화는 단지 정책적인 수단으로 등장할 뿐 수요와 공급이나 가격기제에 따른 조절 기능이 작동할 수 없다. 교육의 시장화는 단지 정책적인 수단으로 사용되며, 시장화 정책의 결과는 교육의 계급화로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교육이나 그 활동의 결과 얻게 되는 지식은 상품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출신 배경에 따른 지위를 계승하는 역할을 선발이나 서열기제를 통해 수행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교육의 시장화 정책을 통한 교육의 계급화는 더욱 강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핵심에 일제고사가 자리잡고 있다. 일제고사는 공교육 실패에 관한 책무를 지역과 학교에 묻는 수단으로 국가는 평가를 장악하고 경쟁은 개별학교와 지역이 담당한다. 학교가 제공하는 교육상품의 가치를 계량화하고 소비자들에게 학교라는 상품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공급하기 위해, 일제고사 결과는 전국의 학교를 서열화시키기에 충분한 변별력을 가져야 하고, 그 결과인 정보는 공개되고 있다.

 

학교가 서열화되고 미래가 등급 지어지는 현실에서 지역과 학교와 교사들과 학생들은 이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서열을 평가하는 일제고사로 인해 학교의 서열을 위해 학생들이 학교에서 쫓겨난
다. 그것을 잘하는 학교와 교사일수록 시장에서 선호하는 학교와 교사가 될 것이다. 더 들여다 볼 필요도 없이 쫓겨나는 학생들은 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한 학생들이다.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기에 인간은 고통스러운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 교육은 그 과정을 통해 이전보다 더 나은 상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을 북돋울 수 있기에 모두에게 소중한 의미를 가진다. 만약 교육이 그러한 역할 자체를 포기하거나 소수를 위해서만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 교육은 반(反)교육이 바로 잡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신자유주의에 머리를 둔 세계화, 인류가 공유해야할 지식과 정보가 상품화, 가치가 실종되고 이윤을 추구하는 욕망이 지배하고 있다.

 

하기에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교육은 자본주의적으로 상품화되어 개인의 정치․사회․문화․지식적 권력, 재산의 정도 등과 같은 사회적 지위에 따라 차별적․선택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특히 기초 교양 교육이 이루어지는 초․중등 교육에서는 특정 부문의 전문적 엘리트 양성을 위해 차별적으로 이루어져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인간 모두의 사회·역사적인 노동 성과인 지식은 공유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교육활동에서 교수학습과정 참여자 사이는 민주적이어야 하며, 상호 대등한 관계이어야 한다. 모든 교육기관은 사적으로 소유할 수 없으며, 이윤을 목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이를 위해 교육(운동)의 주체는 교육은 반자본·반계급적이라는 지향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교육은 단순히 지배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 장치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 이데올로기와 실천을 생산하는 장으로 기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과 국가가 통제하고 강제하는 교육으로부터 빚어지는 정치-사회-문화-계급적 불평등 확대는 전체 노동자·민중의 피폐된 삶과 직결된다. 그러므로 교육(운동)의 주체는 교사·학생·학부모에서 계급적 주체인 노동자·민중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이 날 교육운동의 전략을 재구성하기 위한 포럼은 운동주체의 확대와 공동의 실천을 향한 한 걸음을 내딛었으며, 다음 포럼을 기약하며 공동선언문을 읽으며 마무리했다. 가을이 오고 있는 계절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러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그 순간에도 용산의 아픔은 서울역에서 터져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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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정체성

- 번호이동과 성전환

 

입법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방식은 결국 더 많은 규제조건들을 만들거나 명문화한다는 점, 기존의 법안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고 지나칠 수 있다는 점 등의 한계가 있다. 모든 입법운동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호적상의 성별변경 등과 관련한 특별법은 호적정정은 필요하지만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에게 법적 요건에 부합하도록 요구하거나, 이들을 원천 배제한다. 그리하여 "진성 트랜스젠더"이기 위한 "조건", "자격심사기준"을 더 많이 그리고 더 까다롭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문제는 법안을 제정해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호적법과 주민등록법 등 관련법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더 '근본'적인/'효과'적인 "해결"일 수 있다. 입법운동은 사실상 기존의 법을 문제시하지 않으며 기존의 법/담론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법을 만든다는 점에서, 기존의 인식에 문제제기하는 것은 별로 없으며 (있다고 해도 결국 기존의 법/담론의 체계 내에서 이루어지고) 호적정정이 쉬워졌다고 해서 다른 불편들까지 해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 성전환자가 자기 이미지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의 경합

 

흔히 '섹스-젠더정체성-섹슈얼리티-성적 지향성-성적 행동들-성적 권력관계에서의 지위'는 함께 묶여서 남성적인 것들과 여성적인 것들로 일컬어지며, 이 모두가 '남성적 또는 여성적'이라는 수식어 아래에 적합하게 결합하고 있어야 정상이라고 간주된다. 반대로 이 중 한 가지 혹은 그 이상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비정상적이고 일탈적이라고 비난받는다. 사람들은 그 결합 속에서 순수한 젠더의 개념을 찾고 그것을 불변의 사실로 인식하고 살아간다. 스톤이 제시하고 있는 '장르로서의 젠더' 개념은 고정된 일련의 연계들에 기반하고 있는 '남자 아니면 여자' 식의 고정관념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며 사고방식의 전환을 제시하는 대안이다. 따라서 장르로서의 젠더 개념은 각 요소들 간의 관계를 유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성적 또는 여성적'이라는 수식어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다.

 

- 범주와 명명, 그리고 경계지대

 

왜 꼭 고통스럽고 힘들어야만 하는가? 즐거우면 나를 주장하고 요구할 수 없는가? 지금도 즐겁지만 더 즐겁기 위해 나를 주장하고 요구하면 또 안 되는가? 고통과 힘든 생존만 전시할 것을 요구하며 이렇게만 말할 것을 요구하는 그 지점에 문제제기하는 것이 운동의 출발점이라고 고민 중이다. 동시에,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 건 아니란 점에서, 어떻게 말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고통을 말하는 것이 반드시 "관음증적 페티시"를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며, 이런 발화행위가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자신을 주장하는 방식이기도 할 때, 고통을 통해서만 주장할 수 있게 하는 구조에 문제제기하는 동시에, 이런 고통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동시에 고민하고 있다.

 

- 성별전환의 법담론 비판

 

즉, 현행 법제상으로는 성전환을 한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하기가 어렵다. 혼인해소의 사유가 본인에게 있는 만큼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의 법개정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

 

- 대담

 

한채윤 ......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자신의 몸의 이미지나 느낌, 성별과 관련된 인식과 주변과의 관계, 규범과의 부딪힘들을 반추해보고 낯설게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 지점이 그동안 우리가 보지 않았던, 우리에게 금지되었던 '채널'로 젠더 규범과 제도를 보자는, 이 책의 의도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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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p

11군데 전문의를 찾아다니면서 진단서를 받았고, 나를 남자로 봐 왔고 남자로 인정한다는 진술서를 학창시절 선생님까지 찾아다니면서 33명의 지인들에게서 받았어요. 그리고 인우보증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파트너의 진술이에요. 그래서 여자친구가 나를 남자로 인정한다는 얘기들, 성관계 얘기들, 사실혼 관계에 있다는 얘기들 등을 적어 주었죠. 그렇게 라면 한 박스 정도 되는 서류를 준비해서 법원에 제출했어요.

재판이 6개월 정도 걸렸는데, 중간 중간 계속 증거자료를 요구하더라고요. 가장 뜬금없었던 것은 여자친구와의 성관계를 여자친구가 직접 작성한 진술서를 내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호적정정을 진행하고 있는 과정에서 당시 여자친구와 헤어졌거든요. 헤어진 여자친구한테 써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성관계에 대해서 진술해 줄 여자친구를 만들어낼 수도 없고. 그래서 영화를 한 편 찍었죠. 제가 그 여자 친구가 되어서 진술서를 작성해서 냈어요. 제가 써 놓고도 한 번도 다시 읽지 않았어요. 너무 민망해서. 참 민망하더라고요. 하여튼 그런 과정을 통해 성별을 변경한 거죠. 제가 성별변경을 준비할 때, 다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결국 그 계란으로 바위가 깨진 셈이죠. (- 누군가의 삶은 그 자체가 투쟁이기도 하다.)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숨기는 것이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이는 내가 상대방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판단에 따른다. 전적으로 신뢰하고 평생 친구로 여기지만 커밍아웃으로 헤어질 것을 염려하여(실제 이런 경험들이 있다) 커밍아웃을 하지 ㅇ낳을 수도 있고, 성별정체성이나 성적지향을 밝히는 것의 여부가 관계를 지속하는 데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해서 하지 않을 수도 있다(이를 알아야만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이것이 한 번에 끝나는 작업은 아니다. "저 트랜스 젠더에요"라고 얘기할 때, 상대방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도 있고, 이 말에 화가 나거나 당황할 수도 있고, 그러려니 하며 별다른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 화를 내거나 더 이상 소통하길 거부하는 경우라고 해서, 이를 혐오로만 단정할 수는 없다. 자기 자신에게 커밍아웃하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상대방 역시 이런 커밍아웃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 그렇기에 커밍아웃은 단순히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험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 그러니 누군가에게 커밍아웃을 한다는 건, 일회성 통보가 아니라 '난 당신과 나의 어떤 정체성과 관련해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 '당신이 나의 어떤 정체성을 고민하며 나와 얘기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이자, 나의 어떤 정체성과 관련해서 소통하겠다, 혹은 하고 싶다는 신호이다. ... 그러니 커밍아웃은,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가 이전까지 맺어 온 관계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이전까지 맺어온 관계부터 앞으로 맺어 갈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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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강사 해고

여성주의 학교 '간다'

신시아 인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통의 문제를 공공연히 말하자.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이 힘이다. 사람들은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비전문적인 것으로, 직업상 일탈로, 공공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고통의 초월, 이것이야말로 남성성의 본질이다. 고통을 말하면, 현실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의 관점인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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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업 고용 흡수 여력 있나

서비스업 고용 흡수 여력 있나

 

 

수출 침체에 따른 제조업 경기 급락으로 인한 고용 감소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그 동안 꾸준히 고용 창출에 기여해 온 서비스 부문의 부가가치 창출이 높지 않아 향후 고용 흡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고용 사정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2008년의 취업자수가 연평균 2,358만명을 기록하면서 2007년에 비해 14만5천명 늘어나는 데 그친 것이다. 이와 같은 취업자수 증가는 신용카드 사태가 있었던 2003년 이후 가장 적으며 2007년 28만1천명의 절반수준에 불과하다. 
 
분기 및 월별로 2008년의 고용 동향을 살펴보면 악화 추세가 더 뚜렷이 나타난다. 1/4분기의 전년동기대비 취업자수 증가는 21만6천명으로 비교적 높은 수준이었으나 4/4분기에는 5만1천명에 그친 것이다. 게다가 12월에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우리 수출 급락과 내수 하강의 타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취업자수가 전년동월대비 1만1천명 줄어들었으며 올 1월에는 취업자수가 10만명 이상 감소하면서 경기 침체의 여파가 고용 부문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계절조정 실업률은 아직까지 3%대 초반의 비교적 안정된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구직단념자가 늘면서 비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하고 불완전 취업자의 비중이 높아지는 등 국민들이 체감하는 고용 사정은 크게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서비스업이 고용 둔화 주도 
 
최근의 고용 사정 악화는 특히 서비스업 부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그림 1> 참조). 2008년 중 제조업 취업자수는 4만명 감소하였는데 이는 수출 중심 제조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 노출되면서 생산성, 효율성 제고와 자본집약적 산업화를 꾸준히 추진해온 추세적 요인이 큰 것으로 보인다. 2007년에 4만8천명 줄어든 것에 비해서도 감소폭이 작은 것이다.  
 
반면 제조업에서 이탈하는 인력을 지속적으로 흡수해온 서비스업 부문에서는 2007년 3/4분기 이후 취업자수 증가가 뚜렷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2008년 4/4분기의 취업자수 증가가 1/4분기의 절반 수준(15만명)으로 급락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업 취업자수 증가세 둔화는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운수업 등 영세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은 부문에서 크게 나타나고 있다(<그림 2> 참조). 
 
서비스업 고용이 최근 부진한 이유는 고용 변동성이 커서 경기 상황 변화에 상대적으로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고용 변동성을 표준편차로 확인해본 결과 2000년대의 서비스업 고용 변동성은  제조업에 비해 두 배 이상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규모 기업이나 자영업의 비중이 높고 고용의 경직성이 크지 않은 서비스업의 특성상 경기 변동에 따라 고용을 상대적으로 더 쉽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2008년 3/4분기까지 수출 호조로 우리나라 제조업 경기는 비교적 양호한 모습을 나타낸 반면, 신용 경색과 자산 가격 하락으로 소비는 2008년 초부터 지속적으로 둔화되면서 내수 중심의 서비스업 업황은 부진한 모습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최근의 경기 변동 특징은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의 고용 사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기 변동에 따른 2008년의 고용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제조업과 서비스업 부문에서의 추세적인 취업자수 증감을 기술적으로 제거한 후 순수하게 경기 순환에 의해 발생하는 부분만을 관찰해볼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최근 서비스업에서의 고용이 제조업에 비해 훨씬 더 빠르게 둔화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3> 참조). 
  
제조업에서의 고용 이탈 압력 높아 
 
향후 제조업 부문에서도 본격적인 고용 조정이 예상되고 있다. 2008년 4/4분기 이후 나타나고 있는 수출 급락과 이에 따른 제조업 경기 하락이 그 원인이다. 제조업 부문에서 생산물 1단위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인력의 수를 나타내는 1인당 고용유발계수(=취업자수/실질생산)는 2000년을 100으로 놓으면 2009년에는 53까지 줄어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감안할 경우 2008년의 제조업 고용 수준이 2009년에도 유지되기 위해서는 제조업 실질생산이 올해 10% 가까이 늘어나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글로벌 수요 급락에 따른 교역 물량 감소로 우리나라 수출이 올해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수출 제조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작년 말에 이어 올해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업체들이 고용 조정 이전에 가동률을 낮추고 재고조정에 들어가는 등 경기 침체에 대비하여 다른 방도를 먼저 강구하겠지만, 침체의 폭이 깊어지고 기간이 길어질수록 한계 기업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고용 이탈 압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제조업 부문의 고용은 서비스업에 비해 경기 변동의 영향을 덜 받지만 지금과 같은 급격한 경기 침체의 상황에서는 고용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과거 외환위기 당시에도 구제금융 신청 이후 1~2개월의 시차를 두고 제조업의 고용 둔화세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경험이 있다(<그림 4> 참조).  
  
부가가치 낮은 서비스업, 인력 흡수 여력 낮아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의 고용 사정이 그 동안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 이유는 제조업에서의 고용 감소가 서비스업 부문의 고용 증대로 전환되어 왔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고용 확대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현재의 글로벌 경제 위기가 고용 대란으로 확대되지 않기 위해서는 서비스업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특정 산업의 고용 흡수 여력은 부가가치 창출력이 어느 정도 되는가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제조업과 서비스업, 그리고 서비스업의 각 부문별 부가가치를 비교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비스업의 1인당 명목부가가치(=서비스업 명목GDP/서비스업 취업자수)는 그 동안 금융보험업 분야에서의 IT 기술 도입, 도소매업 등에서의 자영업자 감소 등 생산성 향상과 구조조정 노력으로 꾸준히 증가하여 왔다. 하지만 서비스업 부문의 부가가치 생산성이 이처럼 꾸준히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 속도가 이보다 더 빨라 양자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그림 5> 참조). 1992년에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부가가치 생산성이 거의 동일하였지만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서비스업의 1인당 부가가치 창출력이 제조업의 60%대로 하락하였고 그 이후에도 격차는 계속 벌어져 2008년에는 제조업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는 서비스업 부문의 구조조정이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향후 제조업에서 이탈하는 인력을 새롭게 받아들일 여유가 많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서비스업을 각 부문별로 자세히 살펴보면 2000년대 들어서 저부가가치 부문의 고용 유발이 활발히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6> 참조). 먼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중에서는 통신업, 부동산업 부문에서만 연평균 4% 이상의 취업자수 증가가 이루어졌으며, 금융보험업의 고용 증가는 1.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저부가가치 부문 중 교육서비스업의 경우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면서 많은 인력을 끌어들여 2008년에만 6만명의 고용을 새로 창출했지만 2008년 3/4분기까지의 1인당 부가가치액은 서비스업 전체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2천1백만원 수준을 나타내었다. 또 사업서비스업은 8%가 넘는 높은 고용증가율을 나타내었으나 1인당 부가가치액은 2천만원 수준에 그친 것으로 확인되었다. 마지막으로 생산성도 낮으면서 고용 증가도 더디거나 마이너스인 서비스업 부문은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운수업 등인데, 이 부문들의 명목 부가가치액은 8백만원~2천2백만원 수준이었으며 취업자수 증가율도 -0.6%~1.5%에 불과했다.  
  
자영업, 퇴로 역할 힘들어  
 
서비스업 부문에서의 고용 증가가 이들 부문에서의 부가가치 창출 증대로 새로운 고용 기회가 늘어난 것이라면 이는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 격차가 계속 확대되는 것은 제조업의 유출 인력이 서비스업으로 불가피하게 유입되는 성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 운수업, 오락문화업, 기타 개인서비스업 등의 1인당 부가가치가 서비스업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환위기 이후 다른 부문에서 고용 기회를 찾지 못한 인력들이 이들 산업으로 대거 유입되어 부가가치의 추가적인 하락과 과당 경쟁을 야기한 바 있다.   
 
서비스업의 인력 흡수는 상당 부분 자영업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자영업주와 무급가족종사자를 포함하는 개념인 비임금근로자의 비중은 2007년 현재 도소매업 46.5%, 음식숙박업 44.7%, 운수통신업 39.8%로 제조업의 14.6%에 비해 크게 높다. 문제는 통상적인 시기에는 자영업 부문으로의 고용 흡수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급격한 경기 침체 상황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과거 외환위기와 신용카드 사태 직후 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이나 제조업 등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발생하면서 이로부터 퇴출된 인력들이 다른 금융 관련 기업이나 새로운 고부가가치 업종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대부분 저생산성의 자영업 창업 등에 나섰다(<그림 7> 참조). 1998년 당시 전체 취업자에서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취업자수가 차지하는 비중과 이들 산업 내의 자영업자인 비임금근로자 비중이 함께 높아진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2006년 이후 자영업에 유입되는 인력보다 퇴출되는 인력이 더 많은 구조조정의 과정이 장기적으로 진행되면서 2008년에는 자영업 취업자수가 6백만명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영업으로부터의 純인력유출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들 부문의 부가가치가 여전히 낮기 때문에 아직 구조조정이 미흡한 상황이다. 서비스업의 대형화와 전문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생계형, 가족형 사업의 비중이 여전히 높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을 여타 선진국, 경쟁국과 비교해 보아도 이러한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그림 8> 참조). 캐나다와 영국, 호주,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의 2007년 기준 비임금근로자 비중은 10%대 초반에 머물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31.8%로 세 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외환위기 이후 서비스업 부문에서의 자영업 창업이 실업의 대안이 되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이들 부문의 고용 흡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위기에 따른 고용 위축 본격화될 것 
 
향후 세계 경기 급락과 수출 침체에 따른 제조업에서의 인력 이탈이 현실화될 경우 서비스업에서 이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외환위기 때에는 경기가 V자형으로 급락했다가 회복됐기 때문에 부가가치 하락을 감내하면서도 제조업이나 여타 부문의 인력을 서비스업이 일부 흡수한 경험이 있다. 포화 상태의 자영업 부문에 진입한 사람들이 비교적 단기간의 경기 회복에 힘입어 그나마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작년 4/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성장률 저하추세는 외환위기 때 만큼 심하지는 않겠지만 경기 하강 지속기간은 더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의 위기는 글로벌 동시 복합 불황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침체가 장기화될수록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배가되어 자본력이 약한 자영업자들부터 퇴출되기 시작할 것이며, 최악의 경우 자영업의 대량 퇴출 사태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반 기업 뿐 아니라 자영업자를 비롯한 서비스업 부문의 인력 진출입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동시에 적극적인 수요 급락 방지책과 확실한 내수 활성화 대책을 통해 고용 창출력을 높여야만 여타의 일자리 대책도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끝>

 

출처 : LG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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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이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를 둘러싼 교사들의 이야기

교사들이 말하는 ‘학교폭력, 그 이면’
 
여성주의 교사모임 ‘삐삐 롱스타킹’ 3인 좌담
 
여성주의 저널 일다 우완
 
 
◇<이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를 둘러싼 교사들의 이야기
 
교사들이 직접 쓴 학교폭력에 대한 생생한 현장보고서가 이야기책으로 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 학생생활연구회 따돌림사회연구모임 교사들이 8여 년간의 연구와 논의를 통해, 직간접으로 겪은 학교폭력 사례들을 재구성한 <이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김경욱 등저, 양철북)를 펴냈다.
 
저자들은 학교폭력의 대안이나 평화유지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책은 지금 실제로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상세히 드러내고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교사들의 솔직한 심정과 고민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폭력에 대해 열린 토론이 가능한 논쟁적 텍스트인 것이다.
 
학교폭력은 학생뿐 아니라 모든 교사들이 피해갈 수 없는 배움터와 일터의 현실문제다. 여성주의 교사모임 ‘삐삐 롱스타킹’ 선생님들이 <이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를 읽고 좌담을 가졌다. 다음은 우완(고등학교), 우돌(고등학교), 미정(중학교) 세 교사가 나눈 학교폭력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학생들의 ‘쎈 척’을 분석해낸 점 흥미로워
 
▲ 여성주의 교사모임 ‘삐삐 롱스타킹’ 3인의 교사들이 <이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를 읽고 좌담을 가졌다.  © 일다-박희정의 캐리커쳐
우돌:
“이 책 재미있었다. 특히 재미있었던 점은 아이들의 세계를, 상상이 아니라 관찰을 통해서 그려냈다는 거다. 굉장히 밀착된 시선으로, 아주 미시적인 부분까지.
아이들의 세계를 잘 나타냈다고 일컬어지는 청소년 소설들은 많지만-이를테면 ‘완득이’류-모두 일종의 어른들의 판타지가 개입되어 있다. 어른이 보고 싶어하는 청소년의 모습인 거다. 또 어른들이 보고 싶어하는 결말이고.
 
그런데 이 책은 아이들의 세계를 실제적으로 세밀하게 관찰해 분석해내고 있어서, 내가 가르치는 애들과 함께 읽고 토론해보고 싶어질 정도다. <김경태의 생존수칙>편에 보면 학급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수칙’들이 나오는데, 이런 것 토론해보면 재미있지 않겠나?”

 
우완: “어, 정말 그렇겠다. 학생들에게 한번 들이밀고 얘기해보는 게 훨씬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김경태의 생존수칙>편과 <그래도 연극은 계속된다> 두 편에 걸쳐 ‘쎈 척’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분석하고 있는데, 학생들 사이의 ‘쎈 척’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 주의 깊게 보았다.

 
이번 학기 초에 1학년 수업에서 자기소개를 모두 발표하도록 했는데, 학생들은 싫어하는 것에 대해 공통적으로 ‘쎈 척’을 꼽곤 했다. 신입생으로 들어와 친구관계를 새로 맺어가는 시점에 언급되는 것인 만큼 뭔가 중요한 것 같았는데, 그때 난 그 ‘쎈 척’이 뭔지 잘 이해가 안되었다. 학생들에게 물어보고는 단지 ‘잘난척한다’, ‘포장한다’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을 보니, 그게 ‘반항하는 행동’을 가리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이 그 ‘쎈 척’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새로웠다. 학생들마저 ‘싫다’고 하듯, 학교사회에선 소위 ‘반항하는 학생들’에 대해 단지 ‘교사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는 애들’이라거나, ‘규칙을 어기는 애들’, 그래서 ‘나쁜 애들’이라고 치부해버리곤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선 학생들이 생존하기 위한 방식으로서 ‘쎈 척’을 분석해낸 점이 매우 신선했다.”

 
“교사들은 학생들에 대해 두려운 감정을 느낀다”

 
우돌: “그런데 이 책은 아무 관점도 없이 애들을 맑은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고 관찰하며 쓴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을 바라보는 교사들의 ‘관점’이 분명히 있다. 그 관점에 대해 토론해 볼 여지가 있다. 말하자면 학교 안의 불의를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 ‘쎈 척’에 대해서도 신선하게 분석해 놓기는 했지만, ‘쎈 척’에 대해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생각을 드러내고 있는 거다.

 
‘지각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표현으로 학급분위기를 정리하는 것에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는데, 규율을 지켜야 한다는 관점이 기본적으로 있는 것이다. 소위 ‘쎈 척’이라고 불리는 행동들 중에서도, 용의복장 규율을 어기는 행동과 남을 괴롭히는 행동은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똑같은 ‘쎈 척’=일탈로 보고 있다.

 
<그래도 연극은 계속된다>편의 마지막에 학생이 ‘왜 나는 쎈 척하면 안되느냐’고 묻는 질문은 그래서 시사적이다. 책에서 분석해 놓았듯 학생들의 ‘쎈 척’은 존재감을 인정받으려는 투쟁의 일환이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고 근절되어야 할 것인가? 하나의 개성이고 생존전략이고 자신들만의 표현방식일 수 있다. 사실 어른들의 사회도 마찬가지 아닌가?”

 
▲  신간 <이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 표지
우완:
“그럼 ‘쎈 척’에 대해서 단지 일탈행동으로 치부하지 않고 생존전략으로서 분석해낼 수 있었던 것과, ‘쎈 척’ 행동들을 하나로 뭉뚱그려 없어져야 할 것으로 보는 점이 어떻게 저자들의 가치관으로 함께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우돌: “사실 세밀하게 보자면, 이 책 한 권 안에 학생들의 폭력적 행동에 대한 교사 자신의 혼란이 드러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들이 기본적으로 학생들의 권력을 두려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리 두기가 되지 않는 거다. 교실 안의 상황을 그 안에 들어가서 보느냐, 밖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른데, 책에서는 교사가 그 안에 들어가서 학생들 중 어느 편에 속해 있다. 저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애들을 무서워하는 느낌이 있고, ‘쎈 척’을 공론화함으로써 학생들이 당황하자 어떤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가 애들이 ‘쎈 척이 왜 안돼요?’ 하자, 교사가 무기력해지는 모습이 묘사된다. 그걸 보면 그런 혼란을 느낄 수 있다.”

 
우완: “나도 책을 읽으며 ‘학생들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내 안에 있는 감정과 만나는 걸 느꼈다. 사실 신규교사들이 학교 현장으로 들어오며 걱정하는 것들은 모두 ‘학생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항상 ‘요즘 애들이 말은 좀 잘 듣냐’고 안부를 묻는다. 이것도 다 그런 두려움을 전제하고 있는 질문이다. 그러니까 결국 교사들이 내가 꼭 쥐고 있어야 할 권력을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거다. 그런 나 자신이 책 속에 드러난 여러 선생님들의 모습을 통해 나타나 있더라. <평화의 신은 없다>에 나타난, 작년에 말썽부린 학생들을 새 학년에 다시 맡게 되었을 때의 절망도 그런 거다.”

 
우돌:
“교권이란 게 대체 뭔가? 그게 요즘 내 고민이다. 세상에서 보통 ‘교권’이라는 말은 학생인권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말해지곤 한다. 체벌을 금지하는 것이 교권의 박탈이라고 느끼는 심리가 그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교권의 반대개념이 학생인권이 되어서는 곤란한 것 아닌가? 이 책이 학생인권을 무시하는 책이 아니란 건 알지만, 구석구석에 보이는 그런 교사의 심리가 드러난 부분들이 당황스러웠다.”
 
‘개입’해야 할 때와, 해선 안될 때가 있어

 
우완: “내가 또 이 책의 내용과 내 고민과 만났던 지점은,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하고, 학생들의 관계 안으로 파고들려고 했던 담임교사의 태도가 얼마나 유효한가 하는 부분이다. <평화의 신은 있다>, <평화의 신은 없다>에 나오는 선생님들이나, <나이팅게일의 일기>의 주인공 선생님은 학생들의 관계에 굉장히 민감하고 개입하려고 한다. 나도 그런 교사였던 것 같다. 그래서 너무나 아이들 간의 문제가 잘 보이고, 또 학생들이 스스로 나한테 이야기하러 많이 오고, 그런데 내가 해결할 방법은 몰라서 괴롭고….

 
그래서 다른 교사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불쌍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더라. ‘그런 관계문제에 차라리 무관심하면 학생들이 저희들끼리 해결하는데, 이건 우 선생이 너무 그런 문제에 예민해서 생기는 문제다.’ 정말 그런 건지? 이 책에 등장하는 선생님들도 학생들 간의 관계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아서 관찰하고, 개입하고, 뛰어다니지만, 결국 그래서 더 괴로워 보이기도 해서 마음이 무거웠다. 학급을 전통적인 강압적 방식으로 지도하는 교사가 관계의 면을 보지 못해 문제를 키운다면, 나이팅게일 선생님은 지나치게 개입해 화를 부르기도 하는 것 같았다.”

 
우돌: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담임교사의 역할이 여러 가지 서류업무와 민원을 처리하는 동사무소 직원 같아지는 게 사실이다. 애들끼리의 관계는 못 본척하거나 은폐하려고 하는 교사들이 점차 많아진다. 아주 큰 사건으로 비화되지 않는 이상, 못 본척하려는 현상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나이팅게일의 일기>에서의 나이팅게일 선생님처럼 하는 것이 대안인가? 그 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과연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학생들 간의 관계에 담임교사가 개입해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나는 ‘개입’의 문제에 있어서, 이런 것은 구분하려고 한다. 왕따라고 다 같은 왕따가 아니다. 그 해의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따돌림으로, 그 아이가 감당하고 지고가야 할 문제일 수도 있고, 그 아이가 어떤 학급에 가든 매년 맞이하게 되는 반복된 패턴일 수도 있다.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왕따 당하는 아이는 좋은 아이였는데 실은 그 아이를 왕따시키는 애들이 이상한 것이야. 그러니 나는 그 아이를 왕따시키는 아이들의 무리 속으로 돌려보낼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다른 반 친구와 학교생활 즐겁게 잘 하라고 했고, 실제로 그 아이도 그렇게 잘 지냈다. 그 아이만의 약점을 꼬투리 삼아 희생양과 같은 왕따를 만드는 경우에는 담임의 단호한 개입이 필요하지만, 이 경우는 담임의 개입이 필요 없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점도 개입해서 가르쳐야 할 점이다. 사실 왕따의 핵심은 권력관계에서 비롯된다. 나는 학생에게 물은 적 있다. ‘너 내 성격 마음에 안 든다고 때릴 수 있어?’ 학생이 나를 못 때리는 이유는 내가 선생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왕따는 왕따가 될 만해서 그런 거라고들 하지만, 친구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때릴 수는 없는 거다. 이런 건 담임으로서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따’에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볼 수 있을까?

 
▲ <이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 목차
우완:
“<평화의 신은 있다>편에선 학생들이 글쓰기를 통해 서로의 속마음을 내보이고, 들여다보고, 서로의 상처에 대해 알게 되고 공감하는 경험을 통해 학급의 대 화해를 불러오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같은 방법을 써보았지만 학생들이 오히려 따돌림 당하는 학생이 얼마나 나쁜 불량학생인지 고발하는 내용만 가득 쓴 적이 있다. 불량학생이니 담임 너도 그 아이를 미워해라 이거다.

 
그때 학급에서 왕따 문제를 해결하겠답시고 학생들을 데리고 했던 이야기가 ‘모두를 좋아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싫어할 수 있다. 하지만 싫어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은 다르다. 미워하지는 말자’는 거였는데, 참 공허하더라. 미운 걸 어쩌겠는가? 마음이 그런 걸.

 
이 책을 보며 그 때 그 미움의 감정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교실 안에서의 삶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보니, 좁은 교실 안에 하루 종일 머무르며 서로 상처 주고 아웅다웅하는 것이 참으로 가련했다. 실은 30~40명씩 모여 하루 종일 자유롭지 못하게 지내는 상황 자체가 얼마나 폭력적인가? 스트레스 쌓이는 것도 당연하고, 그러니 그 나쁜 에너지가 서로를 미워하는 데로 가는 것도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 교실 안에서 끊임없이 서열을 만들고, 그룹을 만들고, 기 싸움을 하고….”

 
우돌: “그러니까 그런 상황이 바로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공간을 돌아봐야 할 상황인 거다.
우리가 규율과 도덕이라고 가르친 것이 학생들끼리 서로를 찌르는 무기가 되는 된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가?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 만들어 놓은 질서, 이 질서가 과연 왕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규격이 오히려 왕따를 만드는 것 아닌가? 과연 윤리교육, 정의교육이 왕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리타분한 프레임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할 거라 본다. 학생들의 서열 짓기 문화, 생존수칙, ‘쎈 척’ 이런 것들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미정: “그 서열 짓기 문화라는 게, 과거에는 남학생들만의 문화였지 않나? 남자아이들은 서열 짓고 대장 뽑고 꼬붕 정하고,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끼리 조용히 구석에서 놀고. 그런데 과거와 달리 여자아이들 목소리가 커지고 또 개인주의가 확산되면서, 패거리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게 왕따, 따돌림이 아닌가 한다. 싫으면서도 싫지 않은 척, 놀아주던 착한 여학생들도 이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게 되면서 나타난 변화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돌: “그럼 따돌림에서 긍정적인 면도 좀 찾아볼 수 있다고 봐야 할까?“

 
우완: “내가 보기엔 여자애들한테까지 좋지 않은 남성적 패거리문화가 전파된 거다. 여자애들이 더 폭력적이 된 것 같다. 옛날에는 차마 싫어하는 애들에게 그러지 못했는데. 그냥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싫지만 놀아주고. 그런데 요즘은 모욕을 주고, 야리고, 욕하고 하는 폭력이 일상화되었다. 만만한 대상을 쾌감을 느낄 수 있는 도구로 여긴다.”

 
미정: “이런 측면도 있다. 힘을 써 본 사람이어야 힘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다고 하지 않나. 가족 내에서 폭력적인 아버지권력에 대한 싫은 감정을 인정하고 필요하면 싸워야 되듯이, 학생들이 부정적인 패거리라도 형성하면서 사회 내 권력관계에 대한 감을 익힐 수도 있는 거다. 과거의 여학생들이 전혀 모르던 사회적 망을 형성하는 것.”

 
우돌: “난 학급공동체의 붕괴가 큰 원인일 것 같다. 학급의 공동체가-사실은 상상의 공동체였지만- 공고했던 시절에는, ‘내’가 배제될 가능성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학급공동체가 무너졌기 때문에, 학생들이 배제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패거리를 형성한다. 행려병자들이 예전에는 마을공동체 안에서 묻어 살아갔지만 지금은 시설로 가야 하듯, 학급에서 권력관계의 약자들은 얼렁뚱땅 학급공동체에 기대 1년을 보내는 것이 예전에는 가능했다면 지금은 불가능해진 거다.”

 
우완: “그렇다면 이전과 같은 학급공동체의 붕괴를 부정적으로 봐야 하는 건가?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

 
우돌:
“나도 ‘정의로운 학급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교사들이 적극 개입하라’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과연 바람직한 방향인지 묻게 된다. ‘억지 공동체’를 애써 만들어 애들의 감정을 변화시키거나 교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적인 룰로써 폭력은 쓸 수 없도록 하는, 공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피해자에게도 ‘나 상처받았다’가 아니라, ‘나의 권한을 침해 당했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 쪽으로 접근하는 것이 핵심 아닐까.
 
피해자를 위한 교사의 시도들도 다 상처를 준다. 교사가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학생들이 안다. 난 차라리 제대로 된 ‘쎈 척’을 가르치고 싶다. 학생들이 담임 앞에서 ‘쎈 척’한다는 건, 담임이 권력이라는 걸 파악했다는 거다. 그건 대단한 통찰이다. 난 그런 것을 건강한 표현이라고 본다.”

 
폭력에 대처하는 교사의 역할은 무엇?

 
우완: “학생의 ‘쎈 척’도 인정하고, 그러면서도 또 개입할 곳에는 개입하고, 그러나 너무 개입하지는 말고…. 너무 어려운 게 담임교사의 역할인 것 같다. 담임의 권력이라는 게 학생들과 대척 지점에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나서, 담임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정: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사이의 길’. 폭력적인 방식에 대해선 배제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원칙 정도가 최소한의 역할이지 않을까?”

 
우돌: “아무리 좋은 담임이라도 담임은 권력이 있고, 학생들이 그 권력을 자각하는 것은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부담은 줄더라. 학급 행사하면서 뭐 공동체강화니 뭐니 거창하게 하는 게 아니고, 그냥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하는 거라고 편하게 생각하게 됐다. 교사가 한 몸 바쳐 모든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교육계에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화해하라는 식의 소용없는 개입 말고, 폭력적 행위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지 않나? 그렇다면 대체 폭력에 해당하는 행위는 무엇인지 교사와 학생 모두 공동체 안에서 합의하고, 공식적인 룰로 만들어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규칙을 만드는 거다.”

 
우완: “그러기 위해서는 폭력이 왜 안 되는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한데, 학생들에게는 그 과정 자체가 참 어렵다. 또 학생들과 함께 만들었다는 명분만 남은 규칙이 될 수도 있다. 학생들간의 관계에는 담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훨씬 크게 작용하는데, 감수성이 내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허한 규칙을 만들면 오히려 더 위험하지 않을까?”

 
미정: “나도 규칙 만들기는 우려되는 면이 있다. 성폭력의 문제도 피해자 중심주의, 혹은 세세한 성폭력 관련규범을 만들고 들이댔던 것이, 오히려 성폭력담론을 성숙시키기보다는 우스개거리로 만드는 도구가 되기도 했던 것을 지켜본 바 있다. 학교폭력에 있어서도 세세한 룰을 만드는 것보다 그 감수성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우돌: “그런데 난 약자가 강자의 권한을 넘겨받아 동등해진다는 건 허상이라고 본다. 권력관계 그 자체는 인정해야지, 강자가 약자를 인정하는 것으로 화해를 도모한다는 건 거짓말이다. 강자가 약자에 대해 ‘난 널 이해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에서부터 폭력이 시작된다.

 
이 책에서 <평화의 신은 있다> 부분에서의 전략이 통한 이유는 초등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아직 권력관계와 폭력의 방식이 내면화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권력관계의 문제면 권력관계를 직면하도록 하고, 폭력이 무엇인지 공언한 후 단호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 <나이팅게일의 일기>에 등장하는 선생님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교사들의 현재를 설명하지 못한다. 결국 계몽의 교사론이지 않나. 교사 개인이 열심히 하면 학급문제가 해결된다고 이야기하는 건 우리한테 유리한 담론은 아니다.”

 
우완: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이제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아무래도 여학생들의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미시적인 권력관계를 더 면밀히 살펴보고 싶어졌다. 그런 걸 우리가 관찰하고 책으로 써도 재미있겠다. 혹은 ‘교무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수칙’ 따위?”

 
미정: “난 여교사들이 남자아이들 처음 만날 때, 익숙하지 않아서 당황할 수밖에 없는 그들만의 서열 짓기, 패거리문화 등에 대해 꼭 한 번 집중적으로 탐구해보고 싶다.”

 
우돌: “이 책에서처럼 교사가 아이들에 밀착해서 미시적인 관찰을 하는 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허상 속에서 상상의 아이들, 상상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화인류학적인 접근으로 학생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교무실 생존수칙은 정말 재미있겠다. 우리가 꼭 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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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이 답답한 ‘女’교사들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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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주간지 교육희망

결정문

교육희망  / 2009년07월11일 21시56분

본 결정문은 우리조합 성폭력 예방 및 처벌규정 제6조 6항에 의거 해당위원회의 요청으로 게재하는 것입니다.

 

사건 2009 성폭력징계재심 제 1호( 2009. 06. 10 )
결정 요지 : 재심위원회는 청구인들에 대한 성폭력징계위원회의 주문사항에 대하여 청구인들의 재심 청구가 이유 있다고 보고 주문과 같이 처분한다.
참고 규정 : 성폭력예방 및 처벌 규정 제 2조, 징계포상규정 제 10조
〔청구인〕박○○, 손○○, 정○○
1. 박○○
2. 손○○
3. 정○○
 
〔재심청구의 취지 및 이유〕
1. 박○○ : 조직적 은폐, 2차 가해에 대한 재고 요청
2. 손○○ : 조직적 은폐에 대한 재고 요청
3. 정○○ : 조직적 은폐 및 2차 가해에 대한 진상 조사 요청
 
〔징계재심위원회 경과 보고〕
1. 회의 과정
가. 1차(6/10)
1) 위원장 호선
2) 재심에 필요한 참고자료 선정 및 요청
나. 2차(6/12)
1) 청구인의 재심 청구 요지 파악
2)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에 따른 논의결과 요청(민주노총)
3) 징계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질의요지 및 징계위원장 3차 회의 출석 요청 4) 특위 참여단체 3차, 4차 중 회의 출석 요청
5) 문건 검토 및 논의
6) 청구인 구명에 대한 서명 건 확인 및 자제 요청
다. 3차(6/17)
1) 징계위원회 위원장 참고 진술
2) 특위 외부 4단체 참고 진술 요청 건 확인 및 논의
3) 문건 검토 및 논의
라. 4차(6/19)
1) 청구인 3인 진술 및 질의
2) 문건 검토 및 논의
3) 피해자(대리인) 5차 회의 출석 요청
마. 5차(6/23)
1) 피해자(대리인) 출석 일정과 관련한 답변 공유 및 재논의
2) 피해자에 대한 질의서 요청 결정
3) 피해자에 대한 질의 요지 정리
4) 문건 검토 및 논의
바. 6차(6/26)
1) 피해자 답변서 확인
2) 조직적 은폐 및 2차 가해에 대한 위원들의 판단과 의견
3) 청구인 3인에 대한 징계양정에 대한 논의
4) 공표방식에 대한 논의
사. 7차(6/30)
1) 조직적 은폐 및 2차 가해에 대한 위원회의 판단 논의
2) 청구인 3인에 대한 징계 양정 결정
3) 징계의결서 작성
4) 공표 방식에 대한 6차 회의 결정 사항 확인
5) 징계의결서 제출
 
2. 참고 문건
가. 박○○, 손○○, 정○○ 청구인의 재심청구서
나. 민노총 진상규명특별위원회보고서
다. 전교조 성폭력징계위원회 결과 통보
라. 민주노총 중집 회의록(2009. 3. 19)
마.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에 따른 논의결과 통보 건(민주노총)
바.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조사결과에 대한 전교조 처리 결과 보고
사. 1심 징계위원회 회의록(1차~4차)
아. 징계·포상규정
자. 성폭력 예방 및 처벌규정
3. 참고인 진술
가. 박○○, 손○○, 정○○ 청구인 진술
나. 강보선 성폭력징계위원회 위원장
다. 재심위원회 질의에 대한 피해자 답변서
라. 피해자 대리인과의 통화 등
 
〔징계재심과 관련한 기본 입장〕
1. 민주노총진상규명특별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진행된 징계위원회의 처분에 따른 징계재심위원회임을 고려, 특위보고서를 신뢰, 존중하고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하여 재심에 임한다.
2. 청구인 3인이 재심을 요청한 '조직적 은폐'와 '2차 가해'에 대한 조합의 판단을 위해 공개 가능한 문건과 참고인 진술을 통해 진상조사에 준하는 활동을 한다.
3. 조합의 규약 및 규정에 근거하여 판단하고 결정한다.
 
〔주문〕
1. 조합은 박○○ 청구인에 대하여 경고 처분한다.
2. 조합은 손○○ 청구인에 대하여 경고 처분한다.
3. 조합은 정○○ 청구인에 대하여 경고 처분한다.
4. 청구인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성인지적 관점 제고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다.
 
〔재심위원회 판단 및 근거〕
1. 진상규명특위 보고서 중 '사건 자체가 일상적인 국면이 아닌 긴급한 조직 활동의 과정에서 민주노총 고위 간부와 연루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도 사건화와 조직적 공론화를 막음으로써 조직적 은폐를 조장했다.'는 보고와 관련하여 청구인들이 재심을 요청한 '조직적 은폐' 및 '조직적 은폐 조장행위'에 대하여 청구인이 조직의 간부이긴 하나 이 사건의 조직적 공론화를 막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를 확인 할 수 없었고, 사건을 축소·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도모한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없었다. 이에 조직적 은폐 조장행위에 대해 혐의 없음을 판단한다.

 

2. 그러나 손○○ 청구인의 경우 사건 발생 당시 초기 인지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의적 판단 속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강구하지 못했고, 박○○ 청구인의 경우 사건을 인지하고서도 자의적인 판단 속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직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였다.
 
3. 따라서 사건 발생 당시 조직의 간부였던 박○○, 손○○ 청구인이 피해자를 중심으로 최선의 해결책을 강구하지 못한 책임과 과실, 조합에 끼친 영향 등을 고려하여 주문과 같이 처분한다.
 
4. 정○○ 청구인이 피해자를 통해 사건을 인지하고, 고소 의사 사실을 들은 2008년 12월 23일과 29일 두 차례의 만남을 통해 고소를 하면 검찰과 보수언론, 정권에 의해 노출되고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내부적인 징계절차의 진행을 지켜보며 고소 시점을 고려해 달라고 말한 것은 피해자의 상황과 고통에 공감하고 조직의 책임을 통감하기 보다는 성폭력 사건의 정치적 파장과 조직적 타격을 함께 내세움으로써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킨 행위라고 볼 수 있다.
 
5. 따라서 사건 발생 당시 조직의 최고 책임자인 정○○ 청구인이 피해자를 중심으로 최선의 해결책을 강구하지 못한 책임과 과실, 조합에 끼친 영향 등을 고려하여 징계양정을 결정하되 정권의 총체적 탄압과 관련한 조직의 상황과 청구인의 조합 활동 공적 등을 참작하여 징계 양정을 감경한다.
 
6. 청구인들은 피해자의 상황과 고통에 공감하고, 문제 해결 및 치유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못한 과실에 대해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성인지적 관점 제고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다.
 
〔조합에 대한 권고 사항〕
조직과 개인의 비대칭적 권력관계에 대하여 성찰하는 가운데 진보운동 속에서 조직과 개인의 관계에 대한 긍정적 가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
성폭력과 관련한 조합의 관행 및 고정관념을 성찰하고, 성인지적 관점 및 젠더의제를 실천해 갈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방안을 개선해가도록 권고한다.

 

2009.6.30
전교조 성폭력 징계 재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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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전교조, “성폭력 사건 조직적 은폐 조장 없었다”

성폭력 진상규명 특위 결론 뒤집어...민주노총에 논란 번질 듯

김용욱 기자 batblue@jinbo.net / 2009년07월09일 21시33분

전교조 ‘성폭력 징계 재심위원회(재심위)’가 민주노총 김상완 성폭력 사건의 전교조 2차 가해자 3인의 징계 재심 과정에서 “성폭력 사건의 조직적 축소·은폐 조장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재심위는 9일 공개한 재심 결정문에서 “(민주노총) 진상규명 특위 보고서 중 ‘민주노총 고위 간부와 연루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도 사건화와 조직적 공론화를 막음으로써 조직적 은폐를 조장했다’는 보고와 관련해 청구인이 간부이긴 하나 이 사건의 조직적 공론화를 막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를 확인 할 수 없었고, 사건을 축소·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도모한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정권 탄압에 따른 상황과 조합 활동 공적 참작해 경고 징계

 

재심위는 이에 따라 2차 가해로 제명 징계를 받았던 정진화 전 전교조 위원장, 손 모 씨, 박 모 씨를 두고 “조직적 은폐 조장행위에 대해 혐의 없음을 판단한다”고 결정했다.

 

재심위는 또 “손 모, 박 모는 최선의 해결책을 강구하지 못한 책임과 과실, 조합에 끼친 영향을 고려해 경고 처분한다”고 결정했다.

 

전교조 징계규정에 따르면 ‘경고’ 조치는 ‘업무수행과정에서 주의를 소홀히 하여 조합에 손해를 끼친 자’, ‘권리정지 징계 대상자로서 그 행위가 경미하고, 반성하는 태도가 역력한 자’에 대해 내리는 징계다.

 

성폭력 사건 당시 전교조 위원장이었던 정진화 전 전교조 위원장을 두고는 “성폭력 사건의 정치적 파장과 조직적 타격을 함께 내세움으로써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킨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결론 내렸지만 “정권의 총체적 탄압과 관련한 조직의 상황과 조합 활동 공적 등을 참작하여 징계 양정을 감경한다”고 밝혔다. 재심위는 정 전 위원장에게도 경고 처분을 내렸다.

 

정권의 총체적 탄압과 조합활동 공적을 참작해 감경한 것도 논란이 예상된다.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서 항상 논란이 됐던 것은 조직보위론과 조직 내 활동 성과를 놓고 판단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특위, “조직의 간부가 조직의 이름을 거론하며 은폐 시도”

 

전교조 재심위는 기본입장으로 "특위 보고서를 신뢰, 존중하고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하여 재심에 임한다"고 결정문에 밝혔지만 ‘민주노총 성폭력 진상규명 특별위원회(진상규명 특위)’의 결론을 사실상 뒤집은 것이어서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진상규명 특위 보고서는 “성폭력을 말하는 피해여성에게 ‘조직’을 거론하는 순간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며 성폭력 사건의 은폐를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보고서는 또 “성폭력 사건을 둘러싼 외부적 환경이나 정치적 판단을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렵게 사건의 가시화를 결정한 피해자에게 큰 압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3월 13일 진상규명 특위 기자회견에서 김인숙 특위 위원(민변여성인권위원회)은 “민주노총 차원의 조직적 은폐 시도라기보다는 조직의 간부가 조직의 이름을 거론하며 은폐 시도가 있었기에 조직적 은폐시도라 명명한 것”이라고 조직적 은폐 시도를 설명한 바 있다.

 

당시 엄혜진 특위 위원(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도 “이 사건이 이석행 위원장의 은신처 제공과 관련한 급박한 정치활동의 과정으로 민주노총과 소속 연맹(전교조)이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대책과 사건해결에 나서지 못한 점이 조직적 은폐로 규정하게 된 이유”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특위 위원들과 보고서가 조직적 은폐라고 규정을 내렸고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도 조직적 은폐의 의미를 받아들여 전교조에 징계를 권고했지만 전교조에서 사실상 결론이 뒤집힌 것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피해자 의견서도 부인한 꼴...민주노총으로 파장 커질 듯

 

이번 결정은 피해자의 의견과 정진화 전 위원장의 의견이 전혀 상반된 가운데 사실상 정진화 전 위원장의 의견에 손을 들어줬다는 데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그간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 해결 원칙은 피해자 중심주의에 뒀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정진화 전 위원장이 의견서를 게시판에 공개하고 이를 전면 부인하는 피해자도 재심위에 의견서를 전달했지만 정 전 위원장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5월 8일 정 전 위원장은 공개 의견서를 내고 “2차 가해, 또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조직적 은폐를 조장한 것으로 규정하여 법적 책임을 묻는 피해자 대리인 기자회견(2월 5일), 민주노총 진상규명특별위원회 기자회견(3월 13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결과(3월 19일), 전교조 성폭력징계위원회 결과(4월 22일)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심정을 드러낸 바 있다. 진상규명 특위 보고서와 보고서를 채택한 민주노총 중집 결정을 모두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특위의 가장 큰 결정은 전교조 2차 가해자들의 행위가 조직보위론에 입각한 조직적 은폐를 조장 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정 전 위원장은 피해자를 두 번 만나 한 얘기를 자신의 의견서에 담음으로써 피해자와 진실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6월 30일 재심 결정이 난 후 7월 7일 피해자가 공개한 의견서는 정 전 위원장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는 것이었다. 피해자는 이 의견서에서 “정 전 위원장의 진술은 기본적인 사실 관계에도 부합하지 않는 자기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전교조 전 위원장의 의견은 받아들여졌고 피해자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피해자가 이 결정으로 어떤 고통을 받을지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이번 재심위 결과는 다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에서 논쟁을 불러올 수도 있다. 민주노총 여성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반성폭력 운동을 전부 무로 돌리는 결정”이라며 “외부 단위까지 함께한 특위 보고서와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 결정을 무시하고, 성 평등 미래위원회를 건설하려는 취지마저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활동가는 “전교조도 참석하는 민주노총 중집에서 7시간 동안 토론해 진상규명 보고서를 채택한 것이고 대의원 대회에서 후속조치까지 논의한 사안이기 때문에 중집이 책임을 지고 후속조치를 점검하겠다는 사실을 잠정 내포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4월 1일 대의원 대회에서 몇몇 대의원이 성 평등 미래위원회 설치를 반대하자 비대위 위원장직과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 사퇴를 걸기도 했다. 당시 성폭력 사건의 후속조치는 민주노총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날 임성규 위원장은 미래위원회 설치가 만장일치로 통과되자 피해자가 보낸 편지를 읽으며 목이 메이기도 했다.

 

피해자는 민주노총에 보낸 편지에서 “민주노총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보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감사하며 금전 보상은 정중히 사양하고 그 마음만 받겠다”고 전했다. 피해자는 이어 “저는 이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주노총 조합원이기도 하다”면서 “저는 조합원으로서 민주노총이 저에 대한 보상보다는 일정액수를 성 평등 사업 예산에 책정해 안정적 성 평등 사업을 해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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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가해

성폭력 피해자, 정진화 전 위원장 주장 전면 반박

"정 전 위원장은 조직만 생각했지, 피해자는 생각하지 않았다"

김용욱 기자 batblue@jinbo.net / 2009년07월07일 12시41분

작년 12월 초 민주노총 간부 김상완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7일 정진화 전교조 전 위원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공개했다. 피해자가 공개한 글은 '성폭력 2차 가해자 전교조 재심위원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6월 25일 재심위원회에 피해자가 보낸 것이다.

 

전교조 재심위원회는 제명 징계를 받았던 2차 가해자 정진화 전 위원장, 손 모씨, 박 모씨 등에게 30일 회의에서 제명 보다는 낮은 징계로 결정했다.

 

피해자는 이번 성폭력 사건 해결과정을 꾸준히 문제제기해 온 이향원 전교조 조합원을 통해 전교조 내부 게시판에 이 글을 공개했다. 피해자는 재심위 결정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자신의 입장 글을 조합원에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는 이글에서 "인터넷 공간에서 정진화 전 위원장을 지지하는 일단의 분들이 저를 음해하는 글을 게재해, 마치 제가 가해자이고 정 전 위원장이 피해자라도 되는 것처럼 사건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면서 " 제가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견뎌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원하는 대로 제가 직접 답변을 드린다"고 반박 글을 쓴 배경을 밝혔다.

 

피해자는 주로 정진화 전 위원장이 지난 5월 8일 전교조 내부 게시판에 올린 '조합원선생님께 올리는 글'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을 글에 담았다. 글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피해자는 정 전 위원장에게 위로를 받기보다는 사건 축소를 위한 압박감을 더 받은 것으로 보인다. 5월8일 정 전위원장이 올린 해명글과는 전혀 정반대의 내용이다.

 

피해자는 "정 전 위원장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오랜 시간동안 고통 속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고소를 할까 한다'는 말에 위원장의 첫마디는'고소는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고 정진화 전 위원장의 말을 전했다.

 

피해자는 정 전 위원장이 5월 8일에 자신과 한 말을 왜곡, 축소해서 올렸다는 내용의 글을 이어갔다. 피해자는 정 전 위원장이 "특히 어려운 시기에 이 일이 알려지면 조·중·동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며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니 고소만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또 정진화 전 위원장이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과 당신을 내연의 관계인 것처럼 몰아가는 (언론)보도가 준비되고 있다고 시민단체 관계자에게 들었다. 이것 봐라. 고소하면 선생님이 힘들어진다'라는 말을 해 심리적인 불안감과 압박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정진화 전 위원장은 5월 8일 공개한 글에서 민주노총 진상규명특병위원회 보고서가 언급한 은폐 관련 사실을 두고 “저는 이 보고서에서 말하듯 피해자의 판단과 문제제기 방식을 존중하지 않고 고소를 막기 위해 끈질기게 설득한 바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피해자는 "정 전 위원장은 저의 고통과 상처를 함께 아파하거나, 저를 위로하는 것보다는 조직을 더 염려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또 "정 전 위원장은 제가 정 전 위원장과 만났을 때 피해 사실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제가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한 다음에 그를 만났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피해자는 " 저는 솔직히 전교조에서 제가 받은 상처를 위로받고 싶었고 전교조와 함께 문제를 풀고 싶었고, 일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전 위원장은 냉정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또 "저는 (전)위원장의 사무적이고도 냉정한 태도에 또 다른 상처를 입게 되었고, (전)위원장이 직접 나서 사태를 무마하고 피해자를 돕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전교조와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피해자 자신이 고소를 결정하게 된 이유가 정 전 위원장을 만난 후 더는 전교조를 신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피해자는 이어 "제가 전교조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위원장을 찾아가 끔찍하기만 한 저의 상처를 다시 들춰낼 이유는 전혀 없었다"며 "언론에 나오면 안된다. 조·중·동에 이용당하면 안된다. 고소하면 안된다는 것 말고, 저를 위해서 했던 이야기가 과연 있었냐"며 반문했다.

 

피해자는 전교조 활동가로서 고뇌를 밝히기도 했다. 피해자는 "저는 정 전 위원장 못지않게 전교조 조합원으로 열심히 활동했다. 15년 이상을 지회 집행부로 활동했고 지회장을 2년 동안 해왔기에 제가 가해자를 고소했을 때, 전교조에 가해질 비난이나 타격이 걱정됐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이로 인해 자신의 피해를 구제하는 당연한 일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피해자는 "그래서 민주노총에서 제안한 대로 진상조사와 징계 결과를 기다렸고, 가능하면 이를 통해 사안을 해결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는 마지막으로 "저는 정 전 위원장을 만날 때, 그가 위원장으로써 피해자인 저보다 더 흥분하고 화를 내며 가해자를 가만두지 않겠다, 응징하겠다고 말할 줄 알았고 함께 울어줄 줄 알았다. 그러나 정 전 위원장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서 "위원장으로서 조직을 걱정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정 전 위원장은 조직만 생각했지, 피해자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외부단체의 도움을 받았다는 일부 주장을 두고도 "전교조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던 제가 평소 신뢰하던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며 "정 전 위원장을 지지하는 분들은 제가 외부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비난하고 있다. 도대체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지, 누구라도 알려주기 바란다"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마지막으로 " 이 글을 쓰면서 저는 또 고통을 받는다"며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 제가 받은 피해가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느냐"면서 "더 이상 이런 고통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고 호소했다.

 

전교조는 재심위원회 결과를 7일 열리는 중앙집행위원회에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재심위 결과가 7일 중집에 보고될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전교조 재심위 결과는 중집에 보고하는 절차만 남았고 결과의 공개 수위와 방식은 재심위가 결정한다.

 

피해자가 재심위에 보낸 글 전문
저는 2008년 12월 초 민주노총 핵심간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이후, 지금까지 제가 당한 피해에 대해 반복적으로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여러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입장을 밝히기를 요구받아 왔습니다. 민주노총에서의 첫 번째 진상조사, 지도부 사퇴 이후의 두 번째 진상조사가 있었고, 전교조 위원장과도 두 번에 걸쳐 이 문제와 관련해 만남을 가진 바 있습니다.

 

그런데도 전교조에서는 또 다시 제가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반복적으로 피해자의 상처를 들춰내면서 답변을 듣고자 하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습니다. 너무 잔인하고 또 가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주노총의 첫 번째 진상조사도 그렇지만, 특히 두 번째 진상조사는 여성단체 등 외부인사들이 대거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것입니다. 진상조사의 결과, 전교조에 징계를 권고했고, 이에 대해 전교조가 징계를 했는데, 또 다시 징계를 재심의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똑같은 진술을 몇 차례나 반복해서 해야 하고, 사실을 확인해주어야 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2월 9일 대리인을 통해 전교조 차원의 진상조사활동을 원하지 않는다고 제 뜻을 밝혔던 것은 제가 몸담고 있고, 또 사랑하는 조직인 전교조가 이 문제로 인해 타격을 입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총에서도 조사를 받고, 똑같은 내용을 다시 전교조에서 받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제 뜻을 받아들였으며, 전교조의 강보선 진상조사위원장은 저의 대리인과의 전화 통화내용을 <대리인과의 통화내용 확인서>라는 서면을 통해 확인하였고, 이에 대해 대리인과 강보선 위원장이 각각 서명 날인 한 바 있습니다. 제 뜻을 전교조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전교조 차원의 진상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때 전교조 위원장과 강 위원장은 대리인을 통해 저에게 전교조가 분란에 휩싸이지 않게 배려해주어 고맙다는 뜻을 여러 차례에 걸쳐 전해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전교조 차원에서 제게 답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답변 요구만이 아니라, 인터넷 공간에서 정진화 전 위원장을 지지하는 일단의 분들이 저를 음해하는 글을 게재하고, 마치 제가 가해자이고, 정 전 위원장이 피해자라도 되는 것처럼 사건 자체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제가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견뎌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대로 제가 직접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민주노총 진상조사 과정에서 했던 진술은 사실 그대로입니다.

 

자료를 요청하여 확인해보셨다고 하고 정 전 위원장의 진술에 대한 저의 견해를 요청하셨으니 피해 사실에 대한 반복 진술보다는 진술 내용에 부분적으로 좀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는 정 전 위원장의 진술에 대한 저의 견해가 되는 것이겠지요.

 

저에게 보내신 정진화 전위원장의 진술은 조합원게시판에 올린 글의 일부분이라서 <조합원선생님께 올리는 글> 전체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정 전 위원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교조의 명예를 되찾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정 전 위원장의 사고가 큰 오류를 범하여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제가 정진화 위원장(당시)을 2008년 12월 23일 만나자고 했고 그 날 위원장이 늦게 만났으면 해서 밤늦게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린 후에 만났습니다. 12월 29일에도 저는 위원장을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린 후에 만났습니다. 위원장에게 저는 “성폭행을 당했다. 그동안 무척 괴롭고 힘들었다. 오랜 시간동안 고통 속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고소를 할까 한다. 제 생각을 위원장께는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만나자고 한 것이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의 말을 들은 위원장의 첫마디는“고소는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저는 충격을 받았고 위원장에게 말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만나는 동안 내내 위원장은 매우 형식적이고도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했으며,“선생님이 힘들어질 거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을 간간히 하긴 했지만 여러 가지 성폭력 사례와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 여성이 겪었던 고통만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어려운 시기에 이 일이 알려지면 조ㆍ중ㆍ동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며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니 고소만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또한“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과 당신을 내연의 관계인 것처럼 몰아가는 보도가 준비되고 있다고 시민단체 관계자에게 들었다. 이것 봐라. 고소하면 선생님이 힘들어진다.”라는 말을 하면서 저에게 심리적인 불안감과 압박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시민단체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알고 위원장께 말하는 것인가요?”라고 묻자 머뭇거리며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런 위원장의 태도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위원장은 이런 말들은 만나는 내내 되풀이되었습니다.

 

위원장은 저의 고통과 상처를 함께 아파하거나, 저를 위로하는 것보다는 조직을 더 염려했습니다. 이런 위원장의 태도에 대해 피해자인 제가 위원장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정 전 위원장은 제가“이미 다른 기관과의 협의를 끝냈는지 고소하겠다는 통보까지...”라고 진술하였는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정 전 위원장의 진술대로라면 위원장을 별도로 만날 필요도 전혀 없었고, 설령 만났다 하더라도 만남 직후에 바로 가해를 고소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민주노총과 제가 속한 전교조를 믿고 싶었고, 민주노총이 어떤 분을 통해 제안한 민주노총 차원의 진상조사와 징계 결과를 지켜보면서 기다렸습니다. 제가 실제로 가해자를 고소한 것은 2009년 2월 9일이었습니다. 저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고소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지, 어떤 개인이나 단체의 종용 또는 협의를 통해 그런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정 전 위원장 못지않게 전교조 조합원으로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15년 이상을 지회 집행부로 활동했고 지회장을 2년 동안 해왔기에 제가 가해자를 고소했을 때, 전교조에 가해질 비난이나 타격이 걱정되었습니다. 제가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제 피해를 구제하는 당연한 일인데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민주노총에서 제안한 대로 진상조사와 징계 결과를 기다렸고, 가능하면 이를 통해 사안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정 전 위원장은 제가 정 전 위원장과 만났을 때 피해 사실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제가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한 다음에 그를 만났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정 전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3일과 29일, 두 번 만나는 동안 제가 당했던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묻지 않았습니다. 저를 배려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에 더 급급해 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전교조에서 제가 받은 상처를 위로받고 싶었습니다. 전교조와 함께 문제를 풀고 싶었고, 일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위원장은 냉정하기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위원장의 사무적이고도 냉정한 태도에 또 다른 상처를 입게 되었고, 위원장이 직접 나서 사태를 무마하고 피해자를 돕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전교조와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정 전 위원장은 당시 제게 민주노총에서 이루어질 징계 과정이나 전교조 내의 징계위원회에서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릅니다. 저는 정 전 위원장의 자세한 설명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정 전 위원장은“추락하는 전교조의 명예를 되살리기 위해”실상과 진실을 말한다고 하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단 한번이라고 피해자인 저의 아픔과 상처를 함께 아파하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아주 작은 노력이라도 기울인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정 전 위원장 개인이 아니라, 전교조 위원장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제가 전교조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위원장을 찾아가 끔찍하기만 한 저의 상처를 다시 들춰낼 이유는 전혀 없었습니다. 언론에 나오면 안된다. 조ㆍ중ㆍ동에 이용당하면 안된다. 고소하면 안된다는 것 말고, 저를 위해서 했던 이야기가 과연 있었나요?

 

제가 정 전 위원장에게 저의 피해 사실을 알린 다음, 민주노총 측에 다시 그 사실을 알린 것은 3일이나 지난 다음의 일입니다. 제 일은 위원장에게서 3일 동안이나 방치되어 있었고, 정 전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0일과 31일에 정진후 현 위원장에게“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잘 처리되도록 부탁을 드렸다”고 하였지만, 정 현 위원장이 저의 대리인에게 두 세 차례에 걸쳐 확인 해 준 바에 의하면, 정 현 위원장은 정 전 위원장이 아닌 누군가에게 이 사건에 대해 듣고(12월 30일), 오히려 거꾸로 정 전 위원장에게 사건에 대해 물었고, 왜 이렇게 중요한 사건을 나에게 알리지도 않았냐고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

 

정 전 위원장은 또한 저를 돕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했답니다. 정 전 위원장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저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구체적인 노력은 전혀 없었습니다. 심지어 지난해 12월 29일 만남 이후 지금까지 전화 한통도 하지 않았습니다. 올해 2월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 사건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기 전에도 단 한통의 전화도 없었고, 만나자고 한 적도 없었습니다. 최대한의 노력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저를 진심으로 걱정했다는 분이 그럴 수 있을까요?

 

정 전 위원장의 진술은 이렇게 기본적인 사실관계에도 부합하지 않는 자기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전교조의 위원장이었던 분이 이렇게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저는 정 전 위원장을 만날 때, 그가 위원장으로써 피해자인 저보다 더 흥분하고 화를 내며 가해자를 가만두지 않겠다, 응징하겠다고 말할 줄 알았습니다. 함께 울어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정 전 위원장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위원장으로서 조직을 걱정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만 정 전 위원장은 조직만 생각했지, 피해자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피해자 앞에서라도 피해자를 진심으로 위로해줄 줄 알았습니다. 피해자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고, 피해자를 위해 문제를 풀어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정 전 위원장은 같은 여성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냉정한 분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제가 받은 상처는 정말 큰 것이었습니다. 전교조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던 제가 평소 신뢰하던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정 전 위원장을 지지하는 분들은 제가 외부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지, 누구라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또 고통을 받습니다. 무척 괴롭습니다.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 제가 받은 피해가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건가요?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고통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진실은 하나입니다.

 

그 진실이 인정되지 않는 조직의 현실이 슬프기만 합니다. 진실과 정의는 현재에서는 늘 패배하지만 긴 시간(역사) 속에서는 승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그 말에 기대고 있습니다.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내일이 징계재심위 결정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정파를 떠나 누구와 더 친하고 덜 친하고를 떠나 사실 그대로 진정어린 판단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2009년 6월 25일
피해자가 보냅니다.

▒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전교조에서 이어지다 (1) - [첨부/펌] 2차 가해 관련, 전교조 정진화 전 위원장의 글(전문)
    혁사 무당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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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07월 07일 17시 47분 09초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전교조에서 이어지다

지난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과 관련, 지난 4월 22일 전교조 성폭력징계위원회로부터 조직적 은폐를 이유로 제명조치 당했던 전교조 정진화 전 위원장 등 전·현직 간부 3명에게, 6월 30일 전교조 재심위가 이들에 대한 제명을 취소하고 대신 경징계 조치를 결정했다. 재심위는 정 전 위원장 등의 재심 요청을 받아들여 심의한 결과 이들이 부주의하게 대처한 부분은 있지만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던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사태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재심위가 정 전 위원장 등의 재심 요청을 받아들이자 6월 24일 피해자 중심주의를 주장하는 전교조 여성활동가들이 “민주노총 진상규명특위 보고서의 내용을 부인하고 2차 가해를 부인하는 것은 문제”라는 취지의 공식 입장을 재심위에 전달한 데다, 피해자 또한 6월 25일 재심위원회에 자신이 보낸 정 전 위원장에 대한 공개비판 문건을 7월 7일 <참세상>에 싣는 등 계속 날을 벼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참세상>의 보도자세가 균형을 잃고 있어 문제다.
전교조 홈페이지에서 블라인드 처리된 정진화 전 위원장의 글은 <참세상>에서도 소개되지 않음으로써 진보진영의 동지들이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원천봉쇄되고 있다. 그러나 <참세상>은 상대적으로 전교조 여성활동가들과 피해자의 주장은 최대한 실으면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논조를 유지해, 제명 취소를 내린 재심위의 최종 결정에도 불구하고 정 전 위원장 등의 명예에는 상당한 손상을 줄 전망이다.

따라서 혁사무당파는 진보넷 속보란에 '민주노총 성폭력, 전교조 정진화 전 위원장의 글'(5월 8일자 전문)을 첨부해 진보진영 동지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동지들이 평등한 정보공유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생산적인 토론이 있기를 기대한다.


2009. 7. 7 혁사 무당파



[첨부자료/ 펌] *** 조합원 선생님께 올리는 글 ***

2009년 5월 8일 정 진 화 올림


‘성폭행 조직적 은폐’, ‘2차 가해’, ‘전교조 전 위원장 제명’ 이라는 일련의 소식에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그간 더욱 힘들고 어려워지는 교육현장에서 아이들과 더불어 참교육에 헌신하며 애쓰신 조합원 선생님들께서 느끼셨을 충격과 실망을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듣기만 해도 전율할 무서운 소리들이 언론매체와 소문을 타고 연이어 동지들의 눈과 귀를 파고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과 진실은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어 영문도 모른 채 답답한 가슴으로 안타까워하고 계실 동지들을 생각하면서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말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지 여러분의 신뢰와 추락하는 전교조의 명예를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실상과 진실을 소상히 말씀드려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오랜 고뇌의 시간을 보내고 망설이고 주저한 끝에 이 글을 동지들께 올리는 뜻은 이제라도 공론화를 통해 이 사건의 실상과 저와 관련된 진실이 밝혀지고 나아가 전교조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있습니다.


전교조의 명예는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 사건 이후 지나온 기나긴 시간은 제게 우리 운동과 우리들의 논의방식에 대한 깊은 슬픔과 절망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동안 민주노총 진상규명특별위원회와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그리고 전교조 성폭력징계위원회까지 출두하여 제 입장과 당시 상황을 충분히 진술하였지만 제 목소리는 어디에도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폭력 사안이라는 것 때문에 비공개 회의를 통해 내린 결론들은 내용도 절차도 무시되고 당사자의 사회적 발언기회마저 봉쇄된 채 공론화 과정은 생략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거듭된 여론재판을 통해 조직적 성폭력 은폐주범으로 낙인찍힌 과정을 딛고 일어서겠습니다. 더 이상 침묵 속에 물러나 있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하여, 그리고 진보운동진영이 진실과 올바른 절차에 입각한 문제해결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하여 제게 주어진 몫을 다하고자 합니다.

민주노총 진상규명특별위원회의 보고서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 D는 이 사건에 대한 고소 의사 사실을 피해자로부터 직접 듣고 2008년 12월 23일과 29일 두차례에 걸쳐 이 사건이 알려지면 민주노총 및 피해자 소속 연맹에 대한 음해와 부당한 공격이 가해질 것이며 악의적인 언론보도로 피해자도 힘들어질 것이라는 말로 피해자의 고소 입장을 바꾸기 위해 끈질기게 설득하였다. 이는 피해자의 판단과 문제제기 방식을 먼저 고려하고 존중하기보다는 조직보위론을 내세워 민주노총의 내부절차를 따를 것을 종용함으로써 피해자를 압박한 사실로 인정된다.

- D의 태도는 피해자의 상황과 고통에 공감하고 조직의 책임을 통감하기보다는 성폭력 사건의 정치적 파장과 조직적 타격을 내세움으로써 직,간접적으로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킨 행위로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저는 이 보고서에서 말하듯, 피해자의 판단과 문제제기 방식을 존중하지 않고 고소를 막기 위해 끈질기게 설득한 바가 없습니다. 특히 피해자를 두 번째 만난 2008년 12월 29일에는 조직보다도 피해자가 중요하니 원하신다면 고소하시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민주노총의 내부절차를 따르라고 피해자를 압박한 사실도 없습니다.

더구나 이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보고서는 마치 제가 조직적 성폭력 은폐를 자행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습니다.


처음 피해자를 만난 12월 23일 저는 조직 내부의 징계규정에 대한 말씀을 드렸고, 고소에 대한 부분은 피해자가 평범한 여성이 아니라 총체적인 탄압을 받고 있는 전교조의 조합원이기 때문에 공안 당국에 의해 최대한 정치적으로 활용 당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자신이 힘들어질 수 있음을 걱정했을 뿐입니다. (이처럼 고소 후 피해자가 처할 수 있는 상황과 그로 인한 어려움을 말해주는 것은 일반 상담기관에서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물론 전교조 위원장은 조합원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조합원의 아픔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더구나 조합원이 외부의 압력과 공격으로부터 조합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더욱더 낮은 목소리로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다만 제가 단순하게 성폭력 상담을 하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대표이기에 위원장으로서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며, 그러한 고려 하에 조언을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제게 부여한 엄중한 소명입니다. 그래서 저는 민주노총과 전교조 입장도 살피고, 피해자의 슬픈 현실도 고려하면서, 시대적 상황의 엄중함까지 종합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제가 위원장이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똑같은 말이라도 제 말이 상담기관에서 하는 말과는 다른 무게로 피해자에게 들릴 수 있음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날 피해자의 입장은 성추행 피해사실을 제게 알린다기보다는 소속 조합의 책임자에게 이미 서 있는 고소결심을 마지막으로 통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웬지 마음을 열지 않는 듯한 피해자의 태도 앞에 끈질긴 설득이나 압박을 펼 분위기가 전혀 못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피해사실도 놀라웠지만, 이미 다른 기관과 협의를 끝냈는지 고소하겠다는 통보까지 한꺼번에 접하면서 충격과 어지러움에 할 말을 잃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판단을 놓쳐서는 안 되겠기에 냉정을 되찾기 위해 제 자신을 달래며 의견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피해사실을 처음 안 당시 제 임기는 8일 남아 있었습니다. 그 나머지 시간 동안 저는 민주노총에 신속한 징계를 거듭 요청하고, 성폭력 상담 전문가들에게 제 역할에 대한 자문을 구했고, 피해자 소속 지회의 조합원 선생님들께 피해자 가까이에서 위로하고 격려해줄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저의 임기를 끝내면서 그동안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후임 위원장(현재의 위원장)께 12월 30일과 31일에 걸쳐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잘 처리되도록 부탁드렸습니다.

피해자가 제게 처음 피해사실을 전할 때 저로부터 충분한 위로를 받지 못했다고 느꼈다면 그에 대해서는 참으로 안타깝고 인간적으로 도의적 책임을 느낍니다. 피해자의 상처와 아픔이 하루빨리 치유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절차상으로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2차 가해, 또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조직적 은폐를 조장한 것으로 규정하여 법적 책임을 묻는 피해자 대리인 기자회견(2월 5일), 민주노총 진상규명특별위원회 기자회견(3월 13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결과(3월 19일), 전교조 성폭력징계위원회 결과(4월 22일)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전교조 성폭력징계위원회는 저에게 ‘제명’이라는 극형을 내리면서 어떤 사유로 그런 처분을 제게 내렸는지를 저에게 정식으로 통보하기도 전에 전교조 기관지 [교육희망]을 통해 그 내용이 전국의 학교 현장에까지 알려지도록 했고 각 언론들이 그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여 저와 전교조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였습니다. 이는 전교조 내의 심판 절차도 마무리되기 전에 서둘러 공표한 행위로서 성폭력징계위원회 규정에도 명백하게 위반하는 것입니다.

민주노총 진상규명특별위원회 역시 민주노총 중집에서 보고서 채택을 결정하기도 전에 곧바로 기자회견을 통해서 보고서 내용을 발표하였습니다. 뒤늦게 민주노총 중집에서 조직적 은폐는 아니라고 결론내렸지만 이미 언론을 통해서 대대적으로 보도된 다음이어서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발뺌한다는 식의 비웃음을 샀을 뿐입니다.

그 결과 저는 제 입장에서 상황이 어떠하였는가에 대해 피력하지도 못한 채 수차례 언론의 질타를 받으며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성폭력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주범으로 낙인찍혔습니다. 개인으로서 제 명예가 실추된 것은 물론이요 전교조 역시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학생, 학부모를 비롯한 국민들에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부도덕한 집단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납득하기 어려운 처분과 행위가 이어진 지난 석 달간 너무나 참담하고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면서도, 피해자가 조합원이고 피해자의 고통이 무엇보다 클 것이라는 염려와 조직의 냉철한 판단과 결정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기다리고 견뎌내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동안 진행된 일에 대해 조합원 선생님들께 말씀드릴 때가 된 것 같아 며칠을 고심한 끝에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피해자와 만남은 이렇습니다

성폭력 사건의 발생은 12월 6일이고, 제가 알게 된 것은 12월 23일입니다. 밤늦게 피해자가 저를 만나자고 하여, 그날 피해자로부터 성폭력 사건에 대해 처음 들었습니다. “민주노총 000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검찰에 곧 고소를 하겠다, 위원장이니까 아셔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것이다”라고 말을 꺼내는 피해자 앞에서 저는 충격에 휩싸여 놀라움과 당혹감에 빠졌습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느냐고 물었지만 피해자는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제, 어디서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묻는 말에 짧은 대답이 이어졌고 굳이 말하지 않으려는 피해자의 태도에 더 이상 질문을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피해자에게 “가해자한테 이후에라도 직접 항의를 했느냐”고 물었더니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가해자가 “기억이 안 나지만 미안하게 되었네”라고 가볍게 지나가기에 분노했다고 했습니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개인이나 상담기관의 도움을 받고 있는지 물었지만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때 피해자와 같은 동료 여교사인 동시에 피해자가 속해있는 조직인 전교조의 위원장이라는 두 가지 입장을 모두 안고 있었습니다.

과연 검찰이 피해자를 보호하는 입장에서 성추행 고소 사건을 다룰 것인가.

제 판단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한창 MB악법 연내처리를 강행하려는 한나라당에 맞서서 악법저지투쟁이 날마다 국회 앞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공안당국이 MB악법저지투쟁을 무력화시키는 호재로 최대한 활용할 것이고 보수언론이 대대적인 보도를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를 무시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통일교육을 했던 조합원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8명이나 재판을 받으며 선고 직전에 있는데다가 더욱이 그날은 전국적인 일제고사가 실시되어 이미 파면 해임된 7명에 이어 또 다른 파란이 예상되던 날이었습니다. 전교조가 현 정권의 총체적인 탄압의 표적이 되고 있는 정세의 절박함 속에서 위원장으로서 조직이 입을 타격과 전교조 조합원인 피해자의 피해사실이 왜곡될 것을 동시에 염려하였습니다.

더구나 제가 피해자와 처음 만난 것은 이미 사건 발생 18일이 경과한 후이고 피해자가 고소 결심을 굳히고 저에게 통보하는 상황이라 제 의견이 영향을 미칠 여지도 별로 없어보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조직을 위해 피해자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한 순간도 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희생되는 것이 결코 조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과거 김보은 사건(성폭행 의부 살해 사건)때 전교조 대표로 여성단체들과 함께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하여 활동한 바 있습니다.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결코 취약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전교조에서 드물지만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성폭력징계위원회가 구성되어 피해자의 신원을 철저히 보호하면서 징계절차를 밟는다는 사실과 규약규정에 명시된 징계내용에 대해기억 나는 대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경우는 가해자가 민주노총 소속이니까 민주노총이 징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실 저는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기 전부터 피해자가 민주노총 위원장 수배 장소 제공과 서울 교육감 선거로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어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12월 18일 위로차 피해자의 학교 근처로 방문한 바 있습니다. “선생님이 공무원이고 여교사인데 100일 넘는 위원장의 수배 과정에서 하필 선생님 댁에 계실 때 체포되셔서 얼마나 힘드시겠냐”며 건강을 당부하고 최대한 돕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나중에 보니 이때 피해자는 제가 이미 성추행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이야기만 했다고 오해한 듯 합니다만 저는 당시 피해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점만은 언젠가 대리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피해자를 만날 수 있다면 꼭 오해를 풀어 드리고 싶습니다)

23일 마지막으로 피해자에게 아무리 힘들어도 식사 잘 하시고 건강을 잘 돌보셔야 된다는 말씀을 드리며 무거운 마음으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는 성추행 피해 사실을 직접 들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고소를 하더라도 저는 저대로 조직에 징계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민주노총에 징계를 요청하겠다”고 말씀드린 후 헤어졌습니다.

다음날 전교조 규약 규정을 찾아보고 가해자 소속이 민주노총이므로 민주노총에 징계를 요청하는 게 옳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성탄휴가가 바로 이어지는 바람에 26일 민주노총에 가해자의 즉각 보직해임과 징계를 요청하였습니다.


12월 29일 낮에는 피해자 대리인 오창익 인권실천연대 사무국장을 만나고 온 민주노총 사무총장으로부터 피해자가 당한 성추행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피해자를 다시 찾아가 우선 민주노총이 가해자의 보직을 해임하고 징계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말씀 드렸습니다. “선생님의 뜻이 제일 중요하다. 피해자 중심으로 가야한다, 민주노총도 전교조도 이제 조직이 중요한 게 아니다, 검찰에 고소하고 싶으면 하셔라, 다만 민주노총에서 징계 절차를 밟기 시작했고 투쟁이 한창 중이니 고소 시점만 좀 고려해 주시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2차 가해란 무엇입니까?

돌아오면서, 피해자가 심신이 모두 심히 지쳐 있는 듯하여 심정적인 지지와 치유를 위한 상담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과 다음날 아침 상담전문가 두 사람을 찾아가 의논했습니다. 두 사람 다 본인의 직접적 요청이 없는 한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고 하여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이게 피해자와 제가 만났던 정황의 전부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결코 성폭력 피해를 당한 동료여교사이자 조합원인 그분께 2차가해라고 할 만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전교조의 징계위원회만큼은 저의 진술을 냉정하게 듣고 사실에 근거한 공정한 판단을 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민주노총에 이어 전교조가 진행하는 모든 절차와 요구에 성실히 따랐습니다.

하지만 저의 주장과 사실은 징계 판단의 근거에서 철저히 배제되었고 저는 그저 가해자일 뿐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들을 수 있었던 말은 ‘책임 있는 사람이 무슨 변명이냐’, ‘피해자가 덜 위안을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잘못한 것 아니냐’, ‘지금 이 시점에 이야기해봐야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라는 것 뿐이었습니다. 어떤 결정에 이르기 위한 사실과 주장을 묻는 조직의 고민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단 한 줄로 명시된, ‘피해자 중심주의와 민주노총 진상규명특별위원회 보고서’가 저의 제명을 결정한 전교조 성폭력징계위원회의 근거의 전부라고 합니다.

저는 아무도 공정성과 균형감을 갖추고 사실이 무엇인가를 들으려하지 않는 현실이 너무도 답답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전교조에서 저와 다른 두 사람을 제명하고 나면 이 모든 문제가 끝이 나고, 시간의 흐름 속에 잊혀질 것이니,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해 달라는 것일까요? 차라리 그렇게 나 한 사람의 명예가 훼손되어 전교조의 명예가 되살아날 수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저는 다시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2차 가해의 책임이 어디서 비롯되고, 어디까지가 그 한계인지. 피해자 중심주의의 범주는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인지. 조직적 은폐는 또 무엇인지.

이런 개념들의 혼란과 자의적 해석은 또다시 제2, 제3의 이같은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이제라도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이 중요한 개념들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로 엄청난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무겁고 답답한 마음으로 휑하게 불어오는 한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홀로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던 2008년 12월 23일 그 밤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웃음과 행복을 위한 참교육에 오늘도 애쓰시는 조합원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와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합니다.

저는 오로지 사필귀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이 사건이 제대로 규명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것이 저를 위원장으로 뽑아주시고 임기동안 함께 해주신 조합원동지들의 믿음에 보답하는 길이라 여깁니다.

다툼 없이 어우러져 나뭇잎 푸르른 오월, 어린이날을 보내며 우리가 가고자 했던 참교육의 그 길이 어디까지 왔나 다시금 돌아봅니다.

현장에서 오늘도 수고하시는 조합원 선생님들, 내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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