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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동해보복, 그리고 여타 문제

  • 분류
    단상
  • 등록일
    2011/05/21 16:48
  • 수정일
    2015/05/06 18:49
  • 글쓴이
    푸우
  • 응답 RSS

그냥 덧글로 넘어가려고 했으나, 할 이야기가 더 많아졌고, 어차피 논의를 진행할 것이면 트랙백 형식으로 정리된 것이 낫겠다 싶어가지고, 초비님의 글[또다시 의문들]에 달렸던, 새로운 질문을 포함한 덧글들도 여기에 옮겨 놓겠습니다. 또한, 다행히도 초비님께서 저 글에서 칸트에 대해서 질문을 하셨고, 저도 그 칸트에 대해 할 말이 약간 남아있습니다.

 

저는 지난 글[여성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관계]에서 슈리님의 글[언어의 애매성을 넘어서: 푸우님께 응답하며] 중 "서론에서부터 <2.>까지는 제가 논쟁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하며 그 이유로 슈리님께서 저에게 보다 자세한 설명을 해주셔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언급한 칸트의 동해보복설에 대해 슈리님께서 "도대체 칸트의 저작들 중 어디서 저런 구절들을 뒷받침할 근거들을 끌어내시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칸트 독해에 비추어 볼 때, 푸우님의 주장은 섬뜩할 정도로 터무니없습니다."라고 말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슈리님께 더 자세한 설명을 요청할 일이 아니라, 제가 문헌적 근거를 제시해야 제대로 해결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꾸준히 문헌적 근거를 찾아보았습니다. 몇 가지 유의미한 발견을 했지만, 네이버 백과사전에서의 '형벌의 본질'에 대한 언급이나 형법 교과서에서 언급되는 칸트에 관한 이야기는, 칸트에 대한 1차 독서가 아닌 관계로 만족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참에 드디어 칸트의 『윤리형이상학』에서 관련 구절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윤리형이상학』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윤리형이상학 정초』랑 헷갈리지 않길 바랍니다. 저는 여기서 헷갈려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습니다) 영어본으로 대체하려고 했으나, 그것을 구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아 일단은 인터넷에 올려진 『윤리형이상학』의 영어본의 주소를 링크해 드리겠습니다.

 

Kant on Punishment

 

"Hence it may be said: "If you slander another, you slander yourself; if you steal from another, you steal from yourself; if you strike another, you strike yourself; if you kill another, you kill yourself." This is the right of retaliation (jus talionis); and, properly understood, it is the only principle which in regulating a public court, as distinguished from mere private judgement, can definitely assign both the quality and the quantity of a just penalty."

 

저 위의 구절을 해석하면 jus talionis, 그러니까 탈리오 법칙, 그러니까 동해보복이야말로 유일하게 정당한 형벌이라고 칸트가 주장하고 있음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부분에 대해 더 이상 "섬뜩"함을 느끼지 마시기 바라고, 혹여나 미래에도 누군가가 슈리님에게 칸트의 동해보복설을 언급하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번만 더 말하자면, 그래서 성매매를 "슈리님의 칸트주의적 방식"으로 분석하면 조금 난감해지지 않나 싶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초비님의 글에 달린 덧글들을 붙여놓겠습니다.

 

 

 

초비:

티스토리 아이디가 없는 관계로 여기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슈리님은 푸우님의 문제제기를 전혀 듣지 않은 채로 문제를 이상하게 봉합하려고 하고 계십니다. 푸우님의 두 번째 글은 가부장제 폐지야 말로 자본주의 폐지 투쟁이며 노동계급 투쟁의 진지를 구축하는 투쟁이라는 글을 인용하고 계신데요. 즉 여성주의-젠더영역, 특수성/ 마르크스주의-경제영역, 보편성이라는 도식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죠. 여성주의는 그 자체로 경제 영역의 문제이며 여성을 경제적 계급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여성주의와 무관한 마르크스주의 맥락이란, 마르크스주의와 무관한 여성주의와 마찬가지로,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성해방 없는 보편해방이라는게 애초에 논리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가능하지가 않다고요. 푸우님도 글 첫머리부터 보편성과 특수성을 중요한 논점이라고 쓰고 계신데, 슈리님은 여기에 대한 답변을 전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운동 내의 성폭력 문제 같은 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주의가 필요하니까 여성주의와 맑스주의를 '같이' 말해보자, 공산주의 운동이 흥하면 "특수"한 영역들의 해방이 잘 이루어 지지만, "특정" 정체성을 가진 사회 구성원 지위향상은 보편해방과 직결이 안되니까 계급문제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여성주의 '뿐 만' 아니라 공산주의적 가치'도' 추구하신다면" (거기다가 바디우를 인용할 정도로 급진적이면?) 현실적 사안에 의견이 갈릴 일 없으니까 괜찮다, 라고 대답하시는 건데, 님 글로 판단해 보면 여성주의/마르크스주의를 여전히 별개로 보고 계시는 겁니다.

 

 

초비:

푸우님은 여성주의자는 공산주의자고 공산주의자는 여성주의자들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슈리님의 글은 제가 보기에는 전혀 푸우님의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이 아닙니다. 바디우든 지젝이든 주판치치든 누굴 인용하든 간에 핵심적인 논지가 서로 갈리는데요. 물론 여성주의는 그냥 젠더 문제라고 생각하는 좌파도 운동권 성폭력 문제 덮어두자는 주장에는 같이 반발할 수 있죠. 근데 개별사안에서 연대할 수 있으면 이론적 기반 따위 그냥 퉁치고 넘어가도 되나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면 애초에 첫 글은 왜 쓰신 건지 전 모르겠습니다.

 

 

푸우:

저도 슈리님의 글에 반응을 하고 싶었는데 트랙백을 보내기는 애매하고, 티스토리 아이디가 없어서 덧글은 달 수 없어서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초비님께서 이런 공간을 마련해 주셔서 더 추가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우선 저도 초비님께서 하신 질문에 대한 대답은 듣고 싶습니다.

 

추가적인 질문도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슈리님이 운동권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 반대할 수도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므로 슈리님이 운동권 내 성폭력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계시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정말 질문하고 싶은 것은, 그렇다면 슈리님이 "자본주의 타도가 제일 원칙"이라는 전략을 취소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최소한 수정이라도 하시고 싶은 것인지의 여부입니다. 혹은 아예 "자본주의 타도가 제일 원칙"이라는 전략이 그런 운동권 내 성폭력의 문제와 무관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분명히 그 전략과 운동권 내 성폭력 사이의 관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인데, 슈리님께서는 마치 본인은 애초부터 거기에 반대하므로 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셔서 저에게 상당한 무안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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