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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가족형태 비판 :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현재성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현재성>은 지금이 2006년이니까, 정확하게 3년전에 사서 본 책인데. 이제야 다시 본다. 점점 기억력이 떨어지나보다. 봤던 책도 안본거 같고, 안본것도 본 거 같다. 과천연구실 책은 집에 몇권이 있기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그동안 들이 보지 않아서. 하나씩 꺼내보고 요약을 해두어야지.

 

 책은 근대적 가족형태 비판과, 쉴라 로보쌈의 자료(마르크스 박사에게 보내는 가상의 편지/마르크스 가족의 가려진 사생활) 두가지 번역이다. 아, 여기에서 말하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네가지 분류에서 mf에 국한되지 않는 넓은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몇가지만 메모해두고, '근대적 가족형태 비판' 요약.

 

- 프로이트에 대한 해석

- 가족임금체계에 대한 평가

- 알튀쎄 이론이 페미니즘에 미친 영향, 철학적 비판

- 가사노동논쟁의 성과와 한계

- 가족에 대한 역사적 분석의 의미

- 뤼스 이리가레의 '여성권'

 

 



:: 엥겔스의 기여와 한계

<기원>의 의의는 역사적으로 변화해온 가족형태를 분석하여, 기존의 초역사적 분석에 대한 유의미한 비판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엥겔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 억압을 bg 가족에 한정해서 보았는데, 왜냐하면 pt의 경우 남성지배의 물적 토대가 존재하지 않고 여성의 일반적 고용상승이 평등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성들의 사회적 생산에로의 완전한 통합을 여성해방의 필수적 조건으로 보았다. 그러나 엥겔스의 예견과는 달리 노동시장에 편입된 여성들은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가사노동에의 이중부담으로 노동운동에서도 주변화되었다. 책에서는 이후에 나오지만, 가족임금체계를 통해 오히려 부르주아적 가족 모델을 받아들이게 된다. 한편, 콜론타이는 '새로운 가족형태, 성도덕, 자유연애'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1960년대까지 마르크스주의에 있어 여성문제는 엥겔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960년대 여성해방운동의 부흥과 함께 '가사노동 논쟁'이 제기되었다. 논쟁을 통해 여성문제에 대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접근 자체를 재검토 하기 시작, 성과 계급의 인과적 연관성에 대한 논쟁이 일어난다. 이에 대해 독자적 가부장제론을 제기한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맑스주의와의 조화를 꾀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등장한다.(가부장제론의 초역사성과,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이론적 공백이 한계로.)

 

 

:: 자본주의적 재생산과 가족형태

 가사노동 논쟁 등에서 인간의 재생산에서 여성이 담당하는 역할에 주목하게 되면서, 재생산의 계기를 간과한 고전 마르크스주의는 남성적 마르크스주의로 비판받는다. 그리고 생산과 재생산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생산의 두 계기들로 이론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런 접근들은 대부분 알튀쎄의 영향(재생산, 이데올로기 개념 등)이 크다. 대표적으로 시큼(Seccombe)은 어떤 가족형태도 주어진 생산양식과 분리할 수 없으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보았다. 즉, 생산양식은 가족형태를 구성하지만, 가족형태 역시 생산양식의 구성과 발전에 능동적으로 작용하는 요소이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에서 사용하는 초역사적 가부장제 개념이 아니라, 일 가족 내에서의 가부장적 특권을 볼때, 농민가족에서 노동자가족으로의 이행은 생산수단의 박탈, 즉 가내권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또한 여성, 아동노동의 편입과정은 엥겔스가 예견한 노동자계급 내에서의 성적 평등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러나 '가족임금체계'의 확립은 상황을 변화시켰다. (가족임금에 대해서는 하트만과 같은 페미니스트들은 자본가과 남성노동자의 공모로 보고 여성억압적인 것으로 비판한다. 린지저먼의 글에서 알수 있듯이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의 연대와 세대간 연속성을 보장함으로써 노동자 계급 일반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으로 본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의 이행이 새로운 물적 토대 위에서 자녀관계와 부모-자식 관계를 변화시켰으나, 이것이 가부장제의 최종적 소멸을 가져오지는 못했고, 가족임금체계라는 새로운 토양 위에서 재구성되었다. 임금형태의 개인화는 자본주의 발전의 불가피한 결과였으나, 남성 생계부양자 규범의 승리는 불가피한 것으로 볼 수 없다.

 

 

:: 가족형태와 젠더 이데올로기

 바렛(Barrtte)은 가족임금의 도입과정에서 '젠더 이데올로기'의 역할 강조. 가족임금은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부르주아가 확립한 가족에 관한 헤게모니적 정의들을 노동계급이 수용한 결과로 본다. 이러한 젠더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의해 자동적으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가족 안에서 진행되는 젠더이데올로기 과정에 대해 분석하지 못함.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입장에서 정신분석학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된 것이 알튀세의 이데올로기 이론이다. 대표적으로 미첼(Mitchell)은 여성의 지위가 생산과 더불어 재생산, 성욕, 사회화에 의해 중층결정된다고 주장. 가족은 경제적 기능 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기능과, 사회적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경제적 단위로서 가족을 종말시킨다 하더라도 이데올로기적 기능과 사회적 생물학적 단위로서 가족을 폐지시킬 수 없다. 미첼은 기존 페미니스트들의 비판과 달리, 라캉의 재해석에 근거하여 프로이트를 긍정적으로 파악했다. 이에 대해 이리가레는 정신분석학이 무의식적 환상들이 현존하는 가부장적 사회질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부장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 근대적 가족형태의 역사 

 빅토리아적 가족에서 아메리카적 핵가족으로.

 

빅토리아적 가족 : 자본주의의 발흥과 함께 부르주아는 새로운 가족 구조를 확립시킨다. 남녀간의 엄격한 역할 배분이 특징이다. 여성성과 남성성, 그리고 아내의 역할이 가정을 중심으로 재정의. 부모-자식 관계에서도 감정적 친밀성이 중요해지며, 아동기가 새롭게 발명되면서 모성이데올로기가 형성. 결혼은 낭만적 사랑이라는 새로운 관념.

 

아메리카적 핵가족 : 자본주의 초기 출현한 가족에 대한 부르주아적 관념은, 가족임금체계를통해 노동계급에게 이식되기 시작한다. 빅토리아 가족이 이상화한 낭만적 사랑을 동반자적 사랑으로 대체하고, 성애적 부부관계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1960년대말 아메리카 법인자본주의의 위기와 더불어 가족임금 체계가 위협받게 되면서, 남성 생계부양자 가족은 더이상 지배적 가족 형태일 수 없게 되었다. 동반자적 결혼이 안고 있는 모순(남녀간의 성적 일치라는 이상) 역시 아메리카적 핵가족을 유지하게 어렵게 만들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의 분석은 근대적 가족형태의 딜레마들이 경제적, 사회적 재생산의 일반적 위기로부터 발생한 것임을 보여준다. 현재 진행중인 가족의 위기는 가족관계를 넘어서는 사회경제적 구조의 총체적 위기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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